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생한 갑작스런 사고에 대해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까닭에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 회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무거웠다.무진이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하고서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회의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 중이니 어느 정도 정보를 제공하는 이가 하나쯤은 있을 터.그러나 모두 화면만 쳐다보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마침내 안경을 쓴 한 남성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가 좀 들은 게 있습니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말하세요.”남성은 안경을 치켜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우리 측 대형 화물선 세 척에 대한 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노출되었고 부두 쪽에서 고의로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있습니다.”말을 하면서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은 결코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이때 한 사람이 그 뒤를 이어서 덧붙였다.“예전의 부두 책임자였던 제임스 씨가 갑자기 퇴사했습니다. 지금은 젊은 사람으로 교체되었는데, MS가문 5장로의 장녀 미시즈 존스입니다.”이쯤 되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들 대략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미시즈 존스가 취임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이 지역에서 일이 생겼으니 MS 가문의 보복이 분명했다.무진도 MS 가문에서 획책한 일일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던 터. 대신 MS 가문이 이렇게 바로 자신과 반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모두들 오랫동안 암투를 벌여 왔지만 이렇게 바로 맞선 적은 없었다.지금 MS 가문은 거칠 것 없이 노골적으로 이쪽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쪽은 부두 쪽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부두에서 물건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로서는 정말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어떤 책임자가 괴로운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긴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지금 자리에 앉아 있는 20여 명은 모두 실직자 신세가 될 터.모두 이 직장에 기대어 생활하는 이들이다 보니 다들 초조한 마음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
모두들 무진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숨을 죽이고 화면 저편에서 긴장 속에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는 팽팽했고, 무진이 입을 떼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때, 갑자기 한 사람이 무진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여러분, 우선 차분해집시다. 우리가 이렇게 소란스러워 봐야 강 대표님께서 사태 해결 방안을 생각하시는데 방해만 될 뿐입니다. 지금은 침착하게 대응해야 할 때입니다. 분명 해결책이 있을 겁니다.”그 말에 회의실의 공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비로소 진정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무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무진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가 이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는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몇 년간 WS그룹을 거침없이 이끌며 유럽 시장까지 성공적으로 확장시킨 강무진 대표였으니, 그 능력에 의문을 품을 이유는 없었다.강무진이 잠시 침묵을 유지한 뒤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강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여러분은 우선 협력 업체들을 진정시키는 데 집중하세요. 특히 오래된 거래처들은 조금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기존 재고를 활용해 최대한 대체 방안을 찾아보세요. 항구 문제는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그의 말이 끝나자,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지시가 내려온 듯, 지사 책임자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스쳤다. 