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경이 생각할 때 이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평소 가족들이 너무 감싸주니까 성연이 이러는 거였다.엄마가 괜찮다고 하니 다들 마음을 놓았다.그러나 엄마에게 문제가 생겼더라면 누가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운경이 성연을 책망하듯이 바라보았다. 아직 화가 가시지 않은 말투다.“네가 의사 자격증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거니?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어쩌려고 그랬니?”성연이 바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고모님.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무진과 운경의 대화 시간을 제대로 계산 못한 자신의 불찰이었다.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할머니에게 침을 놓았었는데…….오늘 운이 정말 나빴다.운경에게 딱 걸렸을 뿐만 아니라 집안 다른 사람들도 알아버렸다.다음 번에는 지금보다 한층 더 어려울 테지.그렇지만 할머니 안금여를 도우려는 거지 무슨 나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운경은 마치 자신이 할머니에게 무슨 극악무도한 짓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를 경계하는 모습이다.성연의 마음이 착잡했다.선의로 도우려다 오해를 받은 셈이다.입이 있어도 제대로 해명할 길도 없고.자신에게 치료를 요청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지 이 강씨 집안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자신이 먼저 나서서 치료해주는 경우는 진짜 극소수였다.상대방이 내미는 준 수표를, 그리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흥미를 끄는 게 있는 지 등의 조건을 봤었다.이렇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치료해 주는 것은 처음이었다.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좋은 소리 못 듣다니.가끔은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침술 방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운경으로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당연히 성연이 나쁜 의도를 가졌다고 오해했을 터.운경의 입장이 되어 안금여를 외할머니라고 생각해 보니 자신의 표정도 좋을 것 같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많이 편안해져서 마음속의 불만을 잠재웠다.“사람의 목숨이 장난 같니? 더욱이 강씨 집안은 네가 실험 놀이를 하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아직 어린 데도 사리
운경의 마음은 어찌되었든 가라앉았다. 그러나 입을 다문 채 여전히 냉담한 얼굴이다.잠시 생각해 보든 승호는 예전 자신의 장모 안금여가 갑자기 좋아졌던 상황이 생각났다.그의 기억에, 당시 안금여는 곧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셨다.그런데 누군가 저승 길에서 안금여를 도로 끌고 온 셈이었다.안금여의 몸에도 작은 바늘구멍이 몇 개가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현미경으로 관찰한 후에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설마 지난번 장모님을 구했던 사람이 송성연이란 말이야?’그런 생각을 하던 승호는 저도 모르게 성연을 쳐다보았다.무진 또한 승호의 의심을 알아차렸다.성연이 자신의 의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모부 승호가 성연에게 곤란한 질문을 할까 싶은 무진이 얼른 끼어들었다.“고모, 고모부 말씀이 맞아요. 할머니가 괜찮으시니 됐어요. 성연이 어쩌다 실수를 한 거니 고모가 너그러이 봐 주세요.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지금 뭐하는 거니? 내가 일부러 성연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그럼 엄마의 목숨으로 실험을 해도 괜찮다는 거야?”옆에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무진이 성연을 위해 한 두 마디 거들자 운경이 보기에 무진의 마음이 이미 성연에게 기운 듯했다.“고모, 할머니는 별일 없으세요. 저희의 마음은 모두 할머니를 낫게 하려는 거잖아요. 성연이도 마찬가지예요. 절대 할머니에게 해가 되게 하지 않을 겁니다.”무진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말했다.“쟤는 지 스스로 제대로 말도 못하니? 네가 왜 대신 말해? 쟤가 무슨 침을 놓는다고 그래? 그러다 잘못 놓기라도 하면? 쟤가 책임 지기라도 할 거야?”운경의 마음속에 쌓였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일부러 성연을 몰아세우려던 건 아니었다.다만 절대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주의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화를 초래할 테니까.“고모, 성연이도 이미 자기가 잘못한 거 알고 있을 테니 그렇게 화 내실 필욘 없어요.”무진이 한숨을 내쉬었다.‘하, 이 고모 고집이 너무 세.’
