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서는 그런 서나나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좋아, 그런데 혹시 팬들이 알아볼까 봐, 괜찮겠어……?”“괜찮아요.”나나는 마스크를 가리키며 말했다.“어두워서 빛만 없으면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이서는 안도하고 나나와 함께 조용히 걸었다.하지환은 바로 뒤에서 그녀들의 뒤를 따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나는 이서에게 몰래 물었다.“이서 언니, 저 사람은 누구예요?”“몰라.”나나는 코웃음을 치며 웃었다.“왜 웃어?”이서가 물었다.“누가 봐도 언니 남편이고, 두 분께서 다투신 것 같은데요?”그 말과 함께 나나는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그리고 두 분이 서로를 사랑하는 게 다 보여요.”이서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역술인으로 전향하려고? 대단한 사랑이라도 했나 봐?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해?”나나가 대답했다.“아직 진정한 사랑은 안 해봤지만, 본적은 있어요.”“저 분을 봐 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언니 뒤를 지키잖아요. 저건 자신보다 언니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여자친구를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나나는 상당히 감정적이었다.이서가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 지환도 마찬가지였다.그는 사이가 나빠져서가 아니라,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모임이나 연회, 심지어 길에서도 언제든지 그녀를 버릴 수 있었다.나나는 이서의 팔을 찔렀다.“이서 언니,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용서하세요. 가끔은 여자도 지고 들어가야죠, 안 그래요?”이서는 아무 말없이 나나를 바라봤다.순간 나나는 표정이 일그러졌다.“혹시…… 심각한 문제예요?”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예전에 한 말 기억나?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다른 여자랑 결혼했어요?”그녀의 말에 재빨리 뒷말을 덧붙인 나나는 충격에 빠진 눈으로 지환을 돌아봤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절대 그런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데, 혹시 설명할 기회는 주셨어요?”이서는 손
“왜 이러세요?”윤이서는 그들이 나쁜 의도로 다가오는 것을 단박에 느꼈고, 손을 등 뒤로 보내 112에 전화를 걸었다.“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이 말을 한 사람은 그 무리의 리더일 것이다. 그는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자신의 손바닥을 두드리며 말했다.“요즘 돈이 딸리지 뭐야. 돈 좀 있어?”이서가 막 입을 열려던 그때, 뒤에 있던 지환이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지환은 그 리더와 머리 하나 차이가 났다.그는 고개를 젖혀야 지환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그러나 고개를 들어 지환과 눈을 마주한 리더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눈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눈빛은 칼날보다 날카로웠고 몸에서 알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겨 보기만해도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하지만 넉넉한 보수와 남자가 한 명 뿐이라는 것을 생각한 리더는 용기를 내어 손에 쥔 막대기를 꽉 쥐었다.“왜, 돈 주기 싫어?”지환은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그의 목을 움켜 잡았다.방심한 리더는 눈을 크게 뜨고 손에 든 막대기로 지환을 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른 불량배들은 벌떼처럼 지환을 향해 달려들었다.싸움이 시작된 것을 본 나나는 이서를 뒤로 보내 보호했고, 두 다리로 달려드는 두세 명의 건장한 남자를 처리했다.이서는 깜짝 놀랐다.‘멋있다!’한편 지환은 훨씬 더 깔끔하게 제압했다.그는 화려한 나나와는 다르게 주먹으로 그들을 세게 내리쳤다.지환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한두 명씩 바닥에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가을 바람이 낙엽을 쓸어가듯, 2~30명이 두 사람에 의해 말끔히 쓸려갔다.이서의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그 순간, 지환의 뒤에서 한 사람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칼이 들려 있었다.이서가 조심하라고 소리칠 겨를도 없이 그 칼이 지환의 등에 꽂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하지환!”이서는 불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칼끝이 지환의 등에 꽂혔다.그는
우연의 일치로 윤이서의 남편도 하씨였다.“고마워.”이서는 그녀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조심히 가고 얼른 들어가, 사람들이 알아볼라.”“네.”서나나는 마지막으로 하지환을 한번 바라본 후 뒤돌아 나섰다.그는 나나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이서가 못 봤지만 나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그녀는 무술을 익혔기에 위험에 직면했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반응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환은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했다.이는 일반적인 무술을 익힌 자라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분명 그는 일부러 이런 행동을 한 것임에 틀림없던 것이다.‘왜 그랬을까……, 이서 언니가 걱정하길 바랐던 걸까?’이 생각에 나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럼 이서 언니랑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목숨까지 바친 거야? 이렇게까지 하는데 누가 하 선생님을 막을 수 있겠어.’이 생각에 나나의 발걸음은 점차 가벼워졌다.이서는 창백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 있는 지환을 바라보았다.