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강무진의 오른팔이자 비서인 손건호는 보스의 지시가 다소 이해되지 않았다.“우리 화물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이득을 얻게 할 수는 없지. 저들 쪽의 부두에 정박할 수 없다면 다른 쪽 부두로 바꾸면 되는 법이야.”눈을 가늘게 뜬 무진이 손건호의 물음에 명쾌하게 대답했다.마침내 무진의 뜻을 파악한 손건호.“MS가문은 유럽에서 그 영향력이 상당합니다. 보스, 이 방법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그렇다고 MS 가문의 뜻대로 되게 해?” 무진이 코웃음을 치며 손건호의 말을 받았다.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MS 가문과는 원수 사이가 될 게 확실한 상황.MS 가문에서 이쪽의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는 이상 이쪽에서 저들에게 기회를 줄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한 일.“네, 알겠습니다, 보스. 제가 즉시 가서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 제가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손건호가 대답했다.무진이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그의 비서인 손건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지시를 따를 게 분명했다.“아니, 내가 직접 간다.”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보스 강무진의 말에 손건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했다.“보스, 직접 가시다니요? MS 가문 인간들이 얼마나 음흉하고 악랄한 놈들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만약 보스에게 무슨 사고가 생기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손건호, 내 실력이 네 보다 못하지 않음을 잊지 마라.” 무진이 직접 나선 지도 꽤 오래된 지라 다들 잊고 있었을 뿐.사실 꾸준히 몸을 단련해 왔던 무진의 몸놀림은 손건호를 비롯한 수하들에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무진이 이처럼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손건호 역시 다른 방법이 없었다.그저 보스를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밖에.환복을 하고 가면을 쓴 무진은 밤이 되자 몇 대의 차량을 이끌고 화물이 압류되어 있는 부두로 향했다.물리적인 방법으로 강제 억류되어 있는 화물선들을 빼내 다른 부두로 옮길 계획이다.아무리 MS 가문이라 해도 한 두개의 부두도 아
이번 일에 대해 무진은 성연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성연에게 얘기해 본들 걱정거리만 하나 더 안겨줄 뿐, 자신이 알아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한기의 입을 통해 무진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된 성연.밤이 되자 성연 또한 유럽에 와 있는 자신의 수하들을 소집해서 부두로 갈 준비를 했다.성연의 계획은 무진의 것과 동일했다. 바로 화물선을 몰래 빼내어 화물들을 안전하게 내릴 수 있는 곳으로 몰고 가는 것. 화물을 절대 그곳에 묶어 둘 수는 없었다.서한기가 운전하고 성연은 조수석에 앉았다.서한기는 얼굴에 가면을 쓴 채 활동하기 편한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성연을 쳐다보며 속으로 감탄했다.‘보스의 이런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무척 반갑네.’성연은 눈을 감고 있어도 서한기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운전에 집중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결국 성연이 번쩍 눈을 뜨고 서한기의 시선을 마주했다.“보스, 보스가 직접 임무를 수행한 지 엄청 오래되었다는 거 알아요?” 서한기가 입을 열었다.“왜 그게 불만이야? 이제 칼을 휘두르며 피를 보는 날은 끝났어. 앞으로 너희들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야.”성연과 조직에서 관리하고 있는 회사들은 벌써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만큼의 돈을 충분히 벌었다.다만 지금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그들 조직의 존재가 아직 필요할 뿐.임무가 없을 때도 아수라문의 조직원들은 여전히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끊임없이 아래로 기어야만 자유를 얻을 기회가 있었다.일부는 자극적인 이런 생활을 좋아했다.“아주 좋군요. 그날을 기대하죠.” 지금의 생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서한기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지금의 생활에 익숙해진 그로서도 사무실에 앉아 있으라고 한다면 역시 불편할 게 뻔하다.‘됐어, 한 걸음 한 걸음 가 보는 거지 뭐.’‘보스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하아, 우리 보스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나 애쓰는 걸 강무진은 언제 알게 될까요?”서한
