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런 이유에서인지, 오는 내내 지환은 초조해 보였다.시종일관 입술을 꼭 오므리고 있었지만, 지환과 여러 해 동안 함께 한 이천은 지금 이 순간, 지환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잘 알고 있다.지환의 신분 유출 건이 정말 이서정과 관련이 있다면, 이서정의 남은 생은 참담할 것이다.곧 일어날 모든 일을 생각하자, 이천은 조마조마했다.차가 별장 입구에서 멈춰 섰다.지환이 직접 문을 열고 내렸다.지환을 본 매니저의 눈이 밝아지면서 바삐 마중 나왔다.지환이 다가오기도 전에, 그녀는 죽음의 기운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하 회장님.” 벌벌 떨고 있는 매니저는 고개를 들어 지환의 얼굴을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지환은 매니저를 지나쳐 바로 입구로 걸어갔다.평소의 그라면, 이서정을 찾아올 때 마스크나 선글라스를 착용했다.혹시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이서를 알면, 그의 신분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이미 폭로됐으니까.순간 지환의 눈동자에 잔인한 눈빛이 번뜩였다. 그 옆에 서 있던 매니저가 겁에 질려 목을 움츠렸다. 그녀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설마 내가 왼손으로 문 열어서 그런가?’그녀는 비틀거리며 손잡이를 돌렸지만, 너무 긴장한 탓인지 여러 번 시도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지환은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매니저를 밀어내려 자기가 직접 문을 열려던 참이었다. 그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별장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911이 눈에 띄었다. 고급 외제차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눈에 띄는 존재였다.지환의 머릿속에 하은철이 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911을 줬다…… 이서에게…….’이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매니저는 마침내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방 안의 불빛이 밖으로 환하게 쏟아져 나왔다.떠들썩하던 거실의 사람들도 일제히 문 쪽의 동정을 살폈다.하나하나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았다.특히 이서,그녀는 설레는 마음에 목까지 쭉 뺐다.파티는 이미 반이 지
이서정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네?!”인내심이 바닥을 친 지환이 고개를 돌려 이천에게 말했다. “차단기 내려.”별장의 차단기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이천은 몇 걸음 걸어가서 스위치를 당겼다.순식간에 대낮처럼 환하던 별장이 칠흑 같은 어둠에 빠졌다.별장 안 사람들은 당황하여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1 분 만에 별장은 다시 대낮으로 돌아왔다.광명을 되찾고, 이서정의 첫눈에 들어온 것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지환의 모습이었다.“…….”지환은 이서정의 궁금해하는 눈빛을 완전히 무시한 채 문을 열고 들어갔다.유명 연예인보다 더 꽁꽁 싸매고 나타난 지환을 본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눈이 휘둥그레졌다.누군가가 관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서정 씨, 혹시 이분이 하 회장님이십니까?”이서정은 침을 꼴깍 삼켰다.“아, 네, 네.”“하 회장님 오늘 이…….”이서정은 지환이 이처럼 꽁꽁 싸매고 등장한 이유를 알 리 없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도무지 합리적인 설명이 떠오르지 않았다.“꽃가루 알레르기라 있어서…….” 지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글라스 뒤에 숨겨진 눈동자는 이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올가미 같은 눈빛으로!이서도 곧바로 그의 뜨거운 눈빛을 느꼈다. 그녀도 눈을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선글라스의 검은 렌즈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착각인가 싶어 이서는 손가락으로의 술잔을 어루만지며 인사할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다.지난번 SY의 신형 휴대폰 발표회에서도 기회를 놓쳤다.이번에는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았다.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 부러움의 눈빛으로 이서정을 바라보았다. “서정 씨, 회장님이 부인을 정말 많이 사랑하나 봅니다. 몸이 편찮은 데도 파티에 참석하시고……. 우리 집 양반이라면 꽃가루 알레르기는 고사하고 새끼손가락에 상처만 조금 나도 그걸 핑계 삼아 파티에 참석 안 하려고 할 텐데…….”“우리 집도 마찬
요 며칠, 그는 이서와 말 몇 마디 하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다 썼는데…….진짜 신분으로 돌아온 그에게, 이서가 이렇게 쉽게 입을 열다니.“음.” 지환의 목젖이 꿀렁거렸다. 그는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는 질투의 불길을 힘껏 억누르고 있었다.그는 이서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러 차례 저에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시간 될 때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이서는 지환의 이상 반응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소파를 누르고 있던 지환의 주먹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로 인해 턱선이 긴장한 듯 팽팽해졌다.“언제든지.”지환이 이렇게 친화력이 좋을 거로 생각지도 못한 이서는 눈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그럼, 회장님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그럼 앞으로 사업 관련 자문도 구할 수 있게 된다.’지환의 눈동자 속의 질투의 불길이 더욱 활활 타올랐다.그의 손끝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찢어질 듯한 고통이 가해졌다. 통증이 그의 마지막 이성을 붙들어 매고 있었다.“그래.”이 몇 마디는 거의 이빨 틈에서 짜낸 것이었다.이서는 눈을 깜빡였다. 지환이 귀찮아서 그러는 줄 알고 휴대전화를 꺼내 지환의 연락처를 추가한 뒤 곧 이서정과 지환에게 말했다. “회장님, 서정…… 사모님, 시간이 늦었어요.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이서가 돌아서서 가려는 것을 본 지환은 더 이상 내면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잠깐!”다급한 고함 소리에 파티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이서에게 지른 소리이란 걸 안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다들 이서가 지환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으로 추측했다.이서의 심장도 쿵쿵 뛰었다.그런데, 방금 이서는 ‘잠깐’이라는 두 글자에서 지환의 목소리가 들렸다.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에 이서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도대체 얼마나 지환 씨가 보고 싶으면 이런 착각이 생기는 걸까?’괴로워하며 몸을 돌린 이서는 지환의 어두운 선글라스와 마주했다.