무진의 말 한마디는 그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고, 그들은 다시금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강 대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심이 됩니다.”“맞습니다, 대표님. 저희는 대표님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벌어두겠습니다.”“강 대표님, 좋은 소식 기대하겠습니다.”무진은 그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여러분은 저와 오래 함께 해왔으니 믿어도 좋습니다. 절대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내심 그는 굳은 결의를 다지며 생각했다. ‘이번 전쟁에서 WS그룹은 절대 MS그룹에게 질 수 없어.’회의를 마친 후, 무진은 비서 손건
“보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강무진의 오른팔이자 비서인 손건호는 보스의 지시가 다소 이해되지 않았다.“우리 화물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이득을 얻게 할 수는 없지. 저들 쪽의 부두에 정박할 수 없다면 다른 쪽 부두로 바꾸면 되는 법이야.”눈을 가늘게 뜬 무진이 손건호의 물음에 명쾌하게 대답했다.마침내 무진의 뜻을 파악한 손건호.“MS가문은 유럽에서 그 영향력이 상당합니다. 보스, 이 방법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그렇다고 MS 가문의 뜻대로 되게 해?” 무진이 코웃음을 치며 손건호의 말을 받았다.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MS 가문과는 원수 사이가 될 게 확실한 상황.MS 가문에서 이쪽의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는 이상 이쪽에서 저들에게 기회를 줄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한 일.“네, 알겠습니다, 보스. 제가 즉시 가서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 제가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손건호가 대답했다.무진이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그의 비서인 손건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지시를 따를 게 분명했다.“아니, 내가 직접 간다.”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보스 강무진의 말에 손건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했다.“보스, 직접 가시다니요? MS 가문 인간들이 얼마나 음흉하고 악랄한 놈들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만약 보스에게 무슨 사고가 생기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손건호, 내 실력이 네 보다 못하지 않음을 잊지 마라.” 무진이 직접 나선 지도 꽤 오래된 지라 다들 잊고 있었을 뿐.사실 꾸준히 몸을 단련해 왔던 무진의 몸놀림은 손건호를 비롯한 수하들에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무진이 이처럼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손건호 역시 다른 방법이 없었다.그저 보스를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밖에.환복을 하고 가면을 쓴 무진은 밤이 되자 몇 대의 차량을 이끌고 화물이 압류되어 있는 부두로 향했다.물리적인 방법으로 강제 억류되어 있는 화물선들을 빼내 다른 부두로 옮길 계획이다.아무리 MS 가문이라 해도 한 두개의 부두도 아
이번 일에 대해 무진은 성연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성연에게 얘기해 본들 걱정거리만 하나 더 안겨줄 뿐, 자신이 알아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한기의 입을 통해 무진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된 성연.밤이 되자 성연 또한 유럽에 와 있는 자신의 수하들을 소집해서 부두로 갈 준비를 했다.성연의 계획은 무진의 것과 동일했다. 바로 화물선을 몰래 빼내어 화물들을 안전하게 내릴 수 있는 곳으로 몰고 가는 것. 화물을 절대 그곳에 묶어 둘 수는 없었다.서한기가 운전하고 성연은 조수석에 앉았다.서한기는 얼굴에 가면을 쓴 채 활동하기 편한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성연을 쳐다보며 속으로 감탄했다.‘보스의 이런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무척 반갑네.’성연은 눈을 감고 있어도 서한기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운전에 집중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결국 성연이 번쩍 눈을 뜨고 서한기의 시선을 마주했다.“보스, 보스가 직접 임무를 수행한 지 엄청 오래되었다는 거 알아요?” 서한기가 입을 열었다.“왜 그게 불만이야? 이제 칼을 휘두르며 피를 보는 날은 끝났어. 앞으로 너희들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야.”성연과 조직에서 관리하고 있는 회사들은 벌써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만큼의 돈을 충분히 벌었다.