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희는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단지 이서 곁에 계속 있고 싶어서,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건 아닌지…….’……이서정은 이하영과 티타임을 가질 때, 이서가 서나나와 계약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무명의 여자 연예인이라는 얘기에 이서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서정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이하영은 즉시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서정 씨, 무슨 일인데 그래?”이서정은 즉석에서 욕설을 퍼붓고자 하는 욕망을 꾹꾹 내리 참았다.“회사 일이에요. 저 먼저 가 볼게요.”그러고는, 성큼성큼 카페를 걸어 나갔다.매니저가 바삐 따라나섰다.카페를 나서자, 이서정은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윤이서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내가 그 무명 배우보다 못하다는 거야, 뭐야?”매니저는 이마의 식은땀을 훔쳤다. 이서정의 사고회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윤수정과 계약했다고, 이런 듣보잡 서나나랑 계약해서 나를 멕이는 거야?”“언니, 화내지 마요.”“내가 화 안 나게 생겼어? 누군가는 이번 기사로 관심도가 올라가겠네, 빈대가 따로 없어. 아…… 열 받아.”‘빈대’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이서정은 갑자기 지난번 지환의 선물 사건이 생각났다.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증오와 분노가 함께 분출하면서, 그녀는 매니저가 들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이서정을 뒤 따라 나오던 이하영은 이 장면을 보고 앞으로 다가갔다. “서정 씨, 무슨 일이야? 대체 어떤 놈이 서정 씨 기분을 건드린 거야?”순간 짜증이 확 밀려온 이서정은 눈시울을 붉혔다. “누구겠어요? 그 윤이서죠!” 이하영도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도 윤이서만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하지만 이상언의 아내라고 하니, 윤이서에게 손쓰려고 해도 함부로 나댈 수가 없었다.“언니, 그거 아세요? 윤이서, 사실 이상언 와이프가 아니래요, 우리가 지난번에 속았어!”“엥? 그게…… 무슨 소리야?!”이하영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윤이서가 이상언 부인이 아니라고?!”“네,
아파트로 돌아온 이서는 줄곧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아무 생각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심장은 칼로 에이듯이 아프고 쓰라렸다.무수히 많은 칼날이 심장을 찌르고 도려내고, 다시 뒤집어서 또 찌르고 잘라내는 것 같았다…….여러 번, 그녀는 아파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심지어 심적인 고통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하지만 그녀는 아직 잘 살아 있다.몸에 피가 흐르고, 폐로 호흡할 때마다 전해지는 고통을 똑똑히 느끼면서.그녀는 무릎을 꼭 껴안고 웅크리고 앉았다. 지난달 하은철과 헤어졌을 때의 고통으로 지금의 고통을 잊으려고 애썼다.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헛수고였다. 그녀는 이미 하은철에게 받은 고통과 상처를 잊은 지 오래되었다.마음에서 오는 고통을 억제할 수 없자, 이서는 술로 자신을 마비시키는 방법이 생각했다.그녀는 무거운 몸을 끌고, 택시를 타고 바(bar)로 갔다.오색찬란한 조명 아래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그녀가 마음 놓고 울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이서는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술을 여러 잔 시켜놓고 바 테이블에 앉아 한 잔씩 연거푸 들이켰다.어둠 속에서 두 쌍의 눈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여섯 번째 잔을 들이켰을 때 이서는 머리가 띵하기 시작했다.발은 땅을 밟고 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통증도 기적적으로 심장에서 머리로 옮겨갔다.그녀는 턱을 괴고 천장의 오색 찬연한 불빛을 바라보았다.점차, 그 빛들이 모여 선이 되면서 지환의 모습을 그려냈다.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이서는 놀란 나머지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술잔에 다시 지환의 모습이 아른거렸다.그녀는 황급히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그런데…… 그녀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지환의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났다.마치 걸음마다 따라다니는 악마처럼, 한 걸음씩 그에게 다가