방에 들어온 뒤에도 무진은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마음이 불편했던 성연이 무진에게 해명하려 입을 뗐다.“할머니를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무진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알아.”그의 눈에 다 보였다. 성연이 단순하지 않다 해도 아직은 어린 소녀이다. 그 속이 쉽게 읽혔다.무진은 자신이 성연을 괘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뒤에서 몰래 이런 일을 할 성연이 아니었다.무진의 반응이 다소 의아한 성연이 물었다.“어, 어째서요? 그렇게 날 믿어요?”말투에 웃음기를 담고 있지만, 무진이 어떻게 자신을 믿을 수 있지, 하는 의문이었다.무진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네가 정말 나쁜 마음을 가졌다면 내가 널 처리할 테니까.”“처리? 내가 진짜 할머니한테 손을 쓰면 당신이 날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성연이 무진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마치 총탄 없는 전쟁처럼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그저 단순한 응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물론. 네가 어디로 도망을 간다 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낼 거야.” 이 말을 하는 무진은 차가운 느낌을 주지 않았다. 의외일 정도로.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질 정도다. 착각이겠지만.잠시 멍했던 성연이 얼른 정신을 차리며 입을 삐죽거렸다.‘치, 큰 소리는.’중요한 건 성연이 하마터면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뻔했다는 사실.그래도 무진의 믿음에 성연은 기분이 좋아졌다.방에 들어온 성연은 욕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나온 후 침대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머리만 갖다 대면 잠이 든다. 정말 잘 잔다.불면증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다.무진이 부러워하는 점이다.잠결에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성연이 눈은 살짝 뜨니 커다란 그림자가 보였다.그림자가 무진이라는 걸 인식하자 아무런 경계심도 들지 않았다.“왜? 안 자요?”졸린 음성이 말랑말랑한 느낌이다.무진의 마음이 부드러워졌다.아이를 어르듯 무진이 이불 위로 성연의 어깨를
이튿날, 아침을 먹은 후 무진이 성연을 데리고 자신들의 집으로 가려 했다. 성연과 고모 운경이 부딪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화원에서 나온 집사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도련님, 며칠 더 안 계시고요?”“응.”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성연의 마음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모의 말이 지나쳐 듣기 거북했다. 성연이 진짜 할머니의 목숨을 구했다면 더.나중에 후회할 사람은 고모일 것이다.상황을 잘 모르는 고모의 오해로 성연이 상처받지 않도록, 모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당분간 서로 못 만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모처럼 돌아오셨는데, 회장님이 또 이런 상태시니. 도련님이 고택에 계시면 회장님 기분이 더 좋아지실 텐데요.” 재차 권하는 집사였다.정신이 맑을 때 안금여가 가장 아끼던 사람이 손자 무진이었다.밖에서 무진을 ‘바보 미치광이’로 취급할 때도 손자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가끔 무진이 패기 없고, 말을 안 듣는다고 암암리에 투덜대긴 했지만.하지만 안금여 곁을 오래 지킨 사람으로서, 마음 깊이 무진을 아끼는 안금여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무진이 돌아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하루 종일 기다리기도 했다.몸이 좋지 않은 안금여가 가장 곁에 두고 싶은 사람 역시 무진이 아니겠는가.“고모와 고모부가 여기 계시면 돼지 뭐. 내가 여기 있어도 도움이 안되는 걸. 고택은 회사에서 너무 멀어 출근하기 불편해.” 무진의 말은 말도 안되는 핑계다. 여기나 거기나 사실 거리는 매한가지인 것을.하지만 틀리지 않은 것이 안금여는 지금 자각을 못하는 상태니 여기에 남아 있어도 별 도움이 못되긴 하다.성연과 고모의 일을 집사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집사가 성연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될지도 모르니.“저…….” 집사는 어떻게 만류해야 할지 몰랐다.얼른 주방에 들러 떡 한 상자를 들고 나왔다.“작은 사모님이 이 떡을 좋아하시는 것 같더군요. 오늘 특별히 좀 많이 만들었습니다. 돌아가시면 작은 사모님이랑 같이 드세요.”요 며칠 안금여를 대하는 성연의
