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먼 스웨이 여사님도 지환이의 체면을 봐서 그런거야.”박예솔은 술잔을 높이 들고 말했다.“말하자면, 그래도 지환이한테 감사해야 한다는 거지. 자, Cheers!”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거실이 잠시 조용해지자 줄리는 예솔에게 물었다.“참, 내가 이번에 H 국에 갈 때 너도 같이 갈래? 가는 김에 지환이도 만나고?”예솔의 눈 밑의 웃음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렸지만, 곧 줄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아니야, 나는 곧 지환이를 볼 수 있을 거야.”“응. 지환이가 그 여자랑 이혼했어?”이에 대해 말하자 예솔의 눈매가 날아갈 것 같았다.“아직 아니, 근데 곧 할 것 같아.”“어?”줄리는 순간 흥미를 느꼈다.“말해봐.”“그 바보 같은 년이 드디어 지환이의 정체를 알게 됐어. 그래서 곧 지환이랑 이혼할 거야.”“왜? 지환이가 갑부라는 것을 알고도 이혼을 하겠다고?”줄리는 이서의 생각을 잘 이해가 안 됐다.“그 사람을 누가 알겠어.”예솔의 기분은 아주 좋았다.“아무튼 윤이서는 틀림없이 지환이랑 이혼할 거야.”줄리도 웃으며 말했다.“하긴, 그럼 난 너의 축하주를 마시기를 기다릴 게.”예솔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네가 대 공신이라는 걸 난 잊지 않을 거야.”“아니야, 아니야. 앞으로 헤이먼 스웨이와 같은 거물을 많이 소개해 주시면 돼.”예솔은 말을 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며 눈 속의 비웃음을 감추었다.“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일이 있어.”줄리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만약 지환이가 너라는 걸 알아내면…….”그러나 예솔은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말했다.“괜찮아, 난 이미 희생양을 찾았어.”“?”예솔은 많이 설명하지 않았다. 하여 줄리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잠시 더 술을 마셨고 줄리는 시간을 보았다.“나는 친구의 파티에 가야 해서 다음에 시간 나면 또 이야기하자.”예솔은 줄리를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다.차에 오를 때, 줄리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빙그레 웃으며 예솔에게 물었다.“예솔아, 만약
그동안 윤이서는 고강도의 일을 이용해 하지환이 하은철의 둘째 삼촌이라는 사실을 도피했다.그런데 지금 심소희가 지환을 언급했을 때 마치 날카로운 칼을 들고 칼자국을 낸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고통도 마치 용솟음치는 강처럼, 순간적으로 이서의 사지와 온몸을 적셔서 참지 못하고 경련을 일으켰다.소희의 안색은 순간 변했다.“이서 언니, 왜 그래요?”이서는 책상을 죽도록 누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책상 위의 종이는 진동으로 바닥에 떨어졌다.소희는 당황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문을 열고 사람을 부르려다가 이서한테 불렸다.“문 열지 마!”‘최소한의 존엄성은 좀 지켜 줘.’“이서 언니…….”소희는 눈시울을 붉혔다.“도대체 왜 그래요?”“이리 와서 좀 부축해 줘.”이서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소희는 하는 수 없이 걸어가 이서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이서를 만진 순간, 소희는 이서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차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서가 마침내 자리에 앉자 소희는 울먹이며 물었다.“제…… 제가 의사를 데려올게요, 네?”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몸 안의 경련이 흩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괜찮아, 따뜻한 물 한 잔 따라주면 돼.”소희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랐다.이서가 몇 모금 마시자 창백한 입술색이 드디어 회복되었다.소희는 이서를 보며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사과만 했다.“이서 언니, 죄송해요.”“너랑 상관없어.”이서는 피곤한 듯 고개를 저었다.“나가서 일봐, 나 혼자 좀 진정하게.”소희는 걱정스럽게 이서를 쳐다보았고 이서의 견지하에 마침내 사무실을 떠났다.하지만 소희도 감히 멀리 가지 못하고 이서 사무실 밖의 접대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사무실 안.이서는 한 손을 미간에 대고, 다른 한 손은 심장을 필사적으로 누르고 있었다.통증이 가시지 않았는데 갑자기 달려드는 통증은 하마터면 이서의 목숨을 반쯤 앗아
하지환은 핸드폰에 구멍을 뚫으려는 듯 깊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맞은편에 서 있던 이천은 자신의 몸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천은 숨을 죽이고 미친 듯이 존재감을 낮추었다.갑자기 펑- 하고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이천은 깜짝 놀라 지환을 쳐다보았는데 갑자기 숨까지 빼앗겼다.눈앞의 지환은 마치 격노한 짐승같이 시뻘건 눈은 몹시 무서워 보였고 눈 속에는 공포의 빛이 반짝였다.이천은 침을 꿀꺽 삼키고, 또 악착같이 팔을 꼬집고 나서야 마침내 억지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희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현재 이 줄리는…… 오크 극장의 배우이고, 곧 H 국에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그래서? 그게 다 무슨 쓸모가 있어?!”지환은 이천을 향해 소리쳤다. 이천은 이렇게 통제력을 잃은 지환을 처음 보았다.“적어도 줄리를…… 찾았으니 그 신비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지환은 두 손으로 책상을 받치고 어두운 눈빛으로 이천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지화의 이런 모습은 더욱 무서웠다. 이천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싶어 했다.잠시 후 고요한 사무실에서 지환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꺼져!”사면을 받은 이천은 서둘러 사무실을 떠났다.