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의 강한 카리스마에 놀란 심동은 슬그머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미소를 지었다.“윤 대표, 우리는 진심으로 윤 대표한테 사과하고 싶어.” 그 순간, 장희령의 시선이 이서의 곁에 있는 지환에게 떨어졌다. 그녀는 군침을 흘리고 있는 듯했다. 연예계 사람들은 당연히 일반인보다 잘생긴 남자를 많이 보는 법이었다. 그래서 장희령도 이미 외모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지환을 마주한 그녀의 마음속에는 질투의 불씨가 더욱 활활 타올랐다. ‘얼굴은 볼 필요도 없겠어. 저 드넓은 어깨와 좁은 엉덩이 좀 보라고!’장희령은 정말이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전에도 윤이서의 옆에 저런 남자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 남자는 안경을 쓰지 않았었지, 아마?’‘그새 남자를 갈아치운 거야?’ ‘윤이서는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훌륭한 남자들을 꼬드기는 거지?’ 이제 하은철의 명령은 필요가 없었다. 장희령은 지환의 얼굴에 씌워진 가면을 직접 벗기고 싶었으니 말이다. 장희령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지환에게 향하자, 이서는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서는 곧장 지환을 끌고 가려고 했다.“심 사장님, 제 생각은 여전합니다. 저는 절대 두 분의 사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니까 다시는 저를 찾아와서 사과하지 마세요!” 이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바로 그때, 갑자기 자신의 임무를 떠올린 장희령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고, 성큼성큼 걸어가 이서의 앞을 막았다. “윤 대표님,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하지만 이 말을 뱉는 장희령의 시선은 지환을 향하고 있었다. 이서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하 선생님, 어서 가요!” 두 사람의 몸이 교차되는 그 순간, 장희령은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즉각 손을 뻗어 지환의 가면을 잡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서와 심동은 온몸이 얼어붙었는데, 그들의 시선은 모두 지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희령이 손이 지환의 가면에 닿는 순간, ‘찰싹’하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이서는 지환에게 이끌려 호텔을 나섰다. 호텔 입구에 도착했을 때, 지환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화내지 마세요.”이서가 지환의 팔을 가볍게 건드렸다.“장희령은 이미 교훈을 받은 셈이잖아요? 그리고 걱정할 거 없어요. 앞으로는 심씨 가문의 사람이나 장희령의 사람을 만나지 않을 거니까요.” 지환의 얼굴빛이 그제야 풀렸다. “그래, 어서 출근해.” “네.”이서는 지환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 올랐다. 지환은 그 차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계속 지켜보다가, 눈 속에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기색을 다시금 떠올렸다. ‘방금 장희령은 내 가면을 노렸어.’ ‘그렇게 목적이 뚜렷한 행동에는 분명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텐데...’ ‘그런데 장희령은 내가 가면을 벗으면 이서가 충격을 받을 거라는 사실을 모르잖아?’ ‘하지만!’지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은철은 알고 있지.’ ‘또 그 자식이야?!’ 지환이 핸드폰을 꺼내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은철은 요즘 뭐 하고 지내?” 짙은 실의를 느낀 이천이 바삐 말했다.[윤씨 그룹을 압박하느라 바빴지만, 이서 아가씨께서 해명하는 순간부터 모든 계획이 허사가 됐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하은철의 최근 계획을 재빨리 훑어본 이천이 바삐 말했다.[아, 참, 최근에 송씨 그룹 산하의 한 제약회사가 어린아이의 성장에 관한 약물을 연구했는데, 자금 문제에 직면해서 하씨 가문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지금 하씨 가문의 고택에 간 이유도 그 일 때문일 겁니다.] 지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그게 정말이야?” [네, 정말입니다.] 이천이 또 한마디 덧붙였다.[만약 그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하씨 그룹은 큰 이익을 얻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 윤씨 그룹이 하씨 그룹의 압박을 견뎌낸 걸 보면, 송씨 가문도 이 점을 고려할 것으로 보입니다.] [즉, 오직 하씨 가문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윤씨 그룹을 포함한 또 다른 2대 가문들과도
