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엽은 슬픈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왠지 유난히 우울해 보였다. “가끔은 여자 친구보다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더 필요하고 그리울 때가 있는 거야.”이서는 눈을 깜빡이며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가족들이…… 잘 안 해줘?”소지엽은 불쌍한 컨셉으로 이서의 동정심을 자극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1, 2초 동안 잠시 멍해 있었다.“나…… 나 밖에서 나온 자식이잖아. 어떻게 나에게 잘해주겠어?” 그는 이상한 눈빛으로 이서를 보았다. “너 몰랐어?”이서는 눈을 깜박거리더니, 한참 후에야 문득 깨달았다.그때도 소씨 집안 배경에 어떻게 심씨 집안 딸을 중매로 맺어주나 싶었다. 결국 비슷한 집안끼리 정략결혼으로 이어지는 상류층 사회에서, 소씨 집안 정도라면 4대 가문의 여자와 결혼하는 게 맞았다.‘소지엽이 사생아라니.’이서가 전혀 모르는 눈치를 보이자, 소지엽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내가 소씨 가문으로 들어가면서 아주 시끄러웠지, 너 몰랐어?”그제야 이서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유학길에 오른 뒤, 두 사람은 전혀 교집합이 없었다.‘내가 사생아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인데, 이서는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혹시 내가 여덟 살 이전에 일어난 일인가? 맞아?” 이서는 말을 이었다.“나는 여덟 살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어.”소지엽은 잠시 동안 뭔가를 생각한 듯 중얼거렸다. “그때, 너 이미 유학 갔구나.”“아?” 제대로 듣지 못한 이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소지엽을 바라보았다.소지엽은 이서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서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세 사람이 ML 국에 도착한 후, 소지엽은 목적지의 항공권을 아직 예약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서 등과 함께 그들이 묵었던 호텔로 갔다.‘지난 번에 ML 국에 혼자 왔을 때는 허탕을 쳤는데, 이번에는 이서와 함께 오다니…….’약속된 여정은 아니었지만, 하늘이 그에 대
그녀는 필사적으로 눈을 몇 번 깜박거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나…….”하나는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서야,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지금부터 제대로 생각해 봐. 지환 씨가 중혼인 건 확정된 사실이야. 난 네가 이 감정에 빠져 허덕이는 게 싫어. 한 위대한 철학자가 이런 얘기를 했어. 지난 사랑을 잊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거라고…….”이서가 아무 말이 없자, 임하나는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설마 그를 용서하고, 일부다처제로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할 생각은 아니지?”이서는 또다시 비행기에서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싫어!”이서의 기준으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만약 두 사람 사이에, 세 번째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녀는 차라리 이 감정을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그럼 너…….”이때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서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오, 잠깐만, 곧 갈게.”임하나는 소지엽의 물음에 대답하며, 이서의 손을 잡았다.“이서야, 지금 당장 답을 안 해도 돼. 하지만, 곰곰이 잘 생각해 봐. 이건 인생이 걸린 큰 문제야.”이서는 망연자실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가자, 먼저 밥 먹으러 가자.”이서는 숨을 몇 번 들이마시며, 이 문제로 인해 복잡한 마음을 억누른 후에야 임하나와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하지만 식당에 도착하니, 커플들이 참 많이 보였다. 이서의 머릿속에 하나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이서야, 너 왜 그래?”소지엽은 저녁 식사 시간 내내 멍하니 있는 이서를 보며 걱정이 되었다.“이서야!” 하나도 눈치챘는지 이서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비행기에서 제대로 못 쉬었지?”이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임하나가 그녀에게 눈짓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이서는 지금 머리가 흐리멍덩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임하나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녀가 보낸 신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먼
이서는 손을 뻗어 임하나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의 목에 비비적거렸다.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두 친구는 또 한참 대화를 나누고서야 깊은 잠이 들었다.같은 시각,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소지엽은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온통 이서가 멍한 표정이었다.이서가 얘기하지 않아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 분명히 남편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남자를 생각하자, 질투심이 불타오르고, 그러자 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걸 가졌으면서 귀히 여기지 않는다니!’……H 국.민씨 집안.이하영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뭐라고?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하늘로 날았겠어? 땅으로 꺼졌겠어? 왜 찾을 수 없다는 거야?”집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 우리 쪽 사람들을 모두 동원했는데 그림자도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사모님 쪽 정보에 착오가 생긴 거 아닐까요?”이하영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착오는 무슨 착오? 이 세 사람, 내가 직접 바에서…….”