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의사는 그가 아직 깨어나지 못한 것은 통증 때문에 투여한 진통제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이서는 그때야 비로소 그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았다.‘왜 이렇게 말랐어…….’예전에는 볼에 살도 보기 좋게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볼이 움푹 들어가 있어 더욱 안쓰럽게 보였다.이서는 괴로움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고, 지환의 손가락이 더욱 가늘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마음이 아파 손을 들어 지환의 손을 잡으려던 순간, 아주 미세하게 지환의 손가락이 움직였다.그녀는 놀란 눈으로 다시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봤지만,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고 깨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이서는 다시 대담하게 손을 뻗어 지환의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만졌다.이서의 손끝이 지환의 살갗을 스치자 익숙한 감촉이 그녀의 심장을 뛰게 했다.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하나를 얻으면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이서가 지환의 손을 잡은 후 그녀는 엄지와 중지로 지환의 손목을 둘렀
“난 괜찮아, 여긴 어떻게 왔어?”윤이서의 질문에 임하나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그녀는 일식집에서 이상언에게 끌려나간 후 한적한 곳으로 갔다.하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치려 했지만, 오히려 상언은 더욱 매섭게 그녀를 나무로 밀어붙였다.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서운 눈으로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마치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았다.하나는 몸이 떨렸지만 상언의 눈을 바라볼 용기는 있었다.“왜요, 강제로 키스라도 할 거예요?”“맞아요!”그 후 상언은 정말로 그녀의 입을 맹렬하게 막았다.처음 하나는 발버둥쳤지만 결국 그녀도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구름 위를 밟는 것처럼 멍해졌다. 점점 온몸에 힘이 빠졌기에 상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마치 해님과 달님처럼 위험에 처한 오누이에게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과 같았다.이를 잡으면 살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썩은 동아줄이 못미덥다고 놓아버리면 바로 호랑이에게 잡아 먹혀 죽는 것이었다.혼미한 상태의 그녀가 그 동아줄을 계속 잡고 있을지 놓을지 고민하던 때, 상언은 그녀를 놓아주었다.그의 눈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고, 상언의 손끝이 하나의 입술을 쓸었다.“내가 많이 그리웠나 봐요.”하나는 짜증이 났다.바로 그때 그녀의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이 틈에 상언의 품에서 빠져나와 일식집으로 돌아가 이서를 찾았다.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이서와 지환이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강현의 말이었다.하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지환이는 괜찮아요?”상언의 상기된 하나의 뺨을 쓸어내리며 자연스레 이서의 시선을 빼앗았다.“괜찮아요,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뿐이에요.”이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상언을 바라봤다.“상언 씨도 지환 씨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겠죠?”상언은 고개를 숙여 지환의 상처를 바라보며 눈을 굴린 다음,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이서를 바라봤다.“바로 깨울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해요.”상언은 고개를 들어 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부탁이
윤이서는 낄낄거렸다.“왜 웃어?”임하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강현 씨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널 비웃는 거야.”하나도 웃으며 대답했다.“이 관계를 잊게 해준 사람이니 어쩔 수 없지,”“잊을 수 없으면 다시 만나 봐.”이서가 대답했다.“모든 사람이 다 네 아버지 같지는 않아. 이 세상에는 한 여자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남자가 있어.”“예를 들어 봐.”이서는 한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거 봐.”하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의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지환 씨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지만…….”그러며 하나는 이서를 바라보며 속삭였다.“이서야, 네 상처에 소금을 뿌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이서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사실 나도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봤거든.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야.”“그래서 답은 나왔어?”이서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하나는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서야, 봐 봐, 사람의 감정이란 과학자들조차 감히 연구하지 못하는 아주 복잡한 거야. 난 단순하게 사는 게 좋아, 다른 사람을 만나면 감정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일은 사실 별거 아닌 게 되는 거야.”이서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관계적인 면에서 그녀와 하나는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하나가 원하는 것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이서가 원하는 것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었다.삶은 정해진 방식이라는 게 없다. 삶의 방식은 옳고 그름이 없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멋진 삶을 살고 있었다.그래서…….“하나야, 네가 지금처럼 살든, 이 선생님을 다시 받아들여 다른 삶을 도전하든, 난 언제나 네 편이야. 하지만…….”이서는 진지한 얼굴로 하나를 바라봤다.“또 강현 씨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난 너랑 친구 안 할 거야.”하나는 크게 웃었고, 웃음과 동시에 이서를 껴안았
