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머릿속에는 그 여자가 보낸 마지막 사진이 갑자기 떠올랐다.유럽 궁정풍 드레스를 입은 소녀와 지환의 사진…….소녀의 반짝거리는 눈빛은 마치 바늘처럼 이서의 심장을 콕콕 찔러 댔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이서는 온 힘을 다해 지환을 밀어내려 했다. 이서의 저항을 본 지환은 마음속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곧 평소대로 회복되었다.“자기야, 왜 그래?” 이서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그녀는 식탁을 부축하고 있었다. 머리가 뒤죽박죽되어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일단 진정하기로 했다.‘먼저 증거부터 찾아야 해.’‘절대로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안 돼!’숨을 몇 번 깊게 들이마시고서야 이서는 겨우 핑곗거리를 찾아 둘러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갑자기 피곤해서요. 먼저 올라가서 쉬고 싶어요.”지환이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그래, 올라가 쉬어.”이 말을 들은, 이서는 사면받은 사람마냥 황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문을 닫은 그녀는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방금 하마터면 지환에게 넘어갈 뻔했다. 이서의 마음이 복잡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서 다시 루나의 대화창을 켰다.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더는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하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현재 명품백은 아직 M 국에 도착 전이다.잠깐 생각을 마친 이서는 제일 하기 싫어하는 일을 했다.그녀는 백화점 점원에게 전화해 운송장 번호를 받아 루나에게 보냈다.[오늘 쇼핑하러 나갔다가, 가방 하나 봤는데,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하나 샀어. 국제 우편으로 보냈으니까 확인해 봐.]이서는 무표정하게 메시지를 입력했다.그녀는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아부하는 일을 극히 싫어했다.하지만 지금, 지환이 중혼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그녀는 자세를 낮추었다.하루빨리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메시지가 발송한 지 1분도 채 안 되어 루나의 문자를 받았다.[고마워. 친구 사이에 뭐 이렇게까지……, 암튼 고마워 살 쓸게.]말을 마치고, 그녀
모든 준비를 끝내고, 욕실에서 나온 이서는 아직 자고 있는 지환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래층에 도착한 그녀는 혼자 운전하여 떠났다.다만 그녀가 차고에 들어가 차를 운전해서 나가는 순간, 지환이 2층 커튼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이서의 차가 거리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서야 피곤한 듯 눈썹을 꼬집고 다시 침대 옆으로 돌아갔다.깊은 무력감은, 그의 마음은 묵직한 돌을 올려놓은 것 같았다.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뭐를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핸드폰을 들어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회장님.]요 며칠 지환의 기분이 좋지 않은 걸 알고 있는 이천은 늘 대기 상태에 있었다.핸드폰 벨 소리를 듣자마자 깼다.“뭐 알아낸 거 있어?” 지환의 목소리가 음침하고 무서웠다.이천은 하품 소리도 감히 내지 못하고 바로 답했다.[회장님, ML 국 호텔에 CCTV가 없어, 지금 투숙객을 통해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수상한 인물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며칠째지?”이천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3일 더 줄게. 그래도 아무것도 못 찾아낸다면, 다 꺼져!”[3…….]이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핸드폰을 들고 있는 이천은 기가 막혔다.수사를 담당하는 다른 직원들도 잇달아 이천을 돌아보았다.다크 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직원들을 보고 있지나, 이천도 참으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환의 명령이라 그도 어쩔 수 없었다. “회장님이 우리에게 3일 안에 결과를 내라고 하셨어. 안 그러면 다 끝장이야.”방 안에 울부짖는 소리가 퍼졌다.조사를 담당하는 팀장이 담배를 한 대 꺼내 들고는, 손을 들어 사람들에게 조용할 것을 표시했다. 그는 며칠째 감지 않은 엉겨붙은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고는 이천 앞으로 걸어갔다. “이 비서님, 이 기간에 투숙한 손님만 족히 300명이 넘습니다. 한 명씩 확인하려면 최소 보름은 걸립니다. 그것도 잠도 안 자고 2교대로 돌려야 가
“또 다른 문제 있나요?” 이서는 차분하게 물었다.조금 전보다는 기세를 살짝 누그러뜨렸다.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또 불평을 늘어놓았다.“뭔 일이래? 화약통을 삶아 먹었나?”“열이 안 받을 수가 있겠어? 나라도 그렇겠다. 마지막 희망인 이서정도 계약을 마쳤다고 하니 화가 안 날 수 있겠냐고!”“이게 바로 약자의 분노라는 거야. 에효, 내가 친구들에게 윤씨 그룹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다들 망하기 직전의 회사에 왜 들어가냐고 말렸는데, 지금 봐서는 다음 달 신제품이 출시되는 즉시 우리 모두 보따리 싸 들고 회사 나가야 할 판인데…….”“설마 그럴 리가요.”이서의 팬인 디자인부 팀장은 이서에 대해 나름 객관적이었다.“나는 우리가 위층과 겨뤄볼 만하다고 생각하는데…….”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치 바보를 보는 눈빛으로 디자인팀 팀장을 바라보았다.……같은 시각.경찰이 막 떠나자, 비서가 우기광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양 사장님 오셨습니다.”안 만난다고 얘기하려는데, 양전호는 이미 문에 도착했다.우기광은 어쩔 수 없이 말을 바꾸었다. “어쩐 일로……?”양전호는 우기광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대문 쪽을 보면서 말했다. “방금 경찰이 왔다 가는 것 같던데, 윤재하 사장 때문에 온 건가?”윤재하의 횡령 사건을 고소한 사람이 우기광이란 걸, 그도 며칠 전에야 알았다.우기광이 소리 소문 없이 이 많은 증거를 수집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음.”양전호는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증거를 확보했대?”“윤이서 대표가 준 거네.”양전호는 못 믿겠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불가능이지, 이서가 어떻게 장부를 손에 넣는다고?”“정말 윤이서가 준 거야, 양 사장, 우리의 옛정을 봐서 내가 충고 한마디 하겠네. 윤이서 보통내기 아니네, 절대 얕보지 마.”양전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
