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의 말에 강문호가 불복하며 바로 반박했다.“나는 강상철 부회장님의 사람입니다. 강 대표님이 내 거취를 결정할 수는 없소!”강문호의 눈에 비친 무진은 이미 회사의 실권자가 되었다 해도 여전히 강상철, 강상규에 댈 수가 없었다.무진이 차가운 어조로 강문호의 말을 받았다.“저들을 따르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신을 해고할 권한은 나한테 있지, 다른 누구가 아니라. 게다가 저들은 당신의 해고를 나한테 요구하지도 않을 겁니다. 못 믿겠으면 어디 한 번 두고 보시지.”강문호는 입을 닫았다.자신이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 지,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강무진이 아무리 변변찮다 해도 강씨 집안의 장손이었다.당연히 강상철, 강상규는 자신을 위해 표면에 나서서 강무진과 맞서지 않을 것이다.수지가 맞지 않았다.그 자신도 잘 알고 있다.자신이 말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강무진도 짐작하고 있다는 건 이미 파악했다.무진이 차가운 음성으로 계속 말했다.“내가 당신을 감옥에 보내지 않는 것은 오직 같은 강씨 성을 가졌기 때문이야. 꺼져!”강문호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손건호가 그를 보며 위협했다.“아직 안 갔어? 한 대 더 맞고 싶은가 보지? 맞고 싶다면야 뭐, 손도 좀 풀 겸 상관없지. 마침 요즘 손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말이지.”강문호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감히 입으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그런 그가 속으로 얼마나 억울해 하는 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그때 무진이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책임자가 즉시 경비원을 불러 강문호를 내쫓았다.회사에서 있었던 큰 소동에 관해 전해 들은 회사 직원들 모두가 삼삼오오 나와서 구경했다.모두 초라하고 비참한 강문호의 모습을 목격하였다.강문호는 얼굴이 다 뚫어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얼굴을 가린 채 재빨리 회사를 뛰쳐나갔다.회사 입구로 나온 강문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회사 내부 쪽을 바라보았다.최근에 와서야 이 회사 내에서 어깨에 힘주며 원하는 건 모두 가질 수 있게
이때 사무실에는 무진과 손건호 두 사람만 남았다.강문호가 떠난 후, 무진은 손건호에게 지시하였다.“사람을 보내 강문호를 예의 주시해. 다른 움직임은 없는지 살펴 봐.”무진은 이미 강문호가 담당할 역할을 준비해 놓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리 쉽게 강문호를 놓아줄 리 있었겠는가.이렇게 해고된 뒤 강문호는 분명 불만을 품을 터.그런 그가 사적으로 작은할아버지 쪽과 접촉할 지도 모르는 일.바둑돌로서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 지 두고 볼 일이다.만약 더 이상 소용이 없다고 판단되면 강상철 쪽에서는 바로 버려버릴 테고.그러나 그 전에 그들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접촉이 있을 게 분명하다.손건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무진이 지시했다. “가서 여기 책임자를 불러와.” “예.” 대답한 손건호가 바로 밖으로 나갔다.곧이어 지사 책임자가 들어왔다.책임자는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무진 앞에 섰다.“대표님, 부르셨습니까?” “강문호를 처리했다고 해서 당신 책임이 없어진 걸로 생각했습니까?” 의자에 기대어 앉은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대표님,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진이 책임을 추궁하려 하자 지사 책임자는 거의 울다시피 항변했다. “그럼 다시 묻죠. 강문호가 분식회계를 하면서 또 업무도 충실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약물 빼돌리기를 포함해서, 이 모두 강문호의 짓이라는 걸 책임자인 당신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들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무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하나같이 예리했다.어수선한 틈을 타 빠져나가려 했지만 도저히 핑계를 댈 수가 없는 상황.긴장한 나머지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진 채 변명했다.“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강문호는 강상철 부회장님 쪽 사람인데, 제가 어떻게 감히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어느 쪽에 붙어야 할지 알 수 없어 입장이 난처한 나머지 그저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강문호가 누구의 사람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사의 책임자로서
