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이 차에 오르자 성연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멀리 떨어진 거리 때문에 단편적인 단어 한 두 개만 들렸을 뿐, 무진이 저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구체적인 말은 듣지 못했다.그러나 저 두 사람의 창백하다 못해 얼어붙어 보기 흉한 안색을 보니,확실히, 무진에게서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한 듯했다.성연은 무진을 한 번 쳐다보았다.무진은 성연이 저 두 사람 때문에 걱정하는 줄 알고 위로하며 말했다.“괜찮아, 앞으로는 상대하기 싫으면 하지 마.”말인즉슨, 앞으로 저 두 사람과 관련한 일은 모두 그에게 맡기면 된다는 뜻.무진의 말을 알아들은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닥 흥이 일지 않는 모습으로.솔직히 성연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육 두 사람을 상대하면서 뭔가 가슴을 꽉 누르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성연은 자신의 멘탈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고 자신해왔다.그런데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 성연 또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어찌 되었든 어느 정도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성연은 창밖만 쳐다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평소 밝은 모습으로 재잘거리던 여자애가 돌연 아무 말없이 조용하니 정말 보기 힘들었다.무진도 아무 말없이 그저 성연의 옆에 함께 앉아 있을 뿐.송종철과 진미선, 두 사람이 귀찮게 하는 바람에 성연과 무진이 집에 도착한 시간은 꽤 늦어 있었다. 집사가 이미 저녁식사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지금 무진은 모든 걸 성연의 취향에 맞추었다.식탁 위에 놓인 것들 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러나 앞에 있는 음식을 보면서 조금 전 학교 앞에서 만난 두 사람이 다시 떠오른 성연은 갑자기 입맛이 없어졌다.음식을 조금 집어 자신의 접시에 담은 뒤 무심코 휘적거리기만 할 뿐.겨우 반 공기의 밥을 몇 입 먹는 듯하더니 결국 수저를 내려놓은 뒤에 소파에 가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차에서부터 지금까지 성연의 기분이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무진은 알아차렸다.성연이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사실 결국
평소에 성연연은 야식을 먹는 습관이 없었다.그래서 집사는 보통 자신을 위한 야식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오늘 저녁에 자신이 먹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어 서류를 내려놓은 채 자신과 함께 게임을 즐기던 무진을 떠올린 성연은 자연히 깨달았다. 이 야식을 무진이 준비시킨 거라는 사실을.무진의 이러한 친절은 성연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따뜻한 기운이 마음속으로 훅 밀려오자 갑자기 그렇게 힘들지도 않은 듯했다.옆으로 고개를 돌린 성연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무진에게 말했다.“고마워요.”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천만에. 앞으로 일이 있을 때는 속에 담고 있지만 말고 말해. 내가 같이 해결해 줄 테니.”“알았어요.” 성연은 가슴이 뭉클했다.예전엔 언제나 그녀 혼자였다.지금 강무진은 자신에게도 의지할 사람이 생겼구나, 라고 느끼게 했다.저녁을 먹은 무진이었으나 성연과 함께 야식을 먹었다.배불리 먹고 마신 성연은 다시 기운을 회복했다. 두 사람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은 생각하지 않았다.피곤한 하루였던 지라, 목욕을 하고 나온 성연은 침대에 엎드리자 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밤새 꿈도 꾸지 않은 채 아주 푹 깊이 잘 잤다.다음 날은 주말이라 성연은 학교에 갈 필요도, 연습할 필요도 없었다.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집안에서 알람도 주말에는 자동으로 멈추며 누구도 성연을 방해하지 않았다.성연은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계속 잤더니 엄청 개운함을 느꼈다.일어났을 때, 무진은 이미 집에 없었다. 아마 일이 있어서 회사에 갔을 터.성연은 신경 쓰지 않고 기지개를 켠 뒤 스스로 일어났다.아침을 먹자 좀 심심해졌다.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 질리겠지.주말 시간을 게임으로만 보내기엔 또 너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무진이 집에 없으니 더 재미가 없게 느껴졌다.집에서 아침 시간 반나절을 빈둥거리다 심심해진 성연은 결국 할머니 안금여를 보러 고택으로 갔다.할머니는 잘 회복되고 있었다. 매일 성연이 이른 방법에 따라 재활치료를 진행한 까닭에
