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지환의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하지만 이서는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보복의 쾌감을 느꼈다.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녀는 곧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어색하게 소지엽을 바라보았다.소지엽도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그녀가 그렇겠노라고 답할 줄은 그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거 같았다.공기 중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서는 고개를 숙이고 죽을 먹었다.세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점점 미묘해졌다.밥을 다 먹고 이서는 핑계를 대고 방으로 들어갔다.소지엽도 계속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는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그가 문고리를 돌리고자 할 때, 뒤에서 지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씨 가문 이랬지?” 소지엽은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지환을 바라보았다.지환은 이미 몸을 돌려 설거지하러 부엌으로 갔다.이 모든 게 너무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소지엽은 이 모든 상황이 환각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지환이 배달 용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왔을 때,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는 이서 방 쪽으로 걸어갔다. “자기야, 나 간다.”안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잠시 침묵하던 지환은 몸을 돌려 집을 나갔다.집을 나선 지환은 핸드폰을 꺼내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씨 가문의 둘째 아들을 외국에 보낼 방법 생각해 봐.”……다음날 침대에서 일어난 이서는 어젯밤 죽 먹을 때의 어색한 장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낙담한 표정을 한 그녀는, 계속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일 하지?’이서가 턱을 괴고 있다.회사 쪽에서는 지금 1차 생산물량을 대기하고 있고, 서나나는 웹드라마와 방영을 앞두고 있다. 즉 현재로선 회사에서 그녀가 할 일은 마땅히 없는 상태였다.하지만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하나의 결백을 증명해 줄 증인을 아직 못 찾았지?’‘마침 요 며칠
이서와 임하나는 일제히 고개를 들어, 말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소지엽인 걸 알고, 이서는 깜짝 놀랐다. “여기 어떻게?”“출장 가려고.”소지엽이 손을 뻗어 이서의 손에 든 큰 캐리어를 받았다.“가자, 내가 부치는 거 도와줄게.”이서와 임하나는 한 손에 각각 하나씩 끌고 소지엽의 발걸음을 따라갔다.임하나는 소지엽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타이밍 죽인다. 근데 정말 출장 가는 거 맞아?”“우연이겠지, 우리가 해외 나가는 걸 소지엽이 사전에 알 리 없잖아.”“근데 난 왜 소지엽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연출한다는 생각이 들지? 이렇게 타이밍 적절하게 공항에 나타나기가 그렇게 쉬워?”“내가 말했잖아, 여자 친구 있다고.”반박하려던 임하나는 소지엽이 큰 짐을 부치고 또 돌아서서 이서의 캐리어를 건네받는 걸 보며 입을 다물었다.“어디 가는 거야?” 소지엽이 물었다.“ML 국.” 임하나가 먼저 대답했다. “너는?”소지엽이 웃었다. “와아, 이럴 수가?! 난 ML 국에서 경유하는데?”임하나는 눈을 깜박였다.“정말? 이게 우연의 일치?”소지엽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그치? 이런 우연이……? 누가 보면 미행한 줄 알겠어?”임하나도 소지엽의 얘기가 거짓말이라는 증거가 없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이서에게 말했다. “설마 우리 같은 비행기 타고 가는 건 아니겠지?” 소지엽이 웃었다. “항공편 명이 뭐야?”임하나는 항공편을 얘기해주었다.소지엽의 얼굴에 웃음이 더욱 찬란해졌다.“와아, 대박!”“…….”이서는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ML 국은 작은 나라라, 항공편이 한 주에 두 번밖에 없었다.따라서 같은 항공편을 타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우리 들어가서 기다리자.” 이서가 제안했다.“먼저 가, 나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그래.”세 사람은 이내 갈라졌다.이서와 임하나가 공항 출국장 쪽으로 들어가는 걸 본 소지엽은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소지나에게 전
