“자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야. 자기만의 가족 울타리를 만들겠다는 건데 이 작은 소원도 들어주지 않네. 자기가 얘기해 봐. 하늘이 무심한 거야, 자기가 이기적인 거야?”이서는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지환 씨 그만해요.”얘기할수록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지환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지환은 가볍게 웃으며, 이서의 코를 살짝 내리 쓸었다. 그녀의 기분이 좀 진정되자, 계속 입을 열었다.“자기야,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얘기해, 지금은 자기 자신만 생각해. 내 생각은 나중에... 알았지?”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당신은... 내가 떠날까 봐 걱정되지 않아요?”이서가 말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지환이 오해할까 봐서였다.“아니.” 지환은 이서의 손가락에 키스했다.“우린 평생 함께할 거니까.”드디어 이서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당신이 방금 말한 심리치료...”그녀는 얼굴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그거 뭐예요?”“약물치료나 물리치료를 병행하는 치료인데... 치료 과정이 많이 힘들대.”말을 한마디 뱉을 때마다 지환의 심장은 칼로 에는 것 같았다.“자기야...”이 험난한 과정을 겪지 않게 하려고지환은 마이클 천에게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치료할 것을 요구했었다.그러나 지금 보니 그의 이런 결정이 오히려 이서의 고통을 가중시키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그녀의 병세가 악화되었으니.이성적으로는 치료받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줄곧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이서가 고통받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서.지환이 걱정하는 바를 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 괜찮아요. 치료받고 싶어요. 당신 곁에만 있을 수만 있다면, 어떤 치료도 다 받을 수 있어요.”말하고 나니 오히려 그녀의 죄책감도 줄어드는 것 같았다.지환은 이서의 손을 꼭 잡았다.두 사람은 묵묵히 마주 보며 아무 말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무언의 침묵 속에 녹아 있었다.
베란다에 나온 이상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환은 인내심을 참아가며 물었다.“뭔 얘기인데, 얼른 얘기해.”이상언은 피식 웃었다.지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야, 너 거울 좀 봐, 너 지금 몰골이 어떤지...”이상언은 웃으며 말했다.“아마 일 년 365일 너 뒤꽁무니 따라다니는 이천 씨도 널 못 알아볼걸?”지환은 입을 꾹 닫고 아무 말하지 않았다.그러고는 잠시 뒤 정색하며 말했다.“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이상언은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알아. 나도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거든.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시한폭탄을 던져주고 간 걸 안 뒤 너도 줄곧 초조하고 불안했잖아.나도 다 지켜보고 있었어.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이상언은 고개를 돌려 지환을 바라보았다.“너처럼 똑똑한 사람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지환은 입술을 일직선으로 오므렸다.한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는 더없이 무거웠다.“나도 알아. 지금 가장 냉철해야 할 때인 거. 그런데 매번 내 옆에 누워 있던 이서가 이상 행동하는 걸 볼 때마다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거 같아. 이서가 또 악몽을 꾸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런 무력한 느낌... 난 지금껏 내가 모든 것을 다 좌우지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서를 만나고서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이런 얻음과 불안의 교차점에 서 있는 느낌...지환은 자신의 속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었다. 이상언 말고는.이상언은 한숨을 내쉬었다“사랑이 뭐길래 사람을 이리 힘들게 괴롭히나? 지환아, 친구로서, 나도 해줄 말은 별로 없네. 너나 나나... 도긴개긴이다. 하지만 의사로서 충고 하나 할게. 마이클 천은 세계 최고의 심리치료 전문가야. 만약 그조차도 이서의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욱 불가능해. 의사가 치료할 때
