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무진은 보이지 않고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운경만 보였다.거실로 들어오는 성연을 본 운경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성연이 학교에서 오는 거니? 학교 다니는 건 힘들지 않아?”“고모님, 어떻게 시간이 나셨어요?” 거실을 가로질러 간 성연이 강운경 가까운 곳에 앉았다.“사업상 이 근처에 왔다가 지나는 길에 들려봤어. 왜 반갑지 않아?”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띤 운경이 다소 놀리는 투로 물었다.성연이 넉살 좋게 대꾸했다.“설마요. 환영인사가 늦었네요. 고모님이 날마다 오셨으면 좋겠는 걸요.”마치 서운하다는 듯한 성연의 표정이 운경을 한 차례 웃게 했다.“너 정말 아부도 잘하는구나.”성연이 웃었다.상체를 숙인 운경이 테이블 위의 찬합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정교하게 데코레이션 된 케익이 들어 있었다.“새로 온 주방장이 만든 거야. 할머니는 입에 맞다고 하시는데 너희들한테도 맛을 보여주려고 들고 왔어.”테이블 위의 케익을 보며 속으로 감동받은 성연이 조그마한 음성으로 말했다.“고모님, 다음 번에는 전화 주세요. 제가 가서 먹을게요. 이렇게 또 오실 필요 없이요.”“할머니가 안 보내셨으면 나도 안 왔어. 얼른 먹어보렴.” 운경은 한 조각 잘라 성연에게 건넸다.성연이 한입 베어 물었다. 신선하고 부드러운 케익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느끼하지 않을 만큼 달콤한 맛이 아주 좋았다. 성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주 맛있어요, 고모님. 감사해요.”“맛있으면 많이 먹어. 물도 좀 마시고, 체할라.” 운경이 성연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었다.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자 쌉사름한 차 맛과 달콤한 케익의 맛이 어우러지는 것이 새로운 맛이었다.성연은 몇 차례 더 베어먹은 뒤 남은 케익을 옆에 내려 두었다.운경이 성연을 보면서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성연아, 무진이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야. 무진이 나이 때면 의논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어. 너희들 언제 할머니에게 증손자
운경을 배웅한 성연은 혼자 저녁을 먹었다.식사를 하던 성연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강무진, 앞으로 매일 저녁 집에 와서 같이 밥 먹는다고 하지 않았어?’‘그런데 겨우 이틀도 못 버텨?’성연이 막 집사에게 물으려고 할 때, 마치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성연이 입을 열기 전에 집사가 먼저 정중하게 말했다.“작은 사모님, 도련님은 오늘 저녁에 회사에 긴급한 일이 있어 함께 식사하러 오지 못하신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집사의 말에 성연이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사실 충분히 이해되었다. 이제 막 회사 대표를 승계한 무진인지라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돌아오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라는 것도.그의 입장이 이해되면서 마음속에 일던 울적한 감정이 사라졌다.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강무진이 보이지 않는 순간 왜 저도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았는지.그런데 이제 또 괜찮아졌다.저녁을 다 먹은 후, 성연은 혼자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혼자서도 신나게 게임을 했다.하지만 가끔씩 저도 모르게 돌아갔다. 무진이 서류를 보며 늘 앉았던 곳이 텅 비어 있는 걸 보는 순간 계속 왠지 허전함을 느꼈다.성연은 너무 자주 강무진을 떠올리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세차게 머리를 흔든 성연이 강무진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내몰았다.‘참내, 그 사람을 생각해서 뭘 어쩔려고?’‘요즘 나도 비정상적으로 변한 건가?’잡념을 몰아낸 성연은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성연이 곧 레벨 통과하려던 순간, 휴대폰이 미친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휴대폰 화면을 켜 보던 성연의 안색이 변했다.TV를 끄고 바로 방으로 올라가 문을 잠근 성연이 자신의 노트북을 꺼냈다.방금 휴대폰에 메시지가 떴다. 지금 누군가 ‘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작동시키려 한다고.그녀의 휴대폰은 ‘스카이 아이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었다.‘스카이 아이 시스템’에서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감지되면 즉시 알 수 있도록.‘스카이 아이 시스템’이 강
