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호가 모든 해외 관계망을 총동원해서 브라이언 교수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었지만 시간만 지체되고 아직도 찾지 못했다. 결국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안금여의 병세는 그대로 방치되다시피 한 상태였다.무진뿐만 아니라 손건호도 애가 탈 지경이었다.그런 무진 측에 비하면 성연 측은 진전이 있었다.그동안 틈만 나면 연구소에서 지낸 성연이다.서한기 또한 성연 옆을 지켰다. 보스가 일하는데 수하 직원들이 쉴 도리가 있나.“보스, 완성했어요.” 뛰쳐나오며 소리치는 서한기의 음성이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연구를 진행하며 수면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성연은 지금 연구실 소파에 누워 잠을 보충하고 있던 중이었다.서한기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잠에 빠져 있던 성연을 깨웠다.성연은 좀 심한 ‘모닝 성깔’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한기가 전한 소식은 그녀의 짜증을 싹 없앴다.“정말 성공한 거야?” 지금 ‘성공했다’는 건 물론 안금여의 치료제를 말하는 것이다.자신이 자는 동안 수하의 연구원들이 치료제를 개발할 줄이야.인재들을 힘들게 키운 보람이 있었다.“물론이죠. 저와 같이 보러 가시죠.” 서한기의 목소리가 다시 차분해졌다.치료제 개발은 중차대한 일이었다. 안 그랬다면 감히 잠든 보스 송성연을 깨우는 간 큰 짓은 못했을 터.성연이 서한기와 함께 내부 깊숙한 곳에 있는 연구실로 들어갔다.옆에는 이미 흰 가운을 입은 조수 몇 명이 서 있었다.모두 눈 밑이 시커멓다.밤새 쉬지도 못한 행색들이다. 바로 이 치료제 때문에.성연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았다. 과연 시험관 아래에 순백색의 영롱하고 투명한 알약 한 알이 있었다.실험기구를 사용해서 약물의 성분을 검사한 결과, 안금여의 치매 증세를 해독시켜 줄 수 있음을 먼저 확인했다. 성연은 특수 용기에 치료제를 담았다.그리고 주머니에 넣은 후 직원 모두에게 감사를 전했다.“요 며칠 정말 고생했어요. 모두에게 3일간의 휴가를 줄 테니 놀고 싶은 만큼 놀다 오세요. 모든 비용은 서한기 비서가 결재해 줄 겁니다.”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성연은 여전히 고민 중이다. 할머니에게 어떤 식으로 약을 먹여야 자연스러워 보일지.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을 터.다만,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저녁을 먹는 동안 할머니를 돌보기 편하도록.요 며칠 안금여의 주치의인 조승호가 고택에 머물렀다. 장모 안금여를 살필 겸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운경이 남편 조승호에게 물었다.“엄마 치료제는 어떻게 되어가요? 가능성은 좀 있어요?”조승호는 이 분야의 전문가였다.운경의 희망이 모두 그의 어깨에 달려있었다.무진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회사 경영으로 이미 충분히 바쁜 아이니까.결국 남편 조승호만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조승호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이미 가닥이 잡혔어. 외국에서 이런 방면 약을 연구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며칠이면 회복을 도울 약이 배송될 거야.”“정말요? 약을 보내오면 엄마가 예전과 같아지실까요?” 운경의 눈이 반짝거렸다.‘엄마가 정말 호전되시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즘 매일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엄마 안금여에 대한 걱정 때문.지금의 엄마가 귀찮다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앞으로 평생 이런 모습의 엄마를 돌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다만 평생을 바쁘게 사신 만큼 외부에 대해 아무런 지각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생을 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뿐.그건 엄마에게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엄마가 눈을 떠 직접 보셨으면 좋겠다. 회장직과 강씨 집안 본가를 지켜낸 자신들을.이제 엄마는 안심하고 노후를 보낼 수 있으실 텐데.특히나 흉악한 자들에 의해 쓰러지셨으니 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조승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했다.“다만 아직 실험 단계여서 약의 효과를 단정하긴 어려워.”약을 드시고 회복하시지 못하면 아내 운경이 더 실망할까 봐 미리 설명했다.운경의 눈이 한순간 어두워졌지만, 그렇다고 낙담한 건 아니었다.‘그래도 지금은 희망이