다만 지금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그들 조직의 존재가 아직 필요할 뿐.임무가 없을 때도 아수라문의 조직원들은 여전히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끊임없이 아래로 기어야만 자유를 얻을 기회가 있었다.일부는 자극적인 이런 생활을 좋아했다.“아주 좋군요. 그날을 기대하죠.” 지금의 생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서한기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지금의 생활에 익숙해진 그로서도 사무실에 앉아 있으라고 한다면 역시 불편할 게 뻔하다.‘됐어, 한 걸음 한 걸음 가 보는 거지 뭐.’‘보스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하아, 우리 보스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나 애쓰는 걸 강무진은 언제 알게 될까요?”서한
부두 양측면에서 갑자기 수십 개의 검은 그림자들이 등장했다.모두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총기가 제일 많이 보였다.어둠 속에서 날아간 총알은 피아를 구별하기 힘들어 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다행히 양쪽 편 모두 민첩한 동작으로 피하며 사상자는 없었다.그러다 나중에 새로 등장한 이들이야 말로 MS 가문 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너무나 위급한 상황.맞은편의 사람들도 화물선을 빼내려 왔는지 모른 채 서로 싸우고 있던 성연.‘어쩌면 무진 씨 쪽 사람들일지도 몰라.’‘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아서 다행이야.’‘그러나 이번에는 MS 놈들의 뜻대로 되게 할 순 없어.’성연은 서한기에게 지시했다.“서한기, 맞은편 사람들과 합심해서 먼저 MS 놈들부터 처리하자.”자신들 같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법.마침 협력 상대도 있으니 일단 목숨부터 챙긴 후에 다시 따질 일이다.역시 성연과 같은 생각을 한 무진이 똑같은 지시를 손건호에게 내렸다.보스의 말을 즉시 알아들은 손건호.조금 전까지 서로 덤벼 싸울 뻔한 양측의 사람들이 지금은 바로 연합해서 MS 가문 쪽 사람들을 마주하고 싸웠다.무진이나 성연 쪽과 옷차림이 달랐던 MS 가문 쪽의 인원들은 육안으로 쉽게 구분되었다.이때 서한기의 실력이 여실히 드러났다.과연 송성연의 오른팔 다웠다.몸놀림이 몹시 민첩할 뿐만 아니라 싸우면서도 여유가 넘쳤다.지난 번 매복한 체 자신들을 기습했던 자들에 비해 오늘 나온 자들이 더 많았다.MS 가문 쪽에서도 눈앞의 저 몇 명이 가장 내세울 만한 이들로 보였다.그러나 손건호 또한 결코 뒤지지 않았다.서한기와 손건호, 모두 얼굴의 절반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어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그때 두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는 순간, 서한기는 등 뒤의 손건호가 어째 좀 익숙하게 느껴졌다.언제나 입을 닫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서한기.바로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이봐 친구, 나는 어째 네가 좀 익숙한 것 같은데? 우
싸움은 매우 격렬했다.맞은편의 MS쪽 인원이 너무 많은 터라 서한기와 손건호도 싸우는 게 쉽지 않았다.처음에는 시시덕거리며 손건호에게 말도 걸고 하던 서한기 역시 점점 조용히 싸움에만 집중했다.다행히 이번에 무진과 성연 양측 모두 에이스 팀으로 동원한 터라 아직 밀리지 않았다.항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 중턱에서 야시경을 들고 전황을 주시하던 무진은 수시로 돌발상황에 대한 지시를 서한기에게 내리고 있었다.성연 역시 항구 옆 등대 위에서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양측의 주요 인물이어서 수하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직접 싸움에 뛰어들지 않았다.마침내 무진의 이터너티와 성연의 아수라문의 수하들이 연합해서 MS 가문의 이삼 십 명을 쓰러뜨렸다.결국 이길 수 없다 판단한 상대방은 즉시 철수하며 달아났다. 양쪽의 협공에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 그렇지 않았다면 손실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달아나는 저들을 보며 성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이쪽 편의 인명 피해가 없었다. ‘모두 무사하면 됐어.’연합한 상대가 무진 쪽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성연도 안심하고 화물선을 그들에게 양보했다.이제 MS 가문 쪽 사람들이 모두 달아났으니 안심하고 화물선을 끌고 갈 수 있을 터.계산을 마친 성연은 즉시 서한기에게 철수하라고 지시했다.계속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던 서한기 역시 자기 쪽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야시경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무진이 손건호에게 지시했다.“손 비서, 저들에게 얘기해 봐. 내가 저들의 리더를 만나고 싶어한다고.”서한기가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한 손건호는 정말이지 그와 다시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보스의 말도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손건호는 맞은편의 드러나지 않은 리더를 제외하면 서한기의 발언권이 셀 것이라 짐작했다.맞은편의 무리들 중에서 서한기만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이봐.” 손건호가 앞으로 나서며 서한기를 불렀다.발걸음을 멈춘 서한기의 입에서 손건호의 화