문이 닫히는 순간 지환은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환은 허겁지겁 일어서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이 순간 지환의 하늘은 무너졌다.이서는 분명 자신에게 실망이 극에 달해서 이혼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지환이 바닥에 주저앉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지환은 들었지만 또 듣지 못한 것처럼 온 사람이 마치 혼비백산한 것 같았다.주먹 한 대가 날아오고 나서야 솟구치는 뜨거운 피가 비로소 지환은 찾아온 사람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이상언이었다.상언은 무쇠가 강철로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지환의 옷깃을 쥐었다.“하지환, 네가 지금 도대체 어떤 꼴인지 봐봐.”상언은 지환을 전신거울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지환
하지환은 맞아서 몸이 휘청거렸지만 곧 소파에 기대어 자리를 잡았다.지환은 이상언을 보고 있었다.상언의 말은 안개를 가르는 햇살처럼 귀가 번쩍 뜨였다.그렇다, 지환도 고통스러운데, 이서는 어찌 또 고통스럽지 않겠는가?지금 지환이 해야 할 것은 여기서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서가 이혼하려는 이유를 빨리 찾는 것이다.지환은 숨을 여러 번 깊게 들이마시고 내선 전화를 걸었다.“들어와.”30초 후, 이천은 전전긍긍하며 들어섰고, 지환의 부어오른 얼굴과 코밑의 피를 보고 겁에 질려 상언을 바라보았다.“이서가 왜 나랑 이혼하려는지 당장 알아봐.”지환의 목소리는 낮고 무서웠고 손목의 시계를 보며 말했다.“두 시간 줄게. 두 시간 안에 너의 보고를 반드시 들어야겠어.”“네?”“네가 어떤 방법을 쓰든 난 상관 없으니까 무릎을 꿇고 이서한테 빌어서라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 와.”이천은 상언을 바라보았다.상언은 지환이 냉정해진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빛도 더 이상 긴장하지 않고, 예전의 우아하고 유순함으로 돌아갔다.“날 봐서 뭐해, 어서 가지 않고.”“알…… 알겠습니다.”이천은 난감해하며 말했다.사무실을 나서자 이천은 옥상에서 뛰어내리고만 싶어졌다.대표님은 자신에게 두 시간밖에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모님이 대표님과 이혼하려고 하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겠는가.하지만 오늘의 상황을 봤을 때 만약 자신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면, 아마 앞으로의 생활은 모두 지옥 모드가 될 것이다.요즘 줄곧 전전긍긍하게 지낸 것을 생각을 하니 이천은 부들부들 떨었다.이천이 망설이며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사이 뒤에서 상언의 목소리가 들렸다.“날 좀 기다려.”이천은 고개를 돌려 상언을 보고 우는 것보다 더 못생긴 표정을 지었다.“이 선생님.”상언은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웃으며 이천을 보았다.“그러지 마. 마치 장례를 치르려는 것 같아.”말이 떨어지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상언이 들어갔다. 이천은 자료를 안고 상언을 따라 들어갔다
하지환은 윤이서가 결코 무고한 이를 난처하게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일부러 이천을 오게 한 것일 것이다.어차피 지환이 누구를 오게 하든 그들이 이혼한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신념을 확고히 하고서야 이서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들어오라 해.”“네.”서나나는 심소희가 나간 후 이서에게 물었다.“이서 언니, 제가 자리를 피할까요?”이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먼저 옆의 접대실에 가서 나를 기다려. 아직 내가 인계해야 할 일이 좀 있어. 너 급해?”“안 급해요.”나나는 웃으며 말했다.“이 배역을 위해 이미 모든 일을 미뤘어요.”“여은아가 잔소리 많이 했겠지?”나나는 혀를 내밀었고 은아가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라는 사실을 이서에게 말하지 않았다.나나가 바다의 딸의 여주인공을 경쟁하겠다고 했을 때 은아는 이미 불만을 품었다. 그 후에 나나가 심지어 모든 일을 미뤘다는 것을 알고 더욱 화가 나서 며칠 동안 욕했다.나나는 은아가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나가 불가능한 역할을 위해 이렇게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나나는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나나도 이 배역이 십중팔구로 이서정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한 번 싸우지 않으면 나중에 틀림없이 후회할 것이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은아 언니의 잔소리에 익숙해졌어요.”말이 끝나자 나나는 문을 열었다.“저 먼저 가 있을게요.”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나나가 문을 닫자 이서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몸 안에서 다시 시작된 전율을 억눌렀다.한참 후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서는 물컵을 꼭 쥐고 말했다.“들어와.”소희는 문을 열고 말했다.“이서 언니, 이 선생님께서 오셨어요.”이서는 차갑게 이천을 바라보며 말했다.“먼저 나가 있어.”“네.”소희는 문을 열고 떠났다.이서의 맞은편에 선 이천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사모님…….”“이 비서님, 아니, YS 그룹 대표이사
