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철이 장희령을 등지고 말했다.“이유는 묻지 마시고, 이서한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세요. 그리고 이서가 무조건 그 남자를 데리고 오게 해야 합니다. 장희령 씨가 어떤 방법을 쓰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꼭 그 남자를 데려오게 하세요.” 이 말을 들은 장희령은 길을 찾은 것 같았다. ‘아, 하은철의 목표는 윤이서가 아니라, 윤이서 주변에 있는 그 남자구나?’ 잠시 후, 하은철이 말을 덧붙였다.“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면, 장희령 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남자의 얼굴에 있는 가면을 벗기면 됩니다.” 잠시 침묵하던 장희령이 자신에게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최선을 다해볼게요.”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입술을 오므린 장희령은 고개를 숙인 채 낮은 자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네, 하 사장님, 그럼 저는 먼저 돌아가서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하은철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서야 자리를 떠났다. 차에 오른 장희령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 매니저가 다가와서 물었다.“어때, 하은철이 도와주겠대?” 장희령이 대답했다.“그런 셈이야.” “그런 셈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장희령이 짜증스럽게 말했다.“묻지만 말고 윤이서의 옆에 있다는 가면을 쓴 남자나 좀 알아봐 줘.” 매니저는 혼란스러웠지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차는 천천히 움직여 하씨 가문의 고택을 떠났다. ...이튿날 이른 아침.몸을 뒤척이며 일어난 이서가 곧장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하 선생님!” 하지만 문 너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서는 순간 당혹감을 느꼈다.“하 선생님!”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서가 초조하게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하 선생님, 안에 계세요?” 그녀가 두 번째 두드리려던 찰나, 문이 열리고 바지만 입은 채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있는 지환의 모습이 보였다. 이 모습을 본 이서는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이서
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소희 씨, 안색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어제 저녁에 제대로 못 쉰 거야?” 소희가 얼른 부인했다.‘제대로 쉬지 못해서 얼굴이 엉망인 거겠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아무래도 제대로 못 쉬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나나랑 같이 나가면, 소희 씨는 회사에 남아서 푹 쉬도록 해.” 이 말을 마친 이서가 이미 화장을 마친 나나에게 물었다.“나나야, 이제 출발할까?” 거울을 한 번 확인한 나나가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이서에게 말했다.“네, 이서 언니.” “응, 가자.”“이서 언니.”소희가 이서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따로 쉴 필요도 없고요. 그냥 저도 같이 갈래요.” 이서가 안심하지 못하고 소희를 한번 보았다.“정말 괜찮겠어?” 소희가 재차 대답했다.“네, 정말 괜찮아요.”시간을 힐끗 바라본 이서가 소희에게 말했다.“불편하면 언제든지 말해줘.”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 네 명은 그제야 출발했다.이서가 이미 출구를 지키고 있던 기자들을 해산시켰기 때문에, 차는 막힘없이 강명철의 회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리치푸드에 도착한 나나와 이서는 마스크를 벗고 있었는데, 이를 본 강명철의 직원들은 즉시 비명을 질렀다. “으악! 서나나 씨잖아? 내가 일하는 곳에 서나나 씨가 오다니!” “맙소사, 서나나 씨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이네요!” “윤 대표님, 팬입니다. 사인 하나 해줄 수 있으십니까?”리치푸드에는 나나의 팬뿐만 아니라 이서의 팬도 있었다. 하긴, 미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큰 인기척은 자연히 사무실에 있던 강명철과 그의 비서의 주의를 끌었다. 자신의 회사가 팬미팅 현장으로 변해버린 것을 본 강명철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이 현재 가장 뜨거운 논쟁의 주인공인 나나와 이서인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명철은 이서가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그의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나나를 남겨두고 홍보 내용을 논의하라고 한 이서는 소희를 데리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곧 다른 회사도 내가 나나한테 리치푸드의 홍보를 담당하라고 한 사실을 알게 될 거야.”이서가 태블릿을 꺼내어 남아 있는 몇몇 회사의 자료를 넘기며 말했다.“아무래도 이 회사들에도 가봐야 할 것 같아.”“네, 그럼 저는 다음 길목에 내려서 혼자 회사로 가볼게요.” “그럴 필요 없어.”이서가 고개를 숙인 채 자료를 보며 말했다.“올 때 확인해 보니까 다음 회사에 가려면 마침 윤씨 그룹을 지나가야 하더라고. 그러니까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굴 거 없어. 그냥 기사님께 소희 씨를 윤씨 그룹 입구에 내려 달라고 할게.” “좋아요.”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30분 후, 차가 윤씨 그룹의 입구에 도착하자, 소희는 여전히 자료를 보고 있는 이서에게 인사를 한 후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소희가 채 문을 닫기도 전에 달려든 사람의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한바탕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이 계집애야! 왜 내 전화를 안 받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소희는 곧 눈앞의 사람이 정인화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거리의 수많은 눈동자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소희가 급히 정인화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좀 진정하세요.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아직도 체면을 차리는 거니?!”정인화는 이 말 때문에 오히려 더욱 화가 났다.“동생을 좀 돌보라고 했더니, 전화도 안 받고 뭐 하는 짓이야?! 그래서 이 어미가 시골에서부터 천 리 먼 길을 달려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겠니? 내가 이 길바닥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이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네 아버지랑 고생스럽게 너를 키운 대가가 고작 이거니?! 그런 거야?!”이서는 차 안에서 인상을 찌푸린 채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을 본 정인화가 무대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아예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억울해서 못 산다! 이럴 바
