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는 방법은 큰집에 충성을 표하는 것이다.큰집에서 그들의 증거를 파악하고 있거나 증거가 없을지도 모른다.만약 그들이 먼저 그들이 한 일을 말한다면, 아마도 관대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다음 날 선물을 산 뒤, 고택에 가서 안금여를 보기로 약속했다.안금여는 이때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만약 중대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모두 집에서 회사의 일을 밤낮으로 처리한다.전에 비해서 그녀가 얼마나 홀가분해졌는지 모른다.여유로운 나날이라 몸을 관리하기도 좋다.밖에 사람이 찾아오자, 집사가 바로 앞으로 나와서 보고하였다.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 몇 분은 선물도 가지고 오셨는데, 비위를 맞추러 온 것 같습니다.”집사는 강씨 집안에서 오랫동안 집사로 일했기에 강씨 집안의 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엊그저께 그 사람들이 고택에도 왔기에, 집사가 잘 기억하고 있었다.안금여는 그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켜세웠다.마음속으로는 좀 놀랐지만, 오히려 도리라고 느꼈다.그녀는 누군가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진작에 짐작하고 있었다.그들이 그렇게 빨리 바로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일단 좀 내버려두고 도련님을 오라고 전화해.” 안금여는 나른하게 말했다.무슨 근거로 이 사람들이 귀순하면, 그녀가 기회를 주어야 하는가?‘엊그저께 고택에 왔을 때, 이 사람들은 정말 기고만장해서 날뛰었어.’‘지금 그들의 큰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자, 바로 간절하게 접근하는 거야?’그들은 원하지만 안금여는 아직 만족해하지 않았다.‘그들에게 위세를 떨쳐서 누가 그들이 따를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해야 해.’“예.”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그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집사를 만나자 그들은 마중을 나왔다.“어때? 노부인이 뭐라고 그러셔?”집사는 가볍게 기침을 두 번 하고서야 말했다.“노부인은 아직 쉬고 계십니다. 당신들은 먼저 기다리고 계세요. 이따가 노부인이 깨어나면, 제가 당신들에
집사의 전화를 받았을 때, 무진은 여전히 회사에서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그는 즉시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고택으로 갔다.그러나 그는 경솔하게 행동해서 그들이 경계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뒷문으로 들어갔다.앞에 있는 사람은 하나도 모른다.무진이 나타나고 시간도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한 안금여는, 집사를 불러서 그 사람들을 들어오게 했다.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사람들은 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 있어서 모두 다리가 나른했다.그러나 들어간 후 모두들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아무런 낭패도 드러내지 않았다.안금여를 본 사람들은 즉시 안부를 물었는데, 뜻밖에 무진도 있어서 그들도 얼른 좋은 말을 했다.안금여는 가볍게 찻잔을 내려놓았다.“여러분은 정말 귀한 손님인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그녀가 무진을 돌아오게 한 것은 현재 회사를 관리하는 사람은 무진이니, 무진에게 아이디어를 내라고 한 것이다.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모두 무진이 하는 것을 켜보는 것이다.“노부인께서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보양식을 사왔습니다.”그 사람이 정성스럽게 말했다.“걱정을 끼쳤군요. 며칠 전에 보내셨으니 다음에는 보내실 필요가 없습니다.”안금여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녀의 말투는 친절한 편도 아니고 냉담한 편도 아니어서, 한동안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따라 웃으며 말했다.“모두 한 가족입니다. 우리 같은 어린 세대에서 당신께 효도하는 것은 당연하지요.”안금여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그들을 힐끗 본 후에 냉소를 지었다.“모두들 총명한 사람들이니 내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솔직하게 말하세요.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은 무슨 일이 있습니까?”안금여가 그렇게 직접적일 줄은 몰랐다. 조금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그들은 또 몇 마디 인사치레를 하려고 했다.