자신이 실언한 걸 깨달은 이하영은 재빨리 입을 막고 다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 없어. 착오가 아니라고. 이 세 사람, 바에서 출몰하면서, 술에 취한 여자들을 폭행했다고 들었네. 그렇게 사고 치고도 줄곧 무사했는데, 멀쩡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갑자기 사라지냐고?” 이서에게 약을 먹이는 건 이하영과 이서정이 상의하에 낸 아이디어였다. 이 일로 괜히 연루될까 봐 일부러 술집에서 아무런 상관없는 세 사람을 찾아 사건을 의뢰했다. 이 일이 십중팔구 확실하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며칠 뒤면 이서의 누드 사진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세 사람이 수증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이하영이 집사에게 부탁한 거였다.이 일에 대해서는 민호일에게 감히 얘기하지 못했다.바로 이때 집사의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미안하다는 제스처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모님, 전화
다음 날 잠에서 깬 소지엽은, 이서가 어제처럼 기분이 다운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기우였다. 그녀는 잠을 잘 잤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고, 전혀 속앓이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지엽은 그녀의 자기 치유 능력에 감복했다.“오늘 어디로 놀러 갈 거야?”소지엽은 일부러 고민하는 척했다. “아직 티켓을 구하지 못해서 ML 국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임하나가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목적지로 가는 항공편이 없는 거야? 아니면 ML 국의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우리 도련님께서 항공권을 예매할 수 없는 거야?”소지엽은 임하나가 무언가 눈치챘다는 걸 짐작했다.그래서 임하나를 바라보며 화끈하게 얘기했다. “네 말이 맞아. 두 가지 이유 다!”임하나가 입을 삐죽거렸다.이서는 두 사람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 튀는 대결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번에 우리가 ML 국에 온 주된 목적은 목격자를 찾는 거야. 그래서 우리의 스케줄에는 여행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관광지 여행 가고 싶으면 매니저에 현지 여행 가이드를 붙여달라고 하면 돼.”“…….”“아이고 도련님, 정말 유감이네, 어떡하지? 함께 할 수 없겠네.” 임하나는 일부러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멍해진 소지엽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이서를 따라갔다. “그럼 나도 함께 가.”“아니야, 우린 이미 충분히 너한테 민폐 끼쳤어.” 이서는 더 이상 소지엽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너도 할 일 있잖아. 참, 너는 비행기표 아직 못 샀다고 했지? 이 근처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거기 와이파이 신호가 빵빵하더라고. 거기에서 예약하면 될 거야.”소지엽은 드디어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찧는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았다.“좋아, 하지만 조심해. 늘 안전에 신경 써야 해.”“응, 알았어.”이서는 손을 흔들며 소지엽과 작별을 고했다.두 사람은 몇 걸음 걷다가 택시 한 대를 불러 세웠다.이서는 그날 스키장을 다녀온 호텔 투숙 고객 명단을 임하나에게 건넸다.외국인 관광객을 제외하고, ML 국 현지인
그녀들은 둘 다 현지어를 할 줄 모른다는 거였다.그래도 핸드폰 번역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에효…….”첫 집에서 나온 임하나는 피곤한 듯 이서의 품에 털썩 안겼다. “나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상언 씨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지?”임하나는 이서의 품에 엎드려 비비적거렸다. “와, 어떻게 내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어?”그녀는 이제야 정말 이상언의 좋은 점을 발견하였다.상언과 지환 모두 ML 국어도 할 수 있었지만, 상언의 말에 따르면 지환만큼은 잘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번 방문했을 때 보니 현지인과 교류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이서와 하나는 번역기를 갖고 있지만, 현지인들과 의사소통하기가 역시 역부족이었다.하지만 이서가 챙겨온 선물은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았다.지난번 방문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이 빌어먹을 언어소통만 문제가 아니었다면 대화를 더 이어 나갈 수 있었을 텐데.’애석하게도 이 투숙 고객은 사건 당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나무 쪽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보지 못했다.이서와 임하나는 계속 두 번째 집으로 달려갔다.두 번째 집의 상황도 첫 번째 집의 상황과 비슷했다.역시 열정적이긴 했지만 언어 장애 때문에 유용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이렇게 연이어 몇 집을 돌고 난 뒤, 임하나는 약간 낙담했다.“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목격자를 찾을 수 있는 확률은 엄청 낮은 거 같아…….”이서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녀는 긍정적이었다.“그런 얘기하지 마. 우리가 ML 국에 온 목적이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였잖아. 물론 증거 찾으면 더 찾고, 못 찾으면 마음 달래고 기분 좋게 바람 쐬고 가면 되지.” 임하나는 잠시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맞아. 우리 바람 쐬러 나온 게 주목적이었지, 증거는 찾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좋았어, 아직 시간이 이르니, 기사님께 한 바퀴 돌자고 하자. 주위 경치도 좀 구경하고…….”“좋아!”ML 국은 작지만 풍경은 아름다웠다.거리를 달리고 있
