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는 ‘실없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자마자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낯선 번호였다.이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받았다.“여보세요?”[안녕하세요, 윤이서 씨 되십니까?]“네.”[저는 서우 그룹에 새로 부임한 CEO 김청용입니다. 우선 공모전 심의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윤이서 씨에게 피해를 드려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어라, CEO가 직접 사과하네.’‘급이 좀 많이 높은데?’“그래도 잘 해결됐으니 다행입니다.”[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김청용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었다.[회사 내부에서 상의한 결과, 윤이서 씨가 명실상부한 대상, 금상 수상자로 상금과 부상을 모두 윤이서 씨에게 지급할 예정입니다.][일전에 공표했듯이 대상 수상자에게는 특별 부상이 주어집니다. 바로 새 회사의 평생 총괄 디렉터로 초빙하는 것입니다. 혹시 윤이서 씨는 저희 회사에 입사할 의향이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이서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그녀가 가장 원했던 게 바로 일자리다!‘대상의 특별 부상이 일자리 제공이라니!’‘대박! 죽인다!’ “그럼요, 귀사에 입사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인수 합병 그룹인 서우의 배후에는 하은철 둘째 삼촌이 있다.향후 나날이 발전할 것이다.입사는 이서가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일이었다.김청용은 한숨을 돌렸다.[윤이서 씨, 혹시 이 외에 다른 보상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이서는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이렇게 신속하게 사건의 경위를 밝혀준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입니다.”김청용은 이서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어젯밤, 새벽 3시에 불려 가 공모전 사건을 조사했다.사건 조사 과정에서 ‘뷰티 페이스’콘테스트 관련 책임자들은, 고위층이든 중층이든 심지어 몇 명의 대형 브랜드 CEO까지 모두 짤렸다.이 일로, 위에서 얼마나 진노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김청용은 이서의 자료를 찾아 보고서야, 그녀가 대표의 예비 조카며느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헐, 대박 면이 서겠구먼!][이렇게 대형 그룹의 첫 번째는 소식이 디자인 디렉터의 입사를 환영이라니.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소식통에 의하면, 서우 대표가 하은철 삼촌이래. 만약 하은철과 윤이서 사이가 틀어졌다면, 그의 삼촌도 굳이 이렇게 체면을 봐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맞아, 그래서 이 자료들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거야.]“…….”공식 사이트에 등장한 첫 번째 기사는 네티즌들의 눈에 심심풀이 땅콩, 팝콘각이었다.그러나 상류사회에서는 적지 않은 풍파가 일어났다.특히 4대 가문은 더 오리무중이었다.몇몇 대형 브랜드의 인수 합병은 하원철 큰집의 손이 대한민국 시장까지 뻗었음을 의미한다.그러나 그전에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이날의 여론 폭풍의 반전으로, 이서가 다시 하씨 집안과 혼약을 이어갈지에 대해서도 여론의 중심이 되었다.그 중에서도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바로 어제 하루 종일 이서를 조롱하던 윤씨 집안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채팅방에서 미친 듯이 이서에게 메시지를 남겼다.[내가 그랬잖아, 이서가 어떻게 수정에게 밀리겠어? 그러고 보니 이서가 자기 작품에 진 거야.][쯧쯧쯧쯧, 수정아, 네가 언니를 이기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알겠어. 하지만 어떻게 언니 작품을 훔칠 생각하니? 같은 윤씨 집안 사람인데 어떻게 수준 차이가 이렇게 날 수 있니?][윤씨 가문의 망신은 니가 다 시켰다. 너랑 한 집안 사람이라니, 정말 평생 재수가 없겠어!]“…….”우후죽순마냥 쏟아진 비난에 윤수정은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바람 부는 대로 돛 다는 천한 놈들!’상황을 지켜본 간병인은 얼른 윤수정의 휴대전화를 챙겼다.“아가씨, 화내지 마세요. 그 사람들, 승자 편이에요. 그런 인간들과 화낼 필요 없어요.”윤수정은 손톱이 살에 파이도록 주먹을 불끈 쥐었다.“나는 그 사람들에게 화 난 게 아니야. 윤이서, 그 썅년! 내가 그년 노트북을 완전히 박살냈는데 그 스케치들은 어디에서 되찾은 거지? 설마 그년, 내가 자기 작품으로 공모전에 참가할 것
