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서가 떠난 후 병실에는 서나나와 하지환만 남았다.어색해도 너무 어색했다.나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지환이 눈을 감고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말해서 지환은 정말 잘생겼지만, 나나는 그와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상대는 어쩔 수 없이 항상 긴장해야 했다.‘이서 언니는 어떻게 견딘 거야?’그녀는 코를 쓸었다.눈을 뜬 지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나는 휴대폰을 꺼내 혼자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이건 어제 받은 대본이었다.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유명한 작가 하이먼 스웨이의 작품으로, 새 드라마인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바다의 딸’은 한국 소녀가 타국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한국 소녀는 무술을 익혀 아름답고 용감해야 했기에 최근 인기를 끌었던 나나가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그녀에게 대본이 전달된 것이었다.나나는 대본 내용을 읽자마자 반했으며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느껴졌다.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것도 똑같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이겨내며 무술을 연마하고, 대도시에서 홀로 힘겹게 싸우는 것도 똑같지만, 타국의 여주인공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났고 나나는 그녀의 귀인, 이서를 만났다.이러한 공통점으로 나나는 여주인공으로 뽑히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하이먼 스웨이 작품을 놓고 많은 여배우들이 도전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제 막 뜨기 시작한 나나가 그런 대선배들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래서 나나는 병문안을 겸해 이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이서는 집에 돌아온 뒤 분주하게 요리하기 시작했다.마지막 음식이 완성되고 포장을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리며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바로 그때 뜻밖의 메시지가 도착했다.바로 루나가 보낸 메시지였다.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루나의 메시지에 이서의 심장
서나나가 화면을 쳐다보니 하지환의 배경화면은 윤이서였다.그녀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숨길 수 없다.사랑하는 것은 작은 행동에도 드러나기 마련이다.“형부, 왜 계속 휴대폰을 확인하세요? 급한 일 있어요?”지환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거의 한시간이 지났어.”“네?”“원래 지금쯤이면 돌아오거든.”나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문을 쳐다보고 그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형부, 너무 집착하시는 거 아니에요? 언니가 나간지 아직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잖아요.”지환은 차가운 눈으로 나나를 바라봤다.나나는 급히 휴대폰을 보는 척했다.“크흠, 오래 걸리네요. 얼른 전화해 볼게요.”지환은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나는 그의 얼굴이 살짝 상기된 모습을 보고 지환의 기분이 좋은 걸 알 수 있었다.‘참 츤데레야, 분명 언니가 뭘 하는지 알고 싶은 것 같은데 나한테 전화하라고 빙빙 돌려 말한 거잖아.’나나는 휴대폰을 들고 창가에 가서 이서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나나는 의아한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때 나나의 뒤에서 지환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렸다.“무슨 일이야?”나나는 솔직하게 말했다.“전화를 안 받아요.”지환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이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곧바로 끊어졌고, 다시 전화를 해보니 이미 차단된 상태였다.그는 병상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나나가 그를 잡았다.“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지환은 입을 굳게 닫고 있었으며 그의 표정은 정말 험악했다.나나는 분주하게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꼈고 그를 따라 병원 아래층으로 내려가 지환이 차를 세우고 운전자를 끌어내리는 모습을 지켜봤다.운전자는 겁에 질려 있었고 나나는 재빨리 신용카드를 운전자의 손에 밀어 넣었다.“죄송해요, 카드에 몇 천만원 정도 들어 있어요, 비밀번호는 6688입니다. 잠시 차 좀 빌릴게요. 나중에
윤이서의 층에 도착했을 때 서나나는 그 소리가 하지환 때문에 난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그는 실제로…… 문을 직접 부수고 맨손으로 열었다.나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이미 침실로 걸어가고 있는 지환을 바라보았다.그는 손을 들어 굳게 닫힌 침실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여보!”지환의 말투에 담긴 다정함과 부드러움은 나나가 봤던 지환과 전혀 달랐다.이때 방 안에서 이서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나가! 당신 얼굴은 보기도 싫어!”나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까는 멀쩡했는데 어떻게…….’그녀는 지환을 바라봤다.지환은 이마를 문에 대고 인내심 있게 이서와 대화를 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말해주면 안 돼?”방안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지환이 다시 문을 부수려 할 때, 나나가 얼른 그를 붙잡았다.“형부……, 형부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가면 언니가 얘기해 줄 것 같아요? 