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강무진의 오른팔이자 비서인 손건호는 보스의 지시가 다소 이해되지 않았다.“우리 화물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이득을 얻게 할 수는 없지. 저들 쪽의 부두에 정박할 수 없다면 다른 쪽 부두로 바꾸면 되는 법이야.”눈을 가늘게 뜬 무진이 손건호의 물음에 명쾌하게 대답했다.마침내 무진의 뜻을 파악한 손건호.“MS가문은 유럽에서 그 영향력이 상당합니다. 보스, 이 방법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그렇다고 MS 가문의 뜻대로 되게 해?” 무진이 코웃음을 치며 손건호의 말을 받았다.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MS 가문과는 원수 사이가 될 게 확실한 상황.MS 가문에서 이쪽의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는 이상 이쪽에서 저들에게 기회를 줄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한 일.“네, 알겠습니다, 보스. 제가 즉시 가서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 제가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손건호가 대답했다.무진이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그의 비서인 손건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지시를 따를 게 분명했다.“아니, 내가 직접 간다.”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보스 강무진의 말에 손건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했다.“보스, 직접 가시다니요? MS 가문 인간들이 얼마나 음흉하고 악랄한 놈들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만약 보스에게 무슨 사고가 생기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손건호, 내 실력이 네 보다 못하지 않음을 잊지 마라.” 무진이 직접 나선 지도 꽤 오래된 지라 다들 잊고 있었을 뿐.사실 꾸준히 몸을 단련해 왔던 무진의 몸놀림은 손건호를 비롯한 수하들에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무진이 이처럼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손건호 역시 다른 방법이 없었다.그저 보스를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밖에.환복을 하고 가면을 쓴 무진은 밤이 되자 몇 대의 차량을 이끌고 화물이 압류되어 있는 부두로 향했다.물리적인 방법으로 강제 억류되어 있는 화물선들을 빼내 다른 부두로 옮길 계획이다.아무리 MS 가문이라 해도 한 두개의 부두도 아
이번 일에 대해 무진은 성연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성연에게 얘기해 본들 걱정거리만 하나 더 안겨줄 뿐, 자신이 알아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한기의 입을 통해 무진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된 성연.밤이 되자 성연 또한 유럽에 와 있는 자신의 수하들을 소집해서 부두로 갈 준비를 했다.성연의 계획은 무진의 것과 동일했다. 바로 화물선을 몰래 빼내어 화물들을 안전하게 내릴 수 있는 곳으로 몰고 가는 것. 화물을 절대 그곳에 묶어 둘 수는 없었다.서한기가 운전하고 성연은 조수석에 앉았다.서한기는 얼굴에 가면을 쓴 채 활동하기 편한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성연을 쳐다보며 속으로 감탄했다.‘보스의 이런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무척 반갑네.’성연은 눈을 감고 있어도 서한기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운전에 집중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결국 성연이 번쩍 눈을 뜨고 서한기의 시선을 마주했다.“보스, 보스가 직접 임무를 수행한 지 엄청 오래되었다는 거 알아요?” 서한기가 입을 열었다.“왜 그게 불만이야? 이제 칼을 휘두르며 피를 보는 날은 끝났어. 앞으로 너희들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야.”성연과 조직에서 관리하고 있는 회사들은 벌써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만큼의 돈을 충분히 벌었다.다만 지금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그들 조직의 존재가 아직 필요할 뿐.임무가 없을 때도 아수라문의 조직원들은 여전히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끊임없이 아래로 기어야만 자유를 얻을 기회가 있었다.일부는 자극적인 이런 생활을 좋아했다.“아주 좋군요. 그날을 기대하죠.” 지금의 생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서한기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지금의 생활에 익숙해진 그로서도 사무실에 앉아 있으라고 한다면 역시 불편할 게 뻔하다.‘됐어, 한 걸음 한 걸음 가 보는 거지 뭐.’‘보스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하아, 우리 보스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나 애쓰는 걸 강무진은 언제 알게 될까요?”서한