마침내 성연이 약간 앞서며 무진은 시스템 진입에 실패했다.어찌 되었든 ‘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만든 이는 성연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외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도 더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두 손으로 키보드 위를 내리누르는 무진의 얼굴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실패해서가 아니라 성공을 눈앞에 두고 놓쳤다는 게 화가 났다.무진의 표정이 북풍한설처럼 차가웠다. 눈에서 뿜어 나오는 냉기는 쳐다보기만 해도 석빙고에 갇힌 듯했다.한옆에 선 손건호는 보스의 노여움이 자신에게 떨어질까 전전긍긍이었다.생각해보니 아무 말 하지 않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 위로의 말을 건넸다.“보스, 패스워드가 정말 복잡하군요. 우리 쪽에서 그렇게 오래도록 연구한 다음에 겨우 대략적인 실마리만 건졌으니 말입니다.”줄곧 먹이사슬의 최상층에서 실패를 맛본 적이 없었던 무진이다.지금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정상이지, 하며 속으로 생각하는 손건호.한기가 가득한 표정임에도 무진의 어조는 꽤나 담담했다.“예전에 찾았던 단서는 이미 쓸모가 없게 됐어. 방금 상대하며 보니, 저쪽에서 이미 기회를 틈타 코드를 변조했더군. 암호방어를 위해 이미 여러 장치를 해 뒀고. 방금 다시 들어가려 했는데 이미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어.”무진은 입을 다문 채 컴퓨터를 노려봤다. ‘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했는지 모른다.심지어 거금을 들여 세계 최고의 해커 팀을 스카우트까지 해서 간신히 실마리를 얻었다 싶은 순간, 코드가 단번에 변조되며 이전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버렸다.조금 전 시스템 해킹을 시도하려는 순간, 그렇게나 빨리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상대방의 대응 속도는 가공할 정도로 빨라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그러나 무진은 여기서 손 놓지 않을 것이다.“보스, 보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까?” 손건호가 떠보듯이 물었다.무진이 직접 나서는 건 드물지만, 일단 한 번 나섰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았다.지금 강무진이 실
무진의 말을 듣던 순간, 손건호는 머리가 지끈거려 우선 입을 다물었다. ‘스카이 아이 시스템’은 원래 자신들이 수단을 부려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원 주인이 패스워드를 자신들에게 알려주려 하겠는가?“스카이 아이 시스템은, 어쨌든 충분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야. 절대 소소한 게 아니야.”그리고 또 하나의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손건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누가 개발했는지도 모르는데 어디 가서 찾으려고요?”업계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사실은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었다.‘그렇다고 무작정 찾을 순 없잖아?’대강의 생각이나 아무런 단서도 없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아닌가 말이다.무진은 머릿속에서 이미 절묘한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리던 그는 찌푸렸던 미간을 펴며 말했다.“왜 찾아야 하지? 스스로 찾아오게 하면 되지.”“아…….” 망연자실한 듯한 표정의 손건호가 머리를 긁적였다.‘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설계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분명 어리석지 않을 거야?’‘그런데 어떻게 먼저 찾아오게 한다는 거지?’그러나 자신만만한 보스의 모습을 보면서 분명 무슨 계획이 있으리라 생각했다.손건호를 힐끗 쳐다본 무진이 말했다.“말을 퍼트려. 이 업계 사람들에게 모두 알리는 게 제일 좋겠군. 내일 저녁 8시, 블랙스톤 클럽에서 ‘스카이 아이 시스템’ 전매 거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물건을 잃어버리고 가장 조급할 사람은 당연 물건의 주인일 터.소식을 듣고 온 첫 번째는 틀림없이 ‘스카이 아이 시스템’의 개발자일 것이다. 이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누군가가 그에게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무슨 방법을 쓰던 개발자의 입을 열게 할 것이다.어쨌든 그 입을 열게 만들 하나는 있을 터.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지시를 이행하러 나갔다.무진의 공격을 깨부수어 기분이 좋은 성연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목욕하러 들어갔다.목욕을 마치고 나온 성연은 미처 다 끝내지 못했던 게임의
밤이 늦어서야 무진이 집에 돌아왔더니 거실은 온통 게임 음향효과로 시끄러웠다.거실 쪽을 휙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은 담요를 몸에 두른 채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는 성연이 눈에 들어왔다.집사가 황급히 다가왔다. “도련님, 식사하셨습니까?”“아직. 아무거나 간단히 준비해 주세요. 너무 번거롭지 않게요.” 오늘 하루 종일 회사에 있었던 무진은 시스템 해킹에 실패하니 입맛도 사라졌다.집에 오니 그제서야 배고픔이 느껴졌다.“네, 도련님.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주방장은 이미 쉬러 간 상태다. 시간이 되어 바로 퇴근한 상태라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식자재도 없었다. 부득이 집사가 직접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30분 후, 일상적인 작은 메뉴 몇 개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성연 앞에 다가간 무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어.”