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시선을 무시하고 윤이서는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방금 하이먼 스웨이는 계속 이동 중이어서 이서는 하이먼 스웨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이제 드디어 하이먼 스웨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익숙한 느낌은 더욱 강렬해졌다.하이먼 스웨이도 이서를 보고 있었다. 소녀의 눈매는 항상 자신에게 매우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하이먼 스웨이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 부드러운 못소리로 물었다.“아가씨,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이서가 대답했다.“윤이서입니다.”어째서인지 그 이름을 들은 하이먼 스웨이의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곧 자애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은 왜 제 대본을 고치려고 한 겁니까?”“왜냐하면 저는 방은이가 딸로서 자신의 어머니가 몇 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줄곧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당신…… 당신은 방은이가 자신의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미워하는지 안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이서가 말했다.“하지만 딸로서 저는 방은이가 원한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쓴 방은이라는 인물이 무정한 사람이 아니라면요.”“그러나 당신이 제시한 방은이는 정이 있고 의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정이 있고 의리가 있는데 어떻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이먼 스웨이는 천천히 일어섰고, 눈가에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아주 잘 고쳤습니다. 저는 이제야 마침내 이 대본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이 대본은 초기의 대본이었다. 그 당시, 하이먼 스웨이의 딸은 유괴되었고, 자신은 슬픔에 잠겨서 마음속 번민을 풀기 위해 글쓰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초기에 창작한 것으로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대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이먼 스웨이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랐다.이렇게 여러 해를 거쳐, 하
프로듀서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급히 말했다.“이분은 윤이서 씨입니다. 윤씨 그룹의 대표이사일 뿐만 아니라 저희 하 대표님과의 관계도 매우 좋습니다.”하 대표님의 전 조카며느리였다. 프로듀서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하이먼 스웨이는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높게 평가한 것은 이서가 과감하게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이다.하이먼 스웨이는 명함 한 장을 꺼내 이서에게 건네주었다.“이것은 제 명함입니다. 저는 지금 새 책을 쓰고 있는데, 당신을 저의 첫 독자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제게 이런 영광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이서의 눈동자가 순간 빛났다.“아닙니다, 저야 말로 영광이죠.”“그럼 약속입니다. 그때 다시 연락 드릴게요. 제가 대본을 드리겠습니다.”“네.”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하이먼 스웨이는 또 무대 위의 서나나를 보았다.“저는 아무래도 이 무대 위의 서나나양이 제 마음속의 방은이의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이 말이 나오자 또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프로듀서는 급히 무대 위에 있던 나나를 바라보았다.“하지만…….”하이먼 스웨이는 살짝 미간을 치켜세웠다.“왜요? 제 대본인데 제가 여주인공을 정할 자격이 없습니까?”하이먼 스웨이는 국내 작가들과 달리 슈퍼 거물로서 일반 편집자보다 훨씬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만약 하이먼 스웨이가 기분이 좋지 않다면, 직접 주인공을 대본에서 죽일 수도 있다.프로듀서는 이 큰 거물의 미움을 살 수 없어서 말했다.“네, 서나나는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과 이미지도 잘 어울리고 연기가 자연스럽고 유창해 여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습니다.”프로듀서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다른 심사위원은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이 반전은 현장에 있던 모든 힘 없는 배우들과 매니저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이서가 정말 나나를 도와 서정의 입에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빼앗아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신분과 지위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서가 나나
