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집안일을 무진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과거는 너무 엉망이었다.그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그러나 무진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성연의 학교 주변에 배치해 두었던 사람들의 보고에 따르면, 저 두 사람이 성연을 찾아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그는 지금까지 이처럼 후안무치한 부모를 본 적이 없었다.비록 일찍 세상을 떠나시기는 했지만, 자신의 부모님은 살아생전 자신에게 더 없는 애정을 쏟으시고 자신을 보호해 주셨었다.성연의 부모라는 저들은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을 정도였다!무진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지만 멍하니 있던 성연은 막지 못했다.무진이 매우 예의 바른 태도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물었다.“일부러 여기까지 성연을 찾으러 오신 모양인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진미선의 눈에 강무진의 온몸에서 귀티가 흐르는 게 보였다. 만만히 대할 대상도, 절대 실해서도 안될 사람이었다. 그러니 강무진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강무진의 비위를 잘 맞춘다면 앞으로 합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진미선은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쇼핑을 하며 성연이에게 어울릴 만한 옷 몇 벌을 샀다가 직접 주러 왔어요. 구두와 가방도 모두 내가 직접 고른 것이에요. 성연이에게 어울릴 만한 걸로.”한 눈에 봐도 진미선은 비교적 처신을 잘했다. 적어도 무진이 앞에서 가장할 줄 알았다.그러나 송종철은 그렇게 비위가 좋지 않았다.한창 화가 나 있던 그는 입에서 나오는 말도 충동적이었다.송종철이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입을 열었다.“강 대표, 결혼 지참금을 성연이에게 주었다던데, 사실입니까?”송종철의 다급한 모습을 보던 무진의 눈에 냉소가 떠올랐다.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성연이가 원해서 제가 주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성연이의 돈이기도 하지요.”송종철은 마음이 다급했지만 무진의 앞에서 함부로 소란을 떨지는 못했다.눈만 부릅뜬 채 말했다.“당신들 마음대로 성연이 돈으로 할 수 있습니까
무진이 차에 오르자 성연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멀리 떨어진 거리 때문에 단편적인 단어 한 두 개만 들렸을 뿐, 무진이 저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구체적인 말은 듣지 못했다.그러나 저 두 사람의 창백하다 못해 얼어붙어 보기 흉한 안색을 보니,확실히, 무진에게서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한 듯했다.성연은 무진을 한 번 쳐다보았다.무진은 성연이 저 두 사람 때문에 걱정하는 줄 알고 위로하며 말했다.“괜찮아, 앞으로는 상대하기 싫으면 하지 마.”말인즉슨, 앞으로 저 두 사람과 관련한 일은 모두 그에게 맡기면 된다는 뜻.무진의 말을 알아들은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닥 흥이 일지 않는 모습으로.솔직히 성연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육 두 사람을 상대하면서 뭔가 가슴을 꽉 누르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성연은 자신의 멘탈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고 자신해왔다.그런데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 성연 또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어찌 되었든 어느 정도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성연은 창밖만 쳐다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평소 밝은 모습으로 재잘거리던 여자애가 돌연 아무 말없이 조용하니 정말 보기 힘들었다.무진도 아무 말없이 그저 성연의 옆에 함께 앉아 있을 뿐.송종철과 진미선, 두 사람이 귀찮게 하는 바람에 성연과 무진이 집에 도착한 시간은 꽤 늦어 있었다. 집사가 이미 저녁식사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지금 무진은 모든 걸 성연의 취향에 맞추었다.식탁 위에 놓인 것들 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러나 앞에 있는 음식을 보면서 조금 전 학교 앞에서 만난 두 사람이 다시 떠오른 성연은 갑자기 입맛이 없어졌다.음식을 조금 집어 자신의 접시에 담은 뒤 무심코 휘적거리기만 할 뿐.겨우 반 공기의 밥을 몇 입 먹는 듯하더니 결국 수저를 내려놓은 뒤에 소파에 가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차에서부터 지금까지 성연의 기분이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무진은 알아차렸다.성연이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사실 결국