어릴 때부터 모든 면에서 약간 열등했던 이상언은 하지환이 처음으로 패배하는 것을 보고 기쁨을 금치 못했다.“불러올 게.”상언은 그 말을 남긴 후, 윤이서와 임하나를 부르러 갔다.지환은 상언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눈을 뜨지 않아도 이서에게 자신이 한 일을 다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환은 자신보다 더 안 좋은 처지에 놓여 있는 상언을 위해 이서와 하나의 앞에서 매우 우스꽝스럽게 깨어났다.지환이 깨어난 것을 본 이서는 걱정하던 마음이 비로소 괜찮아졌다.두 사람 사이의 장벽도 다시 무너졌다.이서는 병상 옆에 서서 물었다.“배고프지 않아요? 뭐라도 좀 먹을래요?”지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서를 빤히 바라봤다.그 눈빛은 맹인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뜨거웠다.이서는 지환이 환자이니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되 뇌이며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반대로 돌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지환이도 일어났으니 우리도 이제 가자.”상언은 지환에게 몰래 감사의 표시를 한 뒤 하나를 끌고 병동을 빠져나왔다.동시에 하나의 몸부림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그러나 그렇게 강렬하지는 않았다.‘사실 하나도 그렇게 싫진 않은가 봐.’이서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들의 소리가 멀어지고 병실이 조용해지자, 문득 이서는 다시 지환과 둘만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서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 빛보다 뜨거운 시야를 이마로 느꼈다.한참이 지나 그녀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몸은 어때요?”“괜찮아.”“그럼…… 간병인을 찾아볼 게요.”지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 건 싫거든.”“그럼 어떻게 밥을 먹고 일어나고 씻겠어요?”지환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서에게로 향했다.이서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거절했다.“전…… 그럴 시간이 없어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거든요.”지금 회사는 그다지 바쁘지 않았지만 그녀는 지환을 간병하고 싶지 않았다.그가 싫은 게 아니라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
‘그런데 생각해보면…….’윤이서의 얼굴은 분홍색으로 물들었다.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안에서 잠든 거야?”이서는 문을 열었고 고개를 들자마자 하지환의 벌어진 옷깃 사이로 보이는 가슴 근육을 보고 볼이 더욱 붉어졌다.“왜 왔어요, 잠시 앉아 있으라고 했잖아요.”“제가 변기에 빠졌다고 생각한 거예요?”이서의 볼이 붉어진 것을 본 지환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물었다.“왜 그래? 뜨거운 물이 안 나와?”“아…… 아니요…….”두 사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고, 지환의 살 냄새가 그녀의 코에 닿자 옛날 생각이 떠올라 그녀는 숨을 멎을 뻔했다.“다시 돌아가서 앉아 계세요, 바로 나갈게요.”지환은 다시 이서를 바라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침대 옆으로 돌아갔다.이서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물동이를 가져와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지환은 이미 옷을 벗고 탄탄한 근육을 드러내고 있었다.이서는 그의 눈을 피해 재빨리 그의 상체를 닦아주었다.곧이어 그녀는 쑥스러워 고개를 떨궜다.지환은 머뭇거리는 이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아직 부끄러워?”이서는 얼굴을 다시 붉혔고, 지환이 도발하는 것을 알고 꿋꿋하게 반박했다.“부끄러운 게 아니라 지환 씨가 당황할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침대 옆에 손을 얹었다.이서는 말을 그렇게 했으니 이를 악물고 지환의 바지를 벗겨 닦을 수밖에 없었다.지환은 언제나처럼 침착하고 담담했다.이서는 차마 고개를 숙일 수 없어 이를 악 물고 창밖을 바라봤다.더더욱 창피했다.정말 장님의 하체를 닦는다면 그렇게 창피하지 않았을 것이다.얕은 지식으로 모든 걸 다 안다고 떵떵거리는 것은 그녀만큼 창피한 일도 아니었다.이서는 말문이 막혀 서둘러 물동이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그녀의 얼굴이 너무 뜨거워서 그 위에 계란후라이를 해도 익을 정도였다.얼굴의 열기를 식힌 후에야 이서는 화장실에서 나왔다.지환은 침대에 앉아 있었고 옷은 여전히 벌어져 있었
이서가 양아치들에게 협박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태우는 걱정되었다.[괜찮은 거예요?]“네, 괜찮아요. 그 사람들은 이미 잡혔어요. 다만 이해가 안되는 점은 이 사람들이 돈을 노리고 일을 벌였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잘 좀 알아봐 주세요. 부탁해요.”구태우는 이해한듯 말했다.[네, 걱정 마세요.]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재차 물었다.[맞다, 요즘 지엽이랑 연락해요?]갑자기 소지엽 얘기를 꺼내자 이서는 잠깐 멍해 있었다.“아니요, 지엽이는 요즘 잘 지내고 있대요?”[요즘 엄청 바쁜가 봐요.]구태우는 웃으며 말했다.[얘기 들어보니 사업에 성공해서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아오려고 한답니다.]이서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황급히 창밖을 바라보았다.“그, 그래요?”[이서 씨.][만약 그 여자가 이서 씨라면 지엽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 건가요?]“저…….”