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멍하니 넋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평소 활발하고 명랑한 모습의 성연이 이렇게 기운이 빠진 듯한 모습은 아주 보기 드물었다.집사가 다가와서 관심을 주며 물었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세요?”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대답한 성연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몸을 이불 속 깊숙이 파묻었다. 안색이 여전히 창백해 보였다.마음속의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이런 불필요한 감정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때로는 이런 자신이 너무 싫었다.‘저 두 사람의 본 모습, 이미 다 알고 있었잖아? 세상이 냉정하다는 것도 알았잖아?’‘그런데 왜 아직도 저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거야?’성연은 마음이 극도로 힘들었다.진미선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이런 말은 언제나 자신을 일깨운다.자신은 쓸데없는 존재라는 사실을.비록 지금은 잘 살고 있다 하더라도 저 두 사람이 자신에게 준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좌절감을 느끼며 생각해 보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방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냉장고를 뒤적거렸다.주방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집사가 바로 달려왔다.눈 앞의 장면에 집사가 옆에서 말했다.“사모님, 뭐든 찾는 게 있으면 나에게 알려주세요.”“혹시 집에 술 있어요?” 성연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평소 무진이 술을 자주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술을 찾을 수가 없었다.냉장고에는 평소 성연이 즐겨 마시던 우유와 탄산수 몇 병이 다였다.성연은 지금 자신의 신경을 마비시킬 만한 무언가 시급했다.‘당연히 술 최고지.’정신을 잃으면 아마 이 고통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성연의 말을 들은 집사의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사모님, 술을 드시기에는 아직 이르니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다시 이야기해요.”집사는 성연에게 함부로 술을 마시게 할 수 없었다.만약 성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분명 자신이 책임져야 할 터.그런 위험은 자신이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었다.“날 ‘사모님’
저녁에 무진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그런데 집안이 너무 조용한 것 같다.평소라면 성연이 식탁에 앉아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을 텐데.어째 오늘은 온 집안이 조용했다.성연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한 무진은 마음이 조급해져 방을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그러나 거실에 들어선 순간,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성연이 보였다.그리 크지 않은 소파에서 성연이 동그랗게 몸을 만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좀 더 다가간 무진의 눈에 책상 위에 술잔 하나와 이미 비어 있는 와인 반 병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가까이 다가갔을 때 성연에게서 술 냄새가 짙게 풍겼다.무진이 눈썹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집사에게 물었다.“성연이 어떻게 된 겁니까?”집사가 대답했다.“사모님 기분이 별로 안 좋으셨던 듯합니다.”원래 성연은 더 많이 마실 생각이었다.그러나 자신의 주량을 과대평가했다.몇 잔도 마시지도 못한 채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집사는 미리 꺼내 두었던 술을 정리했다.성연의 뺨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무진에게는 나무랄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알았으니 가서 쉬세요. 성연인 내가 돌볼 테니.” 무진이 몸을 숙여 성연을 안아 들었다.성연은 사실 잠들지 않았다. 그저 잠든 척만 하고 있었을 뿐.물론 정신은 확실히 흐리멍덩한 상태로 그다지 맑지 않았다.그 순간 무진에 의해 몸이 허공으로 오르자 성연은 무의식적으로 발버둥을 쳤다.“쉿, 움직이지 마.” 매력적인 음성이 귓가를 울리며 익숙한 박하 향의 숨결이 느껴지자 점차 차분해진 성연이 무진의 품을 얌전히 파고 들었다.성연은 체중을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그렇게 무진은 성연을 가볍게 들어올려 침실로 들어갔다.무진이 침실에 들어와 자신을 살포시 침대 위에 내려놓자 성연은 드디어 안전한 곳에 도달한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성연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시작했다.침대를 기어 비틀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다가온 무진이 성연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어디로 가려고
