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대화와 동시에 1층에 도착했다는 엘리베이터 안내 음성이 들렸다.윤재하는 천천히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그는 다시 닫기 버튼을 눌렸다.성지영이 물었다.“여보, 아직도 그 배은망덕한 것에 의지하고 싶어요?”윤재하는 한숨을 쉬었다.“아니,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우리에게 수정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어.”성지영의 분노는 한순간에 기쁨이 되었다.“그렇죠? 맞아요, 수정이도 위층에 새로 회사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서랑 경쟁하기 위해 일부러 이서랑 동일한 테마를 잡고 디자이너 프로모션이나 유명인들의 지지를 받아 이 업계에 최고라고 하더라고요. 전 수정이가 이서를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때쯤이면 어르신의 마음도 바뀔 거예요. 유능한 손자며느리를 누가 마다하겠어요?”아내의 말을 들은 윤재하는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정말이다.사업가들은 모두 힘이 세다.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더욱 인기를 끌 것이었다.그 어르신은 쇼핑몰의 거물이었고, 당연히 강력한 여성에게 끌리는 사람이었다.그들의 대화와 함께 둘은 윤수정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윤재하 부부가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수정은 생각에 잠겼다.모든 것이 그녀의 손바닥 안이었다.“삼촌, 숙모, 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운철 오빠에게 말할 게요.”수정은 윤재하와 서지영에게 찻잔을 건네줬다.이서는 그들을 들여보내고 싶었지만, 그런 속마음을 반대해야 했다.“정말 고마워, 수정아.”수정의 말을 들은 성지영은 다정한 그녀의 말에 눈물을 훔쳤다.“수정아, 숙모가 너무 후회하고 있어, 내 딸이 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수정이 대답했다.“숙모, 제가 어렸을 때 많이 챙겨주셨잖아요. 전 다 기억해요.”“아이고, 참 착하구나. 숙모가 네 엄마만큼 아이들 교육에 능숙했다면, 그런 배은망덕한 것으로 키우지 않았을 텐데.”성지영은 그 어디에도 수정 같은 사람이 없을 것처럼 치켜세우고, 이서를 한바탕 깎아내렸다.윤재하 부부는 양전호가 자료를 들고 들어온 후
심소희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윤이서의 사무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놀라 문으로 걸어갔다.“이서 언니, 왜 이렇게 일찍 돌아오셨어요?”마침 모든 일정을 다 짠 이서는 고개를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모든 부서의 부장들을 회의실로 모시고 와.”“네.”이서가 회사로 돌아온 것을 본 소희는 자신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었다.‘이번에는 화해를 하셨는가 모르겠네.’‘현태 씨가 이서 언니 남편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좋은 사람이랑 언니가 사이가 틀어졌을까?’소희는 의문을 품은 채 각 부서의 부장을 회의실로 불러 회의를 열었다.“이틀 뒤면 브랜드 광고 모델의 새 드라마가 나옵니다.”이서는 차분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다들 준비되셨나요?”“네, 준비됐습니다.”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서가 대답했다.“좋습니다. 다음으로 주의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하나씩 실행해 나갈 예정이니, 문제가 있으면 즉시 저에게 피드백해주시기 바랍니다.”이서는 주의해야 할 사항을 각 부서에 전달했다.한 시간여 만에 회의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이서는 일어서서 사람들을 바라봤다.“다른 의견 있으십니까?”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없습니다.”“일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회의실을 나갔다.다른 부서의 부장들도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마지막으로 걸어가던 홍보부장은 앞서가던 마케팅부장의 옷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여 부장님, 잠시만요.”모든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홍보부장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공장에서 위층 사람들의 일에 집중해 우리의 주문을 중단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알고 계셨습니까? 역시 홍보부장님이라 그런지 소식이 빠르시군요.”“농담할 때가 아닙니다.”홍보 부장이 말했다.“그런데 왜 이 일을 윤 대표님께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걱정되지 않습니까?”“뭐가 걱정이라는 말입니까?”“대표님 말씀 못 들으
윤이서가 공장과의 계약을 체결한 것은 오후 3시였다.그녀는 공장을 나서자마자 재빨리 휴대폰을 켜 확인을 했지만, 여전히 루나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대신 임하나가 남긴 음성 메시지가 있었다.[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빠 진술에 의하면 퇴근길에 갑자기 한 무리가 차에서 내리더니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대.][아빠가 평소에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잖아, 잘못 걸린 거지. 아 웃겨 죽겠어.][이서야, 오늘 같이 저녁 먹을까? 내가 살게.]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하나에게 답장을 보낸 다음 루나의 채팅창에 들어갔다.이서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아직이야?]곧바로 루나에게서 답장이 왔다.[응, 아직.]루나는 메시지와 함께 고민 중인 이모티콘을 보냈다.[참 이상하네, 혼인 여부는 확인했는데 아내가 누구인지는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가 않아.][서류에 안 적혀 있어?][나도 그게 너무 궁금해, 아무 것도 안 적혀 있어.]이전에 루나는 하지환의 혼인관계증명서를 이서에게 보냈지만, 이서는 아내의 이름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이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머뭇거리다가 텍스트를 쳤다.[그럼 혼인관계증명서가 조작된 걸까?]타이핑 후 그녀는 바로 보내지 않았다.한참을 망설이던 이서는 결국 마음을 먹고 보냈다.