“이서 언니, 우리 성공했어요!”서나나는 자기도 모르게 윤이서를 껴안았다.사실, 나나는 자신들이 정말로 강력한 배후 세력을 가진 이서정을 물리치고,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이서는 싱긋 웃으며 나나의 어깨를 토닥였다.나나가 살짝 고개를 들자, 이서 뒤로 마스크를 쓴 하지환의 모습이 보였다. 지환의 한 쌍의 눈은 마치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어두웠다.나나는 금세 지환이 불쾌한 이유를 알아차렸고, 일부러 보란 듯이 이서를 더 꽉 끌어안았다.“…….”바로 이때, 나나가 갑자기 헉 소리를 내며 놀랐다.이서는 나나에게 물었다.“왜 그래?”나나는 심사위원석에서 일어난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줄리 선생님? 혹시 에이 플라 줄리 선생님 맞으세요?!”줄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고, 나나와 함께 서 있는 이서를 보자마자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버렸다.이서는 잠시 멍해졌으나, 이내 무엇인가 결심이라도 한 듯 부리나케 줄리의 뒤를 쫓았다.이서가 따라오는 것을 알아챈 줄리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지환과 나나는 영문도 모른 채, 허둥지둥 극장을 떠나는 줄리와, 그런 줄리의 뒤를 쫓는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형부, 이서 언니…….”지환은 눈썹을 찡그렸다.“방금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줄리, 에이 플라…….”나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환은 서둘러 이서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대체 왜들 이러는 거지?’지환은 이서를 쫓으며 핸드폰을 꺼내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줄리가 극장에 나타났어. 그 여자, 나가지 못하게 막아.”주차장에서 대기하던 이천은 지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네.”지환과의 전화를 마친 이천은 즉시 차에서 내렸다. 동시에, 극장에서는 지환이 이서를 붙잡았다.“여보, 가지 마.”“손 놔.”이서는 지환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하지만 마치 올가미처럼 조여오는 지환의 힘을 뿌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서는 조급해하며 말
“여보.”하지환은 윤이서의 어깨를 잡았다.“내 말 좀 들어봐. 나는 하은철의 둘째 삼촌이 아니야.”이서는 우스웠다.“당신이 하은철의 둘째 삼촌이 아니라고? 아직도 날 속이려는 거야? 하나만 묻자. 당신 외국에 있을 때, 이서정이 당신 아내였어?”지환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확실한 증거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하은철의 둘째 숙모가 이서정이야. 이서정은 당신의 아내고, 그런데도 당신이 하은철의 둘째 삼촌이 아니라고? 나도 이렇게 간단한 계산쯤은 할 수 있어.”“아니야, 일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지환은 미간을 세게 쥐며 말했다.“나는 정말 하은철의 둘째 삼촌이 아니야.”이서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는 가소롭다는 듯 지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그래, 당신이 하은철의 둘째 삼촌이 아니라면, 왜 이서정이 당신의 아내인지 설명해 봐.”배신감으로 가득 찬 이서의 눈을 본 지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젠 나도 숨길 필요가 없어.”이서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지환을 올려다보았다.이서는 지환이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지 들어나 볼 작정이었다. “내가 얼마 전에 회사 일을 처리하기 위해 출국했다고 말한 거 기억나?”이서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 일은 이서에게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기억나, 왜?”“사실 그 회사…… SY 그룹의 대표, 하은철의 둘째 삼촌이 나에게 준 거야!”이서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비웃었다. 하지만 지환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생각해 봐. 조금 이상하지 않아? 난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인데 왜 국내로 도망왔는지?”이서는 몸을 곧게 펴고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왜?”“그거야 내가 SY 그룹의 사람이니까 그렇지.”지환은 이서의 어깨를 천천히 놓았다.“처음 SY 그룹이 화영에 와서 시장을 개척하려 했을 때, 일을 크게 벌이기를 꺼렸어. 그래서 일부 사람들만 먼저
윤이서는 침묵한 채 하지환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지환은 주먹을 꽉 쥔 채 숨을 죽였다. 마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잠시 후, 이서는 입을 열었다.“이야기는 잘 엮었네, 논리도 뚜렷하고. 그런데…….”지환을 바라보는 이서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내가 또 속을 것 같아?”지환은 돌아서는 이서를 가로막았다.“네가 믿지 않는다는 걸 알아…….”지환은 핸드폰을 꺼내 이서에게 건네주었다.“너 전에 하 대표님의 핸드폰 발표회에 참가한 적 있지? 아직 그분의 목소리 기억하지? 나는 못 믿어도 그분 말은 믿지?”이서는 주저하며 지환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이서는 하은철의 둘째 삼촌의 목소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아니…… 내가 또 지환 씨 말에 휘둘리고 있잖아?’“여보…….”이서가 핸드폰을 건네받지 않자, 지환의 코끝에는 땀이 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지환의 두 눈동자에는 기대감이 만연했다.“어차피 전화만 하는 거잖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안 그래?”지환의 말이 맞다. 고작 전화 한 통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핸드폰을 받아 든 이서는 잠시 망설이다 비고에 있는 하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하은철의 둘째 삼촌만의 독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침착하지만 동시에 힘이 있었다. 이서가 발표회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윤이서 씨, 맞죠?]이서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이서는 핸드폰을 든 채 지환을 등지고서 수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물었다.“당신이 은철의 둘째 삼촌이십니까?”“네, 맞습니다. 윤이서 씨와 지환의 일은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 개인적인 일로 두 분께서 이혼할 뻔하셨으니까요. 제 잘못이 큽니다.”이서는 눈썹을 찡그렸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하은철의 둘째