화가 난 그녀는 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툭툭 때렸다. “꺼져, 꺼져, 더 이상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맞은 남자는 멍하게 서서 일행을 쳐다보았다.일행도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엉큼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얘기하지 말고 그냥 데려가자.”말하면서 두 사람은 바로 앞으로 다가가 이서를 양쪽에서 부축해 세웠다.바 안은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얘기하는 소리에 시끄러웠다. 아무도 이쪽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수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서를 바에서 데리고 나오기 바쁘게, 차 한 대가 달려왔다.그들은 재빨리 이서를 차 안에 쑤셔 넣고 출발했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 안에서 이상언이 몸을 곧게 펴고 앉으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차에 태운 게 이서 씨 맞지?”지환의 얼굴이 더없이 차가웠다. 그는 묵묵부답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분명히 봤다.차 안에서 두 남자가 이서의 몸에 손을 대고 있었다. “오우, 예쁜데? 이번에도 완전 못난이인 줄 알았는데……. 앗, 감히 날 꼬집다니? 난 이렇게 앙칼진 여자가 좋더라. 하하하!”이서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녀의 시야에 지환밖에 없다는 사실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그래서 손으로 앞에 보이는 모든 환각을 모질게 꼬집고 물면서, 마음속 고통을 덜어내려고 했다.“나쁜 놈! 개자식! 죽여버릴 거야! 왜 날 속였어? 왜? 왜?”퍽퍽퍽 주먹으로 때리는 소리가 차 안에서 메아리쳤다. 처음에는 땡잡았다고 생각했던 두 남자는 골치 아프기 시작했다. “이 여자 힘이 왜 이렇게 세? 아이고, 내 가슴…….”“X발, 이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 오늘 X 됐다!”앞에서 운전하는 사람이 이미 난리 난 뒷자석을 보며 한마디 거들었다.“야, 야, 좀! 너희들 너무 급한 거 아냐? 같이 즐겨야지…….”“미친 새끼, 뭔 소리하는 거야? 장난쳐?! 지금 즐기는 거로 보이니?”“너도 당해 봐. 야, 그나저나 너 대체 이 여자 술에 수면제
뒷좌석에 안전벨트를 하고 있는 이서는 불편한지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앞 좌석을 차고 손으로 휘둘렀다. 마치 에너지를 발산할 곳이 없어 아무 데서나 힘 자랑하는 떼쟁이 아이 같았다.지환은 부득이하게 차를 도로 옆에 정차했다.그는 차에서 내려 자신의 넥타이를 풀었다. 섹시한 쇄골이 셔츠 밖으로 드러났다.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그는 그제야 몸을 숙여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이서를 바라보았다.갑자기 누군가가 뚫어지게 쳐다보자, 술에 곤죽이 된 이서도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빨간 입술은 마치 잘 익은 열매처럼 살짝 벌어져 있었다. 그는 먹고 싶다는 충동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지환의 목젖이 힘겹게 움직였다.그는 손가락으로 이서의 입술을 어루만지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이러는 게 얼마나 매혹적인지 알아?”지환은 다시 침을 삼켰다.그는 손을 뻗어 이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멘붕 직전, 이성이 고삐가 살짝 풀렸다.그는 몸을 숙여 한 손으로 차 문을 받치고, 얇은 입술로 이서의 뜨거운 입술을 포갰다.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가 막 입술을 떼려는데, 이서의 팔이 덩굴처럼 그의 목을 되감았다.그녀의 적극적인 키스에, 지환은 하마터면 이성을 잃을 뻔했다.하지만 곧 이서를 진정시켰다.“자기야, 먼저 집으로 가자.”이서는 그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지금 이 느낌이 너무 좋았다.지환에 의해 뒤로 떠밀린 이서는 불만을 품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마치 달콤한 사탕을 구걸하는 아이처럼. “나 줘.”지환은 피가 혈관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성 잃은 야생마가 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썼다.그러고는 재빠르게 손에 든 넥타이로 이서의 두 손을 묶은 후, 문을 닫고 앞자리로 돌아왔다.뒷좌석의 이서가 어떻게 애원하든 아랑곳하지 않았다.다행히도 10여 분 후에 마침내 이서의 집에 도착했다.지환에 안전벨트를 풀고 이서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불쌍한 세 영혼은 다시 수영장에 던져졌다. 