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자기야!”“가요.”지환은 이서가 차갑게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알았어, 그럼 먼저 갈게. 일 있으면 전화해.”말을 끝내고, 제자리에 서서 잠깐 침묵을 한 뒤 몸을 돌려 문을 닫고 나갔다.‘달칵’하는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서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30 여분 후, 이서는 얼굴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고개를 들어 보니 화장이 번져 팬더가 된 자기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그동안 마음속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일에 몰두했지만, 고통은 사그라들기는커녕 눈덩이처럼 점차 커졌다.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루나와의 대화방을 열었다.지난 번 가방을 보냈다는 문자 이후로 아무런 대화 내용이 없었다.시차를 고려했을 때 M 국 출근 시간까지 아직 18시간 남았다.지금 이 순간, 이서는 수면제라도 먹고 싶었다. 답을 알게 되는 순간까지 잠을 잘 수 있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그녀는 화장을 지우고 거실로 돌아왔다.임하나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대자로 뻗어 잠자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이서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아마도 최근 며칠 동안 처음으로 제대로 웃어본 것 같았다.하지만 웃음도 잠시 곧 눈살을 찌푸렸다.그동안 회사와 지환의 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하나와의 연락이 좀 뜸했었다. ‘하나야, 대체 뭔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하나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이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날 아침이었다.침대에서 일어나 문까지 걸어가서야 이서는 여기가 임하나의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식탁 위에는 그녀가 매일 먹는 것과 비슷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임하나는 여전히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고, 이불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이서가 식탁에 다가갔을 때, 뒤에서 임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굿모닝!”뒤돌아보니 임하나가
이서의 눈빛을 본 하나는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꿀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유유히 입을 열었다. “나, 정직당했어.”이서가 눈썹을 찡그렸다. “이렇게 큰일을 왜 얘기 안 했어?”“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하나가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이 자질구레한 일들로 너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어.”“우리 친구잖아.”“알았더, 알았더. 내 얘기 들을 꼬야, 말 꼬야?”하나의 애교에 이서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그래, 얘기해 봐.”“사실, 일은 아주 간단해. ML 국에서부터 얘기해야 하는데…….”이서와 지환이 먼저 귀국 후, 하나와 상언은 계속 남아 증인을 찾았다.그러나 수십 명의 증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휴가가 곧 끝나가자, 하나는 부득이 증인 찾는 걸 포기하고 귀국했다.이번 일은 하나가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뒤집어쓰는 거 정도로 ‘가볍게’ 끝나는 줄 알았다.하지만 회사로 돌아온 지 사흘 만에 임하나는 인사팀 팀장한테 불려 갔다.팀장의 말로는, 누군가가 회사 민원센터에 임하나가 본인 남자 친구를 빼앗은 파렴치한 여자라며, 행실 무개념 사원으로 신고했다는 것이었다.어리둥절한 임하나는 회사 제보 이메일을 읽어 보고서야 대충 감을 잡았다.“누가 보낸 거야?”“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추측건데 나연일 거야.”이름을 듣자마자 하나는 혐오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ML 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바꿔치기한 거야.”“어떻게?”“나와 상언 씨가 휴가간 걸, 자기와 상언 씨가 휴가 가고, 이상언에게 치근덕댄 걸 나로 바꿔치고 하고……. 우리 전용기 타고 가서 나와 상언 씨가 함께 갔다는 걸 증명할 방법도 없어.”이서가 눈썹을 찌푸렸다.“치근덕거린 증거는 조작할 수는 없겠지?”이서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하나는 인사팀 팀장의 미련하고 오만한 면상이 떠오르며 화가 치밀어 옳았다.“증거? 말도 마라. 말하니까 열 받는다. 우리 회사 인사팀 팀장, 60대인데, 글쎄 사진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도 몰
하나는 썩소를 지었다. “예전처럼 원하는 남자를 손에 넣고 차버렸을 때는 상대방이 바람피울까 봐 전전긍긍하고 이런 건 없었거든. 바람 피우기 전에 차버렸으니까.”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임하나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 있는 그녀의 눈빛은 참으로 슬퍼 보였다.‘그래.’‘사랑은 힘들어. 사랑의 유효기간을 늘리려면 쌍방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데…….’“넌?” 임하나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보며 물었다.이서는 얼굴에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흔들렸다. “나…… 내가 전에 두렵다고 얘기했던 거 기억나?”임하나가 눈을 깜빡였다.“남편이 살인범……, 경찰이 들이닥쳐서야 아내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임하나는 자세를 똑바로 하고 앉았다.“너 지금…….”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그 사람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대체 무슨 일이야?”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나도 아직은 몰라, 기다려 봐야 해.”‘이제 2시간 남짓 기다리면 모든 진상이 밝혀진다…….’“하나야, 혹시 그 일…… 구태우 씨에게 의뢰해 보는 건 어때?” 이서는 화제를 다시 임하나의 문제로 돌렸다.“됐어. 그쪽에 CCTV도 없고, 그리고 너무 오래전 일이라…….”임하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결백을 증명하는 게 이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마침 핑계 대고 잠시 쉬는 거지 뭐. 정 안 되면 가업 물려받으면 돼. 다만 영감쟁이가 일궈 놓은 거라, 좀 더러운 거 같아서…….” 이서는 조용히 임하나를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나랑 같이 회사 갈래?”“아니, 나 집에 있고 싶어.” 임하나는 이서에게 문을 열어주었다.“얼른 가, 나 신경 쓰지 말고,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나 먹여 살려.”‘먹여 살려’라는 말에 이서는 심장이 찌릿했다.전에 지환도 똑같은 얘기를 했었다.지환을 생각하자, 이서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녀는 머리를 내저으며, 머리속에 자리잡고