소지엽은 그 사람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겠어, 지금까지 하은철 둘째 삼촌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었잖아. 그런데 민씨 그룹이 그쪽과 손잡고 엔터 사업 쪽에 진출한다고 하니까…….”하은철 삼촌 얘기를 꺼내자 소지나는 잠시 숙고했다. [정말 신비주의 컨셉 제대로 잡았어. 지금까지 하씨 집안 사람들 빼고는 아무도 그 사람 모습을 본 사람이 없어. 지난번 화장품 회사 인수 합병 건으로 완전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터라 사람들은 하 회장이 나서기 좋아하고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다들 다음 투자는 어떤 분야로 진행할지 공식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엔터 쪽 사업을 진행할 줄은 몰랐지.]앞서 이루어진 몇 건의 투자에 대해 은밀히 소씨 그룹 내부에서 SY의 종적을 포착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SY과 민씨 그룹이 협력하고 있다는 정보를 놓칠 뻔했다.“지난번 인수 합병을 대대적으로 크게 벌인 것조차가 수상했어. 하은철 삼촌은 그렇게 나대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오히려 아주 신중하고 진중한 스타일이지…….”[맞아.]소지나도 그의 말에 찬성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때 왜 그렇게 대놓고 일을 크게 벌였는지 추측이 난무했거든.]공항 라운지로 들어간 소지엽은 바로 이서의 그림자를 찾았다.“아마도 내가 M 국에 가면 알게 될지도…….”소지엽이 몇 걸음 빨리 걸었다. 이내 말투도 빨라졌다.“누나, 먼저 끊을게. 맞다. 내 스케줄 비밀로 해줘. ML 국 일 처리 끝나는 대로 M 국으로 갈 거야.”[알았어, 행운은 빈다.]이서 옆에 도착하자, 소지나와의 통화도 끝났다.이서가 웃으며 물었다. “여자 친구랑 통화했어?”소지엽의 얼굴에 비친 웃음이 살짝 경직되었다. 하지만, 이서의 경계심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소지엽, 네 여자 친구 얘기나 좀 해 봐?”소지엽의 시선이 임하나한테 떨어졌다.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하고.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서의 친구, 만만치 않다.“응, 우
지환의 눈은 깊고 매혹적이었다.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칫 빠져들어 갈 것 같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지환은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녀는 황급히 손으로 막았다. “당신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왜 M 국의 카운티 정부에 기혼으로 등록되어 있죠? 난 못 믿겠어요.”“시스템에 오류가 생겼나 봐.” 지환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그윽한 눈으로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여보, 우리가 함께한 지도 꽤 됐잖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모르겠어?”그 말에 이서는 살짝 흔들렸다.사실, 지금까지 함께 지내면서 이번 일을 제외하고는 그는 그야말로 완벽한 남편이었다.그녀는 눈을 들어 지환을 보았다. “나…… 정말 당신 믿어도 되는 거예요?”“물론이지.”그는 이서의 손을 자기의 가슴 위치에 올려놓았다.이서의 마음에 쌓였던 굳은 얼음은, 지환의 가슴에서 들려오는 투박하고 힘찬 심장박동 소리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지환의 이름을 막 부르려던 찰나, 지환의 뒤에 갑자기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어릿광대처럼 튀어나왔다. “하하하, 바보, 또 속았네! 메롱 메롱, 우리 결혼했지롱, 아이도 있지롱. 넌 그냥 남의 남편을 뺏은 세컨드, 불륜녀야.”“아니야……!”이서가 갑자기 눈을 떴다.주위에서 쏟아지는 의문의 눈빛을 마주하고서야 악몽을 꾸었다는 것을 알았다.이서는 손을 뻗어 이마에 받치고 비명을 듣고 달려온 스튜어디스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스튜어디스가 부드럽게 물었다. “물 한 잔 드릴까요?”“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네, 주세요.”두 사람은 서로 다른 얘기를 했다.스튜어디스는 의아한 눈빛으로 되물었다.“물 한 잔 부탁합니다.”이서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었다. 스튜어디스가 몸을 돌려 물을 가지러 갔다.스튜어디스가 떠나자, 이서는 몸을 곧게 펴고 소지엽이 건네준 티슈를 받았다.“하나는?”“너무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 비지니석에 가서 쉬라고 했어. 악몽 꾼 거야?”이서는 고개를 끄덕