[하하, 마음이 편치 않은가요?]하은철의 둘째 삼촌은 이서의 속이 훤히 내다보인다는 듯 말했다.[마음이 편치 않다면, 이혼은 없던 일로 하시죠.]“둘째 삼촌!”수화기 너머로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됐어요. 그만 놀릴게요. 지환이는 정이 아주 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로 인해 두 분의 감정에 흠이 생겼으니 2억의 배상은 받지 않는 걸로 하죠. 잘못을 물어야 할 사람은 저니까요.][이서정에 관한 문제도 잘 처리할 겁니다. 다시는 두 분께 어떠한 번거로움도 끼치지 않을 거예요.]이서는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이서는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일부러 목소리를 바꿔 위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하은철의 둘째 삼촌임이 분명했다.이서의 흔들리던 마음도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모든 것이 지환의 말대로였다.하은철의 둘째 삼촌과 이서정은 거짓 혼인 증명서를 위해 지환과 이서정이 실제로 혼인신고를 감행하도록 했다.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이서정의 계략이 아니겠는가.이서와 지환의 사이가 안정된 것을 알게 된 서정이 일부러 이서에게 문자를 보내 지환과의 갈등을 부추긴 것이 틀림없었다.이서는 출국 전, 웨딩드레스로 인해 서정과 얼굴을 붉혔던 일이 떠올랐다.다시 생각하니 모든 퍼즐이 들어맞기 시작했다.“여보…….”지환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제 내 말을 믿을 수 있겠어?”이서는 어쩔 줄 모르는 지환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못 믿겠어…….”지환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여보…….”이서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런데 완전히 믿지 않는 것은 아니야.”이서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본 지환은 드디어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내가 지환 씨를 믿느냐 안 믿느냐는 앞으로의 지환 씨의 행동에 달렸어.”이서는 몸을 돌려 극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나나가 아직 극장 안에 있기 때문이다.지환은 그제야 어깨를 짓누
남자의 두 눈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 마치 큰 산이 몸을 짓눌러 숨을 쉴 수 없게 하는 것만 같았다.이서정의 인생에서 이토록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은 여태껏 딱 한 사람뿐이었다.그 사람은 바로…… 하 선생님, 서정의 가짜 남편이었다.서정은 자신의 가짜 남편을 떠올리자 그 무엇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눈앞의 이 남자까지도.“당신 누구야? 내가 누군지 알아? 당신이 뭔데 날 막아!”지환은 담담한 눈빛으로 서정의 손을 뿌리쳤다. 지환은 금방이라도 서정을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서정은 마스크를 쓴 지환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아,당신, 윤이서의 남편이지?”서정이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정을 노려보던 지환과 이서의 눈빛은 독기로 가득해졌다.하지만 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빈정대며 말을 이어 나갔다.“난 당신을 알아. 당신이 바로 윤이서의 그 형편없는 남편이지. 결혼한 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면목가증함이 틀림없어!”이서는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면목가증이라니.지환이 면목가증 한 것이라면 그들은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괴물?“이서정 씨, 말 돌리지 마세요.”이서는 나나를 서정 앞으로 끌고 갔다.“나나는 왜 때린 겁니까?”“맞을 짓을 했으니까! 서나나가 내 여주인공 자리를 꽤 찬다는게 가당키나 해?”이서는 우스웠다.“바다의 딸은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께서 창작하신 거예요. 투자는 민 씨 그룹과 하 씨 그룹이 맡았고요. 그런데 어째서 그게 당신 것이라 말할 수 있죠?”“내가 바로 하 대표님의 아내니까!”서정은 당당하게 두 손을 허리 위에 올렸다.이서는 정말이지 서정이 하은철의 둘째 삼촌의 아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까발리고 싶었다. 하지만 비밀을 지키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한 하은철의 둘째 삼촌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둘째 삼촌의 도움을 받은 적 있는 이서이기에 더더욱.이서는 은혜를 원수로 갚
두 손을 버둥거리며 저항하는 이서정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이를 본 이서는 음모가 들통난 서정이 두려워하는 것이라 생각했다.지환이 이서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한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여태 진짜 앞에서 위세를 떨쳤던 거야? 이제 정말 끝인가?’서정이 겁에 질려 머리가 새하얘질 무렵, 이천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대표님.”이천은 눈앞의 복잡한 상황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줄리가 잡혔습니다.”지환은 이천을 힐긋 보더니 서정을 내팽개쳤다.“이 여자 데려가. 하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어, 직접 처리하시겠다고!”이천은 지환이 이미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놓였다.‘정체를 들키지 않으셨구나.’이천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서정을 끌고 떠났다. 서정은 차에 내팽개쳐질 때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극장에서의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이서는 서나나를 뒷문까지 부축했다. 뒷문에서는 매니저 여은아가 나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나가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이 되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은아는 벌겋게 부어오른 나나의 뺨을 보고 놀라 물었다.