부두 양측면에서 갑자기 수십 개의 검은 그림자들이 등장했다.모두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총기가 제일 많이 보였다.어둠 속에서 날아간 총알은 피아를 구별하기 힘들어 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다행히 양쪽 편 모두 민첩한 동작으로 피하며 사상자는 없었다.그러다 나중에 새로 등장한 이들이야 말로 MS 가문 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너무나 위급한 상황.맞은편의 사람들도 화물선을 빼내려 왔는지 모른 채 서로 싸우고 있던 성연.‘어쩌면 무진 씨 쪽 사람들일지도 몰라.’‘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아서 다행이야.’‘그러나 이번에는 MS 놈들의 뜻대로 되게 할 순 없어.’성연은 서한기에게 지시했다.“서한기, 맞은편 사람들과 합심해서 먼저 MS 놈들부터 처리하자.”자신들 같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법.마침 협력 상대도 있으니 일단 목숨부터 챙긴 후에 다시 따질 일이다.역시 성연과 같은 생각을 한 무진이 똑같은 지시를 손건호에게 내렸다.보스의 말을 즉시 알아들은 손건호.조금 전까지 서로 덤벼 싸울 뻔한 양측의 사람들이 지금은 바로 연합해서 MS 가문 쪽 사람들을 마주하고 싸웠다.무진이나 성연 쪽과 옷차림이 달랐던 MS 가문 쪽의 인원들은 육안으로 쉽게 구분되었다.이때 서한기의 실력이 여실히 드러났다.과연 송성연의 오른팔 다웠다.몸놀림이 몹시 민첩할 뿐만 아니라 싸우면서도 여유가 넘쳤다.지난 번 매복한 체 자신들을 기습했던 자들에 비해 오늘 나온 자들이 더 많았다.MS 가문 쪽에서도 눈앞의 저 몇 명이 가장 내세울 만한 이들로 보였다.그러나 손건호 또한 결코 뒤지지 않았다.서한기와 손건호, 모두 얼굴의 절반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어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그때 두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는 순간, 서한기는 등 뒤의 손건호가 어째 좀 익숙하게 느껴졌다.언제나 입을 닫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서한기.바로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이봐 친구, 나는 어째 네가 좀 익숙한 것 같은데? 우
싸움은 매우 격렬했다.맞은편의 MS쪽 인원이 너무 많은 터라 서한기와 손건호도 싸우는 게 쉽지 않았다.처음에는 시시덕거리며 손건호에게 말도 걸고 하던 서한기 역시 점점 조용히 싸움에만 집중했다.다행히 이번에 무진과 성연 양측 모두 에이스 팀으로 동원한 터라 아직 밀리지 않았다.항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 중턱에서 야시경을 들고 전황을 주시하던 무진은 수시로 돌발상황에 대한 지시를 서한기에게 내리고 있었다.성연 역시 항구 옆 등대 위에서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양측의 주요 인물이어서 수하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직접 싸움에 뛰어들지 않았다.마침내 무진의 이터너티와 성연의 아수라문의 수하들이 연합해서 MS 가문의 이삼 십 명을 쓰러뜨렸다.결국 이길 수 없다 판단한 상대방은 즉시 철수하며 달아났다. 양쪽의 협공에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 그렇지 않았다면 손실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달아나는 저들을 보며 성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이쪽 편의 인명 피해가 없었다. ‘모두 무사하면 됐어.’연합한 상대가 무진 쪽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성연도 안심하고 화물선을 그들에게 양보했다.이제 MS 가문 쪽 사람들이 모두 달아났으니 안심하고 화물선을 끌고 갈 수 있을 터.계산을 마친 성연은 즉시 서한기에게 철수하라고 지시했다.계속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던 서한기 역시 자기 쪽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야시경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무진이 손건호에게 지시했다.“손 비서, 저들에게 얘기해 봐. 내가 저들의 리더를 만나고 싶어한다고.”서한기가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한 손건호는 정말이지 그와 다시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보스의 말도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손건호는 맞은편의 드러나지 않은 리더를 제외하면 서한기의 발언권이 셀 것이라 짐작했다.맞은편의 무리들 중에서 서한기만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이봐.” 손건호가 앞으로 나서며 서한기를 불렀다.발걸음을 멈춘 서한기의 입에서 손건호의 화
어젯밤 같이 연합해서 MS쪽을 상대했던 자들의 실력이 상당히 좋았다.그 자리를 벗어난 후에 성연은 서한기에게 그 자들의 내력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서한기가 알아온 바에 따르면 그들은 뜻밖에도 유명한 용병단체 이터너티 쪽 사람들이었다.이터너티, 이제까지 강무진을 돕기 위해 나선 적이 여러 차례였다.성연은 속으로 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이가 누구이며 또 무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계속 생각했다.원래 A국 사람들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성연은 만남에 응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이제 이터너티가 무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래서 성연은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계속 궁리하는 가운데 성연은 기숙사에서 화장품 박스를 들고 학교 옆의 한 호텔에서 화장을 시작했다.박스 안에는 일체의 화장품들이 빼곡히 있었다. 모두 성연이 특수 약품으로 제작한 것들로 역시 특수하게 제조된 클렌징 워터로 지워야만 한다.자신의 안전과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서한기는 짝다리를 짚은 채 성연이 화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나른한 표정으로 턱을 괸 채 말했다.“그나저나 보스, 정말 내가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래도 이터너티 아닙니까? 무슨 위험한 일이 발생할 줄 알고요?”성연은 과감하게 고개를 가로젓은 후 다시 화장을 하면서 대답했다.“아니, 저쪽에서는 아직 내 신분을 모르고 있잖아. 저들이 정중하게 초대했으니 만나러 가도 괜찮아.”“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곽연철 대표가 언제 유럽에 올지도 모릅니다. 곽연철이 없으면 나는 정말 너무 심심하다고요.”서한기가 괴롭다는 듯이 말했다.성연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곽연철은 업무로 온종일 바쁠 테니 그를 귀찮게 하지 말아.”“보스, 무슨 말씀이세요? 곽연철도 아마 저를 보고 싶어할 거라고요.” 서한기는 콧방귀를 뀌며 성연의 말에 반박했다.성연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은 후 입을 다물었다.약 한 시간 정도에 걸쳐 화장을 한 후에야 성연의 분장이 완성되었다.칼라렌즈에 짙은