“자기야...”지환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에 이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무슨 생각해?”이서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나랑 같이 회사 갈래요?”지환도 매일 집에 있으니 심심할 것 같았다.“아니.”그는 최근 빠르게 M 국 산업을 국내로 옮기고 있다.하씨 그룹을 최대한 신속하게 무너뜨리려면 민씨 그룹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SY의 일부 산업을 옮겨와야 하씨와 맞설 수 있다.“그래요 그럼, 심심하면 언제든지 전화해요.”“음.”지환은 이서와 함께 차에 올랐다.차는 곧 윤씨 그룹에 도착했다.이서가 차에서 내려 건물 안쪽에서 사라지자, 임현태는 비로소 고개를 돌려 지환에게 물었다.“대표님, 댁으로 모실까요? 아니면 회사로...?”지환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복싱 안 한 지 얼마나 됐지?”임현태는 멍하니 있었다. 대체 속내를 알 수 없었다.“대표님...”“오늘 몰 좀 풀러 가자.”임현태는 눈동자가 밝아졌다. 하지만 눈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두 사람이 함께 하씨 그룹 1층에 도착했을 때, 임현태는 마음속 모든 의혹이 풀렸다.윤씨 그룹.이서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심소희가 뒤따라 들어왔다.“언니, 뭔 일 있었어요? 이틀 동안 연락도 없고?”단톡방에서 안부를 물었지만, 임하나조차도 우물쭈물하는 걸 보니 분명 뭔 일이 있는 것 같았다.이서는 가볍게 웃었다.“집에 뭔 일 있어요?”심소희는 의심의 눈초리로 이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문득 중요한 일이 생각난 듯 화제를 바꿨다.“아, 맞다, 방금 은행에서 전화 왔는데, 서류 제출하라고 하네요.무슨 자료라는 건 얘기 안 하던데, 혹시 알고 계세요?”이서는 책상 위의 자료를 집어 들었다.“아마 이거일 거야.”심소희는 서류봉투에 적힌 글자를 읽어 내렸다.“민씨 그룹 인수 신청...”“민씨 그룹!”심소희는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고는 서류에 적힌 글자를 자세히 보았다.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니란 걸 확인하고 나서야 놀란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우리도 민
이서는 웃으며 말했다.“최선을 다할게.”심소희는 이서가 그녀를 위로하는 거로 생각하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언니, 그럼 오후에 이 서류 제출하러 가실 거예요? 아니면 제가 다녀올까요?”“아니야, 내가 다녀올게.”나가서 바람 쐬는 것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네,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이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심소희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무실에 혼자 남자, 표정이 순식간에 쓸쓸해졌다.심리 테스트를 마친 후 결과지를 보며 의사는 딱 한 마디 했었다.그녀가 이렇게 깊은 죄책감이 시달리는 것은 너무 착하기 때문이라고.“좀 모질게 살아 봐요.”이서는 피곤한 듯 의자에 한껏 기대었다.그녀도 그러고 싶다.그러나 할아버지의 죽음을 민호일에게 떠넘기는 게 안 된다.할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총알을 막았기 때문에.사람은 왜 늘 윤리적 선택의 딜레마, 트롤리 딜레마에 겪어야 할까?이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너무 힘들다. 정말 언젠가는 더는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정신적 괴로움과 육체적 피로가 겹치면서 그녀는 깊은 잠이 들었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오후 시간이었다.이서는 시간을 확인했다.아직 은행 퇴근 시간 전이었다. 가능한 한 빨리 자료를 제출할 생각이었다.그녀는 자료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임현태와 차는 보이지 못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여태껏 없었던 일이었다. 이서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택시 한 대를 타고 곧장 은행으로 달려갔다.다행히 퇴근 시간 전에 도착하여 모든 서류를 제출했다.“네, 감사합니다.” 모든 볼일을 마치고 막 은행을 나서려는데 복도에서 아첨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정 씨, 걱정 마세요. 하은철 대표가 나서서 배서를 해줬으니 틀림없이 대출 승인이 날 겁니다. 현재 H 국에서 하은철 대표 말고 민씨 그룹, 이 뜨거운 감자를 감당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다음 순간, 이서는 아주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그럼 걱정 붙들어 매고 있겠습니다. 지점장