“어머,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서가 나나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이서정 짓이에요.”서정의 이름을 듣자, 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또 그년이야. 자기가 은철 도련님의 둘째 숙모라는 것만 믿고 설치잖아. 확 이혼해버렸으면 좋겠어!”“은아 언니, 그만하세요. 전 괜찮아요.”“너도 참.”나나는 괜히 서정의 미움을 사 연예계 활동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은아는 그런 나나가 안타까웠다.“너무 속상해 마. 이미 이서정은 작지만 큰 벌을 받았어.”“그게 무슨 뜻이에요?”나나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참.”은아는 서정을 향한 조롱 섞인 웃음을 쏟아냈다.“이서정은 당연히 자기가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이 될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섣불리 자신이
“제가 오늘 밤에 상대할 사람이 하 대표님이었군요!”그 사람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천이 지환의 앞에 서서 말했다.“괴력왕, 당신이 어떻게 하은철 아버지의 조수가 된 거죠?”눈앞의 괴력왕은 힘으로 대동맥을 끊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타고난 힘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천은 물론이며 지금까지 괴력왕과 맞붙은 적 없는 어둠의 세력 조직원까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괴력왕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사람들은 모두 그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랐다.“하하, 말하자면 긴 이야기입니다만, 기꺼이 말씀드리죠.”키가 큰 괴력왕은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지환을 볼 수 있었다.“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제 딸이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그걸 알게 된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께서 훌륭한 의사를 찾아 제 딸을 치료해 주신 거죠.”“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약속했습니다.”“다만, 첫 번째 임무가 하 대표님을 상대하는 건 줄은 몰랐죠.”지환의 명성은 외국에서도 대단했다.괴력왕처럼 은둔하는 사람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어쩐지, 상대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더라니.’‘상대를 알면 후회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지?’지환은 괴력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괴력왕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게다가 지환은 의리 있는 괴력왕의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그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으로 괴력왕을 끌어들이려 했었다.하지만 싸우기 싫어하는 괴력왕의 성격 때문에 그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고, 지환도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가 전쟁이 될 줄은 몰랐다. “각자의 보스나 신경 쓰도록 하죠. 시작합시다!” 지환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괴력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 대표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저쪽에 있던 하도훈은 이미 입구까지 걸어갔다.그의 곁에는 수십 명이 모였는데, 그들의 머리에는 흰색 천 조각이 씌워져 있었다. 지환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그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지환은 꿈쩍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형님, 오랜만입니다!”하도훈의 얼굴에서는 커다란 슬픔이 묻어났다. “왔구나!”지환이 말했다.“은철이 시신을 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경직된 몸을 심하게 떨었다.“지환아, 너 정말 독하구나. 한 여자를 위해서 조카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 아이를 해칠 때, 네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니?” “예전에 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어. 하지만 은철이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고, 너라는 작은 아버지를 꽤 친근하게 대했다지.”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고향의 특산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그런 조카를 이런 식으로 대한 거냐?”“너는 처음엔 여자를, 이제는 목숨을 앗아간 거야.”“은철이 녀석이 본인의 이런 말로를 알았더라면, 애초에 너를 가까이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겠구나.”하도훈이 말했다.지환이 차갑게 하도훈을 바라보았다.“맞습니다. 우린 가족이고, 확실히 아주 가까웠죠.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철이가 이서를 어떻게 대했었죠?” “이서는 은철이의 작은어머니였습니다. 그때 은철이는 이서가 본인의 가족, 즉 친척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하도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래, 보아하니 너는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지환아, 너희가 목숨을 건 계약을 했다는 거, 설령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네가 오늘 은철이를 보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내 허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형님이 허락하면 어떻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내 이천이 전화를 걸어왔다. [대표님, 모두 안배했습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그래.”