이러면 일이 더 꼬일 뿐이에요.”나나와 이서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자의 직감으로 이서가 지환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렇게 쳐들어가면 이서는 더 반감을 가질 것이었다.지환은 미간을 짚으며 나나를 봤다.붉게 충혈된 눈은 나나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하지만 그녀는 피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형부, 언니를 걱정하는 건 알지만 이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형부도 이서 언니와의 갈등을 빨리 해결하고 싶잖아요.”나나의 마지막 말에 이성을 잃었던 지환은 점차 진정됐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그럼 방법이 있어?”“먼저 병원으로 돌아가세요. 제가 언니 옆에 있으면서 무슨 소식이 있으면 알려드릴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지환은 미간을 찌푸리고 닫힌 문을 바라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나나는 지환과 번호를 교환한 뒤 엘리베이터를 태워 보냈다.부엌을 지나갈 때 나나는 식탁 옆 바닥이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고 침실 문을 올려다봤다.나나는 어질러진 것을
“그럼 좀 드실래요?”서나나는 국수를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 그러나 윤이서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안 드시면 어떡해요.”나나가 달랬다.“이서 언니, 몸은 혁명의 밑천이에요. 하늘이 무너져도 음식을 좀 드셔야죠.”이서는 머리를 한쪽으로 하고 나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시선은 초점이 없었고 입술은 움직였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나나는 걱정하며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어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 언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에게 알려줄 수 있어요?”이서는 입꼬리를 잡아당겼지만 웃지 않았다. 나나는 그 모습을 보고 이서의 손을 꼭 잡았다.“괜찮아요, 이서 언니.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되고 드시고 싶지 않으면 안 드셔도 돼요. 제가 여기서 함께 있을 테니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저한테 말해주세요. 알겠죠?”이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나는 안심하고 일어나 침대 옆으로 가서 커튼을 쳤다.조금 어두운 공간은 이서를 조금 더 안전하게 해주었다. 이서는 이불 속에 웅크리고 누워 눈을 감자 속눈썹이 촉촉하게 젖기 시작했다.나나는 소리 없이 이서를 바라보며 하지환이 올 때 목숨을 걸고 운전한 것을 떠올리며 문자를 보냈다.[이서 언니가 문을 열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문자를 보내고 난 뒤 나나는 잠시 생각한 후 또 문자를 보냈다.[비록 언니와 형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었는지 모르지만, 이서 언니는 일찍이 저에게 형부가 밖에 다른 여자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제 생각에 이서 언니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요.][비록 제가 언니와 형부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형부가 정말 이서 언니를 좋아한 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서 언니를 좋아한다면 왜 다른 여자의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건가요?][죄송합니다. 외부인으로서 저는 언니와 형부 사이의 일에 끼어들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서 언니가 저를 도와준 적이 있어서 저는 언니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나
오후가 다가오자 윤이서의 안색은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입맛이 없고 밥도 먹지 않아서 서나나는 이서가 이대로 가다가는 쓰러질까 봐 걱정했다.하지만 나나는 이서가 심소희의 전화를 받을 수 있고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조언을 하는 것을 보고 이서는 때려잡아도 죽지 않는 바퀴벌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게다가 업무 중의 이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열정적이었다. 전혀 사랑의 상처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핸드폰을 내려놓자 이서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힘없이 침대에 엎드렸다.나나는 상황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자 대본을 꺼내 이서에게 보여 주었다. 역시나 대본을 받은 이서는 바로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서는 대본에 집중하여 대본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나나는 이서가 이렇게 몰입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는 살금살금 거실로 가서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상님이시여, 드디어 답장을 줬구나.]여은아가 곧 전화를 걸었다.[지금 어디에 있어? 빨리 회사로 돌아와.]“무슨 일 있어요?”[회사는 너에게 새로운 대본을 하나 계약해 줄 예정이야. 현재 웹드라마 천해의 열기를 틈타 너에게 같은 유형의 드라마를 제작할 거야.]나나는 눈살을 찌푸렸다.“은아 언니, 제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같은 장르의 소재는 두 번 다시 만지지 않겠다고요. 이러면 제 필모그래피를 제한하게 될 거예요.”[나나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너는 극작가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의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을 하고 싶어 하잖아. 근데 내가 말하는데 너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왜요?”이렇게 부정당하자 나나는 달갑지 않았다.“저는 이전에 연극배우였어요. 그러니 연극 무대는 여전히 견딜 수 있어요.”[나나야, 나는 너의 매니저야. 네가 이전에 연극배우였다는 것을 내가 모르겠어? 그런데 나는 방금 소식을 받았어.]은아는 꽤 어쩔 수 없어하며 말했다.[이서정이 이 배역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그 사람이…… 어떻게 이 배역을 마