루나에게서 답장이 왔다.[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이 답장에 이서는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그녀는 입술이 떨렸다.‘맞아.’‘어떻게 이걸 조작할 수 있겠어?’‘만약 조작된 것이었으면 지환 씨가 나한테 말했겠지.’‘지환 씨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이 혼인관계증명서가 진짜라는 뜻이 아닐까?’루나는 답장으로 응답했다.[그래도 친구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 내 친구가 동사무소에서 일하거든,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상관없어. 내 친구도 기다릴 거야.]사실 이서는 더 이상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지환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그가 진실을 꾸며낼 수도 있는 노릇이었기에
“윤이서 씨가 나가실 때 둘째 도련님께서 윤이서 씨가 다시 오면 돈을 받지 말라고 하셨어요.”임하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모호한 눈으로 이서의 팔을 찔렀다.이서는 하나를 곁눈질로 보고 식당 주인을 따라 룸으로 갔다.안내를 끝낸 식당 주인이 떠나자마자 하나는 입을 열었다.“어쩐지 소씨 그룹 둘째 도련님이 널 대하는 태도가 다르긴 했어.”“그 사람은 여자친구가 있지 않아? 이건 다른 문제인가?”하나는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는 이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알았어. 이 얘기는 그만할게. 어쨌든 그 사람은 이미 떠났잖아,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맞아.”차를 한잔 따르자 이서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하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이서야, 지금 지환 씨랑은 어때?”이서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잘 모르겠어,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거든…….”“복잡하다니?”하나가 말했다.“얼마나 복잡하길래?”이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하나는 찻잔을 들어올렸다.“됐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래도 이서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네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았으면 좋겠어. 나를 위해 이혼하지 않았던 우리 엄마처럼 되지 마. 사실 엄마는 모르겠지만, 난 우리 엄마 아빠가 헤어졌으면 했거든, 어쩌면 내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은 진작에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았을 거야.”이서는 안타까운 눈으로 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 일의 진상이 밝혀지고 지환 씨가 양다리를 걸친 게 확인되면,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할 거야.”단지 이서는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혼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뿐이었다.하나가 말했다.“이서야, 내가 네 인생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지만, 난 정말 걱정돼……, 우리가 남자 일로 마음이 약해질까 봐 두려워.”하나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이서는 하나의 옆에 앉아 그녀를 안았다.“알지, 나도 네 마음 다 알아…….”하나는 이서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몸을 들썩였
윤이서는 하지환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임하나랑만 소통했다.하나도 같은 전략을 사용하려 했지만, 아빠를 때린 사람이 이상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정말 상언 씨가 한 일이에요?!”상언은 하나의 표정이 화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이서는 고개를 들어 상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왜 그랬어요?”하나는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상언이 대답했다.“사회의 물을 흐리는 사람들은 처리해야죠.”하나는 콧방귀를 뀌었다.잠시 후, 그녀는 식사를 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럼……, 그때 영상도 있어요?”상언은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만을 기다린 어부처럼 미소를 지었다.“당연하죠, 집에 있는데, 보러 갈래요?”하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상언 씨 집으로 가야만 볼 수 있는 거예요?”“뭐, 결국 범죄의 증거니까요. 혹여나 불이익이 생길 수 있잖아요.”하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좋아요, 지금 갈까요?”“지금도 좋아요.”상언은 기뻐하며 눈썹을 치켜올리고 일어섰다.“가요.”이서는 두 사람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기에,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하나가 외투를 집어들고 미안한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서야, 미안한데, 난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아. 둘이 있어도…… 괜찮지?”이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친구의 행복을 위해 미소를 지었다.“괜찮아.”하나는 그녀의 미소에 안심하고 식당을 나섰다.두 사람이 떠난 후, 룸에는 지환과 이서만이 남아있었다.하나가 있을 때 이서는 그녀와 이야기를 하며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었지만, 하나가 떠나고 나서 그녀의 모든 신경은 지환을 가리켰다.그녀는 여기를 빠져나가고 싶었다.그러나 지환의 긴 다리는 그녀가 지나가야 할 길을 가로 막고 있어서 그녀가 떠나면 잡힐 게 뻔했다.이서는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미트볼만 괴롭혔다.“그건 미트볼이지 내가 아니야.”지환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룸