전화를 끊은 지환은 외투를 들고 문을 나왔는데, 맞은편 방문이 한 눈에 들어왔다.그는 넋을 잃은 채 그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이천이 한 말이 맴돌았다.‘덫일 수도 있다고...?’‘가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이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면 떠나고 싶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바로 이때,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지환이 피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문 뒤에 서 있는 이서를 묵묵히 바라보았고, 그녀도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외투를 든 것을 본 이서가 물었다.“어디 나가요?”지환은 이서의 눈을 쳐다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오, 그럼 어서 가보세요. 나는 샤워하고 잘게요.”이서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는데, 이는 지환을 크게 안도시켰다. 그가 두 걸음 정도 내디뎠을 때, 뒷문이 다시 열렸고, 이서의 ‘조심해서 다녀와요’라는 한 마디가 복도에 메아리쳤다.고개를 돌린 지환은 텅 빈 복도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는 차갑고 의연한 기색만이 감돌 뿐이었다. 급히 아래층에 도착하자, 이천은 이미 어둠의 세력 조직원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즉시 똑바로 서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지환은 마지막으로 호텔을 힐끗 보고는 출발했다. 병원 입구.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고요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평소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 입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오히려 입구는 활짝 열려 있어, 함정에 빠뜨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천이 물었다.“대표님,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환은 냉정하게 반문했다.“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이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이미 철통같이 포위된 듯했고, 어디로 들어가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문으로
소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서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부하고 싶을 정도로 강해져야만, 그들이 소희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저녁에 식사하던 이서는 지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괴롭다는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더 강해진다는 건 하씨 가문을 넘어서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건 내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에요.” 맞은편에 앉은 지환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 얼굴의 부드러운 곡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얼굴의 미세한 동작까지도 끄집어냈다.“불가능한 일은 없어. 어쩌면 네가 하씨 가문을 넘어설지도 모르지.” “또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거죠? 하씨 가문은 백 년의 기반을 가진 가문이예요. 내가 하씨 가문처럼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꿈속에서 하씨 가문을 이어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와 하씨 가문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 말이다. 바로 이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이천에게서 온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지환이 핸드폰을 든 채 이서를 한 번 보았다. 이서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지환이 그녀가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 “이제 배불러요. 나는 먼저 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볼게요.” 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자, 지환이 수화기 너머의 이천에게 물었다.“확실해?”[확실합니다. 하은철은 확실히 죽었어요. 하지만 하씨 가문의 고택 앞에서 죽었죠.] [하은철은 치타와 마찬가지로 차가 부딪쳐 날아가는 순간에 차에서 뛰어내렸을 겁니다.] [물론, 그때 누군가가 하은철을 도왔기 때문에 하씨 가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던 거겠죠.][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씨 가문 고택
소희가 꽤 충격을 받은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 언니, 농담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이득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우리가 시비를 걸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할 일이지.” 이서가 빙그레 웃었다.“이제 내 말을 믿겠어?” 소희가 말했다.“이서 언니, 언니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제 동생을 잘 모르잖아요. 걔는 어릴 때부터 남들을 골탕 먹이던 애예요. 한 번도 남한테 당한 적이 없는 애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어제 이미 계획을 세워뒀어. 소희 씨가 내 말 대로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소희 씨, 설마 그 이상한 양부모한테서 완전히 벗어날 생각을 안 해본 거야?” 