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서 씨가 나가실 때 둘째 도련님께서 윤이서 씨가 다시 오면 돈을 받지 말라고 하셨어요.”임하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모호한 눈으로 이서의 팔을 찔렀다.이서는 하나를 곁눈질로 보고 식당 주인을 따라 룸으로 갔다.안내를 끝낸 식당 주인이 떠나자마자 하나는 입을 열었다.“어쩐지 소씨 그룹 둘째 도련님이 널 대하는 태도가 다르긴 했어.”“그 사람은 여자친구가 있지 않아? 이건 다른 문제인가?”하나는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는 이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알았어. 이 얘기는 그만할게. 어쨌든 그 사람은 이미 떠났잖아,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맞아.”차를 한잔 따르자 이서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하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이서야, 지금 지환 씨랑은 어때?”이서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잘 모르겠어,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거든…….”“복잡하다니?”하나가 말했다.“얼마나 복잡하길래?”이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하나는 찻잔을 들어올렸다.“됐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래도 이서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네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았으면 좋겠어. 나를 위해 이혼하지 않았던 우리 엄마처럼 되지 마. 사실 엄마는 모르겠지만, 난 우리 엄마 아빠가 헤어졌으면 했거든, 어쩌면 내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은 진작에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았을 거야.”이서는 안타까운 눈으로 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 일의 진상이 밝혀지고 지환 씨가 양다리를 걸친 게 확인되면,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할 거야.”단지 이서는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혼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뿐이었다.하나가 말했다.“이서야, 내가 네 인생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지만, 난 정말 걱정돼……, 우리가 남자 일로 마음이 약해질까 봐 두려워.”하나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이서는 하나의 옆에 앉아 그녀를 안았다.“알지, 나도 네 마음 다 알아…….”하나는 이서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몸을 들썩였
윤이서는 하지환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임하나랑만 소통했다.하나도 같은 전략을 사용하려 했지만, 아빠를 때린 사람이 이상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정말 상언 씨가 한 일이에요?!”상언은 하나의 표정이 화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이서는 고개를 들어 상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왜 그랬어요?”하나는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상언이 대답했다.“사회의 물을 흐리는 사람들은 처리해야죠.”하나는 콧방귀를 뀌었다.잠시 후, 그녀는 식사를 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럼……, 그때 영상도 있어요?”상언은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만을 기다린 어부처럼 미소를 지었다.“당연하죠, 집에 있는데, 보러 갈래요?”하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상언 씨 집으로 가야만 볼 수 있는 거예요?”“뭐, 결국 범죄의 증거니까요. 혹여나 불이익이 생길 수 있잖아요.”하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좋아요, 지금 갈까요?”“지금도 좋아요.”상언은 기뻐하며 눈썹을 치켜올리고 일어섰다.“가요.”이서는 두 사람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기에,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하나가 외투를 집어들고 미안한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서야, 미안한데, 난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아. 둘이 있어도…… 괜찮지?”이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친구의 행복을 위해 미소를 지었다.“괜찮아.”하나는 그녀의 미소에 안심하고 식당을 나섰다.두 사람이 떠난 후, 룸에는 지환과 이서만이 남아있었다.하나가 있을 때 이서는 그녀와 이야기를 하며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었지만, 하나가 떠나고 나서 그녀의 모든 신경은 지환을 가리켰다.그녀는 여기를 빠져나가고 싶었다.그러나 지환의 긴 다리는 그녀가 지나가야 할 길을 가로 막고 있어서 그녀가 떠나면 잡힐 게 뻔했다.이서는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미트볼만 괴롭혔다.“그건 미트볼이지 내가 아니야.”지환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룸
“여보……, 제 품이 많이 그리웠나 봐…….”윤이서는 고개를 들어 하지환을 바라봤을 때, 그는 두 손을 뒷머리에 얹고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이서는 책상을 짚고 일어나서 지환을 내려다봤다.“제 체면 좀 생각해 줘요.”“알겠어, 그냥 내 생각일 뿐이야, 됐지?”“나쁜 사람!”이서는 욕을 남긴 채 조심스럽게 지환의 다리를 건너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룸을 떠났다.지환은 바로 일어나서 그녀를 따라갔다.그는 복근에 남은 이서의 온기를 매만지며 입꼬리를 올렸다.식당을 빠져나온 이서는 화끈해진 열기를 식힐 수 있었고, 바로 차에 올라탔다.그녀가 문을 닫으려던 순간, 그녀보다 더 빠른 손이 차 문을 잡았다.이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문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봤다.그 순간, 지환은 쉽게 차에 올라탔다.“지금 뭐하는 거예요?”이서가 물었다.“너 데려다 줄려고.”“현태 씨가 데려다 줄 거예요.”“내가 직접 데려다 줘야 마음이 놓여.”“…….”이서는 짜증나는 마음에 지환과 아예 말도 하지 않고 등을 돌린 채 창밖의 풍경만 바라봤다.서우 그룹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로 이서는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지만, 지환은 매번 그런 그녀를 실패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왜 지환이 낯짝이 두껍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침묵 속에 이동하던 차는 이서의 아파트에 도착했다.