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이 차에 오르자 성연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멀리 떨어진 거리 때문에 단편적인 단어 한 두 개만 들렸을 뿐, 무진이 저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구체적인 말은 듣지 못했다.그러나 저 두 사람의 창백하다 못해 얼어붙어 보기 흉한 안색을 보니,확실히, 무진에게서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한 듯했다.성연은 무진을 한 번 쳐다보았다.무진은 성연이 저 두 사람 때문에 걱정하는 줄 알고 위로하며 말했다.“괜찮아, 앞으로는 상대하기 싫으면 하지 마.”말인즉슨, 앞으로 저 두 사람과 관련한 일은 모두 그에게 맡기면 된다는 뜻.무진의 말을 알아들은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닥 흥이 일지 않는 모습으로.솔직히 성연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육 두 사람을 상대하면서 뭔가 가슴을 꽉 누르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성연은 자신의 멘탈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고 자신해왔다.그런데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 성연 또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어찌 되었든 어느 정도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성연은 창밖만 쳐다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평소 밝은 모습으로 재잘거리던 여자애가 돌연 아무 말없이 조용하니 정말 보기 힘들었다.무진도 아무 말없이 그저 성연의 옆에 함께 앉아 있을 뿐.송종철과 진미선, 두 사람이 귀찮게 하는 바람에 성연과 무진이 집에 도착한 시간은 꽤 늦어 있었다. 집사가 이미 저녁식사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지금 무진은 모든 걸 성연의 취향에 맞추었다.식탁 위에 놓인 것들 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러나 앞에 있는 음식을 보면서 조금 전 학교 앞에서 만난 두 사람이 다시 떠오른 성연은 갑자기 입맛이 없어졌다.음식을 조금 집어 자신의 접시에 담은 뒤 무심코 휘적거리기만 할 뿐.겨우 반 공기의 밥을 몇 입 먹는 듯하더니 결국 수저를 내려놓은 뒤에 소파에 가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차에서부터 지금까지 성연의 기분이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무진은 알아차렸다.성연이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사실 결국
평소에 성연연은 야식을 먹는 습관이 없었다.그래서 집사는 보통 자신을 위한 야식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오늘 저녁에 자신이 먹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어 서류를 내려놓은 채 자신과 함께 게임을 즐기던 무진을 떠올린 성연은 자연히 깨달았다. 이 야식을 무진이 준비시킨 거라는 사실을.무진의 이러한 친절은 성연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따뜻한 기운이 마음속으로 훅 밀려오자 갑자기 그렇게 힘들지도 않은 듯했다.옆으로 고개를 돌린 성연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무진에게 말했다.“고마워요.”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천만에. 앞으로 일이 있을 때는 속에 담고 있지만 말고 말해. 내가 같이 해결해 줄 테니.”“알았어요.” 성연은 가슴이 뭉클했다.예전엔 언제나 그녀 혼자였다.지금 강무진은 자신에게도 의지할 사람이 생겼구나, 라고 느끼게 했다.저녁을 먹은 무진이었으나 성연과 함께 야식을 먹었다.배불리 먹고 마신 성연은 다시 기운을 회복했다. 두 사람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은 생각하지 않았다.피곤한 하루였던 지라, 목욕을 하고 나온 성연은 침대에 엎드리자 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밤새 꿈도 꾸지 않은 채 아주 푹 깊이 잘 잤다.다음 날은 주말이라 성연은 학교에 갈 필요도, 연습할 필요도 없었다.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집안에서 알람도 주말에는 자동으로 멈추며 누구도 성연을 방해하지 않았다.성연은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계속 잤더니 엄청 개운함을 느꼈다.일어났을 때, 무진은 이미 집에 없었다. 아마 일이 있어서 회사에 갔을 터.성연은 신경 쓰지 않고 기지개를 켠 뒤 스스로 일어났다.아침을 먹자 좀 심심해졌다.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 질리겠지.주말 시간을 게임으로만 보내기엔 또 너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무진이 집에 없으니 더 재미가 없게 느껴졌다.집에서 아침 시간 반나절을 빈둥거리다 심심해진 성연은 결국 할머니 안금여를 보러 고택으로 갔다.할머니는 잘 회복되고 있었다. 매일 성연이 이른 방법에 따라 재활치료를 진행한 까닭에
