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멍하니 넋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평소 활발하고 명랑한 모습의 성연이 이렇게 기운이 빠진 듯한 모습은 아주 보기 드물었다.집사가 다가와서 관심을 주며 물었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세요?”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대답한 성연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몸을 이불 속 깊숙이 파묻었다. 안색이 여전히 창백해 보였다.마음속의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이런 불필요한 감정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때로는 이런 자신이 너무 싫었다.‘저 두 사람의 본 모습, 이미 다 알고 있었잖아? 세상이 냉정하다는 것도 알았잖아?’‘그런데 왜 아직도 저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거야?’성연은 마음이 극도로 힘들었다.진미선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이런 말은 언제나 자신을 일깨운다.자신은 쓸데없는 존재라는 사실을.비록 지금은 잘 살고 있다 하더라도 저 두 사람이 자신에게 준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좌절감을 느끼며 생각해 보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방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냉장고를 뒤적거렸다.주방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집사가 바로 달려왔다.눈 앞의 장면에 집사가 옆에서 말했다.“사모님, 뭐든 찾는 게 있으면 나에게 알려주세요.”“혹시 집에 술 있어요?” 성연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평소 무진이 술을 자주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술을 찾을 수가 없었다.냉장고에는 평소 성연이 즐겨 마시던 우유와 탄산수 몇 병이 다였다.성연은 지금 자신의 신경을 마비시킬 만한 무언가 시급했다.‘당연히 술 최고지.’정신을 잃으면 아마 이 고통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성연의 말을 들은 집사의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사모님, 술을 드시기에는 아직 이르니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다시 이야기해요.”집사는 성연에게 함부로 술을 마시게 할 수 없었다.만약 성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분명 자신이 책임져야 할 터.그런 위험은 자신이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었다.“날 ‘사모님’
저녁에 무진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그런데 집안이 너무 조용한 것 같다.평소라면 성연이 식탁에 앉아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을 텐데.어째 오늘은 온 집안이 조용했다.성연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한 무진은 마음이 조급해져 방을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그러나 거실에 들어선 순간,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성연이 보였다.그리 크지 않은 소파에서 성연이 동그랗게 몸을 만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좀 더 다가간 무진의 눈에 책상 위에 술잔 하나와 이미 비어 있는 와인 반 병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가까이 다가갔을 때 성연에게서 술 냄새가 짙게 풍겼다.무진이 눈썹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집사에게 물었다.“성연이 어떻게 된 겁니까?”집사가 대답했다.“사모님 기분이 별로 안 좋으셨던 듯합니다.”원래 성연은 더 많이 마실 생각이었다.그러나 자신의 주량을 과대평가했다.몇 잔도 마시지도 못한 채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집사는 미리 꺼내 두었던 술을 정리했다.성연의 뺨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무진에게는 나무랄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알았으니 가서 쉬세요. 성연인 내가 돌볼 테니.” 무진이 몸을 숙여 성연을 안아 들었다.성연은 사실 잠들지 않았다. 그저 잠든 척만 하고 있었을 뿐.물론 정신은 확실히 흐리멍덩한 상태로 그다지 맑지 않았다.그 순간 무진에 의해 몸이 허공으로 오르자 성연은 무의식적으로 발버둥을 쳤다.“쉿, 움직이지 마.” 매력적인 음성이 귓가를 울리며 익숙한 박하 향의 숨결이 느껴지자 점차 차분해진 성연이 무진의 품을 얌전히 파고 들었다.성연은 체중을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그렇게 무진은 성연을 가볍게 들어올려 침실로 들어갔다.무진이 침실에 들어와 자신을 살포시 침대 위에 내려놓자 성연은 드디어 안전한 곳에 도달한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성연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시작했다.침대를 기어 비틀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다가온 무진이 성연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어디로 가려고