“이제 우리 옷을 벗고 씻으러 갈까?” 무진이 부드럽게 권유하는 어투로 성연이 스스로 움직이게 했다.만약 자신이 대신해 주게 된다면, 그건 정말 인내력 테스트일 것이다.“아니야, 잘 거야.” 성연은 오늘 밤 유난히도 비협조적이었다.하품을 한 성연은 그대로 침대에 누우려 했다.그러자 무진이 성연을 잡아당기며 품에 안았다.“자, 착하지, 씻고 자자, 응?”성연이 기세도 당당하게 대답했다.“싫어.”“그럼 내 품에 안겨서 잘 거야? 괜찮아?” 무진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좋아.” 무진의 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좋은 냄새가 났다.성연은 무진과 함께 있고 싶었다.품 안에서 안고 어르던 성연이 조용해지자, 무진이 눈을 감고 성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마침내 힘들게 성연의 옷을 겨우 벗겼다.무진이 어둠을 더듬어 서랍장에서 바스타월을 꺼낸 다음 성연의 몸에 둘렀다.무진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혼자 목욕하러 가도 되겠지? 바로 문 밖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알았지?”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커다란 바스타월을 두른 채 욕실로 들어갔다.샤워를 하는 동안 성연은 넘어지는 일 없이 다 씻은 후 욕실에서 나왔다.그런데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성연의 머리를 닦아주려고 무진이 수건을 들었다.성연은 매우 적극적으로 편안한 자리를 찾아 둥지를 튼 자세로 무진의 시중을 기다렸다.막 샤워를 하고 나온 성연은 껍질을 깐 달걀처럼 보들보들해 보였다.은은하면서도 그윽한 향이 쉴 새 없이 코를 파고들었다.재빨리 성연의 머리를 말린 무진은 이불 속에 파 묻었다.알코올의 작용인지 성연은 곧바로 깊이 잠들었다.아주 절제하며 성연의 뺨에 입을 맞춘 무진은 억지로 시선을 옮기며 욕실에 들어 냉수 샤워를 했다.욕실에서 나온 무진은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재로 갔다.무진이 손건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성연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알아봐.”“예.”손건호는 보스 강무진이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도 전혀
이튿날, 무진은 진미선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아침을 다 먹은 후에 성연에게 말했다.“나 출장 가는데, 같이 갈래?”숙취로 성연은 약한 두통에 시달렸다.그녀의 감정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무진의 질문에 성연은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갈게요.”‘뭐, 어차피 집에 있어도 머리 아픈 걸.’다른 곳으로 가면 진미선이나 송종철 등을 안 봐도 돼서 눈이 깨끗해질 거야.’성연이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승낙하는 모습이 무진을 웃게 만들었다.“이렇게 승낙해? 내가 널 데려다 어디 팔아먹으면 어쩌려고?”이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아예 없다고 본다.죽을 한 모금 마시고 난 성연이 무진을 흘겨보았다.“그럴 수 있어요?”무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그럼 됐어요.” ‘강씨 집안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팔아먹을 정도는 아니지.’성연의 실제 몸값은 어마어마했다.“그럼 옷 두 벌 챙겨, 아래층에서 기다릴게.” 거의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무진이 말했다.마침 주말이었다.무진을 따라 가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성연의 성적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그럼 잠깐만요, 금방 갔다 올게요.” 아침 식사를 마친 성연이 옷 가방을 싸러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동작이 빨라서 금방 짐을 다 꾸렸다.날씨가 추워져서 모두 두터운 옷들로 꾸렸다.가방이 불룩했다.성연이 가지고 온 물건이 비교적 적어서 몸에 꼭 붙는 옷들 일색이다.성연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정장 차림의 무진이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오른 후 바로 공항에 도착했다.무진이 성연을 위해 티케팅을 해주었고 출발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올랐다.기내 좌석에 앉자 성연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무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물어보는 거야? 좀 늦은 거 아니야?”“안 늦었어요. 뭐 늦었다고.” 성연은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안 알려줄 거야.”무진이 성연의 콧등을 쓸었다.“쳇.”입으로는 삐죽거린
몇 시간 후, 비행기가 착륙했다.무진이 출장을 간 곳은 바로 이웃 운성 시였다.운성 시는 북성 시에 비해 많이 포근했다.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 한 뒤 성연을 쉬게 하고 무진은 바로 일하러 갔다.이튿날 아침, 무진은 성연을 데리고 밖으로 놀러 나갔다.사실 무진이 이쪽으로 온 이유는 업무 때문만은 아니었다.그건 여러 목적 중 사소한 하나일 뿐.책임 담당자를 보내 처리해도 되었다.무진이 직접 처리하러 올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이다.무진이 여기까지 온 주요 목적은 바로 성연이었다.무진은 온천천국으로 불리는 운성에 성연을 데리고 와서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아침에 성연과 무진은 먼저 대관람차를 탔다.커플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이곳의 관람차는 몽환적이면서도 아주 예쁜 모양이었다.안에는 다양한 조명으로 장식되어 보기만 해도 분위기 있었다.처음 와 본 성연은 예쁘다는 생각만 하는 통에 이 관람차는 커플만 탈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알지 못했다.