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을 버둥거리며 저항하는 이서정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이를 본 이서는 음모가 들통난 서정이 두려워하는 것이라 생각했다.지환이 이서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한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여태 진짜 앞에서 위세를 떨쳤던 거야? 이제 정말 끝인가?’서정이 겁에 질려 머리가 새하얘질 무렵, 이천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대표님.”이천은 눈앞의 복잡한 상황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줄리가 잡혔습니다.”지환은 이천을 힐긋 보더니 서정을 내팽개쳤다.“이 여자 데려가. 하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어, 직접 처리하시겠다고!”이천은 지환이 이미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놓였다.‘정체를 들키지 않으셨구나.’이천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서정을 끌고 떠났다. 서정은 차에 내팽개쳐질 때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극장에서의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이서는 서나나를 뒷문까지 부축했다. 뒷문에서는 매니저 여은아가 나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나가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이 되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은아는 벌겋게 부어오른 나나의 뺨을 보고 놀라 물었다.“어머,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서가 나나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이서정 짓이에요.”서정의 이름을 듣자, 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또 그년이야. 자기가 은철 도련님의 둘째 숙모라는 것만 믿고 설치잖아. 확 이혼해버렸으면 좋겠어!”“은아 언니, 그만하세요. 전 괜찮아요.”“너도 참.”나나는 괜히 서정의 미움을 사 연예계 활동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은아는 그런 나나가 안타까웠다.“너무 속상해 마. 이미 이서정은 작지만 큰 벌을 받았어.”“그게 무슨 뜻이에요?”나나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참.”은아는 서정을 향한 조롱 섞인 웃음을 쏟아냈다.“이서정은 당연히 자기가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이 될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섣불리 자신이
순간, 하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이서정이 지환의 마스크를 망가뜨린 탓에 지환의 얼굴에는 아무런 가림막도 없었기 때문이다.여은아의 뜨거운 눈빛을 본 지환의 마음속에는 요란한 경종이 울려 퍼졌다.은아는 흥분한 채 이서를 지나 지환에게 다가갔다.“혹시…… 연예계에 관심 없으세요?”“…….”은아는 이처럼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외모를 가진 사람을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지환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몸의 기질 역시 뛰어났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 내놔도 군계일학의 존재일 것이다.스타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은아는 지환과 같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외모를 가진 사람은 데뷔만 한다면 분명 국민적인 스타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인터넷이 발달하면서 H 국에서는 20~30년 전과 같은 국민적 우상이 등장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때문에 은아가 지환과 계약할 수만 있다면, 평생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시간문제임이 분명했다.그러나 계속해서 열렬한 눈빛을 보내는 은아와는 달리 지환은 여전히 싸늘하고 담담했다.“여보, 우리 이제 가도 돼?”은아의 눈은 다시 한번 휘둥그레졌다.‘이, 이, 이, 이, 이 분이 윤 대표님의 남편이라고?! 윤 대표님의 남편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쩜 이렇게 훤칠하실 수 있지?’이서는 은아가 지환에게 이토록 적극적인 것은 매니저의 DNA가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이서는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덤덤하게 말했다.“나나야, 돌아간 후에 대본을 잘 연구해. 이건 정말 절호의 기회야. 네가 해외 진출을 노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마.”“네, 알겠습니다 대표님.”나나는 이서에게 연신 감사함을 표한 후, 다시 은아에게 말했다.“은아 언니, 우리 이제 빨리 가요.”은아는 몹시 아쉬웠지만 차에 올랐다. 문이 닫히는 순간, 은아는 이서를 향해 외쳤다.“윤 대표님, 대표님의 남편분은 정말이지 스타가
윤이서는 하지환의 손을 뿌리치려 몇 번의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지환이 이서의 손을 놓아줄 리 없었다. 이서가 포기하려던 찰나, 갑작스러운 급커브로 인해 이서의 몸이 지환의 품으로 기울었다.“…….”지환은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이서를 바라보았다.“여보, 이거 내 품에 안긴 거 아니야?”이서는 화가 나서 지환의 가슴을 밀치듯 짚고 일어났다.“임현태 씨, 운전 제대로 하세요.”운전석의 현태가 말했다.“네. 죄송합니다. 아가씨.”하지만 현태의 시선은 지환을 향하고 있었다. 지환은 이서가 창밖을 보는 틈을 타 현태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현태 씨 월급을 올려줘야겠구나.’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이서는 손잡이를 꽉 잡은 채 문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기대고 앉았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어 sns를 보기 시작했다.이서가 sns를 켜자마자 이서정이 올렸다던 게시글이 보였다.[제가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으로 선발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줄곧 하이먼 스웨이 선생님의 작품을 동경해왔어요. 이런 걸작에 참여하여 연기할 수 있다니,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댓글은 이미 조롱과 비웃음으로 가득했다.[하하하하하, 대박이다 진짜. 이서정이 이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바다의 딸의 공식 계정에 서나나가 여주인공으로 선발되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며? 완전 코미디 프로가 따로 없네.][하하하하하하하, 올해 본 것 중에 제일 웃겨. 정말 압권이야. 근데 이서정도 누구한테 속아서 자기가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이 된 줄 알았던 거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당당하게 게시글을 올리는 게 말이 돼?][바다의 딸의 여주인공 캐스팅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여기저기서 이서정이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에 가장 적합한 배우라고 떠들어댔으니 거만했던 거지. 게다가 본인 영어실력이 8급이라고 허풍까지 떨었다지? 허허, 난 세상 사람 모두가 이서정이 캐스팅 현장에서 보여준 형편없는 영어 대사를 들어 보기를 바라.] 이서는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고, 누군가 이미 업로드한