물 먹이고, 들어올리고, 물 먹이고, 들어올리기를 반복하며…….지환이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지환이 오자, 세 사람 모두 동시에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갑자기 물에서 나오는 게 무서웠다. 수영장이 이토록 안락하게 느낀 건 처음이었다.사물의 발전은 인간의 의지로 좌우지할 수 없다.세 사람은 여전히 무자비하게 물에서 끌어올려져 지환의 앞에 던져졌다.그는 손에 든 칼을 가지고 놀며 세 사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그러나 세 사람은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그들은 손이 발이 되도록 미친 듯이 용서를 빌었다.“사장님, 저희가 눈깔이 삐었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앞으로 다시는 나쁜 짓 안 하겠습니다.”성의를 보이기 위해 세 사람은 머리를 바닥에 쿵쿵 박으며 머리를 조아렸다.곧 이마가 터졌다.지환은 칼날을 쓰다듬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냈어?”세 사람은 단호하게 부인했다. “아닙니다, 그냥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술에 취했길래 나쁜 마음먹었던 겁니다. 예전…… 예전에도 바에서 예쁜 여자 몇 명을……, 하지만 저희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 여자가…….”지환은 칼을 접고 그들의 말을 끊었다. “그래, 그럼 어느 쪽 눈으로 그 여자를 봤는지 말해 봐.”세 사람은 눈을 깜빡였다.지환은 칼을 세 사람 앞에 던졌다. “눈깔을 도려내면 봐줄게!”세 사람은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또다시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려 용서를 빌었다.지환은 그들의 애걸복걸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부탁해.”“알았어.”수영장에서 나온 뒤에도, 지환의 짜증스러운 기분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지환을 따라 나온 이상언이 지환에게 시가를 건네며 비아냥거렸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체력이 완전 저질인데?”지환은 이상언을 무시하고 시가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을 들이마신 후에야 연기를 뿜었다.우윳빛 담배 연기가 그의 눈에 비친 무력감을 감쌌다.“이서 씨한테 뭐라고 해명할 거야
이서는 오후가 되어서야 차를 몰고 어젯밤 술 마셨던 바(bar)로 갔다.막 영업을 시작한 가게 내부에는 점원 몇 명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이서가 어제의 CCTV를 요구하자, 직원들은 난색을 보였다.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제 낯선 남자들에게 끌려가 하마터면 큰 사고당할 뻔했거든요. 신고해도 괜찮겠어요?”“저…… 그럼 잠깐만요. 매니저한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잠시 뒤 직원이 남자 한 명과 다시 나타났다.남자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매니저입니다. CCTV를 확인해 보고 싶으시다고요? 이쪽으로 오세요!”매니저는 이서를 보안실로 데려갔다.“혹시 어느 시간대의 영상을 보고 싶은가요?”이서는 시간을 알려주었다.보안실 직원은 즉시 해당 시간대의 CCTV 영상을 확인시켜 주었다.이서는 곧 CCTV에서 두 남자의 얼굴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두 남자의 얼굴을 캡처해 구태우에게 보냈다.[태우 씨, 이 두 사람 좀 찾아주세요.]소지엽과 함께 술을 마시던 구태우는 이서가 보낸 문자를 보며 웃었다.그는 소지엽에게 문자를 보여 주었다. “내가 뭐랬어? 진작부터 우리 이쪽 일 하자고 했지, 그랬으면 지금 윤이서가 내가 아닌 너에게 의뢰했을 텐데…….”소지엽은 이서 이름이 뜬 걸 보자 바로 구태우의 핸드폰을 빼앗았다.“야야야, 뺏지 마. 핸드폰 줘.”구태우는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말했다.“지엽아, 너 증거조사하고 자료 수집하는 데 소질 있잖아…… 아마 그때 네 아버지가 반대하지 않았으면, 우리 지금 북성시 최고의 사설탐정사를 운영하고 있을 텐데. 그나저나 이번 일…… 네가 한번 해보는 건 어때?”소지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윤이서’라는 이름에 고정되었다.구태우는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할 거야, 말 거야?”소지엽은 한참 뒤에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게.”구태우가 웃으며 말했다.“어때? 그래도 네 마음 알아주는 건 나밖에 없지? 네가 다짜고짜 이
