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남’인 이서에게 그렇게 많은 선물을 준비했으면서, 그녀에게는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않았다.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어처구니없기는 다른 참석자들도 마찬가지였다.이는 지환의 마음속에서, 윤이서가 이서정보다 훨씬 높은 지위에 있다는 걸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파티에서 이서를 비웃고 조롱하던 몇몇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불안감이 더해졌다.그들은 바삐 휴대전화를 꺼내 이서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장난삼아 한 얘기라며 부디 너른 아량으로 용서해 달라고 말이다.이서는, 지금 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모든 주의력은 옆에 놓인 선물 더미에 있었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하 회장이, 둘째 삼촌이 나에게 이렇게 많은 선물을 주셨지?’‘과거에 몇 차례 도움을 준 거라면, 하은철의 안면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하은철과 파혼한 지도 오래되었는데……, 설마 하 회장이 아직 파혼 소식을 모르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한차례 선물 소동이후, 파티는 곧 끝났다.거실에는 이서정과 지환만 남았다.지환은 마스크와 안경을 벗고 섹시하고 잘생긴 얼굴을 드러냈다.폭발하려던 이서정의 분노가 반으로 감소하였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회장님, 제 체면도 좀 봐주시길 바랍니다.”지환은 두 다리를 커피 테이블에 턱 하니 올려놓았다. 눈빛에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서의 모습뿐이었다.‘아마 지금쯤 집에 도착해서 선물을 뜯고 있겠지?’그의 눈동자에 다정함이 물결처럼 일렁이었다.선물은 성공적으로 줘서 기쁘지만, 남편이 아닌 하 회장, 둘째 삼촌의 신분으로 줬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서정은 그의 귓가에서 자기가 얼마나 창피당했는지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듣다못해 짜증이 난 지환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저기, 이서정 씨,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나 당신 남편 아니고, 당신도 내 아내 아니야. 왜 내가
이서는 방안 가득한 선물을 보며 또다시 막막했다.그녀 대신 선물을 안고 들어오는 임현태에게 물었다.“현태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네, 말씀하세요, 아가씨.”“하 회장님이 왜 제게 이렇게 많은 선물을 주셨을까요?”임현태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마도 아가씨를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 남녀 간의 사랑, 이런 것보다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좋아하는 그런…… 마음?”눈썹을 살짝 찡그린 이서는 또 뭔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문밖에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걸 봤다.지환의 차였다.이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다음 순간, 훤칠한 그림자가 차 안에서 내렸다.“남편분이 돌아오셨네요?”임현태의 말투가 유쾌한 듯했다.하지만 이서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그제야 그는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이상한 기운을 깨달았다.‘설마…… 싸웠나?’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곧 얘기했다. “아가씨,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이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차 쪽으로 가던 임현태는 마침 별장으로 들어오던 지환과 마주쳤다.지환은 임현태를 보지도 않고, 곧장 이서한테로 걸어갔다.“여보야!”익숙한 목소리를 듣자, 이서는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곧 몸을 돌려 집안으로 걸어갔다.지환도 바삐 뒤따라갔다.창문을 사이에 두고 이 장면을 본 임현태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의 마법은 정말 대단하구나.’옛날 같았으면 회장님이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꿈에도 생각 못 했을 텐데, 그런데…….지환이 이서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이서는 소파에 앉아서 굳은 얼굴로 말했다.“말씀하세요.”신분 노출이 아니라는 것을 안 지환은 심적으로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주방에 가서 이서에게 줄 물을 한 잔 따랐다. “여보, 먼저 물 한 잔 마시고…….”물컵을 본 이서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돌아와서 얘기하자고 했잖아요, 지금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요.”“먼저 물 먼저 한 잔 마시
지환의 머리는 초고속으로 돌아갔다. 잠시 뒤, 그는 입을 열었다. “자기야, 내가 고백하기 전에, 질문 하나 해도 될까?”이서는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정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지환은 숨을 들이마셨다.“자긴 하씨 집안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해?”지환의 이 질문으로, 이서는 며칠 전 포르쉐 매장에서 이서정을 만났던 장면이 단번에 떠올렸다. 당시 이서정이 하씨 집안 사람들을 계속 언급했었다.오늘 또 하씨 집안 사람 얘기가 나오자, 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이 미세한 동작은 눈치 빠른 지환에게 포착되었다.“싫어요.”이서가 직설적으로 말했다.“할아버지만 아니었다면, 난 정말 하씨 집안 사람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요.”예상했던 답을 얻은 지환의 눈동자에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곧 몸을 곧게 폈다.“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이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이게 중혼과 무슨 관계지?’지환은 이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그의 눈가에 비친 다정함을 본 이서는 저도 모르게 몸이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바삐 허벅지를 꼬집었다. 온 몸에 전해진 강한 통증이 이성의 끈을 다잡았다. “이제 나한테 뭘 숨겼는지 말해줘야 하지 않나요?”“알았어.” 지환은 이서 옆에 앉았다. “사실 이번 출장은 하씨 그룹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간 게 아니라…….”이서는 숨을 참았다.“내 회사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어.”이서는 놀란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회사 얘기가 아닌, 중혼에 대해 털어놓아야 하는데, 이건 뭐지……?!’이서의 속마음을 알리 없는 지환은 전자때문인 줄 알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이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작은 회사야. 아버지가 경영 관리하던 회사라, 굳이 자기한테 얘기하지 않았던 거고…….”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이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분노도 기