평소에 성연연은 야식을 먹는 습관이 없었다.그래서 집사는 보통 자신을 위한 야식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오늘 저녁에 자신이 먹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어 서류를 내려놓은 채 자신과 함께 게임을 즐기던 무진을 떠올린 성연은 자연히 깨달았다. 이 야식을 무진이 준비시킨 거라는 사실을.무진의 이러한 친절은 성연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따뜻한 기운이 마음속으로 훅 밀려오자 갑자기 그렇게 힘들지도 않은 듯했다.옆으로 고개를 돌린 성연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무진에게 말했다.“고마워요.”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천만에. 앞으로 일이 있을 때는 속에 담고 있지만 말고 말해. 내가 같이 해결해 줄 테니.”“알았어요.” 성연은 가슴이 뭉클했다.예전엔 언제나 그녀 혼자였다.지금 강무진은 자신에게도 의지할 사람이 생겼구나, 라고 느끼게 했다.저녁을 먹은 무진이었으나 성연과 함께 야식을 먹었다.배불리 먹고 마신 성연은 다시 기운을 회복했다. 두 사람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은 생각하지 않았다.피곤한 하루였던 지라, 목욕을 하고 나온 성연은 침대에 엎드리자 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밤새 꿈도 꾸지 않은 채 아주 푹 깊이 잘 잤다.다음 날은 주말이라 성연은 학교에 갈 필요도, 연습할 필요도 없었다.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집안에서 알람도 주말에는 자동으로 멈추며 누구도 성연을 방해하지 않았다.성연은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계속 잤더니 엄청 개운함을 느꼈다.일어났을 때, 무진은 이미 집에 없었다. 아마 일이 있어서 회사에 갔을 터.성연은 신경 쓰지 않고 기지개를 켠 뒤 스스로 일어났다.아침을 먹자 좀 심심해졌다.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 질리겠지.주말 시간을 게임으로만 보내기엔 또 너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무진이 집에 없으니 더 재미가 없게 느껴졌다.집에서 아침 시간 반나절을 빈둥거리다 심심해진 성연은 결국 할머니 안금여를 보러 고택으로 갔다.할머니는 잘 회복되고 있었다. 매일 성연이 이른 방법에 따라 재활치료를 진행한 까닭에
지금 성연은 화장실에서 통화를 하는 중이다.조금 전 휴대폰이 진동하자 핑계를 대고 화장실로 건너온 것이다.각종 장식물과 첨단 기술로 인테리어 된 고택은 방음 효과가 아주 뛰어났다.게다가 성연이 2층에 올라와서 통화를 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듣기는 더욱 힘들 터였다.30초 정도 기다렸다가 지나가지 이가 없는 것이 확실해진 후에야 성연이 입을 열었다.“이 일은 곽대표님이 알아서 하세요. 사업성이 좋다면 협력할 수 없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좋지 않다면 끝입니다.”성연은 송종철 일가를 대하는 것처럼 매정하게 진미선을 대하지는 않았다.적어도 과거 진미선은 자신에게 생활비를 조금씩 보내줄 줄은 알았으니까.게다가 진미선은 외할머니의 친딸이었기에 외할머니의 얼굴을 봐서 한쪽 그물을 열어 준 것이다.다만, 성연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입 밖에 꺼내는 순간, 욕심이 끝도 한도 없을 사람들이었으니까.진미선 쪽이 착실하게만 한다면 성연도 무사안일한 삶을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성연을 잘 알고 있던 곽연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진미선의 일은 그쯤 말한 뒤에 곽연철이 화제를 돌렸다.“아가씨,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말하세요.” 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언제나 신중한 곽연철인지라 일을 안심하고 그에게 모든 일을 맡길 수 있었다.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연히 곽연철이 잘 알고 있을 테니.“그게 최근에 한 사업을 놓고 강씨 집안 WS그룹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대형 전자과학기술 사업으로 정부에서 모든 권한을 위탁할 업체를 선정한다고 해서 국내 많은 대형 기업들이 모두 달라붙어 경쟁 중입니다. 보스, 이 건에 우리도 참여해야 합니까? WS그룹도 아마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곽연철은 성연이 강무진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만약 공공연히 WS그룹과 맞서다가 이후 성연의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좀 좋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곽연철은 성연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다.