이틀 뒤, 조승호는 안금여의 치료약을 받았다. 약을 시험해 볼 준비를 마치고 안금여를 다시 병원으로 데려왔다.자고 있는 성연을 누군가 흔들어 깨웠다.짜증이 가득한 얼굴로이다. 이제 가까스로 제대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실험을 할 필요 없이.‘아, 누구야 도대체? 사람 잠도 못 자게 하고.’성연이 마지 못해 눈을 뜨자 곧바로 무진의 잘생긴 얼굴과 마주하게 되었다. 날렵하게 올라간 눈썹, 별이 박힌 듯한 눈동자,그러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돌아 누우며 계속 자려는데.“송성연, 일어나, 빨리.” 이불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성연을 보며 무진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못 일어나요.” 성연아 단호하게 한마디 던졌다.여전히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음성이 웅얼거렸다.“진짜 안 가?” 무진이 더 이상 그녀를 건드리는 대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에 한 마디 툭 던졌다.“그럼 나 혼자 병원에 가서 고모부의 해독제가 할머니에게 효과 있는지 볼 수밖에.”그 말을 들은 성연 즉시 침대에서 튀어나왔다.성연이 일어난 걸 확인한 무진이 입술 끝을 올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겨우 무진의 등만 보게 된 성연이 이를 갈았다.“이전에는 강무진이 이렇게 못된 걸 왜 몰랐지?”고의로 그런 게 틀림없다.고모부가 해독제를 받았다고 진작 말해 줬으면 됐을 걸.‘그래도 고모부 동작이 꽤 빠르시네.’자신이 예상한 시간보다 더 빨랐다.침대에서 일어난 성연이 세수하고 옷을 차려 입은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무진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눈살을 찌푸리며 툭 뱉었다.“뭐 해요? 안 가고.”‘설마 나 혼자 가게 하는 건 아니겠지?’‘이것도 안돼?’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펼치며 무진이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다.“조급해하지 말고. 먼저 아침을 먹고 다시 이야기하지.”그제야 고개를 들어보니 식탁에 차려진 아침식사 일인분이 눈에 들어왔다.강무진은 이미 다 먹었을 테니 이건 자
강상철과 강상규에게도 소식이 들어갔다.큰집에서 저렇게 떠들썩하니 움직이는데 모르기가 더 어려울 판.거실에 앉은 강상철과 강상규 앞에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가 놓여 있었다.찻잔을 든 강상규가 코끝에 대고 가볍게 향을 맡은 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둘째 형님네 차가 제일입니다. 같은 차인데도 제가 우리면 이런 향이 안 나옵니다.”강상철은 픽 웃었다.“네 형수 아니냐. 온종일 쓸데없는 짓거리만 할 줄 알아도 차 우리는 솜씨만큼은 봐 줄만 하지.”“형님 복이네요.” 강상규는 슬쩍 웃었다.“차야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 타라고 하면 돼지. 근데 큰집에서 해독제를 찾았다면서?” 강상철의 말투에는 알 수 없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해독제?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큰 형수 치료하려고 미칠 겁니다. 지금 꿈이냐 생시냐 하고 있을 테고.” 강상규 또한 대수롭잖게 여기는 표정이다.“이미 다 늙었는데 구할 건 또 뭐야. 저 늙은이가 죽지 않고 뒤에서 몰래 무진을 훈련시켜 결국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잖아?”회의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는 강상철은 치가 떨려왔다.전략을 잘 짰다고 생각했다. 곧 큰 집을 끌어내릴.그런데 또?설마 일평생 저 자리와는 인연이 없는 운명이라고?그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일이 이렇게 되니 할 말이 없습니다. 강무진을 저 자리에서 쫓아낼 방법을 찾는 게 시급합니다.” 강무진이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고려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자신들이 평소 강무진을 너무 무시하는 바람에 진 거라고 여겼다.어떤 말도 소용없었다.“누가 생각이나 했겠냐? 강무진이 뒤에서 그렇게 큰 수를 숨기고 있을 줄. 지금 그 놈 위치에서 또 누가 건드릴 수 있겠어?” 강상철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했다.강무진이 화상으로 연결했던 회사들.저들의 지분은 볼 만한 정도가 못 된다. 하물며 강무진이 상속권을 가지고 있으니.그 늙은이들은 이런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누구든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쪽으로 붙을 터.
