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씨 며느리가 불현듯 이렇게 움직일 줄은 예상하지 못 했던 성연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연씨 집안의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보아하니 이들 집안의 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외부인 앞에서 체면을 구긴 연경훈은 정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쪽 팔리다는 생각을 했다.참지 못한 연경훈이 어머니에게 불평했다.“이렇게 다 컸는데도 머리를 때리다니요. 머리 나빠지면 어떡하라고요?”미워 죽겠다는 눈길로 연경훈을 한 번 째려본 연씨 집안 며느리는 어쩌다 자신이 이런 아들을 낳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너 같은 멍청이라 때린 거야.”머리를 가린 연경훈의 눈빛이 온통 원망투성이였다.그런 아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며느리는 고개를 돌려 성연에게 웃어 보였다.“신경 쓰지 마세요. 이 녀석은 평소 이런 행실로 늘 쥐어 터지는 놈이예요.”나이가 어린 성연으로서는 확실히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저은 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사부님께서 병증을 말씀해 주시긴 했는데, 제가 직접 어르신의 상황을 보면 좋겠습니다.” 막 안으로 들어가려던 참에 관리인이 들어와 말했다. “주인 어르신, 마님, 강씨 집안 도련님이 찾아오셨습니다.”북성 시 전체에 강씨 집안은 하나밖에 없었다. 성연은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그녀의 생각이 틀렸기를.연씨 집안 며느리 뒤에 서서 자신의 몸을 가린 성연이 머리만 빼꼼이 내밀어 바라보았다.그리고 거실에 거구의 인물이 나타났다.성연의 동공이 수축해 들어갔다. 이 사람은 확실히 강무진이 맞았다.이런 상황에서 강무진과 마주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해서인지 속으로 몹시 당황스러웠다.그러나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한쪽에 서 있었다.이럴 때일수록 의심을 사는 내색을 드러내서는 절대 안 되었다.강씨 집안과 연씨 집안은 대대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지금도 협력 관계로 어느 한 쪽이 어려우면 두 팔 벌려 도와줄 터였다.강무진이 어렸을 때도 자주 이곳으로 놀러 오곤 했었다
조금 전까지 세상을 발 아래로 내려다보던 태도를 싹 집어던진 연경훈이 소파에서 일어서며 아주 예의 바른 모습으로 무진을 불렀다.“무진 형.”무진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러다 연씨 집안 아주머니 곁에 서 있는 성연을 보며 의아한 듯이 물었다.“이 분은?”보통 연씨 집안에 외부인이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그렇게 물은 것이다.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서둘러 옆에서 소개했다.“이 분은 아버님 병을 치료하러 오신 분이야. 아버님 옛 친구 분의 제자이시고.”“어르신이 인정하시는 분이라면 분명 능력이 뛰어나시겠군요.”성연은 뒤에서 긴장하여 식은땀을 흘렸다.무슨 작은 단서라도 드러나 강무진에게 들킬 새라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손바닥에 땀이 나 끈적끈적해서 무척이나 불편한 기분이었다.그러나 조금 전의 신분으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진과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아무런 말이 없는 태도가 좀 오만해 보였다.그래도 무진은 개의치 않았다. 다만 까만 눈동자에 이채가 스칠 뿐이었다. 사실 성연의 성연을 한눈에 알아차린 무진이었다.늘 이런 사람들과 접촉하고 거래하는 그였기에 성연의 가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얼굴의 피부와 목 부위에 드러난 피부가 완전히 달랐다.하지만 성연이 사용한 인피의 재질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인.만약 다른 일반인들이라면, 당연히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민난 사람은 강무진었다.성연의 위장은 그의 눈에 크게 들어온 뒤에 하나씩 해체되었다.무진은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연씨 어르신의 오랜 친구분 제자라고 하면서, 무엇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위장한 채 사람들에 보여주지 않는 거지?’‘설마 어르신의 몸을 나쁘게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어쨌든 일단 대비하고 봐야겠군.’손건호도 무진을 따라와 있었다. 수간 무진이 곧장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만약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라면, 절대로 도망가게 해서는 안 돼.’무진의 뜻
연씨 어르신의 병실에 들어간 성연이 병세를 살폈다.이때 침대에 누워 있는 어르신은 거의 혼수상태였다.차라리 이게 검사하기엔 더 편했다.성연은 될 수 있는 한 일반적인 의사처럼 보이도록 가장했다. 이전에 무진을 진찰하던 방법을 그대로 할 수 없어 신속하게 병세를 살펴보았다.사부님의 말씀 대로 피로가 쌓여 병이 된 상태였다. 지나친 부상과 피로에 많은 신체 조직들이 약해지기 시작한 탓이다.똑 같은 상황이라도 만약 젊은이의 몸이었다면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노인인 어르신의 상황을 생각하면 무척 심각했다.또 다른 부분들도 검사했더니, 어르신의 체내에 아직도 일부 독소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성연은 검사한 모든 결과를 숨기지 않고 연씨 집안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독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당연히 좋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이 말했을 때, 연씨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어떻게 독소가 있을 수 있지? 