이서가 핸드폰을 더듬어 루나의 연락처를 찾았다.이제 확실한 사실만이, 그녀가 뭘 믿어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지난번 대화가 끝난 후로 루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내지 않았다.결혼 정보를 찾는 게 어렵지는 않다고 루나가 얘기했었다.잠깐 생각을 마친 이서는 그녀에게 조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바로 이때, 밖에서 다시 한 번 지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보?”이서는 심장이 떨리며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했다.당혹함, 분노, 실망……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일 처리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다.‘반드시 침착해야 해.’‘냉정해야만 받는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어.’이를 깨닫는 건 쉽지만, 실제로 이행하기는 정말 너무 어려웠다. 심호흡을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이서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알았어요, 곧 내려 갈게요.”방안에서 들려오는 응답소리를 듣고, 그제야 팽팽하게 긴장했던 지환의 몸이 드디어 약간 풀렸다.“응, 그럼 먼저 내려가 있을게.”말을 마친, 지환은 잠시 망설이다가, 곧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지난 밤, 이서는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지환도 마찬가지였다.이서의 반응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그도 무턱대고 이서에게 다가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이는 그의 일 처리 스타일이 아니었다.지난날, 어떤 일에 부딪혀도, 그는 당황하지 않고 관련 조사를 다 마친 뒤에야 행동을 개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단서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서를 대하고 있었다.그러다 보니 지금 상황이 완전히 그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한 마디로 통제 불능이다.조사가 명확해진 뒤, 이서와 접촉해야 한다고 이성은 거듭 말해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환은 참지 못하고 간밤 사이에 여러 차례 이서 방으로 달려가 방문을 두드리려고 했다.다행히 낮이 밝으면서,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문 이서는 고개를 숙였다. 우유 잔에 뭔가 있는 것처럼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녀는 필사적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고는 딱딱하게 한 마디 뱉었다. “네.”“정말 화 풀렸어?”지환도 그제야 우유를 한 잔 마셨다.이서는 또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몰래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 “회사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큰일을 왜 말하지 않았어요?”지환은 우유 잔을 꽉 쥐었다. 몸속의 기혈이 필사적으로 솟구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이서는 속눈썹을 깜빡였다. 물안개가 그 위에 걸려 있었다.그녀는 삼키는 동작을 가속했다. “사직하겠다고 했던 것도 가업을 물려받기 위한 거였나요?”“…….”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거였다.애초 퇴사 얘기를 꺼낸 의도는 아주 단순했다. 회사를 설립하면 이서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는 코를 만지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랬다. 이전에 했던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결국 계속해서 더 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상관없다.이서를 다시 웃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할 것이다.“아니, 내가 사직하고 싶었던 이유는, 자기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 외국 회사에 대해서는…… 내가 H 국 사업을 집중적으로 하기 시작한 이후로 그쪽 일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었거든. 암튼 자기야, 미안해.”지환은 이서에게 다가가 그녀의 옆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이서를 올려다보았다. “한 번만 봐줘, 응?” 이서의 시선은 불가피하게 지환의 진심 어린 시선과 부딪쳤다.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그녀는 하마터면 이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작정 지환을 용서할 뻔했다.그 신비의 인물이 보낸 메시지 같은 건 개나 줘버리고!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는 힘겹게 말했다. “용서할게요. 다만…….”그녀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환의 깊은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찔렀다. 그