어젯밤 같이 연합해서 MS쪽을 상대했던 자들의 실력이 상당히 좋았다.그 자리를 벗어난 후에 성연은 서한기에게 그 자들의 내력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서한기가 알아온 바에 따르면 그들은 뜻밖에도 유명한 용병단체 이터너티 쪽 사람들이었다.이터너티, 이제까지 강무진을 돕기 위해 나선 적이 여러 차례였다.성연은 속으로 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이가 누구이며 또 무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계속 생각했다.원래 A국 사람들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성연은 만남에 응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이제 이터너티가 무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래서 성연은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계속 궁리하는 가운데 성연은 기숙사에서 화장품 박스를 들고 학교 옆의 한 호텔에서 화장을 시작했다.박스 안에는 일체의 화장품들이 빼곡히 있었다. 모두 성연이 특수 약품으로 제작한 것들로 역시 특수하게 제조된 클렌징 워터로 지워야만 한다.자신의 안전과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서한기는 짝다리를 짚은 채 성연이 화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나른한 표정으로 턱을 괸 채 말했다.“그나저나 보스, 정말 내가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래도 이터너티 아닙니까? 무슨 위험한 일이 발생할 줄 알고요?”성연은 과감하게 고개를 가로젓은 후 다시 화장을 하면서 대답했다.“아니, 저쪽에서는 아직 내 신분을 모르고 있잖아. 저들이 정중하게 초대했으니 만나러 가도 괜찮아.”“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곽연철 대표가 언제 유럽에 올지도 모릅니다. 곽연철이 없으면 나는 정말 너무 심심하다고요.”서한기가 괴롭다는 듯이 말했다.성연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곽연철은 업무로 온종일 바쁠 테니 그를 귀찮게 하지 말아.”“보스, 무슨 말씀이세요? 곽연철도 아마 저를 보고 싶어할 거라고요.” 서한기는 콧방귀를 뀌며 성연의 말에 반박했다.성연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은 후 입을 다물었다.약 한 시간 정도에 걸쳐 화장을 한 후에야 성연의 분장이 완성되었다.칼라렌즈에 짙은
성연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먼저 고개를 돌리며 인사했다.“반갑습니다.”남자의 모습을 마주하고 확인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성연은 완전히 멍했다.‘알고봤더니 이터너티의 보스가 무진 씨였어.’‘어쩐지 무진 씨가 위태로울 때마다 이터너티 쪽에서 출현한다 했더니.’그 우연 같았던 여러 차례를 자신은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성연은 좀 당황했지만 얼른 침착함을 되찾았다.무진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얼굴을 바꿀 정도로 화장을 한 성연.성연도 무진에게 인사했다.“반갑습니다.” 무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성연에게 최대한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뭘 드시겠습니까?”무진에게 어떤 단서도 흘리지 않기 위해 성연은 일부러 굵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조용히 말했다.“카푸치노로 하죠.”성연의 대답에 잠시 가만히 있던 무진이 웃으며 말했다.“마담, 여기는 술집이라 카푸치노는 없습니다. 뭐 물론 당신이 원한다면 사람을 보내 준비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잠시 지금 만나는 곳이 술집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던 성연은 좀 당황스러웠다.무진 앞에서 이런 망신 아닌 망신을 당한 성연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마주해야 할 것은 마주해야 하는 법.성연은 이내 흠, 흠 목을 가다듬은 후에 대답했다.“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알코올 도수 약한 칵테일 한 잔이면 됩니다.”이에 무진은 성연을 위해 색감이 화려한 칵테일 한 잔을 선택한 후 메뉴판을 수하에게 건넸다.수하가 이내 문을 밀고 나간 후에 룸 안에는 무진과 성연 두 사람만 남았다.성연이 자신의 수하를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기에 무진도 자연히 자신의 수하를 룸 안에 남겨둘 수가 없었다.괜히 허세를 부리는 건 결국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므로.성연을 위해 주문한 칵테일이 바로 나왔다. 전문적인 서빙 훈련을 받은 게 분명한 종업원은 여기저기 기웃거림 없이 성연 앞에 칵테일 잔만 내려놓고 바로 나갔다.무진이 성연을 위해 주문한 칵테일은