심소희는 어리둥절해하며 들어왔다.“이 선생님.”이천은 허둥지둥 윤이서를 쳐다보았지만, 도저히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몰라서 얼버무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사모님, 틀림없이 뭔가 오해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세요.”말이 끝나자 이천은 급히 떠났고 가능한 한 빨리 이 일을 하지환에게 알리려 했다.처음에 이천은 하 어르신이 의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환이 결혼한 자료를 제출했었다. 하지만 자료 목록에는 지환의 아내가 누구인지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분명 지금 사모님이 알게 된 그 신비한 사람과 관계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이천이 떠나자 이서의 등줄기를 받치고 있던 줄이 순식간에 끊어졌다. 이서는 의자에 주저앉았고 얼굴은 썰물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소희는 이서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걱정하며 말했다.“이서 언니…….”그러자 이서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나나 보고 들어오라 해.”“이서 언니.”“난 괜찮아, 내일이 바다의 딸 여주인공 캐스팅하는 날이야.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 그러니 빨리 나나를 들어오라 해.”이 말은 소희에게 한 말이자 이서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이서는 지금 모든 정력을 나나에게 쏟아부어 반드시 나나를 도와 여주인공이라는 배역을 차지해야 했다.이서는 하씨 가문, 특히 지환에게 모든 사람이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 임의로 그들이 놀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소희는 어쩔 수 없이 나나를 불렀다.……YS 그룹 화영 지사.이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문도 두드리는 것을 잊고 대표실 문을 직접 열었다.“대표님, 큰일 났어요.”이천은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사모님께서는 이미 대표님 은철 도련님의 둘째 삼촌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지환의 얼굴빛은 순간 물처럼 어두워졌고, 손잡이를 잡은 손등에는 핏줄이 벼락같이 뛰었다.“뭐라고?!”“제가 방금 사모님을 찾아갔는데 사모님께서 저에게 대표님께서 외국에 계신 아내는 이서정이고 이서정은 은철 도련님의 아내라고
수요일에 카운티 정부에서 만나자는 그 문자를 생각하니 하지환은 더욱 짜증이 났다.다행히 이천 쪽에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어서, 이서정의 통신 장비가 확실히 윤이서와 지환이 ML 국에 있을 때 현지에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는 것을 곧 알아냈다.그리고 시간대도 잘 맞아떨어졌다. 즉, 십중팔구 서정이었다.이 증거를 받고 이천은 즉시 지환을 찾아갔다.“대표님, 보세요.”지환은 증거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이서정한테 전화해.”이천은 상황을 보고 바삐 말했다.“대표님, 먼저 진정하세요. 만약 대표님께서 이서정 아가씨께 전화를 하신다면 어르신 쪽에서 알게 될 것이고 곧 실마리를 따라 대표님과 사모님의 관계를 알아낼 것입니다.”“그때가 되면 어르신께서는 분명 사모님께 알리실 것이고…… 대표님의 신분은 틀림없이 드러날 것입니다.”이천은 지환이 서정에게 전화를 걸어 무엇을 하려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서정이 계약을 어기고 고의로 그들의 관계를 사모님께 알려준 것은 물론 가증스럽다. 하지만 경솔하게 행동하면 아마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지환은 검지로 미친 듯이 뛰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지환은 이서를 필사적으로 생각해야만 천천히 냉정해질 수 있었다.냉정해진 후, 혼돈의 뇌가 마침내 많이 명확해졌다. 지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이서가 조만간 어떤 공공장소에 나타날지 알아봐.”이 일은 너무 간단해서 이천은 문자를 보내자마자 답장을 받았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내일 나나 아가씨와 함께 연극 캐스팅에 참석하는 것 외에는 모두 회사에 계십니다. 다른 초청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으십니다.”지환은 잠시 망설이고 말했다.“알았어, 나가봐.”이천은 머뭇거리며 말했다.“네.”이천이 나간 후 지환은 의자에서 일어나 서성거리며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아래층의 차들이 빽빽이 다니는 것을 내려다보며 처음으로 재미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지환은 산꼭대기에 서 있는 것보다 이서의 곁에 서고 싶었다.그래서!지환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이
윤이서는 이튿날 아침 일찍 서나나와 함께 캐스팅 현장으로 향했다. 캐스팅 장소는 국제연극센터였다.나나의 매니저인 여은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나는 꽤 난감해하며 말했다.“이서 언니, 은아 언니에게 전화할게요.”“좋아.”이서는 은아가 왜 나타나지 않았는지 대충 짐작했다. 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나를 멀리 바라보았다.이서와 거리가 좀 떨어진 후에야 나나는 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은아 언니, 왜 아직 안 오셨어요? 캐스팅이 곧 시작될 거예요.”“내가 가든 안 가든 모두 똑같잖아. 어차피 마지막에 이 배역은 이서정의 것인데.”잠시 멈추자 은아는 계속 말했다.“나나야, 날 믿어. 지금 당장 돌아와. 그 드라마 아직 할 수 있어.”“은아 언니…….”“자.”은아는 나나의 말을 끊었다.“내가 몇 년 동안 너를 데리고 있었으니, 너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너는 벽에 부딪히지 않고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을 난 알아. 그러니 나도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니 조금만 말할게.”“만약 이번에 네가 실패한다면, 앞으로 너의 모든 일은 반드시 나의 말을 들어야 해.”나나는 눈살을 찌푸렸다.“은아 언니…….”“봐봐, 너 자신조차도 분명히 이 배역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 나는 네가 왜 이 일로 소란을 피우려 하는건지 정말 모르겠어.”“아니에요, 은아 언니…….”“아무 말도 하지 마.”은아는 나나의 말을 끊었다.“이미 결정했어. 배역을 얻지 못하면 앞으로 모든 일은 내가 배정할 거야.”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아는 한숨을 쉬고 전화를 끊었다.이서는 나나가 적막하게 핸드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이서는 말없이 시선을 돌리자 들어오는 이서정과 우연히 부딪쳤다.그 메스꺼움이 또 밀려왔다. 이서는 주먹을 꽉 쥐고서야 토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서정도 이서를 보았다. 이서가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서 있는 것을 보고, 무명의 불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그 사람들이 잡힌 후에야 서정은