몇 사람이 서로 쳐다보면서 한동안 거실이 조용해졌다.“할머니는 성격이 직선적이시니 숙부님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몇 사람이 고택에 왔다는 사실을 강상철과 강상규는 바로 전해 들었다.일부 사람들이 이미 본가에 항복했다는 소식에 두 사람은 화가 났다.안금여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이 심어 놓은 수하 몇 명을 바로 뽑아버렸다.비록 국외에 자리 잡은 집안 사람들이라 하나 결국엔 본가를 대신해서 일하는 것이다.강무진 쪽에서 회수한 경영권은 뒤에서 강상철과 강상규가 조종하고 있던 것이었다.발톱을 뽑혔을 뿐만 아니라 아직 거두지 못한 사람들 몇몇도 이미 본가에 붙어버렸다.일시에 그들 곁에는 쓸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된 셈.이번 집안 대모임 기회를 빌려 강무진에게 큰 타격을 줄 거라 생각했었다.‘그런데 어째서 자신들이 도리어 낭패를 본 거지?’강상철의 눈에 불만이 가득 들어찼다.“이 사람들, 일을 성사시키지는 못하고 망치기만 하는 종자들 아냐? 조금도 소용없는 이들 같으니라고.”원래는 그들을 기대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조금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강무진은 그래도 능력이 좀 있는 편인데,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농락해? 이전에는 우리가 그 놈을 너무 얕보았지.” 강상규는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본가에 붙으러 간 놈들이 있다니,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국외 세력은 강상철과 강상규가 자신들의 주머니 속 물건쯤으로 치부했었다.비록 몇 명은 수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고상한 데가 없다.그들은 국외의 종족은 모두 그들의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지금 누군가가 저쪽에 투항하러 갔다는 것은 저들이 주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 사람들은 반드시 본가를 도울 테지.정말 예전과 달라졌다.예전에 강무진은 기껏해야 병신일 뿐이었다.지금 무진이 능력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가서 붙어버린 것이다.“지금 우리는 강무진 쪽에 밀리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야?” 이전이라면 강상철은 무진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그들의 가장 강력한 상대는 뜻밖에도 강무진이었다.이 반전을 강상철은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답답하기만 했다.어떻게 일
“형님, 어떻게든 해 봐야지요.” 강상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는 정말 강상철이 무서웠다.그는 자기 스스로 한 일이 아니라면,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이번 일만큼은 강상규는 더 이상 떠맡고 싶지 않았다.또 다시 예기치 못한 재난을 당하기는 싫었다.강상철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무진이 저렇게 능력이 있는 이상, 그들이 무슨 풍파를 일으키는지 지켜보자. 만약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겠지. 주주 쪽에서 먼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해.”이번에 쫓겨난 몇몇 계열사의 경영권은 기본적으로 모두 적자였다.그는 지켜볼 것이다. 무진이 어떻게 손실을 흑자로 바꿀 것인지.강상규도 그 생각을 하며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형님 말씀이 맞아요. 만약 강무진이 제대로 못한다면 그때 진짜 볼만할 겁니다.”무진이 회수한 계열사들은 그 손실이 상당히 심각한 상태였다.물론 손실된 돈은 대부분 강상철, 강상규의 주머니로 들어갔지만.이 계열사들은 두 사람이 뒷주머니 돈을 불리는 중계소에 불과했다.회사의 직원들은 나태하고 성실하지 않았다. 관리하는 사람도 없으니 자연히 손해를 보는 수 밖에.월급만 해도 이미 큰 돈이다.이 돈은 당연히 강상철과 강상규가 낼 리가 만무하고.본사에 보고해서 본사가 결산하도록 하는 것이다.저쪽이 손해를 보든 말든 강상철, 강상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들의 배만 불리면 그만이니.직원도 얼마 없어 가서 보고할 사람도 당연히 없었다.원체 작은 계열사라 눈에 띄지 않을 줄 알았는데.무진에게 딱 걸리고 만 것이다.하지만 이 또한 그런대로 괜찮다. 그들은 깨끗하게 뽑혔다. 강무진이 경영권을 지닌 이상 지금 회사는 강무진 소관이라는 사실이다.강무진이 관리하면서 만일 손해를 본다면 그것은 강무진의 잘못이 되는 셈이다.강상철과 강상규는 눈을 마주치고는 웃기 시작했다.경영권은 무진이 회수해 간 것이니 자신들을 탓할 수 없을 테고.“너는 강무진 쪽을 주시하게 해. 제대로 안될