“네가 민씨 그룹을 인수한다고 쳐. 근데 네가 뭔데 윤씨 그룹 회수한다다 만다는 거야? 그럴 자격은 있고? 깜빡했나 본데 윤씨 그룹, 최고 결정권은 나한테 있거든.”이서의 말을 들은 윤수정은 갑자기 째려보았다.“그래? 두고 보자고. 민씨 그룹을 인수하고 나면 네 인생이 뒤바뀔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을 테니. 그때가 되면 하씨 집안은커녕 윤씨 가문도 너를 내칠 거야.”이서는 담담하게 말했다.“내 인생을 뒤바꾸는 일이라,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민씨 그룹을 내가 인수해야겠네.”윤수정은 피식 웃었다.“윤이서, 너 아직 잠에서 덜 깼구나? 은철오빠가 이미 나를 지지한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는데... 너에게 기회가 있긴 할까?그리고, 너 대신 배서해 줄 사람은 있고? 설마 그 가난뱅이 남편은 아니겠지?”이서는 윤수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왜, 사람 치게? 잊지 마, 여기 CCTV가 있어!” 윤수정은 침을 삼켰다.이서의 눈빛은 살인을 저지를 만큼 섬뜩했다.굶주린 늑대가 고깃덩이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내가 왜 너를 때려?” 이서는 손을 들어 윤수정의 볼을 꼬집었다.“어우, 우리 동생, 이건 사랑의 터치예요.”“아아...” 윤수정은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멍하니 있었다. 나서야 할지 말지 몰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윤수정이 이서의 팔을 할퀴자 그제야 사람들은 진흙탕 싸움이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달려들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그러나 이미 윤수정의 볼은 빨갛게 부어올랐고, 이서의 팔에도 여러 갈래의 긁힌 자국이 있었다.윤수정은 씩씩거리며 숨을 연신 들이마셨다.이서의 표정은 시종 냉담했다.“이렇게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윤수정, 오늘 내가 한 말 잘 기억해 둬.네가 뭐라고 떠들어도 난 상관없어. 내 눈에는 너는 바퀴벌레에 불과하거든. 사람이 어찌 바퀴벌레와 따지지 들겠니? 안 그래? 그런데 내 남편을 건들면, 나 가만 안 있어. 바퀴벌레를 제거하는 것처럼 너를 퇴치해
이서는 서류를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뜻밖에도 지환은 집에 없었다.하지만 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회사를 그만뒀어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니, ‘집콕’하는 것보다 가끔 외출하는 게 더 나은 듯했다.마침 지환이 없으니, 장을 봐서 그에게 맛난 집밥을 해 줄 생각이다.그동안 할아버지 일로 지환에게 제대로 된 밥을 안 해준 지도 오래되었다.한다면 한다!이서는 바로 마트에 가서 고기와 생선, 야채 등을 사 왔다.지환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이서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다.그녀가 요리를 다 했을 때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그녀는 문 앞에 서서 문을 밀고 들어오는 지환을 미소로 맞이했다.그러나 다음 순간, 입구에 서서 포악한 기운으로 가득한 지환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졌다.지환도 이서가 집에 있을 줄은 몰랐다.그는 재빨리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자기 어떻게 집에 있지?”“퇴근하고 바로 왔어요. 무슨 일이에요? 싸웠어요?”“아니, 현태 씨랑 복싱 연습하러 갔었어.”이서는 반신반의했지만, 더 묻지 않고 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했다.“배고프죠? 어서 와서 식사해요.”지환은 이서를 따라 주방 쪽으로 향했다. 푸짐한 저녁상을 보고 이서의 이마에 뽀뽀했다.“여보야 고마워, 수고했어.”뭔가 말하려던 이서는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고 지환의 몸에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지환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왜? 내가 밖에서 이 여자 저 여자 꼬시고 다닐까 봐?”이서는 고개를 들어 지환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당신 몸에서 피비린내가 나요.”지환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현태 씨랑 링에 올라가서 복싱해서 그런가 봐.”“임현태 씨랑요??” 이서의 눈동자는 밝아졌다.“누가 이겼어요?”“누가 이겼을까?”이서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히 천하무적 우리 자기이지요.”지환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방금 나를 뭐라고 불렀어?”“자기요. 우리 남편.” 이서는 지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왜요, 이 호칭이
