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오늘은 무진이 일찍 퇴근했다.집에 돌아와서 성연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두 사람이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동안, 성연은 때때로 그를 여러 번 쳐다보았지만, 무진이 매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느껴졌다.그녀는 정말 무진이 화났다는 걸 조금도 분간할 수 없었다.아예 지금 음식이 올라오기도 전에 성연이 눈을 깜빡이고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배 고파요? 내가 주방에 다시 재촉하러 갔다 올까요? 저녁에 침을 좀 맞고 목욕을 해야 해요.”무진이 말이 없으니 그녀가 먼저 나서서 무진의 기분이 어떤지 알아볼 수밖에.무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만약 무진이 성연에게 물어보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무진이 이처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람을 더 당혹스럽게 했다.사실 성연이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왠지 모르게 무진이 화가 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무진이 눈을 들어 성연을 한 번 쳐다보았다.평소 성연은 자신에 대해 이런 것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그러니 그녀의 목적은 뻔했다. 살살 구슬리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무진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의심했다.‘지금 속에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 거 아냐?’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혹시 무슨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라도 한 거야?”무진이 먼저 물어보자 성연이 떠보듯이 물었다.“아저씨 회사, 신제품 홍보모델로 소지한을 섭외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소지한 앞길 막으려고 그런 건 아니겠죠?”성연은 소지한의 일에 대해 좀 신경을 썼다.소지한은 연예계의 활동만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었다.그러나 소지한이 연예계에서 현재의 위치까지 도달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게다가 소지한은 연기를 아주 좋아한다.성연은 소지한의 창창한 앞날이 자신 때문에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북성에서 강무진은 그야말로 막강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설사 소지한 같은 영화계 대스타라 하더라도 강
얼렁뚱땅 넘긴 성연이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진이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아 다행이었다.저녁 식사가 끝난 후, 성연은 무진에게 침을 놓았다. 침을 다 맞은 무진이 약욕을 하는 틈을 타서 성연도 다른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더 이상 그녀의 손이 필요 없는 무진은 목욕을 끝내고 혼자 나오면 되는 것이다.그래서 성연은 무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무진이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성연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침대 옆에 앉아서 무심하게도 잠든 그녀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만 젓는 무진이다.성연이 일부러 일의 앞뒤를 흐리게 하려 그랬다는 것을 잘 안다.예를 든다면, 시골 출신의 여자아이가 소지한 같은 유명 배우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같은.하지만 결국 모르는 척했다. 차마 성연을 질책하기 힘들었던 탓이다.손을 내밀어 기다란 손가락으로 성연의 볼을 살짝 터치했다.맑고 깨끗한 그의 음성이 지금은 무슨 일인지 약간 잠겨 있었다.“평생, 넌 이제 얌전히 내 곁에 있어야 돼.”무진의 눈에서 강한 소유의 빛이 폭발하며 성연을 자신의 시선 안에 단단히 가두었다.무슨 좋은 꿈이라도 꾼 듯 성연이 입꼬리를 올리며 아래 입술을 적셨다.아무것도 모르는 채.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린 무진은 성연 옆에 누워 품에 당겨 안았다.그리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이튿날, 개교기념일로 준비로 학교 전체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나뭇가지들마다 오색 등과 색종이 띠들이 매달려 있었다.곳곳에 장식된 초롱 오색 띠들이 개교기념을 ‘경축’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개교 기념일이 다가오면서 많은 동아리들이 부지런히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 가운데 몇몇 동아리들은 학교 내 곳곳의 장식을 맡아야 했다.또 각 동아리들의 내부 데코도 바꿔야 했다. 개교기념일엔 모든 동아리들의 데코에 점수가 매겨지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동아리에 시상을 하게 된다. 상금도 같이.성연이 동아리에 가니 모두가 바삐 움직이며 준비 중이었다. 가만히
