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후 성연도 개학할 때가 되어서 수업을 재개했다.개학 첫날,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숙제를 베껴 쓰고 있었다.성연을 본 주연정은 아주 기뻐하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성연아, 왔어? 겨울방학 숙제는 어떻게 됐어?”“내가 요점을 좀 골라서 했어.”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겨울방학 숙제를 통째로 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그러나 성연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각 과목의 숙제를 모두 조금씩 했다.하지만 모두 요점을 골라서 한 것이다.앞에 있던 친구가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얘기를 듣더니, 고개를 돌려서 말했다.“주연정, 성연이는 성적만 해도 숙제를 하지 않아도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오히려 너 자신을 걱정해야 해. 방금 너는 나한테 겨울방학 숙제를 다 못 했다고 말하지 않았어? 이윤하는 성질이 정말 좋지 않아. 그 여자가 너의 껍질을 벗기지 않도록 조심해.”이 말을 들은 성연은 주연정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너는 겨울방학 숙제를 다 하지 못했어?”주연정은 입술을 오므렸다.“내가 반을 했는데, 그 뒤로는 설을 지냈잖아? 우리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는데,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서 그냥 즐겁게 놀았어.”성연이 그녀에게 과외를 할 때 엄했기에, 주연정은 지금 성연에 대해서 일종의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마치 진정한 선생님이 그의 앞에 있는 것과 같았다.연정은 좀 무서웠다.“그래서 숙제를 잊은 거야?” 성연은 말투가 차분했지만, 주연정은 왠지 성연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얼른 설명했다.“미안해, 네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는 잊지 않았어. 어젯밤에도 나는 스스로 하다가 정말 너무 많아서 도저히 다 할 수가 없었어.”주연정은 울상을 지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근심스러운지는 말할 것도 없다.“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이따가 정말 늦지 않도록 빨리 숙제를 해.” 성연이 말했다.주연정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았다.“성연아, 너 화 안 났지.”성연은 다소 놀랐다.“너는 왜
왕씨 가문 쪽에서는, 왕대관의 어머니가 집에 돌아온 후 줄곧 염두에 두고 있었다.그녀는 다과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평소에 사기 아까웠던 비싼 디저트들을 그녀는 보러 갔고, 집안을 환하게 꾸몄다.설을 쇠는 동안에, 그녀는 또 애초에 광고했던 그 부잣집 부인들에게 가서 자기가 강씨 집안의 노마님과 친하다고 자랑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좋은지 말하지 말라고 했다.모두들 믿지 않았다. 강씨 집안의 노마님이, 어떻게 왕대관의 모친과 같은 작은 회사를 알 수 있겠는가?왕대관의 모친이 허풍만 떠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모두 믿지 않았다.그러나 왕대관의 모친은 페이스북에 강씨 집안의 사진을 올렸다.그것은 그날 그녀가 강씨 가문에 갔을 때 정원과 입구를 찍은 사진들이다.눈치가 있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짜 강씨 가문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강씨 집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왕대관의 모친이 그래도 수완이 좀 있었다.북성에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누가 강씨 집안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평소에 왕대관의 모친에게 눈빛조차 주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녀가 다과회를 조직한다는 것을 알자 잇달아 찾아와서, 왕대관의 모친에게 초대장을 달라고 했다.물론 모두 강씨 가문의 노마님을 향해 간 것이고 왕대관의 모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어쩔순 없지만, 그래도 강씨 가문의 노마님을 사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왕대관의 모친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녀의 허영심을 크게 만족시켰다.‘이 사람들의 추악한 몰골을 봐.’‘평소에 콧대 높은 이 사람들은 줄곧 사람을 깔보았지.’‘지금은, 그런데 하나같이 내게 아부하러 오지 않아?’‘정말 저들의 예전 모습을 찍어서 봐야 하는 건데.’진미선도 따라서 다과회를 꾸몄다.왕대관의 모친, 시어머니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고 진미선은 좋지 않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의 위치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녁을 먹을 때 왕대관의 모친은 진미선에게 이 일을 말했다.