“여보……, 제 품이 많이 그리웠나 봐…….”윤이서는 고개를 들어 하지환을 바라봤을 때, 그는 두 손을 뒷머리에 얹고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이서는 책상을 짚고 일어나서 지환을 내려다봤다.“제 체면 좀 생각해 줘요.”“알겠어, 그냥 내 생각일 뿐이야, 됐지?”“나쁜 사람!”이서는 욕을 남긴 채 조심스럽게 지환의 다리를 건너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룸을 떠났다.지환은 바로 일어나서 그녀를 따라갔다.그는 복근에 남은 이서의 온기를 매만지며 입꼬리를 올렸다.식당을 빠져나온 이서는 화끈해진 열기를 식힐 수 있었고, 바로 차에 올라탔다.그녀가 문을 닫으려던 순간, 그녀보다 더 빠른 손이 차 문을 잡았다.이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문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봤다.그 순간, 지환은 쉽게 차에 올라탔다.“지금 뭐하는 거예요?”이서가 물었다.“너 데려다 줄려고.”“현태 씨가 데려다 줄 거예요.”“내가 직접 데려다 줘야 마음이 놓여.”“…….”이서는 짜증나는 마음에 지환과 아예 말도 하지 않고 등을 돌린 채 창밖의 풍경만 바라봤다.서우 그룹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로 이서는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지만, 지환은 매번 그런 그녀를 실패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왜 지환이 낯짝이 두껍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침묵 속에 이동하던 차는 이서의 아파트에 도착했다.이서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계속 따라오는 지환을 바라보며 속도를 늦췄다.일층에 도착한 그녀는 멈춰 서서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집 앞에 도착했으니 됐죠?”“아니.”지환이 웃으며 말했다.“직접 집에 들어가는 건 보고 가야지.”“…….”이서는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웃음을 지었다.“지환 씨가 정 그러시겠다면, 따라오세요.”“좋지.”지환은 이서보다 먼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렸다.“아내랑 같이 집에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몰라.”‘지환 씨는 지금 내 옆에 없는 거야. 없는 사람 취급하자. 지금 나 혼자야.’엘리베이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윤이서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침입자의 흔적도 없고 도둑도 아니었을뿐더러 그 사람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다.하지환이 곁에 있다면 최소한 생명은 보장할 수 있었다.목숨을 걸고 모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이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지환은 스스로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자. 집은 내일 치우자.”이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로 들어가 간단히 샤워를 했다.씻고 나오니, 지환은 이미 소파를 정리한 상태였다.이서의 눈빛을 느낀 듯, 지환은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내가 소파에서 잘게. 넌 방 문을 잠그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소리 질러, 내가 바로 달려 갈게.”이서는 소파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파는 1.5m에 불과했고, 그 위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180cm가 넘는 지환에게 소파에서 자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침대에서 주무세요.”이서는 잠옷의 깃을 붙잡고 민망한 듯 말했다.지환은 놀란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너는 어디서 자게?”“내가 소파에서 잘게요.”“…….”“그럼 내가 소파에서 잘게.”지환은 다리를 쭉 뻗고 소파에 누웠다.“어서 자, 내일 출근해야지.”이서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침실로 향했다.침실에 들어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문을 닫으려 했지만, 지환의 말을 떠올리니 다시 망설여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어 두었다.두려움 앞에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이서는 침대에 누웠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지환이 거실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편안했지만,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모든 신경은 거실에 있는 지환에게 향했다. ‘지환 씨는 잠 들었을까?’이서는 몸을 뒤척였다.아무리 노력해도 머리속은 온통 지환으로 가득 차 있었다.한편, 소파에 누워 있던 지환도 불편한 듯 몸을 뒤척였다.소파가 작아서 목과 다리가 불편했지만, 침실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노란 조명에 마음
[선생님, 수업해 주시죠. 수강신청은 완료했습니다.]하지환은 휴대폰 화면을 어둡게 하고 이상언의 메시지에 답을 보내지 않았다.이 방법은 상언에게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그는 다시 새어 나오는 따뜻한 조명 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방에 있던 윤이서는 30회쯤 몸을 뒤척인 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마신다는 핑계로 거실로 나갔다.그녀는 편안한 얼굴로 잠든 지환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는 오랫동안 쉬지 못했는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소파는 분명 불편할 테지만 그의 얼굴엔 어떤 찡그림도 없이 흐뭇한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이서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그녀의 손이 지환의 얼굴에 닿기 전,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손을 거둔 뒤, 물컵을 들고 재빨리 방으로 돌아갔다.침대에 앉아도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뛰었다.이서는 손바닥을 쥐었다.방금 전 상황이 다시 한번 머리속에 떠올랐다.