지금 성연은 화장실에서 통화를 하는 중이다.조금 전 휴대폰이 진동하자 핑계를 대고 화장실로 건너온 것이다.각종 장식물과 첨단 기술로 인테리어 된 고택은 방음 효과가 아주 뛰어났다.게다가 성연이 2층에 올라와서 통화를 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듣기는 더욱 힘들 터였다.30초 정도 기다렸다가 지나가지 이가 없는 것이 확실해진 후에야 성연이 입을 열었다.“이 일은 곽대표님이 알아서 하세요. 사업성이 좋다면 협력할 수 없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좋지 않다면 끝입니다.”성연은 송종철 일가를 대하는 것처럼 매정하게 진미선을 대하지는 않았다.적어도 과거 진미선은 자신에게 생활비를 조금씩 보내줄 줄은 알았으니까.게다가 진미선은 외할머니의 친딸이었기에 외할머니의 얼굴을 봐서 한쪽 그물을 열어 준 것이다.다만, 성연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입 밖에 꺼내는 순간, 욕심이 끝도 한도 없을 사람들이었으니까.진미선 쪽이 착실하게만 한다면 성연도 무사안일한 삶을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성연을 잘 알고 있던 곽연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진미선의 일은 그쯤 말한 뒤에 곽연철이 화제를 돌렸다.“아가씨,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말하세요.” 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언제나 신중한 곽연철인지라 일을 안심하고 그에게 모든 일을 맡길 수 있었다.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연히 곽연철이 잘 알고 있을 테니.“그게 최근에 한 사업을 놓고 강씨 집안 WS그룹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대형 전자과학기술 사업으로 정부에서 모든 권한을 위탁할 업체를 선정한다고 해서 국내 많은 대형 기업들이 모두 달라붙어 경쟁 중입니다. 보스, 이 건에 우리도 참여해야 합니까? WS그룹도 아마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곽연철은 성연이 강무진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만약 공공연히 WS그룹과 맞서다가 이후 성연의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좀 좋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곽연철은 성연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다.
WS그룹.무진 또한 마침 비서 손건호와 이 프로젝트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눈앞에 서류 한 무더기가 놓여 있었다.공개입찰 회사들에 관한 기본 자료와 이번 프로젝트에 관한 브리핑 자료들이었다.손건호가 눈앞의 한 자료를 가리키며 말했다.“보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경쟁자는 바로 제왕그룹입니다. 실력은 비록 WS그룹 보다 못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제 국내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곽연철 대표는 젊은 세대의 선두주자라고 할 만합니다.”곽연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걸출한 인재로 장기적인 투자 안목을 가지고 있는, 매우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만약 협력 파트너라면 그들은 분명 매우 기쁜 마음으로 협력할 것이라 분명했다.다만 아쉽게도 아직 협력도 해보지 않았는데 경쟁자가 되어버렸다.당초 손건호는 회사의 고위급 임원을 물색할 때, 곽연철을 끌어들일 생각도 했었다.뒤에 여러 가지 이유로 흐지부지되었지만.짧디짧은 기간에 곽연철이 이런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으리라 누가 알았겠는가?곽연철의 수단은 정말 훌륭했다.무진은 손건호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자신감 있는 얼굴로 말했다.“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우리 WS 그룹에 떨어질 수밖에 없어.”곽연철이 뛰어난 것은 분명했다.그러나 북성에 뿌리를 두고 100년의 역사를 지닌 WS 그룹에 비한다면, 제왕그룹이라는 신예는 역시 눈에 차지 않았다.무진이 나서서 원한 것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맞은편에 어떤 강력한 적수가 있다 해도, 무진은 이 프로젝트를 꼭 따 내고 말리라며 다짐했다.자기 보스의 실력을 생각한 손건호 또한 웃었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두려울 게 없었다.하지만 만전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 법. 손건호 역시 충분한 준비를 할 것이다.결국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만큼 정해진 것 또한 아무 것도 없으니.비록 그들이 보기에 이 프로젝트는 이미 WS그룹에 넘어온 것이 확실해 보였지만 말이다.손건호는 항상 신중했다.“당분간
