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동은 급한 마음에 손에 든 서류를 두고 양전호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우기광이 소리를 질러 제지했다. “그만 좀 해!”“형님, 이게 우리의 마지막 기회야. 지금 투자금을 철회하지 않으면, 우리 투자한 돈 다 날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그래도 뒤에서 칼 꽂을 수는 없어!”“형님, 장사는 장사고, 도의는 도의야, 도의를 위해서 장사를 버릴 수는 없잖아!”우기동은 속이 타 죽을 것 같았다.우기광은 매섭게 눈썹을 비틀며 손을 흔들었다. “난 이미 결정했어. 그리고 너 단디 들어라. 만약 네가 감히 나 몰래 투자금을 철회한다면, 우리 그 날로 인연 끊는 거다. 알겠냐!”우기광의 단호한 태도를 본 우기동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우기광 사무실을 뛰쳐나갔다.우기광은 회사 대문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투자금을 다 날려도 절대 뒤통수 쳐서는 안 된다니…….’……같은 시각, 식당에서 소지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서는 우기광 쪽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계약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별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서나나의 자료를 뒤져 보았다.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서나나는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무술도 잘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전 소속사는 그녀에게 액션 대역과 엑스트라만 시켰다.그래서 데뷔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이렇다 할 인기는 전혀 없었다.그녀가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귓가에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이서?!”이서는 고개를 들었다. 웬 야인이 눈에 들어왔다.잠깐 주저하다 물었다. “소지엽?!”눈앞의 소지엽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마 앞의 잔머리가 미간을 덮었고, 몸에 아무렇게나 걸친 와인색 긴 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 뭔가 큰 충격을 받은 사람 같았다.하지만 그의 눈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소지엽은 타임머신이 아직 발명되지 않은 게 한스러웠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집을 나서기 전으로 돌아갔으면 했다.오늘 아침
“잠깐만…….”이서는 일어서서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소지엽은 20여 년간 가슴에 묻고 있던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졌다.“이서야, 나…….” “하나?”창가 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임하나인 걸 확인한 이서는 소지엽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하나야? 여기 어쩐 일이야? 이건…….”테이블 위에 술병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이서는 임하나 손에 든 술잔을 빼앗았다.“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이미 술이 곤죽이 된 임하나는 눈앞의 이서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임하나는 술잔을 찾으려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다행히 눈치 빠른 소지엽이 바로 타이밍 적절하게 그녀를 부축했다.그러나 임하나는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소지엽을 확 밀쳐냈다. “꺼져, 이 사내놈들아!” 식당 안 손님들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보았다.“…….”임하나를 부축하며 이서가 소지엽에게 사과했다.“미안, 하나가 술이 많이 취했네.”그러고는 식당 직원을 불러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내가 결제할게.”“아냐, 내가 미안하잖아.”“친구 사이에, 술 한 잔 못 사니?”말을 마치고, 그는 임하나를 부축했다. “술을 진짜 많이 마셨나 봐, 내가 부축할게.”임하나를 잡는 순간, 그녀는 소지엽을 또 확 밀어 버렸다.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고마워. 그냥 내가 데려가는 게 낫겠어. 오늘 정말 미안해. 오늘 계약 건으로 할 얘기 있었는데…….”소지엽은 눈빛에 비친 허탈감을 애써 감추고자 했다. “괜찮아.”그는 걱정 어린 말투로 다시 물었다. “정말 혼자 괜찮겠어?”이서가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임하나를 잡아당겼다.“걱정 마, 먼저 간다.”말을 마치자 이서는 임하나를 부축하여 식당을 나섰다.멀어져가는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지엽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하게 따라나섰다. “그래도…… 내가 데려다주는 게 낫겠어!”말하면서 그는 이미 자발적으로 택시 한 대를 잡았다.이서는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 중인 임현태를
오늘 이서는 그녀의 완벽한 몸매라인을 잘 드러내는 정장을 입었다. 섹시했다.“내가 같이 밥 먹자고 여러 번 얘기했던 거 같은데.”그녀는 말하면서 소지엽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물컵을 받으며 소지엽의 손가락이 이서의 손을 스쳤다.찌릿찌릿했다. 감전된 듯한 느낌에 그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제야 두근거리는 심장이 다소 진정되는 것 같았다.“그러니까!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돼?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이서는 물을 다 마시고 나서야 소지엽의 빨개진 얼굴을 발견했다.“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소지엽은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얼굴에 홍조가 목까지 빠르게 번지며 땀까지 뻘뻘 흘렸다.“콜록콜록…… 나…….”“너무 덥지?”이서는 몸을 돌려 리모컨을 찾으러 갔다.“남자는 여자보다 열이 많아서 땀을 많이 흘리는 것 같더라.”두근거리는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오히려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곧 리모컨을 찾은 이서는 에어컨을 켰다.그리고, 곧 침실에 들어가 담요를 가져와 하나에게 덮어주었다. 소지엽은 이서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다.이서가 하나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모습을 보고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옅은 감탄을 내뱉었다.“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 거 같아.” 이서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소지엽은 순간 당황하여 어쩔 바를 몰랐다. “아……, 네가 하나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걸 보니까 힐링되는 거 같아. 어렸을 때 엄마도 나한테 이렇게 이불을 덮어주셨겠지? 사실,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이렇게 완벽한 너를, 하은철은 왜…….”말을 뱉고서야, 소지엽은 주제 넘은 얘기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미안, 내가…….”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다 지나간 일이잖아. 난 신경 안 써.”소지엽은 이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그녀를 기분을 살핀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정말…… 다 내려놓은 거야?”“응, 진작에…….”“남편 때문에?” 소지엽의 마음이 씁쓸했다.