머리가 아파 온 성연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피할 방법이 없었다.다들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했는데 자신이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됐어. 닥치면 닥치는 대로 하는 거지 뭐. 강무진이 정말 보러 올 생각이면, 내가 무슨 수가 막겠어?’‘나, 송성연이야.’여기까지 생각하며 겨우 떨어진 자신감을 다시 회복하는 성연이다.점심 시간, 성연은 잠시 시간을 내어 연수호 어르신의 저택으로 갔다.연 어르신은 이미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휠체어에 의지하지 않아도 그는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상태.이 모두 성연의 덕이었다.그래서 연씨 저택을 방문한 성연은 모두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성연이 들어서자 고용인이 각종 디저트와 과일, 그리고 차를 내어왔다.모두 성연이 이곳에서 맛있게 먹고 마시던 것들이다.어르신의 며느리이자 연씨 집안의 안주인인 하지연이 세심하게 기억했다가 고용인에게 준비하라 시킨 듯했다.어르신은 소파에 앉아 바둑을 두는 중이었다.성연의 치료에 대한 그의 믿음은 상당했다.오랜 친우 고학중의 제자이니, 그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자기 옆 자리를 탁탁 두드리며 불렀다.“이리 와서 앉아.”성연이 어르신이 가리킨 곳에 앉으며 인사했다.“어르신, 요즘 컨디션은 괜찮으시죠?”“그래, 자네 덕에 많이 좋아졌어.” 온화한 표정으로 성연에게 대답하는 어르신의 눈가가 웃음으로 주름이 접혔다.“과찬이세요.”성연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어르신의 상태를 확인할 겸 왔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그녀의 침술 외에도 연씨 집안 가족들의 공도 없을 수가 없었다.틀림없이 매일 자신이 요구한 대로 엄격하게 어르신의 상태를 관리해 왔을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어르신의 회복이 이처럼 빠를 수는 없었을 터.어르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집을 든든하게 떠받치던 기둥이셨다.그러니 나이가 늙고 힘이 없어져도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성연은 어르신의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런데 갑자기 어르신이 성연에게 질문했다.“자네, 지금 애인이 있나?”
성연은 연강훈에게 반감 같은 건 없었다.지난 번의 고백에 매우 난처하긴 했지만 그 이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연강훈이 한 말을 농담쯤으로 치부할 수 있다.연강훈을 그저 친구 또는 형제 같은 존재로 여겼을 뿐이니까.연인 같은 이성의 관계는 그녀의 고려 범위 안에 전혀 있지 않았다.오전에 성연의 동아리 룸 내부는 장식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 오후, 성연은 학교로 돌아왔다.연습할 시간이 되어서 동아리 룸으로 갔다.사람이 다 모이자 회장은 모두를 한데 모은 후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그동안의 노력에 어긋나지 않도록 제대로 연습해서 개교기념일에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합시다.”회장이 강조로 다들 다시 한 번 이번 행사의 중요성을 확인했다.그래서인지 동아리 회원들의 열의가 넘쳤다.성연은 당연히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무엇보다 개교 기념일에 강무진이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올 것을 생각하니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해졌다.‘강무진 앞에서 망신을 당해서는 절대 안돼.’새삼 다짐을 한 성연은 완전 프로 같은 태도로 진우진과의 연기에 집중했다.가끔 진우진이 제대로 연기하지 못하는 부분이라도 생길라 치면 지적하기도 하면서.성연의 지적은 왕왕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것들이기도 해서 덕분에 진우진의 연기가 많이 늘었다.브레이크 타임, 음료수 두 병을 들고 온 진우진이 그중 한 병을 성연에게 건넸다.“송성연, 마셔.”“괜찮아.” 성연은 진우진과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다.함께 공연하는 건 별개의 일일뿐, 공연이 끝나면 두 사람은 일반 학우의 관계로 돌아갈 뿐이다.그러니 그렇게 가까이 지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단호박 같은 그녀의 거절에 진우진의 눈이 어두워졌다.손에 든 음료 병을 잠시 꽉 쥐었다가 놓은 진우진이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나, 나는 다른 뜻이 없어. 그냥 음료수 한 병일뿐이야. 도와줘서 고맙다는 뜻으로.”성연이 눈을 들어 진우진을 쳐다보았다.무의식적으로 몸을 바짝 움츠린 진우진은 좀 긴장한 듯이 보였다.그런 그의 반응이 눈