누군가 할아버지를 해치는 한 거 아니야?”“고 선생님, 이 독은 어떤 건가요? 심각한 건가요? 해독할 수 있을까요?” 애가 탄 연씨 집안 사람들이 모두 초조한 얼굴이었다.성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음모가 아니라 장기간 약을 복용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내에 남아 있는 약성으로 인해 생긴 겁니다.”의사들은 모두 알 것이다. 약의 30%는 독이라는 걸. 연씨 어르신의 몸이 약하다 보니 해독 능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회복되라고 의사들이 많은 용량을 처방하다 보니 체내 잔류량이 많은 상태였다. 다만 너무 많지는 않아 되돌릴 여지는 남아 있었다.다행히도 이들이 제때 사부님을 찾은 것이다.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그녀는커녕 스승님조차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고 선생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할아버지를 꼭 좀 살려주세요.” 며느리의 목소리가 다소 쉬어 있었다.성연이 비교적 쉽게 설명을 해서 그들 모두 알아들었다.연세가 많은 노인들은 어느 부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도 복잡해지기 마련이었다.
며느리가 즉시 말했다.“그럼 고 선생님, 앞으로 부탁드립니다.”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깊은 잠에 들었던 어르신이 깨어났다.성연이 친구 고학중의 제자라는 사실을 들은 어르신의 태도가 아주 온화했다.젊은이들이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연씨 어르신은 크게 희망을 가지지 않았다. 성연은 무척이나 긴장했다.“안 되도 괜찮아.”오히려 어르신이 위로하며 말했다.성연이 웃으며 말했다.“만약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신다면, 반드시 다시 일어서시게 제가 도울 것입니다.”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바로 스승의 의술을 계승한 것이었다.현재 자신만의 치료법도 많이 개발해서 사부님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였다.의술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자신에 찬 모습이다.연씨 어르신의 병증은 치료할 수 있을 정도라고 그녀가 생각한다면 절대 문제가 될 리 없었다.의외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어르신을 꼭 다시 일어서게 할 수 터였다.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성연은 마음속에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다.완전한 계획을 가진 듯한 성연의 모습에 어르신의 눈에도 희망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오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거라. 우리 연씨 집안은 전심전력을 다해 너에게 협조할 테니.”젊었을 때 무슨 고생인들 안 해본 게 없을 정도인 어르신이다. 그러니 이런 병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 할 수 있다. 다만 병이라는 것에 있어서 자연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었다.생사는 하늘이 정한 운명인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지경에 이른 것도 정해진 운명인지 모른다.그러나 기회만 있다면 누군들 건강하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어르신과 두어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성연이 연경훈을 불렀다.“당신은 어르신의 바지를 걷어주세요. 허벅지 부위만 있으면 됩니다. 시침할 수 있도록요.”비록 노인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여자아이인 성연으로서는 좀 불편한 부분이었다.연씨 집안 아들과 며느리를 시킬 수는 없으니 가장 아랫사람인 연경훈을 부릴 수밖에.이번에는 연경훈도 성연의 말에 따라
성연이 나중에 보여준 전문성은 상상을 초월했다.그러나 연경훈은 여전히 성연의 의술을 의심하고 있었다. 눈썹을 찌푸린 채 이어지는 성연의 동작들을 바라보았다.“이렇게 하면 정말 좋아지실 수 있다고요?”현재의 의료기술이 그렇게 발달하고, 병원에는 수많은 전문의들이 있었고 또 최고 품질의 약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안된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는 믿지 않았다. 성연의 말 대로 해서 할아버지가 좋아질 수 있다는 걸.어차피 한의학이란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 듯해서 그는 한의학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특히 성연의 의술이 그렇게 좋을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았다.연경훈의 생각을 대충 알고 있었지만 성연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했다.“가능하냐 아니냐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다. 만약 단 하룻밤이라면 당연히 안된다.”성연은 이곳에 올 때, 이미 마음속으로 준비를 했었다.이런 의술을 접한 적이 없으면 당연히 믿지 못할 터. 아마도 연경훈의 눈에는 정밀한 의료기구도 없이 그저 눈으로 병세를 진단하는 그녀가 신뢰성이 없어 보일 터다.하지만 연경훈은 모른다. 한의학에 이런 ‘환자의 병세를 눈으로 보고, 듣고, 묻고, 손으로 짚는’ 네 가지 진찰 방식이 있다는 걸.한의학의 세계는 지극히 넓고 심오하여 단시간에 설명해 줄 수 없었다.결국 효과를 보아야만 자연히 그 속의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던 연경훈은 성연의 믿음직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찾아내려 애썼다.그러다 예기치 못하게 또 다시 어머니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너는 도대체 네 할아버지가 회복되기를 바라기는 한 거야? 제발 입 좀 다물어라.”연씨 집안 며느리는 성연의 신분에 대해 조금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 분의 제자라면 다른 사람은 부탁할 수도 없는 이였다.그때 가서 아들의 말 실수로 난처해지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게다가 손님으로 찾아와서 호의로 치료해 주고 있는데, 이 아들놈의 행동은 도무지 존중과는 담을 쌓은 것이었다.하지