여전히 게임에 빠진 성연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안 먹었으면 얼른 가서 드세요.”“같이 먹어.” 무진이 대답했다.성연은 왠지 모르게 무진의 말투에서 약간 서운해하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게임을 하다 중단한 성연이 고개를 돌려 무진의 얼굴을 보더니 게임기를 내려 놓으며 대답했다.“알았어요, 알았어. 먹는 동안 옆에 있어 줄게요. 하지만 나는 이미 먹었어요.”“그래.” 성연의 뒤를 따라 주방으로 향하는 무진의 눈에 웃음기가 떠올랐다.식탁에 앉은 성연이 턱을 괸 채 무진을 바라보았다.성연의 주시에도 침착한 무진은 천천히 음식을 씹었다.식사하는 동작도 어찌나 우아한지 왠지 보는 눈이 즐거웠다.음식 냄새를 맡으니 약간의 허기를 느낀 성연이 배를 문질렀다.조금 전 간식도 많이 집어먹었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또 배고파지네.” 성연이 고개를 들어 무진을 보며 말했다.무진이 손수 성연에게 밥 한 공기를 퍼 주었다.함께 식사를 하는 동안 성연이 가끔씩 다리를 흔들었다. 성연의 기분이 좋다는 걸 알아차린 무진이 물었다.“오늘 무슨 기분
밤이 되자 무진은 성연에게 전화를 걸어 성연이 혼자 식사하라고 전했다. 자신은 오늘 저녁 야근으로 집에 오지 않는다면서.무진이 야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성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아마 오늘 밤의 전매 현장에 무진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 역시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성연도 저녁에 동아리 활동이 있어 늦게 좀 늦을 거라고 대답했다.성연의 말을 들은 무진이 곧바로 동의했다.여자애들은 지금이야 말로 노는 걸 좋아할 때이니, 무진 또한 구속하지 않았다.평소 일이 있든 없든 집에 있는 성연이니, 자주 나가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을 것이다.사실 성연은 동아리에 가지 않았다. 애초부터 할머니 안금여의 해독제를 연구하기 위해 얼렁뚱땅 지어냈던 것.하지만 이후 성연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 동아리에 가입했다.오늘 밤에도 확실히 작은 활동이 있긴 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성연은 직접 동아리장에게 휴가를 내어 서한기와 함께 외출했다.먼저 백화점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산 후, 호텔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타이트한 긴 스커트를 입은 성연은 S라인 몸매를 드러내었다. 또 같은 색 계열의 하이힐을 매치한 모습은 평소 수수한 차림을 하던 소녀와는 그야말로 딴판이었다.환복을 끝낸 성연이 룸을 나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서한기가 성연을 보며 건들거리는 자세로 휘파람을 불었다.“보스, 몸매가 끝내 주는데요. 아주 섹시해요. 분명히 강 모씨가 보면 완전 홀딱 빠지겠는데요?”단지 농담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아는 성연은 개의치 않으며 냉소를 지었다.“너,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야?”말하면서 성연은 양 손가락의 관절을 꺽었다. 딱딱 관절 꺽이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 밑이 저릿저릿해 왔다.서한기가 바로 말했다. “보스, 당연한 걸 물으시다니요. 보스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다시 냉소를 지은 성연이 거울을 향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평소와 비슷해 보여?”서한기가 얼른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니요. 보스 변장술은 이미 입신의 경
클럽 블랙스톤의 룸 안.무진은 이미 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옆에 서서 걱정스럽게 말했다.“보스, 정말 올까요?”“올 테니 걱정하지 마.” 무진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무진이 차분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자, 손건호 또한 마음이 차분해졌다.과연 7시 반경에 룸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성연이 룸 안으로 들어왔다. 하이힐을 신은 그녀의 몸매는 더 늘씬해 보였다. 성연의 등장으로 룸 안 가득 향기가 퍼지며 강한 아우라마저 느껴져 저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고 싶게 했다.룸에 들어간 사람은 송성연 혼자였다.서한기는 밖에서 수하들을 한데 모아 잠시 후에 발생할 비상 상황에 대비했다. 언제든 바로 성연을 도울 수 있도록.무진과 손건호가 고개를 들어 성연을 쳐다보았다.그녀는 온몸을 꽁꽁 둘러 싸맨 채 뽀얀 살결 한 점만 살짝 드러내었다. 손까지 레이스 장갑을 끼고 있는 상태였다.그러나 이런 큰 인물들은 등장하면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당연했다.외부 사람들 모두 ‘스카이 아이 시스템’이 강씨 집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그래서 오늘 무진이 WS그룹 대표로 나온 것이다.얼굴의 절반이 은색 가면에 가려진 무진은 룸 안으로 들어오던 성연과 눈을 마주쳤다.그러나 성연이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무진이 어떤 실마리도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 했다.이런 위험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바로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은 성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물건을 되찾으러 왔어요. 충분히 오래 시간 동안 물건을 갖고 있지 않았나요? 이제 주인에게 돌려줄 차례예요.”고의로 목소리를 낮추어서인지 약간 쉰 목소리가 성연의 입에서 나와 나이가 좀 더 많아 보였다. 아무도 그녀의 실제 나이를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성연을 본 손건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개발한 사람이 여자일 거라는 건 전혀 예상 밖이었다.어젯밤의 실력을 생각하니 절로 성연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요즘 여성 해커는 무척 적었다.특히 자신