부두 양측면에서 갑자기 수십 개의 검은 그림자들이 등장했다.모두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총기가 제일 많이 보였다.어둠 속에서 날아간 총알은 피아를 구별하기 힘들어 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다행히 양쪽 편 모두 민첩한 동작으로 피하며 사상자는 없었다.그러다 나중에 새로 등장한 이들이야 말로 MS 가문 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너무나 위급한 상황.맞은편의 사람들도 화물선을 빼내려 왔는지 모른 채 서로 싸우고 있던 성연.‘어쩌면 무진 씨 쪽 사람들일지도 몰라.’‘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아서 다행이야.’‘그러나 이번에는 MS 놈들의 뜻대로 되게 할 순 없어.’성연은 서한기에게 지시했다.“서한기, 맞은편 사람들과 합심해서 먼저 MS 놈들부터 처리하자.”자신들 같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법.마침 협력 상대도 있으니 일단 목숨부터 챙긴 후에 다시 따질 일이다.역시 성연과 같은 생각을 한 무진이 똑같은 지시를 손건호에게 내렸다.보스의 말을 즉시 알아들은 손건호.조금 전까지 서로 덤벼 싸울 뻔한 양측의 사람들이 지금은 바로 연합해서 MS 가문 쪽 사람들을 마주하고 싸웠다.무진이나 성연 쪽과 옷차림이 달랐던 MS 가문 쪽의 인원들은 육안으로 쉽게 구분되었다.이때 서한기의 실력이 여실히 드러났다.과연 송성연의 오른팔 다웠다.몸놀림이 몹시 민첩할 뿐만 아니라 싸우면서도 여유가 넘쳤다.지난 번 매복한 체 자신들을 기습했던 자들에 비해 오늘 나온 자들이 더 많았다.MS 가문 쪽에서도 눈앞의 저 몇 명이 가장 내세울 만한 이들로 보였다.그러나 손건호 또한 결코 뒤지지 않았다.서한기와 손건호, 모두 얼굴의 절반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어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그때 두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는 순간, 서한기는 등 뒤의 손건호가 어째 좀 익숙하게 느껴졌다.언제나 입을 닫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서한기.바로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이봐 친구, 나는 어째 네가 좀 익숙한 것 같은데? 우
싸움은 매우 격렬했다.맞은편의 MS쪽 인원이 너무 많은 터라 서한기와 손건호도 싸우는 게 쉽지 않았다.처음에는 시시덕거리며 손건호에게 말도 걸고 하던 서한기 역시 점점 조용히 싸움에만 집중했다.다행히 이번에 무진과 성연 양측 모두 에이스 팀으로 동원한 터라 아직 밀리지 않았다.항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 중턱에서 야시경을 들고 전황을 주시하던 무진은 수시로 돌발상황에 대한 지시를 서한기에게 내리고 있었다.성연 역시 항구 옆 등대 위에서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양측의 주요 인물이어서 수하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직접 싸움에 뛰어들지 않았다.마침내 무진의 이터너티와 성연의 아수라문의 수하들이 연합해서 MS 가문의 이삼 십 명을 쓰러뜨렸다.결국 이길 수 없다 판단한 상대방은 즉시 철수하며 달아났다. 양쪽의 협공에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 그렇지 않았다면 손실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달아나는 저들을 보며 성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이쪽 편의 인명 피해가 없었다. ‘모두 무사하면 됐어.’연합한 상대가 무진 쪽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성연도 안심하고 화물선을 그들에게 양보했다.이제 MS 가문 쪽 사람들이 모두 달아났으니 안심하고 화물선을 끌고 갈 수 있을 터.계산을 마친 성연은 즉시 서한기에게 철수하라고 지시했다.계속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던 서한기 역시 자기 쪽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야시경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무진이 손건호에게 지시했다.“손 비서, 저들에게 얘기해 봐. 내가 저들의 리더를 만나고 싶어한다고.”서한기가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한 손건호는 정말이지 그와 다시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보스의 말도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손건호는 맞은편의 드러나지 않은 리더를 제외하면 서한기의 발언권이 셀 것이라 짐작했다.맞은편의 무리들 중에서 서한기만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이봐.” 손건호가 앞으로 나서며 서한기를 불렀다.발걸음을 멈춘 서한기의 입에서 손건호의 화