“이거 정말 그분이 쓰신 거야?”이서가 말했다.“이건 그분의 스타일 같지 않은데.”하이먼 스웨이의 작품은 날카로운 풍자와 신랄한 비판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따뜻한 정감이 넘쳐흐르고 있어 전혀 그분이 쓰신 것 같지 않았다.“네, 게다가 그분은 H 국에 오셔서 여주인공을 뽑으려 합니다. 그런데…….”나나는 애써 숨기려 했지만 이서는 나나의 눈 속에서 깊은 상실감을 보았다.“아마 선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분이 오시면 결정될 것 같아요.”이서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가 무겁고 발이 가벼웠다. 그리고 지금 막 일을 마쳤기 때문에 정력을 좀 분산시켰고 마음속에 타오르는 분노도 그렇게 왕성하지 않았다.이서는 자신에게 모든 주의를 나나에게 기울이도록 강요했다.“왜?”“왜냐면…… 이미 내정됐기 때문이에요.”나나는 이서를 보고 일어나 물었다. “이서 언니, 배고프시죠? 국수 끓여 드릴게요.”이서는 나나를 눌렀다.“서두르지 마. 이 배역은 누구한테 주었는데?”“이서정이요.”이서의 얼굴은 눈에 보이는 대로 하얗게 질렸다. 나나가 왜 그러냐고 묻자 이서는 직접 나나를 밀치고 욕실로 돌진했다.욕실에 들어가자 이서는 더 이상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토해냈다. 이서는 거의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아서 아무것도 토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은 계속 울렁거렸다.한참을 토하고서야 그 메스꺼운 느낌이 마침내 가라앉았다.이서는 변기를 끌어안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나나를 올려다보며 겨우 힘을 내어 달래주었다.“난 괜찮아.”나나는 걱정되어 물었다.“이서 언니, 제가 보기에는…….”이서는 변기를 받치고 일어나려다가 발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나나는 눈치가 빨라서 이서를 부축했다.“이서 언니.”이서는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고파.”나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서 이서를 부축하여 침대 옆으로 가서 앉았다.“제가 국수를 끓여 드릴게요.”이서는 고개를 살
“이서 언니.”서나나는 재빨리 국수를 들고 들어왔다.“비교적 담백하게 삶아서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맛있어.”이서는 몇 입 먹고 칭찬했다.“그래요?”나나는 기뻐서 미간을 구부렸다.“좋아하시면 냄비에 더 있어요.”이서는 나나를 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나가 물었다.“왜요, 이서 언니?”“내가 전에 약속했던 거 기억나?”나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야 머뭇거리며 말했다.“저를 국제적으로 유명한 여자 스타로 만드시겠다는 그 일 말입니까?”“응.”이서는 몸을 곧게 펴고 나나를 보며 말했다.“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극작가야. 이번에 그분께서 H 국에 오셔서 바다의 딸을 위해 여주인공을 뽑는 것은 매우 좋은 계기야.”“하지만…….”이서는 손을 흔들었다“난 네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어. 이서정은 전혀 이 배역에 어울리지 않고 연극을 연기할 능력이 없어.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께서 이 대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게 아닌한, 그분께서는 이서정을 바다의 딸 여주인공으로 선택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을 거야.”“그리고 내가 방금 알아봤는데, 너는 연극을 한 적이 있고 인생 경력도 극본 속의 여주인공과 매우 비슷해. 자신의 마음의 역정과 같은 배역을 맡으면 더욱 뜻대로 될 거야.”“그런데 너의 유일한 문제는 영어야. 영어 실력은 어때?”“겨우 교류할 정도예요…….”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이서의 생각을 따라갔다.“그건 안 돼.”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이서는 엄숙하고 진지해졌다.“그동안 영어를 잘 연습해야 해.”말하면서 이서는 웹 브라우저를 누르고 검색하기 시작했다.“하이먼 스웨이 여사님께서는 다음 주 월요일에 H 국에 도착할 예정이시고 아마도 캐스팅은 화요일에 시작될 것 같아. 즉, 너한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여. 너는 일주일 안에 대본 내용을 익혀야 하고 적어도 영어로 대본을 유창하게 외울 수 있어야 해. 괜찮지?”나나는 이서의 말을 듣고 온몸의 피가 끓기 시작했다.“괜찮아요!”“그래, 그럼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도 지환이의 체면을 봐서 그런거야.”박예솔은 술잔을 높이 들고 말했다.“말하자면, 그래도 지환이한테 감사해야 한다는 거지. 자, Cheers!”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거실이 잠시 조용해지자 줄리는 예솔에게 물었다.“참, 내가 이번에 H 국에 갈 때 너도 같이 갈래? 가는 김에 지환이도 만나고?”예솔의 눈 밑의 웃음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렸지만, 곧 줄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아니야, 나는 곧 지환이를 볼 수 있을 거야.”“응. 지환이가 그 여자랑 이혼했어?”이에 대해 말하자 예솔의 눈매가 날아갈 것 같았다.“아직 아니, 근데 곧 할 것 같아.”“어?”줄리는 순간 흥미를 느꼈다.“말해봐.”“그 바보 같은 년이 드디어 지환이의 정체를 알게 됐어. 그래서 곧 지환이랑 이혼할 거야.”“왜? 지환이가 갑부라는 것을 알고도 이혼을 하겠다고?”줄리는 이서의 생각을 잘 이해가 안 됐다.“그 사람을 누가 알겠어.”예솔의 기분은 아주 좋았다.“아무튼 윤이서는 틀림없이 지환이랑 이혼할 거야.”줄리도 웃으며 말했다.“하긴, 그럼 난 너의 축하주를 마시기를 기다릴 게.”예솔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네가 대 공신이라는 걸 난 잊지 않을 거야.”“아니야, 아니야. 앞으로 헤이먼 스웨이와 같은 거물을 많이 소개해 주시면 돼.”예솔은 말을 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며 눈 속의 비웃음을 감추었다.“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일이 있어.”줄리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만약 지환이가 너라는 걸 알아내면…….”그러나 예솔은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말했다.“괜찮아, 난 이미 희생양을 찾았어.”“?”예솔은 많이 설명하지 않았다. 하여 줄리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잠시 더 술을 마셨고 줄리는 시간을 보았다.“나는 친구의 파티에 가야 해서 다음에 시간 나면 또 이야기하자.”예솔은 줄리를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다.차에 오를 때, 줄리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빙그레 웃으며 예솔에게 물었다.“예솔아, 만약