출입문이 곧 눈앞이다.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이서는 뒤에는 다시 한번 들려오는 하 회장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서 씨!”이서의 몸은 순간 심한 충격을 받은 듯 움찔 했다. 순간 정말 지환이 그녀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머릿속의 혼돈이 지나가자, 지환과 하 회장의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둘 다 모두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지만, 지환의 목소리는 더 캐주얼한 반면, 하 회장은 더욱 성숙하며 딱딱한 느낌이 강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몸을 돌렸다. “하 회장님, 또 무슨 볼일이 있나요?”지환은 이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이서정의 매니저를 바라보았다.“사람 몇 명을 불러서 선물 들고 오세요.” 이서정은 정말로 선물이 있다는 얘기에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었다.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부러워하는 목소리를 냈다.“하 회장님 정말 아내 분을 사랑하시나 봐요. 부러워해 죽겠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끌벅적한 가운데, 이서만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 문 앞에 서 있었다.그녀를 불러 세우고 아무 말이 없자, 무턱대고 떠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할 말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입구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잠시 뒤, 경호원 몇 명이 선물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왔다.모두 정교하게 포장되었다.딱 봐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지환이 이렇게 많은 선물을 사 줄 것을 생각지도 못했던 이서정은 심장이 두근두근했다.그녀의 시선은 온통 선물에 꽂혀 있었다.다른 사람들도 산더미를 이룬 선물에 깜짝 놀랐다.대부분 상류사회의 부잣집 며느리들인 파티 참석자들은, 다들 하나같이 돈 씀씀이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준비한 선물과 본인이 구매한 물품은 확연히 다른 개념의 물건이라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앞 전에 지환과 이서정의 금실이 좋다고 아부한 건, 상업적 멘트에 불과했다.하지만 지금 두 눈으로 이렇게 많은 선물을 보니, 질투와 분노가 느껴졌다.‘이서정은 단지 삼류 무명 연예인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는 ‘남’인 이서에게 그렇게 많은 선물을 준비했으면서, 그녀에게는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않았다.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어처구니없기는 다른 참석자들도 마찬가지였다.이는 지환의 마음속에서, 윤이서가 이서정보다 훨씬 높은 지위에 있다는 걸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파티에서 이서를 비웃고 조롱하던 몇몇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불안감이 더해졌다.그들은 바삐 휴대전화를 꺼내 이서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장난삼아 한 얘기라며 부디 너른 아량으로 용서해 달라고 말이다.이서는, 지금 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모든 주의력은 옆에 놓인 선물 더미에 있었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하 회장이, 둘째 삼촌이 나에게 이렇게 많은 선물을 주셨지?’‘과거에 몇 차례 도움을 준 거라면, 하은철의 안면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하은철과 파혼한 지도 오래되었는데……, 설마 하 회장이 아직 파혼 소식을 모르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한차례 선물 소동이후, 파티는 곧 끝났다.거실에는 이서정과 지환만 남았다.지환은 마스크와 안경을 벗고 섹시하고 잘생긴 얼굴을 드러냈다.폭발하려던 이서정의 분노가 반으로 감소하였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회장님, 제 체면도 좀 봐주시길 바랍니다.”지환은 두 다리를 커피 테이블에 턱 하니 올려놓았다. 눈빛에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서의 모습뿐이었다.‘아마 지금쯤 집에 도착해서 선물을 뜯고 있겠지?’그의 눈동자에 다정함이 물결처럼 일렁이었다.선물은 성공적으로 줘서 기쁘지만, 남편이 아닌 하 회장, 둘째 삼촌의 신분으로 줬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서정은 그의 귓가에서 자기가 얼마나 창피당했는지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듣다못해 짜증이 난 지환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저기, 이서정 씨,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나 당신 남편 아니고, 당신도 내 아내 아니야. 왜 내가
이서는 방안 가득한 선물을 보며 또다시 막막했다.그녀 대신 선물을 안고 들어오는 임현태에게 물었다.“현태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네, 말씀하세요, 아가씨.”“하 회장님이 왜 제게 이렇게 많은 선물을 주셨을까요?”임현태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마도 아가씨를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 남녀 간의 사랑, 이런 것보다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좋아하는 그런…… 마음?”눈썹을 살짝 찡그린 이서는 또 뭔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문밖에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걸 봤다.지환의 차였다.이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다음 순간, 훤칠한 그림자가 차 안에서 내렸다.“남편분이 돌아오셨네요?”임현태의 말투가 유쾌한 듯했다.하지만 이서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그제야 그는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이상한 기운을 깨달았다.‘설마…… 싸웠나?’