“이제 우리 옷을 벗고 씻으러 갈까?” 무진이 부드럽게 권유하는 어투로 성연이 스스로 움직이게 했다.만약 자신이 대신해 주게 된다면, 그건 정말 인내력 테스트일 것이다.“아니야, 잘 거야.” 성연은 오늘 밤 유난히도 비협조적이었다.하품을 한 성연은 그대로 침대에 누우려 했다.그러자 무진이 성연을 잡아당기며 품에 안았다.“자, 착하지, 씻고 자자, 응?”성연이 기세도 당당하게 대답했다.“싫어.”“그럼 내 품에 안겨서 잘 거야? 괜찮아?” 무진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좋아.” 무진의 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좋은 냄새가 났다.성연은 무진과 함께 있고 싶었다.품 안에서 안고 어르던 성연이 조용해지자, 무진이 눈을 감고 성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마침내 힘들게 성연의 옷을 겨우 벗겼다.무진이 어둠을 더듬어 서랍장에서 바스타월을 꺼낸 다음 성연의 몸에 둘렀다.무진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혼자 목욕하러 가도 되겠지? 바로 문 밖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알았지?”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커다란 바스타월을 두른 채 욕실로 들어갔다.샤워를 하는 동안 성연은 넘어지는 일 없이 다 씻은 후 욕실에서 나왔다.그런데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성연의 머리를 닦아주려고 무진이 수건을 들었다.성연은 매우 적극적으로 편안한 자리를 찾아 둥지를 튼 자세로 무진의 시중을 기다렸다.막 샤워를 하고 나온 성연은 껍질을 깐 달걀처럼 보들보들해 보였다.은은하면서도 그윽한 향이 쉴 새 없이 코를 파고들었다.재빨리 성연의 머리를 말린 무진은 이불 속에 파 묻었다.알코올의 작용인지 성연은 곧바로 깊이 잠들었다.아주 절제하며 성연의 뺨에 입을 맞춘 무진은 억지로 시선을 옮기며 욕실에 들어 냉수 샤워를 했다.욕실에서 나온 무진은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재로 갔다.무진이 손건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성연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알아봐.”“예.”손건호는 보스 강무진이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도 전혀
이튿날, 무진은 진미선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아침을 다 먹은 후에 성연에게 말했다.“나 출장 가는데, 같이 갈래?”숙취로 성연은 약한 두통에 시달렸다.그녀의 감정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무진의 질문에 성연은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갈게요.”‘뭐, 어차피 집에 있어도 머리 아픈 걸.’다른 곳으로 가면 진미선이나 송종철 등을 안 봐도 돼서 눈이 깨끗해질 거야.’성연이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승낙하는 모습이 무진을 웃게 만들었다.“이렇게 승낙해? 내가 널 데려다 어디 팔아먹으면 어쩌려고?”이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아예 없다고 본다.죽을 한 모금 마시고 난 성연이 무진을 흘겨보았다.“그럴 수 있어요?”무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그럼 됐어요.” ‘강씨 집안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팔아먹을 정도는 아니지.’성연의 실제 몸값은 어마어마했다.“그럼 옷 두 벌 챙겨, 아래층에서 기다릴게.” 거의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무진이 말했다.마침 주말이었다.무진을 따라 가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성연의 성적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그럼 잠깐만요, 금방 갔다 올게요.” 아침 식사를 마친 성연이 옷 가방을 싸러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동작이 빨라서 금방 짐을 다 꾸렸다.날씨가 추워져서 모두 두터운 옷들로 꾸렸다.가방이 불룩했다.성연이 가지고 온 물건이 비교적 적어서 몸에 꼭 붙는 옷들 일색이다.성연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정장 차림의 무진이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오른 후 바로 공항에 도착했다.무진이 성연을 위해 티케팅을 해주었고 출발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올랐다.기내 좌석에 앉자 성연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무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물어보는 거야? 좀 늦은 거 아니야?”“안 늦었어요. 뭐 늦었다고.” 성연은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안 알려줄 거야.”무진이 성연의 콧등을 쓸었다.“쳇.”입으로는 삐죽거린
