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환을 발견한 윤이서는 즉시 표정을 굳혔다.이전과는 상반되는 그녀의 태도에 쑥맥인 임현태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두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심소희가 처음 하지환을 만났을 때, 현태가 먼저 다가가 물건을 들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눈앞에 잇는 사람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이서의 남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미친!!’‘너무 잘생겼잖아!’소희는 연예인을 좋아한 적이 없어서 어린 소녀들이 연예인을 보며 설레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순간, 그녀는 단박에 이해했다.외모지상주의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었다.“언니, 이서 언니! 언니 남편, 진짜 잘생겼네요!”소희는 이서의 소매를 잡았고, 이서와 지환 사이의 다툼을 잊은 채 말했다.이서는 흥분한 소희의 모습을 보고 죄책감을 덜었다.실제로 지환을 보면 소희가 흥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지환의 외모는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었다.네 사람은 함께 이서의 집으로 들어갔다.짐을 내려 놓은 현태는 지환이 근사한 저녁 식사를 준비할 예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선생님, 저희…… 돌아갈까요?”지환은 고개를 들어 현태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현태는 부엌 문 앞에 서서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속으로만 외칠 뿐이었다.‘가지 말라고 해, 같이 먹자고 해!’지환은 당연히 그의 속마음을 들을 수 없었다.혹은 지환도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오늘 저녁은 그들이 싸운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저녁 식사로, 식재료를 구입하는 데에만 반나절이 걸렸다.이서가 사람을 데려온 것을 본 지환은 마음이 우울했다.이서가 그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본 그는 질투도 나고 화도 났다.그녀가 진심으로 웃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었다.그들을 다시 돌려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아래층에서부터 고민했던 문제였다.결국 지환은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그는 이서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혹여 그것이 지환을 향한 것이 아니더라도.“사모님께서 초대했는데,
심소희는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윤이서를 바라봤다.“이서 언니, 지금 농담하는 거죠? 이렇게 잘생기고 하씨 그룹의 중상층인데, 이런 남자가 결혼 시장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모르는 거예요?”“몰랐어.”이서가 대답했다.소희의 설명으로 이서는 하지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가 지환을 늘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겨왔던 이유는 많은 세가의 도련님들과 여러 세대에 걸쳐 부를 축적해 온 부유한 N세대에 비교했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하면 지환은 확실히 우위가 없었다.“게다가 여자들은 남자 능력만 보는 게 아니라 외모도 봐요. 남편 분 외모로는 아무리 빈털터리라도 돈을 가져다 받칠 걸요?”“?”이서는 의아했다.“이서 언니, 연예계에 관심 없으시죠? 요즘 별로 잘생기지 않은 연예인도 부잣집 사모님이랑 만나서 떵떵거리며 산다고요!”이서가 남편의 소중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자, 소희는 계속해서 설명을 덧붙였다.임현태가 돌아온 후, 이서는 지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닌 그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남편감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다.그런 거라면 줄리가 왜 일부러 지환의 결혼 여부를 확인하도록 유도했는지 이해가 됐다.의문의 사람의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됐다.그 당시 나연이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은 아마 지환을 가지지 못해 의도적으로 그들의 사이를 망치려는 사람이었을 것이다.하지만…….이서는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지환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린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소희에게 리모컨을 건넸다.“시작하면 불러.”“네.”소희는 대화가 끝난 후, 부엌을 향해 걸어가는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녀는 계속해서 그녀의 동태를 살피고 싶었지만 현태의 거대한 몸에 가려 볼 수 없었다.그리고 현태의 얼굴은 로또라도 맞은 마냥 기쁨이 가득했다.그로 인해 소희는 현태가 지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더욱 의심하게 됐다.‘아니, 내 첫사랑 상대가 동성애자였다고?’소희는 마음 속으로 다양한 부처님께 기도했다.신녀는 평생에 걸쳐 선한 일을 하고 덕을