“제가 오늘 밤에 상대할 사람이 하 대표님이었군요!”그 사람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천이 지환의 앞에 서서 말했다.“괴력왕, 당신이 어떻게 하은철 아버지의 조수가 된 거죠?”눈앞의 괴력왕은 힘으로 대동맥을 끊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타고난 힘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천은 물론이며 지금까지 괴력왕과 맞붙은 적 없는 어둠의 세력 조직원까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괴력왕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사람들은 모두 그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랐다.“하하, 말하자면 긴 이야기입니다만, 기꺼이 말씀드리죠.”키가 큰 괴력왕은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지환을 볼 수 있었다.“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제 딸이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그걸 알게 된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께서 훌륭한 의사를 찾아 제 딸을 치료해 주신 거죠.”“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약속했습니다.”“다만, 첫 번째 임무가 하 대표님을 상대하는 건 줄은 몰랐죠.”지환의 명성은 외국에서도 대단했다.괴력왕처럼 은둔하는 사람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어쩐지, 상대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더라니.’‘상대를 알면 후회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지?’지환은 괴력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괴력왕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게다가 지환은 의리 있는 괴력왕의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그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으로 괴력왕을 끌어들이려 했었다.하지만 싸우기 싫어하는 괴력왕의 성격 때문에 그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고, 지환도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가 전쟁이 될 줄은 몰랐다. “각자의 보스나 신경 쓰도록 하죠. 시작합시다!” 지환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괴력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 대표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저쪽에 있던 하도훈은 이미 입구까지 걸어갔다.그의 곁에는 수십 명이 모였는데, 그들의 머리에는 흰색 천 조각이 씌워져 있었다. 지환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그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지환은 꿈쩍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형님, 오랜만입니다!”하도훈의 얼굴에서는 커다란 슬픔이 묻어났다. “왔구나!”지환이 말했다.“은철이 시신을 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경직된 몸을 심하게 떨었다.“지환아, 너 정말 독하구나. 한 여자를 위해서 조카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 아이를 해칠 때, 네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니?” “예전에 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어. 하지만 은철이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고, 너라는 작은 아버지를 꽤 친근하게 대했다지.”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고향의 특산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그런 조카를 이런 식으로 대한 거냐?”“너는 처음엔 여자를, 이제는 목숨을 앗아간 거야.”“은철이 녀석이 본인의 이런 말로를 알았더라면, 애초에 너를 가까이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겠구나.”하도훈이 말했다.지환이 차갑게 하도훈을 바라보았다.“맞습니다. 우린 가족이고, 확실히 아주 가까웠죠.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철이가 이서를 어떻게 대했었죠?” “이서는 은철이의 작은어머니였습니다. 그때 은철이는 이서가 본인의 가족, 즉 친척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하도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래, 보아하니 너는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지환아, 너희가 목숨을 건 계약을 했다는 거, 설령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네가 오늘 은철이를 보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내 허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형님이 허락하면 어떻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내 이천이 전화를 걸어왔다. [대표님, 모두 안배했습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그래.”