무진이 문제의 지사들을 회수했지만 그 적자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어쨌든 강상철과 강상규 쪽에서 소란을 피우던 몇 곳의 경영권을 회수한 것이다.이 일은 일장일단이 있어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무진도 잘 안다.요 며칠, 무진은 두 늙은 여우 쪽을 제거하는 것 외에 이 지사들의 구체적인 회계, 업무 및 각종 내부 상황을 평가하는 데 인원을 투입했다.무진의 책상 위에 서류가 한가득이다.모두 이 몇 개 지사들의 자료였다.손건호도 무진의 옆을 지키면서 수시로 무진에게 차를 가져다주기도 하며 서류들을 정리, 분류했다. 무진이 좀 더 쉽게 볼 수 있도록.직원들의 업무 상태를 보던 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본부 사람들을 허수아비로 본 듯하다.그 쪽 직원들은 모두 거저 놀면서 월급 받아간 꼴이었다. 정말 본부가 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란 말인가?아마 강상철과 강상규는 자신이 이렇게 진지하게 회사를 회수해 갈 줄은 생각하지 않았을 테다.그러나 회수하지 않았다면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 강상철과 강상규는 이렇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자신들이 이득을 보는 건 그렇다 치고 회사 직원들이 일하지 않아도 그냥 내버려 두다니.회사가 그렇게 큰 적자투성이인 이유가 있었다.무진의 눈에 뚜렷한 분노가 서린 것을 본 손건호가 옆에서 물었다.“보스, 왜 그러십니까?”무진은 자료를 손건호에게 건네주었다.“네가 직접 봐봐.”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본 손건호도 따라서 눈살을 찌푸렸다.“강상철, 강상규, 이 사람들 너무한 거 아닙니까?”지금도 무진이 실권을 잡고 있음에도 그들이 이러는 것은 무진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뜻.“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도 모르겠군.”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안금여가 경영을 맡았을 때부터 시작되었지 싶은데 그들은 숨길 생각도 없이 마구 날뛰었다.이 지사들을 회수할 때, 무진은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그렇지만 상황이 이렇게나 엉망일 줄은 몰랐다.생각하던 무진이 미
과중한 업무량에 무진은 매일 새벽 같이 나가 밤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땅에 발을 디딜 틈도 없을 만치 매일 바빴다.성연은 이미 며칠 동안 그와 밥을 먹지 못했다.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제대로 만나지를 못했다.성연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저렇게 많은 집안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분명 무진의 계획이 있을 것이다.게다가 저들 중 몇 사람은 분수에 맞지 않게 행동을 해서 무진을 더 바쁘게 만들었다.성연은 가끔씩 무진이 제때에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등 소식을 보냈다. 그러면 무진은 때때로 너무 늦게 들어올 때는 미리 연락해서 성연이 먼저 자도록 했다.때로는 한밤중이 되어도 무진은 돌아오지 않았다.무진을 매번 자신에게 밥을 먹었다고 말한다.그러나 성연은 믿지 않았다. 무진이라는 사람은 사실 엄청난 일 중독자였다.그래서 이날 수업이 없는 틈을 타서 성연은 음식을 만들어 무진에게 가져갔다.이번에는 이미 성연을 알고 있는 프론트 데스크에서 바로 통과시켜 주었다.성연은 엘리베이터 카드를 가지고 올라갔다.무진이 자신을 속이지 못하도록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왔다.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올라가다.성연은 총괄대표실이 있는 층에서 내렸다.먼저 손건호의 사무실을 지났다.이때 소절은 아직 사무실에 있었다. 성연은 그의 책상 옆에 도시락이 놓인 것을 보았다.그녀는 직접 걸어가서 도시락을 젖혔는데, 안에 과연 음식이 들어 있고 이미 식었다는 것을 발견했다.손건호는 한창 일에 몰두하던 중이다.그러면서 도대체 누가 이처럼 대담한지 궁금해하던 중이다.고개를 들자마자 성연 쪽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그러다 완전히 멍하니 정신을 놓았다.이마에도 땀이 줄줄 흐른다.보스는 오늘 저녁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작은 사모님에게 현행범으로 잡힌 꼴이다.도대체 무슨 운이 이런지 모르겠다.손건호가 벌떡 일어나며 인사했다.“작, 작은 사모님.”“무진 씨, 오늘 저녁도 안 먹었어요?” 성연의 음성이 차갑다.“보스가 오늘 저녁은 입맛이 별로 없다고 하셔서