지금 성연은 화장실에서 통화를 하는 중이다.조금 전 휴대폰이 진동하자 핑계를 대고 화장실로 건너온 것이다.각종 장식물과 첨단 기술로 인테리어 된 고택은 방음 효과가 아주 뛰어났다.게다가 성연이 2층에 올라와서 통화를 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듣기는 더욱 힘들 터였다.30초 정도 기다렸다가 지나가지 이가 없는 것이 확실해진 후에야 성연이 입을 열었다.“이 일은 곽대표님이 알아서 하세요. 사업성이 좋다면 협력할 수 없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좋지 않다면 끝입니다.”성연은 송종철 일가를 대하는 것처럼 매정하게 진미선을 대하지는 않았다.적어도 과거 진미선은 자신에게 생활비를 조금씩 보내줄 줄은 알았으니까.게다가 진미선은 외할머니의 친딸이었기에 외할머니의 얼굴을 봐서 한쪽 그물을 열어 준 것이다.다만, 성연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입 밖에 꺼내는 순간, 욕심이 끝도 한도 없을 사람들이었으니까.진미선 쪽이 착실하게만 한다면 성연도 무사안일한 삶을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성연을 잘 알고 있던 곽연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진미선의 일은 그쯤 말한 뒤에 곽연철이 화제를 돌렸다.“아가씨,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말하세요.” 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언제나 신중한 곽연철인지라 일을 안심하고 그에게 모든 일을 맡길 수 있었다.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연히 곽연철이 잘 알고 있을 테니.“그게 최근에 한 사업을 놓고 강씨 집안 WS그룹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대형 전자과학기술 사업으로 정부에서 모든 권한을 위탁할 업체를 선정한다고 해서 국내 많은 대형 기업들이 모두 달라붙어 경쟁 중입니다. 보스, 이 건에 우리도 참여해야 합니까? WS그룹도 아마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곽연철은 성연이 강무진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만약 공공연히 WS그룹과 맞서다가 이후 성연의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좀 좋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곽연철은 성연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다.
WS그룹.무진 또한 마침 비서 손건호와 이 프로젝트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눈앞에 서류 한 무더기가 놓여 있었다.공개입찰 회사들에 관한 기본 자료와 이번 프로젝트에 관한 브리핑 자료들이었다.손건호가 눈앞의 한 자료를 가리키며 말했다.“보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경쟁자는 바로 제왕그룹입니다. 실력은 비록 WS그룹 보다 못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제 국내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곽연철 대표는 젊은 세대의 선두주자라고 할 만합니다.”곽연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걸출한 인재로 장기적인 투자 안목을 가지고 있는, 매우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만약 협력 파트너라면 그들은 분명 매우 기쁜 마음으로 협력할 것이라 분명했다.다만 아쉽게도 아직 협력도 해보지 않았는데 경쟁자가 되어버렸다.당초 손건호는 회사의 고위급 임원을 물색할 때, 곽연철을 끌어들일 생각도 했었다.뒤에 여러 가지 이유로 흐지부지되었지만.짧디짧은 기간에 곽연철이 이런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으리라 누가 알았겠는가?곽연철의 수단은 정말 훌륭했다.무진은 손건호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자신감 있는 얼굴로 말했다.“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우리 WS 그룹에 떨어질 수밖에 없어.”곽연철이 뛰어난 것은 분명했다.그러나 북성에 뿌리를 두고 100년의 역사를 지닌 WS 그룹에 비한다면, 제왕그룹이라는 신예는 역시 눈에 차지 않았다.무진이 나서서 원한 것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맞은편에 어떤 강력한 적수가 있다 해도, 무진은 이 프로젝트를 꼭 따 내고 말리라며 다짐했다.자기 보스의 실력을 생각한 손건호 또한 웃었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두려울 게 없었다.하지만 만전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 법. 손건호 역시 충분한 준비를 할 것이다.결국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만큼 정해진 것 또한 아무 것도 없으니.비록 그들이 보기에 이 프로젝트는 이미 WS그룹에 넘어온 것이 확실해 보였지만 말이다.손건호는 항상 신중했다.“당분간