“정말 이해가 안 돼요. 왜 기혼으로 적혔는지 설명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바로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윤이서가 고개를 돌리자 장바구니를 들고장바구니를 든 채 입을 뻐금거리며 뭐라 말하는 임현태가 보였다.유리문은 방음 효과가 매우 좋았다.이서는 문을 열었다.“아가씨.”현태가 말했다.“소희가 웹드라마가 시작했다고 전해달랍니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으로 하지환을 본 뒤 부엌을 나섰다.거실로 돌아온 이서의 머릿속은 지환에게 물어본 질문만 맴돌았고, 웹드라마 내용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심소희가 말했다.“이서 언니, 웹드라마를 보니까 언니가 왜 서나나가 반드시 뜰 거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아요. 방금 서나나가 보인 연기 실력으로는 이서정을 가볍게 이기고도 남아요!”이서는 멍하니 대답했다.“그렇구나.”“이서정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 하씨 그룹의 둘째 삼촌이 이서정을 어떻게 봤으면 서로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이서 언니, 그 분이랑 친하지 않아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둘째 삼촌한테 이서정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세요.”“확실히 보는 눈이 없네…….”사실 이서는 소희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한편 저녁을 준비하던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는 서나나가 더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서 언니, 기회가 되면 서나나를 둘째 삼촌한테 소개해 주면 안 돼요?”“아…….”이서는 드디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둘째 삼촌.’그녀는 방금 소희가 둘째 삼촌을 언급한 걸 들은 것 같았다.소희가 말했다.“이거 봐요, 엄청 에너지가 넘치죠? 둘째 삼촌은 전략적인 사업가이기도 하니까 두 사람이 정말 잘 어울릴 거예요.”“별로 안 좋아할 거예요.”지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이서와 소희는 동시에 그를 올려다보았다.소희는 그의 몸에서 퍼지는 강한 아우리에 겁을 먹고 침을 삼키며 말을 더듬었다.“왜,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서나나 정도면 예쁘잖아요.”“안 좋아해요.”“그럼 그 분은 뭘 좋
한편, 윤수정과 이서정의 생방송은 성공적이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은철과 둘째 삼촌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서정이 은철의 제수씨라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서정은 그동안 은철과 함께 나타났고, 오랫동안 은철의 여자친구로 알려져 왔다.두 사람은 함께 생방송에 등장해 자연스레 대중을 들끓게 했다.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와……, 정말 꿈 같은 일이야. 이게 바로 조카 며느리랑 고모의 케미인건가?][윤수정이랑 하은철이 결혼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아.][정말 부러워, 너무 알콩달콩하잖아.]“…….”점점 늘어나는 시청자를 보며 수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그녀가 원하던 반응이었다.그녀는 하은철이라는 이름만 있으면 꾸준히 사람이 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대중은 하씨 집안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뭐가 됐든, 화양의 최고 세가이니 말이다.댓글 속도가 빨라질수록 점점 더 많은 옷이 팔렸다.그리고 서정은 다른 쇼호스트처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그저 사람들은 모델인 서정과 39900원에서 79900원 사이인 신선한 가격에 한두 벌씩 구매했다.3시간 만에 총 판매량이 10만 개를 돌파했다.이는 지금까지의 블랙프라이데이의 판매량을 뛰어넘는 신기록이었다.그것도 아주 수월하게 판매가 되었다.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이렇게 좋은 업적은 저절로 입소문을 탔다.30분도 되지 않아 ‘윤수정 대표’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오늘 밤의 실적은 그녀가 자랑하기 좋은 증거가 되었다.결국 인터넷은 빠르게 잊혀지기 일수였다.하지만 여러 주요 언론 매체에서 고용된 작가가 보도하자마자 수정은 인터넷에서 가장 닮고 싶은 대표가 되었다.[와, 정말 대박이야. 윤이서한테 회사를 빼앗겼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룬거잖아.][이건 배워야 해. 글을 읽는 내내 의지가 불타올라. 윤수정이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성공해 마땅한 사람이야!][어쩐지 이서정이 윤이서 회사가 아니라 새로 막 개업한 하윤 회사