침을 모두 뽑은 성연은 소파에 앉아 쉬었다.연씨 집안 며느리가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고 선생님, 식사는 하셨어요?”성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뇨.”수업이 끝나자마자 와서 시간에 쫓기듯 시술했지만 너무 늦게 끝나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음식을 먹을 여유가 전혀 없었다.성연의 대답을 들은 며느리가 자책했다. 어째서 일찍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고.성연이 손님으로서 찾아와 도와주었는데, 그 정도도 제대로 못 챙겨 주다니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긴 시간 바쁘게 치료했는데, 정말 안될 말이었다.마음속으로 자책하던 그녀는 좀 더 겸손한 태도로 열심히 설득했다.“고 선생님을 제대로 못 챙겼군요. 정말 섭섭하게 해 드렸어요. 꼭 남아서 식사하고 가셔야 해요.”“이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에요. 집에 돌아가서 먹으면 됩니다. 귀찮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성연이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연씨 집안에 처음 온 터라 아직 많이 낯설고 어색했다.익숙하지 않아 불편하기도 했다.게다가 강무진이 아직 여기에 있으니 더더욱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거절하는 것을 본 며느리가 매우 슬픈 표정을 지었다.“고 선생님, 이렇게 번거롭게 당신을 오게 했는데, 식사마저 하지 않고 그냥 간다면 결국 내가 대접을 소홀히 한 게 아니겠어요? 아버님 뵙기도 민망하네요.”“고 선생님, 그냥 평소의 식사이니 남아서 드시고 가세요.” 아들도 옆에서 자꾸 권했다.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성연 또한 체면을 봐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면 정말 인정머리 없어 보일 터.결국 성연은 저들의 설득을 이기지 못하고 남아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무진도 식탁에 함께 앉았다.성연은 식사하는 내내 그와는 어떤 말도 섞지 않고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지금 고 선생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강무진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 성연은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음식은 일부러 피하고 잘 먹지 않던 것만 집어 조금씩 먹었다.‘이러면 자신이라는 생각을 강무진이 할 수 없겠지?’성연은 평소
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어본 것 같아.식사하는 내내 성연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가슴이 조마조마하다.마음이 잔뜩 긴장되어 무진이 자신을 알아보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그러나 오늘 자신은 중무장을 하고 또 특제 인피도 썼다. ‘강무진이 그저 떠 본 것일 뿐이야. 날 알아보지도 못했잖아?’성연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어서 빨리 식사를 마친 후 이 숨 막히는 곳을 떠나고 싶을 뿐이다.끝내 운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여기 와서 병을 치료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강무진을 만났다. 인연도 이런 인연이 없었다.성연은 태어난 이래 가장 불편한 식사를 했다.식사 후에 성연이 약을 남기고 며느리에게 복용법을 알려주었다.“앞으로 매일 와서 어르신께 침을 놓을 겁니다. 어르신이 제때에 약을 복용하게 하세요.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성연이 다소 엄한 표정으로 당부했다.자신의 말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랬다.연씨 어르신의 병세는 약물과 침구 치료를 함께 병해해야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며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고 선생님.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연씨 일가 모두 어르신의 병세를 최우선으로 중시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처럼 힘들게 의사들을 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어르신이 젊었을 때는 모든 연씨 집안을 안전하게 지켰다.집안의 아이들은 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모든 가족들이 어르신에게 절대적인 존경과 효성을 보였다. 한 점 모호함 없이 말이다.약을 받은 후, 연씨 집안 며느리가 고개를 돌려 연경훈에게 말했다.“경훈아, 고 선생님을 모셔다 드리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가는 건 위험해요.”눈을 크게 뜬 연경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을 가리켰다.잘못된 들은 게 아닐까? 자신 더러 성연을 집에 데려다 주라니 말이다. 자신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걸 잘 아시는 분이.‘어머니가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네.’