거리를 둔 이서의 말투에 소지엽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오늘 내가 온 건 어제 일을…….”소지엽이 말을 이었다.“어제 누나가 윤씨 그룹에서 우리 엔터 회사의 배우를 홍보대사로 계약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그런가……요?”“네.” 소지엽이 공적인 자세로 돌입하자, 긴장했던 이서는 그제야 조금 숨을 돌렸다.“네, 맞습니다. 서나나 씨요, 우리 쪽에서 작성한 계약서입니다.”“광고비는……, 조금 다른 형식으로 계약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최저 광고비에, 이익의 10%를 더한 금액으로 광고 대행비를 지급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이서는 서나나의 이전 광고료를 확인해 보았다. 1년 단위로 1억 혹은 그보다 약간 높은 가격에 책정되었다. 현재 회사의 재정 상태로는 한 푼이라도 요긴하게 써야 할 판이었다. 이서가 제시한 것은 8천만 원의 광고료와 추후 배당금 지불 형식이었다.소씨 그룹의 입장에서 보면, 밑지지도 않고 이익이 되지도 않는 계약이었다.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이익이 없다는 건 곧 손해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래서 이 계약이 성사될지에 대해서는 이서도 전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하죠.”소지엽이 화끈하게 답했다.“제시한 방식대로 계약합시다.”이서는 얼떨떨했다. 가격 흥정을 염두에 두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소지엽은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이서를 바라보았다.“윤 대표님?” 이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소지엽이 멋진 필체로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지엽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네.”“저희가 제시한 가격이 조금 짜죠?”“그런 셈이죠.” 소지엽은 사실대로 말했다.“그런데 왜…….”소지엽은 이서가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기 전에, 계약금은 안 준대도 이 계약서에 사인해 오라고 우리 누나가 얘기했어요. 전에 윤 대표가 누나를 도와준 적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감사함의 표시라고…….”그제야 이서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육
이서는 웃음을 지었다.“아니야, 서나나 씨 팬덤이 꽤 있더라고. 설령 웹드라마가 인기 끌기에 실패했다고 해도 팬층이 두꺼워서 다른 방식으로의 홍보 전략을 펼칠 수 있어.”심소희는 그제야 안심했다. “언니, 역시……! 몇 발 앞서 보고 계시는군요. 리스펙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이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심소희가 나간 후 그녀는 피곤한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하면서도 딴생각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루나 쪽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지환이 정말 중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뿐이었다.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이닥치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보고 대화방을 클릭했다.루나가 출근했을 시간이었다.그러나 아직 감감무소식이었다.이서는 채팅방을 열고 망설이다가 루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루나야, 안녕? 혹시 뭐 나온 거 있어?]문자를 보낸 후 이서는 바로 핸드폰을 화면을 꺼두았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곧 휴대전화 화면이 밝아졌고, 이서는 한쪽 눈을 감고 휴대전화를 보았다.루나가 메시지가 아닌, 이천의 전화였다.이서는 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이 비서님.”[사모님…….]이천은 눈앞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사모님이 어제밤 친구를 보살핀다고 제대로 못 주무시고 피곤할 거라고 하면서, 사장님이 저더러 영양제를 좀 가져다드리라고 했습니다. 저 지금 사무실 밑에 있는데, 잠깐 올라가도 되겠습니까?]이서는 미간을 눌렀다. “아…… 그래요? 그럼 직원 내려보낼게요.”[아닙니다.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지금 올라가겠습니다. 회사에 계시죠?]이서는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 “네, 그럼 올라가시면 됩니다.”전화기 너머의 이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네, 곧 뵙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보니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왔다는 알림이 떠 있었다.이서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떨리는 손으로 대화창을 열었다.루나가 보
“사모님, 무슨 일이세요?”이천은 들어오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소파에 주저앉아 있는 이서를 보았다. 마치 심한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이서는 이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앞에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단지 사람 그림자가 눈앞에서 움직일 뿐 누군지는 전혀 몰랐다.그녀는 순간 모든 에너지와 기를 빼앗긴 사람처럼 정신이 흐리멍덩했다.잠시 멍하니 상황을 살피던 이천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대전화에 시선이 갔다.그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숙여 핸드폰을 주우려 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지환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이서가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달려들어 핸드폰을 빼앗았다.이천도 깜짝 놀랐다.