다음날 윤이서는 또 자신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는 것을 확인했다.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서나나의 웹드라마 조회수만 확인했다.“지금까지 현재 누적 조회수는 500만 회도 넘지 못했습니다.”회의실에 있던 홍보부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테이블을 두드렸다.“대표님, 웹드라마는 더 이상 진전이 없어 보입니다.”이서는 차분했다.마케팅 부장은 이 틈을 타 물었다.“대표님, 전략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모델의 웹드라마가 사람들의 알고리듬을 타기만을 기다리는 건 너무 모험적입니다.”이서는 펜을 손에 쥔 채 침묵을 지켰다.다른 부서의 부장들도 의견을 제시하려 노력했지만, 기본적으로 마케팅 부장의 의견과 다를 바 없었다.그들은 모두 전략을 다시 짜고 수정의 인기를 활용해 일부의 제품만이라도 판매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이서는 마침내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모두를 쳐다봤다.“지금 제 여론이 엉망이에요. 그런데 지금 제품을 출시하면 소비자들이 구매할 거라고 생각하세요?”그녀는 한마디로 모두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여러분들은 맡은 일만 열심히 해주시면 됩니다.”이서는 이 말을 남긴 채 회의실을 나섰다.몇 걸음 걷기도 전에 회사에서 청첩장을 나눠주는 윤수정과 윤아영을 마주쳤다.이서는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무표정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왔다.심소희는 이서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와 문을 닫고 화를 내며 불평했다.“왜 아무도 두 사람을 막지 않은 거예요?”이서가 대답을 하려던 찰나에 수정과 아영이 들어왔다.“언니, 어젯밤에 내 생방송 봤어? 안 봤으면 후회할 텐데.”이서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안 나가?”“왜이리 화가 났어. 그런 태도로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은 거야?”아영은 옆에서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나가라는 말 못 들었어요?”소희가 말했다.“그쪽은 상관 쓸 바 없고요.”수정은 소희를 밀어내고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은 뒤 차갑게 이서를 내려다봤다.“윤이서, 네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지켜볼게. 말해두겠지만, 이 자리는 내
심소희는 윤이서가 정말 안정적인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재촉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았다.그녀는 견고했다.소희가 그녀와 저녁을 먹으며 서나나의 웹드라마가 흥행하지 않아 그녀의 홍보에 지장을 주어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이서는 차분하게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말했다.많은 사람들은 이서가 미쳤거나 내심 당황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서와 오래 일해온 소희는 그녀가 정말 안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의 평온함은 고인 물웅덩이의 평온함이 아니었다.폭풍 전야와 같았다.안절부절못하던 그녀도 차츰 차분해졌다.이러한 평온함은 3일째 지속되었다.소희는 견디기가 힘들어 3일이 3년과도 같았다.서나나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자, 그녀는 가장 먼저 태블릿을 들고 이서의 사무실로 뛰어갔다.“이서 언니! 진짜 대박 소식이에요. 서나나 웹드라마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어요!”이서는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했지만, 이서는 여전히 평온했다.“언니, 놀랍지 않아요?”소희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내가 분명 뜰 거라고 말했잖아.”“맞아요.”소희는 감격에 겨워 말했다.“제 말은, 어떻게 3일 만에 흥행할지 알았냐는 거예요!”정말 놀라운 일이었다.이번 웹드라마가 흥행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그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언니는 날짜까지 확실하게 맞췄는데, 혹시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 걸까?’소희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이서가 말했다.“왜 이 드라마가 오늘에서야 검색어에 올랐는지 알아?”“음……, 격투씬 때문일까요? 정말 격투씬 때문이에요?”“맞아.”이서는 태블릿을 들어 편집된 영상을 틀었다.“처음 이 장면을 보자마자 반드시 검색어에 오를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 이렇게 화끈한 격투씬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본 적이 없거든, 게다가 이 드라마는 리듬감도 좋고 스토리도 참신해. 처음에는 홍보가 충분히 되지 않았더라도 눈에 띄기만 하면 흥행할 수 있었어. 이것만 넘기면 자연스레 더 많은 관객을 끌
한순간에 비워진 진열대를 본 홍보부장과 마케팅부장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봤다.그들은 10만 건 이상을 파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윤이서에게 공장이 회사의 주문을 중단하고 하윤 회사의 주문을 이어 나갔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내일 발송할 물건이 없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식은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대표님…….”두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이서 앞에 도착했다.“사실…… 내일 발송할 물건이 없습니다…….”이서는 냉랭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계약서 한 부를 내던졌다.“새 공장과 체결한 계약서예요. 