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람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왔다.체크인한 호텔 내에 온천이 있었다.외부 온천은 깨끗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무진은 5성급 호텔을 예약했던 터였다.적어도 외부의 노천탕 보다는 깨끗할 것이다.또한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도 있었다.무진이 애지중지하는 사람을 당연히 다른 사람이 보게 할 수는 없는 법.성연은 위아래 무엇이든 모두 자신에게 속한 것이다.호텔로 돌아와 욕의를 가지고 성연은 바로 다른 룸으로 들어가 온천을 했다.무진은 따라오지 않았다.온천 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던 성연의 머릿속에 갑자기 진미선이 한 말과 아직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스치고 지나갔다.문득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적어도 누군가는 자신과 함께 하고 있지 않나?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기분 좋은 일들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성연은 갑자기 대관람차 위에서 무진과 나누었던 입맞춤이 생각났다.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두드린 후 옅은 미소를 지었다.온천에 너무 오래 담구고 있을 수는 없었다.너무 오래 머물자 성연은 갑자기 온몸이 나른해졌다.머리도 좀 혼몽해지면서.온천에 몸을 담근 후유증이었다. 성연은 비할 데 없이 시원하다.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성연은 일어나 온천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왔다. 무진은 이미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언제 나왔어요?”“방금, 어때?” 무진이 소매를 가다듬으며 몸을 돌려 성연을 바라보았다.“아주 편안해요. 몸이 순식간에 많이 쪼그라든 것 같아요.” 성연이 기지개를 켰다.“배고프니? 뭐 좀 먹으러 가자. 여기서 먹는 것도 괜찮고. 밖에서 기다릴게.” 무진이 먼저 객실 밖으로 나갔다. 성연이 옷을 갈아입도록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성연은 부끄러움을 잘 타니까.여기에 남아 있으면 성연은 분명 부끄러움에 화를 낼 것이다.성연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마음에 들지만, 성연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감정을
여자가 떠난 후, 무진의 맞은편에 앉는 성연의 말투에는 그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불만이 가득 담겼다.“어머, 강 대표님 정말 잘 나가시네요. 그 잠시 동안 꽃 한 송이를 꺽으시다니요.”“상관없는 사람일 뿐이야.”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성연이 저 사람들 때문에 화나는 게 더 싫었다.성연은 무진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성연이 무진에게 ‘눈치가 좀 있네’라는 시선을 보냈다.무진이 메뉴를 밀었다.“뭘 먹고 싶은 지 골라 봐. 맛이 다 괜찮다.”처음에는 음식을 좀 미리 주문해 놓고 성연을 기다릴 생각이었다.그러나 아까 그 여자 때문에 시간을 빼앗긴 상황에 주문하기도 전에 성연이 왔던 터였다.성연은 이곳의 대표 요리인 스테이크 2인분과 파스타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을 주문했다.이런 호텔의 요리는 보통 보여 주기 위한 것들이라는 걸 잘 안다.양이 너무 적었다.배불리 먹고 싶어도 그것으로는 불가능했다.그래서 성연이 이것저것 많이 주문했다.무진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바로 성연일 즐겁게 하는 것이니.자신은 어떻든 상관없었다.스테이크와 파스타가 금방 나왔다.무진이 다 썰은 스테이크를 성연의 앞으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성연 앞에 있던 스테이크와 바꾸었다.하나하나 빠짐없이 자신을 배려하는 무진을 보며 성연은 새삼 무진이 무척 다정하고 세심하다고 생각했다. 무진과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성연은 조용히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앞으로 자신이 떠나면 무진 곁에 또 다른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때도 무진이 이렇게 그녀를 돌볼까?성연의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느낌이 미묘했다.그러나 성연은 바로 마음속의 불편함을 억눌렀다.미래가 어떻게 되든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아닌가?현재를 꽉 잡은 채 현재를 소중히 여기면 돼.성연은 아주 편안하게 기분 좋게 먹었다.무진은 식사하는 내내 차를 따라주고 물을 건네는 등 성연을 챙겼다.성연이 얼마나 편안