성연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먼저 고개를 돌리며 인사했다.“반갑습니다.”남자의 모습을 마주하고 확인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성연은 완전히 멍했다.‘알고봤더니 이터너티의 보스가 무진 씨였어.’‘어쩐지 무진 씨가 위태로울 때마다 이터너티 쪽에서 출현한다 했더니.’그 우연 같았던 여러 차례를 자신은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성연은 좀 당황했지만 얼른 침착함을 되찾았다.무진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얼굴을 바꿀 정도로 화장을 한 성연.성연도 무진에게 인사했다.“반갑습니다.” 무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성연에게 최대한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뭘 드시겠습니까?”무진에게 어떤 단서도 흘리지 않기 위해 성연은 일부러 굵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조용히 말했다.“카푸치노로 하죠.”성연의 대답에 잠시 가만히 있던 무진이 웃으며 말했다.“마담, 여기는 술집이라 카푸치노는 없습니다. 뭐 물론 당신이 원한다면 사람을 보내 준비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잠시 지금 만나는 곳이 술집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던 성연은 좀 당황스러웠다.무진 앞에서 이런 망신 아닌 망신을 당한 성연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마주해야 할 것은 마주해야 하는 법.성연은 이내 흠, 흠 목을 가다듬은 후에 대답했다.“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알코올 도수 약한 칵테일 한 잔이면 됩니다.”이에 무진은 성연을 위해 색감이 화려한 칵테일 한 잔을 선택한 후 메뉴판을 수하에게 건넸다.수하가 이내 문을 밀고 나간 후에 룸 안에는 무진과 성연 두 사람만 남았다.성연이 자신의 수하를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기에 무진도 자연히 자신의 수하를 룸 안에 남겨둘 수가 없었다.괜히 허세를 부리는 건 결국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므로.성연을 위해 주문한 칵테일이 바로 나왔다. 전문적인 서빙 훈련을 받은 게 분명한 종업원은 여기저기 기웃거림 없이 성연 앞에 칵테일 잔만 내려놓고 바로 나갔다.무진이 성연을 위해 주문한 칵테일은
무진과 성연의 이번 만남에서는 품위가 흘러 넘쳤다.무진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성연을 살펴보았다.사실 성연을 처음 본 순간 약간 놀랐다.나이가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수라문을 장악하고 있는 문주는 뜻밖에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아수라문 이터너티 만큼 국제적으로 명성이 나 있는 강대한 조직 중의 하나.그곳의 리더로서 눈앞의 여성은 아직 너무 젊어 보였다.무진은 다소 믿기지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두 눈이 정말 예뻤다.칼라렌즈를 꼈다 해도 반짝반짝한 것이 몹시 예쁘다.무진의 시선을 느낀 성연은 마침 고개를 돌리며 무진의 시선을 마주했다.붉은 입술이 살짝 올라가며 매혹적인 시선을 보냈다.“강 대표님, 몰래 저 훔쳐보시다가 딱 걸리셨네요.”가볍게 고개를 흔든 무진은 성연의 말을 부인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그저 제 약혼녀와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봤습니다.”무진이 약혼녀를 언급하는 순간 성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무진 씨는 도대체 무슨 저런 예리한 눈을 가진 거야? 내가 이렇게 변장을 했는데도 내 본 모습과 비슷한 점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이야?’가까스로 침착함을 가장한 성연이 농담으로 얼버무리려 했다.“강 대표님처럼 뛰어나신 분께 약혼녀가 있으셨군요. 정말 몰랐네요.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내 약혼녀는 아주 훌륭한 여성이죠.” 성연을 언급할 때면 무진의 눈은 저도 모르게 온화한 기색을 띄었다.“대표님 약혼녀를 닮았다고 하시니 정말 기분이 좋군요.” 이 말을 하는 성연은 마음이 좀 복잡했다.자신에 대한 무진의 진심은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음이 한 눈에 보였다.약혼녀에 대한 언급은 기본적으로 모든 이성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네, 두 사람의 눈이 아주 닮았군요.” 무진은 별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거지 굳이 인정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눈앞에 있는 아수라문의 문주를 좀 더 관찰했을 뿐이다.일단 시원시원한 사람이라는 점을 어젯밤의 일을 통해 기본적으로 알 수 있었다