내일 상품을 픽업할 수 있죠. 이번 일은 저와 여러분들 사이에 신뢰가 부족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사직서를 내고 떠나세요.”두 사람은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들은 감사하다는 말뿐, 감히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네, 대표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이 말을 끝으로 그들은 떠나려 했지만 이서가 그들을 막았다.“잠시만요.”두 사람은 등골이 서늘해졌다.“대표님, 또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이전 공장한테 지체된 손해배상금을 기한 내에 지불하도록 요청하세요.”두 사람의 얼굴은 한순간에 창백해졌다.이서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네.”사무실을 나온 두 사람은 떨리는 두 다리로 간신히 걸어갔고 한참을 걸은 후에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미쳤어, 대표님은 얕보면 안 되는 상대였어요. 모든 걸 다 꿰뚫고 있잖아요.”“서나나의 웹드라마가 언제 흥행할지도 맞췄는데 공장에서 주문을 중단했다는 걸 모르는 게 이상하죠.”“아직 어린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보니 우리 대표님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어요. 어쩌면 대표님의 손에서 윤씨 그룹의 영광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마케팅 부장은 홍보 부장의 말을 듣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도 영웅이 될 수 있겠죠?”두 사람은 이 대화로 힘이 넘쳐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났다.지금 이순간
처음 윤수정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잠시 후, 그녀는 비로소 양전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정말 교활한 사업가야.’윤이서는 그녀의 계략으로 부정적인 기사에 시달리고 있는 이 시점에 서나나와 이서를 엮으면 서나나가 가지고 있는 좋은 이미지도 모두 와장창 깨질 것이었다.이점을 깨달은 수정은 홍보팀 사람들에게 서나나가 보낸 앰버서더 공식 발표를 실시간 검색어에 올리라고 요청했다.서나나의 공식 발표로 이서정과 비교 대상이 됐었다.하지만 이건 보름 전의 일이었다.이 열광의 물결은 마침내 모두의 기억을 끄집어냈다.수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더 기가 막힌 일을 벌여야 했다.그녀는 서나나의 SNS 게시물을 실검에 올렸을 뿐만 아니라, 홍보부를 시켜 서나나의 뒤에서 이서가 그녀를 밀어주고 있었다는 거짓 정보를 마구 퍼뜨렸다.그리고 이 모든 일은 수정을 상대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이다.그녀는 또한 사람을 고용해 대중들에게 이서가 모든 돈을 서나나에게 쏟아부었기에 옷을 제대로 만들 돈이 전혀 없다는 식으로 인식하게 했다.이로 인해 이서의 옷을 주문했던 고객들이 품질을 걱정하며 반품을 요청했다.반품 요청도 수십 개에서 나중에는 수천 개에 달했다.마케팅 부장은 땀을 닦으며 이서의 앞에 서서 초토화 상태인 컴퓨터를 바라봤다.“대표님, 어떻게 하죠?”모두가 환불을 요청했다.그 다음은 오프라인 매장 주인들이 찾아올 게 뻔했다.이서는 화면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그녀가 수정의 행동에 반응하지 않았던 이유는 수정이 직접적으로 비방하는 대신 똑똑한 방법을 썼기 때문이었다.돋보이는 수법이었다.그녀가 보낸 공식 발표문에는 모두 자신이 어떻게 하윤 회사의 사장이 되었는지 말하고 있었다.하지만 윤씨 집안의 딸로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녀를 억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수정은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고 고용한 사람을 통해 이 내용을 널리 퍼뜨렸다.이서는 아직 나서서 뭐라고 할 수 없었다.만약 그녀가 부인한다면 다른
현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심유인은 즐거워했다.“와, 가난하긴 해도 염치는 있으신가 보네요. 하지만 그게 유일한 장점이겠죠?” 선물은 현태가 스스로 준비한 것이기에, 소희도 현태가 무슨 선물을 샀는지 몰랐다.그래서 현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소희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오빠, 무슨 선물을 샀는데요?”‘소민찬보다 못한 선물이면 큰일인데.’ 소희는 선물로 심유인과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어쨌든 현태가 부모님을 보러 오는 날이니, 선물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현태가 심씨 가문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소희는 현태가 심씨 가문의 권세나 재물 탓에 손가락질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태가 웃으며 말했다.“우선 들어가자. 곧 알게 될 거야.”이지숙도 계속 밖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말했다.“그래요, 무슨 얘기든 들어가서 하자고요.”고개를 끄덕인 소희가 현태의 선물을 들어주려 하자, 현태가 말했다.“괜찮아, 내가 들게.”이 세심한 배려는 곧장 이지숙의 눈에 띄었는데, 여자는 본래 본능적인 행동을 가장 신경 쓰기 마련이지 않은가?현태의 행동을 본 이지숙은 소희가 거짓말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겉으로 보기에는 덩치도 크고 투박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세심한 면이 있네?’