마지막 말을 할 때 손건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이전에 성연과 막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공적인 일은 원칙적으로 처리해 왔었다.그러나 지금, 사모님에 대한 보스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의식한 손건호는 그들 사이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까 봐 감히 말하기도 힘들었다.특히 성연과 다른 이성에 관한 것이라면 더…….입 밖으로 꺼내기 전, 결국 괴로운 사람이 자신이 되지 않도록 좀 더 고려해야 했다.눈썹을 찡그린 채 안색이 어두워진 무진이 다시 물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 성연이 어떻게 제왕그룹 사람들과 알 수 있었지?”북성에서 제왕그룹의 위치는 결코 낮지 않았다.이제 갓 성인이 된 소녀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기업 대표나 되는 사람과 관계가 있을 리가.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무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손건호는 보스가 성연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모습을 두고 보는 게 힘들었다.사모님의 얘기만 나오면 보스는 판단력을 잃는 것 같았다.‘역시, 사랑이란 건 정말 종잡을 수 없어.’손건호가 옆에서 무진을 일깨웠다.“보스, 그때 그 남자배우 잊으셨습니까? 작은 사모님이 그런 유명 스타와도 알고 있는데, 곽연철과 알고 지내는 게 불가능하기만 할까요? 작은 사모님은 온통 비밀투성이입니다.”성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이후, 보스 강무진과 성연의 감정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본 뒤로 그도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근데 우리 보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인 게 분명해.’강무진의 곁을 가장 오래 지켰던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손건호의 말을 듣고 무진은 눈살만 찌푸린 채 별다른 말은 없이 그저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재차 당부했다.“그 일은 일단 신경 쓰지 마. 당장 눈앞의 이 프로젝트부터 딴 뒤에 다시 이야기하지.” ‘어쨌든 성연은 지금 자신의 곁에 있으니까.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다가가면 돼.’프로젝트도 당연히 잡아야 한다.손건
배우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의류 브랜드를 런칭한 소지한은 패션위크에 초대되어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그리고 매번 소지한 본인이 브랜드 홍보대사로 활동했다.천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스타의 브랜드파워는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팬들의 구매만으로도 출시되는 상품들은 폭발적인 히트 상품이 되기에 충분했다.또 소지한의 의류는 스타일과 품질이 모두 훌륭하다 보니 매번 품절이었다.이번에 새로 출시한 여성 의류는 소지한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에도 참여했다.원래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모델을 찾아 광고를 촬영할 계획이었지만, 소지한의 요구가 너무 까다로웠다.미리 섭외해둔 모델의 사생활이 너무 문란한데다 SNS에 올라와 있는 흑역사 영상도 너무 많아 그의 브랜드 이미지를 망가뜨릴까 기피한 까닭이다.여러 명 추천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걸칠 만한 이미지가 아니거나 신체 비율이 맞지 않다고 모두 거절한 상태.반나절 내내 이것저것 따지며 고르다 보니 발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적합한 모델을 찾지 못한 것이다.추천 들어온 모델들 모두 소지한의 마음에 전혀 차지 않았다.소지한이 성연에게 구구절절이 한참을 설명했지만, 사실, 요점은 항상 말 마지막에 있는 법.“송성연, 시간이 없어. 내 생각에, 내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그러니 제발 불쌍한 날 좀 구해 줘.”성연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거절했다.“싫어. 너도 알다시피 내 신분은 좀 특수해? 카메라에 노출되어서 하나 좋을 것 없어.”간신히 강무진의 의심에서 벗어났는데 말이지. 더 이상의 모험은 사양이었다.거짓말 하나를 하게 되면, 그걸 위해 언제나 무수한 거짓말로 가려야 한다. 비록 그녀의 신분 상, 부득이한 일이긴 하지만 정말 피곤한 일임에 틀림없다.이미 성연이 이런 대답을 하리라 짐작했던 소지한이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소지한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로 성연에게 제안했다.“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이미 생각해 뒀지. 가면을 써서 얼굴을 못 알아보게