“보스, 지금 돌아가시겠습니까?”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없었다.손건호가 무진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관자놀이를 문지르던 무진이 창 밖으로 하늘 색을 살폈다.“지금 몇 시지?”“아침 8시입니다.” 손건호가 대답했다.“벌써 다음 날이야?” 무진이 제법 큰 소리로 투덜거렸다.호텔에 혼자 남은 성연이 걱정되었다.낯선 환경에서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하지 않을 텐데.핸드폰을 들여다보았지만 성연에게서 온 전화와 메시지는 없었다.“돌아가지.” 무진이 의자에서 일어서는 순간,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이제 막 회복된 몸으로 밤을 새웠으니 무진이 버티기에도 좀 버거웠다.보고 있던 손건호가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서 무진의 팔을 잡았다.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보스, 괜찮으십니까?”손건호의 손에 의지해 일어선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지금 당장 돌아가서 쉬셔야 합니다.” 손을 놓은 손건호가 뒤에서 무진을 부축했다.“알았어.” 무진이 앞으로 걸어갔다.잠시 후, 두 사람은 호텔에 도착했다.성연이 막 아침을 먹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입구로 가서 문을 여니 문 밖에 무진이 서 있었다.밤을 꼬박 새고 돌아온 무진의 얼굴이 피곤에 절어 있었다.지사 쪽 업무를 처리하느라 그런 것이 분명할 터.“왔어요?”객실로 들어오는 무진을 성연이 맞이했다. 성연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인 무진이 긴 신장의 장점을 이용해서 성연의 정수리를 쓱쓱 쓰다듬었다.“인정 없는 송성연, 약혼자가 나가서 오래도록 들어오지 않는데 전화 한 통 할 줄도 모르고.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무진 씨 일하는데 방해될까 봐 그런 거잖아요?” 성연은 하루 종일 호텔에 머물며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중간 중간에 서한기 쪽에서 알아낸 상황을 보고 받았다.아무 데도 나가지 않은 채.강무진이야 다 큰 어른이니 자신이 걱정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했다.그리고 무진이 일에 전념할 때, 전화해서 신경을 분산시키고 싶지도 않았고.성연을 내
주방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성연을 보던 무진은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고 싶었다.하지만 무진이 머리를 들이밀기도 전에 성연에게 밀려 쫓겨났다.“여긴 뭐 하러 와요? 침대에 앉아 쉬고 있어요.”성연은 자신이 요리하는 모습을 무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좀 이상한 느낌이다.왠지 부끄럽기도 하고.그런 성연의 모습을 바라보던 무진은 돌연 성연이 부끄러워 그런다는 것을 알아챘다.‘어린 마음에 수줍은가 보군.’더 이상 놀리길 포기한 무진은 소파에 기대어 서류를 보았다.출장을 왔어도 무진이 처리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다.국내 본사에서 결재할 수 없는 사안들이 모두 무진에게 올라왔다.그리고 강문호가 말한 그 창고 주소가 사실인지 아닌 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기회를 봐서 조사해 봐야 한다.비교적 중요한 물건들이라 다른 사람들이 눈독 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시간을 끌수록 문제가 생기기 마련, 조속히 손을 써야 했다.성연이 응접실 쪽으로 나오자 서류를 보느라 바쁜 무진의 모습이 보였다.사실 무진이 절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강운경과 안금여 두 집안 여자를 위해 그는 반드시 강인해져 가족들을 보호해야 했을 터.몸이 아파도 할 일은 산처럼 쌓여 있으니.이런 생각을 하자 성연의 마음이 순간 좀 복잡해졌다.어느새 성연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하염없이 무진을 바라보았다.성연의 시선을 느낀 무진이 고개를 돌리자 맑고 반짝이는 성연의 눈동자와 맞닥트렸다.이 세상의 더러움을 모두 씻어낼 수 있을 만큼 깨끗한 눈이다.차갑고 딱딱하던 무진의 표정이 한순간에 부드러워졌다.“왜 그렇게 보고 있어?”“그러는 아저씨는 왜 안 쉬어요?”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차려주는 아침 먹으려고.”무진이 대답했다.나풀거리는 하얀 앞치마를 걸친 성연이 무척 사랑스럽게 보였다.무진의 마음 한 켠이 허물어지더니 한순간에 녹아내렸다.“가서 봐야겠다.” 성연이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곁들일 반찬은 이미 다 준비되었다. 시간