윤수정은 비록 내키지 않았지만, 하은철 앞이라 어쩔 수 없이 그러겠노라고 했다.그녀는 이서가 분명히 자기를 비아냥거릴 거라고 확신했다.그때가 되면 또 억울한 척 모든 잘못을 이서에게 떠넘길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일거양득인 셈이다.이서에게 카톡을 보낸 윤수정은 메시지 옆에 1이 계속 사라지지 않자,전화를 걸려고 시도했다가 핸드폰 번호도 차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코를 들이마시며 ‘막막한’ 표정으로 하은철을 바라보았다.“언니가 화가 많이 났나 봐. 내 모든 연락처를 차단했어. 오빠, 핸드폰 좀 빌려줄 수 있어?”하은철은 휴대전화를 꺼내 윤수정에게 건네주었다.윤수정은 연락처에서 이서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그녀는 하은철의 카톡을 클릭했다.하은철은 그제야 자기 카톡도 차단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내 카톡도 차단됐어.”하지만 윤수정은 봤다.하은철이 지난번 보냈던 축하 메시지를…….[금상 수상 축하해.]윤수정은 눈을 깜박거리며 손가락을 꽉 쥐었다.그녀는 대상을 탔음에도 하은철에게 축하 메시지를 ‘구걸’했었다. 그런데 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하은철의 축하를 받았다.“오빠, 할아버지는…… 요즘도 오빠랑 언니 잘됐으면 해?”하은철은 그녀의 기분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응.”“그래서 오빠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은철은 표정이 굳어지며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할아버지 명령이니까. 근데, 수정아 걱정 마. 이서 마음이 돌아서면 그땐 내가 사정없이 그녀를 차버릴 테니까.”그는 단지 오기가 생겼을 뿐이다. 과거 그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던 꼬리가 보이지 않자 오기가 생겼다.주먹을 꽉 쥔 윤수정의 눈빛이 표독스러워 보였다.‘윤이서, 널 더 이상 가만둘 수 없어!’……거액의 상금에 일자리까지 보장받았으니 당연히 임하나에게 한 턱 내야 했다. 게다가 이 기회를 빌려 지환에게 감사를 표하려 했다.“그럼, 상언도 같이 데려가요.”하지환이 말했다.이서도 별 의견이
“그럼 왜…….”“이서야!” 이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하나의 업 된 목소리를 들었다.목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바라보니 마침 이상언 차에서 내리는 임하나를 보았다.“둘이…… 같이?”“네.” 이상언이 말했다. “축하해요, 윤이서 씨.”이서는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임하나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이상언에게 인사했다.“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냥 편하게 이서라고 불러 주세요.”“이서?” 옆에 있던 하지환의 목소리가 콧방귀와 함께 터져나왔다.이상언은 지환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에이, 그럼 성은 빼고, 이서 씨라고 부를게요. 이서 씨도 저를 의사 선생님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세요.”“네. 상언 씨.”말하는 사이, 네 사람은 포장마차 안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지환은 계속 고개를 숙여 플라스틱 의자를 살펴보았다.이서가 물었다.“왜요?”포장마차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환은 이상했다.이상언이 농담을 던졌다.“쟤 신경 쓰지 마요. 큰집 도련님께서 처음으로 신분을 낮추고 이처럼 누추한 포장마차를 방문하시니 적응 못 하는 게 당연하지요.”임하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지환 씨, 포장마차에 처음 오는 거예요?”이상언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지환이 보내온 ‘그윽한’ 눈빛을 받았다.그는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지환이…… 이런 거 안 좋아해요.”“아…….” 임하나는 시선을 이서에게 돌리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자기, 먼저 서우의 평생 디렉터가 된 걸 축하해. 이제 철밥통 직장인이 되었네.”이서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고마워, 나도 대상 부상이 일자리일 줄은 몰랐어. 완전히 날 위한 맞춤 공모전 같아.”이상언은 별 내색하지 않고 지환을 흘겨보았다.지환은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다.“이제 하은철 삼촌 회사에 들어가니, 앞으로 그를 만날 기회가 있겠다.”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꼭 그렇지는 않을걸? 얼마나 바쁜 분인데…….”지난번에도 바람 맞았다.지환이