또다시 웨이터를 부른 무진은 두 사람을 위한 술 두 잔을 주문했다.모두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들로.“문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아직 문주의 이름을 모르는군요.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무진의 말은 내내 정중하면서도 예에 어긋남이 없었다.잠시 멍하니 있던 성연은 아무렇게나 이름 하나를 불러 주었다.“물론이지요. 저는 선우자경이라고 합니다.”무진의 한쪽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갔다. 왠지 이 이름이 가짜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면전에서 내색하지 않았다.“선우라, 정말 보기 드문 성씨군요. 보통 역사서나 사극에서나 볼 듯한 데요.”성연은 뻔뻔스럽게 큰소리 쳤다.“그건 대표님께서 못 들어 보신 것뿐이죠.”그리고 계속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강 대표님은 WS그룹의 대표일 뿐만 아니라 그처럼 강한 조직의 수장이기도 하셨군요. 원래 WS그룹의 세력이었군요.”지난번 둘째, 셋째 일가와 무진이 맞섰을 때 무진은 이 조직을 전혀 동원하지 않았다.무진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둘째, 셋째 일가는 무진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만약 저들이 무진의 신분을 알았더라면 무진과 맞선 걸 후회했을 것이다.무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무슨 말씀을요.”“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하세요? 만약 강 대표님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시면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고 봐야겠지요.”성연은 무진이 너무 겸손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의 예민함, 정신력 등은 모두 조직에서 탑이라 할 수 있다.그런 자신이 무진의 곁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면서도 그 정체를 깨닫지 못했던 것.성연은 만약 무진이 먼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자신은 일생 강무진이 그처럼 강력한 조직의 수장일 것이라 짐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이번에 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성연은 무진이 자신을 속였다고 탓하지 않았다.어찌 되었든 자신 또한 무진에게 물어보지 않았기에 무진이 자신에게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
“정말 변변치 못하게!” 외삼촌은 유채연을 노려보았다.그래함은 외삼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했다.‘외삼촌은 이게 채연이가 만약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거야.’그래서 그래함도 지나친 요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이런 것들을 채연이에게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채연이에게 훨씬 더 잘 해 줄 거야.게다가 외삼촌과 유채연은 그래함의 지위에 대해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이 정도의 돈은 그래함에게 있어서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유채연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외삼촌 가게 뒤의 정원에서 모두 함께 밥을 먹었다.외삼촌의 표정은 시종 좋지 않있다.밥을 다 먹고 유채연이 치우려고 하자 외삼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놔 둬! 나 혼자 해도 돼! 너는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가서 너 자신이나 좀 꾸며.”외삼촌은 말하면서 유채연을 물러서게 했다. 유채연이 비틀거리자 그래함이 뒤에서 유채연을 부축해 주었다.그리고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집 앞에 와서야 유채연은 그래함과 성연에게 미안한 듯이 웃었다.“정말 미안해. 외삼촌이 바로 저런 성격이셔. 미안해.”“언니, 외삼촌이 이런 성격인 건 우리도 이해할 수 있어요. 외삼촌이 치우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리 좀 걸어요. 이쪽의 풍경이 좋네요.” 성연은 유채연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래함과 성연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유채연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그들은 주변을 한가롭게 걸었다.길가에서 자동차 판매점을 본 그래함이 걸음을 멈추었다.유채연과 성연은 고개를 돌려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성연이 그래함에게 물었다.“사형, 왜 그래요?”“우리 들어가서 한번 보자.” 그래함은 판매점 안으로 들어갔다.그래함이 뭘 하려는 건지 몰랐지만, 유채연과 성연도 그래함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그래함은 한참동안 살펴보았다.여기는 읍내라서 그다지 비싼 차가 없었다. 겉모습이 좋아 보이는 차는 성능이 좋지 않았고 성능이 좋은 차는 스타일이 좋지 않았다.겨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삼촌이 말한 걸 그래함은 모두 승락했다.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외삼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유채연은 외삼촌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서 아주 불만이었다.‘내가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건 두 사람이 예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그러나 지금 외삼촌이 그렇게 많은 요구를 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래함의 돈 때문에 그래함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유채연이 항의했지만 외삼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어때? 내 이 조건들을 자네가 승낙한다면 채연이가 자네와 함께 떠나도 돼. 자네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럼 말할 필요도 없지!”유채연이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바로 뒤에 있던 성연이 유채연의 옷소매를 당기면서 권유했다.“사형에게 저런 요구를 한 건, 외삼촌이 언니에게 사고가 생길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혹시라도 집안이 몰락하게 될까 봐 일부러 이런 요구를 한 거예요. 