이서는 눈썹을 찡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한숨을 쉬었다.“저라면 아마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삶을 살라고 말했을 거 같아요.”구태우는 멍하니 이서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곧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녀석이 왜 당신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네요.]“네?” 이서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부탁하신 일은 제가 잘 조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구태우는 별 다른 얘기 없이 전화를 끊었다.이서는 핸드폰을 잠시 들고는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는 것을 느꼈다.사실 ML국에서 지엽이 일부러 지환을 가해자로 몰 때 그녀는 이미 대충 눈치를 챘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줄곧 모르쇠로 일관했다.지엽이 외국에서 돌아온 후엔 단지 그녀를 잊기를 바랄 뿐이었다.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은 조금 홀가분해졌다.그녀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그녀를 본 지환이 손짓했다.“왜요?” 이서는 경계하듯 제자리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나 잠 와.”“졸리면 자요, 굳이 나한테 얘기할 필요가…….”“이렇게 옆으로 누워 있으니
“제가 오늘 밤에 상대할 사람이 하 대표님이었군요!”그 사람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천이 지환의 앞에 서서 말했다.“괴력왕, 당신이 어떻게 하은철 아버지의 조수가 된 거죠?”눈앞의 괴력왕은 힘으로 대동맥을 끊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타고난 힘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천은 물론이며 지금까지 괴력왕과 맞붙은 적 없는 어둠의 세력 조직원까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괴력왕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사람들은 모두 그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랐다.“하하, 말하자면 긴 이야기입니다만, 기꺼이 말씀드리죠.”키가 큰 괴력왕은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지환을 볼 수 있었다.“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제 딸이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그걸 알게 된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께서 훌륭한 의사를 찾아 제 딸을 치료해 주신 거죠.”“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약속했습니다.”“다만, 첫 번째 임무가 하 대표님을 상대하는 건 줄은 몰랐죠.”지환의 명성은 외국에서도 대단했다.괴력왕처럼 은둔하는 사람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어쩐지, 상대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더라니.’‘상대를 알면 후회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지?’지환은 괴력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괴력왕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게다가 지환은 의리 있는 괴력왕의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그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으로 괴력왕을 끌어들이려 했었다.하지만 싸우기 싫어하는 괴력왕의 성격 때문에 그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고, 지환도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가 전쟁이 될 줄은 몰랐다. “각자의 보스나 신경 쓰도록 하죠. 시작합시다!” 지환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괴력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 대표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저쪽에 있던 하도훈은 이미 입구까지 걸어갔다.그의 곁에는 수십 명이 모였는데, 그들의 머리에는 흰색 천 조각이 씌워져 있었다. 지환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그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지환은 꿈쩍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형님, 오랜만입니다!”하도훈의 얼굴에서는 커다란 슬픔이 묻어났다. “왔구나!”지환이 말했다.“은철이 시신을 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경직된 몸을 심하게 떨었다.“지환아, 너 정말 독하구나. 한 여자를 위해서 조카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 아이를 해칠 때, 네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니?” “예전에 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어. 하지만 은철이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고, 너라는 작은 아버지를 꽤 친근하게 대했다지.”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고향의 특산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그런 조카를 이런 식으로 대한 거냐?”“너는 처음엔 여자를, 이제는 목숨을 앗아간 거야.”“은철이 녀석이 본인의 이런 말로를 알았더라면, 애초에 너를 가까이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겠구나.”하도훈이 말했다.지환이 차갑게 하도훈을 바라보았다.“맞습니다. 우린 가족이고, 확실히 아주 가까웠죠.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철이가 이서를 어떻게 대했었죠?” “이서는 은철이의 작은어머니였습니다. 