어젯밤 같이 연합해서 MS쪽을 상대했던 자들의 실력이 상당히 좋았다.그 자리를 벗어난 후에 성연은 서한기에게 그 자들의 내력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서한기가 알아온 바에 따르면 그들은 뜻밖에도 유명한 용병단체 이터너티 쪽 사람들이었다.이터너티, 이제까지 강무진을 돕기 위해 나선 적이 여러 차례였다.성연은 속으로 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이가 누구이며 또 무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계속 생각했다.원래 A국 사람들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성연은 만남에 응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이제 이터너티가 무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래서 성연은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계속 궁리하는 가운데 성연은 기숙사에서 화장품 박스를 들고 학교 옆의 한 호텔에서 화장을 시작했다.박스 안에는 일체의 화장품들이 빼곡히 있었다. 모두 성연이 특수 약품으로 제작한 것들로 역시 특수하게 제조된 클렌징 워터로 지워야만 한다.자신의 안전과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서한기는 짝다리를 짚은 채 성연이 화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나른한 표정으로 턱을 괸 채 말했다.“그나저나 보스, 정말 내가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래도 이터너티 아닙니까? 무슨 위험한 일이 발생할 줄 알고요?”성연은 과감하게 고개를 가로젓은 후 다시 화장을 하면서 대답했다.“아니, 저쪽에서는 아직 내 신분을 모르고 있잖아. 저들이 정중하게 초대했으니 만나러 가도 괜찮아.”“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곽연철 대표가 언제 유럽에 올지도 모릅니다. 곽연철이 없으면 나는 정말 너무 심심하다고요.”서한기가 괴롭다는 듯이 말했다.성연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곽연철은 업무로 온종일 바쁠 테니 그를 귀찮게 하지 말아.”“보스, 무슨 말씀이세요? 곽연철도 아마 저를 보고 싶어할 거라고요.” 서한기는 콧방귀를 뀌며 성연의 말에 반박했다.성연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은 후 입을 다물었다.약 한 시간 정도에 걸쳐 화장을 한 후에야 성연의 분장이 완성되었다.칼라렌즈에 짙은
성연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먼저 고개를 돌리며 인사했다.“반갑습니다.”남자의 모습을 마주하고 확인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성연은 완전히 멍했다.‘알고봤더니 이터너티의 보스가 무진 씨였어.’‘어쩐지 무진 씨가 위태로울 때마다 이터너티 쪽에서 출현한다 했더니.’그 우연 같았던 여러 차례를 자신은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성연은 좀 당황했지만 얼른 침착함을 되찾았다.무진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얼굴을 바꿀 정도로 화장을 한 성연.성연도 무진에게 인사했다.“반갑습니다.” 무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성연에게 최대한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뭘 드시겠습니까?”무진에게 어떤 단서도 흘리지 않기 위해 성연은 일부러 굵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조용히 말했다.“카푸치노로 하죠.”성연의 대답에 잠시 가만히 있던 무진이 웃으며 말했다.“마담, 여기는 술집이라 카푸치노는 없습니다. 뭐 물론 당신이 원한다면 사람을 보내 준비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잠시 지금 만나는 곳이 술집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던 성연은 좀 당황스러웠다.무진 앞에서 이런 망신 아닌 망신을 당한 성연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마주해야 할 것은 마주해야 하는 법.성연은 이내 흠, 흠 목을 가다듬은 후에 대답했다.“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알코올 도수 약한 칵테일 한 잔이면 됩니다.”이에 무진은 성연을 위해 색감이 화려한 칵테일 한 잔을 선택한 후 메뉴판을 수하에게 건넸다.수하가 이내 문을 밀고 나간 후에 룸 안에는 무진과 성연 두 사람만 남았다.성연이 자신의 수하를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기에 무진도 자연히 자신의 수하를 룸 안에 남겨둘 수가 없었다.괜히 허세를 부리는 건 결국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므로.성연을 위해 주문한 칵테일이 바로 나왔다. 전문적인 서빙 훈련을 받은 게 분명한 종업원은 여기저기 기웃거림 없이 성연 앞에 칵테일 잔만 내려놓고 바로 나갔다.무진이 성연을 위해 주문한 칵테일은