소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확실히 생각해 본 적 있지만, 단지 생각에 불과했어.’ ‘양엄마가 얼마나 끈질기게 집착하는 사람인지 잘 아니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철저히 말살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범법행위이지 않은가.소희는 이서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원치 않았다. “이서 언니,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음에 또 심태윤이 찾아오면,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언니는 걔한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지만, 걔는 언니한테 해를 끼칠 수 있어요.” 이서가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까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서야 알았어. 소희 씨가 심씨 가문에서 겪는 일이 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걸.” “소희 씨, 소희 씨는 날 위해서 심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는 심씨 가문에 있는 소희 씨의 처지를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아직 심 대표님 내외에게 정이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소희 씨의 부모님이잖아. 세 사람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언젠가는 그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나를 몰래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소희는 이서의 말에 고개를
같은 시각.차에서 칭찬받은 소희는 쑥스러워했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하지만 이지숙의 눈에는 소희가 혀로 수많은 유생과 싸운 제갈량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주머니.” 소희가 이지숙이 계속해서 말을 잇기 전에 말했다.“물건을 좀 사러 가고 싶어요. 이따가 이 근처에서 저 좀 내려주세요.” “나도 같이 갈게.”이지숙이 열정적으로 자청했다. 소희는 그런 그녀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저 혼자 가고 싶어요.”이지숙은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쇼핑을 원치 않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많은 일을 겪은 소희가 혼자 걷고 싶은 것이라 여겼다. “이해해, 다음 길목에서 내려줄게.”“소희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가 반드시 너를 보호할 테니까.” “...”소희는 정말이지 걱정이 많았다.‘심씨 가문 사람들의 뇌 회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 “소희야.” 심근영 또한 이지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희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너를 구할 거야.” 소희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그들의 눈동자에는 진심만이 가득했다. 소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심근영 부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떠나자마자, 소희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윤씨 그룹으로 갈게요.” 운전기사는 대답한 후, 곧장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30분 후, 회사에 있던 이서는 소희가 왔다는 것을 듣고는 다소 놀랐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예.”김하늘은 곧장 대표실로 소희를 데려왔다.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자, 소희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이서 언니...” 문이 닫히고, 밀려오는 억울함을 느낀 그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소희
소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녀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6명의 어르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어르신들, 모든 일의 원흉인 제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여섯 명의 어르신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에 앉은 그 어르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그래.” “감사합니다.”“여러분, 여러분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타남과 동시에 하씨 가문과의 협력이 중단되었으니, 저만 내쫓으신다면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진정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우리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심유인이 비꼬듯이 대답했는데, 어조에서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소희가 심유인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저도 여러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기만 하면, 하씨 가문은 자연히 심씨 가문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려 할 테니까요!” ‘소희가 주동적으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할 줄이야!’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희야!”이지숙은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 엄마가 부족해서 너를 고생시키는구나.”소희는 역시 눈시울을 붉히던 심근영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심이에요. 제가 쫓겨나는 걸로 하 사장님의 기분이 풀린다면... 그렇게 할게요.”그러나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조롱으로 들렸다.심근영이 중간에 앉은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어르신, 소희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하 사장의 기분을 풀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하 사장일까요?” “윤 대표는 하 사장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하씨 가문을 건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면, 더욱 궁지에 몰릴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아니야, 나는 정말이지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고 싶지 않아!’ ‘이 사람들은 왜 내