저녁 식사 후, 운경과 무진은 또 서재에 들어가 업무 처리로 바빴다.조승호는 의학 자료들을 검토하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자연 남은 성연이 안금여를 돌보게 되었다.평소처럼 할머니가 앉은 휠체어를 방 안으로 밀고 간 성연이 이야기도 들려주고 노래도 불러 드렸다.할머니를 돌보며 성연이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이야기 중간에 노래를 곁들이니 할머니가 좀 더 빨리 잠이 들었던 것이다.10분도 안 되어 할머니 안금여가 잠이 들었다.성연이 가방에서 침을 꺼냈다.조명 아래 차가운 빛을 띠는 침이 특별 제작한 케이스에 한 줄로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긴 것, 짧은 것, 굵은 것, 가는 것 모두 있었다.넓은 부위에는 굵은 침을 사용했다. 혈관은 그렇게 민감하지 않았다. 뇌나 눈 등 중요한 부위라면 가는 침을 쓸 수밖에 없다. 중요 부위의 신경들은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만약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감히 침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성연은 케이스 안에서 가느다란 침 여러 개를 꺼내어 평소대로 안금여의 뇌에 꼽기 시작했다.동작 하나하나가 매우 신중했다.다행히 아무런 돌발 상황 없이 시침이 끝났다. 성연의 등이 땀으로 흥건했다.이미 습관이 된 지라 아무렇게 옆에서 휴지 한 장을 뽑아 등을 닦았다.그리고는 한쪽에 앉아 안금여를 바라보았다.이번에는 휴대폰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반드시 안금여의 반응을 관찰하며 침을 뽑을 시간을 추산해야 했다.다행히 평소 무진과 운경의 회의가 비교적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그 참에 성연도 한숨 돌릴 여유가 있었다.성연이 긴장을 풀려고 할 때 문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성연은 아직도 침이 꽂혀 있는 안금여를 보며 이마에 힘을 주었다. ‘지금 여기로 오는 건가?’지금 침을 꽂은 지 절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뽑을 수 없었다.뽑게 된다면 분명 영향이 있을 터.하지만 방이 이만큼 큰데도 숨을 곳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잠시,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성
조승호와 무진이 서둘러 안금여의 방으로 달려왔다.안금여의 모습을 본 승호의 안색이 굳어지며 급히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혹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된 운경 또한 내내 긴장된 표정으로 엄마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틀 전만 해도 성연이 사려 깊다고 칭찬했던 운경이었다. 하지만 이 일로 엄마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성연을 아무리 좋아했다 하더라도.뒤따라왔던 무진이 할머니 안금여의 머리에 꽂혀 있는 바늘을 보고 잠시 멍했다.그러나 화가 나진 않았다.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성연이 사용한 침은 그의 다리에 놓던 침구와 같은 것이다.성연의 실력은 뛰어났다. 그래서 성연이 할머니를 어떻게 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무진이 고모 운경 곁으로 가서 말했다. “고모,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진정하세요.”“네가 직접 봐, 네 할머니 모습을. 내가 지금 진정할 수 있겠니?” 침 치료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시각적인 면에서 충분히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공포스럽기도 할 터.머리에 침을 놓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것이다.‘이렇게 긴 바늘에 찔려서 얼마나 아프실까?’생각할수록 무섭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모, 일단 진정하세요.” 무진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작은 소리로 달랠 뿐이다.“엄마가 이 지경이 되셨는데도 넌 쟤를 감싸고 싶니? 모두 엄마와 네가 평소 너무 관대하게 대하니까 저러는 거 아니야!” 성연을 돌아보는 운경의 얼굴은 노기로 충만했다.성연은 구석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운경이 자신을 믿지 않는 한 아무리 설명해 본들 무슨 소용인가.“고모부님이 검사하고 계시니 좀 기다려 보세요.” 무진 역시 지금은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최종적으로 결과가 나와야 납득시킬 수 있을 터.무진의 말을 들은 운경은 성연이 있는 쪽은 외면한 채 조승호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간신히 진정이 되었다.빠른 시간에 남편이 잘 봐줄 것이다.그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엄마를 살피던 남편이 손