무진 또한 직설적으로 말했다.“이 물건은 내가 거액을 들여 산 것이니, 지금은 내 것이죠.”성연은 하마터면 무진에게 화를 낼 뻔했다.‘스카이 아이 시스템’은 자신이 개발한 것이며, 그 거취를 결정할 권리 또한 자신에게 있었다.도대체 강무진이 무슨 근거로 ‘스카이 아이 시스템’이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지 그 내막을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속에서 화가 치민 성연말의 말투도 따라서 차가워졌다.“말 만으로는 증명할 수 없지요.”그녀 또한 숨기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어젯밤 맞대결에서 이게 내 것이라는 것을 이미 증명했다고 생각하는데요.”이어 무진을 바라보았다.“허세는 그만 부리시죠. 어떻게 해야 내 물건을 다시 돌려줄 건가요?”‘스카이 아이 시스템’의 가치는 무척 높아서 손 안에 들어온 걸 강무진이 쉽게 양보할 리 없었다.무진 역시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 자리에 나온 목적 또한 성연에게 되돌려주려는 게 아닌 만큼.잠시 후, 무진이 대꾸했다.“그쪽도 잘 알 텐데 말이죠. 사람들이 말하는 ‘스카이 아이 시스템’의 뛰어난 점에 대해선 이미 돈을 지불했으니, 당연히 내 것입니다. 이게 상규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요?”무진의 말투는 되돌려줄 생각이 없다는 게 확연했다.무진이 양보할 생각이 없자, 성연은 모자를 쓴 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성연이 입을 열지 않자 무진이 계속 말했다.“차라리 같이 개발하는 게 낫겠군요. 어찌 되었든 나도 헛돈을 쓸 순 없으니 말이죠.”성연의 안색이 가라앉았다.물건은 결코 자신이 원해서 판 게 아니었다. 혈귀가 훔쳐 판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조직의 능력으로 외부의 누구도 ‘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직접 볼 생각 같은 건 못하게 했을 터였다.하지만 혈귀 같은 개쓰레기 배신자 때문에 이처럼 많은 일들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다음에 다시 혈귀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말 테다!’성연은 이를 악문 채 참으며 무진과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누가 당신에게 사기를 쳤다면 가서 돈을 되찾
무진의 표정은 굳어졌고, 마음은 마치 무거운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성연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곧 순식간에 슬픔에 휩싸이면서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고, 곧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졌다.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목현수의 눈도 순식간에 뿌옇게 변했다.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자,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다.설사 모두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런 결말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끝내 작은 기대라도 품은 채 기적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듯했다.그러나 눈앞에서 스승님의 딸인 예민주가 직접 발표했으니, 모든 기회가 다 무너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불세출의 천재였던 예중천 스승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예민주는 비통하게 울었고, 성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른 채 억지로 참았지만 끝내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다.성연의 곁으로 다가간 무진이 성연을 품에 안고 다독였다.“성연아, 너무 슬퍼하지 마! 스승님은 분명히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무진이 조용히 말했다.실제로 예중천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진도 마찬가지로 슬펐다. 한때 자신이 정말 닮고 싶었던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최고봉의 성과를 이룬 사람이었기에.비록 지금은 무진의 사업에서의 성과가 이미 예중천을 넘어섰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숭배했던 사람이다.목현수가 예민주를 위로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막내 사매, 너무 슬퍼하지 마...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나하고 성연이가 너를 잘 돌볼게. 스승님은 반드시 네가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실 거야!”비록 예민주가 목현수에게 처음에 준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순간의 슬픔은 진실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목현수는 마음속으로 예민주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잠시 후 사람들의 감정이 비로소 좀 진정되었다.두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눈물을 닦은 예민주는,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난 뒤 아버지의 과거를 다시 이야기했다.“