송철환이 가리키는 서화를 본 하은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저희 할아버지의 소장품이었습니다.” 그 순간, 송철환의 안색이 매우 부자연스러워졌다.“미안합니다, 하 사장님.” 하은철이 일어나서 그 서화를 향해 다가갔다.“괜찮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도 꽤 오래되었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의 염원을 이루지 못했어,’ 나란히 놓인 서화들을 주시하던 하은철이 자신도 모르게 이서가 선물한 서화로 시선을 옮겼다. ‘할아버지께서는 이서를 참 좋아하셨어. 이서가 선물한 서화는 이 중에서 가장 값어치가 없는 거였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그걸 액자에 넣어서 장식하실 정도였지.’‘하지만 이서는...’ 이서를 떠올린 하은철은 분노가 솟구칠 지경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서를 벼랑 끝으로 내몰 거야. 그렇게 해야만 이서를 내 품에 안을 수 있을 테니까!’ 하은철은 모든 주의력을 이서가 선물한 그 서화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송철환의 목소리를 조금도 듣지 못했다. “하 사장님,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하은철이 대답하지 않자, 송철환은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문어귀로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송씨 가문의 가주, 송철환 대표님이십니까?] “그런데요?”송철환이 대답했다. [저희가 그 특허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송철환은 이를 장난으로 여겼다.“이미 하씨 가문에게 팔았습니다.” [잠시만요.]이천이 송철환을 불렀다.[송 대표님, 저희의 제안은 들어보지도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이 말을 들은 송철환이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제안이요? 좋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하씨 가문이 어느 정도의 금액을 제시했든, 저희는 그 금액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이 말을 들은 송철환이 웃으며 말했다.“두 배요? 허풍은 누구나 떨 수 있는 것이지요. 하씨 가문이 제시한 금액이 얼마인지는 알고 이러는 겁니까?” [6천억이요, 게다가 매년 매출의 30%를 추가로 지불하겠다고 하지
문밖에는 차 한 대가 서 있었고, 송철환은 1초간 망설이다가 차에 올랐다. 그리고 이때, 주경모는 계약서를 들고 거실로 돌아왔는데, 하은철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도련님, 송대표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정신을 차린 하은철은 텅 빈 거실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잠시 나간 것 같네요.”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호원 한 명이 부랴부랴 들어왔다.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방금 송 대표님께서 어떤 차에 올랐는데, 제가 이상함을 깨닫고 쫓아가려 하니까 그 차가 제 눈앞에서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하은철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뭐라고?” 놀란 경호원은 연신 이 말만을 반복했다.“송 대표님께서... 차를 타고 떠나버리셨습니다!” 하은철이 눈살을 찌푸리며 주경모를 향해 말했다.“당장 전화하세요.” 주경모는 핸드폰을 꺼내느라 바빴고, 전화는 곧 연결되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송철환이 아닌 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약서에는 내가 사인해 줄게.]지환은 가면을 쓴 채 서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이서는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겁도 없이 또 한 번 이서한테 관심을 표했다가는 하씨 가문에서 싹을 잘라버릴 줄 알아!] [이건 경고이자, 마지막 기회야.] 하은철은 화가 나서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바닥에 박혀버린 핸드폰은 큰 소리를 냈으나, 하은철의 마음속 깊은 분노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환... 하지환!’ ‘감히 내 눈앞에서 송철환 대표를 데려가다니... 이건 나를 모욕하고, 내가 주제넘은 짓을 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하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환의 곁에 있는 이서는 반드시 되찾아야 해.’‘윤이서, 너는 나의 것이어야 하니까!’ 같은 시각. 차에 오른 송철환은 지환의 기질에 놀라 머리가 텅 비고 말았다.기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그는 계약서를 품에 안은 채 벌벌 떨며 지환에게 말했다.“젊은 양반, 돈,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냥 날 풀어주