몇 시간 후, 비행기가 착륙했다.무진이 출장을 간 곳은 바로 이웃 운성 시였다.운성 시는 북성 시에 비해 많이 포근했다.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 한 뒤 성연을 쉬게 하고 무진은 바로 일하러 갔다.이튿날 아침, 무진은 성연을 데리고 밖으로 놀러 나갔다.사실 무진이 이쪽으로 온 이유는 업무 때문만은 아니었다.그건 여러 목적 중 사소한 하나일 뿐.책임 담당자를 보내 처리해도 되었다.무진이 직접 처리하러 올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이다.무진이 여기까지 온 주요 목적은 바로 성연이었다.무진은 온천천국으로 불리는 운성에 성연을 데리고 와서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아침에 성연과 무진은 먼저 대관람차를 탔다.커플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이곳의 관람차는 몽환적이면서도 아주 예쁜 모양이었다.안에는 다양한 조명으로 장식되어 보기만 해도 분위기 있었다.처음 와 본 성연은 예쁘다는 생각만 하는 통에 이 관람차는 커플만 탈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알지 못했다.관람차가 최고 지점까지 올라갔을 때 커플들은 키스를 했다.그들은 영원히 함께 할 거라는 의미로 말이다.이게 무진의 사심 가득한 계획이었다.혼자 몰래 숨기고 있다 함께 즐길 생각이었다.성연이 싫다고 할까 봐 미리 알리지 않았다.결국 성연은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그가 굳이 이렇게 한다는 것도 좀 이상하게 여겨질 게 뻔하다.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 성연은 무방비 상태로 무진을 따라 관람차로 들어갔다.관람차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운성 시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운성 시는 아름다웠다. 산과 물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무척 온화한 도시였다.도시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기 드물게 간직하고 있었다.성연은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유리를 통해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성연은 꽤나 신나 보였다.관람차가 곧 꼭대기 지점에 이르는 것을 본 무진이 별안간 성연의 곁에 다가가며 이름을 불렀다.“송성연.”성연이 고개를 돌린 순간 곧바로 그녀 앞
대관람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왔다.체크인한 호텔 내에 온천이 있었다.외부 온천은 깨끗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무진은 5성급 호텔을 예약했던 터였다.적어도 외부의 노천탕 보다는 깨끗할 것이다.또한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도 있었다.무진이 애지중지하는 사람을 당연히 다른 사람이 보게 할 수는 없는 법.성연은 위아래 무엇이든 모두 자신에게 속한 것이다.호텔로 돌아와 욕의를 가지고 성연은 바로 다른 룸으로 들어가 온천을 했다.무진은 따라오지 않았다.온천 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던 성연의 머릿속에 갑자기 진미선이 한 말과 아직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스치고 지나갔다.문득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적어도 누군가는 자신과 함께 하고 있지 않나?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기분 좋은 일들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성연은 갑자기 대관람차 위에서 무진과 나누었던 입맞춤이 생각났다.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두드린 후 옅은 미소를 지었다.온천에 너무 오래 담구고 있을 수는 없었다.너무 오래 머물자 성연은 갑자기 온몸이 나른해졌다.머리도 좀 혼몽해지면서.온천에 몸을 담근 후유증이었다. 성연은 비할 데 없이 시원하다.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성연은 일어나 온천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왔다. 무진은 이미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언제 나왔어요?”“방금, 어때?” 무진이 소매를 가다듬으며 몸을 돌려 성연을 바라보았다.“아주 편안해요. 몸이 순식간에 많이 쪼그라든 것 같아요.” 성연이 기지개를 켰다.“배고프니? 뭐 좀 먹으러 가자. 여기서 먹는 것도 괜찮고. 밖에서 기다릴게.” 무진이 먼저 객실 밖으로 나갔다. 성연이 옷을 갈아입도록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성연은 부끄러움을 잘 타니까.여기에 남아 있으면 성연은 분명 부끄러움에 화를 낼 것이다.성연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마음에 들지만, 성연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감정을