성연은 어서 쉬러 가라고 무진을 재촉했다.밤을 꼬박 새고서도 이렇게 버티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니, 새삼 무진의 체력에 탄복하는 성연이다.“나와 같이 있어.” 무진의 어조가 꽤나 당당한 느낌이다.“난 방금 일어났다고요.” 밤새도록 누워 잔 성연이다.지금은 또 게임을 하며 놀고 싶은 마음이다.“네가 옆에 없으면 잠이 안 와.” 말을 하는 무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그러나 성연은 무진의 말이 좀 가련하게 들렸다.피로에 잔뜩 지친 얼굴을 그냥 쳐다보고 있기가 힘들었다.속으로 잠시 생각하던 성연이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침실로 들어간 무진은 소원성취한 듯 보들보들한 성연을 꼭 끌어안았다.익숙한 약향을 맡으며 무진이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무진이 깰까 봐 성연은 몸을 굳힌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그저 멀뚱멀뚱 눈을 뜬 채 천장만 바라봤다.잠이 더 이상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처음 자세 그대로 무진이 깨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성연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두 사람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가 되어 있었다.점심 식사를 위해 무진이 먼저 룸서비스로 주문한 후 성연을 깨웠다.귀여운 아기 돼지 마냥 밤새 그렇게 잤고 오전에 또 잔다.무진이 손 끝으로 성연의 뺨을 쓸었다.부시시 눈을 뜨던 성연의 눈에 지척에 앉은 무진이 보이자 곧바로 일어나 앉았다.“일어났어요?”자신보다 먼저 깨서 일어나 있는 무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这个男人,真是自律到可怕的地步。‘이 남자, 자기 절제력이 진짜 장난 아니야.’“내가 벌써 룸서비스를 부탁했어. 일어나서 뭐 좀 먹자.” 성연이 일어나는 것을 본 무진이 먼저 응접실로 가서 테이블에 음식들을 차렸다.성연이 세수하고 나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점심을 먹은 뒤엔 성연이와 같이 좀 조용히 쉬어야겠다.’오후가 되자 무진이 또 나가야 했다.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성연을 보고 있으니 정말 나가기 싫어지는 무진이
무진이 나간 후, 성연도 준비를 시작했다. 인면피를 쓰고 옷을 갈아입은 후 CCTV의 각도를 돌려놓았다.호텔을 나서는 성연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도로가로 내려간 성연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와서 섰다.곽연철이었다.성연이 변장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성연의 다양한 변장 스타일에 익숙한 곽연철은 한눈에 알아보았다.곽연철이 아주 공손한 태도로 성연을 불렀다.“아가씨.” 이 곳에도 지사를 두고 있는 제왕그룹이다.좀 더 편리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성연은 이곳의 지부를 임시 사무실로 삼았다.남의 이목을 가린 채 약재를 가져오기에 딱 좋았다.약재를 잃어버린 후, 곽연철에게 자신이 갈 것이라는 말만 전달하면 되었다.요 몇 년 동안 제왕그룹은 표면상 곽연철이 줄곧 관리해 왔기 때문에 성연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곽연철이 뜻밖에도 직접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곽 대표님, 왜 왔어요?”성연이 궁금해서 물었다.제성그룹은 작지 않았다. 곽연철이 처리해야 일도 무진 못지 않았기에 그가 올 줄은 몰랐다.“사람들이 아가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서지요.” 지사에서 그는 거의 오지 않는다.일부 눈이 어두운 자들이 성연에게 함부로 하기도 했다.“하아, 그럴 필요 없어요.” 성연이 휘휘 손을 저었다.“필요합니다.” 곽연철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성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때때로 곽연철의 성격이 너무 꽉 막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한기처럼 통통 튀는 성격과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비교적 활발한 성격의 성연은 틀에 맞춘 듯한 곽연철의 대답에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다.곽연철의 성격이 그렇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그러나 일에 있어서 곽연철은 완전 능력자였다. 이점에 대해서는 성연도 할 말이 없다.오는 길에 서한기에게 알렸으니, 서한기도 이미 제왕그룹으로 오는 길일 것이다.성연과 곽연철이 도착했을 때 서한기도 막 도착했다.곽연철을 본 서한기가 신이 나서 달