소지엽은 슬픈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왠지 유난히 우울해 보였다. “가끔은 여자 친구보다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더 필요하고 그리울 때가 있는 거야.”이서는 눈을 깜빡이며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가족들이…… 잘 안 해줘?”소지엽은 불쌍한 컨셉으로 이서의 동정심을 자극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1, 2초 동안 잠시 멍해 있었다.“나…… 나 밖에서 나온 자식이잖아. 어떻게 나에게 잘해주겠어?” 그는 이상한 눈빛으로 이서를 보았다. “너 몰랐어?”이서는 눈을 깜박거리더니, 한참 후에야 문득 깨달았다.그때도 소씨 집안 배경에 어떻게 심씨 집안 딸을 중매로 맺어주나 싶었다. 결국 비슷한 집안끼리 정략결혼으로 이어지는 상류층 사회에서, 소씨 집안 정도라면 4대 가문의 여자와 결혼하는 게 맞았다.‘소지엽이 사생아라니.’이서가 전혀 모르는 눈치를 보이자, 소지엽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내가 소씨 가문으로 들어가면서 아주 시끄러웠지, 너 몰랐어?”그제야 이서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유학길에 오른 뒤, 두 사람은 전혀 교집합이 없었다.‘내가 사생아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인데, 이서는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혹시 내가 여덟 살 이전에 일어난 일인가? 맞아?” 이서는 말을 이었다.“나는 여덟 살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어.”소지엽은 잠시 동안 뭔가를 생각한 듯 중얼거렸다. “그때, 너 이미 유학 갔구나.”“아?” 제대로 듣지 못한 이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소지엽을 바라보았다.소지엽은 이서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서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세 사람이 ML 국에 도착한 후, 소지엽은 목적지의 항공권을 아직 예약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서 등과 함께 그들이 묵었던 호텔로 갔다.‘지난 번에 ML 국에 혼자 왔을 때는 허탕을 쳤는데, 이번에는 이서와 함께 오다니…….’약속된 여정은 아니었지만, 하늘이 그에 대
그녀는 필사적으로 눈을 몇 번 깜박거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나…….”하나는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서야,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지금부터 제대로 생각해 봐. 지환 씨가 중혼인 건 확정된 사실이야. 난 네가 이 감정에 빠져 허덕이는 게 싫어. 한 위대한 철학자가 이런 얘기를 했어. 지난 사랑을 잊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거라고…….”이서가 아무 말이 없자, 임하나는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설마 그를 용서하고, 일부다처제로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할 생각은 아니지?”이서는 또다시 비행기에서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싫어!”이서의 기준으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만약 두 사람 사이에, 세 번째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녀는 차라리 이 감정을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그럼 너…….”이때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서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오, 잠깐만, 곧 갈게.”임하나는 소지엽의 물음에 대답하며, 이서의 손을 잡았다.“이서야, 지금 당장 답을 안 해도 돼. 하지만, 곰곰이 잘 생각해 봐. 이건 인생이 걸린 큰 문제야.”이서는 망연자실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가자, 먼저 밥 먹으러 가자.”이서는 숨을 몇 번 들이마시며, 이 문제로 인해 복잡한 마음을 억누른 후에야 임하나와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하지만 식당에 도착하니, 커플들이 참 많이 보였다. 이서의 머릿속에 하나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이서야, 너 왜 그래?”소지엽은 저녁 식사 시간 내내 멍하니 있는 이서를 보며 걱정이 되었다.“이서야!” 하나도 눈치챘는지 이서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비행기에서 제대로 못 쉬었지?”이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임하나가 그녀에게 눈짓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이서는 지금 머리가 흐리멍덩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임하나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녀가 보낸 신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먼