관람차가 최고 지점까지 올라갔을 때 커플들은 키스를 했다.그들은 영원히 함께 할 거라는 의미로 말이다.이게 무진의 사심 가득한 계획이었다.혼자 몰래 숨기고 있다 함께 즐길 생각이었다.성연이 싫다고 할까 봐 미리 알리지 않았다.결국 성연은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그가 굳이 이렇게 한다는 것도 좀 이상하게 여겨질 게 뻔하다.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 성연은 무방비 상태로 무진을 따라 관람차로 들어갔다.관람차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운성 시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운성 시는 아름다웠다. 산과 물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무척 온화한 도시였다.도시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기 드물게 간직하고 있었다.성연은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유리를 통해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성연은 꽤나 신나 보였다.관람차가 곧 꼭대기 지점에 이르는 것을 본 무진이 별안간 성연의 곁에 다가가며 이름을 불렀다.“송성연.”성연이 고개를 돌린 순간 곧바로 그녀 앞
대관람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왔다.체크인한 호텔 내에 온천이 있었다.외부 온천은 깨끗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무진은 5성급 호텔을 예약했던 터였다.적어도 외부의 노천탕 보다는 깨끗할 것이다.또한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도 있었다.무진이 애지중지하는 사람을 당연히 다른 사람이 보게 할 수는 없는 법.성연은 위아래 무엇이든 모두 자신에게 속한 것이다.호텔로 돌아와 욕의를 가지고 성연은 바로 다른 룸으로 들어가 온천을 했다.무진은 따라오지 않았다.온천 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던 성연의 머릿속에 갑자기 진미선이 한 말과 아직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스치고 지나갔다.문득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적어도 누군가는 자신과 함께 하고 있지 않나?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기분 좋은 일들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성연은 갑자기 대관람차 위에서 무진과 나누었던 입맞춤이 생각났다.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두드린 후 옅은 미소를 지었다.온천에 너무 오래 담구고 있을 수는 없었다.너무 오래 머물자 성연은 갑자기 온몸이 나른해졌다.머리도 좀 혼몽해지면서.온천에 몸을 담근 후유증이었다. 성연은 비할 데 없이 시원하다.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성연은 일어나 온천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왔다. 무진은 이미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언제 나왔어요?”“방금, 어때?” 무진이 소매를 가다듬으며 몸을 돌려 성연을 바라보았다.“아주 편안해요. 몸이 순식간에 많이 쪼그라든 것 같아요.” 성연이 기지개를 켰다.“배고프니? 뭐 좀 먹으러 가자. 여기서 먹는 것도 괜찮고. 밖에서 기다릴게.” 무진이 먼저 객실 밖으로 나갔다. 성연이 옷을 갈아입도록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성연은 부끄러움을 잘 타니까.여기에 남아 있으면 성연은 분명 부끄러움에 화를 낼 것이다.성연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마음에 들지만, 성연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감정을
여자가 떠난 후, 무진의 맞은편에 앉는 성연의 말투에는 그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불만이 가득 담겼다.“어머, 강 대표님 정말 잘 나가시네요. 그 잠시 동안 꽃 한 송이를 꺽으시다니요.”“상관없는 사람일 뿐이야.”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성연이 저 사람들 때문에 화나는 게 더 싫었다.성연은 무진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성연이 무진에게 ‘눈치가 좀 있네’라는 시선을 보냈다.무진이 메뉴를 밀었다.“뭘 먹고 싶은 지 골라 봐. 맛이 다 괜찮다.”처음에는 음식을 좀 미리 주문해 놓고 성연을 기다릴 생각이었다.그러나 아까 그 여자 때문에 시간을 빼앗긴 상황에 주문하기도 전에 성연이 왔던 터였다.성연은 이곳의 대표 요리인 스테이크 2인분과 파스타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을 주문했다.이런 호텔의 요리는 보통 보여 주기 위한 것들이라는 걸 잘 안다.양이 너무 적었다.배불리 먹고 싶어도 그것으로는 불가능했다.그래서 성연이 이것저것 많이 주문했다.무진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바로 성연일 즐겁게 하는 것이니.자신은 어떻든 상관없었다.스테이크와 파스타가 금방 나왔다.무진이 다 썰은 스테이크를 성연의 앞으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성연 앞에 있던 스테이크와 바꾸었다.하나하나 빠짐없이 자신을 배려하는 무진을 보며 성연은 새삼 무진이 무척 다정하고 세심하다고 생각했다. 무진과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성연은 조용히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앞으로 자신이 떠나면 무진 곁에 또 다른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때도 무진이 이렇게 그녀를 돌볼까?성연의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느낌이 미묘했다.그러나 성연은 바로 마음속의 불편함을 억눌렀다.미래가 어떻게 되든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아닌가?현재를 꽉 잡은 채 현재를 소중히 여기면 돼.성연은 아주 편안하게 기분 좋게 먹었다.무진은 식사하는 내내 차를 따라주고 물을 건네는 등 성연을 챙겼다.성연이 얼마나 편안