마지막 말을 할 때 손건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이전에 성연과 막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공적인 일은 원칙적으로 처리해 왔었다.그러나 지금, 사모님에 대한 보스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의식한 손건호는 그들 사이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까 봐 감히 말하기도 힘들었다.특히 성연과 다른 이성에 관한 것이라면 더…….입 밖으로 꺼내기 전, 결국 괴로운 사람이 자신이 되지 않도록 좀 더 고려해야 했다.눈썹을 찡그린 채 안색이 어두워진 무진이 다시 물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 성연이 어떻게 제왕그룹 사람들과 알 수 있었지?”북성에서 제왕그룹의 위치는 결코 낮지 않았다.이제 갓 성인이 된 소녀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기업 대표나 되는 사람과 관계가 있을 리가.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무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손건호는 보스가 성연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모습을 두고 보는 게 힘들었다.사모님의 얘기만 나오면 보스는 판단력을 잃는 것 같았다.‘역시, 사랑이란 건 정말 종잡을 수 없어.’손건호가 옆에서 무진을 일깨웠다.“보스, 그때 그 남자배우 잊으셨습니까? 작은 사모님이 그런 유명 스타와도 알고 있는데, 곽연철과 알고 지내는 게 불가능하기만 할까요? 작은 사모님은 온통 비밀투성이입니다.”성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이후, 보스 강무진과 성연의 감정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본 뒤로 그도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근데 우리 보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인 게 분명해.’강무진의 곁을 가장 오래 지켰던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손건호의 말을 듣고 무진은 눈살만 찌푸린 채 별다른 말은 없이 그저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재차 당부했다.“그 일은 일단 신경 쓰지 마. 당장 눈앞의 이 프로젝트부터 딴 뒤에 다시 이야기하지.” ‘어쨌든 성연은 지금 자신의 곁에 있으니까.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다가가면 돼.’프로젝트도 당연히 잡아야 한다.손건
배우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의류 브랜드를 런칭한 소지한은 패션위크에 초대되어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그리고 매번 소지한 본인이 브랜드 홍보대사로 활동했다.천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스타의 브랜드파워는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팬들의 구매만으로도 출시되는 상품들은 폭발적인 히트 상품이 되기에 충분했다.또 소지한의 의류는 스타일과 품질이 모두 훌륭하다 보니 매번 품절이었다.이번에 새로 출시한 여성 의류는 소지한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에도 참여했다.원래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모델을 찾아 광고를 촬영할 계획이었지만, 소지한의 요구가 너무 까다로웠다.미리 섭외해둔 모델의 사생활이 너무 문란한데다 SNS에 올라와 있는 흑역사 영상도 너무 많아 그의 브랜드 이미지를 망가뜨릴까 기피한 까닭이다.여러 명 추천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걸칠 만한 이미지가 아니거나 신체 비율이 맞지 않다고 모두 거절한 상태.반나절 내내 이것저것 따지며 고르다 보니 발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적합한 모델을 찾지 못한 것이다.추천 들어온 모델들 모두 소지한의 마음에 전혀 차지 않았다.소지한이 성연에게 구구절절이 한참을 설명했지만, 사실, 요점은 항상 말 마지막에 있는 법.“송성연, 시간이 없어. 내 생각에, 내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그러니 제발 불쌍한 날 좀 구해 줘.”성연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거절했다.“싫어. 너도 알다시피 내 신분은 좀 특수해? 카메라에 노출되어서 하나 좋을 것 없어.”간신히 강무진의 의심에서 벗어났는데 말이지. 더 이상의 모험은 사양이었다.거짓말 하나를 하게 되면, 그걸 위해 언제나 무수한 거짓말로 가려야 한다. 비록 그녀의 신분 상, 부득이한 일이긴 하지만 정말 피곤한 일임에 틀림없다.이미 성연이 이런 대답을 하리라 짐작했던 소지한이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소지한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로 성연에게 제안했다.“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이미 생각해 뒀지. 가면을 써서 얼굴을 못 알아보게