하이먼 스웨이의 전화였다.이서가 얼른 받았다.“선생님.”“에휴, 이서야, 미안해. 사과하려고 전화했어.”예전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사라지고, 피곤에 찌든 사람 같은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그날 일은 가은이가 잘못했다. 너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건데.”“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 말씀 마세요.”“아니, 이서야, 내가 사과하지 않으면 평생 마음이 불편할 거 같아.”하이먼 스웨이는 억지로 웃음을 터뜨렸다.“이서야, 우리 착한 이서. 그날 많이 속상했지...”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수화기 너머의 하이먼 스웨이도 말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로 침묵하고 있었다.한때 친 모녀처럼 살갑던 두 사람, 이서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비록 아쉽긴 하지만, 이서는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그녀와 함께 지내는 동안 이서는 모성애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제대로 느꼈다.“모레 가은이 데리고 돌아갈 거야.”하이먼 스웨이가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었다.“아마 M 국에 먼저 갈 거 같아. 이서야, 혹시 필요한 거 있어? 내가 사다 줄게.”“아니에요.” 이서도 말을 이었다.“선생님이 원하는 바를 이루셨으니, 그걸로도 저는 이미 너무 행복하고 기쁩니다.”하이먼 스웨이는 가슴이 찌릿했다.‘이서... 너무 착해.’하지만 너무 착한 아이는 늘 손해를 보게 된다.하이먼 스웨이는 진지하게 고민을 마친 후 입을 열었다.“이서야, 내일 배역 오디션 있거든. 캐스팅 디렉터가 나랑 가까운 사이야. 그분의 문학 수준도 상당히 높거든. 절대 나보다 못하지 않아.앞으로 글을 쓰다 문제가 생기면 그분 찾아가.“네.” 이서는 침대에 천천히 앉아 무릎을 안았다. 왠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두 사람이 자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물론 나한테 물어봐도 되고. 다만 시차 때문에...” 하이먼 스웨이는 급히 설명을 덧붙였
“가은아.” 하이먼 스웨이는 심가은과 분명히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네가 왜 이서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서로 알아보고 만날 수 있었던 거, 다 이서 덕분이야. 사람은 은혜를 알아야지. 엄마는 네 취향도 존중하지만, 우릴 도와준 사람을 계속 이상한 사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심가은은 하이먼 스웨이가 정말 화가 난 걸 보고 얼른 앞으로 나가 그녀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엄마,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정말?”하이먼 스웨이는 의구심을 갖고 심가은을 바라보았다.“그럼요!”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 마음을 이해하는 듯한 착한 모습을 봐서는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하이먼 스웨이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그래야지. 역시 엄마의 착한 딸이다.”심가은도 하이먼 스웨이를 껴안았다. 차가운 눈빛은 눈동자 깊은 속으로 숨겼다....“왜 바닥에 앉아 있어?”문에 들어서자, 지환은 바닥에 앉아 있는 이서를 보았다.이서가 멍하니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지환의 심장이 목구멍으로 차올랐다.“자기야.” 그는 이서를 놀라게 할까 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서의 눈동자는 점점 맑아졌다. 시선은 바닥 위의 흰 셔츠에 떨어졌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당신 옷에 왜 피가 묻어 있어요?”이서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이서의 시선을 따라 지환은 흰 셔츠에 묻은 핏자국을 보며 얼굴이 어두워졌다.그 위의 혈흔은 하은철의 것이었다.당시 하은철을 방으로 끌고 들어가 한바탕 손을 봐줬다. 그때 피가 셔츠에 튄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현태 씨가 다치면서 내 셔츠에 피를 묻혔나 봐.”말을 마친 지환의 시선은 이서를 바짝 뒤쫓았다.이서는 흐리멍덩하게 답했다.“응.”“여보?”이서는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 있었어?”이서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지환은 그녀가 또 발작했을까 봐 걱정되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스웨이 작가님이 전화 왔는데, 며칠 후면 떠난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