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있는 진미선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말을 마친 성연은 나가버렸다.화장실을 나온 성연은 연회 홀로 돌아가지 않고 화원의 한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성연의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고 정교한 눈썹은 짙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성연은 지금 마음이 몹시 복잡하고 초조하다.원래 모든 것을 잊은 채 이 사람들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기분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확실했다.매번 만날 때마다 그 뻔뻔스러움에 놀라곤 한다.바로 이런 게 현실인 것이다. 돈 있고 권세 있으면 아부하고, 돈이 없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애초에 외할머니까지 자신을 포기했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었지만 자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는가?생각해 보던 성연이 쓴웃음을 지었다.그만,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앞으로는 더 이상 이 사람들과 연관이 없는 것이다.이런 짜증나는 것들과 대면해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휴대전화를 꺼내 비밀번호를 푸는데 뒤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누구?”날카로운 눈동자도 뒤따라 간다.그때서야 뒤에 고용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용인은 성연의 눈빛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굳은 채 있었다.성연이 점차 차가운 기운을 벗고 나른한 음성을 회복했다.“여기서 뭐 해요? 소리도 내지 않고?”고용인이 오물거리며 말했다. “저, 작은 사모님께서 혼자 여기 계시길래, 도움이 필요하시면 도와드리려고 대기하고 있었어요.”강씨 집안은 위아래 모두 이 어린 작은 사모님을 소중하게 대한다는 정도는 다들 알고 있었다.그녀가 소리를 내지 않은 이유는 성연을 방해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곁에 있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앞으로 나가 도울 생각이었다.“괜찮아요. 바람 좀 쐬고 들어갈 거예요. 일 보세요.” 다시 몸을 돌린 성연이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상황을 살피던 고용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원을
얼마 지나지 않아 서한기 쪽에 보고가 들어왔다. 수하들에게서 올라온 보고자료를 보던 서한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강씨 집안 사람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고,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들이다.자료를 다 본 서한기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에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은 줄곧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구석에서 서한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서한기의 전화가 오자 바로 받았다.“어때?”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인지 알고 싶은 탓에 그녀의 말투가 몹시 초조하게 들렸다.“보스, 지금 WS 그룹의 모든 실권이 강무진에게 있습니다.” 강무진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때도 숨기려 하지 않았다.강씨 집안이 대외적으로 공개한 비밀 아닌 비밀이기에 쉽게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정말? 거짓말 아니지?” 성연은 속으로 매우 의아함을 느꼈다.‘어쩐지 이 사람들이 그렇게나 정중하게 대하더라니.’‘그런데 도대체 강무진이 언제 WS 그룹의 실권자가 된 거지?’‘얼마 전 안금여가 쓰러지지 않았나?’‘설마, 안금여가 내려 오자, 바로 강무진을 밀어 올렸단 말인가?’‘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강무진이 WS 그룹에서 한 게 아무 것도 없다면 주주들이 절대 그냥 그 자리에 앉히지는 않았을 텐데. 설령 주주들이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해도 강상철과 강상규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이 상황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성연이다.“보스, 보스가 직접 만들어 낸 정보 네트워크에도 가짜가 있을 수 있나요? WS 그룹의 주주들은 이미 도장을 찍어 인정했습니다. 거짓은 아닐 거에요.” 서한기도 자료를 보았을 때 믿기지 않았다.물론 강씨 집안의 사람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리라는 건 진작 짐작하고 있었다.강씨 집안 같이 복잡한 환경에서 그렇게 오래 동안 버티고 있었는데 아무런 밑천도 없을 수 있겠는가.상황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 탓이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봐?” 성연은 속으로 궁금해서 어쩔 줄 몰랐다.“강무진이 다국적 대기업의 합작 프로젝트를 여러 개 손에 쥐