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곧 얘기했다. “아가씨,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이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차 쪽으로 가던 임현태는 마침 별장으로 들어오던 지환과 마주쳤다.지환은 임현태를 보지도 않고, 곧장 이서한테로 걸어갔다.“여보야!”익숙한 목소리를 듣자, 이서는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곧 몸을 돌려 집안으로 걸어갔다.지환도 바삐 뒤따라갔다.창문을 사이에 두고 이 장면을 본 임현태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의 마법은 정말 대단하구나.’옛날 같았으면 회장님이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꿈에도 생각 못 했을 텐데, 그런데…….지환이 이서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이서는 소파에 앉아서 굳은 얼굴로 말했다.“말씀하세요.”신분 노출이 아니라는 것을 안 지환은 심적으로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주방에 가서 이서에게 줄 물을 한 잔 따랐다. “여보, 먼저 물 한 잔 마시고…….”물컵을 본 이서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돌아와서 얘기하자고 했잖아요, 지금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요.”“먼저 물 먼저 한 잔 마시
지환의 머리는 초고속으로 돌아갔다. 잠시 뒤, 그는 입을 열었다. “자기야, 내가 고백하기 전에, 질문 하나 해도 될까?”이서는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정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지환은 숨을 들이마셨다.“자긴 하씨 집안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해?”지환의 이 질문으로, 이서는 며칠 전 포르쉐 매장에서 이서정을 만났던 장면이 단번에 떠올렸다. 당시 이서정이 하씨 집안 사람들을 계속 언급했었다.오늘 또 하씨 집안 사람 얘기가 나오자, 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이 미세한 동작은 눈치 빠른 지환에게 포착되었다.“싫어요.”이서가 직설적으로 말했다.“할아버지만 아니었다면, 난 정말 하씨 집안 사람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요.”예상했던 답을 얻은 지환의 눈동자에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곧 몸을 곧게 폈다.“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이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이게 중혼과 무슨 관계지?’지환은 이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그의 눈가에 비친 다정함을 본 이서는 저도 모르게 몸이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바삐 허벅지를 꼬집었다. 온 몸에 전해진 강한 통증이 이성의 끈을 다잡았다. “이제 나한테 뭘 숨겼는지 말해줘야 하지 않나요?”“알았어.” 지환은 이서 옆에 앉았다. “사실 이번 출장은 하씨 그룹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간 게 아니라…….”이서는 숨을 참았다.“내 회사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어.”이서는 놀란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회사 얘기가 아닌, 중혼에 대해 털어놓아야 하는데, 이건 뭐지……?!’이서의 속마음을 알리 없는 지환은 전자때문인 줄 알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이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작은 회사야. 아버지가 경영 관리하던 회사라, 굳이 자기한테 얘기하지 않았던 거고…….”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이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분노도 기
이서가 핸드폰을 더듬어 루나의 연락처를 찾았다.이제 확실한 사실만이, 그녀가 뭘 믿어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지난번 대화가 끝난 후로 루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내지 않았다.결혼 정보를 찾는 게 어렵지는 않다고 루나가 얘기했었다.잠깐 생각을 마친 이서는 그녀에게 조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바로 이때, 밖에서 다시 한 번 지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보?”이서는 심장이 떨리며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했다.당혹함, 분노, 실망……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일 처리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다.‘반드시 침착해야 해.’‘냉정해야만 받는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어.’이를 깨닫는 건 쉽지만, 실제로 이행하기는 정말 너무 어려웠다. 심호흡을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이서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알았어요, 곧 내려 갈게요.”방안에서 들려오는 응답소리를 듣고, 그제야 팽팽하게 긴장했던 지환의 몸이 드디어 약간 풀렸다.“응, 그럼 먼저 내려가 있을게.”말을 마친, 지환은 잠시 망설이다가, 곧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지난 밤, 이서는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지환도 마찬가지였다.이서의 반응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그도 무턱대고 이서에게 다가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이는 그의 일 처리 스타일이 아니었다.지난날, 어떤 일에 부딪혀도, 그는 당황하지 않고 관련 조사를 다 마친 뒤에야 행동을 개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단서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서를 대하고 있었다.그러다 보니 지금 상황이 완전히 그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한 마디로 통제 불능이다.조사가 명확해진 뒤, 이서와 접촉해야 한다고 이성은 거듭 말해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환은 참지 못하고 간밤 사이에 여러 차례 이서 방으로 달려가 방문을 두드리려고 했다.다행히 낮이 밝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