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와 지환이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밖에서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이서는 시계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일까요?”“내가 가볼게.” 지환은 일어나서 문 쪽으로 갔다. 인터폰을 확인하고는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누구세요?”이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환은 이미 문을 열었다. 밖에 낭패한 모습의 하이먼 스웨이가 서 있는 걸 본 그녀는 즉시 문 쪽으로 가 사람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엄마, 왜 그래요?”하이먼 스웨이는 마치 산송장 같았다.그녀는 중얼거렸다.“가은이 내 딸 맞아. 확실해.”“잘됐네요, 엄마, 친딸도 찾았는데 왜 그래요...?”하이먼 스웨이는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서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날 엄마로 받아들이지 않아.”이서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고는 하이먼 스웨이의 손을 꼭 잡았다.지환은 몸을 돌려 주방 쪽으로 가 물을 한 잔 가져왔다.“엄마, 가은 씨한테 갔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말해봐요.”하이먼 스웨이는 머리가 블랙아웃 된 듯 이야기에 맥락도 없고 주절주절 늘어놓기만 했다. 그럼에도 이서는 앞뒤 상황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눈치챘다.그녀는 하이먼 스웨이를 애틋하게 안았다.“엄마, 괜찮아요. 가은 씨도 당황스러워 그랬을 거예요. 진정되고 나면 분명 엄마 찾으러 올 거예요.”“정말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이먼 스웨이는 연약한 아기새처럼 이서의 품에 움츠려 있었다.“이서야, 나 엄마로서 꽝이지?”이서는 고개를 살짝 숙여 애처롭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마음이 아팠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하이먼 스웨이의 친딸이 아닌 이상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물 좀 마셔요.” 지환은 물컵을 건넸다.하이먼 스웨이는 몇 모금 마셨다. 그랬더니 몸도 따뜻해지면서 그제야 이서 부부가 식사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미안, 식사 중인데...” 하이먼 스웨이가 미안해했다.“얼른 식사해. 나 신경 쓰지 말고.”“아니예요. 엄마는 식사했어요?
‘이서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적어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이서는 담요를 들고 나와 세심하게 하이먼 스웨이를 덮어주고는 지환의 손을 잡고 말했다.“우리 먼저 들어가요.”하이먼 스웨이를 푹 쉬게 해주고 싶었다.방에 들어간 후 지환은 이서의 허리를 껴안았다.이서는 즉시 손으로 지환의 가슴을 밀었다.“장난치지 마요, 밖에 엄마 계시는데.”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난 아무 생각이 없는데. 자기 지금 뭐 생각하고 있는 거야?”이서는 살짝 붉어진 얼굴을 뒤로 하고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심가은이 엄마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떡하죠? 엄마는 자기 인생의 반을 딸을 찾는데 써왔어요. 드디어 찾았는데 딸이 엄마를 모르는 척한다면 그 충격은 딸을 찾지 못한 것보다 더 클 거예요.”지환은 이서를 끌고 침대에 앉았다.“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여사님,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을 거야. 그러니까 곧 마음을 다잡을 거라고.”이서는 지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지환 씨, 이 세상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왜 이리 많을까?”지환은 심장이 아려왔다. 그녀는 이서를 힘껏 안았다.하룻밤 자고 다음 날 일어난 하이먼 스웨이는 다시 혈기왕성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하지만 이서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자신과 지환이 걱정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다는 것을.“엄마, 오늘 뭐 하실 거예요?” 이서는 이미 심소희에게 오늘 출근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해 두었다. 그녀는 오늘 하이먼 스웨이와 함께 있을 생각이었다.“별다른 계획은 없는데. 나 요 며칠 스케줄 없어.”“그럼 우리 있다가 시내 구경이나 갈까요?” 이서가 제안했다.“엄마 북성시에 오신 지도 꽤 되었는데, 아직 엄마한테 북성시 구경도 제대로 못 시켜드렸네요.”“좋지.”밥을 먹고 이서는 지환을 불러 같이 나갔다.운전기사의 역할은 자연스레 지환에게 떨어졌다.하이먼 스웨이는 뒷좌석에서 감개무량한