갑작스러운 소지한의 어린애 떼쓰는 듯한 말에 어이없어 하던 성연이 결국 마지못해 동의했다. “알았어.”뜻을 이룬 소지한이 미소를 지었다.“그럼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거야. 내일 보자.”송성연이라면, 승낙한 이상 절대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승낙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결국, 눈앞의 사실이 증명한다. 성연은 여전히 상대방을 너무 생각해 준다.다음 날, 일요일. 아침을 먹은 무진은 출근 시간이 두세 시간 지났는데도 아직 나가지 않고 있었다.소파에 앉아 유유히 경제 신문을 뒤적거리는 게 꼭 성연과 함께 집에 있을 생각인 것 같다.그래서 성연이 외출할 핑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자 봉지를 들고 거실을 왔다갔다하던 성연은 짜증이 나서 물었다.“오늘 회사에 안 나가요?”이미 여러 번 물은 질문. 돌아온 대답은 모두 같았다.이번에는 무진이 고개를 들어 웃음기를 띈 눈으로 성연을 쳐다보았다. “왜? 마치 내가 나가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성연의 행동을 보고서도 무진은 줄곧 모른 척했다.성연이 속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 주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성연이 자신을 속이고 자신이 모르는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나빠졌다.성연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변명했다.“아니, 그냥 물어본 거예요.”이때 무진은 성연의 마음을 혼자 짐작했다.모처럼 집에서 쉬는 휴일이라 집에 있고 싶지 않은 모양이라고.‘하긴, 어린 애들이 노는 걸 좋아하는 게 당연한데, 자신이 무신경했던 거지.’일주일 내내 바쁘게 보내다 보니, 무진은 성연과 둘이서 이렇게 조용히 집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만 한 것이다. 일말의 평안을 누리며.그러나 성연이 다른 것을 하고 싶다면 성연의 뜻에 따르면 그뿐. ‘성연이 즐겁다면야 뭐.’무진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어디 놀러 가고 싶은 데 있어? 같이 가자.”성연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다.이미 계획을 다 세웠는데, 예상치 못하게 강무진이라는 이 고리가 빠져
일요일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그 일은 내팽개쳐 두었다.월요일에 잠시 짬을 낸 성연이 연씨 어르신에게 침을 놓기 위해 연씨 저택으로 갔다.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무척 피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씨 어르신의 약이 중단되어서는 안되니.연씨 어르신의 치료를 끝낸 후,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바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오후에는 서한기에게 가짜 조퇴서를 발급받아 병가를 낸 성연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소지한과 약속한 장소로 찾아갔다.일찍이 팀을 다 꾸려 놓은 소지한이 성연을 맞이한 후 바로 촬영현장으로 데리고 갔다.모두 소지한이 직접 양성하고 선발한 이들로 구성된 팀원들은 아주 프로페셔널해서 함부로 말을 유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성연을 최대한 존중하며 배려해 줄 터였다.촬영장소인 호텔 내부의 인테리어는 궁정 양식이었다.고풍스러우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듯한 클래식한 분위기의.소지한이라면 분명 이 호텔을 아예 전세 냈을 터.그래서인지 종업원 몇 명을 제외하고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성연은 먼저 분장실로 가서 화장을 받았다. 의자에 앉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소지한이 그런 성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겁내지 마. 화장은 끝냈으니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겨.”성연이 코웃음을 치며 소지한의 손을 탁 쳐서 걷어냈다.“내가 언제 겁난다고 했어?”소지한이 쿡 웃으며 말했다.“네, 네, 대단하십니다.”소지한과 오래동안 같이 작업해 왔던 주위 사람들 모두 성연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동시에 성연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오늘의 위치에 오른 소지한인만큼 드높은 자존심과 도도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누군가를 위해 허리를 굽히는 소지한은 본 적도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 저런 태도를 그냥 두고 본다고?호기심은 호기심일뿐. 다들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일만 열심히 할 뿐이다. 감히 입을 열어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화장을 끝낸 후, 오늘 입고 촬영할 의상들이 모두 성연의 사이즈에 맞추어 치수를 고쳤다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