“제가 오늘 밤에 상대할 사람이 하 대표님이었군요!”그 사람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천이 지환의 앞에 서서 말했다.“괴력왕, 당신이 어떻게 하은철 아버지의 조수가 된 거죠?”눈앞의 괴력왕은 힘으로 대동맥을 끊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타고난 힘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천은 물론이며 지금까지 괴력왕과 맞붙은 적 없는 어둠의 세력 조직원까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괴력왕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사람들은 모두 그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랐다.“하하, 말하자면 긴 이야기입니다만, 기꺼이 말씀드리죠.”키가 큰 괴력왕은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지환을 볼 수 있었다.“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제 딸이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그걸 알게 된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께서 훌륭한 의사를 찾아 제 딸을 치료해 주신 거죠.”“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약속했습니다.”“다만, 첫 번째 임무가 하 대표님을 상대하는 건 줄은 몰랐죠.”지환의 명성은 외국에서도 대단했다.괴력왕처럼 은둔하는 사람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어쩐지, 상대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더라니.’‘상대를 알면 후회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지?’지환은 괴력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괴력왕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게다가 지환은 의리 있는 괴력왕의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그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으로 괴력왕을 끌어들이려 했었다.하지만 싸우기 싫어하는 괴력왕의 성격 때문에 그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고, 지환도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가 전쟁이 될 줄은 몰랐다. “각자의 보스나 신경 쓰도록 하죠. 시작합시다!” 지환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괴력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 대표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저쪽에 있던 하도훈은 이미 입구까지 걸어갔다.그의 곁에는 수십 명이 모였는데, 그들의 머리에는 흰색 천 조각이 씌워져 있었다. 지환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그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지환은 꿈쩍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형님, 오랜만입니다!”하도훈의 얼굴에서는 커다란 슬픔이 묻어났다. “왔구나!”지환이 말했다.“은철이 시신을 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경직된 몸을 심하게 떨었다.“지환아, 너 정말 독하구나. 한 여자를 위해서 조카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 아이를 해칠 때, 네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니?” “예전에 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어. 하지만 은철이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고, 너라는 작은 아버지를 꽤 친근하게 대했다지.”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고향의 특산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그런 조카를 이런 식으로 대한 거냐?”“너는 처음엔 여자를, 이제는 목숨을 앗아간 거야.”“은철이 녀석이 본인의 이런 말로를 알았더라면, 애초에 너를 가까이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겠구나.”하도훈이 말했다.지환이 차갑게 하도훈을 바라보았다.“맞습니다. 우린 가족이고, 확실히 아주 가까웠죠.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철이가 이서를 어떻게 대했었죠?” “이서는 은철이의 작은어머니였습니다. 그때 은철이는 이서가 본인의 가족, 즉 친척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하도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래, 보아하니 너는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지환아, 너희가 목숨을 건 계약을 했다는 거, 설령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네가 오늘 은철이를 보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내 허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형님이 허락하면 어떻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내 이천이 전화를 걸어왔다. [대표님, 모두 안배했습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그래.”전화를 끊은 지환은 외투를 들고 문을 나왔는데, 맞은편 방문이 한 눈에 들어왔다.그는 넋을 잃은 채 그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이천이 한 말이 맴돌았다.‘덫일 수도 있다고...?’