연회 홀로 돌아간 후에도 성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척했다.홀을 몇 바퀴 돌아다니자 연회도 막바지에 이르렀다.사람들의 환성 가운데 성연이 생일케이크를 잘랐다.성연의 키만큼 높다란 케이크 중간에 환하게 켜진 초가 18개 꽂혀있었다.사실 성연의 마음도 꽤 감동적이었다.고용인들이 성연이 자른 케이크를 홀 곳곳을 다니며 나누어 주었다.케이크는 주문제작한 것으로 외국에서 유명한 제빵사가 만든 것이었다.케이크는 부드럽고 크림은 느끼하지 않았다.모두들 고급 음식에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케이크를 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성연이 생일파티의 주인공이고 강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주고 좋은 관계를 가지기 위해 모두들 한 조각씩 받아 들었다.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다.성연도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그녀는 케이크가 의외로 자신의 입맛에 맞아 흡족해했다.안금여는 성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성연아, 이제 너는 성인이야. 할머니는 더이상 바랄게 없구나. 네가 내 희망이란다. 너와 우리 무진이가 서로 잘 지내길 바래.”“할머니, 고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생일은 제게 있어 가장 행복한 생일이었어요.” 사실은 가장 기쁜 생일은 역시 외할머니가 계실 때였지만 이 생일도 나름 괜찮았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강씨 집안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보기 드문 따뜻함을 주었다.“우리 예쁘고 착한 성연이, 앞으로 매년 할머니가 해 줄게.” 성연의 뜻을 오해한 안금여는 성연의 부모가 제대로 생일을 차려 준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성연에 대한 마음속 애정이 더욱 커졌다.“할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성연이 몸을 숙여 안금여를 안았다.안금여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케이크를 먹은 후에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성연은 구석에 서서 케이크 한 조각을 더 먹었다.이때 무진이 웃음기가 담긴 눈을 한 채 다가왔다. 성연이 고개를 들어 의심스럽다는 듯 그를 한 번 보았다.“왜요?”무진이 옆에서 휴지 한 장을
성연은 무진이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하지만 괜찮았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강씨 집안에서 준 선물로 이미 충분했다.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경이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애정을 쏟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강무진 때문이니까.그런데 무진이 먼저 선물을 준비했다는 말을 꺼내자 성연은 그가 준비했다는 선물이 조금 궁금해졌다.“무슨 선물인데요?” 더는 궁금함을 참지 못한 성연이 물었다.“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 궁금증을 유발하는 무진의 말투에 성연은 더 알고 싶어진 성연이 바로 무진의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말해주면 안돼요? 네, 지금 말해줘요?”앞에서 운전하며 성연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손건호가 참지 못하고 몸서리를 쳤다.평소 제멋대로에다 누구도 안중에 없는 것처럼 구는 사모님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애교를 부리니, 어떤 남자가 흔들리지 않겠는가. ‘하, 우리 보스, 버틸 수 있을까.’성연의 새하얀 팔이 자신의 팔 위에서 흔들리며 동시에 향긋한 약향이 코끝을 감돌자, 순간 무진은 저도 모르게 설레임을 느꼈다. ‘내가 왜 이러지? 어린 여자아이 때문에 마음이 들뜨긴 또 처음인데, 이 느낌은 뭐지? 하, 창피하게 심장까지 제멋대로 뛰는 것 같잖아.’고개를 갸웃거리던 무진이 성연의 작고 예쁜 얼굴을 쳐다보았다.손을 들어 성연의 이마를 장난스럽게 톡 치며 말했다.“똑바로 앉아, 곧 도착할 거야. 도착하면 알 수 있을 거야.”무진이 딱밤을 놓자 바로 이마에서 통증을 느낀 성연이 뒤로 물러서며 투덜거렸다.“그냥 말로 하면 되지, 왜 때려요?”살짝 툭 건드렸다고 생각했던 무진의 눈에 벌써 빨개진 성연의 이마가 보였다.‘설마 여자애들은 모두 저렇게 나약한 거야?’자신의 팔에 감긴 성연의 손을 힐끗 쳐다보았다.“누가 먼저 시작했는데?”그의 시선을 따라 아래로 시선을 내린 성연의 눈에 마침 자신의 손이 보였다.갑자기 난처함을 느낀 성연이 감전된 듯 얼른 손을 놓았다