“여보…….”하지환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운전석의 임현태는 백미러로 보이는 지환의 굽실거리는 모습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윤이서는 지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일그러진 표정으로 구태우가 보내온 조사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보고서에 따르면, 며칠 전 느닷없이 나타나 이서가 가진 것을 약탈하려 했던 그 무리가 이하영의 사람들이라 했다.이하영…….민예지의 어머니.이서는 지난날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지난번 드레스 숍에서 만난 사람들이 바로 하영과 이서정이었다.민예지가 미쳐버린 것이 비록 이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할지라도, 민 씨 가문의 원망의 화살이 이서에게 향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하지만 이상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이서는 하경수를 만나고 돌아온 후, 줄곧 민 씨 가문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서의 예상은 빗나갔고, 민 씨 가문은 그림자는커녕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서도 이 일을 잊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강도 사건의 배후가 민 씨 가문, 그리고 서정이라니.이서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드레스 숍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 서정은 이서에게 앙심을 품었다. 그리고 하영은 예지의 일로 일찍부터 이서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다.같은 목표를 가진 두 사람은 단번에 마음이 맞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서에게 문자를 보내 지환이 해외에 있을 때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흘렸고,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지기를 기다린 것이 틀림없었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서와 지환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자, 재차 불만을 품고 사람을 시켜 그들을 약탈하게 한 것이 분명했다.어쩌면, 이서의 집에 도둑이 들었던 일, 술집에서 만난 그 세 사람과 있었던 일 모두 하영과 서정이 꾸민 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이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핸드폰을 내려놨다.이서는 사건의 진실에 대한 퍼즐을 풀기 위해 줄리가 필요했다.이서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은 마치 누군가가
윤이서는 하지환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환의 필사적인 힘을 이겨 낼 방법이 없었다.지환은 능청스러운 얼굴로 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여보, 그렇지?”이서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땀이 날 것만 같았다.“지환 씨!”“여보…….”“임현태 씨, 차 세우세요.”현태가 갓길로 차를 세웠다. 그러자 이서는 문밖을 가리키며 말했다.“내려, 내려서 먹고 와.”이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줄리에게 누가 자신을 속이게 한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었다.“여보, 같이 가자.”이서는 눈썹을 찡그린 채 말했다.“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이 사람, 언제 이렇게 능글맞아진 거지?’“네가 날 두고 떠나버리면 어떡해.”“…….”지환의 애원에 가까운 눈빛에 이서는 할 말을 잃었고, 지환을 따라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한 마라탕 가게로 들어섰다. 이미 식사 시간이 지난 터라 가게 안은 한산했다.가게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본 사장은 친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뭐 드시고 싶으세요?”평소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모든 결정권은 이서에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지환이 냉큼 사장의 물음에 답했다.“마라탕 주세요.”“…….”이서는 음식을 주문하는 지환의 얼굴에 왠지 모를 비장함이 감도는 것을 보았다.이서는 문득 예전에 지환과 함께 바비큐를 먹으러 갔을 때 이상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허허, 지환이 얘는 위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포장마차 음식 같은 건 입도 못 댄다니까요. 별나요, 별나.”이서는 고개를 들어 길 건너 맞은편을 보았다. 그곳에는 백화점과 여러 개의 식당이 즐비해 있었다. 이서는 지환에게 말했다.“난 맞은편에 가서 먹고 싶어.”지환은 이서의 시선을 따라 가게 밖을 바라보았고, 이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래.”두 사람은 나란히 길을 건너 맞은편의 식당으로 향했다. 한 시간가량의 식사를 마친 지환이 자리를 일어서며 말했다.“화장실 다녀올게.”이서는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보며 지환이 돌아오기를