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반응했다. “사모님, 괜찮으세요?” 이서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치켜뜨며 소리를 질렀다. “나가!” 지금 지환과 관련된 어떤 사람도 보고 싶지 않았다.이천은 이서의 핸드폰을 슬쩍 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지환의 혼인관계 증명서인 것 같았다.이천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지환과 이서가 갓 결혼했을 때,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이천은 M 국 카운티 정부 쪽에 지환의 결혼 유무 상태를 바꾸었다.‘설마 이 일로 회장님이 이중 결혼한 거라고 사모님이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냉정 중인 건가?’이 가능성을 생각하자, 등이 오싹해졌다.무언가를 해명하고 싶었으나 지금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건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뿐이었다.“사모님, 진정하세요.”“가! 나가!”이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녀가 또 폭발할 것 같은 조짐을 본 이천은 먼저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사실 오늘 이서를 찾아온 것도, 지환과 냉전 중인 이유를 알기 위해서였다.이런 뜻밖의 방식으로 진상을 알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이천이 떠나자, 기진맥진한 이서는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확실한 증거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애써
“뭔데요?”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이서가 그의 말을 끊었다. “됐어요, 이제 그만해요. 아직도 얼버무리잖아요……, 얘기를 들어 봤자 신빙성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시간을 줄 테니, 천천히 생각해 봐요. ……어떻게 하면 그럴싸하게 말을 꾸며댈지 잘 생각해서…… 정리 다 되면 다시 얘기해요.”말을 끝내고, 이서는 캐리어를 들고 성큼성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문까지 걸어갔을 때, 지환이 따라 나왔다.“어디 가는 거야, 내가 데려다줄게.”지환은 이서의 손목을 움켜쥐고, 애원하듯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거절하고 싶었지만, 목에 뭔가 걸린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눈을 꼭 감았다.이서가 거절하지 않자, 지환은 그제야 손목을 풀어주며 캐리어를 차 트렁크에 넣었다.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얘기 외에, 이서는 차에서 지환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지환과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할 힘도 없었다.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지환은 몇 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이서는 이미 차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심소희는 서나나 측 매니저와 연락을 취했다. 매니저는 곧 서나나의 팬 카페에 윤씨 그룹과의 협력 사항을 공식 발표했다.심소희는 해당 발표를 윤씨 그룹 홈페이지에 업로드했다. 이로써 홈페이지를 통한 정식 홍보를 시작한 셈이었다.별로 유명하지 않은 연예인이기 때문에, 별 파장이 없을 거라고 심소희는 생각했다.하지만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윤씨 그룹과 서나나가 모두 실검에 오른 것을 보았다.알고 보니, 하윤에서 이서정을 홍보대사로 발탁했다는 기사가 뜨면서, 윤씨와 하윤이 경쟁사라는 사실이 재조명되었다. 심지어 일부 인플루언서들은 양 회사가 모두 십이지 컨셉으로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며, 어느 쪽을 지지할 건지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심소희는 당연히 윤씨 그룹에 소중한 한 표를 찍었다. 투표 결과를 확인해 본 그녀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윤씨 그룹의 지지자는 고작 몇 명에 불과했다.아마 그 몇 명도 서나나의 팬일 것이다.“에효.”
심소희는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단지 이서 곁에 계속 있고 싶어서,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건 아닌지…….’……이서정은 이하영과 티타임을 가질 때, 이서가 서나나와 계약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무명의 여자 연예인이라는 얘기에 이서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서정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이하영은 즉시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서정 씨, 무슨 일인데 그래?”이서정은 즉석에서 욕설을 퍼붓고자 하는 욕망을 꾹꾹 내리 참았다.“회사 일이에요. 저 먼저 가 볼게요.”그러고는, 성큼성큼 카페를 걸어 나갔다.매니저가 바삐 따라나섰다.카페를 나서자, 이서정은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윤이서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내가 그 무명 배우보다 못하다는 거야, 뭐야?”매니저는 이마의 식은땀을 훔쳤다. 이서정의 사고회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윤수정과 계약했다고, 이런 듣보잡 서나나랑 계약해서 나를 멕이는 거야?”“언니, 화내지 마요.”“내가 화 안 나게 생겼어? 누군가는 이번 기사로 관심도가 올라가겠네, 빈대가 따로 없어. 아…… 열 받아.”‘빈대’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이서정은 갑자기 지난번 지환의 선물 사건이 생각났다.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증오와 분노가 함께 분출하면서, 그녀는 매니저가 들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이서정을 뒤 따라 나오던 이하영은 이 장면을 보고 앞으로 다가갔다. “서정 씨, 무슨 일이야? 대체 어떤 놈이 서정 씨 기분을 건드린 거야?”순간 짜증이 확 밀려온 이서정은 눈시울을 붉혔다. “누구겠어요? 그 윤이서죠!” 이하영도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도 윤이서만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하지만 이상언의 아내라고 하니, 윤이서에게 손쓰려고 해도 함부로 나댈 수가 없었다.“언니, 그거 아세요? 윤이서, 사실 이상언 와이프가 아니래요, 우리가 지난번에 속았어!”“엥? 그게…… 무슨 소리야?!”이하영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윤이서가 이상언 부인이 아니라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