강상철이 냉소를 흘렸다.“강무진이 자리에 오른 후, 네 쪽에서는 몇이나 잘렸어?”“적어도 절반은 될 걸요.” 이 일만 생각하면 강상규도 머리가 아프다.최근 이쪽 세력이 엄청 약해졌다. 예전에 곳곳에 박아 뒀던 자기 편 인사들이 강무진 때문에 거의 다 잘려나가고 있는 판이었다.그 놈은 도대체 어쩜 그렇게 이쪽 라인들만 정확하게 골라 내는지. 분명 계속 이쪽을 주시해 왔을 것이다.그야말로 족집게 수준이다.이건 절대 우연일 수가 없었다.강무진 이 놈이 어찌나 전광석화 같이 손을 쓰는지 안금여 보다 더 지독했다. 예전에는 대충 눈감아 주기도 했는데, 지금 강무진이 실권을 쥐니 자신들의 손실이 막대했다.“다시 우리 사람을 심을 방법을 생각해야 해.” 자신들을 대신할 눈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앞으로 강씨 본가에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들을 알지 못할 것이다.“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방법을 생각해야 해. 무진이 자리에 오르고 처음 얼마간은 기세 등등 하겠지. 당분간은 그러라고 해.”무진의 능력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강경하게 맞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럴 땐 잠시 바람을 피하는 게 상책.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손자 강일헌과 강진성이 들어왔다.한쪽에 잠자코 대기하면서 두 할아버님의 말씀을 들었다.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지금 사태가 긴박하니 아무래도 불똥이 튀지 않게 있어야 했다.“아니면, 무진이 그 놈 주변부터 손을 쓰면 어떨까? 강무진 주변에 손건호라는 비서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진이 비밀을 많이 알고 있을 거야. 약점만 쥘 수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강상철은 자신이 말하면서 점점 흥분되었다. 제법 그럴 듯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안 됩니다. 그 놈 주변의 것들은 모두 특수 훈련을 받은 놈들입니다. 무진이 우리 옆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엎드려 있으면서도 들키지 않았던 건 내부 결속력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그때 가서 괜히 인심도 얻지 못한 채 무진이 그 놈에게 되려 당
지금의 WS 그룹은 거의 강무진이 한 손으로 받치고 있다 봐야했다.강일헌과 강진성 두 사람 모두 굳은 표정이다.자신들이 관리하는 계열사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강무진이 격노한 상항에 자신들은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이제야 비로소 강무진이 상대하기 까다롭고 만만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할아버님, 계열사에서 지원금 20억을 지원 요청했는데, 강무진은 6억만 승인했어요. 이래서야 어떻게 사업을 합니까?” 화가 난 강일헌의 얼굴이 푸르죽죽하다.강무진이 결재하던 그 때가 마침 직원 월급이 나가는 날이었다.지원금이 너무 깍여서 하마터면 월급도 지불하지 못할 뻔했다.결국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제 돈으로 메꿨다.“겨우 6억? 그럴 리가…….”잠시 생각하던 강상철이 갑자기 미심쩍다는 듯이 강일헌을 째려보았다.“너 예전에 중간에서 리베이트 많이 해먹었지?”그렇지 않으면 20억을 올렸는데, 무진이 저렇게 깍았다는 게 말이 안된다.순간 멍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눈으로 강일헌은 무의식적으로 부정했다. “아니에요, 할아버님, 제가 어떻게…….”“너 지금 사실대로 말해! 그런 적 있어? 없어?” 강상철이 눈에 띄게 화를 내었다. 음성도 거칠었다.강일헌의 목이 움츠러들었다.원래 이런 배짱이 없는 사람이었다.강상철이 화가 난 걸 보니 더 무서워 말할 수가 없었다.상황을 지켜보던 강상규가 얼른 사태를 적당히 수습하고자 강일헌을 구슬렀다.“일헌아, 여기 우리뿐이야. 솔직히 말해 봐라. 무슨 일이든 우리끼리 같이 해결해야지.”강상규의 온화한 태도에 강일헌이 용기를 내어 이실직고했다.“매번 본사에서 돈을 보내오면 제가 1억 정도 하고 고객들이랑 친구들 접대도 하고 그랬어요. 이건 원래 본사가 결재해야 하는 겁니다. 예전에 큰할머니가 계셨을 때는 이렇게 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화가 난 강상철이 냉소를 지었다.“너, 눈을 크게 뜨고 봐라. 지금 회사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지금은 계열사뿐 아니라
무진의 표정은 굳어졌고, 마음은 마치 무거운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성연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곧 순식간에 슬픔에 휩싸이면서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고, 곧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졌다.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목현수의 눈도 순식간에 뿌옇게 변했다.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자,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다.설사 모두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런 결말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끝내 작은 기대라도 품은 채 기적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듯했다.그러나 눈앞에서 스승님의 딸인 예민주가 직접 발표했으니, 모든 기회가 다 무너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불세출의 천재였던 예중천 스승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예민주는 비통하게 울었고, 성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른 채 억지로 참았지만 끝내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다.