돌아가는 도중에 무진은 성연의 주소를 물었다.“고 선생님, 댁이 어디십니까?”입가를 삐죽거리던 성연은 자신이 어디에 산다고 말을 했는지 생각이 안 났다. ‘아, 정말 난리 났네?’속으로 조용히 눈을 한 번 뒤집었다. 주소 문제는 해결하기 좀 어려웠다. 성연은 결국 서한기의 주소를 말했다.고개를 끄덕인 무진은 운전기사에게 그리로 가자고 지시한 후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성연은 아직도 의심스러웠다. 강무진이 적어도 자신에게 이것저것 막 물어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그런데 그렇지 않았다.차가 빠르게 달리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왠지 모르게 성연은 좀 어색했다.그러나 강무진이 말을 하지 않으니 좋았다. 또 핑계거리를 찾아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서한기의 거처 앞에 도착한 후, 차에서 내린 성연이 무진에게 인사를 했다.“오늘 강 대표님께 정말 폐를 끼쳤습니다.”성연을 힐끗 쳐다본 무진이 손을 들어 기사에게 운전하라고 지시했다.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성연은 서한기의 주택단지 뒤쪽으로 미친듯이 달려갔다. 서한기는 차를 거기에 세워 두었다.서한기는 성연과 몇 마디 하고 싶었지만, 급하게 달려오는 성연을 보았다.누가 성연의 뒤에서 쫓아오는 줄 알고 그녀의 뒤를 살펴보니 아무도 없었다.그럼 우리 보스는 도대체 왜 달려오는 거야? 서한기는 이해가 안되었다.차문을 연 성연이 다시 ‘탕’하고 차문을 닫았다.계속 달려와서 차에 올라탄 성연은 아직 약간 숨을 헐떡였다.가까스로 숨을 돌린 성연이 말했다.“빨리, 가장 빠른 속도로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가, 최대한 빨리.”말하는 동시에 성연은 칸막이를 내려 서한기의 시선을 차단했다.그리고 가면을 찢어버리고 옷을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서한기는 오솔길을 가로질러 가장 빠른 속도로 운전했다. 서한기의 차는 속도가 아주 뛰어났다. 운전한 지 10여분이 지난 후, 서한기는 성연이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보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왜 그렇게 조급
캐서린 쪽에서도 연락을 받았다.그리고 두 조직이 자신들의 위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캐서린은 그렇게 오랫동안 성연을 관찰했기에 성연의 신분도 잘 알고 있었다.감히 성연을 잡아온 이상 양대 조직과 대항하는 것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이제 캐서린에게는 성연이 감추고 있는 정보가 중요했다.캐서린은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누구든 가장 빠르게 우리를 찾을 수는 없어.’소식을 들은 캐서린이 천천히 성연의 앞으로 걸어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수없이 맞아서 숨이 간들간들한 상태였다.캐서린이 오는 것을 보고 또 새로 고문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다.성연은 차갑게 웃으며 캐서린을 바라보았다.“헛수고하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몰라.”‘설사 안다 해도 캐서린한테는 말할 수 없어.’“내가 지금 말하려는 건 그 일이 아니야. 너하고의 연락이 끊어지자, 강무진이 즉시 A국에서 유럽으로 달려왔다는 거 알아?” 캐서린은 말하면서 혀를 내둘렀다.“네 약혼자가 너한테 정말 잘해 주네. 그러나 지금 네가 말하지 않는다면, 네 약혼자는 너를 찾는 도중에 죽게 될 거야. 내가 이미 사람을 배치해 뒀거든.”캐서린의 말투에는 강력한 위협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걸 알게 된 성연은 마음이 훈훈해졌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걱정도 되었다.‘캐서린이 나를 미끼로 무진 씨를 유혹한다면, 무진 씨는 망설이지 않고 달려올 거야.’‘실혼전의 인간들은 모두 미친놈들이야.’‘만약 무진 씨가 위험에 부닥치게 된다면 정말 골치 아프게 돼.’성연은 마음속으로 걱정이 되었다.성연에게 중요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무진은 성연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무진 씨에게 사고가 나게 할 수는 없어.’“어쩌면 내 사형한테 물어보면 알 지도 몰라.” 성연은 캐서린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했다.‘이것도 자구책의 하나야.’‘캐서린의 정보만 전해지면, 현수 선배와 무진 씨가 틀림없이 방법을 강구할 거야.’그 말을 듣자 캐서린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캐서린이