소희는 이미 회사로 걸어가는 정인화를 불안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이서를 돌아보았다.“이서 언니.” 이서가 말했다.“소희 씨, 아무래도 소희 씨의 집안일이다 보니까 나는 끼어들기가 좀 애매하네. 소희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이서는 다시 차에 올랐다.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던 소희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흘렀다. 이서의 말을 더할 나위 없이 분명했는데, 소희가 회사의 자원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서 언니는 내가 경비원을 동원해서 엄마를 쫓아낸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 소희는 복잡한 감정을 안고 정인화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같은 시각.차에서 곰곰이 생각하던 이서는 이 일은 현태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제 그녀는 현태가 온 이후에 소희가 눈에 띄게 즐거워한다는 것을 느꼈고, 현태 또한 수시로 소희를 바라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 아무래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된 것 같지? 마지막 한 걸음만 남은 것 같아.’ ‘내가 현태 씨한테 이 상황을 말하면, 작은 도움을 주는 셈이 되지 않을까?’ 그 순간, 이서는 자기도 모르게 지환을 떠올렸다.‘하 선생님은 뭐 하고 계시려나?’ 정인화를 휴게실로 데려간 소희는 곧 문을 닫았다. 이서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정인화가 물었다.“네 대표는?” “업무차 외출하셨어요. 엄마,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죠? 여긴 회사고, 엄마가 소란을 피울 만한 곳이 아니라고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세요!”“엄마도 집에 가고 싶지.”정인화가 의자에 앉으며 편안한 한숨을 내뱉었다.“그런데 소희야, 이 의자가 너무 편해서 갈 수가 있어야지... 도대체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거니?” 소희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말씀해 보세요, 도대체 얼마를 드려야 집으로 가실 건데요?” “2000만 원, 네가 2000만 원만 주면 바로 집으로 간다니까?!”“2000만 원이요?!”소희가 눈을 크게 뜨고 정인화를 바라보았다.“저한테 그렇게
정인화는 말을 마치자마자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심플한 흰색 티셔츠를 입은 그 남자는 근육이 울퉁불퉁한 두 팔을 뽐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사나운 늑대처럼 매서워서, 안하무인인 정인화라 하더라도 그를 무섭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정인화를 뒤따라 나온 소희는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후 잠시 멍해졌고, 이내 솟아오르는 열등감을 느꼈다. 하지만 현태는 이런 것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정인화를 응시하며 딱딱하게 말했다.“여기는 회사입니다. 소란 피우지 말고 나가주세요. 혹시라도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신다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인화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내 딸을 찾으러 왔을 뿐인데, 왜 경찰을 부른다는 거예요? 설마, 이 회사는 내가 내 딸을 만나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정인화의 우렁찬 목소리는 곧 회사 안의 다른 사람들을 모두 끌어들였다. 그들은 평소에 소희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었는데, 정인화는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연극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현태는 더 이상 예의를 차리지 않고, 곧장 정인화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갔다. 정인화는 급해져서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늙은이를 때리다니! 늙은이를 때렸어! 세상에 법이 없는 것처럼 군다고!”분분히 서로를 쳐다보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달려가 현태를 도왔는데, 모두 그의 카리스마에 깜짝 놀랐기 때문이었다. 정인화는 반응할 틈도 없이 현태에 의해 1층으로 끌려갔다. 그가 입구에 있던 경비원에게 말했다.“당장 쫓아내세요. 혹시라도 이 여성분이 다시 회사를 찾아온다면, 사람이 없는 외딴곳으로 보내버리세요.” “당신들이 감히! 어떻게 감히...” 몇 명의 경비원들이 정인화가 계속해서 소란을 피울 것을 대비하여 서둘러 그녀를 차에 태워 보냈다. 뒤이어 온 소희는 정인화가 차에 태워져 떠나는
현태는 손을 흔들며 소희와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서야 이서에게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꺼낸 그의 입가에 끊임없는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대표님, 잘 처리했습니다.] 같은 시각.이미 협력 회사에 도착한 이서는 현태의 메시지를 받고 미소를 지었다.‘내 예상이 맞았어. 현태 씨, 소희 씨를 아주 좋아하는구나.’ 핸드폰을 접은 이서가 발길이 닿는 대로 협력 회사로 들어갔다. 그녀가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안내 데스크 직원이 친절하게 말했다.“윤 대표님이시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희 대표님께서도 곧 내려오실 겁니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한 무리가 이서를 보자마자 친절하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바로 이 회사의 대표입니다. 이름은 진재호입니다만, 편하게 진 대표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이서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윤 대표님, 올라가서 이야기하시죠.” 