운경이 생각할 때 이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평소 가족들이 너무 감싸주니까 성연이 이러는 거였다.엄마가 괜찮다고 하니 다들 마음을 놓았다.그러나 엄마에게 문제가 생겼더라면 누가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운경이 성연을 책망하듯이 바라보았다. 아직 화가 가시지 않은 말투다.“네가 의사 자격증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거니?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어쩌려고 그랬니?”성연이 바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고모님.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무진과 운경의 대화 시간을 제대로 계산 못한 자신의 불찰이었다.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할머니에게 침을 놓았었는데…….오늘 운이 정말 나빴다.운경에게 딱 걸렸을 뿐만 아니라 집안 다른 사람들도 알아버렸다.다음 번에는 지금보다 한층 더 어려울 테지.그렇지만 할머니 안금여를 도우려는 거지 무슨 나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운경은 마치 자신이 할머니에게 무슨 극악무도한 짓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를 경계하는 모습이다.성연의 마음이 착잡했다.선의로 도우려다 오해를 받은 셈이다.입이 있어도 제대로 해명할 길도 없고.자신에게 치료를 요청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지 이 강씨 집안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자신이 먼저 나서서 치료해주는 경우는 진짜 극소수였다.상대방이 내미는 준 수표를, 그리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흥미를 끄는 게 있는 지 등의 조건을 봤었다.이렇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치료해 주는 것은 처음이었다.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좋은 소리 못 듣다니.가끔은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침술 방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운경으로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당연히 성연이 나쁜 의도를 가졌다고 오해했을 터.운경의 입장이 되어 안금여를 외할머니라고 생각해 보니 자신의 표정도 좋을 것 같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많이 편안해져서 마음속의 불만을 잠재웠다.“사람의 목숨이 장난 같니? 더욱이 강씨 집안은 네가 실험 놀이를 하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아직 어린 데도 사리
운경의 마음은 어찌되었든 가라앉았다. 그러나 입을 다문 채 여전히 냉담한 얼굴이다.잠시 생각해 보든 승호는 예전 자신의 장모 안금여가 갑자기 좋아졌던 상황이 생각났다.그의 기억에, 당시 안금여는 곧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셨다.그런데 누군가 저승 길에서 안금여를 도로 끌고 온 셈이었다.안금여의 몸에도 작은 바늘구멍이 몇 개가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현미경으로 관찰한 후에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설마 지난번 장모님을 구했던 사람이 송성연이란 말이야?’그런 생각을 하던 승호는 저도 모르게 성연을 쳐다보았다.무진 또한 승호의 의심을 알아차렸다.성연이 자신의 의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모부 승호가 성연에게 곤란한 질문을 할까 싶은 무진이 얼른 끼어들었다.“고모, 고모부 말씀이 맞아요. 할머니가 괜찮으시니 됐어요. 성연이 어쩌다 실수를 한 거니 고모가 너그러이 봐 주세요.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지금 뭐하는 거니? 내가 일부러 성연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그럼 엄마의 목숨으로 실험을 해도 괜찮다는 거야?”옆에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무진이 성연을 위해 한 두 마디 거들자 운경이 보기에 무진의 마음이 이미 성연에게 기운 듯했다.“고모, 할머니는 별일 없으세요. 저희의 마음은 모두 할머니를 낫게 하려는 거잖아요. 성연이도 마찬가지예요. 절대 할머니에게 해가 되게 하지 않을 겁니다.”무진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말했다.“쟤는 지 스스로 제대로 말도 못하니? 네가 왜 대신 말해? 쟤가 무슨 침을 놓는다고 그래? 그러다 잘못 놓기라도 하면? 쟤가 책임 지기라도 할 거야?”운경의 마음속에 쌓였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일부러 성연을 몰아세우려던 건 아니었다.다만 절대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주의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화를 초래할 테니까.“고모, 성연이도 이미 자기가 잘못한 거 알고 있을 테니 그렇게 화 내실 필욘 없어요.”무진이 한숨을 내쉬었다.‘하, 이 고모 고집이 너무 세.’