지환의 주먹이 소지엽의 얼굴에 부딪히는 순간 이서의 한쪽 발이 호텔 대문에 들어섰다.그 순간 이서는 지환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곁달아 소지엽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까지도.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소지엽의 앞으로 달려가 지환을 막아섰다.“하지환 씨,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예요?!”갑자기 나타난 이서에 지환의 뇌는 일순 냉정해졌지만, 이서가 소지엽을 두둔하고 나선 모습을 보자 다시 이성을 잃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여 들어갔다. “지금 저 사람 두둔한 거야?!”“내 친구예요, 그를 다치게 하지 마세요!”이서는 지환의 시선에 화가 났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모자라, 내 친구까지 쳐?’지환은 이를 물고 다시 물었다. “지금 저 자식 두둔한 거야?”이서는 그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에 앞서 소지엽에게 사과하기를 원했다. “당신이 내 친구를 쳤으니까, 내 친구한테 사과해요!” “안 하겠다면?”지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이상언도 친구가 폭발하기 전 단계인 걸 알아차렸다.“환아, 진정해……, 이서 씨, 지환이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어요. 지금 엄청 예민한 상황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그리고 나중에 이 녀석 좀 진정되면 다시 사과하라고 하겠습니다.”“필요 없어요.” 이서는 차갑게 말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말을 끝내고 그녀는 소지엽을 일으켜 세웠다. “지엽아, 가자.”이서의 어깨에 기댄 소지엽은 고개를 살짝 돌려 지환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집어삼킬 듯 일렁이는 지환의 눈빛 속에 담긴 질투를 보며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었다.지환은 주먹을 휘두르며 다시 돌진하려고 했다.이상언은 지환의 허리를 죽도록 껴안았다. “야!” 그 와중에 곁눈질로 그는 자기 곁을 황급히 지나가는 임하나를 보았다.임하나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딴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먼저 앞에 있는
이서가 그에게 이렇게 차가운 태도를 보인 건 처음이었다.단지 이혼 얘기 한 마디만 꺼냈을 뿐인데…….“오늘 나를 친 거 보니, 나중에는…….”“아니야.”이서는 지환에 대해 100% 신뢰를 하고 있었다. ‘그는 가정 폭력을 행사할 ‘위인’은 못 된다.’“그런 사람 아니야.”소지엽이 갑자기 할 말을 잊었다.침묵이 흘렀다.거대한 침묵이 거미줄처럼 그의 심장을 겹겹이 감쌌다.한참 뒤에야 미소를 지었다.“네 말이 맞아, 그런 사람은 아닌 거 같긴 해.”이서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소지엽은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아까는 내가 일부러 그 사람을 자극하는 얘기를 했어. 그래서 날 친 거야. 그 사람 잘못 아니야. 내가 자초한 거야.” 이서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었다. “사실이야?”그는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왜 그런 거야?”이서가 화를 냈다.소지엽은 극심한 고통을 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목에 걸려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에야 슬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 그냥 테스트 한번 해 보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몰랐어.” “그럼 사과해야지, 나에게 말고…….”이서는 이 말만 남기고 호텔 방을 나갔다.텅 빈 입구를 보며 소지엽은 웃었다.다시 상처를 건드렸다.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아마도 마음의 상처가 얼굴의 상처보다 더 깊어서였던 것 같았다.그는 이서와 남편의 관계가 좋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서가 남편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냉전 중인데도 한 몸이었다.그는 이미 이 대결에서 패자나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이렇게 승복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이서는 소지엽의 방에서 나온 후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1층 라운지에서 지환과 이상언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바로 프런트에 문의했다. 호텔 직원은 두 사람이 나가는 걸 보았는데,
두 사람 중 한 명은 ML 국에서 만났던 여자, 줄리의 남편이었다.그의 몸은 더 불은 것 같았다. 옆의 여자는 지난번에 만났던 보석을 치렁치렁 두른 그 여자도, 줄리도 아닌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남자는 이서를 알아보지 못한 듯했다. 그는 접수대에 가서 피임약 한 박스를 달라고 하고는 받아서 훌쩍 떠나버렸다.이서 뒤에서 간호사가 낮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비록 ML 국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간호사의 동경하는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혹시 저 사람 아세요?” 간호사는 먼저 놀란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피부색과 머리카락을 보고 ML 국 현지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즉시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물론이죠, 우리 병원 원장님이신데요.”“네? 원장님이요?” 이서는 깜짝 놀랐다.한편으로 왜 그의 주변에 예쁜 여자들이 줄지어 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진료소 규모만 봐도 이윤이 엄청 나다는 걸 알 수 있다.“네, 그리고 아직 결혼도 안 했답니다. 다이아 미스터예요. 어느 복받은 아가씨가 사장님과 결혼하려는지 모르겠네요.”간호사가 다시 한번 동경의 눈빛을 발산하며 한숨을 쉬었다.이서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잠깐…… 결혼 안 했다고요?!”“네.”“아내 있지 않나요?”간호사는 웃었다.“나, 여기서 근무한 지 10년 넘었거든요, 와이프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인걸요?”이서가 더 묻고 싶었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임하나가 문자를 보내왔다.[이서야, 너 어디야? 아까 지환 씨가 너 찾으러 왔다가 호텔에 없는 걸 보고, 너 찾는다고 다시 나갔는데…….][바로 갈게.]메시지를 보낸 후, 간호사와 작별을 고하고 진료소를 나갔다.이미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ML 국의 거리에 따뜻한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다.이서는 호텔 방향으로 달려갔다.걷다 보니 눈앞에 갑자기 영롱한 작은 흰 꽃들이 하늘에서 날렸다.이서는 손을 내밀고 받았다. 눈꽃이었다.그녀는 눈꽃을 ‘후’ 불었다. 눈앞의 입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