갑작스러운 소지한의 어린애 떼쓰는 듯한 말에 어이없어 하던 성연이 결국 마지못해 동의했다. “알았어.”뜻을 이룬 소지한이 미소를 지었다.“그럼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거야. 내일 보자.”송성연이라면, 승낙한 이상 절대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승낙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결국, 눈앞의 사실이 증명한다. 성연은 여전히 상대방을 너무 생각해 준다.다음 날, 일요일. 아침을 먹은 무진은 출근 시간이 두세 시간 지났는데도 아직 나가지 않고 있었다.소파에 앉아 유유히 경제 신문을 뒤적거리는 게 꼭 성연과 함께 집에 있을 생각인 것 같다.그래서 성연이 외출할 핑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자 봉지를 들고 거실을 왔다갔다하던 성연은 짜증이 나서 물었다.“오늘 회사에 안 나가요?”이미 여러 번 물은 질문. 돌아온 대답은 모두 같았다.이번에는 무진이 고개를 들어 웃음기를 띈 눈으로 성연을 쳐다보았다. “왜? 마치 내가 나가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성연의 행동을 보고서도 무진은 줄곧 모른 척했다.성연이 속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 주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성연이 자신을 속이고 자신이 모르는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나빠졌다.성연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변명했다.“아니, 그냥 물어본 거예요.”이때 무진은 성연의 마음을 혼자 짐작했다.모처럼 집에서 쉬는 휴일이라 집에 있고 싶지 않은 모양이라고.‘하긴, 어린 애들이 노는 걸 좋아하는 게 당연한데, 자신이 무신경했던 거지.’일주일 내내 바쁘게 보내다 보니, 무진은 성연과 둘이서 이렇게 조용히 집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만 한 것이다. 일말의 평안을 누리며.그러나 성연이 다른 것을 하고 싶다면 성연의 뜻에 따르면 그뿐. ‘성연이 즐겁다면야 뭐.’무진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어디 놀러 가고 싶은 데 있어? 같이 가자.”성연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다.이미 계획을 다 세웠는데, 예상치 못하게 강무진이라는 이 고리가 빠져
일요일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그 일은 내팽개쳐 두었다.월요일에 잠시 짬을 낸 성연이 연씨 어르신에게 침을 놓기 위해 연씨 저택으로 갔다.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무척 피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씨 어르신의 약이 중단되어서는 안되니.연씨 어르신의 치료를 끝낸 후,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바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오후에는 서한기에게 가짜 조퇴서를 발급받아 병가를 낸 성연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소지한과 약속한 장소로 찾아갔다.일찍이 팀을 다 꾸려 놓은 소지한이 성연을 맞이한 후 바로 촬영현장으로 데리고 갔다.모두 소지한이 직접 양성하고 선발한 이들로 구성된 팀원들은 아주 프로페셔널해서 함부로 말을 유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성연을 최대한 존중하며 배려해 줄 터였다.촬영장소인 호텔 내부의 인테리어는 궁정 양식이었다.고풍스러우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듯한 클래식한 분위기의.소지한이라면 분명 이 호텔을 아예 전세 냈을 터.그래서인지 종업원 몇 명을 제외하고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성연은 먼저 분장실로 가서 화장을 받았다. 의자에 앉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소지한이 그런 성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겁내지 마. 화장은 끝냈으니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겨.”성연이 코웃음을 치며 소지한의 손을 탁 쳐서 걷어냈다.“내가 언제 겁난다고 했어?”소지한이 쿡 웃으며 말했다.“네, 네, 대단하십니다.”소지한과 오래동안 같이 작업해 왔던 주위 사람들 모두 성연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동시에 성연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오늘의 위치에 오른 소지한인만큼 드높은 자존심과 도도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누군가를 위해 허리를 굽히는 소지한은 본 적도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 저런 태도를 그냥 두고 본다고?호기심은 호기심일뿐. 다들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일만 열심히 할 뿐이다. 감히 입을 열어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화장을 끝낸 후, 오늘 입고 촬영할 의상들이 모두 성연의 사이즈에 맞추어 치수를 고쳤다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