‘성연이 영문도 모르게 실종될 리가 없어. 게다가 그렇게 총명한 성격인데 뜻밖에도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어.’‘성연이 위험에 처했다는 걸 말해주는 거야.’무진은 곧바로 성연을 찾기 위해서 양대 조직의 사람들을 소집했다.성연과 무진의 결혼식에 두 조직에서도 참석했다.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성연은 이터너티의 사람들을 무조건 도와주라고 아수라문의 부하들에게 일찌감치 말했었다.이번에 성연이 위험에 처했으니 모두들 도의상으로도 당연히 거절할 수 없었다.파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를 파견했다.샤넬 가문의 사람들도 함께 수색하러 갔다.그러나 성연의 행방은 끝내 찾지 못했다.매번 성과가 없다는 소식에 상심만 더해갔다.무진은 절망으로 가득 차서 의자에 주저앉아 있었다.손에 낀 반지를 어루만지면서 마음도 멍한 상태였다.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성연을 생각하고 있었다. ‘성연아,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제발 널 찾게 해줘.’한쪽 구석에 서 있던 손건호는 모든 기대가 무너진 듯한 무진의 표정을 보았다.손건호도 가슴이 아팠다.“보스, 사모님이 그렇게 좋은 분이시니 틀림없이 무사하실 겁니다.”“그러길 바랄 뿐이야.” 무진도 마음속으로는 당연히 성연에게 사고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아직 찾지 못한 거야? 너희들 도대체 진지하게 다시 찾아본 거야?” 무진도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손건호가 옆에서 위로했다.“보스, 모두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만 유럽은 정말 넓습니다. 만약 마음먹고 사모님을 숨긴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말했다.무진도 자신이 추태를 부렸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말했다.“미안해.”“괜찮습니다.” 손건호는 고개를 저으면서 손사래를 쳤다.‘보스에게 사모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잘 알고 있어.’‘게다가 두 분은 아직 신혼인데, 사모님이 이렇게 보스의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어떻게
성연은 무진에게 졸업식이 끝나면 바로 귀국할 거라고 말했다.하지만, 물건을 정리해야 해서 내일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무진은 성연의 졸업식이 어땠는지 전화해 보고 싶었다.‘성연이 약속한 사진도 보내지 않았어.’무진이 줄곧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무진은 상황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성연이 내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여전히 학교에 있었어. 3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는 어디에도 갈수 없어.’무진은 성연을 걱정하느라 애가 탔다.망설이지 않고 바로 샤넬 가문에 전화를 걸어서, 성연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좀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그리고 무진도 즉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무진의 마음은 성연에 대한 미안함으로 몹시 혼란스러웠다.성연이 북성을 떠나 유럽으로 갔을 때 무진은 줄곧 불안했다.혹시나 성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그런데 지금 가장 걱정하던 일이 결국 발생했어.’‘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하는데.’무진이 샤넬의 오빠와 통화할 때 샤넬과 목현수가 바로 옆에 있었다.오빠가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것을 본 샤넬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생겼어요?”“미세스 송이 없어졌다는 거야.”샤넬의 오빠가 조용히 말했다.“어, 어떤 미세스 송인데요?” 샤넬은 한동안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목현수는 미세스 송이 바로 성연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그는 의자에서 재빨리 일어섰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은 샤넬도 오빠에게 물어보았다.“성연이에요?”샤넬의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미세스 송이 갑자기 강 대표와 연락이 끊겼다고 해. 아무리 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거야. 게다가 미세스 송이 예약한 항공편도 없어. 강 대표가 걱정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 쪽에 조사를 도와달라고 했어. 지금 강 대표는 이미 A국에서 유럽으로 오고 있어.”“그럼 빨리 움직여야지요. 위험해지면 안 되잖아요.” 샤넬은 바로 오빠에게 조사를 재