그때 은철이는 이서가 본인의 가족, 즉 친척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하도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래, 보아하니 너는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지환아, 너희가 목숨을 건 계약을 했다는 거, 설령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네가 오늘 은철이를 보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내 허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형님이 허락하면 어떻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내 이천이 전화를 걸어왔다. [대표님, 모두 안배했습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그래.”전화를 끊은 지환은 외투를 들고 문을 나왔는데, 맞은편 방문이 한 눈에 들어왔다.그는 넋을 잃은 채 그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이천이 한 말이 맴돌았다.‘덫일 수도 있다고...?’‘가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이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면 떠나고 싶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바로 이때,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지환이 피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문 뒤에 서 있는 이서를 묵묵히 바라보았고, 그녀도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외투를 든 것을 본 이서가 물었다.“어디 나가요?”지환은 이서의 눈을 쳐다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오, 그럼 어서 가보세요. 나는 샤워하고 잘게요.”이서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는데, 이는 지환을 크게 안도시켰다. 그가 두 걸음 정도 내디뎠을 때, 뒷문이 다시 열렸고, 이서의 ‘조심해서 다녀와요’라는 한 마디가 복도에 메아리쳤다.고개를 돌린 지환은 텅 빈 복도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는 차갑고 의연한 기색만이 감돌 뿐이었다. 급히 아래층에 도착하자, 이천은 이미 어둠의 세력 조직원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즉시 똑바로 서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지환은 마지막으로 호텔을 힐끗 보고는 출발했다. 병원 입구.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고요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평소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 입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오히려 입구는 활짝 열려 있어, 함정에 빠뜨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천이 물었다.“대표님,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환은 냉정하게 반문했다.“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이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이미 철통같이 포위된 듯했고, 어디로 들어가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문으로
소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서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부하고 싶을 정도로 강해져야만, 그들이 소희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저녁에 식사하던 이서는 지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괴롭다는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더 강해진다는 건 하씨 가문을 넘어서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건 내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에요.” 맞은편에 앉은 지환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 얼굴의 부드러운 곡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얼굴의 미세한 동작까지도 끄집어냈다.“불가능한 일은 없어. 어쩌면 네가 하씨 가문을 넘어설지도 모르지.” “또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거죠? 하씨 가문은 백 년의 기반을 가진 가문이예요. 내가 하씨 가문처럼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꿈속에서 하씨 가문을 이어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와 하씨 가문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 말이다. 바로 이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이천에게서 온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지환이 핸드폰을 든 채 이서를 한 번 보았다. 이서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지환이 그녀가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 “이제 배불러요. 나는 먼저 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볼게요.” 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자, 지환이 수화기 너머의 이천에게 물었다.“확실해?”[확실합니다. 하은철은 확실히 죽었어요. 하지만 하씨 가문의 고택 앞에서 죽었죠.] [하은철은 치타와 마찬가지로 차가 부딪쳐 날아가는 순간에 차에서 뛰어내렸을 겁니다.] [물론, 그때 누군가가 하은철을 도왔기 때문에 하씨 가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던 거겠죠.][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씨 가문 고택