“성연아, 성연아, 일어나, 네 사형이 왔어!”무진이 가볍게 부르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성연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무진의 목을 덥석 안았다.처음 깨어났을 때의 그 얼떨떨한 성연의 표정을 보고 있던 무진이 갑자기 성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뽀뽀하지 마요. 아직 양치질도 안 했는데!”성연이 큰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오랜만에 무진에게 애교를 부리자, 무진은 또 다시 살인미소를 지었다.일어나서 세수를 마친 성연은 아래층의 거실로 내려갔다.목현수는 이미 도착했고 손건호도 돌아와 있었다.목현수의 곁에 수줍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던 예민주는 성연을 보자 곧바로 인사를 했다.“언니, 일어났네요! 그래도 정말 여유롭네요.”“성연아, 너 다음에는 이렇게 무모하게 굴면 안 돼? 무진 씨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도 사람들을 데리고 유럽에서 너를 찾을 준비까지 다 마쳤어. 너는 그때 무진 씨의 말투를 모를 거야!”목현수가 곧바로 무진의 내막을 폭로하자, 무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난감한 상황을 완화시키려고 했다.그러나 그 말을 듣자, 성연은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정말 기뻤다.“사형, 알겠어요!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그런데 샤넬은요? 왜 함께 오지 않았어요?”성연이 물었다.“어떻게 와?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져서 배가 수박만 해! 나는 이제 아빠가 된다고!” 목현수가 눈썹을 실룩거리면서 무진에게 한껏 자랑했다.무진이 썩소를 날리면서 성연을 힐끗 쳐다보자 성연도 따라서 썩소를 날렸다.부창부수인 이 젊은 부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목현수가 물었다.“설마... 너희들도 생긴 거야?”성연이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자, 무진은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그래! 어차피 내 아이가 너희 아이보다 일찍 태어날 거야. 너희 애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맏이가 되겠지!”목현수는 자신을 위로했다.지금 예민주는 확실히 모두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예민주의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게다가 목현수 사형이 자신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런 느낌은
깊은 밤, 저택의 서재.7명의 임원들과 전화 통화를 한 무진은 예민주의 말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7 명의 임원들은 확실히 곧 돌아올 것이다.마음이 안정되자 무진은 잠시 생각한 뒤 즉시 홍보부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밤 12시에 모든 인터넷 매체에 통보하도록 해. WS그룹 7명의 고위 임원들은 출국해서 비밀리에 현지 조사를 마친 뒤 돌아왔다.” “모든 소문은 일부 인사들의 악의적인 조작일 뿐이라고 말이야!”구체적인 통보 기준은 홍보 부장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반드시 잘 처리할 테니 마음 놓으세요. 그럼 악의적인 비방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습니까?]“정도에 따라서 해. 너희 홍보팀에서 시행하도록 해. 만약 일부 네티즌들이 말을 와전했을 정도라면 그냥 놔 둬. 만약 누군가 엉큼한 심보를 품고 그랬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해!”[알겠습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일찍 쉬시지요!]전화를 끊은 후, 무진이 깊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은 마침내 푹 잘 수 있겠어.’‘할머니와 고모는 이미 본가로 돌아가셨으니까, 너무 걱정하시지 않게 내일 한 번 가서 소식을 전해드려야겠어.’마침 수프 그릇을 손에 든 성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무진 씨, 눈 밑에 이 다크서클 좀 봐요. 항상 밤을 새울 수는 없어요. 자, 이걸 마셔봐요. 정신을 안정시키고 두뇌를 보양하는 작용이 있어요!”성연의 수프는 그냥 끓이는 게 아니다. 매번 자신의 처방을 첨가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인이 끓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무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수프는 됐으니까 이리 와 봐. 우리 아기하고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맞다, 할머니와 고모에게는 말씀드렸어?”자신의 배를 가볍게 어루만지는 무진의 손을 보자, 성연의 두 눈에는 달콤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아직요! 할머니와 고모님을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임원들이 실종된 사건 때문에 걱정하셔서 나도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경사니까 언제 아시더라도 기뻐하