성연의 곁으로 다가간 무진이 성연을 품에 안고 다독였다.“성연아, 너무 슬퍼하지 마! 스승님은 분명히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무진이 조용히 말했다.실제로 예중천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진도 마찬가지로 슬펐다. 한때 자신이 정말 닮고 싶었던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최고봉의 성과를 이룬 사람이었기에.비록 지금은 무진의 사업에서의 성과가 이미 예중천을 넘어섰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숭배했던 사람이다.목현수가 예민주를 위로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막내 사매, 너무 슬퍼하지 마...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나하고 성연이가 너를 잘 돌볼게. 스승님은 반드시 네가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실 거야!”비록 예민주가 목현수에게 처음에 준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순간의 슬픔은 진실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목현수는 마음속으로 예민주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잠시 후 사람들의 감정이 비로소 좀 진정되었다.두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눈물을 닦은 예민주는,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난 뒤 아버지의 과거를 다시 이야기했다.“
“성연아, 성연아, 일어나, 네 사형이 왔어!”무진이 가볍게 부르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성연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무진의 목을 덥석 안았다.처음 깨어났을 때의 그 얼떨떨한 성연의 표정을 보고 있던 무진이 갑자기 성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뽀뽀하지 마요. 아직 양치질도 안 했는데!”성연이 큰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오랜만에 무진에게 애교를 부리자, 무진은 또 다시 살인미소를 지었다.일어나서 세수를 마친 성연은 아래층의 거실로 내려갔다.목현수는 이미 도착했고 손건호도 돌아와 있었다.목현수의 곁에 수줍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던 예민주는 성연을 보자 곧바로 인사를 했다.“언니, 일어났네요! 그래도 정말 여유롭네요.”“성연아, 너 다음에는 이렇게 무모하게 굴면 안 돼? 무진 씨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도 사람들을 데리고 유럽에서 너를 찾을 준비까지 다 마쳤어. 너는 그때 무진 씨의 말투를 모를 거야!”목현수가 곧바로 무진의 내막을 폭로하자, 무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난감한 상황을 완화시키려고 했다.그러나 그 말을 듣자, 성연은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정말 기뻤다.“사형, 알겠어요!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그런데 샤넬은요? 왜 함께 오지 않았어요?”성연이 물었다.“어떻게 와?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져서 배가 수박만 해! 나는 이제 아빠가 된다고!” 목현수가 눈썹을 실룩거리면서 무진에게 한껏 자랑했다.무진이 썩소를 날리면서 성연을 힐끗 쳐다보자 성연도 따라서 썩소를 날렸다.부창부수인 이 젊은 부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목현수가 물었다.“설마... 너희들도 생긴 거야?”성연이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자, 무진은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그래! 어차피 내 아이가 너희 아이보다 일찍 태어날 거야. 너희 애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맏이가 되겠지!”목현수는 자신을 위로했다.지금 예민주는 확실히 모두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예민주의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게다가 목현수 사형이 자신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런 느낌은
깊은 밤, 저택의 서재.7명의 임원들과 전화 통화를 한 무진은 예민주의 말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7 명의 임원들은 확실히 곧 돌아올 것이다.마음이 안정되자 무진은 잠시 생각한 뒤 즉시 홍보부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밤 12시에 모든 인터넷 매체에 통보하도록 해. WS그룹 7명의 고위 임원들은 출국해서 비밀리에 현지 조사를 마친 뒤 돌아왔다.” “모든 소문은 일부 인사들의 악의적인 조작일 뿐이라고 말이야!”구체적인 통보 기준은 홍보 부장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반드시 잘 처리할 테니 마음 놓으세요. 그럼 악의적인 비방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습니까?]“정도에 따라서 해. 너희 홍보팀에서 시행하도록 해. 만약 일부 네티즌들이 말을 와전했을 정도라면 그냥 놔 둬. 만약 누군가 엉큼한 심보를 품고 그랬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해!”[알겠습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일찍 쉬시지요!]전화를 끊은 후, 무진이 깊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은 마침내 푹 잘 수 있겠어.’‘할머니와 고모는 이미 본가로 돌아가셨으니까, 너무 걱정하시지 않게 내일 한 번 가서 소식을 전해드려야겠어.’마침 수프 그릇을 손에 든 성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무진 씨, 눈 밑에 이 다크서클 좀 봐요. 