곧 개교 기념일이다.온 교정이 오색 등불과 반짝이들로 아주 화려하게 장식되었다.학교가 아니라 어느 호화로운 궁전 같은 것이 이번 개교기념일에 대해 학교에서 제법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개교기념일 당일, 학교를 외부에 개방하여 누구든 들어와 참관할 수 있도록 했다.이른 아침, 학교장을 위시해서 중요 보직 교사들이 단정한 복장으로 교문 입구에서 귀빈들을 맞이했다.호화로운 고급승용차들이 연이어 들어섰다.북성남고는 본래 귀족으로 불리는 학교였다.그러니 학부모들의 배경은 자연 다른 어느 곳 못지 않았다.북성에서 내노라 하는 인물들이 모두 몰려온 것이 마치 거대한 비즈니스 교류장 같이 여겨질 정도였다.학교장 및 보직 교사들이 환한 웃음으로 한 명 한 명 맞이하였다. 교실에서의 엄한 모습이 사려져서인지 좀 더 친근해 보였다.이때, 차 한 대가 서서히 학교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전 세계에 5 대밖에 없는 롤스로이스. 웬만한 신분으로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차였다.뒷자리에 앉은 차가운 분위기의 남성은 온몸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었다.바로 강무진이었다.평소 블랙 슈트만 입던 무진이 오늘은 특별히 짙은 네이비 슈트를 착용하고 있어 좀더 젊어 보이게 했다. 또 부드러운 네이비 톤이 무진의 차가운 인상을 많이 부드럽게 해주고 있었다.“보스가 오실 거라는 걸 북성남고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행사 규모가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큰 것 같네요.” 운전석에 앉은 손건호는 보스 무진의 눈에 흥미로워하는 빛이 어려 있음을 알아챘다.오래전부터 북성남고에 많은 후원을 하고 있던 보스였다. 하지만 이런 행사에 직접 참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보스 강무진이 이런 행사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결국은 작은 사모님의 덕을 본 셈인 거지.’“음.” 무진이 담담히 짧게 대답했다.이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자신의 어린 약혼녀가 맞춤 드레스를 입고 연기하는 모습이 어떨지 그게 궁금할 뿐.차를 주차장에 멈춰
이때 성연은 무대 뒤에 있었다.시간에 맞춰 오느라 오늘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아직도 잠이 덜 깬 상태다.공연을 앞두고 모두 분장하느라 바빴다.그 외 동아리 회원들도 모두 무대에 공연을 올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성연만 느긋한 모양새로책상에 엎드려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회장은 즉시 사람들 틈에서 성연을 찾았다. 그러다 성연의 늘어진 모습을 보고는 한숨과 함께 원망이 마음이 올라왔다.여기 있는 다들 바빠서 난리가 날 지경인데, 성연 혼자 유유자적이다.다급함에 큰 소리로 부르며 성연을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송성연, 빨리 가서 화장하고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어야지. 공연 준비 안 할 거야?”피곤해서 피를 토할 것 같은 회장이었다.한 사람 한 사람 실수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참관하는 귀빈들 모두 대단한 인사들인 만큼 더욱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이 동아리 회원들 중 어느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의자에서 일어난 성연이 기지개를 켜며 ‘음’ 신음소리를 냈다.무진이 이미 도착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채.성연을 놀래키기 위해 무진은 아무런 정보도 흘리지 않은 채 깜쪽 같이 속였다.무진은 교장의 안내로 강당에 도착했다.“강 총괄대표님, 관람하시기 가장 좋은 두번째 줄에 자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직접 옆에서 안내하는 교장의 말투가 무척이나 공손하고 조심스럽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교장의 안내에 따라 걸어갔다.북성남고의 대강당은 학교에서 대회를 열거나 중요한 일을 발표하거나 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분명히 공연이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도 벌써 사람들로 붐볐다.강당이 무척 소란스러워 무진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예전과 다름없이 무진은 이런 자리가 무척 싫었다.하지만 송성연 때문에 참았다.무진이 자리에 앉자마자 누군가가 와서 인사를 했다.지금 WS그룹의 실권자가 무진이다 보니 다들 와서 인사하고 관계를 터고 싶어했다.“강 대표님, 공연 보
