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북성시를 떠났을 때 하씨 집안과 깔끔하게 인연을 끊었어야 했어.’같은 시각, 질투에 불타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윤수정이었다.‘뻔뻔한 년, 영감쟁이 돌아간 틈을 노려 대놓고 오빠를 꼬시다니. 오빠는 왜 이 여우 손에 놀아나는 거야?’“오빠, 할아버지…… 어떻게…… 이렇게 가실 수 있어?” 윤수정은 이서처럼 울기 시작했다.그러나 하은철은 그녀의 울분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 같은 건 전혀 없었다.“조용히 해. 옆에서 징징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운수정은 눈물을 훔치는 동작을 멈췄다.“이서야.” 하은철은 이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목소리는 한껏 부드러웠다.“일어나, 집에 들어가 좀 쉬어. 너무 자책하지 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거 너와 아무 상관없어. 너 잘못 아니라고.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 모두 민호일 그놈 짓이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이서는 맥없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나 여기 있을게. 할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해드리고 싶어.”하은철과 파혼까지 한 마당에 자리를 지킬 명분은 없지만, 이서는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었다. 다만 할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 최선을 다해 모시기로 마음먹었다.할아버지가 민호일에게 살해된 건 맞지만, 그래도 그녀만 아니었다면 할아버지가 이렇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테니.‘할아버지를 편히 보내 드려야 해…….’그래야 그나마 자기 마음속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았다.하은철은 이서가 이대로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먼저 좀 들어가 쉬어. 그래야 장례를 치를 기운이 있지 않겠어?”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 이서는 하은철의 말대로 먼저 집에 가 쉬기로 했다.하은철은 즉시 사람을 보내 이서를 집으로 바래다주었다.이서가 떠나는 것을 확인한 지환은 비상계단 뒤에서 나와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서를 뒤따라갔다.이서가 자리 뜬 것을 확인한 윤수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러고는 코를 훌쩍거리며 하은철의 곁으로
하은철이 보낸 사람은 이서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이서는 일찌감치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서경화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갔다.기사는 이서를 알뜰살뜰 살피는 서경화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아주머니는 살뜰한데, 남편은 어디 간 거야? 당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참 이상해.”기사가 차를 몰고 나간 뒤 얼마되지 않아 방금 전 그가 주차했던 위치에 다른 차 한 대가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주차했다.곧 차문이 열리고, 지환이 차 안에서 나와 집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거실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이서를 껴안았다.따뜻하면서도 익숙한 품에 안긴 이서는 지환의 품 안을 필사적으로 파고들었다.지환은 이서의 등을 애틋하게 쓰다듬으며 아무 말없이 조용히 안아줬다.지금은 조용히 옆에 있어 주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지환 품에 안긴 이서는 드디어 깊은 잠에 들었다.눈물로 얼룩진 품속의 이서를 보니 지환은 마음이 아려왔다.이서에게 하경철은 정말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으니 아마 오랜 시간이 걸려야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그는 가볍게 이서를 안고 2층으로 올라갔다.침실에 도착하자, 동작은 더욱 가볍고 부드러웠다. 비록 그의 동작이 이미 충분히 가볍고 부드러웠지만 이서를 침대에 눕히는 순간 품 안의 사람은 불안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지환은 몸을 숙여 이서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이서는 그제야 찌푸린 미간을 살짝 폈다.지환의 눈동자 속에 깃든 긴장도 서서히 풀렸다.그는 침대 옆에 앉아 태블릿을 들고 민호일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갑자기 전화가 울렸다.지환은 발신자 번호를 슬쩍 확인하고는 받지 않았다.하은철의 전화였다.지금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바로 하은철이다.그는 자기 기분을 참지 못하고 그를 죽일까 봐 두려웠다.그와 이서 두 사람 사이의 가장 큰 장애물을 하은철이 만든 셈이다.핸드폰이 계속 울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그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하은철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복수해야겠어요. 피 값은 피로 받아야죠. 민호일…….]“걱정 마. 이미 사람 붙였어.”[그래요? 잡으면 꼭 저에게 넘겨요. 살아 있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걸 느끼게 해줄 테니까.]지환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다른 건? 장례식은……?”[고마워요. 장례식은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아마 이서가 와서 도울 거예요.]지환은 미간을 찌푸렸다.“이서……? 왜 이서가……?”하은철은 지환이 이상하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서가 한다고 했어요.]“명분이 없잖아?”이서가 하경철의 장례식을 거든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장례식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의 신분도 숨길 수 없게 될 텐데…….[그렇긴 하죠. 하지만 할아버지를 편히 모셔야 마음이 편해질 거 같다고…… 할아버지 일에 대해 아무도 이서를 탓하지 않겠지만, 이서는…… 자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해요…….]일순 두 사람은 모두 침묵했다.사실 이서와는 상관이 없지만,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그리고…….]하은철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저도 이제야 할아버지 생각이 옳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말인데…… 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이서와 결혼할 생각이에요.]지환은 눈을 가늘게 떴다.‘저 자식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이서 이미 결혼한 걸로 알고 있는데?!”그는 하은철의 허황된 생각에 찬물을 끼얹었다.[알아요.]하은철은 차가운 유리장에 머리를 기댔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여느 때보다 머리가 냉정했다. 사실 그도 알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미 이서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다만 할아버지가 계속 강요하던 결혼이라 오히려 반감이 생겨 줄곧 부정해 왔다.또 다른 원인은 윤수정 때문이었다. 윤수정이 그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다. 따라서 그는 차마 윤수정을 내칠 수 없었다. 그녀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이런 책임감은 그로 하여