북성으로 돌아온 무진은 조미홍이 강상철의 집으로 찾아 가서 소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강씨 집안의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조미홍이 강상철의 곁을 지킨 지가 10년이었다. 즉, 10년을 숨기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자신의 신분이 명예스럽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조미홍은 강상철에게 어떤 약속도 요구하지 않았다.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당당하게 고개 들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조미홍은 강상철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다.비에 젖은 배꽃이 흔들리듯 강상철이 보기에 몹시 마음이 아팠다.그리고 강상철도 조미홍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신분이 사생아든 아니든 어쨌든 자신의 아들인데 왜 족보에 못 올린다는 말인가?그는 안금여 쪽에서 그들이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다.내연녀 조미홍을 위해 강상철은 체면 불구하고 안금여에게 여러 번 부탁했다.그러나 늘 제 마음대로 날뛰던 습관으로 인해 안금여 앞에서 부탁하는 태도가 말이 아니었다.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더 강했다.안금여는 이 일이 정말 창피했다.나이를 그렇게나 먹은 강상철이 어린 내연녀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걸 보내 더 파렴치하게 여겨졌다.‘자기 본처를 도대체 뭘로 본다는 말인가?’그런데 안금여가 승낙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녀는 매번 거절하는 태도를 취했다.강상철은 안금여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안금여는 지금 강씨 집안에서 가장 윗 사람에 연장자였다.그러니 만약 형수 안금여가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결국 강상철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자신의 처와 언쟁을 벌였던 강상철은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여자와는 상대하고 싶지가 않았다.그래서 요 며칠 계속 조미홍에게 마련해 준 집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지냈다.강상철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조미홍은 즉시 차를 가져와 따라 주었다.적당한 차의 온도에 강상철의 노여움도 많이 가라앉았다.조미홍은 아들 문제로 요 며
밤새도록 따뜻한 위로를 받은 강상철은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이날 찾아갈 때는 그래도 예의를 좀 차리고 비위도 좀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안금여에게 줄 최상급 화차 한 봉지도 지닌 채였다.안금여는 집사에게 선물을 받아 챙기도록 지시했다.그러나 안금여는 이 화차를 마실 수가 없었다.강상철의 수법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안에 무언가를 넣었다면 그건 치명적일 테지.’안금여 자신도 잘 알았다. 한 차례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게 다음 번에도 그렇게 운이 좋으리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다는 사실을.그래서 저들이 보낸 물건에 대해.관계가 가장 좋은 게 아니라면 안금여는 먹지 않을 것이다.한 번 그런 일이 있은 후로 그녀도 겁이 나 무엇을 하든 조심스러웠다.안금여는 집사에게 강상철에게 차를 끓여 주라고 한 다음 강상철에게 앉으라고 했다.두 사람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강상철은 화가 났지만 자신이 오늘 방문한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러나 안금여는 입을 열지 않았다.결국 강상철이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형수님, 제가 오늘 온 까닭은 제 막내아들의 일 때문입니다. 강씨 집안 자손이 밖에서 떠도는 걸 형수님도 원하시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안금여는 직설적으로 말했다.“강씨 집안 자손은 정처에게서 난 자식을 말합니다. 정통성을 가진 당당한 혈통을 말하는 거예요. 바깥의 어느 출신인지도 알 수 없는 사생아가 아니라. 나는 승낙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형수님,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준이도 제 자식입니다. 내가 강씨 집안 사람인데 내 아들이 왜 족보에 못 오른다는 말입니까?” 강상철은 화가 치밀어 죽을 지경이었다.그는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큰 집과 첨예하게 대립할 때, 자신 또한 무진에 대해서 인정 사정 봐 주지 않았었다.그러니 안금여는 지금 이런 중대한 일을 쉽게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정말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에게 부탁 같은 거 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아무 말없이 가볍게 차를 한 모금 마