“지환 씨?!”당황함도 잠시, 이서는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지환의 입술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의 온화한 시선은 이서 뒤에 있는 소지엽에게 떨어졌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거센 파도가 일렁이고 있는 것 같았다.온 사람이 이서의 남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안 소지엽도 순간 멍했다.심지어 눈앞의 이 남자가 어느 가문의 자제인지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검색해보기 시작했다.그러나 기억 속에서 지환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그는 저도 모르게 경계의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딱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다.소지엽이 대놓고 거리낌 없이 지환을 관찰하고 있을 때, 그는 소지엽을 슬쩍 훑어보고는 곧 고개를 숙이고 이서에게 이야기했다. “친구가 많이 취해서 집에 데려다주러 갔다고 임 기사가 연락해 왔길래 혹시 뭔 도움이 필요하나 싶어서…….” 말하면서, 그는 이서의 손을 잡았다.무언의 행동으로 주권을 주장한 행사한 셈이었다.지환이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화가 난 이서는, 두 남자 사이에 펼쳐지는 무언의 살벌한 대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별일 아니에요, 하나가 술에 취해서…….”“이분은?” 지환은 턱을 살짝 들어 소지엽을 가리켰다.“소지엽입니다.”소지엽은 자기 소개하며,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이서의 손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거나 신사적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서 남편분이시죠?”지환은 가볍게 지엽의 손을 훑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미안해요. 아내 손을 잡아야 해서 악수할 수가 없네요.”소지엽은 어리둥절했다.“…….”당황한 건 이서도 마찬가지였다.“자기야, 이제 갈까?”“하나가 너무 많이 취했어요, 난 오늘 여기서 하나 돌봐야 할 거 같아요.”지환은 이서의 뒷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같이 있어 줄게.”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방금 소지엽과의 분위기를 생각하고는, 잠깐 망설이다가 지환의 제안을 거
“여보, 자기야!”“가요.”지환은 이서가 차갑게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알았어, 그럼 먼저 갈게. 일 있으면 전화해.”말을 끝내고, 제자리에 서서 잠깐 침묵을 한 뒤 몸을 돌려 문을 닫고 나갔다.‘달칵’하는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서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30 여분 후, 이서는 얼굴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고개를 들어 보니 화장이 번져 팬더가 된 자기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그동안 마음속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일에 몰두했지만, 고통은 사그라들기는커녕 눈덩이처럼 점차 커졌다.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루나와의 대화방을 열었다.지난 번 가방을 보냈다는 문자 이후로 아무런 대화 내용이 없었다.시차를 고려했을 때 M 국 출근 시간까지 아직 18시간 남았다.지금 이 순간, 이서는 수면제라도 먹고 싶었다. 답을 알게 되는 순간까지 잠을 잘 수 있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그녀는 화장을 지우고 거실로 돌아왔다.임하나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대자로 뻗어 잠자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이서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아마도 최근 며칠 동안 처음으로 제대로 웃어본 것 같았다.하지만 웃음도 잠시 곧 눈살을 찌푸렸다.그동안 회사와 지환의 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하나와의 연락이 좀 뜸했었다. ‘하나야, 대체 뭔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하나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이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날 아침이었다.침대에서 일어나 문까지 걸어가서야 이서는 여기가 임하나의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식탁 위에는 그녀가 매일 먹는 것과 비슷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임하나는 여전히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고, 이불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이서가 식탁에 다가갔을 때, 뒤에서 임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굿모닝!”뒤돌아보니 임하나가
이서의 눈빛을 본 하나는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꿀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유유히 입을 열었다. “나, 정직당했어.”이서가 눈썹을 찡그렸다. “이렇게 큰일을 왜 얘기 안 했어?”“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하나가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이 자질구레한 일들로 너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어.”“우리 친구잖아.”“알았더, 알았더. 내 얘기 들을 꼬야, 말 꼬야?”하나의 애교에 이서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그래, 얘기해 봐.”“사실, 일은 아주 간단해. ML 국에서부터 얘기해야 하는데…….”이서와 지환이 먼저 귀국 후, 하나와 상언은 계속 남아 증인을 찾았다.그러나 수십 명의 증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휴가가 곧 끝나가자, 하나는 부득이 증인 찾는 걸 포기하고 귀국했다.