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곧 지환이 입을 열었다.“그럼, 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응.” 하이먼 스웨이는 과일을 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환이 나간 뒤에야 눈을 들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아마 지금 마음이 제일 괴로운 건 지환일 것이다.오랫동안 지환을 알고 지냈으니, 그가 얼마나 워커홀릭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서를 위해 모든 걸 다 접고 집에 남아서 이서를 돌보고 있다.‘어휴!’‘이서가 하루빨리 자책하는 마음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씻은 과일을 들고나온 하이먼 스웨이는 다시 이서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이서에게 등 떠밀려 나왔다.집을 나온 심소희는 곧 눈시울이 붉어졌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며칠 사이에 몸이 저렇게 상해 버리다니…….”임하나와 하이먼 스웨이도 침묵했다.집으로 가는 차 안의 분위기는 극도로 침울했다.같은 시각, 집안의 분위기도 침울하긴 마찬가지였다.앉아서 멍때리는 이서를 본 지환은 곧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여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해줄까?”그가 두 번 불러서야 이서는 비로소 반응했다.“응? 뭐라고요?”지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방금 한 얘기를 반복했다.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지환을 향해 팔을 벌렸다.“안아줘요.”지환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뻗어 이서를 안았다.이서는 지환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두 사람은 이렇게 조용히 서로 껴안고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이서는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지환 씨, 나 할 얘기 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지환의 심장이 순식간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얘기해 봐, 무슨 일이야?”이서는 또 한참을 침묵했다.“아니에요, 나중에 다시 얘기할게요.”지환은 이서의 턱을 들어 들었다. “왜? 무슨 일인데?”이서는 지환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별로 중요
지환은 곧 휴지를 뽑아 이서의 눈물을 닦으면서 달랬다.“바보처럼 왜 또 울어? 우리 울보…….”이서는 눈시울을 붉혔다.“안 울었어요.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만…….”지환은 실내 환경을 한 번 보았다.“그래, 그래, 알았어, 눈에 뭐가 들어간 걸로 치자. 자기야, 그나저나 매운 떡볶이 계속 먹을 거야? 먹을 거면 지금 얼른 먹어. 좀 더 지나면 다 퍼질 텐데…….”이서는 눈물을 닦으며 환하게 웃었다. 곧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응.”식사를 마친 부부는 아래층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둘은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10시가 넘어서야 이서가 일어났다.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곧 지환에게 말을 건넸다.“지환 씨…….”“응?”“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난 당신이랑 함께 할 거예요.”무덤덤하게 말을 꺼낸 이서는 왠지 지환 앞에서 선서하는 것 같기도 했다.지환은 온화하게 이서를 바라보았다. 이서의 말은 지환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의 마음이 삽시간에 안정되었다.“그래, 빨리 올라가 쉬어.”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문이 닫히자, 지환 얼굴의 웃음기가 순식간에 싹 걷혔다. 그는 곧 휴대전화를 꺼내 하은철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었다.[작은아빠, 무슨 일이세요?]“어디야?”[본가에 왔어요.]며칠 뒤면 할아버지의 하관식이 있을 예정이라 마음이 헛헛했던 하은철은 본가로 돌아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자 했다.지환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작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서에게 뭐라고 하셨지?”[별말씀 없으셨는데요.]하은철은 어리둥절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다만 저와 이서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일생일대의 한이라고 말했어요. 작은아빠, 뭔 일이에요? 왜 갑자기 이런 걸 물으시죠?]지환의 몸이 흔들렸다.그제야 이서가 오늘 밤 보였던 여러 가지 미스터리한 행동들에 대한 합리적인 답을 찾은 것 같았다.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었다.하경철의 마지막