어차피 그녀는 말을 다 풀어놓았기에, 바로 문제를 진미선에게 던진 것이다.진미선은 시어머니가 직접 초대할 걸로 여겼는데, 뜻밖에도 자신에게 가서 설득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왕대관의 모친은 이미 말을 그렇게 크게 떠벌렸는데, 만약 그녀가 사람을 청하지 못한다면 큰 일이 아니겠는가?진미선은 약간 망설이는 표정으로, 잠시 후에 왕대관과 상의하려고 했다.‘어쨌든 성연이가 꼭 내 체면을 세워준다고 할 수는 없어.’그녀의 표정을 본 왕대관의 모친이 눈썹을 찌푸렸다.“왜? 싫어?”진미선은 그녀의 이 음침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손을 휘저었다.“어머니, 싫다는 게 아니라요.”“그럼 떨떠름한 표정으로 누구를 보는 거야? 내가 너한테 억울한 말을 하라고 했어? 다과회는 네가 하자고 하지 않았어? 아니면 네가 일부러 나를 속인 거야? 응? 너는 고의로 우리 왕씨 가문이 잘 되는 걸 바라지 않는 거지, 그렇지?” 왕대관의 모친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미선을 쏘아보았다.‘진미선에게 이런 딱지를 씌웠으니, 쟤는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해.’다만 진미선은 좀 억울한 마음이었다.‘시어머니는 전혀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어서,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어.’갑자기 입맛이 없어진 진미선은, 밥을 먹은 뒤에 배부르다고 말하고 방에 가서 쉬었다.왕대관의 모친은 며느리의 태도에 또 한바탕 화가 났다.그녀는 왕대관을 향해서 바로 말했다.“쟤 태도가 어떤지 봐? 내가 쟤를 밥을 적게 먹였어, 아니면 옷을 적게 입혔어? 쟤한테 가서 말을 좀 해 달라고 했더니, 저렇게 달갑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어. 앞으로 우리 왕씨 가문이 발전하면, 쟤 몫도 있지 않겠어? 이렇게 나이가 많은 나도 여전히 걱정하는데, 내가 누구를 위해서 그런 거야?”모친이 화가 난 것을 본 왕대관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어머니,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서 그런 거지요. 하지만 지금 임신 중이니 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마세
성연은 진미선이 자신을 찾아온 목적을 듣자 바로 비웃었다.“그 시어머니 정말 뻔뻔스럽네.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 당신들이 관계를 맺는 도구야? 내가 정말 충고하지만 내 한계점을 건드리지 마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그녀는 바로 이렇게 말했다. ‘진미선이 어떻게 처리할지는 그녀의 일이야.’‘앞서 진미선은 그동안 얼마나 당당한 듯이 지켜보았지만, 왕씨 가족들 앞에서는 메추라기처럼 찌질했어.’‘이런 가정이 정말 진미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성연은 전혀 알 수 없었다.진미선은 그녀의 말에 난처해졌다.그러나 만약 이 일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돌아간 후에 시어머니는 절대 자신을 좋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성연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성연이 피했다.진미선은 애원하는 말투로 말했다.“성연아, 나 좀 도와줘. 나 왕씨 집안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야. 그들에게 쓸모가 있어야 그들이 나한테 잘해 줄 거야. 지금 너는 내 유일한 희망이야. 만약 네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만약 막다른 골목에 이르지 않았다면, 진미선도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이전에 그녀가 성연의 앞에서 얼마나 강경하게 말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비참한가?진미선의 오기는 왕씨 가문에 의해 일찍이 말끔히 사라졌다.그녀는 이미 두 번째 결혼을 했기에 더 이상 이혼할 수도 없었다. ‘뱃속에 아이까지 있는데 이혼한다는 건, 그것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야.’만약 그녀 자신이 아이를 키운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만약 그녀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성연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왕씨 가문이 어떻든 간에, 반드시 여기에 머물러야 해.’그녀도 더 이상 이혼할 용기가 없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성연은 눈썹을 골랐다.진미선은 줄곧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지만, 자신은 결코 그녀를 도울 의무가 없었다.‘애초에 진미선이 망설임 없이 나를 내팽개친 것과 같아.’애초에 그녀는 수