이렇게 생각한 이지숙은 현태를 다소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하지만 현태는 이지숙의 반응이 조금 변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이 거실로 들어서자, 이지숙은 고용인에게 심근영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사실, 심근영은 일찍 깨어났기에,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근영이 시간을 질질 끌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2층에서 현태를 관찰했기 때문이었다.고용인의 동정을 들은 심근영이 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곧 나가도록 하지.” 심근영은 고용인이 떠난 후에야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그제야 현태의 생김새를 똑똑히 보았다. 현태는 키가 크
‘게다가 한동안 운전기사로 일한 적도 있지만, 월급은 적지 않았어. 한 달에 2천만원으로 시작했고, 윤 대표님께 일이 생기면 월급도 더 올라갔으니까.’“저분은...”현태는 상대의 신분을 확실히 알아본 후, 어떤 태도로 대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소희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현태를 바라보았다.“정말 몰라서 그래요?”현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알아야 해?” 소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한테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미친 듯이 날뛰던 사람이잖아요!’ ‘대체 왜 심유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내 사촌... 언니예요.”소희는 심유인과 가족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언니도 오늘 남자 친구를 데려왔더군요.” “사촌 언니? 소희 씨의 친언니가 아니고?” 소희가 낮게 불평을 내뱉었다.“아니에요, 우리 언니일 리가 없잖아요!”“그럼 왜 남자 친구를 데리고 소희 씨 집에 온 거야? 부모님이 안 계셔서 그런 거야?” 이 말을 들은 소희는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 특히 현태의 그 어리숙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은 일부러 그런 것처럼 보이게 했다. 심유인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말이면 다인 줄 알아요?!” “제 남자 친구가 틀린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소희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일반적인 경우에는 남자 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하잖아요. 언니처럼 남의 집으로 달려오는 게 아니고요.”“잘 모르는 사람들은 언니한테 부모가 없어서 남의 부모에게 허락받는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유인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결국 이지숙이 나선 후에야 유인의 난처함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어서 들어가자꾸나, 아버지께서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계셔.”“네, 엄마.” 소희는 현태의 팔짱을 끼고 심씨 가문의 저택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걸음도 안 걸었는데, 금세 정신을 차린 심유인이 또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잠깐만, 소희야,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오늘은 네 남자 친구가 삼촌과 숙모를 처
심유인은 한참이 흘러도 소희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갑자기 따분해졌다. “소희야, 네 남자 친구는 언제 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안 오는 게 좀 이상하네. 설마 별장에 처음 오는 거라서 길을 잃은 건 아니겠지?” “이렇게 작은 곳에서 길을 잃으면 운전기사를 할 수 있겠어요?”심유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저 자랑스러운 표정은 뭐야?’‘운전기사인 남자 친구를 두고도 창피하지 않다 이거야?’‘허! 심소희, 순진하긴.’유인이 막 입을 떼려던 찰나, 밖에서 고용인의 성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사, 사모님, 아가씨의 남자 친구분께서 오셨습니다!” ‘드디어 주인공이 나타나는구나!’심유인은 당사자인 소희보다 더 초조해하며 먼저 달려 나갔다.‘운전기사라더니, 몰고 온 차가 고용주 명의인 건 아니겠지?’ 밖으로 나간 유인은 마침내 차에서 내린 현태를 마주했다.그의 옷차림을 본 순간, 유인은 웃음을 터뜨렸다.‘풉, 그냥 티셔츠에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온 거야?’‘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러 오면서도 저런 옷을 입고 오다니, 비웃음을 당하려고 작정한 건가?’ 하지만 눈살을 찌푸린 건 소희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현태의 체면이 깎일까 봐 걱정한 것이 아니라, 현태가 자기 부모님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까 봐 걱정한 것이었다. 소희는 빠르게 현태의 곁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그저께 양복도 사줬는데, 왜 양복이 아닌 캐주얼복을 입고 온 거예요?” 