방에 들어온 뒤에도 무진은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마음이 불편했던 성연이 무진에게 해명하려 입을 뗐다.“할머니를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무진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알아.”그의 눈에 다 보였다. 성연이 단순하지 않다 해도 아직은 어린 소녀이다. 그 속이 쉽게 읽혔다.무진은 자신이 성연을 괘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뒤에서 몰래 이런 일을 할 성연이 아니었다.무진의 반응이 다소 의아한 성연이 물었다.“어, 어째서요? 그렇게 날 믿어요?”말투에 웃음기를 담고 있지만, 무진이 어떻게 자신을 믿을 수 있지, 하는 의문이었다.무진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네가 정말 나쁜 마음을 가졌다면 내가 널 처리할 테니까.”“처리? 내가 진짜 할머니한테 손을 쓰면 당신이 날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성연이 무진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마치 총탄 없는 전쟁처럼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그저 단순한 응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물론. 네가 어디로 도망을 간다 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낼 거야.” 이 말을 하는 무진은 차가운 느낌을 주지 않았다. 의외일 정도로.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질 정도다. 착각이겠지만.잠시 멍했던 성연이 얼른 정신을 차리며 입을 삐죽거렸다.‘치, 큰 소리는.’중요한 건 성연이 하마터면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뻔했다는 사실.그래도 무진의 믿음에 성연은 기분이 좋아졌다.방에 들어온 성연은 욕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나온 후 침대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머리만 갖다 대면 잠이 든다. 정말 잘 잔다.불면증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다.무진이 부러워하는 점이다.잠결에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성연이 눈은 살짝 뜨니 커다란 그림자가 보였다.그림자가 무진이라는 걸 인식하자 아무런 경계심도 들지 않았다.“왜? 안 자요?”졸린 음성이 말랑말랑한 느낌이다.무진의 마음이 부드러워졌다.아이를 어르듯 무진이 이불 위로 성연의 어깨를
이튿날, 아침을 먹은 후 무진이 성연을 데리고 자신들의 집으로 가려 했다. 성연과 고모 운경이 부딪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화원에서 나온 집사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도련님, 며칠 더 안 계시고요?”“응.”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성연의 마음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모의 말이 지나쳐 듣기 거북했다. 성연이 진짜 할머니의 목숨을 구했다면 더.나중에 후회할 사람은 고모일 것이다.상황을 잘 모르는 고모의 오해로 성연이 상처받지 않도록, 모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당분간 서로 못 만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모처럼 돌아오셨는데, 회장님이 또 이런 상태시니. 도련님이 고택에 계시면 회장님 기분이 더 좋아지실 텐데요.” 재차 권하는 집사였다.정신이 맑을 때 안금여가 가장 아끼던 사람이 손자 무진이었다.밖에서 무진을 ‘바보 미치광이’로 취급할 때도 손자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가끔 무진이 패기 없고, 말을 안 듣는다고 암암리에 투덜대긴 했지만.하지만 안금여 곁을 오래 지킨 사람으로서, 마음 깊이 무진을 아끼는 안금여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무진이 돌아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하루 종일 기다리기도 했다.몸이 좋지 않은 안금여가 가장 곁에 두고 싶은 사람 역시 무진이 아니겠는가.“고모와 고모부가 여기 계시면 돼지 뭐. 내가 여기 있어도 도움이 안되는 걸. 고택은 회사에서 너무 멀어 출근하기 불편해.” 무진의 말은 말도 안되는 핑계다. 여기나 거기나 사실 거리는 매한가지인 것을.하지만 틀리지 않은 것이 안금여는 지금 자각을 못하는 상태니 여기에 남아 있어도 별 도움이 못되긴 하다.성연과 고모의 일을 집사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집사가 성연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될지도 모르니.“저…….” 집사는 어떻게 만류해야 할지 몰랐다.얼른 주방에 들러 떡 한 상자를 들고 나왔다.“작은 사모님이 이 떡을 좋아하시는 것 같더군요. 오늘 특별히 좀 많이 만들었습니다. 돌아가시면 작은 사모님이랑 같이 드세요.”요 며칠 안금여를 대하는 성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