하경철의 비보는 곧 온 북성시에 전해졌다.그룹 입장에서의 공식적인 발표가 나가지 않자, 외부에서는 다양한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범인이 민호일이라는 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이서의 지인들은 그날의 아찔했던 위험한 상황을 전해 듣고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서를 걱정하고 챙겼다.임하나, 하이먼 스웨이, 심소희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이서의 집으로 달려갔다.이서는 그들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들을 맞이했다.“나나 씨도 오고 싶어했는데, 아쉽게도 지금 해외 촬영이 있어서…….”커다란 숄을 걸친 이서는 목소리마저 힘이 없었다.그녀는 요 며칠간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잠이 들어도 늘 악몽에 시달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나나 씨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줘. 촬영 잘 마치고, 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임하나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손을 잡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서야, 너에게 알려줄 굿 뉴스가 있어.”“뭔데요? 궁금하네요.”“딸을 입양한 집안을 찾았어!”이서의 기분은 한껏 좋아 보였다.“어디예요?”“심씨 가문이더구나, 아직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머지않아 곧 알게 될 거야!”심씨 집안의 여식이 적지 않지만, 조사하면 곧 나올 거라고 이서는 생각했다.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는 그렇게 많지 않으니, 쉽게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정말 잘됐네요.”이서의 기분이 드디어 좀 나아 보였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엄마, 그럼 따님 되찾으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으세요?”“호호,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하이먼 스웨이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지금까지 계속 찾아 헤맸지만, 여태껏 감감무소식이었잖아. 물론 이번에는 가능성이 좀 크긴 하지만, 그래도 난 아직 안 믿긴다.”이서는 그녀가 하는 얘기가 이해되었다.기대를 높게 가졌다가 마지막에 헛물켜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괜찮아요, 따님을 만나고 나서 계획해도
지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곧 지환이 입을 열었다.“그럼, 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응.” 하이먼 스웨이는 과일을 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환이 나간 뒤에야 눈을 들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아마 지금 마음이 제일 괴로운 건 지환일 것이다.오랫동안 지환을 알고 지냈으니, 그가 얼마나 워커홀릭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서를 위해 모든 걸 다 접고 집에 남아서 이서를 돌보고 있다.‘어휴!’‘이서가 하루빨리 자책하는 마음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씻은 과일을 들고나온 하이먼 스웨이는 다시 이서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이서에게 등 떠밀려 나왔다.집을 나온 심소희는 곧 눈시울이 붉어졌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며칠 사이에 몸이 저렇게 상해 버리다니…….”임하나와 하이먼 스웨이도 침묵했다.집으로 가는 차 안의 분위기는 극도로 침울했다.같은 시각, 집안의 분위기도 침울하긴 마찬가지였다.앉아서 멍때리는 이서를 본 지환은 곧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여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해줄까?”그가 두 번 불러서야 이서는 비로소 반응했다.“응? 뭐라고요?”지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방금 한 얘기를 반복했다.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지환을 향해 팔을 벌렸다.“안아줘요.”지환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뻗어 이서를 안았다.이서는 지환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두 사람은 이렇게 조용히 서로 껴안고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이서는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지환 씨, 나 할 얘기 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지환의 심장이 순식간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얘기해 봐, 무슨 일이야?”이서는 또 한참을 침묵했다.“아니에요, 나중에 다시 얘기할게요.”지환은 이서의 턱을 들어 들었다. “왜? 무슨 일인데?”이서는 지환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별로 중요