곽연철은 서한기가 이곳에서 요상한 짓을 해서 성연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 걱정했다.서한기를 끌어내렸다.복도에 도착했을 때 서한기는 경망스럽게 곽연철의 턱을 들어올렸다.“왜? 나 보고 싶지 않았어요?”곽연철이 서한기의 손을 쳐냈다.“미친.”“싫음 말고.” 다리를 꼬고 복도 의자에 앉은 서한기가 곽연철에게서 획 고개를 돌렸다.서한기를 보고 있던 곽연철은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밥은 먹었어?”“아니.” 서한기가 기운 없이 말했다.곽연철은 즉시 비서를 불러 먹을 것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비서의 동작이 아주 빨라서 십여 분 만에 준비가 다 되었다.곽연철은 서한기를 끌고 휴게실로 가서 음식을 먹였다.서한기는 처음에 성가시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테이블 위에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한 가득 놓인 것을 보더니 곽연철의 어깨를 두드렸다.“그래도 양심은 있네.”곽연철 자신도 식사를 하지 않아서 같이 앉아 먹기 시작했다.고개를 들어 사무실 방향을 힐끗 돌아본 서한기가 곽연철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보스는 식사했는지 왜 안 물어봅니까?”사무실 안에 있던 성연이 나와서 두 사람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비난할 지도 모르는 일.“내가 너인 줄 알아? 물어보니 보스는 먹었대.”곽연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서한기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모두 곽연철이 뻣뻣할 정도로 예의 바르다고 하지만 그것도 보스 앞에서만 그럴 뿐이다.자신 앞에서는 사람 분통 터지게 만드는 고수였다.‘그러니 자신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기는 기대도 않는 게 좋을 걸.’서한기를 상대하는 것도 귀찮아진 곽연철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일어섰다.곽연철이 일어나자 서한기도 얼른 입에 음식을 집어넣은 후 따라 일어났다.“어디 가요?”“보스가 보고서를 거의 다 봤을 거야. 보고할 게 있어.” 사무실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었다.과연 곽연철의 짐작대로 그들이 들어가니 성연이 보고서를 덮었다.다가간 곽연철 성연의 앞에 섰다.“보스, 강탈해 간 이 물
무진 쪽에서도 이미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강문호가 말한 곳 확인해 봤어? 믿을 수는 있어?” 무진이 옷 자락을 정리하며 옆에 있는 손건호에게 물었다.“네, 이미 알아봤습니다. 틀리지 않을 겁니다. 또 이 연해의 창고를 조사해 보니 많은 공장들이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금지된 품목들 다루다가 나중에 폐쇄되고 창고가 된 곳입니다. 이런 창고는 모두 불법입니다. 물건을 훔쳐 가서 보관하기 딱 좋죠. X국의 각 조직들이 이 곳을 찾아내서 아주 잘 속여왔습니다.”손건호는 저녁에 다시 한번 그곳 주소지를 찾아가 조사했다.이번에는 무진도 함께 갈 것이니 그의 안전을 제일순위에 두어야 한다.조금도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모두 준비되었으면 빨리 시작해. 더 이상 늦추지 말고. 시간을 끌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강문호가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그는 강씨 집안의 장손이다.만약 강문호가 실토한 장소에서 사고가 난다면 손건호 뿐 아니라 온 집안에서 그 책임을 따져 물을 것이다.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강문호가 어리석게 자신에게 손을 대지는 않을 것이다.“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사람들은 미리 준비시켜 두었으니 무진의 명령 한 마디만 기다리고 있다.사위가 캄캄한 심야.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앞을 질주하고 뒤로는 검은색 벤츠가 여러 대 뒤따르고 있다.여러 대의 차량이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 모습이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영화를 찍는 줄 알 정도로 장관이었다.창고에 가까워졌을 때, 앞에 있던 손건호가 저 멀리 전방을 주시했다. 저 멀리 해변에 여러 대의 차량이 이미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결정을 하지 못한 손건호가 몸을 돌려 무진에게 신호를 보냈다.“보스, 계속 앞으로 갈까요?”무진이 말이 없자 손건호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뒤따르던 차들이 일제히 따라 멈추었다.연해에는 불빛이 거의 없어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웠다.어두컴컴한 밤이 사람들을 뒤덮었다. 흡사 당장 시뻘건 아가리를 벌리고 집어삼킬 듯하다.어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