이상언은 눈 딱 감고 뻔뻔스럽게 말했다.“외국에서는 다들 영어 이름 부르니까…… 갑자기 한국 이름이 뭔지 물으니까 생각이 안 나네.”“그럼 영어 이름은 뭐예요?” 이서가 물었다.“매튜.”말을 마친 이상언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지환을 쳐다보았다.그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지환의 영어 이름은 매튜였다.“매튜…….”가볍게 중얼거리는 이서의 목소리는 맑았다.쿵쿵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는 지환은 이서의 탐스러운 빨간 입술을 바라보며 갑자기 키스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닭꼬치 나왔어요.”가게 이모가 닭꼬치 담긴 그릇을 내려놓으며 지환의 시선을 가렸다.이모가 자리를 떴을 때, 이서는 임하나와 윤수정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지금 틀림없이 열 받아서 팔짝 뛸걸? 생각만 해도 핵사이다다!”임하나는 꼬치를 하나 들고 먹으며 말했다.“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거 같아. 만약 이 일자리가 윤수정한테 넘어갔다면, 걔 아마 지금쯤, 네 앞에 달려와 얼마나 거들먹거리며 자랑질할지 안 봐도 비디오야.”이상언도 꼬치 하나를 들었다.그는 의아한 듯 물었다.“윤수정, 하은철 애인 아닌가요?”“응, 상언 씨도 윤수정 알아요?” 임하나가 물었다.“최근에 그녀의 병력을 살펴보고 있어요.”천천히 씹어 삼키는 이상언과, 입을 크게 벌려 쩝쩝거리며 먹는 임하나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병력도 살펴봐야 하나요?” 문외한인 이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음…… 환자의 병력은 개인정보와 관련되는 사항이라 이야기하면 안 되지만, 이서씨는 윤수정의 가족이니 말씀드릴게요. 음…… 윤수정의 데이터 수치를 보면 며칠간 정상이다가 악화되는 패턴이 있어요. 통상적인 경우라면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없는데…….”“난 그년이 꾀병이라는 데 한 표 건다. 구린내가 진동해.”임하나가 말했다.“잘 살펴봐요. 틀림없이 뭔가 있을 거예요.”임하나를 보는 이상언의 눈빛에 자상함이 묻어났다.“의사도 아닌데 어찌 이렇게 잘 알까?
편의점 안.이서는 간식 몇 개와 물 몇 병을 샀다.임하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녀에게 물었다.“물은 왜?”포장마차에도 물이 있다.이서의 귀가 부자연스럽게 빨개졌다.“생수 마시고 싶어서.”임하나가 가까이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마시고 싶은 거야? 아니면 지환 씨에게 사주고 싶은 거야?”“내가 마신다. 됐지?”이서는 물을 한 병 더 들고 와서 몸을 돌려 임하나에게 물었다.“하나야, 너 이상언 씨랑 어떻게 된 거야?”“아, 우리 왜? 아무것도 없는데.”임하나는 왠지 속이 찔렸다. 사실은 정말 이상언과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발이 저렸다.“그래?” 이서의 맑은 눈동자는 임하나의 고양이 눈을 쳐다보았다. 임하나는 쑥스러웠다.“내가 약속했잖아. 나 이상언한테 관심 없어.”“만약 네가 정말 좋다면, 나는 개의치 않아. 상관없어.”임하나는 손을 흔들었다.“아냐, 됐어. 이상언 씨 집안과 기반이 모두 외국에 있어. 지금 잠깐은 한국에 머물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사람이야. 롱디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힘들어.”윤수정은 멍해졌다.지환의 가족도 외국에 있다.그렇다면 그들은 앞으로 떨어져서 자주 못 본다는 얘기인가?“내 얘기 그만하고…… 지환 씨랑 어떻게 된 거야? 그나저나 저번에 그 여자는 대체 누구야?”포장마차 오는 길에 이상언은 또 임하나에게 지환이 밖에 둔 여자에 대해 물었다.모른다고 말하자, 똑똑히 알아봐 달라고 이상언이 부탁하며 자기 친구를 위해 아닌 사실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말했다.이서의 눈동자는 단번에 어두워졌다.“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임하나는 급하게 말했다.비닐백을 들고 편의점을 나온 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명치에 돌이 눌린 것처럼 답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입을 열었다.“민예지야.”임하나의 얼굴색은 단번에 변했다.“제기랄! 찾아도 하필 민예지를 찾냐? 여기서 딱 기다려라. 내가 가만두나 봐!”말을 마친 임하나는 기세등등하