WS그룹 대표 사무실.“보스, 보스가 안 계시던 요 며칠 동안 연계진은 파티를 크게 열었습니다. 북성의 명사들을 참석하도록 초청했는데 아주 떠들썩했습니다.”“뿐만 아니라 연계진은 비밀리에 우리 회사의 두 지역 본부장을 만났습니다. 유럽 본부장으로 새로 부임한 소태경과 북미 본부장 진상철입니다.”손건호도 유럽으로 따라갔지만, 북성에 배치된 모든 정보망은 끊임없이 계속 운영되고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모든 정보를 정리해서 가장 빠르게 무진에게 보고했다.소태경, 무진은 그 이름이 익숙했다. 소지연의 먼 사촌동생으로서 전에는 소지연을 도와서 유럽 업무를 처리했다. 소지연이 잘린 뒤에도 소태경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진상철, 이 사람도 오랜 지인이었다. 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수십 년 동안 친밀한 관계를 이어 왔다. 무진이 둘째, 셋째 일가를 정리할 때 진씨 가문은 더욱 확고부동하게 무진의 모든 결정을 지지하였다. 물론 진상철은 바로 진혜선의 오빠라는 또 하나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침착하고 업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북미 지역의 최근 2년 동안의 실적은 대단히 빠르게 늘어났다.연계진이 왜 하필 이 두 사람을 찾은 것인지 무진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소태경만 찾았다면 오히려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결국 앞서 소지연의 일로 격노한 무진은 소씨 가문에 아주 쓰라린 교훈을 안겨주었다. 소씨 가문의 일맥인 소태경이 소지연의 복수를 생각하거나, 쉽게 모반을 획책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러나 진상철 그는 무진보다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진상철은 이미 북미 지역에 7년을 머물렀지만 돌아온 적이 없었다. 평소에 화상회의 외에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고, 무진도 기본적으로 진상철의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업적을 올릴 생각만 하는 순수한 사람이었다.“그래서 네 말은 진상철이 최근에 귀국했다는 거야?” 이 핵심을 떠올린 무진의 입꼬리가 절로 떠올랐다.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습니다. 돌아온 지 며칠
북성, 이씨 가문의 저택.눈앞의 연계진을 살펴보는 이상효의 마음이 한바탕 복잡해졌다.유난히 얌전하게 홍차를 우려낸 소지연이 이상효 앞에 공손하게 차를 들고 왔고, 곧바로 손님에게도 차를 내주었다.마치 노예처럼 마음속으로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지만, 소지연은 발버둥칠 수도 없었다.입덧을 꾹 참은 채, 언제든지 차를 추가할 수 있도록 찻주전자를 들고 옆에서 조심스럽게 기다려야 했다.‘나를 이렇게 쓰라린 처지로 만든 건 바로 송성연이야.’ 소지연은 수없이 분노하고 저주하면서 성연이 일찍 죽기만을 기원했다.“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기회만 있다면 독사처럼 목덜미를 물어뜯겠어.”소지연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비뚤어졌다. 만약 뱃속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성연과 함께 죽을 생각도 수없이 많이 했다.지금 이상효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느꼈다. 당대에는 견줄 만한 바가 없던 결혼식에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강씨 가문의 넓은 인맥과 막강한 권세였다.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효가 강씨 가문을 번거롭게 만드는 걸 반대하고 나섰다.그러나 이상효는 강력한 적일수록 베어 먹는 이익은 더욱 감동적이라면서 반박하는 의견을 제기하였다.이씨 가문의 세력은 너무 작아서 이렇게 큰 운성시에서는 전혀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야심은 반드시 강력한 세력에 의지해야만 실현될 수 있었다.의심의 여지없이 지금의 연계진은 아주 좋은 기댈 만한 세력이다.연씨 가문이 이번에 남방에서 손을 썼는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연씨 가문이 이미 재정비하고 일어섰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주 명확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연씨 가문이 생각처럼 그렇게 약하지 않아서, 함께 협력하면 강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이상효에게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연계진이 그렇게 준수하고 깨끗하게 생기지 않았다면, 이상효는 좀 더 신임했을 것이다.“연계진 씨, 예전에 강씨 가문에 내분이 일어나서 죽기 살기로 싸웠을 때, 당신은 왜 그 기회를 틈타 뭔가