무진이 열심히 찾던 그 시각, 성연은 동아리 룸에서 분장실로 이미 이동한 후였다.그러니 무진이 찾을 수 없을 수밖에.이번 행사를 위해 학교에서는 교실 몇 개를 학생들에게 임시 분장실로 내 주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공간이 아예 부족했을 터였다.의자에 앉은 성연은 화장을 담당한 학우들에게 자신의 얼굴에 맡기고 있었다.원래 아주 예쁜 얼굴의 성연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에 바탕피부도 아주 좋았다. 그래서 화장 담당 학우는 진한 화장보다는 옅은 화장을 해주었다.메이크업까지 더해지니 성연의 이목구비가 훨씬 선명해졌다. 립스틱까지 바르니 사람이 달라 보일 정도로 아주 예뻤다.화장 전의 성연은 깨끗한 느낌으로 예뻤다면, 좀 더 짙은 입체감으로 화장을 한 성연은 마치 그림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았다.화장 담당 학우가 눈을 반짝이며 성연을 바라보았다. 과연 교내 게시판에 퀸 랭킹 일등으로 손색이 없었다.이 외모는 정말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았다.“송성연, 넌 정말 마음 놓고 화장하게 해준다.” 화장을 해 주던 학우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갑자기 눈을 뜬 성연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성연의 주시에 얼굴이 새빨개진 여자아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송, 송성연, 왜 그래?”“안 바빠?” 성연이 담담하게 물었다.“바, 바빠.” 그녀가 무의식 중에 고개를 끄덕였다.“뒤에 또 많은 학우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해야지 않아?” 성연이 나른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그, 그래.”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성연이 지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붉어진 얼굴로 그 학우는 즉시 다른 아이들에게 돌아다니며 화장을 해주었다.그 아이가 가는 것을 보며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예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잤다.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기다리긴 매한가지. 알람을 맞춰 두면 시간에 맞춰 깨어날 수 있을 터.비슷한 시각, 분장실 옆 탈의실에 그림자 하나가 살금살금 들어왔다.탈의실 안에 숨어든 그림자가 옷들을 뒤적거렸다. 찾는
회장은 너무 놀란 나머지 가슴이 아팠다.옷을 든 손이 덜덜 떨고 있는 회장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도대체 누가 이렇게 양심도 없는 거야? 너무 한 거 아니야? 도대체 누가 건드린 거야?”성연이 눈을 가느스럼하게 떴다.무대의상이 이렇게 되었으니 분명히 입을 수 없을 터.지금 무슨 말을 해도 방법이 없었다.성연이 물었다.“따로 더 준비한 것 있어? 없어?”회장의 안목이 너무 높아서 한참을 찾다가 겨우 이 의상으로 선택한 거였다. 누가 이런 악의적인 일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채.화가 난 회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아니, 한 벌뿐이야. 게다가 빌려온 거야. 지금 10분 있으면 공연 시작이야.”지금 다시 의상을 빌리러 가는 것은 이미 늦은 게 확실했다.회장을 말을 들은 성연이 한참 침묵했다.조각조각 잘린 옷은 헝겊조각이 되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고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누군가 그들의 공연을 방해하려고 했다.마침 공연을 마친 학우들 몇몇이 무대에서 내려와 그들 옆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저들의 옷은 전통의상이었다. 성연이 공연하는 연극의 내용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성연에게 방법이 떠올랐다.이 방법을 생각한 후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성연이 즉시 한 여학생을 붙잡았다.“이봐, 잠깐만.” 성연이 소리쳤다.그 학생이 발걸음을 멈추며 물었다.“왜?”“사실은 말이야, 곧 우리 공연 차례인데, 우리 무대 의상에 잠시 문제가 생겼어. 네 의상을 잠시 빌려 입고 싶은데 괜찮아?” 가능할지 어떨지는 성연도 모른다.‘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으니, 우선 한번 해 보는 거지, 뭐.’“그래도 돼?” 그 학생이 확신이 없는 듯 물었다.“괜찮아.”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앞으로 나선 회장이 망가진 의상을 그 학우 앞에 보였다.“우리 정말 시간이 급해. 정말이야, 거짓말 아니야. 좀 도와줘.”무대의상과 회장의 초조한 모습을 보던 학생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희들을 도울 수 있다면야 뭐.”마침내 승낙을 받은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