이상언은 임하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집 앞에 도착한 임하나는 여전히 소란을 피웠다.“이거 놔요, 나 절대 내 친구 눈에 눈물 나게 하는 놈 가만 안 둬요.”이상언은 한 손으로는 임하나의 허리를 껴안고 한 손으로는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불을 켜면서 임하나에게 말했다.“하나 씨가 이서 친구라는 사실에 감사해요. 아니었으면, 아마 뼈도 못 추렸을걸요?”임하나는 승복하지 않았다.“왜요, 설마 날 죽이기라도 한대요?”이상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방으로 가서 임하나에게 물 한 잔을 따라서 건네주었다.임하나는 여전히 분개했다.“내로남불,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바람 피운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해?”“나, 지환이 잘 알아요. 절대 민예지라는 여자와 아무 사이 아니에요.”임하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둘은 친구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편 들겠지.”“그건 아니에요.”이상언은 그날 룸에서 민예지가 지환을 유혹하려다가 쫓겨난 일을 간단히 말해줬다.“지환이가 정말 그 여자랑 뭔 썸싱이 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겠죠? 당시 룸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어요. 나에게 연기를 보여줄 만큼 그렇게 한가한 놈 아니네요.”임하나는 말문이 막혀 한참 뒤에야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럼 도시락 배달 간 날은……?”“아마도 틀림없이 무슨 오해가 있었을 거예요.”이상언은 그녀가 마침내 진정된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됐어요. 지환이가 아마 이서 씨에게 잘 해명할 거예요. 그들을 신경 그만 쓰고……. 물 더 줄까요?”“네.”임하나는 목을 가다듬었다.“방금 너무 흥분했더니 목이 다 바싹바싹 마르네.”말하면서 그녀는 붉은 입술을 핥았다.붉은 입술이 촉촉한 것이 마치 장미가 아침 안개에 물든 것 같았다.이상언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물 갖다줄게요.”주방에 들어서니 머릿속이 흐리멍덩해졌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동안 맛있는 음식에 심취해 새 여자친구를 안 만난 지 꽤 됐지.’‘그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이서는 급히 이불을 들춰 확인했지만, 몸에 옷이 그대로 잘 입혀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그녀와…… 지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깼어?”이서는 고개를 들어 마침 욕실에서 걸어 나온 지환을 보았다. 그의 몸에는 목욕 타올만 느슨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기는 선명한 복근을 따라 목욕 타올 가장자리로 스며들었다.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응.”지환은 다가가서 침대에 앉았다.침대 반쪽이 순식간에 내려앉았다.이서의 마음은 흔들리는 침대처럼 심장이 마구 나대기 시작했다.귓불이 사과처럼 빨개졌다.지환은 손을 들어 이서의 작고 부드러운 귓불을 만졌다.“어젯밤에 네가 먼저 잠들었어.”“네?” 이서도 생각났다. 지환이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가 잠이 들었다.그녀의 얼굴은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미안해요!”지환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럼 어떻게 보상할 거야?”이서는 긴 속눈썹을 떨며 수줍어했다.“저기…… 눈 감아봐요.”지환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이서는 용기를 내어 상체를 살짝 펴고 그의 볼에 키스했다.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듯 그녀는 입술은 곧 물러났다.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려고 이불을 들었는데, 남성의 강한 손이 가느다란 그녀의 허리를 확 움켜쥐었다.그는 이서의 콧날에 대고 말했다.“고작 이 정도로?”반쪽 얼굴을 이불에 묻은 이서의 두 눈동자에 안개가 자욱한 것이 쑥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낮고 섹시한 목소리까지 겹치니 손으로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지환 씨…….”지환은 얼굴을 묻고 있는 이불을 살짝 제치며 입술을 짓눌렀다.“응, 이 정도는 돼야지.”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귓가에 울려 퍼졌다.이서의 예상과는 달리 지환은 진도를 더 나가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일어나서 밥 먹어, 오늘 회사에 얼굴도장 찍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다, 나 이제부터 말 편하게 할 거야! 너도 편하게 하고 싶으면 해.”이서는 그제야 오늘 서우에 가서 입사 서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