현태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나도 양복을 입고 오려고 했지. 그런데 그 옷은 오래 입으면 불편하더라고. 소희 씨의 부모님을 뵈면서도 온 마음을 옷에 쏟을까 봐 걱정돼서 이렇게 입었어.” “사소한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잖아?”소희가 대답했다.“그래요? 양복을 입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나 봐요. 하지만...”소희가 이지숙을 흘긋 바라보았다. 과연 이지숙의 낯빛은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물론 최선을 다해서 숨기는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현태가 불안해하며 물었다.“어머님
심유인이 그중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숙모, 민찬 씨가 특별히 준비한 팔찌예요. 마음에 드세요?” 이지숙은 흘긋 보더니 눈가에 약간의 웃음기를 띠었다.그 팔찌는 아주 훌륭한 자태를 뽐내는 것으로, 수천만원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유인이의 친엄마도 아니고, 소민찬 씨는 우리 집에 처음 오는 건데도 아주 통 크게 행동하는구나.’하지만 이지숙은 잠시 후에 소희의 남자 친구가 올 것을 떠올리자 약간 걱정이 되었다. 사실, 며칠간 이어진 심근영의 설득에 이지숙은 소희의 상대가 운전기사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그래, 어차피 우리 심씨 가문은 많은 자원과 돈이 있잖아. 그 사람이 성실하기만 하면, 우리 가문의 사위라는 이름으로 상류층은 아니어도 소소한 부자는 될 수 있을 거야.’하지만 지금 소민찬의 씀씀이를 보자, 이지숙은 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상류사회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서로 비교하는 것이었다. 가방이나 옷 같은 큰 것들뿐만 아니라, 가끔은 화장품조차도 비교해야 하니 말이다. 이지숙은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으나, 상류 사회의 분위기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밀리면, 매번 모임 때마다 얘깃거리가 될 텐데...’ 이것이 바로 이지숙이 소희의 상대가 운전기사라는 것에 반감을 가지 이유였다.엄마로서, 자기 딸이 잘못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을 터. “숙모, 이건 삼촌께 드리는 거예요.” 심유인이 꺼내든 두 번째 선물은 시계였다. “롤렉스 시계예요. 최신 모델인데, 삼촌도 분명히 좋아하시겠죠?”이지숙은 심유인이 손에 든 시계를 보자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듯했다. ‘저 시계는... 적어도 1억은 넘을 거야.’ ‘물론 유인이한테는 작은 성의일 뿐이겠지만...’ 이지숙이 불안한 표정으로 소희를 흘긋 보았다. 하지만 소희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심유인의 선물 공세가 고의로 현태를 깎아내리려는 의도인 것을 알아차렸다.‘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소희는 심유인이 오늘도 트집을 잡으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렇지 않고서야 아침 일찍 자신의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올 리가 없지 않은가.소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심유인이 멍청한 건 알겠는데, 남자 친구라는 사람도 멍청한 건가?’‘여기까지 따라와서 같이 소란을 피우다니.’잠시 후, 소희는 소민찬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뭐? 남자 친구가 운전기사라고? 하하, 심씨 가문 아가씨의 남자 친구가 운전기사라니!”“참, 윤 대표와도 사이가 아주 좋으시다면서요?” “역시 끼리끼리군요. 남자 친구마저 똑같은 가난뱅이니까요.”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 소희가 다시 심유인을 바라보았다.“이서 언니의 남편이 YS그룹의 전 대표인 하지환 씨라고 얘기하진 않은 모양이네요.” 순간, 심유인의 표정이 어색하게 구겨졌다.하지만 소민찬은 이 말을 듣자마자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하하’ 큰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웃겨 죽겠네요. 윤 대표의 남편이 하지환 대표님이라고요?” “유인아, 사촌 동생이라는 분이 허영에 가득 찬 분이신가 봐?” 유인은 다급하게 소민찬의 소매를 여러 번 당겼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했다.“윤 대표의 남편이 하 대표님이라면, 저는 물구나무서서 똥을 먹겠어요!” “누가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에 와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 거죠?” 뒤에서부터 이지숙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돼지 멱따는 소리’라는 말에 소희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사석에서는 저런 면이 있으시구나.’ 소민찬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 비록 소씨 가문의 일원이라 해도, 이지숙 앞에서는 힘을 쓸 방도가 없을 것이다.“안녕하십니까.” “소민찬 씨군요. 우리 집에는 어쩐 일로 온 거죠?” 유인이 민찬의 손을 잡고 말했다.“숙모, 민찬 씨는 제 남자 친구잖아요. 숙모께서 제 남자 친구를 한번 살펴봐 주셨으면 해서 데리고 왔어요.” 이지숙이 말했다.“네 남자 친구는 네 어머니께 보여 드려야지. 내가 허락한다고 한들, 소용없지 않겠니?