처음에는 이서가 용서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서의 얼굴에서 그 웃음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서가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한눈에 이서가 정말 행복한지 아닐지도 분간할 수 있다.따라서 그는 초조하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는 이 표면적인 평화를 굳이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설령 거짓이라고 해도.그는 핸드폰을 꺼내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서정의 핸드폰에서 뭐 나온 거 없어?”[없습니다, 회장님. 웨딩드레스 샵과 포르쉐 대리점을 제외하고는 이소정과 사모님이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서정은 사모님을 이상언 선생의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지환은 눈살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을 했다. 그의 판단에 영향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한 뒤, 소파에 앉아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잠시 뒤,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ML 국에서 있을 때, 특히 내가 이서와 같이 있지 않았을 때, 누구를 만났는지, 또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봐.”[네.]“특히…….” 지환은 휴대폰 달력을 보며 말을 이었다.“17일.”그날 밤, 이서는 스키장에 증거를 찾으러 가고,그는 먼저 룸으로 올라갔다.그날부터 이서가 달라졌다.……M 국.커다란 통유리 창 앞.검은 양복을 입고 가면을 쓴 남자가 와인잔을 흔들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와인은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돌렸다. “왔어?!”박예솔은 눈 앞의 남자를 한 번 힐끗 보고는 가방에서 카드를 한 장 꺼냈다. “여기 있어.”남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카드를 보고는 말했다. “내가 정말 고작 이 10억 때문에 널 도와준 거라고 생각하니?”박예솔은 차가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유에서든, 난 당신한테 신세 지고 싶지 않아.”남자는 입술을 올리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내가 지환을 H 국에서 불러들였는데, 이유가 뭔 지는 그래도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박예솔이 말했다.“굳이 알 필요 없을
‘정말 재수도 더럽게 없네. 어떻게 위층과 컨셉 겹쳐?’이서는 길에서 이미 상황을 알아보았다. 이미 전반적인 상황을 알아본 터라 즉시 물었다.“지금 발주를 취소하고 다른 디자인으로 재생산 가능한가요?”“너무 늦었을 겁니다.”디자인팀 팀장이 말했다.“발주가 이미 내려졌으니, 그쪽도 생산을 시작했을 겁니다.”영업팀 팀장이 말을 이었다.“이번 신상품은 다 쓰레기가 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동일 컨셉으로 경쟁을 진행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위층을 이길 수 있답니까?”머리로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윤수정 뒤에는 하은철이 있다. 하윤의 신상이 출시되면, 하씨 그룹의 마케팅팀이 윤수정 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각 부서의 팀장들이 난색을 드러냈다. ‘이번 상품은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재고로 쌓일 거야.’“언니…….” 심소희는 다소 걱정하는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는 눈을 들어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먼저 돌아가세요. 신제품 출시는 예정대로 하겠습니다. 영업팀은 협력업체를 좀 많이 뚫어주세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상품의 가격 포지셔닝은 대략 2, 4만 원 정도이기 때문에, 인구 이동이 많은 쪽 점포나 업체를 찾아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잠시 생각을 마친 이서는 계속해서 말했다. “현재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즉 브랜드 인지도 등은 향후 다시 고민해 봐도 될 듯합니다. 먼저 판매량을 올릴 문제만 생각해 봅시다.”말을 끝내고, 그녀는 심소희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갔다.이서의 뒷모습을 보며 각 부서 팀장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기회조정팀 팀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찾긴 뭘 찾아? 딱 봐도 위층은 우리를 겨냥해서, 유명 디자이너를 초빙하고, 강력한 경영 팀도 함께 붙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쪽도 중저가 전략을 간다지 뭔가? 소비자가 바보가 아니고, 무조건 위층의 상품을 구매하겠지.”그녀의 말을 듣고, 모두들 걱정이 더욱
배시영의 답장이 바로 왔다. 점심에 다른 친구와 선약이 있긴 한데, 괜찮다면 함께 만나자는 거였다.이서는 개의치 않고 ‘좋다’고 답장했다.지난번 협력 이후, 두 사람은 종종 연락하며 언니 동생으로 지내고 있었다.배시영이 정한 점심 식사 장소는 회사에서 멀지 않은 식당이었다.그 식당의 바로 맞은편이 바로 하씨 그룹의 고층 건물이었다.지환이 바로 맞은편에 있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기분이 안 좋아?” 배시영은 음료 한 잔을 이서에게 건넸다.이서가 그녀에게 약속 문자를 보내기 전에, 그녀는 이미 지환과 연락했었다.전화기 저쪽의 지환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오늘 이서의 굳은 표정을 본, 배시영은 두 사람이 사랑싸움 중일 것으로 추측했다.“아니에요. 별일 없어요.”배시영은 손을 흔들었다. “내 전공 분야가 뭐지? 사람의 언행과 기분을 살피는 능력조차 없다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힘들지.”그러자 이서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언니한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네요. 사실 감정의 문제로 좀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어서요……. 제가 오늘 언니를 찾아온 건 윤씨 그룹에 적합한 광고 홍보대사를 찾기 위해서예요. 저는 아직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언니께 조언 좀 구하려고요. 혹시 추천할 만한 인물이 있을까요?”배시영은 똑똑한 사람이다. 이서가 감정 관련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서의 화제를 따라가며 잠시 생각을 마친 뒤 말했다. “회사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먼저 볼 수 있을까?” 이서는 자료를 배시영에게 건넸다.배시영은 진지하게 보았다.“딱 적당한 인물이 한 명 있긴 한데…….”“그런데요……?”“이 사람은…… 복불복이거든.”이서는 의아해했다.“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말이 떨어지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시영아.”이서와 배시영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을 보았다.소지나인 것을 확인한 이서는 멍해졌다.소지나도 꽤 놀랐다.“이런 우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