눈을 질끈 감은 이서는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누웠다.늦은 밤,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이서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에 들었기에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다.그녀는 어젯밤이 가장 편안하게 잠을 잔 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침실을 나온 그녀는 식탁 위에 익숙한 아침 식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이 착각에 덜컥 겁을 먹은 이서는 씻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주방에서 나오던 지환은 도망가는 이서의 뒷모습을 보았다.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을 본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이서는 회사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었다.심소희는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 이서를 보며 놀란 듯 물었다.“언니, 왜 여기서 씻고 계세요?”“집에 개가 있어.”이서는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네?”소희는 잘못 들었다 생각해 의아해하며 이서를 보았고, 이서는 별 다른 설명없이 손을 닦으며 말했다.“오늘 밤이 서나나의 웹드라마가 개봉되는 날이지?”“네.”소희가 대답했다.“이서 언니
“제가 오늘 밤에 상대할 사람이 하 대표님이었군요!”그 사람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천이 지환의 앞에 서서 말했다.“괴력왕, 당신이 어떻게 하은철 아버지의 조수가 된 거죠?”눈앞의 괴력왕은 힘으로 대동맥을 끊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타고난 힘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천은 물론이며 지금까지 괴력왕과 맞붙은 적 없는 어둠의 세력 조직원까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괴력왕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사람들은 모두 그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랐다.“하하, 말하자면 긴 이야기입니다만, 기꺼이 말씀드리죠.”키가 큰 괴력왕은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지환을 볼 수 있었다.“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제 딸이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그걸 알게 된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께서 훌륭한 의사를 찾아 제 딸을 치료해 주신 거죠.”“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약속했습니다.”“다만, 첫 번째 임무가 하 대표님을 상대하는 건 줄은 몰랐죠.”지환의 명성은 외국에서도 대단했다.괴력왕처럼 은둔하는 사람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어쩐지, 상대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더라니.’‘상대를 알면 후회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지?’지환은 괴력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괴력왕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게다가 지환은 의리 있는 괴력왕의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그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으로 괴력왕을 끌어들이려 했었다.하지만 싸우기 싫어하는 괴력왕의 성격 때문에 그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고, 지환도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가 전쟁이 될 줄은 몰랐다. “각자의 보스나 신경 쓰도록 하죠. 시작합시다!” 지환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괴력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 대표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저쪽에 있던 하도훈은 이미 입구까지 걸어갔다.그의 곁에는 수십 명이 모였는데, 그들의 머리에는 흰색 천 조각이 씌워져 있었다. 지환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그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지환은 꿈쩍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형님, 오랜만입니다!”하도훈의 얼굴에서는 커다란 슬픔이 묻어났다. “왔구나!”지환이 말했다.“은철이 시신을 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경직된 몸을 심하게 떨었다.“지환아, 너 정말 독하구나. 한 여자를 위해서 조카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 아이를 해칠 때, 네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니?” “예전에 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어. 하지만 은철이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고, 너라는 작은 아버지를 꽤 친근하게 대했다지.”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고향의 특산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그런 조카를 이런 식으로 대한 거냐?”“너는 처음엔 여자를, 이제는 목숨을 앗아간 거야.”“은철이 녀석이 본인의 이런 말로를 알았더라면, 애초에 너를 가까이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겠구나.”하도훈이 말했다.지환이 차갑게 하도훈을 바라보았다.“맞습니다. 우린 가족이고, 확실히 아주 가까웠죠.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철이가 이서를 어떻게 대했었죠?” “이서는 은철이의 작은어머니였습니다. 