항상 밤을 새울 수는 없어요. 자, 이걸 마셔봐요. 정신을 안정시키고 두뇌를 보양하는 작용이 있어요!”성연의 수프는 그냥 끓이는 게 아니다. 매번 자신의 처방을 첨가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인이 끓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무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수프는 됐으니까 이리 와 봐. 우리 아기하고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맞다, 할머니와 고모에게는 말씀드렸어?”자신의 배를 가볍게 어루만지는 무진의 손을 보자, 성연의 두 눈에는 달콤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아직요! 할머니와 고모님을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임원들이 실종된 사건 때문에 걱정하셔서 나도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경사니까 언제 아시더라도 기뻐하
서한기는 정중하게 예민주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예민주 씨,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적절하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예민주는 서한기도 준수하게 생긴 데다가 아주 강렬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 보고는, 마음속으로 좀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침대로 달려간 뒤 옆으로 누워서 요염한 자세를 취한 채 서한기를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서한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얼른 시선을 돌리고는 감히 예민주와 시선도 부딪치지 못했다.“저는 예민주라고 해요. 당신은요?” 예민주는 마치 어린 아가씨가 자신을 드러내듯이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저는 서한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여태까지 없었던 상황이 펼쳐지자 서한기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나를 이렇게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어.’ ‘좀 이해가 안 되는데.’“안녕하세요, 한기 오빠!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상대방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자신의 매력에 대해 그래도 만족스러웠다.‘그러나 이런 매력도 강무진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어.’‘송성연은 도대체 어떻게 강무진을 꼬신 거야?’심장이 격렬하게 뛰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서한기가 급히 방에서 나오려고 했다.“한기 오빠, 잠깐만요. 성연 언니를 보면 제가 할 얘기가 있다고 오라고 전해주세요.”“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나는 갈 테니까 먼저 푹 쉬도록 해요.”말이 끝나자 서한기는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크게 호흡을 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왜 이러지? 저 예민주에게 무슨 마력라도 있는 걸까?’30분 후, 성연이 방문을 두드리자 예민주가 대답했다.“들어오세요!”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물었다.“사매, 어때, 이 방은 맘에 들어?”“괜찮아요. 아주 맘에 들어요! 언니, 정말 부러워요. 무진 오빠하고 결혼도 한 데다가 아
“무진 씨, 그 7명의 임원들은 곧 귀국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임원들은 유럽의 한 클럽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곧바로 전용기로 데려간 거예요.”“그런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모든 핸드폰을 수거하는 바람에 감쪽같이 실종된 걸로 변한 거예요.”차안에서 성연은 임원들의 일에 대해서 대충 설명했다.예민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성연이 완전히 자신이 주입한 지시에 따라서 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클럽 얘기는 더욱 사실무근이었다.다 듣고 나서도 무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민주에게 물었다.“민주 씨는 발견한 다음에 왜 바로 내게 알리지 않고 성연이에게 알린 거야?”예민주의 눈빛에 교활함이 스쳐 지나가면서 일찌감치 마련해 둔 대답을 말했다.“무진 오빠, 오빠는 분명히 주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빠가 국내에 있을 때 주변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서 감시하는 첩자들이 있었어요.” “오빠가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방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언니에게 아무도 모르게 유럽에 오라고 해서 저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했어요.”“그런데 그 클럽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성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그 클럽은 원래 MS 가문과 관계가 있었던 걸로 추측이 돼요. 보복으로 그 7명의 임원들을 통해서 WS그룹을 파괴하려던 거지요.”“아니면 진교철일 수도 있어요. 내가 사매와 함께 7명의 임원들을 찾았을 때, 모두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중간에 생겼던 일들의 이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지금은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미간을 짚은 채 생각하던 무진은 아내가 말한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고 인정했다.‘연계진은 결국 진교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했어. 하지만 진교철이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그러나 7 명의 임원들이 곧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되자, 무진의 마음도 다소 홀가분해졌다.“무진 오빠,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7 명의 임원들