어르신들은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고, 결국 가장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입을 열도록 내버려두었다.“확실히 경솔한 일이긴 해. 허나, 우리가 하씨 가문에게 직접 물을 수는 없으니, 모든 걸 추측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우리는 너희가 밖에서 하는 일을 전부 알고 있었어.”“즉, 이 일은 우리 심씨 가문의 잘못이기도 하단 뜻이지.”“하씨 가문과 협력하기로 약조해 놓고 번복하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말했다.심근영은 이서의 배후에 지환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소희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을 생각하며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간단한 문제였습니다. 하씨 가문과의 협력에서, 심씨 가문은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는 가문이니, 이익이 없으면 협력도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헛소리!”심상규가 말했다.“이번 협력은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거였어. 윤씨 그룹이 몰락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씨 가문과 윤씨 그룹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고! 그렇게 되었다면, 심씨 가문은 소씨 가문을 제치고 H국의 2대 가문이 될 수 있었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네 딸이 돌아오는 것과 맞바꾼 거라고!”여기까지 말한 심상규는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네 딸은 아주 배은망덕한 사람이야!”“윤씨 그룹을 위해서 제 가족들을 협박하다니.” “허, 어릴 때부터 가문 밖에서 자란 사람, 게다가 시골에서 자란 말괄량이가 무슨 식견이 있을까!” “그만하시죠, 작은아버지. 우리가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단한 이유는 소희 때문이 아니라...”심근영이 주먹을 꽉 쥐고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근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고, 그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이서 언니는 아직 형부의 신분을 몰라. 이 시점에서 그 이유를 폭로해버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밖으로 퍼뜨리고 말 거야.’ ‘만약 이렇게 해서 이서 언니가 피해를 본다면,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할
“아주머니, 사람은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에요. 만약 그 어르신들께서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억지로 심씨 가문에 머물 생각이 없어요.” 사실 소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기에 당장이라도 심씨 가문을 떠나고 싶었다. 비록 그녀와 심근영 부부가 혈연관계이긴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떨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심근영 부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심씨 가문은 우호적인 곳이 아니지 않은가. 환영 파티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다니, 계속해서 심씨 가문에 머문다면 또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소희야, 걱정하지 마. 엄마는 절대로 네가 심씨 가문을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만약 어르신들께서 정말 너를 쫓아내려 하신다면, 이 엄마도 너와 함께 떠날 거야.” 이렇게 말한 이지숙이 다시 심근영을 바라보았다.“여보, 나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그분들이 하은철 한 사람 때문에 무리하게 내 딸을 쫓아내려고 한다면, 난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이지숙의 어투에는 확신이 가득하여 농담 같지 않았다. 심근영이 윙윙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소희는 이제 막 돌아왔어. 그런데 무슨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거야? 소희야, 너도 걱정할 거 없다. 네가 이미 돌아온 이상, 다시 떠나게 하지는 않을 테니.” 소희는 그들을 보면서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렸을 때, 그녀가 동생과 함께 넘어지면, 양부모의 눈에는 언제나 심태윤뿐이었다. 그들은 늘 남동생을 먼저 일으켜 세우며 달래 주었고, 한쪽에 방치된 그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설령 소희를 신경 쓴다고 해도, 그저...“혼자 일어날 줄도 모르니?”그 누구도 그녀에게 ‘걱정 마, 우리한테 맡겨’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소희는 또 한 번 그들을 보았고, 그제야 자신의 눈이 이지숙의 눈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달 모양의 둥근 눈, 그것은 공격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매우 곧고, 하늘을 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