이서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계속 따라오는 지환을 바라보며 속도를 늦췄다.일층에 도착한 그녀는 멈춰 서서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집 앞에 도착했으니 됐죠?”“아니.”지환이 웃으며 말했다.“직접 집에 들어가는 건 보고 가야지.”“…….”이서는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웃음을 지었다.“지환 씨가 정 그러시겠다면, 따라오세요.”“좋지.”지환은 이서보다 먼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렸다.“아내랑 같이 집에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몰라.”‘지환 씨는 지금 내 옆에 없는 거야. 없는 사람 취급하자. 지금 나 혼자야.’엘리베이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윤이서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침입자의 흔적도 없고 도둑도 아니었을뿐더러 그 사람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다.하지환이 곁에 있다면 최소한 생명은 보장할 수 있었다.목숨을 걸고 모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이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지환은 스스로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자. 집은 내일 치우자.”이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로 들어가 간단히 샤워를 했다.씻고 나오니, 지환은 이미 소파를 정리한 상태였다.이서의 눈빛을 느낀 듯, 지환은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내가 소파에서 잘게. 넌 방 문을 잠그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소리 질러, 내가 바로 달려 갈게.”이서는 소파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파는 1.5m에 불과했고, 그 위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180cm가 넘는 지환에게 소파에서 자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침대에서 주무세요.”이서는 잠옷의 깃을 붙잡고 민망한 듯 말했다.지환은 놀란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너는 어디서 자게?”“내가 소파에서 잘게요.”“…….”“그럼 내가 소파에서 잘게.”지환은 다리를 쭉 뻗고 소파에 누웠다.“어서 자, 내일 출근해야지.”이서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침실로 향했다.침실에 들어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문을 닫으려 했지만, 지환의 말을 떠올리니 다시 망설여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어 두었다.두려움 앞에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이서는 침대에 누웠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지환이 거실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편안했지만,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모든 신경은 거실에 있는 지환에게 향했다. ‘지환 씨는 잠 들었을까?’이서는 몸을 뒤척였다.아무리 노력해도 머리속은 온통 지환으로 가득 차 있었다.한편, 소파에 누워 있던 지환도 불편한 듯 몸을 뒤척였다.소파가 작아서 목과 다리가 불편했지만, 침실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노란 조명에 마음
[선생님, 수업해 주시죠. 수강신청은 완료했습니다.]하지환은 휴대폰 화면을 어둡게 하고 이상언의 메시지에 답을 보내지 않았다.이 방법은 상언에게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그는 다시 새어 나오는 따뜻한 조명 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방에 있던 윤이서는 30회쯤 몸을 뒤척인 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마신다는 핑계로 거실로 나갔다.그녀는 편안한 얼굴로 잠든 지환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는 오랫동안 쉬지 못했는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소파는 분명 불편할 테지만 그의 얼굴엔 어떤 찡그림도 없이 흐뭇한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이서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그녀의 손이 지환의 얼굴에 닿기 전,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손을 거둔 뒤, 물컵을 들고 재빨리 방으로 돌아갔다.침대에 앉아도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뛰었다.이서는 손바닥을 쥐었다.방금 전 상황이 다시 한번 머리속에 떠올랐다.눈을 질끈 감은 이서는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누웠다.늦은 밤,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이서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에 들었기에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다.그녀는 어젯밤이 가장 편안하게 잠을 잔 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침실을 나온 그녀는 식탁 위에 익숙한 아침 식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이 착각에 덜컥 겁을 먹은 이서는 씻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주방에서 나오던 지환은 도망가는 이서의 뒷모습을 보았다.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을 본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이서는 회사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었다.심소희는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 이서를 보며 놀란 듯 물었다.“언니, 왜 여기서 씻고 계세요?”“집에 개가 있어.”이서는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네?”소희는 잘못 들었다 생각해 의아해하며 이서를 보았고, 이서는 별 다른 설명없이 손을 닦으며 말했다.“오늘 밤이 서나나의 웹드라마가 개봉되는 날이지?”“네.”소희가 대답했다.“이서 언니