‘가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이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면 떠나고 싶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바로 이때,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지환이 피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문 뒤에 서 있는 이서를 묵묵히 바라보았고, 그녀도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외투를 든 것을 본 이서가 물었다.“어디 나가요?”지환은 이서의 눈을 쳐다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오, 그럼 어서 가보세요. 나는 샤워하고 잘게요.”이서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는데, 이는 지환을 크게 안도시켰다. 그가 두 걸음 정도 내디뎠을 때, 뒷문이 다시 열렸고, 이서의 ‘조심해서 다녀와요’라는 한 마디가 복도에 메아리쳤다.고개를 돌린 지환은 텅 빈 복도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는 차갑고 의연한 기색만이 감돌 뿐이었다. 급히 아래층에 도착하자, 이천은 이미 어둠의 세력 조직원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즉시 똑바로 서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지환은 마지막으로 호텔을 힐끗 보고는 출발했다. 병원 입구.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고요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평소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 입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오히려 입구는 활짝 열려 있어, 함정에 빠뜨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천이 물었다.“대표님,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환은 냉정하게 반문했다.“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이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이미 철통같이 포위된 듯했고, 어디로 들어가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문으로
소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서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부하고 싶을 정도로 강해져야만, 그들이 소희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저녁에 식사하던 이서는 지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괴롭다는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더 강해진다는 건 하씨 가문을 넘어서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건 내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에요.” 맞은편에 앉은 지환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 얼굴의 부드러운 곡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얼굴의 미세한 동작까지도 끄집어냈다.“불가능한 일은 없어. 어쩌면 네가 하씨 가문을 넘어설지도 모르지.” “또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거죠? 하씨 가문은 백 년의 기반을 가진 가문이예요. 내가 하씨 가문처럼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꿈속에서 하씨 가문을 이어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와 하씨 가문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 말이다. 바로 이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이천에게서 온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지환이 핸드폰을 든 채 이서를 한 번 보았다. 이서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지환이 그녀가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 “이제 배불러요. 나는 먼저 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볼게요.” 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자, 지환이 수화기 너머의 이천에게 물었다.“확실해?”[확실합니다. 하은철은 확실히 죽었어요. 하지만 하씨 가문의 고택 앞에서 죽었죠.] [하은철은 치타와 마찬가지로 차가 부딪쳐 날아가는 순간에 차에서 뛰어내렸을 겁니다.] [물론, 그때 누군가가 하은철을 도왔기 때문에 하씨 가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던 거겠죠.][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씨 가문 고택
소희가 꽤 충격을 받은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 언니, 농담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이득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우리가 시비를 걸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할 일이지.” 이서가 빙그레 웃었다.“이제 내 말을 믿겠어?” 소희가 말했다.“이서 언니, 언니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제 동생을 잘 모르잖아요. 걔는 어릴 때부터 남들을 골탕 먹이던 애예요. 한 번도 남한테 당한 적이 없는 애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어제 이미 계획을 세워뒀어. 소희 씨가 내 말 대로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소희 씨, 설마 그 이상한 양부모한테서 완전히 벗어날 생각을 안 해본 거야?” 소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확실히 생각해 본 적 있지만, 단지 생각에 불과했어.’ ‘양엄마가 얼마나 끈질기게 집착하는 사람인지 잘 아니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철저히 말살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범법행위이지 않은가.