눈썰미가 좋은 미스 샤넬은 불쑥 걸음을 멈추었다.같이 손을 잡고 가던 성연도 덩달아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물었다. “왜 그래?”미스 샤넬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안진검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미스 샤넬을 보았다.미스 샤넬이 자신을 알아봤음을 눈치 챈 안진검은 서둘러 선글라스를 끼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계속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지만 그래도 좀 낭패스러웠다.속으로는 정말 놀랐다.샤넬 가문의 장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빌어먹을?’‘그녀가 나를 말했을 지도 몰라.’‘미스 샤넬이 정말 내 이름을 말한다면, 내 신분 배경이 드러나면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줄지도 몰라.’안진검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앞으로 계속 동정을 살피면서 들켰는지 어떤지 지켜보는 수밖에.’‘만약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계획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어.’간신히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진검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낀 성연도 바로 물었다.“누군데요?”미스 샤넬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죠.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이곳 북성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목현수가 옆에서 바로 말했다.“잘못 본 게 분명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맞아요, 나는 여전히 성연 씨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스 샤넬은 다시 성연의 손을 잡았다.그들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을 관광지로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무진에 대해서는 목현수도 자료를 좀 조사한 적이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오른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이번에 손건호가 성연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모양이군.’그러나 강무진이 직접 자신을 예의 감시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놓았음을 의미했다.목
이튿날 출근하던 무진은 푹 안심한 마음으로 성연에게 목현수를 방문하라고 했다.미스 샤넬이 있는 목현수가 자신의 여자에게 다른 시도를 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성연은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찾았다.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했던 그녀는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북성에 오자 마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똑똑똑.” 성연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한참 기다렸지만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핸드폰을 꺼내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목현수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야 목현수가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즉시 말했다.“사형, 미스 샤넬하고 어디 나갔어요?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로 룸 앞에 와 있는데.”“방 앞에 있다고?” 그제야 잠에서 깬 목현수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2분가량 지나서 핸드폰 건너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문을 열어 줄게.”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성연이 목현수의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미스 샤넬은?”“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목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제 유럽에서 왔으니, 시차 때문에 피곤한 건 아주 정상이죠 뭐.”목현수가 곧장 침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성연은 소파에서 기다렸다.10분 뒤에 미스 샤넬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성연을 보자 눈을 살짝 떴다.“성연 씨, 왔네요.”성연은 미스 샤넬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관광을 나갈 생각이에요.”“곧 나올게요.” 다시 방에 들어간 미스 샤넬은 화장을 마치고 나왔다.그런데 미스 샤넬의 옷 사이로 옅은 붉은 색 흔적들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경험한 적이 없지만 본 건 있는 성연.그 흔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사형과 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