“그래, 내가 잘못 알았어. 약속할게. 다음에는 꼭 밥 잘 먹을게 응?” 무진은 성연의 손목을 잡았다.성연은 그의 눈 밑의 피로를 보고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그녀는 식탁에 도시락을 겹겹이 올려놓았다. “그럼 빨리 먹어요.”“그래.” 성연의 화가 가라앉는 것을 본 무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성연이 드러낸 것이 모두 그에게 관심을 가졌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만약 성연이 나를 개의치 않았다면, 그녀는 특별히 이 일을 꺼내서 말하지 않았을 거야.’그러나 이 요리의 향기를 맡자, 무진은 오히려 좀 배가 고파졌다.그의 입맛이 때때로 성연에게 길들여져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그는 손건호가 가져온 그 음식 냄새를 맡을 때는 입맛이 없었다.가끔 먹어 보면 괜찮은데, 많이 먹으면 구역질이 났다.분명히 지난 20여 년 동안 그는 모두 이렇게 지내왔다.그러나 급작스럽게 예방하지 못하면서 좋은 것을 체험했고, 무진은 이런 나쁜 것은 참기 어렵다고 느꼈다.사람은 정말 억지를 잘 부린다.무진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자신을 비웃었다.이렇게 된 것은 그도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성연이 늘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음식을 먹으면서 무진은 한편으로는 성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에는 매우 강렬한 침략성이 있다.마치 자신이 그의 사냥감이 된 것처럼 성연은 몹시 불편했다.무진은 지나치게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내가 뭘 하는지 보려고요? 빨리 먹어요. 아래에 국물도 있으니, 국물을 마시는 걸 기억해요.”“알았어.”무진은 바로 대답했다.그의 목소리에는 다소 부드러운 감정이 더해졌다.소파에 앉은 성연은 무료하게 핸드폰을 가지고 놀았다.무진의 먹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성연이 준비한 음식을 곧바로 싹쓸이했다.그가 보기에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성연도 줄곧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그가 국물을 마시는 틈을 타서, 성연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물었다.“기왕 마시면서 왜 먹지 않아요?”무진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맛이 별로
아무 말없이 정리한 서류를 서랍에 넣고 잠근 무진이 성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살짝 뺨을 꼬집었다.“약혼녀가 직접 데리러 왔는데 안 돌아갈 수야 없지. 안 돌아간다면 약혼녀가 화낼 텐데 말이야.”성연은 단지 그가 무진이 제때 식사를 하게 할 생각이었다. 일을 방해하려는 게 아니라.잠시 머뭇거리던 성연이 입을 열었다.“다 먹었으면 계속 일해요. 나 혼자 가도 돼요.”“오늘 일은 거진 다 처리했으니 같이 가.” 무진이 이마를 쓸며 말했다.성연도 무진이 계속 남아서 일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업무 보느라 긴장해 있었을 테니 이제는 좀 쉬어야 할 때였다.그래서 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진의 뒤를 따랐다.밖에 있던 비서 손건호는 무진이 사무실 불을 끄고 성연과 함께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우선 정중하게 불렀다.“보스, 작은 사모님.”손건호의 부름에 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늘은 야근할 필요가 없으니 너도 이만 퇴근해.”퇴근하란 말에 눈을 반짝이며 사무실을 나가는 두 사람을 쳐다보던 손건호는 곧 책상 위를 깨끗이 정리한 후 따라 사무실을 나갔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일 중독자인 보스가 손에서 일을 놓게 하다니.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자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왔던 성연 덕분에 무진은 그녀와 함께 차 뒷좌석에 탔다.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피곤하면 잠깐 눈 좀 붙여요. 도착하면 깨울게요.” 하루 내내 일하느라 피곤했을 무진을 떠올린 성연이 불쑥 입을 열었다.쉴 수 있을 때 최대한 시간을 내어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진은 성연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음, 알았어.”그리고 무진은 성연의 어깨에 바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무진이 무척 피곤해 보이자 성연은 그가 좀 더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자세를 조절했다.가끔 강무진은 정말 모순덩어리 같이 느껴졌다.어느 때는 배후에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조종하는 강인한