임현태의 반응은 매우 진지했다.“선생님, 그런 농담은 하시면 안 돼요. 제 회사 동료입니다. 아직 어리고 남자친구도 없으신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해받을 거예요.”선생님은 깜짝 놀라 심소희에게 사과했다.“아이구, 죄송해요, 제가 허튼 소리를 했네요.”사실 이런 오해는 화영에서 많이 받았기에 소희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현태의 진지한 반응에 그녀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그녀는 소중하게 여겨지는 기분이었다.강의실을 나온 후, 소희는 현태의 뒤를 따랐다.“현태 씨, 이서 언니가 오늘 밤에 같이 서나나 씨의 웹드라마를 보자고 하던데 같이 가실래요?”“좋아요.”현태는 고개를 끄덕였다.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소희는 현태의 듬직하고 쩍 벌어진 등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사실…… 그렇게 진지하게 부정할 필요는 없었어요.”“뭐가요?”“선생님께서는 충분히 그렇게 보실 수 있었으니까요.”현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지하게 말했다.“알아요, 하지만 저에게 소희 씨는 동생 같은 존재예요. 전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순진한 감정을 오해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소희는 점점 얼굴이 굳어져 갔다.“아……, 동생……. 그쵸…….”“맞아요, 전 사실 소희 씨처럼 착하고 의젓한 여동생을 갖고 싶었어요. 소희 씨, 앞으로 여동생으로 생각해도 돼요?”“…….”소희는 아무 말도 못했다.‘이 쑥맥아, 어떻게 여자 마음을 이렇게 몰라?’그녀는 억지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죠, 좋아요.”“정말?”현태는 소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가자, 오늘 기분도 좋은데 선물 사줄게.”“…….”오후에 퇴근한 이서가 차에 올라탔을 때 소희의 팔목에 있는 금팔찌를 발견했다,“못보던 금팔찌인데?”이서가 물었다.“현태 씨가 사주셨어요.”소희는 솔직하게 대답했고, 그녀는 앞에서 운전하고 있는 현태에게 시선을 돌렸다.현태는 여전히 기분이 좋아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팔찌 예쁘죠?”이서는 소희의 손을 잡고 빤히 바라보았다.“예쁘네요, 비쌀 것 같
하지환을 발견한 윤이서는 즉시 표정을 굳혔다.이전과는 상반되는 그녀의 태도에 쑥맥인 임현태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두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심소희가 처음 하지환을 만났을 때, 현태가 먼저 다가가 물건을 들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눈앞에 잇는 사람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이서의 남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미친!!’‘너무 잘생겼잖아!’소희는 연예인을 좋아한 적이 없어서 어린 소녀들이 연예인을 보며 설레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순간, 그녀는 단박에 이해했다.외모지상주의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었다.“언니, 이서 언니! 언니 남편, 진짜 잘생겼네요!”소희는 이서의 소매를 잡았고, 이서와 지환 사이의 다툼을 잊은 채 말했다.이서는 흥분한 소희의 모습을 보고 죄책감을 덜었다.실제로 지환을 보면 소희가 흥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지환의 외모는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었다.네 사람은 함께 이서의 집으로 들어갔다.짐을 내려 놓은 현태는 지환이 근사한 저녁 식사를 준비할 예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선생님, 저희…… 돌아갈까요?”지환은 고개를 들어 현태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현태는 부엌 문 앞에 서서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속으로만 외칠 뿐이었다.‘가지 말라고 해, 같이 먹자고 해!’지환은 당연히 그의 속마음을 들을 수 없었다.혹은 지환도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오늘 저녁은 그들이 싸운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저녁 식사로, 식재료를 구입하는 데에만 반나절이 걸렸다.이서가 사람을 데려온 것을 본 지환은 마음이 우울했다.이서가 그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본 그는 질투도 나고 화도 났다.그녀가 진심으로 웃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었다.그들을 다시 돌려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아래층에서부터 고민했던 문제였다.결국 지환은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그는 이서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혹여 그것이 지환을 향한 것이 아니더라도.“사모님께서 초대했는데,
심소희는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윤이서를 바라봤다.“이서 언니, 지금 농담하는 거죠? 이렇게 잘생기고 하씨 그룹의 중상층인데, 이런 남자가 결혼 시장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모르는 거예요?”“몰랐어.”이서가 대답했다.소희의 설명으로 이서는 하지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가 지환을 늘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겨왔던 이유는 많은 세가의 도련님들과 여러 세대에 걸쳐 부를 축적해 온 부유한 N세대에 비교했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하면 지환은 확실히 우위가 없었다.“게다가 여자들은 남자 능력만 보는 게 아니라 외모도 봐요. 남편 분 외모로는 아무리 빈털터리라도 돈을 가져다 받칠 걸요?”“?”이서는 의아했다.“이서 언니, 연예계에 관심 없으시죠? 요즘 별로 잘생기지 않은 연예인도 부잣집 사모님이랑 만나서 떵떵거리며 산다고요!”이서가 남편의 소중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자, 소희는 계속해서 설명을 덧붙였다.임현태가 돌아온 후, 이서는 지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닌 그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남편감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다.그런 거라면 줄리가 왜 일부러 지환의 결혼 여부를 확인하도록 유도했는지 이해가 됐다.의문의 사람의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됐다.그 당시 나연이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은 아마 지환을 가지지 못해 의도적으로 그들의 사이를 망치려는 사람이었을 것이다.하지만…….이서는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지환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린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소희에게 리모컨을 건넸다.“시작하면 불러.”“네.”소희는 대화가 끝난 후, 부엌을 향해 걸어가는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녀는 계속해서 그녀의 동태를 살피고 싶었지만 현태의 거대한 몸에 가려 볼 수 없었다.그리고 현태의 얼굴은 로또라도 맞은 마냥 기쁨이 가득했다.그로 인해 소희는 현태가 지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더욱 의심하게 됐다.‘아니, 내 첫사랑 상대가 동성애자였다고?’소희는 마음 속으로 다양한 부처님께 기도했다.신녀는 평생에 걸쳐 선한 일을 하고 덕을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