이서가 웃으며 말했다.“네.”위층으로 올라가 대표실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이서를 향해 목례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이서를 무슨 중요한 지도자처럼 여기는 듯했다. 게다가 회의실에 다다른 진재호는 이서가 제시한 계약서를 보지도 않고 바로 계약을 맺었다. 많은 말을 준비했던 이서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진 대표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진재호가 웃으며 말했다. “윤 대표님,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듣자 하니, 이전에는 저희 윤씨 그룹과 협력할 생각이 없다고 하셨다던데, 지금은 왜...” 진재호는 얼굴이 몹시 두꺼워 전혀 쑥스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그런 적 없습니다, 전혀요. 아마 제 부하직원이 제 뜻을 잘못 전달한 모양입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윤 대표님께서 떠나시면, 제가 아주 혼쭐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진재호가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윤 대표님, 강명철 대표를 도와 경영 방면
비록 1년여의 기억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서는 여전히 심동에 관한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심동은 심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줄곧 호평을 받아오던 사람이야. 아주 능력 있는 남자가 어쩌다가 장희령과 엮이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곰곰이 생각하던 이서가 체면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연결되자, 심동은 주동적으로 입을 열어 이서와 인사를 했다. [윤 대표, 지금 시간 있어? 내 여자 친구가 인터넷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에 대해서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 신사적으로 말하는 심동의 시선이 옆에 있던 장희령에게 향했다. 이서가 말했다.“아니요, 사과는 필요 없어요. 저는 여전히 법적인 절차를 밟을 생각이거든요.” 심동은 그 언론사들의 존망은 개의치 않았으나, 그로 인해 심씨 가문이 피해를 볼까 걱정하고 있었다. [이서야,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셈이잖아. 그래, 이번 일은 희령이가 확실히 지나쳤어. 하지만 희령이도 본인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러니까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고소 취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너한테 분명히 사과하고 싶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나랑 희령이는 평생 너한테 미안한 마음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잖아.] 이서가 인상을 찌푸렸다.“심 사장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사과를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장희령 씨가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낀다면, 제가 아니라 나나 씨한테 사과하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네요.” 이 말을 마친 이서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은 스피커로 전환되어 있었기에 장희령은 모든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전화가 끊기자, 억울함을 느낀 장희령이 눈시울을 붉혔다.“봤지? 윤이서가 사과를 받지 않은 거지, 내가 사과하지 않은 게 아니란 말이야!”심동은 장희령의 얼굴을 보지 않았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울 때 더욱 예뻐 보이기 때문이었다.그는 자신이 이성을 잃을까 봐 너무도 두려웠다. “그럼 윤이서가 말
장희령은 짧게 대답했지만, 조금도 자신이 없었다. ‘하은철이 윤이서의 곁에 있는 가면 쓴 남자를 알려주면 뭐 해? 그 남자는커녕 윤이서를 만나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하지만...’ ‘하은철이 시킨 일이니까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을 거야.’ 그녀가 핸드폰을 세게 움켜쥐었다. ‘윤이서, 조금만 기다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게 만들어 줄게!’ ...바삐 돌아다니던 이서가 호텔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저녁 10시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자,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지환의 모습이 보였다. 따스한 불빛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의 기다란 몸에 떨어졌다. ‘멋있다...’ 이서의 탐욕스러운 시선은 지환의 몸을 따라 위로 올라가다가, 아쉬운 듯이 그의 얼굴에서 멈췄다. ‘만약...’ 지환이 이서의 속마음을 들은 듯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왔어?” “네.”이서가 말했다.지환이 이서를 향해 손을 흔들자, 그녀가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배고프지?” 이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환의 가면 위로 눈길을 돌렸다. 지환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하며 일어나서 말했다.“목욕물 받아줄게.” 그 순간, 이서가 뒤에서 그를 잡아당겼다.“하 선생님...”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는데, 일부러 그런 목소리를 내는 듯했으며, 이 목소리를 들은 지환은 몸이 한바탕 건조하고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얼굴 좀 보여주시면 안 돼요?”‘너무 궁금해.’ ‘이런 황홀하고 멋진 몸매에 어울리는 얼굴은 어떨까?’ 하지만 지환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었는데, 이것은 그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난번에 CCTV를 복구할 때 이서를 자극한 바가 있었던 지환은 절대 이서에게 자신의 생김새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었다. “이서야, 얼른 목욕하러 가!” 지환의 말투는 다소 무거웠다. 그가 다소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린 이서가 어쩔 수 없이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