서한기는 정중하게 예민주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예민주 씨,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적절하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예민주는 서한기도 준수하게 생긴 데다가 아주 강렬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 보고는, 마음속으로 좀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침대로 달려간 뒤 옆으로 누워서 요염한 자세를 취한 채 서한기를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서한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얼른 시선을 돌리고는 감히 예민주와 시선도 부딪치지 못했다.“저는 예민주라고 해요. 당신은요?” 예민주는 마치 어린 아가씨가 자신을 드러내듯이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저는 서한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여태까지 없었던 상황이 펼쳐지자 서한기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나를 이렇게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어.’ ‘좀 이해가 안 되는데.’“안녕하세요, 한기 오빠!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상대방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자신의 매력에 대해 그래도 만족스러웠다.‘그러나 이런 매력도 강무진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어.’‘송성연은 도대체 어떻게 강무진을 꼬신 거야?’심장이 격렬하게 뛰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서한기가 급히 방에서 나오려고 했다.“한기 오빠, 잠깐만요. 성연 언니를 보면 제가 할 얘기가 있다고 오라고 전해주세요.”“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나는 갈 테니까 먼저 푹 쉬도록 해요.”말이 끝나자 서한기는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크게 호흡을 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왜 이러지? 저 예민주에게 무슨 마력라도 있는 걸까?’30분 후, 성연이 방문을 두드리자 예민주가 대답했다.“들어오세요!”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물었다.“사매, 어때, 이 방은 맘에 들어?”“괜찮아요. 아주 맘에 들어요! 언니, 정말 부러워요. 무진 오빠하고 결혼도 한 데다가 아
“무진 씨, 그 7명의 임원들은 곧 귀국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임원들은 유럽의 한 클럽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곧바로 전용기로 데려간 거예요.”“그런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모든 핸드폰을 수거하는 바람에 감쪽같이 실종된 걸로 변한 거예요.”차안에서 성연은 임원들의 일에 대해서 대충 설명했다.예민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성연이 완전히 자신이 주입한 지시에 따라서 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클럽 얘기는 더욱 사실무근이었다.다 듣고 나서도 무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민주에게 물었다.“민주 씨는 발견한 다음에 왜 바로 내게 알리지 않고 성연이에게 알린 거야?”예민주의 눈빛에 교활함이 스쳐 지나가면서 일찌감치 마련해 둔 대답을 말했다.“무진 오빠, 오빠는 분명히 주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빠가 국내에 있을 때 주변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서 감시하는 첩자들이 있었어요.” “오빠가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방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언니에게 아무도 모르게 유럽에 오라고 해서 저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했어요.”“그런데 그 클럽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성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그 클럽은 원래 MS 가문과 관계가 있었던 걸로 추측이 돼요. 보복으로 그 7명의 임원들을 통해서 WS그룹을 파괴하려던 거지요.”“아니면 진교철일 수도 있어요. 내가 사매와 함께 7명의 임원들을 찾았을 때, 모두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중간에 생겼던 일들의 이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지금은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미간을 짚은 채 생각하던 무진은 아내가 말한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고 인정했다.‘연계진은 결국 진교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했어. 하지만 진교철이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그러나 7 명의 임원들이 곧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되자, 무진의 마음도 다소 홀가분해졌다.“무진 오빠,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7 명의 임원들