이번 일은 하나가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뒤집어쓰는 거 정도로 ‘가볍게’ 끝나는 줄 알았다.하지만 회사로 돌아온 지 사흘 만에 임하나는 인사팀 팀장한테 불려 갔다.팀장의 말로는, 누군가가 회사 민원센터에 임하나가 본인 남자 친구를 빼앗은 파렴치한 여자라며, 행실 무개념 사원으로 신고했다는 것이었다.어리둥절한 임하나는 회사 제보 이메일을 읽어 보고서야 대충 감을 잡았다.“누가 보낸 거야?”“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추측건데 나연일 거야.”이름을 듣자마자 하나는 혐오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ML 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바꿔치기한 거야.”“어떻게?”“나와 상언 씨가 휴가간 걸, 자기와 상언 씨가 휴가 가고, 이상언에게 치근덕댄 걸 나로 바꿔치고 하고……. 우리 전용기 타고 가서 나와 상언 씨가 함께 갔다는 걸 증명할 방법도 없어.”이서가 눈썹을 찌푸렸다.“치근덕거린 증거는 조작할 수는 없겠지?”이서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하나는 인사팀 팀장의 미련하고 오만한 면상이 떠오르며 화가 치밀어 옳았다.“증거? 말도 마라. 말하니까 열 받는다. 우리 회사 인사팀 팀장, 60대인데, 글쎄 사진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도 몰
하나는 썩소를 지었다. “예전처럼 원하는 남자를 손에 넣고 차버렸을 때는 상대방이 바람피울까 봐 전전긍긍하고 이런 건 없었거든. 바람 피우기 전에 차버렸으니까.”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임하나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 있는 그녀의 눈빛은 참으로 슬퍼 보였다.‘그래.’‘사랑은 힘들어. 사랑의 유효기간을 늘리려면 쌍방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데…….’“넌?” 임하나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보며 물었다.이서는 얼굴에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흔들렸다. “나…… 내가 전에 두렵다고 얘기했던 거 기억나?”임하나가 눈을 깜빡였다.“남편이 살인범……, 경찰이 들이닥쳐서야 아내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임하나는 자세를 똑바로 하고 앉았다.“너 지금…….”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그 사람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대체 무슨 일이야?”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나도 아직은 몰라, 기다려 봐야 해.”‘이제 2시간 남짓 기다리면 모든 진상이 밝혀진다…….’“하나야, 혹시 그 일…… 구태우 씨에게 의뢰해 보는 건 어때?” 이서는 화제를 다시 임하나의 문제로 돌렸다.“됐어. 그쪽에 CCTV도 없고, 그리고 너무 오래전 일이라…….”임하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결백을 증명하는 게 이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마침 핑계 대고 잠시 쉬는 거지 뭐. 정 안 되면 가업 물려받으면 돼. 다만 영감쟁이가 일궈 놓은 거라, 좀 더러운 거 같아서…….” 이서는 조용히 임하나를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나랑 같이 회사 갈래?”“아니, 나 집에 있고 싶어.” 임하나는 이서에게 문을 열어주었다.“얼른 가, 나 신경 쓰지 말고,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나 먹여 살려.”‘먹여 살려’라는 말에 이서는 심장이 찌릿했다.전에 지환도 똑같은 얘기를 했었다.지환을 생각하자, 이서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녀는 머리를 내저으며, 머리속에 자리잡고
거리를 둔 이서의 말투에 소지엽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오늘 내가 온 건 어제 일을…….”소지엽이 말을 이었다.“어제 누나가 윤씨 그룹에서 우리 엔터 회사의 배우를 홍보대사로 계약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그런가……요?”“네.” 소지엽이 공적인 자세로 돌입하자, 긴장했던 이서는 그제야 조금 숨을 돌렸다.“네, 맞습니다. 서나나 씨요, 우리 쪽에서 작성한 계약서입니다.”“광고비는……, 조금 다른 형식으로 계약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최저 광고비에, 이익의 10%를 더한 금액으로 광고 대행비를 지급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이서는 서나나의 이전 광고료를 확인해 보았다. 1년 단위로 1억 혹은 그보다 약간 높은 가격에 책정되었다. 현재 회사의 재정 상태로는 한 푼이라도 요긴하게 써야 할 판이었다. 이서가 제시한 것은 8천만 원의 광고료와 추후 배당금 지불 형식이었다.소씨 그룹의 입장에서 보면, 밑지지도 않고 이익이 되지도 않는 계약이었다.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이익이 없다는 건 곧 손해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래서 이 계약이 성사될지에 대해서는 이서도 전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하죠.”소지엽이 화끈하게 답했다.“제시한 방식대로 계약합시다.”이서는 얼떨떨했다. 가격 흥정을 염두에 두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소지엽은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이서를 바라보았다.“윤 대표님?” 이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소지엽이 멋진 필체로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지엽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네.”“저희가 제시한 가격이 조금 짜죠?”“그런 셈이죠.” 소지엽은 사실대로 말했다.“그런데 왜…….”소지엽은 이서가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기 전에, 계약금은 안 준대도 이 계약서에 사인해 오라고 우리 누나가 얘기했어요. 전에 윤 대표가 누나를 도와준 적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감사함의 표시라고…….”그제야 이서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