우기동은 급한 마음에 손에 든 서류를 두고 양전호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우기광이 소리를 질러 제지했다. “그만 좀 해!”“형님, 이게 우리의 마지막 기회야. 지금 투자금을 철회하지 않으면, 우리 투자한 돈 다 날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그래도 뒤에서 칼 꽂을 수는 없어!”“형님, 장사는 장사고, 도의는 도의야, 도의를 위해서 장사를 버릴 수는 없잖아!”우기동은 속이 타 죽을 것 같았다.우기광은 매섭게 눈썹을 비틀며 손을 흔들었다. “난 이미 결정했어. 그리고 너 단디 들어라. 만약 네가 감히 나 몰래 투자금을 철회한다면, 우리 그 날로 인연 끊는 거다. 알겠냐!”우기광의 단호한 태도를 본 우기동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우기광 사무실을 뛰쳐나갔다.우기광은 회사 대문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투자금을 다 날려도 절대 뒤통수 쳐서는 안 된다니…….’……같은 시각, 식당에서 소지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서는 우기광 쪽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계약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별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서나나의 자료를 뒤져 보았다.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서나나는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무술도 잘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전 소속사는 그녀에게 액션 대역과 엑스트라만 시켰다.그래서 데뷔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이렇다 할 인기는 전혀 없었다.그녀가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귓가에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이서?!”이서는 고개를 들었다. 웬 야인이 눈에 들어왔다.잠깐 주저하다 물었다. “소지엽?!”눈앞의 소지엽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마 앞의 잔머리가 미간을 덮었고, 몸에 아무렇게나 걸친 와인색 긴 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 뭔가 큰 충격을 받은 사람 같았다.하지만 그의 눈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소지엽은 타임머신이 아직 발명되지 않은 게 한스러웠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집을 나서기 전으로 돌아갔으면 했다.오늘 아침
“잠깐만…….”이서는 일어서서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소지엽은 20여 년간 가슴에 묻고 있던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졌다.“이서야, 나…….” “하나?”창가 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임하나인 걸 확인한 이서는 소지엽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하나야? 여기 어쩐 일이야? 이건…….”테이블 위에 술병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이서는 임하나 손에 든 술잔을 빼앗았다.“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이미 술이 곤죽이 된 임하나는 눈앞의 이서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임하나는 술잔을 찾으려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다행히 눈치 빠른 소지엽이 바로 타이밍 적절하게 그녀를 부축했다.그러나 임하나는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소지엽을 확 밀쳐냈다. “꺼져, 이 사내놈들아!” 식당 안 손님들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보았다.“…….”임하나를 부축하며 이서가 소지엽에게 사과했다.“미안, 하나가 술이 많이 취했네.”그러고는 식당 직원을 불러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내가 결제할게.”“아냐, 내가 미안하잖아.”“친구 사이에, 술 한 잔 못 사니?”말을 마치고, 그는 임하나를 부축했다. “술을 진짜 많이 마셨나 봐, 내가 부축할게.”임하나를 잡는 순간, 그녀는 소지엽을 또 확 밀어 버렸다.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고마워. 그냥 내가 데려가는 게 낫겠어. 오늘 정말 미안해. 오늘 계약 건으로 할 얘기 있었는데…….”소지엽은 눈빛에 비친 허탈감을 애써 감추고자 했다. “괜찮아.”그는 걱정 어린 말투로 다시 물었다. “정말 혼자 괜찮겠어?”이서가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임하나를 잡아당겼다.“걱정 마, 먼저 간다.”말을 마치자 이서는 임하나를 부축하여 식당을 나섰다.멀어져가는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지엽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하게 따라나섰다. “그래도…… 내가 데려다주는 게 낫겠어!”말하면서 그는 이미 자발적으로 택시 한 대를 잡았다.이서는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 중인 임현태를
오늘 이서는 그녀의 완벽한 몸매라인을 잘 드러내는 정장을 입었다. 섹시했다.“내가 같이 밥 먹자고 여러 번 얘기했던 거 같은데.”그녀는 말하면서 소지엽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물컵을 받으며 소지엽의 손가락이 이서의 손을 스쳤다.찌릿찌릿했다. 감전된 듯한 느낌에 그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제야 두근거리는 심장이 다소 진정되는 것 같았다.“그러니까!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돼?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이서는 물을 다 마시고 나서야 소지엽의 빨개진 얼굴을 발견했다.“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소지엽은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얼굴에 홍조가 목까지 빠르게 번지며 땀까지 뻘뻘 흘렸다.“콜록콜록…… 나…….”“너무 덥지?”이서는 몸을 돌려 리모컨을 찾으러 갔다.“남자는 여자보다 열이 많아서 땀을 많이 흘리는 것 같더라.”두근거리는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오히려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곧 리모컨을 찾은 이서는 에어컨을 켰다.