마음속으로는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무진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예전의 예중천은 명성이 자자했던 대단한 천재였다.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사업의 재질과 의학에서의 조예, 무학 수준도 아주 높았다. 심지어 국제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우러러보던 존재이기도 했다.예중천이 감쪽같이 실종되자 놀란 주요 기관들이 전국과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찾았다.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 예중천의 딸이 바로 무진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예민주는 아주 잘 위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남자가 본다면, 마치 이웃집 아가씨처럼 상큼 발랄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예민주의 시선을 마주한 무진은 섬뜩했다. 그 짙은 남색의 눈동자는 마치 드넓은 심해처럼 사람을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신비로우면서도 뭔가 꺼림직해!’“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로 언니의 남편이신 강무진 씨인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민주가 환한 표정으로 무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예중천 선생님의 따님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진도 예의 바르게 손을 뻗어 가볍게 악수했다.그러나 이렇게 악수만 했는데도 예민주는 마치 심장이 떨리는 듯했다.‘이 남자는 내가 꿈꾸던 훌륭한 남자가 분명해. 내게 어울리는 남자야!’무진과 성연의 대단했던 결혼식 동영상이 인터넷에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에, 예민주도 본 적이 있었다.그때 예민주는 컴퓨터 화면을 부수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뿐이었다. ‘강무진 같은 이런 남자가 어떻게 송성연에게 어울릴 수 있단 말이야?’‘오직 나만이 강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강무진의 모든 업적을 지켜볼 자격이 있어!’예민주는 심지어 이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빛날 것이라고 믿었다.“무진 오빠, 제 이름은 예민주고, 제 아버지
공항 입국 게이트.암담한 눈빛의 성연은 걸음도 부자연스러워서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이 상황을 본 예민주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인 모양이네. 정신을 좀 차리게 해야겠어.’이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은침으로 성연의 허리에 있는 혈을 찔렀다.순간 아픈 표정을 드러냈지만, 곧 눈빛이 되살아난 성연이 고개를 돌려 예민주를 바라보았다.“막내 사매? 여기가 어디야?”성연이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걸 듣자 예민주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보아하니, 내가 연구해서 만든 독이 그래도 썩 효과가 좋은 것 같네.’사람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한 뒤 인식의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 독은, 여민주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그 실험 대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F국의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언니, 이제 귀국했으니까 곧 무진 오빠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무진 오빠가 보고싶죠?” 예민주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약은 성연이 무진을 완전히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예민주의 계획은 전혀 시행할 수가 없다.‘그래, 한 걸음씩 차근차근 해야 해.’ 예민주의 인내심은 대단했다.“응, 무진 씨가 내 남편이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어. 무진씨가 잘해 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운성시에서 살면 돼.” “더 이상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스승님이 너를 잘 보호하라고 당부하셨어!”지금 성연은 더 이상 예전의 성연이 아니라 이미 완전히 변했다. 성연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기억들과 지시가 박혀 있었다.그래서 예민주에 대한 말투는 더없이 온화했다.“응, 언니가 정말 잘해 주시는 걸요! 언니가 외국에 와서 나를 찾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거기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언니가 제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예요!”예민주는 마음속으로는 그야말로 통쾌하게 웃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선량한 척 가장하면서 묵묵히 성연의 기억을 강화하고 있었다.예민주가 설계한 기억 속에서 성연은 어제 오후 3시에