안금여가 한숨을 내쉬었다.“너와 성연이 모두 착한 아이들이야. 만약 정말 무슨 부득이한 상황이 닥치면, 이 할머니는 너희들이 좋게 헤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니 그러지 마, 무진아.”“할머니, 말씀하신 그 날은 오지 않을 거예요.” 무진은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안금여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강운경이 옆에서 말렸다.“엄마, 우리도 잘 알고 있잖아요. 엄마가 성연이를 얼마나 마음에 들어하시는지요. 하지만 무진이와 성연이 서로 감정이 깊어요. 둘 다 사리가 분명한 애들이에요. 무진이 우리를 찾아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건 기쁜 일이잖아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안금여의 말은 두 사람을 위한 것이 맞다. 불길한 말은 두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잠시 멍하니 있던 안금여가 입을 열었다.“성연이에 대해서는 네 말이 맞다. 우리 집 무진이가 마침내 일생을 함께 할 사람을 찾다니, 이 할머니가 당연히 기뻐해야지. 모두 이 할머니 잘못이다, 요 방정맞은 입 같으니라구.”무진이 얼른 말했다.“할머니, 할머니 탓하지 마세요. 모두 저와 성연일 위해서 하신 말씀이시잖아요?”“그렇네, 얼른 무진과 성연이 결혼식을 예약해야지. 성연이가 외국에서 나쁜 마음을 품은 놈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말이다!” 강운경은 성연의 성격을 안다.겉으로 보기에는 성격이 강하고 털털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 아이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조그만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간다면...‘정말 무진이 죽으려고 하겠네.’“그래, 근데 성연이 나이가 한참 어린데, 그렇게 하겠다고 해?” 강운경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두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계획을 다 세웠다.그러나 성연이 그러겠다고 할지는 아직 미지수.“성연이는 분명히 그러겠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성연이 곧 개학할 텐데, 성연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그러면 성연이 공부하러 가는 것을 막는 양상이 된다.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사실, 불안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연이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시 돌아왔다.무진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그러나 마음이 심란해지며 성연이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그래서 무진은 성연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고택에 들렀다.무진이 고택으로 들어왔을 때, 안금여와 강운경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무진을 보던 안금여는 무진의 뒤를 쳐다보았다.“아니 왜 성연이는 너와 함께 오지 않았어?”무진이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저었다.“같이 안 왔어요. 제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두 분에게 드릴 말이 있어서예요.”무진의 태도가 너무 공적이고 진지한 터라, 안금여와 강운경도 덩달아 긴장하며 다급히 물었다.“무슨 일이냐?”두 사람은 무의식 중에 회사의 일을 떠올렸다.“성연이가 곧 학교로 돌아갈 겁니다. 그런데 저는 성연이가 더 뛰어나게 성장하는 걸 가로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연이 떠나면, 더 이상 제가 마음을 놓고 지낼 수가 없습니다.”무진의 음성이 유난히 침중했다.성연은 아직 너무 젊었다. 외부에는 성연이를 끌어당기는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무진이라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무진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조바심과 불안은 오직 눈앞의 가족 두 사람 앞에서만 드러낼 수 있었다.무진이 에둘러 말했지만, 안금여와 강운경은 바로 알아들었다.무진의 말을 듣던 안금여와 강운경이 서로 마주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무슨 큰 일인가 했더니, 그걸 걱정하고 있었어?” 안금여와 강운경이 박장대소를 했다.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 무진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날이 있다니.제 마음이 이리도 빨리 들통나 버리자 무진은 좀 민망함을 느꼈다.무진이 입술만 오물거리며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강운경이 그런 무진을 놀렸다.“예전에 내가 무진이 너에게 괜찮은 아가씨들을 참 많이도 소개해 줬는데, 그때는 너 꿈쩍 하지도 않더니. 그때 나 정말 걱정했었어. 네가 고독한 모습으로 혼자 늙어가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야.