그리고, 곧 침실에 들어가 담요를 가져와 하나에게 덮어주었다. 소지엽은 이서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다.이서가 하나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모습을 보고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옅은 감탄을 내뱉었다.“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 거 같아.” 이서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소지엽은 순간 당황하여 어쩔 바를 몰랐다. “아……, 네가 하나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걸 보니까 힐링되는 거 같아. 어렸을 때 엄마도 나한테 이렇게 이불을 덮어주셨겠지? 사실,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이렇게 완벽한 너를, 하은철은 왜…….”말을 뱉고서야, 소지엽은 주제 넘은 얘기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미안, 내가…….”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다 지나간 일이잖아. 난 신경 안 써.”소지엽은 이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그녀를 기분을 살핀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정말…… 다 내려놓은 거야?”“응, 진작에…….”“남편 때문에?” 소지엽의 마음이 씁쓸했다.
“지환 씨?!”당황함도 잠시, 이서는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지환의 입술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의 온화한 시선은 이서 뒤에 있는 소지엽에게 떨어졌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거센 파도가 일렁이고 있는 것 같았다.온 사람이 이서의 남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안 소지엽도 순간 멍했다.심지어 눈앞의 이 남자가 어느 가문의 자제인지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검색해보기 시작했다.그러나 기억 속에서 지환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그는 저도 모르게 경계의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딱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다.소지엽이 대놓고 거리낌 없이 지환을 관찰하고 있을 때, 그는 소지엽을 슬쩍 훑어보고는 곧 고개를 숙이고 이서에게 이야기했다. “친구가 많이 취해서 집에 데려다주러 갔다고 임 기사가 연락해 왔길래 혹시 뭔 도움이 필요하나 싶어서…….” 말하면서, 그는 이서의 손을 잡았다.무언의 행동으로 주권을 주장한 행사한 셈이었다.지환이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화가 난 이서는, 두 남자 사이에 펼쳐지는 무언의 살벌한 대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별일 아니에요, 하나가 술에 취해서…….”“이분은?” 지환은 턱을 살짝 들어 소지엽을 가리켰다.“소지엽입니다.”소지엽은 자기 소개하며,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이서의 손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거나 신사적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서 남편분이시죠?”지환은 가볍게 지엽의 손을 훑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미안해요. 아내 손을 잡아야 해서 악수할 수가 없네요.”소지엽은 어리둥절했다.“…….”당황한 건 이서도 마찬가지였다.“자기야, 이제 갈까?”“하나가 너무 많이 취했어요, 난 오늘 여기서 하나 돌봐야 할 거 같아요.”지환은 이서의 뒷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같이 있어 줄게.”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방금 소지엽과의 분위기를 생각하고는, 잠깐 망설이다가 지환의 제안을 거
“여보, 자기야!”“가요.”지환은 이서가 차갑게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알았어, 그럼 먼저 갈게. 일 있으면 전화해.”말을 끝내고, 제자리에 서서 잠깐 침묵을 한 뒤 몸을 돌려 문을 닫고 나갔다.‘달칵’하는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서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30 여분 후, 이서는 얼굴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고개를 들어 보니 화장이 번져 팬더가 된 자기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그동안 마음속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일에 몰두했지만, 고통은 사그라들기는커녕 눈덩이처럼 점차 커졌다.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루나와의 대화방을 열었다.지난 번 가방을 보냈다는 문자 이후로 아무런 대화 내용이 없었다.시차를 고려했을 때 M 국 출근 시간까지 아직 18시간 남았다.지금 이 순간, 이서는 수면제라도 먹고 싶었다. 답을 알게 되는 순간까지 잠을 잘 수 있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그녀는 화장을 지우고 거실로 돌아왔다.임하나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대자로 뻗어 잠자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이서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아마도 최근 며칠 동안 처음으로 제대로 웃어본 것 같았다.하지만 웃음도 잠시 곧 눈살을 찌푸렸다.그동안 회사와 지환의 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하나와의 연락이 좀 뜸했었다. ‘하나야, 대체 뭔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하나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이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날 아침이었다.침대에서 일어나 문까지 걸어가서야 이서는 여기가 임하나의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식탁 위에는 그녀가 매일 먹는 것과 비슷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임하나는 여전히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고, 이불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이서가 식탁에 다가갔을 때, 뒤에서 임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굿모닝!”뒤돌아보니 임하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