[‘말모말모’백퍼 윤수정이지. 하은철은 틀림없이 윤수정을 도울 거야. 지난번 윤수정이 설립한 하윤컴퍼니도 하은철의 자금으로 시작한 거잖아. 비록 실패하고 실검에도 올라 뭇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하은철은 아무 말없이 다 받아주고 뒤치다꺼리도 다 해줬다고.][알지, 알지, 그 일 나도 알지. 나도 그 일 때문에 하은철이 윤수정때문에 민씨 그룹을 인수할 거라는데 한 표 건다.][‘할말하않’, 그건 다 과거라고. 지금 하은철은 윤수정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오래 유치장에 있지도 않겠지...][증거 없는 진실은 진실이 아님. 윤수정이 당신을 무고죄로 고소할 수 있으니 조심하길.][웃다가 배꼽 빠져 죽겠네. 윤수정이 지금 이걸 볼 수 있다고? 모르면 함부로 얘기하지 마, 상류층 사람들은 하경철 어르신 장례식 때 이미 알아봤어. 그때도 이서가 나서서 모든 걸 처리했거든, 이건 뭘 설명하는 걸까?][뭐야, 뭐야?! 어르신 장례식을 윤이서가 나서서 챙겼다고? 와, 이는 윤이서를 하씨 집안 작은 사모님으로 인정한 거 아님?][그건 나도 동감, 얼마 전까지 하은철과 윤수정이 여러 행사에 참석했다는 뉴스를 자주 보았는데 지금은...][그게 뭐라고, 그냥 장례식에 도움이 필요해서 잠깐 도와준 걸 가지고. 하은철이 원한 게 아니라 하도훈이 부른 거 일수도 있잖아. 그리고 중요한 본질을 잊은 거 같은데, 윤이서는 이미 결혼했어. 그녀는 하씨 집안에 다시 들어갈 기회가 없다고. 하씨 집안에서 돌싱녀를 며느리로 맞을 거 같아?]...인터넷상의 공방전은 단지 네티진들의 심심풀이 땅콩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현실 생활 속의 이서와 하이먼 스웨이는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하루 일정이 끝난 뒤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를 꼭 안았다.“이서야, 오늘 함께 해줘서 고마워. 기분이 많이 좋아졌어.”“엄마, 또 이러신다, 내가 말했잖아요, 기분 안 좋을 때는 언제든지 저 찾아요, 전 많은 게 시간이에요.”“그렇지.”하이먼 스웨이가 미소를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몸은 사무실에 와있지만, 맘은 콩밭에 가 있다.그는 역으로 마음은 사무실에 있지만, 몸은 콩밭에 가 있다.지환은 입술을 치켜 올렸다. 지금 이서를 옆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었다.업무 보는 게 조금 더 불편하고 비밀 공작하는 것처럼 조심해야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이서만 옆에 있어 준다면.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 것도 한 편으로는 확실히 하씨 집안과 거리를 두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서랑 많이 있고 싶어서였다.이서는 겉보기에 이미 하경철이 돌아가신 그늘에서 벗어난 거 같지만 그날의 트라우마는 시한폭탄과 같다.그는 올라간 입술 꼬리를 내리며, 눈동자에는 차갑고 매서운 빛이 더했다.이때 방 안의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가 쓴 대본을 본 뒤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어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야, 이거 정말 네가 쓴 거 맞아?”“네! 왜요? 엄마, 너무 보잘것없죠?”“아니야, 많이 늘었어, 장족의 발전이야, 혹시 집에 글 쓰는 사람 있니?”이서는 잠깐 생각한 뒤 답했다.“아니요. 없어요.”윤재하든 성지영이든 그들의 일가친척들은 하나같이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 같은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네가 이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네. 나처럼.”하이먼 스웨이는 눈 깜짝하지 않고 자화자찬했다.“이서야, 잘 써봐. 탈고하면 출판사 연결해 줄게. 출판할 수 있으면 더욱 좋고.”“아, 그냥 써 본 건데, 출판할 수 있을까요?”“그냥 쓴 거라고? 그런데 이 정도 수준이면, 진지하게 마음먹고 쓴다면 노벨문학상도 노려볼 만하겠는데?”“엄마, 농담 그만 해요.” 너무 지나친 칭찬에 이서는 어쩔 바를 몰랐다.“어, 어떡하지? 농담 아닌데.”하이먼 스웨이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글쓰기 방면에 확실히 재능 있어. 마음잡고 쓴다면 틀림없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거야. 얼마나 위대한 작품을 써낼지는 뒷부분을 어떻게 끌고 나가는지를