손민철의 안배로 조수경의 미모를 이용해서 돈 많은 사장들을 꼬셔냈다.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아주 빠르게 올라갔다.지난 번의 거의 두 배에 가깝게.이런 놀라운 업무 실적 상승에 사람들은 조수경의 능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이전에 조수경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도 이번 성과를 본 후에는 완전히 승복했다.사람들은 그 내막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조수경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라고만 생각했다.앞으로 조수경은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옆에서 조수경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대표실 안.비서 손건호가 서류 파일 하나를 손에 들고 있다. 바로 조수경의 업무 보고서가 들어 있는 파일이다.“보스, 좀 보시죠.”두텁게 쌓인 서류는 상당히 무게가 있어 보인다.무진이 눈을 들어 손건호를 한 번 쳐다본 후, 고개를 숙여 눈앞의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몇 분 동안 집중해서 문서를 모두 살폈다.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진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보고서를 다 확인한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렇게 많지?”손건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는 조수경 쪽을 직접 주시하지 않고 따로 사람을 보내 지켜보게 했었다.그러나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조수경의 이 업무 실적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았다.손건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했다.“지금 조수경 씨의 이 업무 실적이라면 이론상 팀장의 위치까지 승진해야 합니다.”무진은 어렴풋이 조수경이 이렇게 하는 목적을 알아챘다.지금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조수경을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이런 방법을 썼을 테고...“묵살해!”손건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담당 부서의 책임자가 제출한 겁니다. 묵살할 방법이 없습니다.”만약 묵살해 버린다면, 회사 내의 많은 직원들이 실망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어쨌든 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여기에 이렇게 버젓이 있는 이상, 누구
조수경의 표정이 좀 어정쩡했다.사실 마음속은 성연에 대한 원망으로 꽉 차 있었다.고택에 찾아갔더니, 안금여와 강운경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강무진도 자신에게 어찌나 냉담한지.조수경은 성연이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생각했다.물론 강씨 집안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 주었겠지만, 외부인이 송성연에게 이런 명품들을 선물한 적은 없을 것이다.송성연 쪽에서부터 손을 쓰기로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연은 자신들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강골이었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수경의 얼굴에는 거꾸로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이 가득 차 있었다.“성연 씨, 당신 생각을 이해해요. 앞으로 꼭 무진 오빠와 거리를 둘 게요. 다만...”조수경은 성연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말했다.“나는 할머님과 고모님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고모님과 할머님은 지금 나를 전혀 만나시려고 하질 않으세요.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어 성연 씨를 찾아온 거예요. 성연 씨가 나를 용서해 준다면, 두 분도 나를 다시 만나 주실 거라고 믿어요.”조수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찾아왔는가 싶었더니, 알고 보니 조수경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택에 찾아가면, 무슨 일을 하든 훨씬 편리할 테니까.“할머니랑 고모가 어떻다고요? 그 분들 뜻이에요.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나도 두 분 어른의 뜻은 못 꺽어요. 나를 핑계로 해서 그 분들을 설득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에요. 생각도 하지 말아요.” 성연이 딱 잘라 말했다.자신의 마음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을 본 조수경은 얼굴의 미소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는 그냥 우리 두 사람의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때는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어요. 송성연 씨, 정말 미안해요. 나는 정말 일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한 게 아니에요.”“조수경 씨가 무진 씨와 거리를 두기만 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생길 리가 없겠죠.”성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조수경을 쳐다보았다.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