소희가 꽤 충격을 받은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 언니, 농담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이득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우리가 시비를 걸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할 일이지.” 이서가 빙그레 웃었다.“이제 내 말을 믿겠어?” 소희가 말했다.“이서 언니, 언니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제 동생을 잘 모르잖아요. 걔는 어릴 때부터 남들을 골탕 먹이던 애예요. 한 번도 남한테 당한 적이 없는 애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어제 이미 계획을 세워뒀어. 소희 씨가 내 말 대로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소희 씨, 설마 그 이상한 양부모한테서 완전히 벗어날 생각을 안 해본 거야?” 소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확실히 생각해 본 적 있지만, 단지 생각에 불과했어.’ ‘양엄마가 얼마나 끈질기게 집착하는 사람인지 잘 아니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철저히 말살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범법행위이지 않은가.소희는 이서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원치 않았다. “이서 언니,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음에 또 심태윤이 찾아오면,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언니는 걔한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지만, 걔는 언니한테 해를 끼칠 수 있어요.” 이서가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까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서야 알았어. 소희 씨가 심씨 가문에서 겪는 일이 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걸.” “소희 씨, 소희 씨는 날 위해서 심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는 심씨 가문에 있는 소희 씨의 처지를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아직 심 대표님 내외에게 정이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소희 씨의 부모님이잖아. 세 사람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언젠가는 그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나를 몰래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소희는 이서의 말에 고개를
같은 시각.차에서 칭찬받은 소희는 쑥스러워했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하지만 이지숙의 눈에는 소희가 혀로 수많은 유생과 싸운 제갈량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주머니.” 소희가 이지숙이 계속해서 말을 잇기 전에 말했다.“물건을 좀 사러 가고 싶어요. 이따가 이 근처에서 저 좀 내려주세요.” “나도 같이 갈게.”이지숙이 열정적으로 자청했다. 소희는 그런 그녀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저 혼자 가고 싶어요.”이지숙은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쇼핑을 원치 않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많은 일을 겪은 소희가 혼자 걷고 싶은 것이라 여겼다. “이해해, 다음 길목에서 내려줄게.”“소희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가 반드시 너를 보호할 테니까.” “...”소희는 정말이지 걱정이 많았다.‘심씨 가문 사람들의 뇌 회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 “소희야.” 심근영 또한 이지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희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너를 구할 거야.” 소희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그들의 눈동자에는 진심만이 가득했다. 소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심근영 부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떠나자마자, 소희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윤씨 그룹으로 갈게요.” 운전기사는 대답한 후, 곧장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30분 후, 회사에 있던 이서는 소희가 왔다는 것을 듣고는 다소 놀랐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예.”김하늘은 곧장 대표실로 소희를 데려왔다.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자, 소희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이서 언니...” 문이 닫히고, 밀려오는 억울함을 느낀 그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소희
소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녀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6명의 어르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어르신들, 모든 일의 원흉인 제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여섯 명의 어르신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에 앉은 그 어르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그래.” “감사합니다.”“여러분, 여러분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타남과 동시에 하씨 가문과의 협력이 중단되었으니, 저만 내쫓으신다면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진정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우리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심유인이 비꼬듯이 대답했는데, 어조에서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소희가 심유인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저도 여러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기만 하면, 하씨 가문은 자연히 심씨 가문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려 할 테니까요!” ‘소희가 주동적으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할 줄이야!’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희야!”이지숙은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 엄마가 부족해서 너를 고생시키는구나.”소희는 역시 눈시울을 붉히던 심근영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심이에요. 