마음속으로는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무진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예전의 예중천은 명성이 자자했던 대단한 천재였다.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사업의 재질과 의학에서의 조예, 무학 수준도 아주 높았다. 심지어 국제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우러러보던 존재이기도 했다.예중천이 감쪽같이 실종되자 놀란 주요 기관들이 전국과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찾았다.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 예중천의 딸이 바로 무진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예민주는 아주 잘 위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남자가 본다면, 마치 이웃집 아가씨처럼 상큼 발랄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예민주의 시선을 마주한 무진은 섬뜩했다. 그 짙은 남색의 눈동자는 마치 드넓은 심해처럼 사람을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신비로우면서도 뭔가 꺼림직해!’“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로 언니의 남편이신 강무진 씨인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민주가 환한 표정으로 무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예중천 선생님의 따님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진도 예의 바르게 손을 뻗어 가볍게 악수했다.그러나 이렇게 악수만 했는데도 예민주는 마치 심장이 떨리는 듯했다.‘이 남자는 내가 꿈꾸던 훌륭한 남자가 분명해. 내게 어울리는 남자야!’무진과 성연의 대단했던 결혼식 동영상이 인터넷에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에, 예민주도 본 적이 있었다.그때 예민주는 컴퓨터 화면을 부수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뿐이었다. ‘강무진 같은 이런 남자가 어떻게 송성연에게 어울릴 수 있단 말이야?’‘오직 나만이 강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강무진의 모든 업적을 지켜볼 자격이 있어!’예민주는 심지어 이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빛날 것이라고 믿었다.“무진 오빠, 제 이름은 예민주고, 제 아버지
공항 입국 게이트.암담한 눈빛의 성연은 걸음도 부자연스러워서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이 상황을 본 예민주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인 모양이네. 정신을 좀 차리게 해야겠어.’이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은침으로 성연의 허리에 있는 혈을 찔렀다.순간 아픈 표정을 드러냈지만, 곧 눈빛이 되살아난 성연이 고개를 돌려 예민주를 바라보았다.“막내 사매? 여기가 어디야?”성연이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걸 듣자 예민주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보아하니, 내가 연구해서 만든 독이 그래도 썩 효과가 좋은 것 같네.’사람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한 뒤 인식의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 독은, 여민주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그 실험 대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F국의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언니, 이제 귀국했으니까 곧 무진 오빠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무진 오빠가 보고싶죠?” 예민주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약은 성연이 무진을 완전히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예민주의 계획은 전혀 시행할 수가 없다.‘그래, 한 걸음씩 차근차근 해야 해.’ 예민주의 인내심은 대단했다.“응, 무진 씨가 내 남편이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어. 무진씨가 잘해 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운성시에서 살면 돼.” “더 이상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스승님이 너를 잘 보호하라고 당부하셨어!”지금 성연은 더 이상 예전의 성연이 아니라 이미 완전히 변했다. 성연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기억들과 지시가 박혀 있었다.그래서 예민주에 대한 말투는 더없이 온화했다.“응, 언니가 정말 잘해 주시는 걸요! 언니가 외국에 와서 나를 찾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거기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언니가 제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예요!”예민주는 마음속으로는 그야말로 통쾌하게 웃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선량한 척 가장하면서 묵묵히 성연의 기억을 강화하고 있었다.예민주가 설계한 기억 속에서 성연은 어제 오후 3시에