북성으로 돌아온 무진은 조미홍이 강상철의 집으로 찾아 가서 소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강씨 집안의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조미홍이 강상철의 곁을 지킨 지가 10년이었다. 즉, 10년을 숨기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자신의 신분이 명예스럽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조미홍은 강상철에게 어떤 약속도 요구하지 않았다.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당당하게 고개 들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조미홍은 강상철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다.비에 젖은 배꽃이 흔들리듯 강상철이 보기에 몹시 마음이 아팠다.그리고 강상철도 조미홍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신분이 사생아든 아니든 어쨌든 자신의 아들인데 왜 족보에 못 올린다는 말인가?그는 안금여 쪽에서 그들이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다.내연녀 조미홍을 위해 강상철은 체면 불구하고 안금여에게 여러 번 부탁했다.그러나 늘 제 마음대로 날뛰던 습관으로 인해 안금여 앞에서 부탁하는 태도가 말이 아니었다.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더 강했다.안금여는 이 일이 정말 창피했다.나이를 그렇게나 먹은 강상철이 어린 내연녀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걸 보내 더 파렴치하게 여겨졌다.‘자기 본처를 도대체 뭘로 본다는 말인가?’그런데 안금여가 승낙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녀는 매번 거절하는 태도를 취했다.강상철은 안금여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안금여는 지금 강씨 집안에서 가장 윗 사람에 연장자였다.그러니 만약 형수 안금여가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결국 강상철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자신의 처와 언쟁을 벌였던 강상철은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여자와는 상대하고 싶지가 않았다.그래서 요 며칠 계속 조미홍에게 마련해 준 집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지냈다.강상철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조미홍은 즉시 차를 가져와 따라 주었다.적당한 차의 온도에 강상철의 노여움도 많이 가라앉았다.조미홍은 아들 문제로 요 며
곽연철은 엠파이어 하우스에 와서 성연을 찾았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연과 예전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곽연철을 본 성연도 많이 놀랐다.“왜 나한테 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여기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왔어요.” 곽연철과 성연의 관계도 마치 친구 같았다.성연이 말을 하기도 전에 집사가 차와 과일을 가져왔다.곽연철은 성연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갑자기 곽연철이 말했다.“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결혼식이 며칠 뒤 유럽에서 거행될 거예요. 보스하고 강 대표가 갈 때 저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곽연철과 목현수도 좋은 친구다.예전에는 같이 지냈는데 나중에 연락이 끊어졌다.하지만 목현수가 청첩장을 보냈다.어쨌든 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이니 곽연철은 반드시 가야 했다.성연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알았어, 같이 갈 거야.”곽연철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목현수가 그런 성격이라서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결혼하네요.”성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야. 하지만 미스 샤넬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현수 사형과 함께 있으면 아주 잘 어울려.”‘아마도 나중에 결국 내 마음을 알게 된 사형이 미스 샤넬과 결혼을 선택했을 거야.’‘이전에 사형이 내게 결혼은 그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당연히 좋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목현수도 승낙하지 않았을 거예요.”곽연철도 웃으며 대답했다.성연은 문득 고개를 들고 곽연철을 보았다.성현이 빤히 쳐다보자 곽연철은 좀 불편했다.“보스, 왜 그래요?”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금 현수 사형도 이미 배우자를 찾았는데, 이쪽도 좀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이 말을 들은 곽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죠. 결혼하고 싶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어요?”“내가 보기에는 무슨 인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럴 마음이 없을 뿐이야. 그리고 다음에 서한기를 만나면 잊지 말고 반드시 재촉해.”
