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는 세수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했다.음식을 식탁에 올릴 때까지만 해도, 지환에게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고개를 들어 지환을 보는 순간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었다.평상복으로 입은 그는 평소의 정장 차림에서 볼 수 없었던 친근한 이미지가 더해졌다.“오늘 아침 메뉴는……?”지환아 의자 당기면서 말했다.이서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고, 가슴이 콩닥콩닥 나대기 시작했다.일순, 이서는 두 사람의 라이프 패턴이 오랜 세월 함께 지낸 노부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야채수프래요, 떠다 드릴게요.”“내가 할게요.” 지환이 먼저 주방으로 들어갔다.이서는 제자리에 서서 지환이 수프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지환은 동작이 빠릿빠릿했다. 수프를 그릇에 담으면서 말을 꺼냈다. “며칠 있다가 우리 아버지 만나러 갈 거예요.”이서는 멍해졌다.“아버님 성격이 급하신가 봐요…….”‘수정의 디자인 시안 탈취 사건 의로 및 조사하는데도 며칠이 걸릴 텐데.’지환이 동작을 멈칫했다.그의 아버지가 급한 게 아니라 그가 급한 것이다.“가기 싫어요?”“아니요.”이미 승낙한 이상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는다.“다만 공모전에 작은 문제가 생겨서 처리하는데 며칠이 걸릴 수도 있어요.”지환이 찌푸렸던 눈살을 폈다.“작은 문제니 곧 처리되겠죠. 마무리되면 그때 갑시다.”이서는 가볍게 웃었다.‘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데.’아직 증거를 주최측에 보내지도 않았다.그리고 보내더라도 그쪽에서 조사하는 데 시일이 걸린다.적어도 일주일은 걸려야 결과가 나올 텐데…….식탁에 앉자마자 임하나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젠장, 정말 윤수정처럼 뻔뻔스러운 여자는 처음 본다!]임하나는 화가 나서 콧구멍으로 바람을 내쉬었다.[그년이 개인계정에, 얼마 전에 자기가 부주의로 너의 물건을 부쉈는데, 네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자기를 고소하려고 한다는 글을 올렸더라!][썅, 부주의? 부주의라고? 부주의로 너희 집을 그 지경으로 다
그래서 최근 둘은 틈만 나면 같이 밥 먹으러 다녔다.둘은 밥 친구일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아니요.”이상언은 점잖게 웃었다.[그럼 무슨 일로 전화했을까나?]“이서요, 네티즌들이 이서 악플 달고 있어요.”임하나는 사건의 경위를 간단히 말했다.“지환 씨 어제 출장 다녀왔잖아요, 요 며칠은 집에서 이서랑 함께 있어 주면 안 될까요? 밖에 나가서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지 말고…….”괜히 이서에 신경 안 건드리게…….[지환이가 밖에서 집적댄다고요? 언제?]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요. 이서도 직접 눈으로 봤어요.”임하나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하나도 절대 양다리는 걸치지 않는다.“언제 있었던 일이에요?”‘지환이 그 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막 나갔지?’“그날 이서가 나에게 도시락 배달 왔을 때…….”그 여자가 누군지 이서는 말하지 않았다.“나중에 얘기해요. 회의 시간 다 됐네. 아, 지환 씨한테 연락 좀 해줘요. 이서랑 같이 있어 주라고…….”이상언은 바로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통화 중이었다. 다시 걸었을 때는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하씨 그룹 산하 병원.윤수정은 온통 이서를 비방하는 댓글을 보면서, 눈이 안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효과가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간병인이 옆에서 지켜보며 빙그레 웃었다.“조금만 더 있으면 송시묵 변호사라도 여론의 압력에 굴복해 소송을 취하할 거예요.”윤수정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이서의 똥 씹은 표정을 볼 수 없어서 아쉽다.”‘아주 가관일 텐데.’그녀는 고개를 들어 방에 가득 찬 선물 박스를 보며, 얼굴의 웃음이 더욱 환해졌다.어제 하은철이 개인계정에 축하 메시지를 남긴 뒤, 북성 4대 가문을 제외한 대부분 정∙재계 인사들이 다양한 선물을 보내왔다.다들 그녀를 미래의 하씨 집안 작은 사모님으로 추대하고 있었다.“내 핸드폰 좀 줘요, 사진 찍어서 올려야겠다.”간병인이 윤수정의 핸드폰을 갖다주었다.윤수정은 선물 보따리를 향해 찰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여론 방송가에 후폭풍이 일어났다.[무슨 소리야? 