유니버설 호텔 8층의 연회장.오늘 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운성 전체의 상류층으로 모두 상장회사의 CEO급이다.파티의 주최자인 연계진은 이런 화려한 느낌에 대단히 만족했다. 끊임없이 각 가문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샴페인잔을 부딪치면서 미래의 협력에 대해 이야기했다.이런 모습은 연계진 자신의 손에 의해서 연씨 가문의 과거 영광이 다시 돌아왔다고 느낄 정도였다.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조수경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붉은 입술과 요염한 눈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마치 이미 연계진의 부인인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가능한 한 모든 손님들과 접촉하면서 손님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인상을 새기기를 원했다.‘그런 인상이 확고해져야 연계진이 진혜선과 결혼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연계진의 진정한 여자라고 인정하게 될 거야.’강한 여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수경의 마음은 즐거웠다.이때 진씨 가문의 현재 가주인 진양산이 성큼성큼 연회장으로 들어섰다.그 뒤로 투 톤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탁월한 몸매의 진혜선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청년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진혜선은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순간 조수경은 사람들이 자신을 진혜선과 비교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진혜선을 흘겨보았다.‘괜찮아, 연계진은 단지 이익 때문에 저 여자와 혼인할 뿐이지, 정말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게다가 진혜선이 좋아하는 남자는 강무진이 맞아. 진혜선이야말로 송성연의 경쟁 상대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진혜선도 마찬가지로 성연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자신과 진혜선이 함께 협력해서 성연을 대처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수경아, 내가 가서 좀 접대할게.” 연계진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어려 있었다.“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조수경은 마음 놓고 연계진의 손목을 놓았다. 결국 진씨 가문 사람이 왔으니 조수경은 잠시 억울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진양산과
병원의 초음파검사실.한 여의사가 화면을 보고 있었고, 성연도 좀 긴장된 표정이었다.“축하해요, 송성연 씨. 아주 건강한 쌍둥이예요! 벌써 한 달 반이나 됐네요.”“우리 병원에 임산부의 지식 수첩이 있으니까 가져가서 많이 보면서 알아두세요. 나중에 우리 병원 산부인과에서 출산하실 생각이라면, 연락처를 드릴 테니까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문의하시면 됩니다.”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의사가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성연은 정말 놀랍고 기뻤다. ‘처음부터 바로 쌍둥이를 임신하다니. 하늘이 너무 큰 선물을 주셨어.’‘시간을 따져 보니 무진 씨하고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임신한 게 분명해.’‘한 번에 임신이 되다니! 무진 씨의 능력도 정말 대단한데!’성연은 또 의사와 의견을 나누었다. 의사인 자신이 난치병에도 대처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아직도 배워야 할 지식이 적지 않았다.병원에서 나왔을 때, 성연의 마음은 날아가는 듯했고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할머니와 고모에게 소식을 알려 드리면 기뻐하시면서 어떤 모습을 보이실까?’‘그리고 무진 씨는 또 어떤 반응일까?’서한기는 성연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궁금했지만, 임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보스, 의사가 중병으로 오진해서 공연히 놀라셨습니까? 왜 이렇게 기뻐하세요?”성연은 어이가 없어 바로 서한기를 째려보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좀 좋은 생각 좀 할 수 없어?”서한기는 멋쩍게 웃으면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을 잡지 못했다.“이제 돌아갈까요?”“응, 돌아가. 넌 이제 진성 조직의 대장이니까 앞장서서 무진 씨 근심을 덜어줘야 해. 알겠지?” 성연이 당부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두말없이 승낙한 서한기는 성연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바로 손건호와 합류하였다. 두 사람은 요즘 그야말로 운성시를 샅샅이 뒤졌다. 어떤 고수가 비밀리에 연계진을 보호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그러나 연운그룹의 고위 임원들을 포함한 계속된 추적 조사에도 불구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