심가은의 언니라는 사람이 심가은이 친엄마를 인정할 방법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하이먼 스웨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사람 지금 어디래?”[지금 샹젤리에 92번 카페에 있다고 합니다. 만나고 싶으면 그곳에 가시면 됩니다.]“응, 알았어.”그녀는 황급히 큰길로 가서 택시를 잡아타고 카페로 향했다.머지않아 카페에 도착했다.하이먼 스웨이는 그녀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가까운 곳을 골랐을 리 없다.카페에서 장희령을 본 하이먼 스웨이는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당신이 내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나요?” 하이먼 스웨이는 장희령 맞은편에 앉았다.장희령은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하이먼 스웨이를 대했다.“네, 작가님, 저도 전해 들었습니다. 제 시누이 될 사람이 작가님의 친딸이라니.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하이먼 스웨이는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우리 본론으로 들어가죠. 정말 내 딸이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할 방법이 있나요? 설마 강압적인 수단은 아니겠죠?”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엄숙하게 말했다.“그 부분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가은이가 기꺼이 작가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하이먼 스웨이는 세상에 이런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그날 심가은의 태도가 아직까지 눈에 훤했다.“정말 할 수 있겠어요? 그럼 난 뭘 해드리면 되죠?”하이먼 스웨이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장희령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아... 그런 뜻이 아니라... 제가 돕고 싶은 이유는... 작가님과 가까이 지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절대 다른 뜻이 없습니다.”하이먼 스웨이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우리 서로 솔직해집시다. 원하는 거 얘기해요. 기회는 지금뿐입니다.”장희령은 더는 시치미를 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괜히 우물쭈물하다가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한다
‘나에게는 왜 이런 좋은 운이 없을까?’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가은에게 얹어가는 게 이서에게 얹어가는 것보다는 백 배는 나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잠들기 전에 이서는 몸을 돌려 지환에게 물었다.“지환 씨, 엄마를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하이먼 스웨이를 보고 있자니 이서는 마음이 아팠다.그녀의 허리를 휘감고 생각하던 지환은 고개를 저었다.“없어.”“당신의 비상한 머리를 좀 써 봐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예요.”이서가 동경하는 얼굴로 지환을 바라보았다.지환은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이렇게 날 믿어?”“물론이죠.”이서는 지환의 가슴에 딱 붙어있었다.“당신이라면 꼭 방법을 생각해 낼 거예요.”“정말 없으면...?”“그건 이번 일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가 되겠죠. 당분간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겠지만, 가장 먼저 방법을 떠올릴 사람은 틀림없이 당신일 테니까요.”지환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자기가 이렇게 열심히 나에게 아부하는 이유가 뭘까?”자신의 계략이 들통나자, 이서는 헤헤 웃으며 일어나 앉았다.“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이서는 벌써 며칠째 혼자만 속 끓이고 줄곧 지환에게 말하지 못했다.“말해봐.” 지환은 이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나... 하은철 삼촌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어요?”비록 하은철 둘째 삼촌의 이름이 지환과 이름이 같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서는 습관적으로 그를 하은철 둘째 삼촌이라고 불렀다.말을 마치고 이서는 지환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혹시나 기분이 좋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왜 그 사람 만나고 싶어?” 지환은 눈을 아래로 보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심장 쪽 어딘가 좀 시큰거렸다.오랫동안 수많은 일을 겪으며, 이서가 그를 사랑한다는 걸 명명백백하게 알게 되면서 더는 질투 같은 건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이서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다.“그 사람 조금 지나친 곳이 없지 않지만, 우리