두 사람이 말하는 동안 차 한 대가 천천히 그들의 맞은편에 섰다.차에서 진미선과 성연을 본 무진은, 눈살을 찌푸린 뒤 차에서 내렸다.성연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무진을 본 진미선은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우리 시어머니가 다과회를 준비하는데, 지난번에 회장님과 인연을 맺었기에 회장님을 초대하시고 싶어해.”이번에는 진미선이 듣기 좋게 말했다.진정으로 다과회에 초대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이것은 명백하지 않았다.성연이 승낙해야 뭐가 와도 오는 것이니.성연은 자신들 모녀의 일을 진미선이 강씨 집안과 연루시키지 않길 바랬다.그러나 지금 진미선은 거듭 자신의 한계점을 건드려 성연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무진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 “저희 할머니는 내일 출국하셔서 한 달 후에야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아마 참석하실 수 없을 것 같네요.”“그래요?” 진미선의 표정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러나 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진미선으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본 무진이 계속 말했다.“그럼 다른 일이 없으면, 우리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그래요. 먼저 가봐.” 진미선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성연은 그녀를 상대하기가 귀찮아서, 바로 차에 타고 떠났다.차에 올라탄 성연이 그제서야 물었다.“할머니가 출국하시는 거 난 왜 몰랐지?”성연은 이것이 무진이 자신을 위해 위해서 말한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줄곧 집에서 안금여를 모시고 있었는데, 안금여가 출국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할머니 정말 외국에 나가셔. 고모와 같이 사돈 어르신들 뵈러 가는 거야. 고모부도 같이 가시고. 외국에 나가신 김에 기분 전환을 하시라고 했어. 할머니께서 너에게 아직 얘기할 시간이 없으셨나 보다.”무진이 설명했다.“할머니가 이번에 나가시니 정말 좋네요. 귀찮은 사람들도 안 보고.” 성연은 진미선과 왕씨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초조해진다.개가죽 고약처럼 아무리 털어도 벗겨지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진미선은 시어머니 이숙자에게 사실대로 이 일을 알렸다.하지만 자신이 여는 다과회에 강씨 집안의 안금여 회장이 참석한다는 글을 이미 단톡방에 올리며 잔뜩 자랑을 한 이숙자였다. 한순간에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져 자신이 거짓말쟁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이숙자는 진미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이 집안에 들어와 편안히 지낸 지가 얼마인데, 어떻게 이리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게야! 매일 호의호식하게 해줬으면, 보답할 줄 알아야지. 이런 것조차 제대로 못하다니, 지금 나더러 속이 터져 죽으라는 게냐?”진미선이 이숙자에게 자신을 위한 변명을 늘어놓았다.“어머님, 안금여 회장은 내일 출국한다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죠. 이것도 갑자기 듣게 된 소식이에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다과회를 취소하시는 게 좋겠어요.”만약 지금이라도 다과회를 취소한다면, 적어도 남아 있는 체면이라도 좀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그러나 이숙자는 진미선의 권유를 달갑지 않아 했다.“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강무진이 일부러 거짓말해서 너를 속인 거야, 너는 그것도 못 알아차려? 도대체 네 이 머리는 장식용인 게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거야? 네가 우리 왕씨 집안에 들어온 후부터 집안이 완전 망한 게야!”이숙자는 진미선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바로 욕설을 퍼부었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성연에게서 한 소리 듣고 왔던 진미선은 시어머니 이숙자에게 또 다시 욕을 먹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안금여가 참석하지 않는 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라고? 자신이 가서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설마 내가 억지로라도 안금여 회장을 참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런 생각을 하니 눈에서 바로 눈물이 흘러내렸다.진미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더 화가 난 이숙자는 바로 진미선의 팔을 꼬집어대기 시작했다.“울어? 네가 울어? 하루 종일 울 줄밖에 모르고? 우는 것 말고 도대체 네가 할 줄 아는