무진과 성연의 이번 만남에서는 품위가 흘러 넘쳤다.무진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성연을 살펴보았다.사실 성연을 처음 본 순간 약간 놀랐다.나이가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수라문을 장악하고 있는 문주는 뜻밖에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아수라문 이터너티 만큼 국제적으로 명성이 나 있는 강대한 조직 중의 하나.그곳의 리더로서 눈앞의 여성은 아직 너무 젊어 보였다.무진은 다소 믿기지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두 눈이 정말 예뻤다.칼라렌즈를 꼈다 해도 반짝반짝한 것이 몹시 예쁘다.무진의 시선을 느낀 성연은 마침 고개를 돌리며 무진의 시선을 마주했다.붉은 입술이 살짝 올라가며 매혹적인 시선을 보냈다.“강 대표님, 몰래 저 훔쳐보시다가 딱 걸리셨네요.”가볍게 고개를 흔든 무진은 성연의 말을 부인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그저 제 약혼녀와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봤습니다.”무진이 약혼녀를 언급하는 순간 성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무진 씨는 도대체 무슨 저런 예리한 눈을 가진 거야? 내가 이렇게 변장을 했는데도 내 본 모습과 비슷한 점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이야?’가까스로 침착함을 가장한 성연이 농담으로 얼버무리려 했다.“강 대표님처럼 뛰어나신 분께 약혼녀가 있으셨군요. 정말 몰랐네요.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내 약혼녀는 아주 훌륭한 여성이죠.” 성연을 언급할 때면 무진의 눈은 저도 모르게 온화한 기색을 띄었다.“대표님 약혼녀를 닮았다고 하시니 정말 기분이 좋군요.” 이 말을 하는 성연은 마음이 좀 복잡했다.자신에 대한 무진의 진심은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음이 한 눈에 보였다.약혼녀에 대한 언급은 기본적으로 모든 이성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네, 두 사람의 눈이 아주 닮았군요.” 무진은 별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거지 굳이 인정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눈앞에 있는 아수라문의 문주를 좀 더 관찰했을 뿐이다.일단 시원시원한 사람이라는 점을 어젯밤의 일을 통해 기본적으로 알 수 있었다
또다시 웨이터를 부른 무진은 두 사람을 위한 술 두 잔을 주문했다.모두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들로.“문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아직 문주의 이름을 모르는군요.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무진의 말은 내내 정중하면서도 예에 어긋남이 없었다.잠시 멍하니 있던 성연은 아무렇게나 이름 하나를 불러 주었다.“물론이지요. 저는 선우자경이라고 합니다.”무진의 한쪽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갔다. 왠지 이 이름이 가짜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면전에서 내색하지 않았다.“선우라, 정말 보기 드문 성씨군요. 보통 역사서나 사극에서나 볼 듯한 데요.”성연은 뻔뻔스럽게 큰소리 쳤다.“그건 대표님께서 못 들어 보신 것뿐이죠.”그리고 계속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강 대표님은 WS그룹의 대표일 뿐만 아니라 그처럼 강한 조직의 수장이기도 하셨군요. 원래 WS그룹의 세력이었군요.”지난번 둘째, 셋째 일가와 무진이 맞섰을 때 무진은 이 조직을 전혀 동원하지 않았다.무진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둘째, 셋째 일가는 무진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만약 저들이 무진의 신분을 알았더라면 무진과 맞선 걸 후회했을 것이다.무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무슨 말씀을요.”“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하세요? 만약 강 대표님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시면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고 봐야겠지요.”성연은 무진이 너무 겸손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의 예민함, 정신력 등은 모두 조직에서 탑이라 할 수 있다.그런 자신이 무진의 곁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면서도 그 정체를 깨닫지 못했던 것.성연은 만약 무진이 먼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자신은 일생 강무진이 그처럼 강력한 조직의 수장일 것이라 짐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이번에 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성연은 무진이 자신을 속였다고 탓하지 않았다.어찌 되었든 자신 또한 무진에게 물어보지 않았기에 무진이 자신에게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