“최근에 하씨 그룹이 윤씨 그룹을 크게 압박했지만, 윤씨 그룹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는 못해서 하씨 그룹 내부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상황입니다.”“좋아, 계속해서 몰아붙이면 되겠어. 너는 며칠 동안 하씨 그룹의 취약한 사업을 모두 인수하도록 해.” “하 사장님 쪽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쩌죠?” 지환이 냉소하며 말했다.“그 사업들은 하씨 가문의 입장에서 돈만 나가고 수익은 전혀 낼 수 없는 골칫거리나 마찬가지야.”“하은철은 그 골칫거리들을 처리하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내가 인수하겠다고 하면, 방해는커녕 오히려 기뻐하지 않겠어? 나한테 그런 골칫거리를 떠넘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 죽을 지경일 텐데, 과연 반대할까?”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이천이 대답했다.“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지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창밖의 경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우선 하씨 그룹의 부가적인 사업을 손에 넣고, 중형 사업, 그리고 핵심사업까지 손을 뻗는 거야.’‘그때가 되면, 하은철이 반응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순간, 지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이서가 당한 원한을 갚기에는 역부족이야!’ ...사무실에 있던 이서가 재채기했다. “이서 언니, 실내 온도가 너무 낮은 거 아니에요?”소희가 에어컨 리모컨을 꺼내며 말했다.“온도를 좀 높일까요?” “괜찮아, 방금은 코가 간지러웠을 뿐이야. 맞다, 소희 씨, 오늘 채소를 꽤 많이 샀던데, 오늘은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생각인 거야?” 이서가 말했다.“맞아요.”소희가 수줍게 웃었다. “혼자? 아니면, 손님이랑?”이서가 소희를 놀렸다. 소희는 한동안 이서와 지내면서 그녀의 성격이 기억을 잃기 전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다시 예전처럼 사이좋은 자매처럼 지내게 되었다. 소희는 이서의 앞에서 조금 더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서 언니, 왜 또 놀리고 그러세요...” 이서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틀린
그 여자가 앉은 곳은 바로 소희의 아파트 현관 입구였는데, 주변 이웃들이 모두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정인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소희에게 떨어졌는데, 그들의 눈빛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조롱과 경멸, 그리고 혐오까지... “평소에는 아주 얌전해 보이는 아가씨였는데... 원래 좀 그런 사람이었나 봐요.” “그러게요,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니, 마음이 모질고 악랄한 사람인 것 같아요. 어쩐지 젊은 여자가 이런 집에 사는 게 이상하다 싶었어요.”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집에 살면서 부모님께는 한 푼도 주지 않는 자식이라니... 염치가 전혀 없네요.” 소희는 줄곧 이서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그녀의 심리적 안정감은 이서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사람들의 가십을 들은 소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희를 진정으로 한스럽게 하는 것은 부모의 방식이었는데... 그녀의 부모는 어려서부터 남자를 중시하고 여자를 경시했다. 하지만 소희는 이것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그저 부모님이 이전 세대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고, 좋은 것이 모두 동생에게 돌아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다만, 어른이 된 후에는 부모님과 어느 정도의 거리나 제한을 두고 행동했다. 소희는 자신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월급의 반이나 부모님께 드렸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모두의 가십을 들은 정인화가 소희를 보았고, 순식간에 밝은 눈빛을 띄웠다. “소희야, 왔구나!”갑자기 달려든 정인화가 소희의 허벅지를 껴안고 애걸복걸했다.“소희야, 엄마가 이렇게 빌게, 제발 네 동생 좀 살려주라, 응?”“2000만원이 없으면, 네 동생은 살 수 없단 말이야!” 그런 정인화의 태도에 소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돈을 위해서 저런 거짓말까지 지어내는 거야?’ “엄마, 지금 대체 무슨