소희는 이서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원치 않았다. “이서 언니,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음에 또 심태윤이 찾아오면,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언니는 걔한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지만, 걔는 언니한테 해를 끼칠 수 있어요.” 이서가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까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서야 알았어. 소희 씨가 심씨 가문에서 겪는 일이 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걸.” “소희 씨, 소희 씨는 날 위해서 심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는 심씨 가문에 있는 소희 씨의 처지를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아직 심 대표님 내외에게 정이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소희 씨의 부모님이잖아. 세 사람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언젠가는 그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나를 몰래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소희는 이서의 말에 고개를
같은 시각.차에서 칭찬받은 소희는 쑥스러워했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하지만 이지숙의 눈에는 소희가 혀로 수많은 유생과 싸운 제갈량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주머니.” 소희가 이지숙이 계속해서 말을 잇기 전에 말했다.“물건을 좀 사러 가고 싶어요. 이따가 이 근처에서 저 좀 내려주세요.” “나도 같이 갈게.”이지숙이 열정적으로 자청했다. 소희는 그런 그녀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저 혼자 가고 싶어요.”이지숙은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쇼핑을 원치 않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많은 일을 겪은 소희가 혼자 걷고 싶은 것이라 여겼다. “이해해, 다음 길목에서 내려줄게.”“소희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가 반드시 너를 보호할 테니까.” “...”소희는 정말이지 걱정이 많았다.‘심씨 가문 사람들의 뇌 회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 “소희야.” 심근영 또한 이지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희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너를 구할 거야.” 소희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그들의 눈동자에는 진심만이 가득했다. 소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심근영 부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떠나자마자, 소희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윤씨 그룹으로 갈게요.” 운전기사는 대답한 후, 곧장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30분 후, 회사에 있던 이서는 소희가 왔다는 것을 듣고는 다소 놀랐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예.”김하늘은 곧장 대표실로 소희를 데려왔다.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자, 소희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이서 언니...” 문이 닫히고, 밀려오는 억울함을 느낀 그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소희
소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녀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6명의 어르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어르신들, 모든 일의 원흉인 제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여섯 명의 어르신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에 앉은 그 어르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그래.” “감사합니다.”“여러분, 여러분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타남과 동시에 하씨 가문과의 협력이 중단되었으니, 저만 내쫓으신다면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진정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우리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심유인이 비꼬듯이 대답했는데, 어조에서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소희가 심유인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저도 여러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기만 하면, 하씨 가문은 자연히 심씨 가문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려 할 테니까요!” ‘소희가 주동적으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할 줄이야!’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희야!”이지숙은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 엄마가 부족해서 너를 고생시키는구나.”소희는 역시 눈시울을 붉히던 심근영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심이에요. 제가 쫓겨나는 걸로 하 사장님의 기분이 풀린다면... 그렇게 할게요.”그러나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조롱으로 들렸다.심근영이 중간에 앉은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어르신, 소희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하 사장의 기분을 풀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하 사장일까요?” “윤 대표는 하 사장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하씨 가문을 건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면, 더욱 궁지에 몰릴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아니야, 나는 정말이지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고 싶지 않아!’ ‘이 사람들은 왜 내