WS그룹.무진 또한 마침 비서 손건호와 이 프로젝트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눈앞에 서류 한 무더기가 놓여 있었다.공개입찰 회사들에 관한 기본 자료와 이번 프로젝트에 관한 브리핑 자료들이었다.손건호가 눈앞의 한 자료를 가리키며 말했다.“보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경쟁자는 바로 제왕그룹입니다. 실력은 비록 WS그룹 보다 못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제 국내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곽연철 대표는 젊은 세대의 선두주자라고 할 만합니다.”곽연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걸출한 인재로 장기적인 투자 안목을 가지고 있는, 매우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만약 협력 파트너라면 그들은 분명 매우 기쁜 마음으로 협력할 것이라 분명했다.다만 아쉽게도 아직 협력도 해보지 않았는데 경쟁자가 되어버렸다.당초 손건호는 회사의 고위급 임원을 물색할 때, 곽연철을 끌어들일 생각도 했었다.뒤에 여러 가지 이유로 흐지부지되었지만.짧디짧은 기간에 곽연철이 이런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으리라 누가 알았겠는가?곽연철의 수단은 정말 훌륭했다.무진은 손건호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자신감 있는 얼굴로 말했다.“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우리 WS 그룹에 떨어질 수밖에 없어.”곽연철이 뛰어난 것은 분명했다.그러나 북성에 뿌리를 두고 100년의 역사를 지닌 WS 그룹에 비한다면, 제왕그룹이라는 신예는 역시 눈에 차지 않았다.무진이 나서서 원한 것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맞은편에 어떤 강력한 적수가 있다 해도, 무진은 이 프로젝트를 꼭 따 내고 말리라며 다짐했다.자기 보스의 실력을 생각한 손건호 또한 웃었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두려울 게 없었다.하지만 만전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 법. 손건호 역시 충분한 준비를 할 것이다.결국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만큼 정해진 것 또한 아무 것도 없으니.비록 그들이 보기에 이 프로젝트는 이미 WS그룹에 넘어온 것이 확실해 보였지만 말이다.손건호는 항상 신중했다.“당분간
마지막 말을 할 때 손건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이전에 성연과 막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공적인 일은 원칙적으로 처리해 왔었다.그러나 지금, 사모님에 대한 보스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의식한 손건호는 그들 사이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까 봐 감히 말하기도 힘들었다.특히 성연과 다른 이성에 관한 것이라면 더…….입 밖으로 꺼내기 전, 결국 괴로운 사람이 자신이 되지 않도록 좀 더 고려해야 했다.눈썹을 찡그린 채 안색이 어두워진 무진이 다시 물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 성연이 어떻게 제왕그룹 사람들과 알 수 있었지?”북성에서 제왕그룹의 위치는 결코 낮지 않았다.이제 갓 성인이 된 소녀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기업 대표나 되는 사람과 관계가 있을 리가.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무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손건호는 보스가 성연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모습을 두고 보는 게 힘들었다.사모님의 얘기만 나오면 보스는 판단력을 잃는 것 같았다.‘역시, 사랑이란 건 정말 종잡을 수 없어.’손건호가 옆에서 무진을 일깨웠다.“보스, 그때 그 남자배우 잊으셨습니까? 작은 사모님이 그런 유명 스타와도 알고 있는데, 곽연철과 알고 지내는 게 불가능하기만 할까요? 작은 사모님은 온통 비밀투성이입니다.”성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이후, 보스 강무진과 성연의 감정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본 뒤로 그도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근데 우리 보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인 게 분명해.’강무진의 곁을 가장 오래 지켰던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손건호의 말을 듣고 무진은 눈살만 찌푸린 채 별다른 말은 없이 그저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재차 당부했다.“그 일은 일단 신경 쓰지 마. 당장 눈앞의 이 프로젝트부터 딴 뒤에 다시 이야기하지.” ‘어쨌든 성연은 지금 자신의 곁에 있으니까.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다가가면 돼.’프로젝트도 당연히 잡아야 한다.손건