진미선에게 욕설을 퍼부었지만, 단톡방에서 이미 큰 소리 뻥뻥 쳐 놓은 이숙자. 만약 안금여가 오지 않는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것이다.그래서 해가 지기도 전에 이숙자는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강씨 집안 고택으로 향했다. 안금여를 직접 만나 이 일을 부탁할 생각에.얼마되지 않아 이숙자는 강씨 집안 고택에 도착했다.인터폰으로 이숙자를 확인한 집사는 먼저 안금여에게 물어보겠다고 하며 바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이숙자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기 강씨 집안에서 자신이 행패를 부릴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좀 부드러운 말투로 바꾸어 집사에게 말했다.“지난번에 왔을 때 봤잖아? 아직 기억하고 있지? 그냥 들어가게 해줘.”전문적인 소양을 갖춘 집사는 이숙자에게 별다른 색안경을 끼고 대하지 않았다.그저 얼굴에 한결같이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그래도 저는 회장님께 먼저 여쭤보아야 합니다.”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자 이숙자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홰홰 내저었다.“됐어, 알았으니 빨리 가서 내가 왔다고 알려.”집사가 하인데 아닌데, 이숙자는 마치 자신이 주인이라도 된 듯이 명령했다.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집사는 바로 거실로 들어와서 안금여에게 이숙자가 방문했음을 알렸다.쟈스민 차를 마시고 있던 안금여는 집사의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여기엔 왜 왔다는 거야?”“잘 모르겠습니다. 혼자 왔습니다.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집사가 안금여에게 물었다.“혼자 왔다고?” 찻잔을 쓰다듬던 안금여는 잠시 후에 말했다. “됐어. 이왕 왔으니 한 번 만나보지 뭐.”안금여의 허락이 떨어지자, 집사는 바로 현관의 인터폰 앞으로 가서 이숙자를 향해 말했다.“회장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이숙자는 턱을 들어올린 채 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안금여 회장이 어떻게 날 안 만날 수 있겠어?’이 정도의 체면은 안금여 회장이 봐 줄 거라고 이미 생각했던 것이다.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집안으로 들어선 이숙자.지난번에 한 번 와 봤었
고택을 나온 이숙자는 오늘 강씨 고택에 와서 정말 제대로 체면을 구긴 것 같았다.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오니, 왕대관과 진미선이 밥을 먹고 있었다.시어머니 이숙자에게 전례 없이 목소리를 높였던 진미선은 본래 밥을 먹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또 남편이 괜히 소란 떤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가사 도우미가 식사 준비를 끝낸 후에 방에서 나왔다.시어머니가 돌아오는 기척이 크게 느껴졌다.그때 고개를 들어 마침 화가 나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시어머니를 본 진미선은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왕대관 또한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멀쩡하시던 어머니가 왜 저리 화가 나신 거지?’진미선 앞에 다가가 바로 진미선의 밥그릇과 수저를 반대편으로 밀어버린 이숙자가 진미선을 향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쩜 이렇게 뻔뻔한 지. 지금 우리 왕씨 집안 밥을 먹을 염치가 있어?”진미선은 몸을 움츠린 채 시어머니의 얼굴을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왕대관이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곧바로 일어나 어머니를 막아 세웠다.“어머니, 무슨 일이 있으면 밥 다 먹고 나서 얘기해요.”“그래도 먹겠다고? 하루 종일 먹고, 먹고, 또 먹어. 그렇게 많이 먹어대는데 어떻게 머리가 이렇게 안 돌아가는 거야. 바로 네가 장가간 이 잘난 마누라가 오늘 오후에 네 엄마한테 어떻게 대들었는데?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진미선을 비난하던 이숙자의 머릿속에 자신을 대하던 안금여의 표정이 생각났다.강씨 집안에서 당한 일로 난 화를 모두 다 진미선에게 쏟았다.“당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진미선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대들었다는 소리를 들은 왕대관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진미선이 잘못했다는 생각에 바로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미선을 응시했다.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남편을 보며 진미선은 끅끅 울며 낮에 있었던 일을 자백했다.“이 일은 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이숙자가 매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