‘블루베이' 고급 전원주택 단지는 성연도 들은 적이 있었다, 심지어 이곳에 건물을 구경하러 온 적도 있었다.‘이런 위치, 이런 건물이면, 한 채 가격만 백 억대인데……. 무진 씨 정말 돈 많은가 봐. 아낌없이 쓰네.’성연이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한참이나 열쇠를 받지 않자 무진이 물었다.“왜? 싫어?”괜히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무진이다.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해야 했지만, 무엇을 선물해야 좋을지 몰랐다.그러다가 이 집이 생각났고, 오랜 고민 끝에 가장 실용적인 선물을 선택한 것이다. 성연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성연의 표정을 보니 싫지는 않는 것 같았다.“무진 씨, 정말 이 집을 나에게 선물로 주는 거예요?” 성연은 왠지 긴장했다.“응.”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비싸고 부담이 되는 돼는 선물인데요.” 이유 없는 선물은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성연이었다.비록 엄청난 재력을 가진 강씨 집안이었지만 이런 백 억대의 집을 선물할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우리 어차피 나중에 결혼할 거잖아, 할머니가 준 선물을 받으면서 내가 준 선물은 안 받는다는 거야?” 무진이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 성연은 그 말 속에 들은 섭섭함을 알아차렸다.“방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너무 비싸서 그랬어요.” 비록 아주 마음에 드는 선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중해야 한다고 성연은 생각했다.“부담 갖지 말고 그냥 받으면 돼. 딴 생각하지 말고. 나중에 집안에 들어가 보면 더 마음에 들 거야. 그리고 이 집, 얼마 하지도 않아.”말하면서 무진이 성연의 손을 잡아당겨 손바닥에 열쇠를 올려 놓았다.멀지 않은 곳에 서서 자기 보스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손건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속으로만 구시렁거렸다.‘이런 집이 얼마 안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우리 보스 밖에 없을 거야.’‘보통 사람이 이런 집을 살려면 얼마나 개고생 해야 하는지 모르시네.’‘이런 집을 저리도 가볍게 선물하고, 우리
성연이 이해가 안되는 말투로 물었다.“그럼요?”‘설마 내 생일인데, 나한테 선물 달라는 건 아니겠지?’‘이건 말이 안 되는 거지?’아무런 말없이 다가간 무진이 손을 뻗어 성연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놀란 성연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뭔가 말하려던 순간 입술이 막혔다.주먹을 쥐고 버둥거리던 손은 바로 무진의 손에 잡혔다.성연의 눈앞으로 아름다운 무진의 얼굴이 다가왔다.무진의 긴 속눈썹이 성연의 뺨에 닿을 듯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바닥에 내다 꽂혔을 것이다.성연이 이런 기회를 호락호락 허락할 리 만무할 터.그러나 무진이 키스해 오자 성연은 의외로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무진에게서 나는 체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자 왠지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하며 끊임없이 뛰었다.점차 커지는 심장 박동 소리를 무진이 들었을지도 몰랐다.키스가 얼마 동안이나 지속되었는지 모르겠다. 길었는지, 아니면 짧았는지.숨이 막혀오며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무진이 손을 놓았다.그 틈을 타 바로 무진을 밀어낸 성연이 부끄럽고 화난 얼굴로 무진을 노려보았다.“아저씨, 지금 갑자기 무슨 짓이에요?”‘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게 나에게 키스할 수 있어!’“우린 이미 약혼했어. 조만간 결혼할 사이인데, 키스하면 안돼? 그리고 키스 한 번과 건물 한 채를 바꾸었는데 완전 이득이지, 안 그래?”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무진이 말했다.‘이 아이의 맛은 여전히 예전처럼 달콤해.’‘열 여덟 살이라고 하지만 아직 좀 어리니, 천천히 가야지. 당분간 키스로 만족할 밖에.’무진이 하는 변명을 멍하니 듣고 있던 성연은 어이가 없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맞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좀 이상했다.무진이 움직일 때 진작 어두운 곳을 찾아 투명인간처럼 서 있던 손건호.무진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보스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음, 우리 보스, 할 건 다 하시네요!’“어쨌든 앞으로는 절대 이러지 마세요!” 성연이 무진