“그럼 그렇게 할게.”지환은 말을 마치자마자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서는 사무실에 들어가 고이서에 관한 모든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몇 가지 시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안 맞아.’‘하지만 내가 대체품이라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데.’ 즉, 지환이나 구태우의 조사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기다림의 시간은 항상 힘겹지만,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월요일은 피할 수 없었다. 이른 아침, 소희는 초조함 속에서 깨어났다. 고용인들이 그런 소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곧 남자 친구분이 대표님 내외분을 만나실 텐데, 어째 긴장하는 모습이 아가씨가 그분의 부모님을 만나 뵙는 것 같네요?” 놀림당한 소희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조용히 고용인에게 다가가 물었다.“아주머니, 심씨 가문에 몇 년 동안 계셨어요?”고용인이 말했다.“4, 5년은 된 것 같은데, 왜 그러세요?”“그럼 아주머니께서는 저희 부모님께서 제 남자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으세요? 심동, 그러니까 저희 오빠가 장희령을 데려왔을 때 많이 혼났다고 들었어요. 그게 사실인가요?” 고용인은 좌우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가십 매체가 그런 것도 알고 있던가요?”소희는 이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망했어.’‘그 매체에서 했던 말이 다 사실이라는 거잖아!’‘우리 부모님은 자녀의 짝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셔.’‘어쩌면 오늘 현태 오빠를 부른 것도, 혼내기 위한 걸 수도 있어.’ 소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고용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내외분께서 도련님을 혼내신 이유는, 장희령 씨의 출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게다가 그 아가씨는 인품마저 좋지 않았잖아요. 아가씨를 겨냥하지만 않았어도 심씨 가문에 시집올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죠.”고용인의 위로에도 소희는 여전히 걱정이 되었고, 심지어 현태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말라고 하고 싶었
“네, 소희 씨는 그 여자가 성지영의 딸이라고 했어요.”“제 기억이 맞다면, 그 여자는 나랑 동갑이에요. 즉, 그 여자가 정말 성지영의 딸이라면 두 가지 상황이 아니면 말이 안 돼요.” “나한테 쌍둥이 자매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내가 확실히 윤재하의 딸이 아니라는 거죠.”“아마 내 본래 이름도 ‘윤이서’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 이름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을 거고, 여전히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겠죠.”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아주 간단해요. 고이서의 경력을 봤는데, 5살 때 화재를 당해서 피부이식수술과 성형수술을 감행했다고 했거든요.” “만약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면...”“그 여자가 피부 이식 수술과 성형수술을 받은 게 사실이라면, 그 두 가지 수술은 일정한 위험이 따를 뿐만 아니라, 회복 시간도 꽤 많이 필요했을 거예요.”“진정한 윤이서는 하은철과 약혼했는데, 수술 도중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게 알려지면 약혼이 취소되었을 거고, 하씨 가문도 다시는 윤씨 가문을 돕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의 윤씨 가문은 존재할 수 없었겠죠.” “그러니까... 윤재하가 하씨 가문과의 약혼을 지키기 위해 가짜 윤이서, 즉 너를 끌어들였다는 거야?” “네, 나를 외국에 보내서 공부하게 한 것도, 윤씨 가문 사람들이 내가 예전의 윤이서가 아니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거예요.” “게다가 나는 대여섯 살 이전의 기억이 전혀 없어요.”“이건... 절대 우연이 아닐 거예요.” “네 추측이 정확한지 알고 싶어?”지환이 물었다.“그야 당연하죠.” “이천한테 알아보라고 할게.”“아니요, 이미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순간 동작을 멈춘 지환이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소지엽한테?” “아니요, 구태우 씨한테요.” “그 사람은 소지엽의 친구잖아.” “그래서요?” 이서가 지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환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손을 하염없이 떨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그래.”“우리 내기 하나 하자, 어때?