샤넬 가문의 보살핌은 꽤 괜찮았다.샤넬의 오빠는 심지어 저명한 의사들을 초청해서 무진과 성연에게 전신 검사까지 받게 했다.큰 문제가 없다는 게 확실해지자, 가주의 자격으로 며칠 더 묵으라고 열정적으로 초청했다.그러나 무진은 실혼전의 위협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성연을 데리고 서둘러 국내로 돌아가려고 했다. 자신의 본거지인 북성에서만 적의 일거수일투족을 쉽게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목현수는 샤넬과 함께 공항으로 가서 무진과 성연을 배웅했다.성연의 눈은 예리했다. 샤넬의 아랫배가 이미 좀 커진 것을 발견하자, 자기도 모르게 한쪽으로 데리고 간 뒤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정말 빠르네요. 얼마나 됐어요?”“얼마 안 됐어요. 한 달 남짓 밖에 안 됐어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성연 씨도 얼른 아기를 가지세요.”샤넬은 볼그스름하게 혈색이 좋아 보여서, 지금은 약간 탈바꿈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여자는 일단 생명을 잉태하면 순식간에 성숙해지는 모양이야.’“나도 아이를 좋아해서 빨리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결국 할머니 쪽에서도 재촉하시잖아요.” 성연은 가볍게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샤넬을 포옹했다.“자신을 잘 보살펴야 해요. 내가 의사라는 걸 잊지 말아요. 만약 모르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내게 물어보면 돼요.”샤넬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무진도 목현수와 악수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절친한 친구처럼 담소를 나누었다.앞으로 강씨 가문은 유럽에서 견고한 관계의 동맹 가문을 갖게 되었다. 무진은 귀국 후 유럽 시장을 다시 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샤넬 가문의 협조가 있으니 더 빛나는 성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전용기에서 성연이 잠시 쉬고 있을 때, 무진은 국내의 경제 뉴스를 보고 있었다.갑자기 뉴스 하나가 무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연운그룹 남부 지역 시장 진출 시작, 투자 총액 8조 원을 초과.]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이름에 무진은 경계심이 들었다.‘북방의 연씨 가문은 이미 몰락하지 않았어? 20
“그때 스승님께서 갑자기 저를 쫓아내려고 하셨기에, 나는 감정이 바로 무너졌어요. 울면서 무릎을 꿇고 스승님께 그러지 말라고 빌었지요.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그러나 스승님은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단지 내가 물건을 정리하고 출국할 수 있게 조치하셨어요. 또한 앞으로는 평생 스승님의 이름을 거론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요.”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목현수의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 아마도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억울하게 생각하는 듯했다.목현수의 설명을 끊지 않기 위해서 무진과 성연은 말없이 잠자코 있었다.“나중에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로 가게 되었어요. 그때는 정말 고통스러워서 이국땅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지요.”“하지만 스승님이 조치해 주신 사람이 줄곧 나를 보살펴 주었기에, 천천히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나서 배운 의술을 사용해서 가난하고 낙후된 마을 사람들을 돕고 치료하기 시작했어요.”“몇 년 후에 나는 스승님이 왜 나를 아프리카로 보내셨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내가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러신 거예요!”목현수의 눈빛은 서서히 고무된 기색을 담고 있었다.그 후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목현수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목현수의 이름을 알게 된 유럽의 부유한 사업가들도 그를 유럽으로 초청해서 환자를 치료하게 했다.이를 통해서 목현수는 많은 돈을 벌었고 유럽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사문에서 쫓겨난 지 7년이 지난 뒤 마침 19세가 된 목현수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스승님께서 친필로 쓰신 편지였다. 일년 내내 스승님의 처방전을 보고 있었기에 사부님의 필체임을 알 수 있었다.사부님은 편지에서 마침내 예전의 원수를 찾았다고 언급하면서 스승님의 여생의 신념은 복수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사문에서 축출한 것은 목현수를 잘 보호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을 뿐이라고 언급했다.그 편지를 본 목현수는 비통하게 울었다. 스승님이 자신에게 남긴 것은 오직 의술로 병을 치료해서 사람을 구하