찬 공기를 훅 들이킨 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당연히 없지, 확인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이서는 지환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지환의 휴대폰에 손을 뻗었다.고개를 숙인 순간, 이서는 눈앞의 손이 떨리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이서는 지환의 휴대폰을 켜고 비밀번호를 물어보려던 순간, 그가 자신의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멈칫했다.사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이거 언제 찍은 거죠?”이서는 휴대폰을 들고 있는 지환에게 물었다.지환이 웃었다.“우리 처음…….”“그만.” 이서는 눈을 부릅떴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지환을 노려보았다.차 안에는 아직 다른 사람도 있었다.지환은 살짝 미소 지었다.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휴대폰을 지환에게 다시 건넸다.“됐어요, 됐어.”지환은 휴대폰을 건네받았다.“확실해?”이서는 침착한 지환을 보며 휴대폰에 자신의 사진이 더 있을 거라고 짐작했고, 사진을 찍었을 때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지환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네.”“그럼 이건 도로 넣을게.”이서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짧게 대꾸했다.그녀의 뺨이 조용히 붉어졌다.이서도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니었다.지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본인도 느낄 수 있었다.게다가 지환의 사랑이 뜨겁게 불타오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오랫동안 사실을 숨긴 지환을 갑자기 용서하기가 내키지 않았다.‘됐다, 줄리와 만날 때까지 기다리지 뭐.’그렇게 생각하던 이서의 눈은 저도 모르게 차창에 비친 지환의 얼굴로 향했다.살이 빠진 탓인지 지환의 볼은 더 핼쑥해졌고, 턱선은 또렷해졌으며, 코는 더 오뚝해졌다.전체적으로 잘생기고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여은아가 지금 당장 그를 연예계로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도 당연했다.이런 지환의 얼굴로 봤을 때, 그가 정말 연예계에 진출한다면 아마 판을 휩쓸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지환이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을 원치 않
이서는 줄리의 턱을 들어 올렸다.“말해봐요, 왜 날 위해 그런 연기를 한 거죠? 그리고 누가 당신한테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요?”“몰라요, 난 아무것도 몰라요…….”줄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서의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했다.하지만 턱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그 힘은, 전혀 여자 같지 않았다.“이래도, 모르겠어요?” 줄리를 살벌하게 바라보는 이서의 눈빛은 끔찍할 정도로 섬뜩했다.놀랍게도 줄리는 이서의 몸에서 하지환과 똑같은 무시무시한 기운을 발견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지환을 바라봤다.이서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지환의 눈빛은 차가웠고, 그의 시선은 이서를 쫓고 있었다.애초에 줄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마치 그녀를 전혀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난 박예솔 친구인데!’게다가 연극 배우라 외모도, 몸매도 모두 뛰어난 사람이었다.그런데 지환은 전혀 감흥이 없다니!화가 치밀어 오기도 전에 턱의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그녀는 숨을 훅 들이켰다.“말…… 말할게, 말한다고요. 그, 그게…….”모두의 시선이 줄리에게 쏠렸다.태연한 지환도 마찬가지였다.한껏 가라앉은 그의 눈에서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어두운 그의 눈가엔 숨길 수 없는 살기가 드러나 있었다.줄리는 몸을 떨면서도 꿋꿋하게 말했다.“나, 나는 그 여자 이름이 뭔지도 몰라요. 그냥 나한테 돈 보내고, 시키는 대로 한 것밖에 없어요. 연기도…… 당신한테 했던 말도 전부 그 여자가 시킨 거예요.”“돈을 보냈다고요?” 이서는 줄리를 놓아주었다.“계좌번호 확인할 수 있어요?”“찾아본 적이 없어서 몰라요.”이천이 문득 나섰다.“사모님, 제가 확인해 볼게요.”이서는 노골적인 불신의 눈빛으로 이천을 돌아보았다.이천은 당황한 듯 코를 슥 만졌다.“이체 기록은 은행에서 제공할 수 있습니다.”그 말은 그가 가짜를 만들고 싶어도 속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던 이서는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되물었다.“얼마나 걸리나요?”“빠
하지환에 대한 윤이서의 의심은 한 순간에 모두 사라졌다.이 모든 일의 배후에 이서정이 있는 것 같았다.“난 더 이상 질문할 게 없어요.” 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환에게 시선을 옮겼다.“당신은요?”지환의 눈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난 없어.”“그럼…… 이만 돌아가요.”이서는 발밑에 깔린 자갈을 발로 툭툭 찼다.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좋아.”이번에는 이서가 저항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손을 잡고 창고 밖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며 이천도 마침내 안도했다.드디어 위기가 성공적으로 해결된 것 같았다.이천은 줄리를 돌아보며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급히 뒤쫓아갔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지환은 이서를 바라보았다.“가 봐요, 난 차에서 기다릴게.”이서의 말을 듣고 지환은 이천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이천은 이서가 차에 타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대표님, 이서정 씨 쪽은 어떻게 할까요?”“일단은 돌아가게 놔두고, 잘 지켜봐. 괜히 영감 쪽에서 의심하지 않도록.” 지환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그리고, 내가 H국에 왔을 때 일어난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무슨 단서라도 찾았어?”이천은 고개를 저었다.“대표님, 상대가 보통이 아닌 것을 보아, 전 그래도 4대 가문 쪽 짓이 아닐지 의심됩니다.”“하씨 가문도?”이천은 잠시 멈칫하다가, 생각에 잠긴 채 말을 이어갔다.“지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당시 어르신과 대표님 부친 두 분의 사이가 틀어졌습니다.”외부에서는 하경철과 지환의 아버지가 사이가 나빠졌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지환의 부하 직원인 이천은 당연히 상사의 부친에 대해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지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하씨 일가를 의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증거가 없었다.그는 증거도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물론 하씨 일가의 소행이기를 바라지도 않았다.하지만 정말 하씨 일가의 짓이라면 하씨 일가에게도 똑같이 대가를 치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