눈썰미가 좋은 미스 샤넬은 불쑥 걸음을 멈추었다.같이 손을 잡고 가던 성연도 덩달아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물었다. “왜 그래?”미스 샤넬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안진검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미스 샤넬을 보았다.미스 샤넬이 자신을 알아봤음을 눈치 챈 안진검은 서둘러 선글라스를 끼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계속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지만 그래도 좀 낭패스러웠다.속으로는 정말 놀랐다.샤넬 가문의 장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빌어먹을?’‘그녀가 나를 말했을 지도 몰라.’‘미스 샤넬이 정말 내 이름을 말한다면, 내 신분 배경이 드러나면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줄지도 몰라.’안진검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앞으로 계속 동정을 살피면서 들켰는지 어떤지 지켜보는 수밖에.’‘만약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계획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어.’간신히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진검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낀 성연도 바로 물었다.“누군데요?”미스 샤넬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죠.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이곳 북성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목현수가 옆에서 바로 말했다.“잘못 본 게 분명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맞아요, 나는 여전히 성연 씨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스 샤넬은 다시 성연의 손을 잡았다.그들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을 관광지로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무진에 대해서는 목현수도 자료를 좀 조사한 적이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오른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이번에 손건호가 성연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모양이군.’그러나 강무진이 직접 자신을 예의 감시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놓았음을 의미했다.목
이튿날 출근하던 무진은 푹 안심한 마음으로 성연에게 목현수를 방문하라고 했다.미스 샤넬이 있는 목현수가 자신의 여자에게 다른 시도를 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성연은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찾았다.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했던 그녀는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북성에 오자 마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똑똑똑.” 성연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한참 기다렸지만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핸드폰을 꺼내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목현수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야 목현수가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즉시 말했다.“사형, 미스 샤넬하고 어디 나갔어요?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로 룸 앞에 와 있는데.”“방 앞에 있다고?” 그제야 잠에서 깬 목현수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2분가량 지나서 핸드폰 건너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문을 열어 줄게.”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성연이 목현수의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미스 샤넬은?”“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목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제 유럽에서 왔으니, 시차 때문에 피곤한 건 아주 정상이죠 뭐.”목현수가 곧장 침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성연은 소파에서 기다렸다.10분 뒤에 미스 샤넬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성연을 보자 눈을 살짝 떴다.“성연 씨, 왔네요.”성연은 미스 샤넬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관광을 나갈 생각이에요.”“곧 나올게요.” 다시 방에 들어간 미스 샤넬은 화장을 마치고 나왔다.그런데 미스 샤넬의 옷 사이로 옅은 붉은 색 흔적들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경험한 적이 없지만 본 건 있는 성연.그 흔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사형과 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