하룻밤 사이에 연운그룹은 완전히 무너졌다. 연계진 회장은 탈세 문제로 구속되었고, 많은 부문의 책임자들도 잇달아 사직했다. 인터넷의 여론이 폭발하면서, 주가는 이튿날에도 어김없이 또 다시 20%나 폭락하며 하한가를 기록했다.회장 대행인 조수경도 이미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도저히 국면을 만회할 수가 없었다. 진교철과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진교철은 여전히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대리인을 시켜서 연운그룹에 한 투자마저 철회했다.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조수경도 재빨리 연운그룹과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수경은 오후에 바로 회장 대행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그룹 전체가 이미 완전히 끝장이 났다. 게다가 여러 여직원들의 고소에 직면해 있어서, 탈세 문제뿐만 아니라 성범죄 문제와도 엮여 있었다.이 보도를 접하면 당연히 즐거운 마음이 들어야 했지만, 지금 무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커피만 연거푸 마시고 있었다.그 7 명의 임원들 사건이 무진을 이렇게 초조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그래함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그래함은, 성연의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줄곧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래서 무슨 사고가 생길까 봐, 어젯밤에 성연과 짜고 거짓말을 했다고 무진에게 빨리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비로소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성연의 핸드폰으로 연달아 전화를 걸었지만 줄곧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소리만 들렸다.손건호와 서한기에게 반드시 단서를 찾으라고 지시한 뒤 지금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곧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손건호의 전화였다.얼른 전화를 받은 무진이 다급하게 물었다.“소식이 있어?”[보스, 사모님의 종적을 찾았습니다. 어제 오후 3시 비행기로 F국 프로방스로 갔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추적하기 위해서 제가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그래, 어서 가.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보고하고. 하지만 반드시 은밀히 해야 해. 실혼전에서 틀림없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무진은 당황
완전히 놀란성연은 멍한 상태가 되었다.실혼전의 캐서린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너 정말 예중천 스승님의 딸이 맞아? 왜, 왜 이렇게 하려는 거야?” 질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예민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수잔이 주는 커피를 받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선배,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버지가 언니에게 그렇게 많이 가르쳐 줬어요. 언니도 은혜에 보답해야 하지 않아요? “그러니 언니가 강무진 씨를 양보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은혜에 보답하는 게 되겠지요!”“웃기지 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돼!”이를 악문 성연의 눈빛에는 살기도 확고하게 배어 있었다.“언니는 안 죽어도 돼요! 그리고 언니가 죽는다면 소용이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언니가 순순히 양보하는 거예요! 나하고 강무진 씨가 행복해야 지내는 모습을 봐야지요.” “그리고 언니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언니가 키우게 할 수도 있어요. 내가 갑자기 아이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내게 줘도 돼요.”예민주의 말투는 마치 농담을 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성연은 예민주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놀라서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수잔은 마치 로봇처럼 성연에게 홍차를 가져다주었다.“송성연 씨, 차 드세요!”“예민주, 네가 말한 계획들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그 7명의 임원들이 없어도 내 남편이 충분히 조정할 수 있어.” “그리고 강씨 가문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겠다는 그런 말을 하니 더 터무니가 없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넌 스승님의 딸도 아니면서 왜 딸이라고 사칭한 거야?”성연의 거듭되는 질문에 갑자기 화가 난 예민주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나를 화나게 해서 더 많은 사실을 드러내게 만들겠다는 거지요! 좋아요, 그럼 내가 아예 말해 줄게요.” “예전에 강무진 씨 부모님 죽음은 우리 예씨 가문과 관계가 있어요. 강씨 가문이 우리 예씨 가문에게 빚진 거지요! 알겠어요?”“내가 강씨 가문의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