그녀는 한 편으로 그때 거절 의사를 표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백이라도 했으면 자뻑이 심한 여자라고 생각했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물론이지, 얼른 들어와.”이서는 문 옆으로 비켜섰다. 소지엽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소지엽에게 물을 한 잔 따라준 뒤, 그가 전해준 서류를 펼쳤다.이서가 서류를 보고 있을 때, 그는 이서의 집을 훑어보았다.집은 크지 않았지만,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아늑하고 심플했다. 소지엽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여기에 전혀 남자의 기운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이 두 사람 실종됐어?”이서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지엽은 그제야 머릿속의 잡생각을 떨쳐냈다.그는 정색하며 말했다. “응, 어제저녁에 바에 들어간 후, 나오지 않았어.”그러고는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저 사람들을 조사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의 자료를 살펴본 소지엽은 패거리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화려한 전과를 자랑하는 세 사람은 술에 취한 여자를 성폭행하고,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유포한다며 피해 여성들을 협박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막았다.이서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들이 술집에서 나오는 CCTV 영상은 없어?”“응, 없는데.” 소지엽이 고개를 저었다.이서가 눈썹을 찌푸렸다.‘아닌데? 어제 분명 두 남자가 날 차에 태웠는데?’‘설마 내가 착각했나?’“무슨 일이야?” 소지엽은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아니야, 실종됐으면 어쩔 수 없지 뭐.”“왜 그들을 뒷조사하는지 아직 얘기 안 했다?” 소지엽이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이서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이서는 소지엽이 어젯밤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어젯밤에 술 먹다가 만났어.”“괜…….” 소지엽은 긴장해서 얼굴빛이 하얗게 되었다.“괜찮아. 안전하게 집에 갔어.”소지엽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썹을 찌푸렸다. “설마 혼자 술
소지엽은 아직 가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 이서와 같은 곳에 있을 수 있는 기회였다.구태우는 소지엽이 지금 이서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영상전화를 걸어왔다.[오우, 제법인데? 이렇게 빨리 상대방의 진영으로 들어갔어?] “조용히 해!”소지엽이 긴장한 듯 이서의 방 문을 한 번 쳐다보고는 움직임이 없자 그제야 화면 속 구태우를 보았다.“일이 잘못되면 가만 안 둘 거야.”구태우는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아이고, 딱 봐도 결혼하면 공처가 될 놈이네.]“뭔 상관이야? 네 앞가림이나 잘해.”[왜? 여지가 좀 보이니까 세상 밝구나? 잊지 마, 윤이서 아직 유부녀거든. 이혼 안 했다고.]소지엽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문밖에서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누가 왔어. 나중에 통화해.”소지엽은 전화를 끊고 문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마침 문을 열려고 하던 지환과 정면으로 부딪쳤다.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지?”거실에 들어온 지환은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이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 안심되었다.“이서가 초대했어요.” 소지엽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지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지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이서가 초대했다고?” 고개를 돌려 지엽을 바라보는 지환의 눈에 비웃음이 서렸다. “난 모르는 일인데?”“둘이 싸웠잖아요!” 소지엽은 허리를 곧게 펴고 말했다. “그러니까 모를 수도 있죠.”지환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소지엽의 옷깃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인 거 몰라?”그는 일부러 ‘부부’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지환의 아우라는 점차 놀라울 정도 강해졌다. 소지엽의 눈에도 은근 비아냥거리는 표정이 나타났다.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죠. 하지만, 부부 싸움이 이혼의 지름길인 건 모르나 봐요.” 지환은 전신의 힘을 다해 소지엽의 옷깃을 꽉 잡았다. 하지만 잠시 뒤 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