윤수정의 수상 작품이 윤이서 거라니? 그럼, 윤수정이 윤이서의 작품을 표절한 거야?][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어제저녁, 윤이서가 주최 측에 시안 제작 과정 파일을 보냈대. 두 시안이 완전히 똑같다고 하던데? 윤수정이 윤이서의 시안을 탈취했다고 의심하는 관계자들도 있어.][……?][설마 훔쳤다고? 누가 그리 멍청한 짓을 해? 어차피 난 안 믿어. 주최자 측도 윤이서가 매수한 거 아니야? 윤수정, 뭐하냐? 저쪽이 조작한 거라는 증거 빨리 제시해!][나도 주최 측이 윤이서에게 매수됐다는 의견에 한 표! 틀림없이 윤수정을 질투한 윤이서가 주최 측을 매수하여 원작자 정정 어쩌고저쩌고 한 거야!][디자이너로서 한마디 하자면, 이 두 작품의 디자인 이념은 완전히 달라. 대상은 패키지 디자인의 외관적 미를 선호한 반면, 금상은 마케팅 이념 쪽에 더 많이 치우쳐 있어. 좀 더 성숙하달까? 딱 봐도 베테랑 디자이너 작품이야. 그런데 어떻게 동일 인물의 작품일 수 있겠어?]대중들의 질문세례에 주최 측은 이서의 작품 초고와 시안 완성 시간, 그리고 윤수정의 투고 시간도 같이 공개했다.시간상으로 봤을 때, 이서의 시안 완성이 먼저고, 윤수정의 투고는 그 뒤였다.대중이 아직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또 하나의 메가톤급 소식이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몇 년 동안 언론과 미디어에서 잠적했던 송서묵, 송 대변호사가 뜻밖에도 자신의 인스타에 새 글을 게시했다.그의 첫 번째 소식은, ‘은퇴 후의 뷰티풀 라이프’가 아닌 윤수정의 변호사로 영입되었다는 내용이었다.[제가 바로 윤이서 님의 대리 변호사입니다.]짧은 한 줄의 새 글이 소동을 일으켰다.[……?][이게 무슨 상황이야? 송 대변호사, 은퇴했잖아? 게다가 하씨 그룹에서도 영입하지 못한걸, 윤이서가 무슨 수로?][어리둥절, 윤이서가 대체 송 대변호사한테 무슨 딜을 한거야? 송서묵, 빨리 도망가, 송 변님, 평생 이룬 명예…
이서는 눈을 들어 소파에서 태블릿을 보고 있는 지환을 쏘아보았다.그리고는 공식 사이트에서 제시한 디자인 스케치를 다시 한번 보았다.“당신이…….” 이서가 일어섰다.지환은 인기척을 듣고 눈꺼풀을 치켜떴다.“왜?”“당신이 어제저녁에 증거를 확보해서 주최 측에 보낸 건가요?” 이서가 목구멍을 뚫고 무엇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음.”이서의 마음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그리고 송 변호사님…… 그것도 당신이 시킨 거예요?”지환은 침묵하며 이서의 눈동자를 응시했다.이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환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다.민예지가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게 아니라면, 아마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쳤을 것이다.핸드폰 벨소리가 울리자, 이서는 생각을 거두었다.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한 번 보았다.임하나한테서 걸려온 것이었다.전화기 너머에서 흥분된 임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자기, 너 설마 진작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 아니지?!]회의를 마친 임하나는 서둘러 컴퓨터를 켜서 네티즌들과 한바탕 싸울 계획이었다.그런데, 웬걸 언론이 바뀌었다.‘너무 빠른 거 아니야?’‘단지 잠깐 회의하고 나왔을 뿐인데.’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몰래 눈을 들어 지환의 방향을 훔쳐보았다.“내가 어떻게 일의 진전을 예지할 수 있겠어?”[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후속 조치가 이루어진 것은, 딱 봐도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는 얘긴데……. 보자, 정말 네가 한 거 아니냐?]“송 변호사 쪽은 그렇다 쳐도, 주최 측에 아는 사람이 하나 한 명도 없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니?”임하나가 생각해도 그랬다. 그녀는 턱을 쓰다듬으며 깔깔거리며 웃었다.[자기, 혹시 이 몇 브랜드 중에 너를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거 아냐? 그래서 네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선뜻 나선 거 아니냐고?]“너 요즘 드라마 너무 많이 봤구나……?” 이서는 웃었다.저쪽에서 이서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맙소사!! 이서야, 빨리 기사 봐봐, 그 몇몇