하룻밤 사이에 연운그룹은 완전히 무너졌다. 연계진 회장은 탈세 문제로 구속되었고, 많은 부문의 책임자들도 잇달아 사직했다. 인터넷의 여론이 폭발하면서, 주가는 이튿날에도 어김없이 또 다시 20%나 폭락하며 하한가를 기록했다.회장 대행인 조수경도 이미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도저히 국면을 만회할 수가 없었다. 진교철과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진교철은 여전히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대리인을 시켜서 연운그룹에 한 투자마저 철회했다.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조수경도 재빨리 연운그룹과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수경은 오후에 바로 회장 대행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그룹 전체가 이미 완전히 끝장이 났다. 게다가 여러 여직원들의 고소에 직면해 있어서, 탈세 문제뿐만 아니라 성범죄 문제와도 엮여 있었다.이 보도를 접하면 당연히 즐거운 마음이 들어야 했지만, 지금 무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커피만 연거푸 마시고 있었다.그 7 명의 임원들 사건이 무진을 이렇게 초조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그래함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그래함은, 성연의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줄곧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래서 무슨 사고가 생길까 봐, 어젯밤에 성연과 짜고 거짓말을 했다고 무진에게 빨리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비로소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성연의 핸드폰으로 연달아 전화를 걸었지만 줄곧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소리만 들렸다.손건호와 서한기에게 반드시 단서를 찾으라고 지시한 뒤 지금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곧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손건호의 전화였다.얼른 전화를 받은 무진이 다급하게 물었다.“소식이 있어?”[보스, 사모님의 종적을 찾았습니다. 어제 오후 3시 비행기로 F국 프로방스로 갔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추적하기 위해서 제가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그래, 어서 가.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보고하고. 하지만 반드시 은밀히 해야 해. 실혼전에서 틀림없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무진은 당황
완전히 놀란성연은 멍한 상태가 되었다.실혼전의 캐서린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너 정말 예중천 스승님의 딸이 맞아? 왜, 왜 이렇게 하려는 거야?” 질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예민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수잔이 주는 커피를 받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선배,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버지가 언니에게 그렇게 많이 가르쳐 줬어요. 언니도 은혜에 보답해야 하지 않아요? “그러니 언니가 강무진 씨를 양보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은혜에 보답하는 게 되겠지요!”“웃기지 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돼!”이를 악문 성연의 눈빛에는 살기도 확고하게 배어 있었다.“언니는 안 죽어도 돼요! 그리고 언니가 죽는다면 소용이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언니가 순순히 양보하는 거예요! 나하고 강무진 씨가 행복해야 지내는 모습을 봐야지요.” “그리고 언니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언니가 키우게 할 수도 있어요. 내가 갑자기 아이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내게 줘도 돼요.”예민주의 말투는 마치 농담을 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성연은 예민주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놀라서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수잔은 마치 로봇처럼 성연에게 홍차를 가져다주었다.“송성연 씨, 차 드세요!”“예민주, 네가 말한 계획들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그 7명의 임원들이 없어도 내 남편이 충분히 조정할 수 있어.” “그리고 강씨 가문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겠다는 그런 말을 하니 더 터무니가 없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넌 스승님의 딸도 아니면서 왜 딸이라고 사칭한 거야?”성연의 거듭되는 질문에 갑자기 화가 난 예민주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나를 화나게 해서 더 많은 사실을 드러내게 만들겠다는 거지요! 좋아요, 그럼 내가 아예 말해 줄게요.” “예전에 강무진 씨 부모님 죽음은 우리 예씨 가문과 관계가 있어요. 강씨 가문이 우리 예씨 가문에게 빚진 거지요! 알겠어요?”“내가 강씨 가문의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