배우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의류 브랜드를 런칭한 소지한은 패션위크에 초대되어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그리고 매번 소지한 본인이 브랜드 홍보대사로 활동했다.천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스타의 브랜드파워는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팬들의 구매만으로도 출시되는 상품들은 폭발적인 히트 상품이 되기에 충분했다.또 소지한의 의류는 스타일과 품질이 모두 훌륭하다 보니 매번 품절이었다.이번에 새로 출시한 여성 의류는 소지한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에도 참여했다.원래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모델을 찾아 광고를 촬영할 계획이었지만, 소지한의 요구가 너무 까다로웠다.미리 섭외해둔 모델의 사생활이 너무 문란한데다 SNS에 올라와 있는 흑역사 영상도 너무 많아 그의 브랜드 이미지를 망가뜨릴까 기피한 까닭이다.여러 명 추천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걸칠 만한 이미지가 아니거나 신체 비율이 맞지 않다고 모두 거절한 상태.반나절 내내 이것저것 따지며 고르다 보니 발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적합한 모델을 찾지 못한 것이다.추천 들어온 모델들 모두 소지한의 마음에 전혀 차지 않았다.소지한이 성연에게 구구절절이 한참을 설명했지만, 사실, 요점은 항상 말 마지막에 있는 법.“송성연, 시간이 없어. 내 생각에, 내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그러니 제발 불쌍한 날 좀 구해 줘.”성연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거절했다.“싫어. 너도 알다시피 내 신분은 좀 특수해? 카메라에 노출되어서 하나 좋을 것 없어.”간신히 강무진의 의심에서 벗어났는데 말이지. 더 이상의 모험은 사양이었다.거짓말 하나를 하게 되면, 그걸 위해 언제나 무수한 거짓말로 가려야 한다. 비록 그녀의 신분 상, 부득이한 일이긴 하지만 정말 피곤한 일임에 틀림없다.이미 성연이 이런 대답을 하리라 짐작했던 소지한이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소지한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로 성연에게 제안했다.“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이미 생각해 뒀지. 가면을 써서 얼굴을 못 알아보게
갑작스러운 소지한의 어린애 떼쓰는 듯한 말에 어이없어 하던 성연이 결국 마지못해 동의했다. “알았어.”뜻을 이룬 소지한이 미소를 지었다.“그럼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거야. 내일 보자.”송성연이라면, 승낙한 이상 절대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승낙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결국, 눈앞의 사실이 증명한다. 성연은 여전히 상대방을 너무 생각해 준다.다음 날, 일요일. 아침을 먹은 무진은 출근 시간이 두세 시간 지났는데도 아직 나가지 않고 있었다.소파에 앉아 유유히 경제 신문을 뒤적거리는 게 꼭 성연과 함께 집에 있을 생각인 것 같다.그래서 성연이 외출할 핑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자 봉지를 들고 거실을 왔다갔다하던 성연은 짜증이 나서 물었다.“오늘 회사에 안 나가요?”이미 여러 번 물은 질문. 돌아온 대답은 모두 같았다.이번에는 무진이 고개를 들어 웃음기를 띈 눈으로 성연을 쳐다보았다. “왜? 마치 내가 나가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성연의 행동을 보고서도 무진은 줄곧 모른 척했다.성연이 속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 주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성연이 자신을 속이고 자신이 모르는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나빠졌다.성연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변명했다.“아니, 그냥 물어본 거예요.”이때 무진은 성연의 마음을 혼자 짐작했다.모처럼 집에서 쉬는 휴일이라 집에 있고 싶지 않은 모양이라고.‘하긴, 어린 애들이 노는 걸 좋아하는 게 당연한데, 자신이 무신경했던 거지.’일주일 내내 바쁘게 보내다 보니, 무진은 성연과 둘이서 이렇게 조용히 집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만 한 것이다. 일말의 평안을 누리며.그러나 성연이 다른 것을 하고 싶다면 성연의 뜻에 따르면 그뿐. ‘성연이 즐겁다면야 뭐.’무진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어디 놀러 가고 싶은 데 있어? 같이 가자.”성연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다.이미 계획을 다 세웠는데, 예상치 못하게 강무진이라는 이 고리가 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