도착한 목현수는 성연과 무진에 정이 두터운 모습이었다.“너희들 괜찮아? 그 실혼전의 캐서린은 정말 미친 X이야!”무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실혼전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성연도 목현수를 보면서 캐서린이 스승과의 관계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연이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말한 적이 없었기에.무진에게도 그렇게 오랫동안 숨겼다가, 결혼 후에 마음이 안정된 뒤에야 비로소 털어놓았다.‘캐서린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을 알게 된 걸까?’“실혼전은 유럽에서 강력한 비밀 조직으로, 조직의 인원은 적지만 각자의 실력은 아주 강해요.”“유럽에서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암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모두 실혼전에서 한 거예요. 그들은 심지어 일부 국가의 수사기관에서 추격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체포되지 않았어요.”목현수의 표정은 점점 가라앉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성연이는 내가 너하고 유럽에서 만났을 때를 기억할 거야. 사실 그때는 내가 바로 실혼전의 단서를 쫓고 있었을 때야.”“너한테 찾아온 그 여자는 MS 가문에 속할 뿐만 아니라 실혼전의 사람이기도 해. 그 여자는 야누스 같은 여자야. 수시로 정보를 팔아 큰 이윤을 얻으면서 가끔 손을 쓰기도 해.”목현수의 이 말을 듣자, 성연은 그때 자신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깨닫게 되었다.무진은 또다시 놀랐다.“성연아, 언제 있었던 일이야?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성연이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처음 유럽에 도착했을 때였어요. 그때 나는 비밀이 너무 많아서 무진 씨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무진씨가 걱정할까 봐 염려했기 때문이에요!”“그렇지만 절대 다음에는 그러면 안 돼!” 무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강력한 적이 성연이를 바로 찾지 못해서 다행이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을 거야.’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목현수에게 계속 말하라고 했다. ‘캐서린이 도대체 어떤 신분인지 정말 궁
예중천, 그 이름은 정말 무진을 놀라게 했다.북쪽 연경시의 최강 가문인 예씨 가문의 천재, 예중천. 어렸을 때부터 전설적인 인물로 6살 때부터 이미 시를 지었고, 13살 때는 전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진학했다. 나중에는 유학을 하기 위해서 출국했다.귀국한 뒤에는 한손으로 강력한 기업을 세워서 예씨 가문이 정상에 오르도록 이끌었다. 그 시기에 강씨 가문은 중간 규모의 가문일 뿐이었고, 무진도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다.무진은 예중천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다. 자신이 아직 소년일 때, 아버지 주변의 많은 친구들은 항상 ‘예중천이 살아 있다’는 말로 무진을 평가했다. 그때 무진은 전혀 모르면서도 다른 사람의 대타처럼 말한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승복하지 않았다.바로 그 전설 속의 인물이 뜻밖에도 ‘신의’고학중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예전에 예씨 가문의 몰락은 마치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 같았어.’‘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랐어. 다만 거대했던 가문이 빠르게 추락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지.’‘예씨 가문의 후손들은 모두 마치 인간 세상에서 증발한 것처럼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어.’‘이런 사람이 내 아내와 관계를 맺었다니.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성연아, 빨리 말해줘. 애초에 어떻게 예중천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 거야? 그가 아직 살아 있다니!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야!”무진은 마음속으로 몹시 흥분했다.성연은 추억에 잠겨 있어서 남편이 왜 이렇게 흥분했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저는 여덟 살 되던 해에 스승님을 만났어요. 그때 날은 어두컴컴하고 비가 많이 내렸는데, 언덕 위에서 피와 진흙 범벅이 된 스승님을 발견했어요. 저는 정말 무서웠지만 스승님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그래서 마을 사람을 찾아서 스승님을 집안으로 옮기도록 도왔지요. 후에 스승님은 우리 집에 머무르면서 의술로 자신의 병을 치료하셨고, 제게도 의술을 가르쳐 주셨어요. 또 제게 여러 고전 명작들을 읽게 하셨고 정식으로 저를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