지환은 하경철이 거주하던 본가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따라서 네비게이션 안내도 필요 없어 차를 본가 쪽으로 몰았다.차에서 내리자, 누군가가 다가와 막아섰다.경호원은 지환인 걸 확인한 후, 곧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큰 집 도련님, 안녕하세요.”지환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당을 지나 성큼성큼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안에 있던 하은철은 바깥에서 들리는 인기척을 듣고 얼른 일어나 문 쪽으로 나와 지환을 맞이했다.“작은아빠…….”입을 열자마자, 지환의 주먹이 날아왔다.하은철이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으며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 할 때, 지환의 두 번째 주먹이 날아와 그의 다른 한쪽 눈을 세게 내리쳤다.하은철은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는 아픈 나머지 두 손으로 두 눈을 눌렀다.“작은아빠, 진정하세요! 나 은철이에요, 당신 조카라고요!”‘조카’라는 두 글자를 듣고, 지환의 주먹세례는 더욱 거세졌다.앞 전 두 주먹보다 강도가 훨씬 셌다.하은철은 아파서 연신 숨을 들이쉬었다.“작은아빠, 그만해요. 아무리 윗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사람을 두들겨 팰 수는 없어요. 더 이상 멈추지 않으면 저도 맞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반격할 거라고요!”“그래? 그럼 어디 한번 반격해 봐, 내가 바라던 바다!”지환은 하은철을 놓아주었다. 차가운 눈빛은 마치 하은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하은철은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온 몸에 한기가 들었다.“작은아빠, 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웃어른을 공경해서 손 안 쓰는 거예요.”“아니야!” 지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려왔다.“오늘 밤 우리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남자 대 남자로, 계급장 다 떼고 정정당당하게…….”“왜…… 왜요? 왜 굳이……?” 하은철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몰랐다.요 며칠 줄곧 할아버지 장례식 관련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이유 같은 거 없어!” 지환은 은철을 한바탕 두들겨 패고 싶었다.그래야 속에 있는 화가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았다.돌아
다음날.이천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몇 명의 청소 아주머니에게 붙잡혔다.“이 비서님!”“무슨 일이에요?” 걸음을 멈춘 이천은 청소 아주머니 손에 들고 있는 청소 도구를 보고 갸우뚱하며 입을 뗐다.“아직 청소 못다 끝냈나요?”“대표님이 안에 계셔서…… 못 들어갔어요.”“대표님 안에 계세요?!” 이천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자신의 귀를 심각하게 의심했다.이런 상황은 예전에 M 국에 있을 때 자주 있었다.그러나 결혼한 이후 거의 없었다.다 같이 야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네, 1층 경비원이 그러던데, 대표님이 어제저녁에 들어와서는 여기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해요. 게다가 어디서 싸웠는지 얼굴에 생채기가 나 있다고 하더라고요…….”이천은 듣자마자 갑자기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설마…… 또 사모님과 싸우셨나?’이천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지환을 보았다.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확인해 보니 지환의 얼굴에는 확실히 여러 긁힌 자국과 찰과상이 있었다. 하지만 여자가 낸 상처로 보이지는 않았다.“나가!” 지환의 갑작스러운 소리에 이천은 깜짝 놀랐다.“대표님…… 괜찮으세요?”자리에서 일어난 지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천을 바라보았다.이천은 목을 움츠렸다. 지환이 왜 갑자기 화냈는지 영문도 모른 채.이서에게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이천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사모님 때문인가요? 대표님, 안심하세요. 사모님처럼 긍정적인 사람은 꼭 잘…….”지환의 차가운 시선을 느낀 이천은 뒷말을 흐렸다. 그러고는 얼른 물러나 이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 의사이자 지환의 베프인 이상언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이상언도 지환이 다쳤다는 연락을 받고 의아했다.하지만 곧 구급함을 챙겨서 YS 그룹 본부로 달려왔다.이상언이 등장한 걸 본 지환은 곧 이천을 째려보았다.이천은 못 본 척 딴청을 피웠다.이상언도 지환의 눈에 비친 거부의사를 못 본 척하면서 이천을