어르신들은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고, 결국 가장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입을 열도록 내버려두었다.“확실히 경솔한 일이긴 해. 허나, 우리가 하씨 가문에게 직접 물을 수는 없으니, 모든 걸 추측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우리는 너희가 밖에서 하는 일을 전부 알고 있었어.”“즉, 이 일은 우리 심씨 가문의 잘못이기도 하단 뜻이지.”“하씨 가문과 협력하기로 약조해 놓고 번복하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말했다.심근영은 이서의 배후에 지환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소희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을 생각하며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간단한 문제였습니다. 하씨 가문과의 협력에서, 심씨 가문은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는 가문이니, 이익이 없으면 협력도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헛소리!”심상규가 말했다.“이번 협력은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거였어. 윤씨 그룹이 몰락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씨 가문과 윤씨 그룹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고! 그렇게 되었다면, 심씨 가문은 소씨 가문을 제치고 H국의 2대 가문이 될 수 있었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네 딸이 돌아오는 것과 맞바꾼 거라고!”여기까지 말한 심상규는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네 딸은 아주 배은망덕한 사람이야!”“윤씨 그룹을 위해서 제 가족들을 협박하다니.” “허, 어릴 때부터 가문 밖에서 자란 사람, 게다가 시골에서 자란 말괄량이가 무슨 식견이 있을까!” “그만하시죠, 작은아버지. 우리가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단한 이유는 소희 때문이 아니라...”심근영이 주먹을 꽉 쥐고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근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고, 그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이서 언니는 아직 형부의 신분을 몰라. 이 시점에서 그 이유를 폭로해버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밖으로 퍼뜨리고 말 거야.’ ‘만약 이렇게 해서 이서 언니가 피해를 본다면,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할
“아주머니, 사람은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에요. 만약 그 어르신들께서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억지로 심씨 가문에 머물 생각이 없어요.” 사실 소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기에 당장이라도 심씨 가문을 떠나고 싶었다. 비록 그녀와 심근영 부부가 혈연관계이긴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떨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심근영 부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심씨 가문은 우호적인 곳이 아니지 않은가. 환영 파티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다니, 계속해서 심씨 가문에 머문다면 또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소희야, 걱정하지 마. 엄마는 절대로 네가 심씨 가문을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만약 어르신들께서 정말 너를 쫓아내려 하신다면, 이 엄마도 너와 함께 떠날 거야.” 이렇게 말한 이지숙이 다시 심근영을 바라보았다.“여보, 나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그분들이 하은철 한 사람 때문에 무리하게 내 딸을 쫓아내려고 한다면, 난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이지숙의 어투에는 확신이 가득하여 농담 같지 않았다. 심근영이 윙윙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소희는 이제 막 돌아왔어. 그런데 무슨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거야? 소희야, 너도 걱정할 거 없다. 네가 이미 돌아온 이상, 다시 떠나게 하지는 않을 테니.” 소희는 그들을 보면서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렸을 때, 그녀가 동생과 함께 넘어지면, 양부모의 눈에는 언제나 심태윤뿐이었다. 그들은 늘 남동생을 먼저 일으켜 세우며 달래 주었고, 한쪽에 방치된 그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설령 소희를 신경 쓴다고 해도, 그저...“혼자 일어날 줄도 모르니?”그 누구도 그녀에게 ‘걱정 마, 우리한테 맡겨’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소희는 또 한 번 그들을 보았고, 그제야 자신의 눈이 이지숙의 눈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달 모양의 둥근 눈, 그것은 공격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매우 곧고, 하늘을 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