그때 은철이는 이서가 본인의 가족, 즉 친척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하도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래, 보아하니 너는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지환아, 너희가 목숨을 건 계약을 했다는 거, 설령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네가 오늘 은철이를 보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내 허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형님이 허락하면 어떻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내 이천이 전화를 걸어왔다. [대표님, 모두 안배했습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그래.”전화를 끊은 지환은 외투를 들고 문을 나왔는데, 맞은편 방문이 한 눈에 들어왔다.그는 넋을 잃은 채 그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이천이 한 말이 맴돌았다.‘덫일 수도 있다고...?’‘가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이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면 떠나고 싶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바로 이때,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지환이 피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문 뒤에 서 있는 이서를 묵묵히 바라보았고, 그녀도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외투를 든 것을 본 이서가 물었다.“어디 나가요?”지환은 이서의 눈을 쳐다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오, 그럼 어서 가보세요. 나는 샤워하고 잘게요.”이서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는데, 이는 지환을 크게 안도시켰다. 그가 두 걸음 정도 내디뎠을 때, 뒷문이 다시 열렸고, 이서의 ‘조심해서 다녀와요’라는 한 마디가 복도에 메아리쳤다.고개를 돌린 지환은 텅 빈 복도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는 차갑고 의연한 기색만이 감돌 뿐이었다. 급히 아래층에 도착하자, 이천은 이미 어둠의 세력 조직원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즉시 똑바로 서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지환은 마지막으로 호텔을 힐끗 보고는 출발했다. 병원 입구.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고요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평소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 입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오히려 입구는 활짝 열려 있어, 함정에 빠뜨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천이 물었다.“대표님,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환은 냉정하게 반문했다.“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이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이미 철통같이 포위된 듯했고, 어디로 들어가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문으로
소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서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부하고 싶을 정도로 강해져야만, 그들이 소희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저녁에 식사하던 이서는 지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괴롭다는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더 강해진다는 건 하씨 가문을 넘어서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건 내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에요.” 맞은편에 앉은 지환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 얼굴의 부드러운 곡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얼굴의 미세한 동작까지도 끄집어냈다.“불가능한 일은 없어. 어쩌면 네가 하씨 가문을 넘어설지도 모르지.” “또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거죠? 하씨 가문은 백 년의 기반을 가진 가문이예요. 내가 하씨 가문처럼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꿈속에서 하씨 가문을 이어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와 하씨 가문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 말이다. 바로 이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이천에게서 온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지환이 핸드폰을 든 채 이서를 한 번 보았다. 이서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지환이 그녀가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 “이제 배불러요. 나는 먼저 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볼게요.” 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자, 지환이 수화기 너머의 이천에게 물었다.“확실해?”[확실합니다. 하은철은 확실히 죽었어요. 하지만 하씨 가문의 고택 앞에서 죽었죠.] [하은철은 치타와 마찬가지로 차가 부딪쳐 날아가는 순간에 차에서 뛰어내렸을 겁니다.] [물론, 그때 누군가가 하은철을 도왔기 때문에 하씨 가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던 거겠죠.][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씨 가문 고택