강상철은 또 다시 설득에 실패하고 돌아갔다.그러나 그는 안금여가 조건을 말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조미홍이 아마 한바탕 크게 소란을 피울 것이다.그날 저녁에 돌아간 후, 강상철은 비서를 시켜 고가의 보석 여러 개를 고르게 했다.들고서 직접 고급 빌라에 가서 조미홍에게 선물했다.농촌 출신의 조미홍은 요 몇 년 비록 짧은 시간 경험들을 했었지만, 뼛속까지 세상 물정을 맛보지는 못했다.천박한 습관들은 아무리 숨겨도 숨길 수가 없었다.이렇게 많은 보석들을 보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조미홍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오늘 무슨 좋은 날이에요? 설마 강씨 노마님이 승낙하셨어요?”자신의 아이가 강씨 집안 족보에 들어가기만 하면앞으로 자신은 정말 강씨 집안 도련님의 친모가 되는 것이다.북성 시에서 강씨 집안이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대단한가?앞으로 그녀도 상류사회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애썼던가?“아니, 너도 알다시피 큰 집은 우리 둘째, 셋째 일가와 계속 사이가 안 좋았어. 형수님이 이 기회를 빌려 나를 괴롭히려는 모양인데, 어떻게 거기에 동의하겠어?” 강상철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강상철이 이렇게 말하는데, 조미홍이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만약 안금여가 굳게 작정하고 허락하지 않는 거라면 강상철이라도 어쩔 수 없다.“나는 괜찮아요. 우리 아이만 불쌍하게 됐어요.”조미홍이 큰 소리로 불만을 터트렸다.“강변의 별장, 당신 본 지 오래 되지 않았어? 내가 두 채를 샀는데, 이미 당신 명의로 바꿨어. 그리고 이 카드 한도가 10억이야. 당신 준이 데리고 가서 기분전환도 하고 그래. 이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강상철은 조미홍이 참 단순하다고 생각했다.‘돈만 있으면 달랠 수 있으니.’‘괜히 상대하기 어려운 여자들보다 얼마나 좋아.’‘강변 별장?’조미홍의 눈이 확 뜨였다.‘그쪽 별장 가격이 얼만데?’애초에 자신이 그렇게도 애걸했지만 승낙하지 않던 강
강상철은 마침내 조미홍을 달래는 데에 성공했다. 집을 손에 넣은 날, 조미홍은 즉시 아이를 데리고 새 별장을 보러 갔다.그러나 이 일을 통해 강상철은 체면을 구긴 셈이 되었다.강상철의 분노는 대단했다.도대체 누가 이 일을 폭로했단 말인가?그렇게 오랫동안 속이고 있었다. 철저히 비밀에 붙인 채로.시간이 좀 더 지났다면 절대 들키지 않을 터이다.강상철은 강무진이 이 일을 폭로한 것이라고 의심했다.강무진이 정말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이 일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강무진이 있을 것이다.안 그러면 또 누구란 말인가?‘강무진, 이렇게나 나를 괴롭히다니, 네 놈도 두 발 뻗고 잘 생각은 하지 마라.’강상철의 눈에 매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강상철은 가슴 저 밑에서부터 살기를 느꼈다.무진만 처리하면 앞으로 자신을 방해하는 놈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모두가 잠든 시간, 은밀한 곳을 찾아 서재로 간 강상철은 문을 잠그고 외국의 용병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나야.” 강상철이 유창한 영어를 말했다.수화기 저편에서 강상철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사님,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하셨습니까?”지난번에 거점이 드러났던 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조직 내부를 재정비해야 했다.그 동안 강상철이 자신들을 완전히 버린 줄 알았었는데, 여전히 자신들을 기억하고 있다니.“쓸데없는 소리 말고, 지시할 일이 있어.”강상철이 바로 용건을 말했다.강무진이 자신을 도발한 것이다.절대로 강무진이 편안하게 지낼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감히 나를 건드려? 제 주제도 모르고.’“강 이사님께서 시키신 일은 도의상 절대 거절할 수가 없지요. 지시만 하시면 언제든 꼭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 저쪽 사람들의 목소리는 상당히 거칠고 또 엄숙했다.조직의 미래를 위해서 그들은 반드시 강상철에게 잘 보여야 한다.강상철이 그리 쉽게 자신의 심혈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자신들도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다른 조직에 비교될 것이다.어떻게