조수경도 소지연을 쳐다보았다.소지연의 낭패한 모습을 본 조수경은 비웃으며 미소를 지었다.‘나보다 소지연의 처지가 더 비참한 건 분명해.’‘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더 초라해졌지.’‘나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기에 괜찮아. 앞으로 계획이 성공한다면, 나는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어.’‘이번 생에는 소지연의 처지는 바뀌지 않아.’소파에 앉은 이상효가 연계진을 향해 말했다.“성함은 말해 주셔야지요!”‘우리 이씨 가문은 이름 없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아.’‘듣보잡 졸개라면 만날 필요 없어.’그 말을 듣자, 연계진의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연씨 가문은 들어보셨지요? 강씨 가문 때문에 20년 전 망했던 연씨 가문요!”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자, 하늘을 찌를 듯한 연계진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이상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표정이 종잡을 수 없게 변해서, 연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연씨 가문의 연 선생님께서 저한테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상효는 그래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예나 지금이나 연씨 집안은 강씨 가문의 원수지.’‘지금 연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고 강씨 가문은 떠오르는 해와 같아. 바보라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당연히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으니까 당신을 찾아온 거지요.” 연계진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잠시 멈칫하던 이상효가 웃으면서 말했다.“저와 연 선생님 사이에는 얘기할 게 별로 없을 텐데요.”이런 대답을 들었지만, 연계진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우선 조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 형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빼앗겼지만,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겠지요. 강씨 가문이 지금 대단하다는 건 맞지만. 강무진이 당신을 도울까요?”이상효는 좀 쑥스러워하면서 소지연과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이씨 가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난이 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연계진이
무진과 성연이 멀어지자, 연계진의 앞으로 지프가 천천히 다가왔다.연계진이 지프에 타자, 조수경도 얼른 따라서 차에 탔다.그러나 연계진과 얘기를 나눌 때도 줄곧 연계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남자가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가슴이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야.’‘하지만 그러면 또 어때?’‘연계진만이 내 계략을 실현할 수 있어.’‘손민철 같은 쓸모없는 놈보다 훨씬 낫지.’조수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경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연계진은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차는 천천히 이씨 가문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거실 안. 소지연은 지금 임신 중이다.엊그제 검사에서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이제 이상효의 모친도 소지연에게 힘든 일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혹시라도 자신의 귀염둥이 손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소지연은 이씨 가문에서 그래도 모처럼 좋은 대우를 받는 셈이다.그러나 소지연에게 온갖 영양제와 보약들을 먹게 했다.하루 세 끼 모두 이런 느끼한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소지연은 곧 먹는 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느낄 정도였다.아무리 심하게 토해도 이상효의 모친은 여전히 보약을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얼른 좀 더 마셔. 너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보물 같은 손자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빨리 마셔.”“정말 못 마시겠어요.” 소지연은 손사래를 쳤다. 이씨 가문에서 소지연은 단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나를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 하인처럼 일을 하고 있겠지.’이상효의 모친이 소지연을 노려보았지만, 소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서 확실히 별로 좋지 않아 보이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린 연계진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사에게 상효를 찾으려 왔다고 알렸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석양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했다.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있은 채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 뒤에서는 조수경이 이를 갈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궁지에 빠졌는데, 송성연과 강무진은 왜 저렇게 잘 지내는 거야?’‘정말 달갑지 않아!’애초에 무진은 조수경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려 했다.강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씨 가문에서는 조수경 일가를 가문에서 축출했다.원래 조수경은 손민철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손민철 이 병신이 뜻밖에도 사람이 변할 줄 몰랐어.’‘예전에는 내 지시만 따랐는데, 지금은 날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아.’‘게다가 손씨 가문은, 영원히 조씨 가문을 돕지 않을 거라고 했지!’조수경은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모욕했던 사람들을 절대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을 어떻게 행복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그런데 지금 조수경의 뒤에는 청초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의 작은 새우눈은 붉은 기운마저 띄고 있어서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조수경이 분노해 마지않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조수경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봤지? 지금 강무진과 송성연은 행복할 수밖에 없어.”이 말을 들은 조수경은 뒤돌아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연계진 씨, 내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어요.”냉소하는 연계진의 모습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어. 강무진은 우리 연씨 가문과도 피맺힌 원한이 너무나 많으니까!”예전의 일을 생각하자, 연계진의 눈은 가늘어지면서 온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연계진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조수경은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한 사람을 찾았는데, 무진과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