전화를 끊은 지환은 외투를 들고 문을 나왔는데, 맞은편 방문이 한 눈에 들어왔다.그는 넋을 잃은 채 그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이천이 한 말이 맴돌았다.‘덫일 수도 있다고...?’‘가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이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면 떠나고 싶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바로 이때,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지환이 피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문 뒤에 서 있는 이서를 묵묵히 바라보았고, 그녀도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외투를 든 것을 본 이서가 물었다.“어디 나가요?”지환은 이서의 눈을 쳐다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오, 그럼 어서 가보세요. 나는 샤워하고 잘게요.”이서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는데, 이는 지환을 크게 안도시켰다. 그가 두 걸음 정도 내디뎠을 때, 뒷문이 다시 열렸고, 이서의 ‘조심해서 다녀와요’라는 한 마디가 복도에 메아리쳤다.고개를 돌린 지환은 텅 빈 복도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는 차갑고 의연한 기색만이 감돌 뿐이었다. 급히 아래층에 도착하자, 이천은 이미 어둠의 세력 조직원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즉시 똑바로 서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지환은 마지막으로 호텔을 힐끗 보고는 출발했다. 병원 입구.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고요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평소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 입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오히려 입구는 활짝 열려 있어, 함정에 빠뜨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천이 물었다.“대표님,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환은 냉정하게 반문했다.“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이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이미 철통같이 포위된 듯했고, 어디로 들어가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문으로
소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서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부하고 싶을 정도로 강해져야만, 그들이 소희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저녁에 식사하던 이서는 지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괴롭다는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더 강해진다는 건 하씨 가문을 넘어서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건 내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에요.” 맞은편에 앉은 지환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 얼굴의 부드러운 곡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얼굴의 미세한 동작까지도 끄집어냈다.“불가능한 일은 없어. 어쩌면 네가 하씨 가문을 넘어설지도 모르지.” “또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거죠? 하씨 가문은 백 년의 기반을 가진 가문이예요. 내가 하씨 가문처럼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꿈속에서 하씨 가문을 이어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와 하씨 가문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 말이다. 바로 이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이천에게서 온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지환이 핸드폰을 든 채 이서를 한 번 보았다. 이서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지환이 그녀가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 “이제 배불러요. 나는 먼저 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볼게요.” 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자, 지환이 수화기 너머의 이천에게 물었다.“확실해?”[확실합니다. 하은철은 확실히 죽었어요. 하지만 하씨 가문의 고택 앞에서 죽었죠.] [하은철은 치타와 마찬가지로 차가 부딪쳐 날아가는 순간에 차에서 뛰어내렸을 겁니다.] [물론, 그때 누군가가 하은철을 도왔기 때문에 하씨 가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던 거겠죠.][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씨 가문 고택
소희가 꽤 충격을 받은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 언니, 농담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이득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우리가 시비를 걸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할 일이지.” 이서가 빙그레 웃었다.“이제 내 말을 믿겠어?” 소희가 말했다.“이서 언니, 언니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제 동생을 잘 모르잖아요. 걔는 어릴 때부터 남들을 골탕 먹이던 애예요. 한 번도 남한테 당한 적이 없는 애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어제 이미 계획을 세워뒀어. 소희 씨가 내 말 대로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소희 씨, 설마 그 이상한 양부모한테서 완전히 벗어날 생각을 안 해본 거야?” 