만약 언젠가 정말 의외의 사고가 생긴다 해도, 언니가 읍내로 돌아올 수 있게 말이죠.”옆에 있던 성연은 벌써 외삼촌의 뜻을 알아차렸다.‘외삼촌이 말한 조건은 모두 채연 언니에게 유리한 것들이야.’‘외삼촌은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돈도 채연 언니 계좌에 넣고, 집 명의도 채연 언니 앞으로 하라고 했어.’‘모두 채연 언니에게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거야.’성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마음이 이렇게 세심한 줄은 몰랐어.’‘사형이 채연 언니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외삼촌이 말한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야.’‘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유채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외삼촌의 요구는 모두 나를 위해서였어.’유채연은 더더욱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저 그래함을 바라볼 뿐이다.“외숙부님이 말씀하신 건 다 문제없습니다. 채연이에게 사 줄 집을 한번
성연은 식당 입구의 작은 가게에서 그래함과 유채연을 기다렸다.두 사람이 손을 잡고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성연은 묵묵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그래함이 유채연을 데리고 가더라도 바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유채연의 외삼촌이 별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해도.그러나 유채연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유채연을 데려간다면 그래함은 반드시 외삼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그래함은 유채연과 함께 돌아가서 외삼촌을 만났다.외삼촌이 그래함을 난처하게 만들 것을 염려해서, 유채연은 원래 그다지 외삼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외삼촌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자, 유채연도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생각해보니 외삼촌은 아마 동의할 것 같아.’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유채연의 외삼촌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외삼촌.” 유채연은 그래함의 뒤에 숨은 채 외삼촌을 바라보았다.‘외삼촌은 지금까지 내가 여기서 살게 해주셨어.’‘어쩌다 내게 온정을 보이기도 했지만.’유채연도 외삼촌 본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외삼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을 토닥이면서 긴장을 풀고 모든 건 자신에게 맡기라는 눈짓을 했다.“외숙부님.” 그래함이 유채연과 함께 외삼촌 맞은편에 앉았다.외숙부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외삼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험악판 표정을 지으며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당신 같은 조카는 없어.”그래함은 오히려 외삼촌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어차피 이제 모두 한 가족이 될 테니까 제가 외숙부님이라고 해야지요.”그래함의 말에 반박하려던 외삼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대감에 가득 찬 유채연의 눈빛을 마주하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무슨 일이야!” 외삼촌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래함을 쳐다보았다.“저는 채연이를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가서 더 잘 살 수 있게
이튿날 오후, 가게문을 닫은 뒤 유채연은 성연의 안내로 그래함을 만났다.이번에는 유채연의 수줍은 성격을 고려해서, 밀크티 가게가 아니라 칸막이가 있는 식당을 골랐다.엉성한 칸막이지만 그래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우아한 분위기가 넘치는 잘생긴 그래함을 보자, 유채연의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유채연이 그래함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없었다면 그 옥노리개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채연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함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나는, 다 괜찮아.” 유채연은 그래함을 똑바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래함은 이렇게 멋스러운데, 나는 진흙밭의 진흙일 뿐이야.’요 몇 년 동안 유채연은 전혀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날마다 그럭저럭 지냈을 뿐이다.지금은 그래함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래함에게 어울릴 수 있겠어?’그래함이 종업원을 불러서 가정식 요리를 몇 개 시켰다.모두 유채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래함이 시키는 요리 이름을 들으면서, 유채연은 놀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그래함이 유채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당신...”그래함이 자상하게 대할수록 유채연은 더 열등감을 느꼈다.‘나한테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겠어?’“애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음식부터 먹자.” 그래함의 마음은 더 긴장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이번에 또다시 거절 대답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성연은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다지 먹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그래함은 수시로 유채연에게 음식을 집어 줬지만, 식사하는 내내 유채연을 쳐다보느라 음식도 그다지 먹지 않았다.안타까움이 가득한 식사였다.가까스로 식사를 마친 뒤, 그래함은 종업원에게 앞의 음식을 치우고 주스와 과일을 내오도록 했다.그래함이 유채