이서는 손을 뻗어 임하나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의 목에 비비적거렸다.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두 친구는 또 한참 대화를 나누고서야 깊은 잠이 들었다.같은 시각,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소지엽은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온통 이서가 멍한 표정이었다.이서가 얘기하지 않아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 분명히 남편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남자를 생각하자, 질투심이 불타오르고, 그러자 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걸 가졌으면서 귀히 여기지 않는다니!’……H 국.민씨 집안.이하영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뭐라고?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하늘로 날았겠어? 땅으로 꺼졌겠어? 왜 찾을 수 없다는 거야?”집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 우리 쪽 사람들을 모두 동원했는데 그림자도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사모님 쪽 정보에 착오가 생긴 거 아닐까요?”이하영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착오는 무슨 착오? 이 세 사람, 내가 직접 바에서…….”자신이 실언한 걸 깨달은 이하영은 재빨리 입을 막고 다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 없어. 착오가 아니라고. 이 세 사람, 바에서 출몰하면서, 술에 취한 여자들을 폭행했다고 들었네. 그렇게 사고 치고도 줄곧 무사했는데, 멀쩡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갑자기 사라지냐고?” 이서에게 약을 먹이는 건 이하영과 이서정이 상의하에 낸 아이디어였다. 이 일로 괜히 연루될까 봐 일부러 술집에서 아무런 상관없는 세 사람을 찾아 사건을 의뢰했다. 이 일이 십중팔구 확실하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며칠 뒤면 이서의 누드 사진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세 사람이 수증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이하영이 집사에게 부탁한 거였다.이 일에 대해서는 민호일에게 감히 얘기하지 못했다.바로 이때 집사의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미안하다는 제스처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모님, 전화
다음 날 잠에서 깬 소지엽은, 이서가 어제처럼 기분이 다운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기우였다. 그녀는 잠을 잘 잤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고, 전혀 속앓이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지엽은 그녀의 자기 치유 능력에 감복했다.“오늘 어디로 놀러 갈 거야?”소지엽은 일부러 고민하는 척했다. “아직 티켓을 구하지 못해서 ML 국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임하나가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목적지로 가는 항공편이 없는 거야? 아니면 ML 국의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우리 도련님께서 항공권을 예매할 수 없는 거야?”소지엽은 임하나가 무언가 눈치챘다는 걸 짐작했다.그래서 임하나를 바라보며 화끈하게 얘기했다. “네 말이 맞아. 두 가지 이유 다!”임하나가 입을 삐죽거렸다.이서는 두 사람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 튀는 대결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번에 우리가 ML 국에 온 주된 목적은 목격자를 찾는 거야. 그래서 우리의 스케줄에는 여행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관광지 여행 가고 싶으면 매니저에 현지 여행 가이드를 붙여달라고 하면 돼.”“…….”“아이고 도련님, 정말 유감이네, 어떡하지? 함께 할 수 없겠네.” 임하나는 일부러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멍해진 소지엽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이서를 따라갔다. “그럼 나도 함께 가.”“아니야, 우린 이미 충분히 너한테 민폐 끼쳤어.” 이서는 더 이상 소지엽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너도 할 일 있잖아. 참, 너는 비행기표 아직 못 샀다고 했지? 이 근처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거기 와이파이 신호가 빵빵하더라고. 거기에서 예약하면 될 거야.”소지엽은 드디어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찧는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았다.“좋아, 하지만 조심해. 늘 안전에 신경 써야 해.”“응, 알았어.”이서는 손을 흔들며 소지엽과 작별을 고했다.두 사람은 몇 걸음 걷다가 택시 한 대를 불러 세웠다.이서는 그날 스키장을 다녀온 호텔 투숙 고객 명단을 임하나에게 건넸다.외국인 관광객을 제외하고, ML 국 현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