제가 쫓겨나는 걸로 하 사장님의 기분이 풀린다면... 그렇게 할게요.”그러나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조롱으로 들렸다.심근영이 중간에 앉은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어르신, 소희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하 사장의 기분을 풀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하 사장일까요?” “윤 대표는 하 사장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하씨 가문을 건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면, 더욱 궁지에 몰릴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아니야, 나는 정말이지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고 싶지 않아!’ ‘이 사람들은 왜 내
어르신들은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고, 결국 가장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입을 열도록 내버려두었다.“확실히 경솔한 일이긴 해. 허나, 우리가 하씨 가문에게 직접 물을 수는 없으니, 모든 걸 추측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우리는 너희가 밖에서 하는 일을 전부 알고 있었어.”“즉, 이 일은 우리 심씨 가문의 잘못이기도 하단 뜻이지.”“하씨 가문과 협력하기로 약조해 놓고 번복하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말했다.심근영은 이서의 배후에 지환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소희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을 생각하며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간단한 문제였습니다. 하씨 가문과의 협력에서, 심씨 가문은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는 가문이니, 이익이 없으면 협력도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헛소리!”심상규가 말했다.“이번 협력은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거였어. 윤씨 그룹이 몰락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씨 가문과 윤씨 그룹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고! 그렇게 되었다면, 심씨 가문은 소씨 가문을 제치고 H국의 2대 가문이 될 수 있었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네 딸이 돌아오는 것과 맞바꾼 거라고!”여기까지 말한 심상규는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네 딸은 아주 배은망덕한 사람이야!”“윤씨 그룹을 위해서 제 가족들을 협박하다니.” “허, 어릴 때부터 가문 밖에서 자란 사람, 게다가 시골에서 자란 말괄량이가 무슨 식견이 있을까!” “그만하시죠, 작은아버지. 우리가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단한 이유는 소희 때문이 아니라...”심근영이 주먹을 꽉 쥐고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근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고, 그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이서 언니는 아직 형부의 신분을 몰라. 이 시점에서 그 이유를 폭로해버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밖으로 퍼뜨리고 말 거야.’ ‘만약 이렇게 해서 이서 언니가 피해를 본다면,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할
“아주머니, 사람은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에요. 만약 그 어르신들께서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억지로 심씨 가문에 머물 생각이 없어요.” 사실 소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기에 당장이라도 심씨 가문을 떠나고 싶었다. 비록 그녀와 심근영 부부가 혈연관계이긴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떨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심근영 부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심씨 가문은 우호적인 곳이 아니지 않은가. 환영 파티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다니, 계속해서 심씨 가문에 머문다면 또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소희야, 걱정하지 마. 엄마는 절대로 네가 심씨 가문을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만약 어르신들께서 정말 너를 쫓아내려 하신다면, 이 엄마도 너와 함께 떠날 거야.” 이렇게 말한 이지숙이 다시 심근영을 바라보았다.“여보, 나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그분들이 하은철 한 사람 때문에 무리하게 내 딸을 쫓아내려고 한다면, 난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이지숙의 어투에는 확신이 가득하여 농담 같지 않았다. 심근영이 윙윙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소희는 이제 막 돌아왔어. 그런데 무슨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거야? 소희야, 너도 걱정할 거 없다. 네가 이미 돌아온 이상, 다시 떠나게 하지는 않을 테니.” 소희는 그들을 보면서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렸을 때, 그녀가 동생과 함께 넘어지면, 양부모의 눈에는 언제나 심태윤뿐이었다. 그들은 늘 남동생을 먼저 일으켜 세우며 달래 주었고, 한쪽에 방치된 그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설령 소희를 신경 쓴다고 해도, 그저...“혼자 일어날 줄도 모르니?”그 누구도 그녀에게 ‘걱정 마, 우리한테 맡겨’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소희는 또 한 번 그들을 보았고, 그제야 자신의 눈이 이지숙의 눈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달 모양의 둥근 눈, 그것은 공격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매우 곧고, 하늘을 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