소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확실히 생각해 본 적 있지만, 단지 생각에 불과했어.’ ‘양엄마가 얼마나 끈질기게 집착하는 사람인지 잘 아니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철저히 말살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범법행위이지 않은가.소희는 이서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원치 않았다. “이서 언니,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음에 또 심태윤이 찾아오면,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언니는 걔한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지만, 걔는 언니한테 해를 끼칠 수 있어요.” 이서가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까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서야 알았어. 소희 씨가 심씨 가문에서 겪는 일이 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걸.” “소희 씨, 소희 씨는 날 위해서 심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는 심씨 가문에 있는 소희 씨의 처지를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아직 심 대표님 내외에게 정이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소희 씨의 부모님이잖아. 세 사람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언젠가는 그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나를 몰래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소희는 이서의 말에 고개를
같은 시각.차에서 칭찬받은 소희는 쑥스러워했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하지만 이지숙의 눈에는 소희가 혀로 수많은 유생과 싸운 제갈량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주머니.” 소희가 이지숙이 계속해서 말을 잇기 전에 말했다.“물건을 좀 사러 가고 싶어요. 이따가 이 근처에서 저 좀 내려주세요.” “나도 같이 갈게.”이지숙이 열정적으로 자청했다. 소희는 그런 그녀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저 혼자 가고 싶어요.”이지숙은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쇼핑을 원치 않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많은 일을 겪은 소희가 혼자 걷고 싶은 것이라 여겼다. “이해해, 다음 길목에서 내려줄게.”“소희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가 반드시 너를 보호할 테니까.” “...”소희는 정말이지 걱정이 많았다.‘심씨 가문 사람들의 뇌 회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 “소희야.” 심근영 또한 이지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희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너를 구할 거야.” 소희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그들의 눈동자에는 진심만이 가득했다. 소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심근영 부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떠나자마자, 소희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윤씨 그룹으로 갈게요.” 운전기사는 대답한 후, 곧장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30분 후, 회사에 있던 이서는 소희가 왔다는 것을 듣고는 다소 놀랐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예.”김하늘은 곧장 대표실로 소희를 데려왔다.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자, 소희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이서 언니...” 문이 닫히고, 밀려오는 억울함을 느낀 그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소희
소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녀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6명의 어르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어르신들, 모든 일의 원흉인 제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여섯 명의 어르신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에 앉은 그 어르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그래.” “감사합니다.”“여러분, 여러분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타남과 동시에 하씨 가문과의 협력이 중단되었으니, 저만 내쫓으신다면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진정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우리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심유인이 비꼬듯이 대답했는데, 어조에서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소희가 심유인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저도 여러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기만 하면, 하씨 가문은 자연히 심씨 가문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려 할 테니까요!” ‘소희가 주동적으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할 줄이야!’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희야!”이지숙은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 엄마가 부족해서 너를 고생시키는구나.”소희는 역시 눈시울을 붉히던 심근영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심이에요. 제가 쫓겨나는 걸로 하 사장님의 기분이 풀린다면... 그렇게 할게요.”그러나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조롱으로 들렸다.심근영이 중간에 앉은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어르신, 소희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하 사장의 기분을 풀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하 사장일까요?” “윤 대표는 하 사장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하씨 가문을 건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면, 더욱 궁지에 몰릴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아니야, 나는 정말이지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고 싶지 않아!’ ‘이 사람들은 왜 내