그는 돌연 고개를 들었다.“설마 이서 씨 너와 이혼하고…… 하은철과 결혼하겠다고 한 건 아니지?”지환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아니야, 이서는 어떻게든 나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어. 나와 헤어질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그럼, 뭐가 걱정인데?”이서가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지환은 자세를 바로잡고 앉아 이상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뼛속까지 스며들었다.“그러는 이서 마음은 오죽하겠어?”이상언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래, 이서가 지금 지환과 함께 있다고 해도, 그녀 마음속의 가시를 제거하지 못하는 한, 마음속 깊은 곳은 항상 괴로울 것이다.’“이미 M 국 최고의 정신과 의료진을 섭외해 놓았어. 곧 H 국에 들어올 거야.” 이상언은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할지 몰라 의료진이 곧 올 거란 얘기를 전했다.“고마워.”“고맙긴, 우리 사이에? 낯간지럽다, 하지 마.”이상언은 지환을 도와 상처 처리를 마쳤다.“이서 씨에게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놨어? 온몸에 상처투성인 채로 이서 씨 만나러 갈 수는 없잖아?”“이미 생각해 놓았어.”“그럼 나 먼저 간다.” 이상언은 마음이 안 놓이는지 지환을 다시 한번 살펴 보고야 떠났다.또한 가기 전에 특별히 이천에게 지금은 지환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당부했다.이천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표님 정말 사모님과 싸운 건가요?”“그런 건 아닌데, 싸운 것보다 더 골이 아픕니다. 조심하세요.”말을 마치고 이상언은 떠났다. 무슨 상황인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이천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이때 사무실에 있던 지환이 마음을 가다듬고 이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서는 전화가 울리자마자 바로 받았다.[지환 씨, 왜 내 전화 안 받았어요?]잠에서 깬 이서는 지환이 밤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걸 발견하고 그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자 메시지를 남겼었다.그러나 곧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감감무소식이라 이서는 걱
이서는 전화를 끊고 임하나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이서야, 하하하하, 웃겨 죽겠다. 아까 내가 병원에 엄마 보러 갔다가 누굴 만났는 줄 아니? 하하하하, 하은철! 온몸에 붕대를 꽁꽁 감은 게 난 또 미이라 인줄. 병원 간호사 얘기로는 하씨 집안 어른에게 맞은 거래.] [하하하, 정말 세상은 공평하다니까.][어느 분인지는 몰라도 참말로 현명하신 분이네.]이서는 문자를 확인하고 답장은 하지 않았다.할아버지가 대신 총알을 막아서인지 몰라도 비록 여전히 하씨 집안과 하은철도 좋아하지 않지만, 하은철은 할아버지의 손자여서 그런지 차마 웃을 수 없었다.메시지를 확인하고 계속 답장이 없자, 임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서야, 내가 좀 심했나?]이서는 채팅창에 뜬 메시지를 보고 멍하니 있다가 반응했다. 입가에 걱정스러운 웃음을 걸치고 있었다.[아니야, 내 문제야.][왜?][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돌아가셨잖아. 하은철이 이전에 나한테 못된 짓 많이 한 건 맞아. 그러니까 내가 죽도록 미워해야 하는데……. 사람은 참말로 희한한 동물이야. 할아버지가 날 구하고 돌아가셨는데도 과거의 미운 감정은 사라지지 않더라. 물론 감사함도 사라지지 않았어. 그런데 이 두 가지 복잡한 마음이 겹치면서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은철을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씨 집안 사람들도…….]임하나도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마음이 답답해졌다.[우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일은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이서는 웃었다.‘그래,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는 거야.’비록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 그녀와 하은철이 함께 있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적어도 하관식을 치르는 동안만이라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나가서 쇼핑할까?]임하나는 이서 혼자 집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할가 봐 걱정이 되었다.[너 오늘 출근 안 해?][괜찮아.]임하나는 오후에 반차 쓸 예정이었다. [이렇게 하자. 우리 지환 씨도 같이 불