여자가 떠난 후, 무진의 맞은편에 앉는 성연의 말투에는 그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불만이 가득 담겼다.“어머, 강 대표님 정말 잘 나가시네요. 그 잠시 동안 꽃 한 송이를 꺽으시다니요.”“상관없는 사람일 뿐이야.”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성연이 저 사람들 때문에 화나는 게 더 싫었다.성연은 무진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성연이 무진에게 ‘눈치가 좀 있네’라는 시선을 보냈다.무진이 메뉴를 밀었다.“뭘 먹고 싶은 지 골라 봐. 맛이 다 괜찮다.”처음에는 음식을 좀 미리 주문해 놓고 성연을 기다릴 생각이었다.그러나 아까 그 여자 때문에 시간을 빼앗긴 상황에 주문하기도 전에 성연이 왔던 터였다.성연은 이곳의 대표 요리인 스테이크 2인분과 파스타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을 주문했다.이런 호텔의 요리는 보통 보여 주기 위한 것들이라는 걸 잘 안다.양이 너무 적었다.배불리 먹고 싶어도 그것으로는 불가능했다.그래서 성연이 이것저것 많이 주문했다.무진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바로 성연일 즐겁게 하는 것이니.자신은 어떻든 상관없었다.스테이크와 파스타가 금방 나왔다.무진이 다 썰은 스테이크를 성연의 앞으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성연 앞에 있던 스테이크와 바꾸었다.하나하나 빠짐없이 자신을 배려하는 무진을 보며 성연은 새삼 무진이 무척 다정하고 세심하다고 생각했다. 무진과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성연은 조용히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앞으로 자신이 떠나면 무진 곁에 또 다른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때도 무진이 이렇게 그녀를 돌볼까?성연의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느낌이 미묘했다.그러나 성연은 바로 마음속의 불편함을 억눌렀다.미래가 어떻게 되든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아닌가?현재를 꽉 잡은 채 현재를 소중히 여기면 돼.성연은 아주 편안하게 기분 좋게 먹었다.무진은 식사하는 내내 차를 따라주고 물을 건네는 등 성연을 챙겼다.성연이 얼마나 편안
북성으로 돌아온 무진은 조미홍이 강상철의 집으로 찾아 가서 소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강씨 집안의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조미홍이 강상철의 곁을 지킨 지가 10년이었다. 즉, 10년을 숨기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자신의 신분이 명예스럽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조미홍은 강상철에게 어떤 약속도 요구하지 않았다.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당당하게 고개 들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조미홍은 강상철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다.비에 젖은 배꽃이 흔들리듯 강상철이 보기에 몹시 마음이 아팠다.그리고 강상철도 조미홍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신분이 사생아든 아니든 어쨌든 자신의 아들인데 왜 족보에 못 올린다는 말인가?그는 안금여 쪽에서 그들이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다.내연녀 조미홍을 위해 강상철은 체면 불구하고 안금여에게 여러 번 부탁했다.그러나 늘 제 마음대로 날뛰던 습관으로 인해 안금여 앞에서 부탁하는 태도가 말이 아니었다.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더 강했다.안금여는 이 일이 정말 창피했다.나이를 그렇게나 먹은 강상철이 어린 내연녀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걸 보내 더 파렴치하게 여겨졌다.‘자기 본처를 도대체 뭘로 본다는 말인가?’그런데 안금여가 승낙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녀는 매번 거절하는 태도를 취했다.강상철은 안금여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안금여는 지금 강씨 집안에서 가장 윗 사람에 연장자였다.그러니 만약 형수 안금여가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결국 강상철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자신의 처와 언쟁을 벌였던 강상철은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여자와는 상대하고 싶지가 않았다.그래서 요 며칠 계속 조미홍에게 마련해 준 집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지냈다.강상철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조미홍은 즉시 차를 가져와 따라 주었다.적당한 차의 온도에 강상철의 노여움도 많이 가라앉았다.조미홍은 아들 문제로 요 며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