한 시간여 뒤 땀에 흠뻑 젖어 지환의 몸에 기대어 있던 이서는 집요하게 물었다.“그래서 자리 마련해주는 거 맞죠?”지환은 1초 동안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이서는 기뻐하며 그의 볼에 키스했다.“우리 자기 최고!”이서를 끌어안은 지환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기막힐 노릇이었다.‘젠장.’‘내 꾀에 내가 넘어갔어.’‘대역할 사람을 찾아봐야겠군.’다만 이서가 그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됐을 때에는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었다....하씨 본가.하경철이 죽은 후 하은철은 본가로 들어왔다.여기 있으면 할아버지가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죄송해요, 할아버지.”하은철은 하경철이 쓰던 책상을 쓰다듬었다.“할아버지, 나 정말 못났죠? 할아버지 마지막 소원도 못 이뤄 드리고... 하지만 두고 보세요. 반드시 이서를 할아버지 손자며느리로 들일 거예요.”“그리고... 이서의 남편이 둘째 삼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알아볼게요.”장례식이 끝난 뒤 하은철은 주경모에게 지환의 스케줄을 알아보라고 했다. 네팔 행 항공편의 탑승기록과 현지에서 찍힌 사진 등을 확인한 결과 장례식 때 해외에 있었던 건 확실한 듯했다.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하은철은 지환의 뒷모습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따르던 삼촌이었다.“도련님.” 주경모가 노크했다. 오늘도 하경철의 서재에 있는 것을 보며 소리 없이 탄식했다.“아가씨 왔습니다.”“이서 왔어요?” 하은철은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문밖에 서 있는 윤수정이 보였다.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뒤따라오던 주경모가 겸연쩍게 입을 열었다.“이서 아가씨가 아니라 수정 아가씨입니다.”“가서 일 보세요.” 하은철은 주경모에게 일러두고는 윤수정에게로 향했다.윤수정은 하은철을 보자 불쌍한 태세를 취했다.“오빠, ...드디어 오빠 얼굴 보네.”하은철은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오빠, 내가 유치장 안에서 무슨 고생을 했는지 모를 거야.” 윤수정
윤수정의 말을 들은 하은철은 안색이 약간 변했다.“뭐라고?”이서에게 어음 배서를 해주려는 건 그가 내켜서였다. 게다가 이서는 전문 경영인으로의 충분한 능력과 자질이 있다. 그런데 윤수정은...지난번 회사 부도로 인한 손해를 생각하자, 하은철은 눈살을 찌푸렸다.“안 돼! 다른 건 다 들어줄 수 있는데 이것만은 안 돼. 그룹 하나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줄 알아? 하윤컴퍼니를 말아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오빠...” 윤수정은 손바닥을 꽉 쥐었다. 그 일은 그녀 마음속의 영원한 상처이고 고통이었다.“당연히 알고 있지. 그래서 민씨 그룹을 손에 넣으면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거야. 오빠, 나 민씨 그룹 갖고 싶어. 4대 가문의 자리가 탐나서 이러는 게 아니라 나를 지켜주고 버텨줄 든든한 보호막이 필요한 것뿐이야. 나 오빠랑 헤어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막막해...”하은철은 매섭게 눈살을 찌푸렸다.‘절대로 마음 약해져서는 안 되.’‘수정이 민씨를 인수했다가 혹시라도 실적 부진에 경영 악화까지 겹치면 결국에는 하씨 그룹이 모든 부채를 감당해야 해.’‘리스크가 너무 커.’“오빠, 정말 내가 죽든 살든 상관없어?” 윤수정은 비통하게 울었다.“오빠랑 헤어지고 나서... 언니에게 기 눌리지 않으려면, 날 지켜줄 방패막 정도는 하나 있어야 할 텐데... 민씨 그룹은 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어.”하은철은 윤수정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십분 초조했다. 그는 문득 뭔가 생각이 난 듯 갑자기 눈을 들어 윤수정을 보았다.“너... 민씨 그룹 가지려는 거... 이서가 복수할까 봐 그런 거니?”윤수정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얼른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응.”“그래, 그럼 내가 배서 해 줄게, 네가 민씨 그룹 인수하는 거 도와준다고.”하은철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자, 윤수정은 오히려 마음속으로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정말? 오빠, 거짓말 아니지?”“그럼.” 하은철은 다시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