모골이 송연한 무진의 말에 성연은 온몸이 오싹해졌다.몸을 낮춰 무진의 팔 아래로 빠져나온 성연이 뒤로 물러나 무진과 몇 걸음 거리를 둔 채 말했다.“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성연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강무진과는 그저 연극에 불과한 것이다.진심을 담은 사랑은 당연히 진짜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키스는 강아지가 핥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서로 사이가 더 깊어지면 지금처럼 담담하게 무진을 대할 수 없을 것이다.요즘은 비교적 개방적이고 별로 개의치 않는 사회 분위기라지만, 성연은 그렇지 않았다.뼛속까지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성연이다.성연의 안색이 카멜레온처럼 이리저리 변하는 것을 보고 있던 무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아이의 작은 머리통을 두드려 보고 싶을 정도다.무진이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내 보기에도 그리 급하진 않은 것 같은데?”무진의 표정을 본 성연이 헛웃음을 지었다.그제야 무진이 자신에게 농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억울한 마음에 성연도 무진을 놀리고 싶었다.“아저씬 급해 보이네요, 아주 많이.”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좀 의아했다. 무진은 사적으로 만나는 여자가 없었다. 그런데WS그룹의 실질적인 대표가 무진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 알게 된 참이었다.그와 같은 신분이나 지위에 있는 사람은 보통 밖에서 만나는 여자가 최소 한 두 명은 있는 법 아닌가.재벌들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세계가 그렇다는 것이다.하지만 무진은 그들과 달리 여자를 찾지 않았다.이런 생각하던 성연이 재미있다는 듯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성연이 웃는 모습을 보던 무진 또한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을 입에 문 채 물었다.“뭘 생각했길래, 그렇게 기분 좋게 웃어?” 성연이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무진에게 말했다.말을 다 끝낸 후에야 아차 싶은 마음과 함께 말 실수를 후회했다.하지만, 말을 돌리기엔 이미 늦어 버린 터.무진의 얼
강운경은 방금 전까지도 연회장에서 성연을 찾고 있었다.그러다 고용인들에게서 무진이 이미 성연을 데려갔다는 말을 들은 참이다.성연이 오늘의 주인공인데 무진이 데리고 나가 버렸으니, 연회가 계속 진행될 수 있을 리가.운경이 안금여의 귓가에 속삭이며 참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무진이 이렇게 생각이 없다니요. 이처럼 큰 연회에서 말도 안 하고 가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예전에는 이렇게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지 않았는데. 이제 그룹을 모두 맡았다고 더 이상 아무 눈치도 안 보는 건지, 뭔. 가고 싶다고 가고, 아예 제마음대로야. 뒤처리는 다 우리한테 떠맡기고 말이지.”운경의 말을 듣고 있던 안금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잠한 표정이었다. 속으로 운경과 다른 생각을 하며.어린 소녀였다가 이제 막 성인이 된 성연이다. 무진은 당연히 그런 약혼녀를 데리고 서로의 감정을 키우려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정말 그래서 빨리 증손자를 안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무진의 이런 행동을 막을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응원할 생각이다. 엄마 안금여가 말을 하지 않자 운경은 괜히 마음이 초조해졌다.“엄마, 성연이도 없는데 이제 어쩌죠? 파티를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요?”안금여는 딸을 흘겨보았다.“뭐가 그렇게 초조한 거야? 너도 이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구나. 케이크, 성연이가 이미 잘랐잖아? 성연이 여기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어? 시간이 되면 하객들은 알아서 돌아갈 거다. 소개할 사람도 이미 다 소개했고 말이다. 오늘 밤 주인공은 성연이 아니니? 주인공이 나가 놀고 싶으면 그만인 게지.”안금여에게 핀잔을 듣긴 했지만 운경 또한 투덜대지 않았다.‘강씨 집안 제일 어르신 엄마도 신경 안 쓰시는데, 내가 왜 걱정해?’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에 강일헌, 강상철, 강상규, 강진성 등이 늦게 도착했다.뒤에 블랙 슈트의 경호원 부대도 거느린 채.보아하니 축하하기 위해 온 것 같지 않았다. 도리어 분위기를 깨고 있는 듯.홀을 둘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