성연이 좀 피로해졌을 때 캐서린이 밖에서 들어왔다.손에는 긴 채찍을 들고 있었다.채찍에는 미늘들이 박혀 있었다.캐서린은 두말없이 바로 성연의 몸에 채찍질을 했다.“말 안 할 거야?”채찍에 박힌 미늘들이 성연의 몸에 바로 핏자국을 남겼다.하얀 티셔츠가 피로 물들었다.고통에 신음 소리를 낸 성연이 캐서린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몰라.”“아직도 주둥이만 살아가지고.”캐서린이 말하면서 또 성연의 몸에 채찍질을 했다.성연의 온몸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면서 아파서, 이미 어디가 더 아픈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고통을 꾹 참는 성연의 모습을 보고 캐서린이 웃었다.손에 든 채찍을 가늠하는 한편 웃으면서 말했다.“당당한 아수라문의 보스가 이제는 내 포로가 되었네?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캐서린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자, 성연은 고개를 쳐들고 캐서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그 순간, 캐서린은 뜻밖에도 성연의 눈빛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그러나 성연의 앞에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어쨌든 성연의 머리카락은 놓아주었다.힘없이 고개를 숙인 성연은 주먹을 꼭 쥐었다.‘절대 캐서린을 가만히 두지 않겠어.’“네 충성스러운 개들이 모두 우리 손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말해봐. 만약 네 부하들이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리석게도 희생을 겁내지 않고 널 구하러 올까?”캐서린은 느물거리면서 말했다.“그러면 안 돼!” 성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내 부하들은 내가 잘 알아.’‘내가 캐서린에게 납치된 걸 알게 되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구하러 올 거야.’성연은 몇 년 전의 참극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실혼전 사람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야.’‘차라리 내가 희생되더라도 나를 믿는 사람들을 공연히 죽게 만들 수는 없어.’캐서린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부하들을 신경 쓰는 모양인데, 걱정하지 마. 지금 아수라문에서는 너 혼자만 내게 쓸모가 있어. 다른 자들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원래 송성연을 몰래 여기다 잡아
성연의 흥분한 기색을 본 캐서린이 웃었다.“미스 송, 넌 지금 나한테 잡혔어. 그렇게 사납게 굴지 마.”캐서린을 노려보는 성연의 눈빛은 짙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당연히 네가 쓸모가 있으니까 널 데려왔지. 아니면 내가 너를 왜 데리고 왔겠어?”캐서린은 우리에 갇힌 맹수 같은 성연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이제 송성연은 내 손에 떨어졌으니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가 없어.’“그냥 바로 말해, 구태여 빙빙 돌릴 필요가 있어?” 성연은 캐서린의 손에 떨어졌어도 여전히 굴복하지 않았다.“좋아, 좋아. 나는 이런 네 모습을 감상하려는 거야.” 박수를 치면서 다가간 캐서린이 성연의 턱을 누르면서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고학중은 도대체 어디에 있어? 그때 청혈진주는 도대체 어디에 숨겼지?”성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네가 찾아와서 나한테 스승님의 행방을 알려주겠다고 했잖아? 이제는 나한테 반문하는 거야?”캐서린이 질문에 대해서 성연은 알지 못했다.심지어 청혈진주가 뭔지도 잘 몰랐다.성연은 스승님과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스승님의 행방은 더욱 몰랐다.성연은 스승이 위험에 처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좋아하는 제자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그러나 성연의 이런 행동을 본 캐서린은 성연이 꼴에 자존심만 세다고 생각했다.‘송성연은 고학중의 제자인데, 어떻게 스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수 있어?’캐서린이 손끝으로 성연의 뺨을 가볍게 그었다.“미스 송, 나는 미녀를 아끼는 사람이야. 눈치껏 행동하라고 충고할게. 그렇지 않으면 이따가 고생할 거야.”마치 독사가 성연의 뺨을 핥는 듯한 캐서린의 행동에 성연은 정말 반감이 들었다.그러나 지금은 전혀 피할 수가 없었다.사람들이 하는 대로 당해야 하는 이런 기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하필 성연은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내가 예전에 이런 굴욕을 당한 적이 있었던가?’“나한테 기회만 생기면 반드시 너를