“네, 그럼 우리 메이 플라워 쇼핑센터 정문에서 합류할까요?”[네, 그래요. 바로 그쪽으로 출발할게요.]이상언과 약속을 잡고, 이서는 곧 외출준비를 했다.서경화는 상황을 보고 얼른 물었다.“사모님, 어디 나가시는 겁니까?”“쇼핑 다녀오려고요.”“그래요, 혹시 어디로 가세요?”이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메이 플라워에요. 혹시 뭔 일 있나요?”“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같은 방향인지 해서요.”이서의 눈 밑에 어렸던 불쾌감은 바로 흩어졌다.“어디 가시려고요? 태워다 드릴까요?”“아닙니다, 같은 방향이 아니에요. 버스 타고 다녀 올게요.”“그래요? 그럼 먼저 갈게요. 있다가 봐요.”“사모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이서가 떠나는 것을 지켜본 서경화는 곧 지환에게 문자를 보내 이서의 행방을 알렸다.이서는 하나를 픽업하여 메이 플라워 쇼핑센터로 향했다.하지만 절반쯤 왔을 때 길이 완전 주차장이었다.“아니지?” 임하나는 고개를 내밀었다.“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길이 왜 이리 막히지?”옆 차도의 차주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다가 임하나의 말을 듣고 한마디 했다.“앞에 교통사고 났다고 하는 것 같은데요.”임하나는 곧 들은 얘기를 이서에게 전했다.“이서야, 지금 이 길로 가면 한참 걸릴 거 같은데, 우리 다른 길로 가보자.”이서는 핸드폰을 켜고 네비게이션을 확인했다.“안 그러면 크게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그래도 돌아가자, 여기에 짱 박혀 오도 가도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그래.” 이서도 별다른 의견은 없었다.“상언 씨에게 전화해 봐. 아마 먼저 백화점에 도착해 있을 거야.”임하나는 후진하고 있는 이서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이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바로 연결되었다.저쪽에서 이상언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어디까지 왔어요?]임하나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누르며 애써 침착한듯 답했다.“아직 길에 있어요. 차가 많이 막혀서 지금 다른 길로 가고 있어요. 아마도 한
임하나는 이서에게 알려주고 싶은 충동을 억제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이서는 하나의 이상함을 눈치챘다.“왜 그래? 왜 갑자기 말이 없어?”말하면서 이서는 하나가 보는 방향으로 바라보았다.임하나는 손을 들어 이서의 시선을 막으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었다.차가 갑자기 멈추었다.임하나는 이서의 멍한 표정을 보면서 애써 다독였다.“이서야, 너 화내지 마. 아마 지환 씨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거야…….”말하면서 임하나는 지환의 방향을 한번 보았다. 그는 마침 차에 올랐다.“우리 따라가자. 어디로 가는지 보자고. 괜히 지난번처럼 오해하지 말고…….”임하나는 이서의 소매를 잡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서는 입술을 오므리고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다.“그 사람이 무엇을 하러 가든 상관없이 이따가 내가 잡으면 반드시 등짝 스매싱 할 거야. 나 막을 생각하지 마!”“안 잡을 게, 안 잡아.”임하나는 이서의 상황을 걱정했다.“이서야, 내가 운전할게.”이서는 임하나와 자리를 바꿨다. 그리고 그녀는 뒷좌석에 앉았다.이서를 한번 쓰윽 본 하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바삐 운전석에 올라 차 시동을 걸고 지환이 탄 차를 따라갔다.차는 남쪽으로 달리는 걸 보니 교외로 나가려는 것 같았다.임하나는 이서를 위로했다.“허튼 짓 하러 가는 게 아니다에 500원 건다. 걱정 마. 지환 씨 그런 사람 아니야.”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임하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또 말을 꺼냈다.“음악이나 듣자. 음악이 없으니 삭막하구만…….”이서는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임하나는 휴대폰으로 아무 노래나 한 곡 골라 재생했다.그런데 하필이면 노래 제목이 였다.임하나는 속으로 자신의 눈치 없는 손가락을 원망했다. 그리고는 지환을 있는 욕 없는 욕 다 보태서 한 바탕 쏟아부었다.‘남자들은 어찌 다 이 모양이야?’‘이서가 용서한 지 며칠 되었다고 또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다니.’‘정말 대단하다.’바로 이때 임하나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