이서는 고이서의 신분을 알아내는 데 급급하여 더는 지체하지 않고 백화점 입구로 걸어갔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던 소희가 말했다.“그 여자가 누구라고 생각해요?”현태가 웃으며 말했다.“머리 쓰는 일은 나한테 묻지 마. 사모님께서 곧 결과를 알려주시겠지.”“아무래도 내 머리는 월요일에 쓰는 게 좋겠어.” 현태의 눈빛이 다소 부끄러워졌다.“월요일에 소희 씨 부모님께 순조롭게 인정받아서 우리가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 고개를 숙인 소희의 뺨도 붉게 달아올랐다.“그렇게 낯간지러운 말은 누가 가르쳐준 거예요?”“가르쳐 주긴, 솔직한... 내 속마음이야.” “청산유수네요.”소희가 현태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이만 가요, 옷 사야죠!”“그래.”현태는 흐뭇하게 대답한 후, 소희가 자신을 끌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한편, 백화점 입구에 도착한 이서와 지환은 순조롭게 택시를 잡았다.두 사람이 차에 오른 후, 지환이 다소 풀어진 표정으로 물었다.“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말해줄 수 있어?”이서가 입술을 오므리며 중얼거렸다.“하지환 씨한테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잖아요.”“뭐가 적절하지 않아?” “우리는 곧 이혼할 거예요. 이런 시점에서 나한테 생긴 일을 하지환 씨한테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환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졌다.앞줄에 앉아 있던 운전기사는 열정적인 노인이었는데,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지도 않은 채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그 말은 틀린 것 같네요.”“두 사람은 이혼한다고 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속담도 있잖아요?” “결혼한 이상, 두 사람은 인연인 거예요.”“나중에는 이혼하고 각자의 갈 길을 간다고 해도, 아직은 이혼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혼하지 않았다면, 그건 두 사람의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인연이 끝나지 않은 거라면, 일이 있을 때 서로 상의하고 도울 수도 있는 거죠.” “나를 보세요, 마누라와의 관계가 다 끝나는 바람에 때로는
화장실을 나선 소희는 급히 매장으로 돌아왔고, 현태에게 물었다.“이서 언니는 어디 있어요?”“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급해 보여?” “어서요, 이서 언니부터 찾아야 해요.”소희는 현태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고, 현태는 우왕좌왕하는 그녀의 모습에 급히 이서를 찾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그들은 매장 입구에 있는 지환을 보았으나, 이서를 찾지는 못했다. 현태는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서 물었다.“대표님, 사모님은 어디 계세요?”굳은 표정의 지환은 여전히 이서가 떠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소희가 현태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여기서 형부랑 있어 주세요. 나는 다른 곳에 가서 이서 언니를 찾아볼게요.” 하지만 이 말이 끝나자마자 돌아오는 이서의 모습이 보였다.소희가 급히 다가가 이서의 팔을 붙잡았다.“이서 언니...” 이서가 맥없이 짧게 대답했다.“응.” “언니, 왜 그래요?”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던 지환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다가와 긴장한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 성지영을 만났는데...” “언니도 성지영을 봤어요?”소희가 놀라며 물었다.“그럼 성지영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봤겠네요?” 이서의 눈이 반짝거렸다.“성지영 옆에 있는 사람을 봤어?”“아니요, 보지는 못했는데 화장실에서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그 여자, 성지영의 딸인 것 같았어요. 언니, 외동딸인 거 아니었어요? 성지영한테 언제 딸이 하나 더 생긴 걸까요?” “딸?”이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렇다니까요.”“아! 두 사람의 말투를 들어보니, 언니가 두 사람을 보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어요.”소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언니, 언니한테 또 다른 자매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던 거예요?” 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않아도 그 사람이 아주 낯익다고 느끼던 참이었어. 잘 생각해 봐, 두 사람이 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소희는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입을 열었다.“그 사람이 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