소희가 꽤 충격을 받은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 언니, 농담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이득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우리가 시비를 걸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할 일이지.” 이서가 빙그레 웃었다.“이제 내 말을 믿겠어?” 소희가 말했다.“이서 언니, 언니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제 동생을 잘 모르잖아요. 걔는 어릴 때부터 남들을 골탕 먹이던 애예요. 한 번도 남한테 당한 적이 없는 애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어제 이미 계획을 세워뒀어. 소희 씨가 내 말 대로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소희 씨, 설마 그 이상한 양부모한테서 완전히 벗어날 생각을 안 해본 거야?” 소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확실히 생각해 본 적 있지만, 단지 생각에 불과했어.’ ‘양엄마가 얼마나 끈질기게 집착하는 사람인지 잘 아니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철저히 말살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범법행위이지 않은가.소희는 이서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원치 않았다. “이서 언니,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음에 또 심태윤이 찾아오면,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언니는 걔한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지만, 걔는 언니한테 해를 끼칠 수 있어요.” 이서가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까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서야 알았어. 소희 씨가 심씨 가문에서 겪는 일이 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걸.” “소희 씨, 소희 씨는 날 위해서 심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는 심씨 가문에 있는 소희 씨의 처지를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아직 심 대표님 내외에게 정이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소희 씨의 부모님이잖아. 세 사람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언젠가는 그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나를 몰래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소희는 이서의 말에 고개를
같은 시각.차에서 칭찬받은 소희는 쑥스러워했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하지만 이지숙의 눈에는 소희가 혀로 수많은 유생과 싸운 제갈량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주머니.” 소희가 이지숙이 계속해서 말을 잇기 전에 말했다.“물건을 좀 사러 가고 싶어요. 이따가 이 근처에서 저 좀 내려주세요.” “나도 같이 갈게.”이지숙이 열정적으로 자청했다. 소희는 그런 그녀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저 혼자 가고 싶어요.”이지숙은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쇼핑을 원치 않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많은 일을 겪은 소희가 혼자 걷고 싶은 것이라 여겼다. “이해해, 다음 길목에서 내려줄게.”“소희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가 반드시 너를 보호할 테니까.” “...”소희는 정말이지 걱정이 많았다.‘심씨 가문 사람들의 뇌 회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 “소희야.” 심근영 또한 이지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희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너를 구할 거야.” 소희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그들의 눈동자에는 진심만이 가득했다. 소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심근영 부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떠나자마자, 소희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윤씨 그룹으로 갈게요.” 운전기사는 대답한 후, 곧장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30분 후, 회사에 있던 이서는 소희가 왔다는 것을 듣고는 다소 놀랐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예.”김하늘은 곧장 대표실로 소희를 데려왔다.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자, 소희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이서 언니...” 문이 닫히고, 밀려오는 억울함을 느낀 그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소희
소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녀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6명의 어르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어르신들, 모든 일의 원흉인 제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여섯 명의 어르신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에 앉은 그 어르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그래.” “감사합니다.”“여러분, 여러분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타남과 동시에 하씨 가문과의 협력이 중단되었으니, 저만 내쫓으신다면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진정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우리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심유인이 비꼬듯이 대답했는데, 어조에서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소희가 심유인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저도 여러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기만 하면, 하씨 가문은 자연히 심씨 가문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려 할 테니까요!” ‘소희가 주동적으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할 줄이야!’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희야!”이지숙은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 엄마가 부족해서 너를 고생시키는구나.”소희는 역시 눈시울을 붉히던 심근영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심이에요. 