강상철은 한참을 궁리했다. 평생 강무진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그의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먼저 사고가 터졌다.강상철이 이날 회사에서 내려오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몇 명이 정면으로 다가왔다.비즈니스 판에서 오랫동안 뒹굴었기에 별로 두렵지 않다.그러나 이 사람들은 기세가 등등한 것이 좋은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강상철 주변의 사람들 모두 충직해서 바로 강상철을 꽁꽁 감쌌다.암암리에 강상철을 보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맞은편의 인원에 비하면 다소 차이가 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본 강상철이 냉담하게 콧방귀를 뀌었다.“너희들은 어디에서 온 놈들이야? 감히 겁도 없이 WS그룹 입구에서 소란을 피워?”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바로 강상철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수법은 매우 전문적이다. 강상철의 사람들은 이 사람들의 공세로 곧 뿔뿔이 흩어졌다.강상철은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뚜렷한 목적을 보고 갑자기 좀 당황했다.“이 병신들아, 도대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안 보여?” 강상철이 노성을 지르는 순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강상철 앞에 나타났다.강상철은 눈동자가 움츠러들며 안색이 좀 창백해졌다.“너, 너희들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너희들은 내가 누군지 알아?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강씨 집안에서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강상철은 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놀라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만약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여기에서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다면, 아마 그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직접 칼을 꺼내 그의 팔에 칼을 그었다.목적을 달성한 검은 옷을 사람들은 전쟁터에 연연하지 않고 바로 떠났다.팔을 감싼 강상철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났다.그때서야 강상철의 부하들이 모여 들며 친절하게 물었다. “이사님, 괜찮으세요?”강상철은 바로 뺨을 한 대 때리고 자신과 가까이 있던 수하의 얼굴을 때렸다.“내가 어떻게 네 놈들 같
강상철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무진도 들었다.퇴근 후, 무진은 선물을 사서 방문하기로 했다.강상철은 한동안 이 일에 대해 의심했다. 그의 사생아의 일도 무진이 했을 거라고.그래서 그는 무진에게 좋은 태도를 보일 수가 없었다. “네가 무슨 낯짝으로 뻔뻔하게 여기를 찾아와?”강상철이 빈정거리며 무진에게 말했다.무진이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두 가지 일이 발생했는데, 그는 정말 몰랐다. 그러나, 그도 둘째 할아버지 강상철의 불행을 기꺼이 관망하였다. 무진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둘째 할아버님,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아직도 가장을 해? 나는 네 할아버지의 친동생이야. 그런데 나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 죽는 게 무섭지도 않아?”강상철은 무진의 차분한 모습을 보니 더 화가 치밀었다.‘정말 남에게 말도 못할 정도로 당했다?’그는 아니었다.“둘째 할아버님, 정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진의 얼굴이 싸늘해졌다.“두 가지 일 모두 네가 한 거 아냐?” 강상철의 표정이 굳었다.무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꿰뚫을 듯이 날카롭다.무진은 절대 건드리기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강상철이 다짜고짜 없이 제 머리에다 죄를 씌우는 말을 듣는 무진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둘째 할아버님, 증거 있으면 보여 주세요. 아니면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습니다.”자신이 강상철을 보러 온 것도 본래 이 별거 아닌 혈연관계 때문이었다.그렇지 않았으면, 자신이 어떻게 강상철의 체면을 세워준다는 말인가?자신이 또 구태여 이곳에 와서 고통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무진의 말에 강상철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무진이 진짜 고소할 지도 모르니.지금 그의 수중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아니면 이렇게 누워서 억울해할 필요가 없을 텐데.게다가 이 일은 본래가 근거가 없다.단지 무진이 한 것이라고 추측한 것일 뿐.그런데 무진의 저 모습을 보니 정말 무진이 한 게 아닌 건가?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을 보류해야 할 듯하다.무진도 만만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