이서는 ‘실없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자마자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낯선 번호였다.이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받았다.“여보세요?”[안녕하세요, 윤이서 씨 되십니까?]“네.”[저는 서우 그룹에 새로 부임한 CEO 김청용입니다. 우선 공모전 심의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윤이서 씨에게 피해를 드려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어라, CEO가 직접 사과하네.’‘급이 좀 많이 높은데?’“그래도 잘 해결됐으니 다행입니다.”[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김청용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었다.[회사 내부에서 상의한 결과, 윤이서 씨가 명실상부한 대상, 금상 수상자로 상금과 부상을 모두 윤이서 씨에게 지급할 예정입니다.][일전에 공표했듯이 대상 수상자에게는 특별 부상이 주어집니다. 바로 새 회사의 평생 총괄 디렉터로 초빙하는 것입니다. 혹시 윤이서 씨는 저희 회사에 입사할 의향이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이서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그녀가 가장 원했던 게 바로 일자리다!‘대상의 특별 부상이 일자리 제공이라니!’‘대박! 죽인다!’ “그럼요, 귀사에 입사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인수 합병 그룹인 서우의 배후에는 하은철 둘째 삼촌이 있다.향후 나날이 발전할 것이다.입사는 이서가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일이었다.김청용은 한숨을 돌렸다.[윤이서 씨, 혹시 이 외에 다른 보상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이서는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이렇게 신속하게 사건의 경위를 밝혀준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입니다.”김청용은 이서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어젯밤, 새벽 3시에 불려 가 공모전 사건을 조사했다.사건 조사 과정에서 ‘뷰티 페이스’콘테스트 관련 책임자들은, 고위층이든 중층이든 심지어 몇 명의 대형 브랜드 CEO까지 모두 짤렸다.이 일로, 위에서 얼마나 진노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김청용은 이서의 자료를 찾아 보고서야, 그녀가 대표의 예비 조카며느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헐, 대박 면이 서겠구먼!][이렇게 대형 그룹의 첫 번째는 소식이 디자인 디렉터의 입사를 환영이라니.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소식통에 의하면, 서우 대표가 하은철 삼촌이래. 만약 하은철과 윤이서 사이가 틀어졌다면, 그의 삼촌도 굳이 이렇게 체면을 봐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맞아, 그래서 이 자료들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거야.]“…….”공식 사이트에 등장한 첫 번째 기사는 네티즌들의 눈에 심심풀이 땅콩, 팝콘각이었다.그러나 상류사회에서는 적지 않은 풍파가 일어났다.특히 4대 가문은 더 오리무중이었다.몇몇 대형 브랜드의 인수 합병은 하원철 큰집의 손이 대한민국 시장까지 뻗었음을 의미한다.그러나 그전에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이날의 여론 폭풍의 반전으로, 이서가 다시 하씨 집안과 혼약을 이어갈지에 대해서도 여론의 중심이 되었다.그 중에서도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바로 어제 하루 종일 이서를 조롱하던 윤씨 집안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채팅방에서 미친 듯이 이서에게 메시지를 남겼다.[내가 그랬잖아, 이서가 어떻게 수정에게 밀리겠어? 그러고 보니 이서가 자기 작품에 진 거야.][쯧쯧쯧쯧, 수정아, 네가 언니를 이기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알겠어. 하지만 어떻게 언니 작품을 훔칠 생각하니? 같은 윤씨 집안 사람인데 어떻게 수준 차이가 이렇게 날 수 있니?][윤씨 가문의 망신은 니가 다 시켰다. 너랑 한 집안 사람이라니, 정말 평생 재수가 없겠어!]“…….”우후죽순마냥 쏟아진 비난에 윤수정은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바람 부는 대로 돛 다는 천한 놈들!’상황을 지켜본 간병인은 얼른 윤수정의 휴대전화를 챙겼다.“아가씨, 화내지 마세요. 그 사람들, 승자 편이에요. 그런 인간들과 화낼 필요 없어요.”윤수정은 손톱이 살에 파이도록 주먹을 불끈 쥐었다.“나는 그 사람들에게 화 난 게 아니야. 윤이서, 그 썅년! 내가 그년 노트북을 완전히 박살냈는데 그 스케치들은 어디에서 되찾은 거지? 설마 그년, 내가 자기 작품으로 공모전에 참가할 것