지환은 곧 휴지를 뽑아 이서의 눈물을 닦으면서 달랬다.“바보처럼 왜 또 울어? 우리 울보…….”이서는 눈시울을 붉혔다.“안 울었어요.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만…….”지환은 실내 환경을 한 번 보았다.“그래, 그래, 알았어, 눈에 뭐가 들어간 걸로 치자. 자기야, 그나저나 매운 떡볶이 계속 먹을 거야? 먹을 거면 지금 얼른 먹어. 좀 더 지나면 다 퍼질 텐데…….”이서는 눈물을 닦으며 환하게 웃었다. 곧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응.”식사를 마친 부부는 아래층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둘은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10시가 넘어서야 이서가 일어났다.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곧 지환에게 말을 건넸다.“지환 씨…….”“응?”“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난 당신이랑 함께 할 거예요.”무덤덤하게 말을 꺼낸 이서는 왠지 지환 앞에서 선서하는 것 같기도 했다.지환은 온화하게 이서를 바라보았다. 이서의 말은 지환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의 마음이 삽시간에 안정되었다.“그래, 빨리 올라가 쉬어.”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문이 닫히자, 지환 얼굴의 웃음기가 순식간에 싹 걷혔다. 그는 곧 휴대전화를 꺼내 하은철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었다.[작은아빠, 무슨 일이세요?]“어디야?”[본가에 왔어요.]며칠 뒤면 할아버지의 하관식이 있을 예정이라 마음이 헛헛했던 하은철은 본가로 돌아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자 했다.지환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작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서에게 뭐라고 하셨지?”[별말씀 없으셨는데요.]하은철은 어리둥절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다만 저와 이서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일생일대의 한이라고 말했어요. 작은아빠, 뭔 일이에요? 왜 갑자기 이런 걸 물으시죠?]지환의 몸이 흔들렸다.그제야 이서가 오늘 밤 보였던 여러 가지 미스터리한 행동들에 대한 합리적인 답을 찾은 것 같았다.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었다.하경철의 마지막
지환은 하경철이 거주하던 본가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따라서 네비게이션 안내도 필요 없어 차를 본가 쪽으로 몰았다.차에서 내리자, 누군가가 다가와 막아섰다.경호원은 지환인 걸 확인한 후, 곧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큰 집 도련님, 안녕하세요.”지환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당을 지나 성큼성큼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안에 있던 하은철은 바깥에서 들리는 인기척을 듣고 얼른 일어나 문 쪽으로 나와 지환을 맞이했다.“작은아빠…….”입을 열자마자, 지환의 주먹이 날아왔다.하은철이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으며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 할 때, 지환의 두 번째 주먹이 날아와 그의 다른 한쪽 눈을 세게 내리쳤다.하은철은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는 아픈 나머지 두 손으로 두 눈을 눌렀다.“작은아빠, 진정하세요! 나 은철이에요, 당신 조카라고요!”‘조카’라는 두 글자를 듣고, 지환의 주먹세례는 더욱 거세졌다.앞 전 두 주먹보다 강도가 훨씬 셌다.하은철은 아파서 연신 숨을 들이쉬었다.“작은아빠, 그만해요. 아무리 윗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사람을 두들겨 팰 수는 없어요. 더 이상 멈추지 않으면 저도 맞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반격할 거라고요!”“그래? 그럼 어디 한번 반격해 봐, 내가 바라던 바다!”지환은 하은철을 놓아주었다. 차가운 눈빛은 마치 하은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하은철은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온 몸에 한기가 들었다.“작은아빠, 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웃어른을 공경해서 손 안 쓰는 거예요.”“아니야!” 지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려왔다.“오늘 밤 우리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남자 대 남자로, 계급장 다 떼고 정정당당하게…….”“왜…… 왜요? 왜 굳이……?” 하은철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몰랐다.요 며칠 줄곧 할아버지 장례식 관련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이유 같은 거 없어!” 지환은 은철을 한바탕 두들겨 패고 싶었다.그래야 속에 있는 화가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았다.돌아
다음날.이천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몇 명의 청소 아주머니에게 붙잡혔다.“이 비서님!”“무슨 일이에요?” 걸음을 멈춘 이천은 청소 아주머니 손에 들고 있는 청소 도구를 보고 갸우뚱하며 입을 뗐다.“아직 청소 못다 끝냈나요?”“대표님이 안에 계셔서…… 못 들어갔어요.”“대표님 안에 계세요?!” 이천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자신의 귀를 심각하게 의심했다.이런 상황은 예전에 M 국에 있을 때 자주 있었다.그러나 결혼한 이후 거의 없었다.다 같이 야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네, 1층 경비원이 그러던데, 대표님이 어제저녁에 들어와서는 여기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해요. 게다가 어디서 싸웠는지 얼굴에 생채기가 나 있다고 하더라고요…….”이천은 듣자마자 갑자기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설마…… 또 사모님과 싸우셨나?’이천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지환을 보았다.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확인해 보니 지환의 얼굴에는 확실히 여러 긁힌 자국과 찰과상이 있었다. 하지만 여자가 낸 상처로 보이지는 않았다.“나가!” 지환의 갑작스러운 소리에 이천은 깜짝 놀랐다.“대표님…… 괜찮으세요?”자리에서 일어난 지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천을 바라보았다.이천은 목을 움츠렸다. 지환이 왜 갑자기 화냈는지 영문도 모른 채.이서에게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이천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사모님 때문인가요? 대표님, 안심하세요. 사모님처럼 긍정적인 사람은 꼭 잘…….”지환의 차가운 시선을 느낀 이천은 뒷말을 흐렸다. 그러고는 얼른 물러나 이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 의사이자 지환의 베프인 이상언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이상언도 지환이 다쳤다는 연락을 받고 의아했다.하지만 곧 구급함을 챙겨서 YS 그룹 본부로 달려왔다.이상언이 등장한 걸 본 지환은 곧 이천을 째려보았다.이천은 못 본 척 딴청을 피웠다.이상언도 지환의 눈에 비친 거부의사를 못 본 척하면서 이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