가는 도중에 성연은 침묵한 채 줄곧 말을 하지 않았다.여자를 따라서 한 장원에 도착했다.성연이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여자가 성연에게 뭔가 뿌리자 바로 온몸에 힘이 없어졌다.성연은 자신을 묶는 여자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당,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성연의 목소리는 힘이 없어서 아주 미약했다.여자가 자신에게 뿌린 약은 연골산과 비슷한 약이었다.성연은 발버둥치려 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지금 이 순간, 성연은 비로소 속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목표는 아마도 성연 자신이었을 것이다.방금까지 위선적이었던 가면을 벗은 여자의 얼굴은 차갑고 표독스러웠다.“나를 잊었어? 미스 송은 정말 건망증이 심하네.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어.” 캐서린은 손을 뻗어 성연의 턱을 누르면서 억지로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성연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면서 웃는 캐서린의 눈가에 어두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반항할 힘이 전혀 없는 성연은 여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나를 잡았으니 이유라도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성연이 물었다.캐서린이 냉소하며 말했다.“애초부터 너를 노렸지만 뜻밖에도 네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어. 이제야 겨우 내가 기회를 잡게 된 거야.”성연은 여자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이 여자는 정말 전혀 기억이 없어.’‘게다가 나는 아예 이 여자를 모르는데.’성연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자 캐서린은 더욱 화가 났다.‘내가 기억하는 걸 왜 송성연은 모두 잊어버린 거야?’캐서린의 마음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나는 캐서린이야! 아직 기억하고 있어?”캐서린은 성연을 사나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성연은 고개를 저었다.“기억이 나지 않아.”화가 난 캐서린은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좋아, 아주 좋아. 기억이 안 나도 괜찮아.” 캐서린은 성연을 억지로 장원의 지하실로 끌고 갔다.어두컴컴한 이곳은 주위에서 습하고 썩는 냄새가 났다.캐서린은 성연을 지하실의 유일한 의자에
졸업식이 끝난 후 성연의 유럽에서의 학업은 마침내 일단락되었다.귀국 준비를 하려고 기숙사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성연은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아주 아름답고 젊은 서양 여자였다.“당신이 송성연 씨인가요?” 젊은 여자가 물었다.성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앞에 있는 여자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도 없었다.어디서 봤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그러나 이 사람은 성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성연은 예의상 웃으며 말했다.“전데요, 무슨 일이신가요?”“중요한 일이 있어서 미스 송을 어디로 좀 초대해서 상의하고 싶은데요?” 여자가 성연을 초대했다.성연은 절대 바보가 아니다. 누구도 쉽게 믿지 않았다.‘게다가 이 여자와는 처음 만났을 뿐이야.’‘어떻게 처음 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어?’‘이 여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일을 상의할 수 있단 말이야?’“아니요, 저는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해요.”성연의 말투가 싸늘해졌다.성연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여자는 입술을 가리면서 가볍게 웃었다.“송성연 씨, 미리부터 성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당신의 이름부터 말해야 하지 않나요?” 성연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송성연 씨 당신이 줄곧 고학중 씨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이 당신의 스승님이지요? 내가 너에게 말한다면, 나와 함께 가겠다고 대답할 건가요?” 여자는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성연에게 가장 중요한 걸 자신이 가지고 있기에, 성연이 거절할 거라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스승님의 이름을 듣자 성연은 순간 멍해졌다.흥분해서 여자의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당신이 정말 제 스승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고 있나요?”성연은 힘이 세서 여자가 좀 아플 정도로 세게 잡았다.그래도 여자는 여전히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미스 송이 알고 싶다면 저와 함께 가야 합니다.”손을 놓은 성연은 반신반의하면서 여자