윤수정은 비록 내키지 않았지만, 하은철 앞이라 어쩔 수 없이 그러겠노라고 했다.그녀는 이서가 분명히 자기를 비아냥거릴 거라고 확신했다.그때가 되면 또 억울한 척 모든 잘못을 이서에게 떠넘길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일거양득인 셈이다.이서에게 카톡을 보낸 윤수정은 메시지 옆에 1이 계속 사라지지 않자,전화를 걸려고 시도했다가 핸드폰 번호도 차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코를 들이마시며 ‘막막한’ 표정으로 하은철을 바라보았다.“언니가 화가 많이 났나 봐. 내 모든 연락처를 차단했어. 오빠, 핸드폰 좀 빌려줄 수 있어?”하은철은 휴대전화를 꺼내 윤수정에게 건네주었다.윤수정은 연락처에서 이서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그녀는 하은철의 카톡을 클릭했다.하은철은 그제야 자기 카톡도 차단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내 카톡도 차단됐어.”하지만 윤수정은 봤다.하은철이 지난번 보냈던 축하 메시지를…….[금상 수상 축하해.]윤수정은 눈을 깜박거리며 손가락을 꽉 쥐었다.그녀는 대상을 탔음에도 하은철에게 축하 메시지를 ‘구걸’했었다. 그런데 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하은철의 축하를 받았다.“오빠, 할아버지는…… 요즘도 오빠랑 언니 잘됐으면 해?”하은철은 그녀의 기분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응.”“그래서 오빠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은철은 표정이 굳어지며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할아버지 명령이니까. 근데, 수정아 걱정 마. 이서 마음이 돌아서면 그땐 내가 사정없이 그녀를 차버릴 테니까.”그는 단지 오기가 생겼을 뿐이다. 과거 그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던 꼬리가 보이지 않자 오기가 생겼다.주먹을 꽉 쥔 윤수정의 눈빛이 표독스러워 보였다.‘윤이서, 널 더 이상 가만둘 수 없어!’……거액의 상금에 일자리까지 보장받았으니 당연히 임하나에게 한 턱 내야 했다. 게다가 이 기회를 빌려 지환에게 감사를 표하려 했다.“그럼, 상언도 같이 데려가요.”하지환이 말했다.이서도 별 의견이
“그럼 왜…….”“이서야!” 이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하나의 업 된 목소리를 들었다.목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바라보니 마침 이상언 차에서 내리는 임하나를 보았다.“둘이…… 같이?”“네.” 이상언이 말했다. “축하해요, 윤이서 씨.”이서는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임하나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이상언에게 인사했다.“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냥 편하게 이서라고 불러 주세요.”“이서?” 옆에 있던 하지환의 목소리가 콧방귀와 함께 터져나왔다.이상언은 지환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에이, 그럼 성은 빼고, 이서 씨라고 부를게요. 이서 씨도 저를 의사 선생님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세요.”“네. 상언 씨.”말하는 사이, 네 사람은 포장마차 안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지환은 계속 고개를 숙여 플라스틱 의자를 살펴보았다.이서가 물었다.“왜요?”포장마차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환은 이상했다.이상언이 농담을 던졌다.“쟤 신경 쓰지 마요. 큰집 도련님께서 처음으로 신분을 낮추고 이처럼 누추한 포장마차를 방문하시니 적응 못 하는 게 당연하지요.”임하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지환 씨, 포장마차에 처음 오는 거예요?”이상언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지환이 보내온 ‘그윽한’ 눈빛을 받았다.그는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지환이…… 이런 거 안 좋아해요.”“아…….” 임하나는 시선을 이서에게 돌리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자기, 먼저 서우의 평생 디렉터가 된 걸 축하해. 이제 철밥통 직장인이 되었네.”이서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고마워, 나도 대상 부상이 일자리일 줄은 몰랐어. 완전히 날 위한 맞춤 공모전 같아.”이상언은 별 내색하지 않고 지환을 흘겨보았다.지환은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다.“이제 하은철 삼촌 회사에 들어가니, 앞으로 그를 만날 기회가 있겠다.”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꼭 그렇지는 않을걸? 얼마나 바쁜 분인데…….”지난번에도 바람 맞았다.지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