현태는 소희의 곁으로 다가가 정인화를 향해 말했다.“또 돈 받으러 오신 겁니까?” 많은 훈련을 거친 현태는 기운이 넘치는 듯했다. 그가 한 글자 한 글자 똑똑히 물었다. 마치 정인화의 목소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현태는 그 사람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아드님께서 원하는 건 고작 400만원짜리 노트북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분은 이미 성인이 된 걸로 아는데, 왜 스스로 아르바이트해서 노트북을 구매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겁니까?”소희가 놀란 눈으로 현태를 바라보았다.‘뭐야, 다 알고 계셨던 거야?’“네? 조금 전에는 아들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어요?”한 이웃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프다고요?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그 이웃의 시선을 따라 정인화를 바라본 현태가 냉소하며 말했다.“이분이 하시는 말을 믿으신 겁니까? 설마, 아드님이 우주에 있다고 해도 믿을 건 아니죠?”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방금 정인화가 한 모든 말이 일방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설령 아프지 않다고 하더라도.”다른 이웃이 승복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이렇게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동생한테는 400만원짜리 노트북도 사줄 수 없다는 거예요?” “이 아파트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겁니다.”현태가 주위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그리고 누가 그러던가요? 이 아가씨가 동생에게 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요.”그가 곧이어 정인화를 쳐다보았다.“소희 씨가 노트북을 사주는 대신에 이전에 받아 갔던 2000만 원은 돌려주셔야겠습니다.” 이 말이 나오자, 반박하려던 이웃들은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와, 이미 2000만원을 받아 갔었나 봐요! 쯧쯧쯧,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그러니까... 저 할머니는 자기 아들을 저주하고, 억지까지 부린 거잖아요? 뻔뻔한 사람은 따로 있었네요.”“집안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2000만원이 넘는 노트북을 원하다니...
소희가 코를 훌쩍였다.“괜찮아요. 저는 단지... 가족들도 저를 매몰차게 대하는데, 가족도 아닌 오빠가 제 고충을 이해해 준다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소희의 눈동자에 비친 고통을 마주한 현태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위로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머리를 긁적거릴 뿐이었다.“소희 씨한테 나는 제삼자일 뿐인 거야?”소희가 현태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의 얼굴빛이 점차 홍당무처럼 붉게 변했다. 한참 동안 머리를 긁적거리던 그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소희 씨, 나는 소희 씨한테 제삼자로 남고 싶지 않아. 나는 소희 씨의 가족이... 아니,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되어서 언제나 소희 씨를 보호하고 싶어.” 소희의 얼굴도 천천히 붉어지기 시작했고, 불타오르는 듯한 기미까지 보였다. “오빠... 무슨 뜻이에요?” 소희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았는데, 복잡한 감정으로 얽힌 덩굴이 마음속에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소희 씨의 남자 친구가 되고 싶어!”현태가 단숨에 이 말을 뱉었다. 소희가 당혹스러워하며 현태를 바라보았다. “뭐라고요?”“소희 씨의 남자 친구가 되고 싶다고.”금세 낯선 느낌에 익숙해진 현태가 마침내 더듬거리지 않고 소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M국에 있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은 소희 씨였어. 아니, 밤낮으로 소희 씨만 생각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거야.” “그제야 알았어, 내가 진심으로 원한 건 동생 같은 소희 씨의 모습이 아니라...”현태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으나, 결국 이 말을 하고 말았다. “여자 친구로서의 소희 씨라는 걸.” 소희는 꿈쩍도 하지 않는 눈동자로 현태를 바라보았는데, 이미 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현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소희 씨, 싫은 건 아니지? 하긴... 내가 너무 둔해서 소희 씨가 슬퍼하는 걸...”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아든 힘찬 포옹은 하마터면 현태를 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