어르신들은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고, 결국 가장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입을 열도록 내버려두었다.“확실히 경솔한 일이긴 해. 허나, 우리가 하씨 가문에게 직접 물을 수는 없으니, 모든 걸 추측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우리는 너희가 밖에서 하는 일을 전부 알고 있었어.”“즉, 이 일은 우리 심씨 가문의 잘못이기도 하단 뜻이지.”“하씨 가문과 협력하기로 약조해 놓고 번복하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말했다.심근영은 이서의 배후에 지환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소희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을 생각하며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간단한 문제였습니다. 하씨 가문과의 협력에서, 심씨 가문은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는 가문이니, 이익이 없으면 협력도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헛소리!”심상규가 말했다.“이번 협력은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거였어. 윤씨 그룹이 몰락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씨 가문과 윤씨 그룹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고! 그렇게 되었다면, 심씨 가문은 소씨 가문을 제치고 H국의 2대 가문이 될 수 있었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네 딸이 돌아오는 것과 맞바꾼 거라고!”여기까지 말한 심상규는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네 딸은 아주 배은망덕한 사람이야!”“윤씨 그룹을 위해서 제 가족들을 협박하다니.” “허, 어릴 때부터 가문 밖에서 자란 사람, 게다가 시골에서 자란 말괄량이가 무슨 식견이 있을까!” “그만하시죠, 작은아버지. 우리가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단한 이유는 소희 때문이 아니라...”심근영이 주먹을 꽉 쥐고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근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고, 그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이서 언니는 아직 형부의 신분을 몰라. 이 시점에서 그 이유를 폭로해버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밖으로 퍼뜨리고 말 거야.’ ‘만약 이렇게 해서 이서 언니가 피해를 본다면,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할
“아주머니, 사람은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에요. 만약 그 어르신들께서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억지로 심씨 가문에 머물 생각이 없어요.” 사실 소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기에 당장이라도 심씨 가문을 떠나고 싶었다. 비록 그녀와 심근영 부부가 혈연관계이긴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떨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심근영 부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심씨 가문은 우호적인 곳이 아니지 않은가. 환영 파티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다니, 계속해서 심씨 가문에 머문다면 또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소희야, 걱정하지 마. 엄마는 절대로 네가 심씨 가문을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만약 어르신들께서 정말 너를 쫓아내려 하신다면, 이 엄마도 너와 함께 떠날 거야.” 이렇게 말한 이지숙이 다시 심근영을 바라보았다.“여보, 나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그분들이 하은철 한 사람 때문에 무리하게 내 딸을 쫓아내려고 한다면, 난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이지숙의 어투에는 확신이 가득하여 농담 같지 않았다. 심근영이 윙윙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소희는 이제 막 돌아왔어. 그런데 무슨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거야? 소희야, 너도 걱정할 거 없다. 네가 이미 돌아온 이상, 다시 떠나게 하지는 않을 테니.” 소희는 그들을 보면서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렸을 때, 그녀가 동생과 함께 넘어지면, 양부모의 눈에는 언제나 심태윤뿐이었다. 그들은 늘 남동생을 먼저 일으켜 세우며 달래 주었고, 한쪽에 방치된 그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설령 소희를 신경 쓴다고 해도, 그저...“혼자 일어날 줄도 모르니?”그 누구도 그녀에게 ‘걱정 마, 우리한테 맡겨’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소희는 또 한 번 그들을 보았고, 그제야 자신의 눈이 이지숙의 눈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달 모양의 둥근 눈, 그것은 공격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매우 곧고, 하늘을 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