성연이 학교로 가는 날, 무진은 직접 성연을 공항으로 데려다 주었다.두 사람은 이별을 아쉬워했다.그러나 성연은 결국 가야만 했다.한참동안 포옹을 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자 성연은 비행기에 올랐다.유럽에 간 뒤 반년 동안 성연은 남은 과정을 이수했다.곧 졸업식이 다가왔다.저녁에 기숙사에서 무진과 통화했다.[느낌이 어때?]” 무진이 물었다.[내일이 졸업식인데 긴장돼?]“괜찮아요, 정상적으로 졸업하는 거라서 긴장되지는 않아요.” 성연은 어깨를 으쓱했다.[미안해,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무진의 눈빛에는 미안한 기색이 짙게 배어 있었다.원래 성연의 졸업식에서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기다렸다.성연과 함께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이다.그러나 급한 일이 생겨서 무진은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어쩔 수 없이 성연이를 서운하게 만들었어.’“괜찮아요. 무진 씨 일이 바쁜 거 알아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성연은 졸업식이 그저 사진만 찍는 것이지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무진이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방법이 없다면 성연도 강요하지 않았다.[그럼 졸업식 끝나면 사진 보내줘.] 무진도 성연이 졸업 가운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었다.“알았어요. 무진 씨 혼자 집에서 일하는데 건강에도 주의해야 해요.”성연은 무진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매번 어떤 일도 강요하지 않았다.성연도 그렇게 큰 회사를 관리해봤기 때문이다.무진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무진이 쉽지 않다는 걸 더욱 잘 알 수 있었다.[알았어, 잘 자.] 무진은 성연에게 뽀뽀를 날린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졸업식이 곧 다가왔다.일단 강의실에 있으면서 학생들은 졸업 소감을 공유했다.그들의 지도교수도 바뀌었는데 지금의 지도교수는 아주 부드러운 유럽 여성이었다.단상에서 축사를 하던 지도교수가 갑자기 성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송성연 학생이 이번에 학과에서 학점이 가장 높아요. 성연 양은 이에 대해서 미래의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선물을 산 무진과 성연은 안금여를 방문하러 본가로 갔다.두 사람이 선물을 들고 들어오는 걸 본 안금여가 탓하듯이 말했다.“나는 또 너희가 신혼여행에만 급급해서 이 할미는 잊어버린 줄 알았구나.”“할머니, 어떻게 할머니를 잊어버리겠어요.” 안금여의 비위를 맞추면서 다가간 성연은 안금여의 등을 안마해 주었다.안금여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지만, 아주 기분 좋게 성연의 안마를 받아들였다.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본 안금여는 바로 주방에서 성연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했다.‘이제야말로 내 집에 돌아왔어. 온갖 음식들이 전부 나를 위한 거야.’밥을 먹을 때 안금여는 줄곧 성연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성연아, 많이 먹어야 해. 너는 너무 말랐어.”“할머니 감사합니다. 저는 그렇게 많이 못 먹어요.” 성연은 얼른 자신의 그릇을 감싸면서 말했다.안금여는 끊임없이 반찬을 집어주었고, 성연의 그릇에는 곧 한 무더기가 쌓이게 되었다.“괜찮아, 이렇게 말랐는데 많이 먹어야지.” 안금여는 그러고도 성연에게 반찬을 더 집어준 뒤에야 비로소 수저를 내려놓았다.성연은 이미 적잖은 간식을 먹고 온 터라, 지금은 정말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바로 무진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무진은 성연을 흘겨보더니 성연의 그릇에 쌓여 있는 반찬들을 자신에게 옮겼다.안금여의 눈앞에서 버젓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다.그러나 무진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안금여는 무진이 이렇게 당당하게 성연을 비호하는 걸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래 이래야 해. 성연이는 무진이 아내니까 무진이가 성연이를 감싸는 것도 당연해.’“성연아, 무진아. 결혼식도 끝났는데 너희들은 계획이 있니? 신혼여행을 갈 생각은 없어?” 연로한 안금여는 잘 모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방식이 유행한다고 했다.“할머니, 저희는 안 갈 거예요.” 무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성연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무진은 성연에게 아무런 아쉬움도 남기지 않는 결혼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하지만 성연이 신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