“나도 모르겠어.” 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이 옥노리개를 보고 유채연은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그러나 여전히 모든 걸 맡길 용기를 내지 못했다.“언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만약 언니가 사형을 믿지 않는다면, 먼저 사형을 좀 지켜보다가 적당할 때 다시 승낙하면 돼요.” 성연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유채연을 너무 팽팽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언니의 마음속에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할 수밖에 없어.’“하지만...”유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별거 아니에요, 이건 언니하고 사형 두 사람의 일이잖아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그래도 사형을 한번 만나보세요.” 성연은 입이 닳도록 말하면서 언제 유채연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느꼈다.합쳐진 옥노리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채연이 마침내 용기를 냈다.“알았어. 그래함과 얘기해 볼게.”유채연도 그래함이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말만 하는 거니까 별거 아니야.’마침내 이 말을 듣자 성연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드디어 유채연을 설득한 것이다.“그래요. 언니에게 기회를 주고 그래함 사형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만 그래도 고려해 봐야겠지요.” 성연은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오늘 헛걸음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야.’“고마워.” 유채연은 손에 든 옥노리개를 꼭 쥐었다.‘만약 성연이가 내게 그렇게 많이 권하지 않았다면.’‘아마 그래함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하지만 이렇게 비참해진 나한테 더이상 비참한 일은 없을 거야.’‘그러니 나도 한번 노력해보겠어.’“언니,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고 선택하면 좋겠어요.” ‘채연 언니가 사형에게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건 아니야.’“그럴게.” 유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유채연이 성연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성연은 그래함 때문에 사양했다.유채연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호텔로 돌아온 성연이 문을 열자, 그래함이 옆방에서 걸어 나왔다.‘사형이 계속 이쪽의
성연이 보니 이제 때가 된 듯했다.그래서 유채연에게 그래함 얘기를 꺼냈다.“채연 언니, 사형이 이번에 돌아온 건 바로 언니 때문이에요. 사형은 바로 언니를 찾으려고 온 거죠. 사형이 언니한테 어떻게 너에게 대하는지 언니도 봤을 거예요. 사형은 정말 언니를 좋아해서 언니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언니도 앞으로 결혼하겠죠, 그렇죠? 그런데 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아요?”성연이 한 말도 일리가 있지만 유채연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이 소멸되다시피 했다.유채연에게는 전혀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유채연이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래함에게 어울리지 않아.”말을 마친 유채연이 또 눈물을 흘렸다.그래함의 찾아와서 유채연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그러나 유채연은 자신과 그래함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다.자신은 이미 감히 그래함을 원할 수 없었다.성연은 유채연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감정의 일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어.’‘좋아하는데 그냥 함께 하면 돼잖아.’‘게다가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어.’‘하지만 지금 채연 언니에게는 사형의 신분이 큰 문제야.’성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미래가 정말 너무 막막할 거야.’성연이 갑자기 반쪽짜리 옥노리개를 꺼냈다.옥노리개를 본 유채연은 깜짝 놀라면서 뭔가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이 옥노리개를 뜻밖에도 그래함이 여전히 가지고 있었어.’성연이 옆에서 말했다.“그래함 사형은 줄곧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여자친구도 없이 줄곧 언니를 기다린 거예요.”유채연이 목에 차고 있던 다른 반쪽의 옥노리개를 이어 붙이자, 완전한 옥노리개가 되었다.흥분한 유채연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나는 원래 그리움에 이 옥노리개를 남겨 두었을 뿐이야.’‘그동안 그래함도 나와 같은 생각일 줄은 전혀 몰랐어.’“그동안 그래함에게 정말 여자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 유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