제가 쫓겨나는 걸로 하 사장님의 기분이 풀린다면... 그렇게 할게요.”그러나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조롱으로 들렸다.심근영이 중간에 앉은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어르신, 소희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하 사장의 기분을 풀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하 사장일까요?” “윤 대표는 하 사장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하씨 가문을 건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면, 더욱 궁지에 몰릴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아니야, 나는 정말이지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고 싶지 않아!’ ‘이 사람들은 왜 내
어르신들은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고, 결국 가장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입을 열도록 내버려두었다.“확실히 경솔한 일이긴 해. 허나, 우리가 하씨 가문에게 직접 물을 수는 없으니, 모든 걸 추측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우리는 너희가 밖에서 하는 일을 전부 알고 있었어.”“즉, 이 일은 우리 심씨 가문의 잘못이기도 하단 뜻이지.”“하씨 가문과 협력하기로 약조해 놓고 번복하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말했다.심근영은 이서의 배후에 지환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소희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을 생각하며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간단한 문제였습니다. 하씨 가문과의 협력에서, 심씨 가문은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는 가문이니, 이익이 없으면 협력도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헛소리!”심상규가 말했다.“이번 협력은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거였어. 윤씨 그룹이 몰락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씨 가문과 윤씨 그룹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고! 그렇게 되었다면, 심씨 가문은 소씨 가문을 제치고 H국의 2대 가문이 될 수 있었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네 딸이 돌아오는 것과 맞바꾼 거라고!”여기까지 말한 심상규는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네 딸은 아주 배은망덕한 사람이야!”“윤씨 그룹을 위해서 제 가족들을 협박하다니.” “허, 어릴 때부터 가문 밖에서 자란 사람, 게다가 시골에서 자란 말괄량이가 무슨 식견이 있을까!” “그만하시죠, 작은아버지. 우리가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단한 이유는 소희 때문이 아니라...”심근영이 주먹을 꽉 쥐고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근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고, 그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이서 언니는 아직 형부의 신분을 몰라. 이 시점에서 그 이유를 폭로해버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밖으로 퍼뜨리고 말 거야.’ ‘만약 이렇게 해서 이서 언니가 피해를 본다면,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할
“아주머니, 사람은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에요. 만약 그 어르신들께서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억지로 심씨 가문에 머물 생각이 없어요.” 사실 소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기에 당장이라도 심씨 가문을 떠나고 싶었다. 비록 그녀와 심근영 부부가 혈연관계이긴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떨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심근영 부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심씨 가문은 우호적인 곳이 아니지 않은가. 환영 파티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다니, 계속해서 심씨 가문에 머문다면 또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소희야, 걱정하지 마. 엄마는 절대로 네가 심씨 가문을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만약 어르신들께서 정말 너를 쫓아내려 하신다면, 이 엄마도 너와 함께 떠날 거야.” 이렇게 말한 이지숙이 다시 심근영을 바라보았다.“여보, 나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그분들이 하은철 한 사람 때문에 무리하게 내 딸을 쫓아내려고 한다면, 난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이지숙의 어투에는 확신이 가득하여 농담 같지 않았다. 심근영이 윙윙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소희는 이제 막 돌아왔어. 그런데 무슨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거야? 소희야, 너도 걱정할 거 없다. 네가 이미 돌아온 이상, 다시 떠나게 하지는 않을 테니.” 소희는 그들을 보면서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렸을 때, 그녀가 동생과 함께 넘어지면, 양부모의 눈에는 언제나 심태윤뿐이었다. 그들은 늘 남동생을 먼저 일으켜 세우며 달래 주었고, 한쪽에 방치된 그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설령 소희를 신경 쓴다고 해도, 그저...“혼자 일어날 줄도 모르니?”그 누구도 그녀에게 ‘걱정 마, 우리한테 맡겨’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소희는 또 한 번 그들을 보았고, 그제야 자신의 눈이 이지숙의 눈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달 모양의 둥근 눈, 그것은 공격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매우 곧고, 하늘을 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