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은 성연에게 저녁을 주문해 주었다. 테이블 가득 성연이 좋아하는 음식이 세팅되었다.성연은 음식들이 모두 맛있었다. 무진은 열심히 먹고 있는 성연의 옆에 앉아 새우 껍질을 까주었다.새우 두 개를 연이어 먹은 후에 성연은 무진의 손을 잡았다.“일일이 안 까져도 돼요. 무진 씨도 좀 먹어요. 내가 까먹을게요.”“나는 입맛이 별로 없어. 네가 먹는 거 보는 게 좋으니까 그냥 순순히 먹어. 많이 먹어.”무진이 고개를 저으며 계속 새우를 까주었다.성연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오늘 무진 씨도 나와 하루 종일 함께 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잖아요. 어떻게 배가 안 고플 수 있어요? 얼른 먹어요.”무진은 성연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는 말없이 장갑을 벗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성연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음, 이래야지요.”성연도 무진에게 새우 하나를 까주었다. “빨리 먹어.”무진이 두어 모금 먹자마자 바로 전화가 울렸다.수하의 전화를 확인하고 무진이 바로 받았다.“대표님, 유럽에 왔는데, 가로막혔습니다. 상대편은 다섯 명인데 정체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수하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무진은 믿을 수가 없었다.자신이 직접 훈련시킨 수하들에 내심 자신이 있었다.모두 정예 요원들인 이들이 힘들다고 느낀다면 아무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우선 살펴봐, 상대할 만한지.” 무진의 음성에 냉기가 서렸다.왠지 이 모든 것이 미리 계획되었던 것 같다.유럽 쪽에서 막 일이 터져 사람을 보냈더니, 바로 누군가 나타나 그들을 막는다?아마 그가 사람을 배치한 행적이 이미 드러났을 것이다.“예.” 맞은편에서 대답이 들리며 통화가 끊어졌다.성연은 무진이 대화하는 내용을 들으며 손에 든 그릇과 젓가락도 놓았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방금 나한테 괜찮다고 했잖아요?”무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그냥 네가 나를 걱정하는 게 싫어서. 유럽 쪽에 확실히 문제가 좀 생겼는데, 해결하기 위해 내가
무진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회신했다.“우선 쉬면서 치료할 곳을 찾아라. 남은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맞은편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 무진은 바로 손건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손 비서, 너 지금 아프리카에 가서 소지연을 찾아. 그리고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봐.” 이 일은 손건호에게 맡겨야 안심할 수 있을 터.애초에 소지연이 비행기에 오르는 것까지 직접 보게 했으니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터.“알았습니다.” 손건호도 수하들이 유럽에서 피습당한 일과 유럽에서 발생한 사고 소식을 들어서 모두 알고 있었다.대화가 끝나자 방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다.무진이 생각해 보니, 유럽 업무를 아는 사람은 소지연일 수밖에 없었다.속으로 자신에게 원한을 품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녀야 말로 보복할 가능성이 가장 컸다.무진은 소지연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그와 소지연은 원래 가장 믿을 만한 파트너였다.그런데 오늘 이 지경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옆에서 듣고 있던 성연 역시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대충 알 수 있었다.아마도 강무진을 얻지 못한 소지연이 이런 방식으로 무진을 압박하는 모양이다.‘그렇게 예쁜 여자가 왜 이렇게 마음이 못된 거지?’무진이 휴대전화를 놓으며 멍하니 있는 성연을 보았다. 성연의 이마를 톡 치며 물었다.“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소지연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억지로 꺾은 참외가 달지 않다고 하지 않나? 소지연이 이렇게 무진의 주의를 끌어들인다고 한들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그녀를 신경 쓰지 마. 소지연이 이미 나를 배신하기로 결정한 이상, 앞으로 더 이상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소지연이 무진을 유혹하자, 무진은 소지연을 내쳤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로 보내버렸다. 그나마 그 부모의 얼굴을 봐서.아프리카에 갔을 때 소지연은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회사에 관한 자료를 유출했다. 설사 그가 후속적으로 소지연을 징벌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부모 또한 자신의 방법
하루 밤을 쉬고 일어난 성연은 모든 자료들을 준비해서 입학수속을 하러 갔다.사람 좋은 선배의 안내에 따라 성연은 지도교수인 블레이크 교수를 찾아갔다.성연은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똑, 똑, 똑...안에서 곧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성연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녀 앞에 서 있는 블레이크 교수는 머리가 하얗게 샜다. 눈은 갈색이고 전형적인 매부리코였다.나이가 좀 들어 보였지만 아주 똑똑한 사람 같았다.“블레이크 교수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 송성연입니다.”성연은 갓 입학했으니 지도교수님께 좀 더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블레이크 교수님과 이야기할 때도 유난히 예의 바른 모습을 보였다.그리고 블레이크 교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블레이크 교수는 성연을 살펴보았다.그의 눈빛은 성연을 좀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지도교수라고 생각하면서 성연은 참았다.성연을 훑어보던 블레이크 교수가 잠시 후에 눈빛을 거두었다. 그는 유유히 말했다.“나는 네 자료 일부가 조작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 학교는 성실하지 않은 학생을 환영하지 않아. 너는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좋을 거야.”그 말에 성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왔다. 어쨌든 명문 대학이기에 성연의 기대치 또한 매우 높았고.결국 블레이크의 한마디는 성연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았다.화가 난 이후 그보다 더 큰 실망이 찾아왔다.보아하니 학생을 생각하지 않는 이런 교수들은 어디에나 있을 것 같다.성연은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교수에게 물었다.“교수님, 저는 합격통지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당초에 귀교가 직접 저에게 보냈습니다. 몇 개의 명문대학에서 저에게 합격통지서를 보냈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교수님, 제가 조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어느 부분이 조작되었다는 말입니까?”블레이크 교수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넌 조작이야.”성연은 하마터면 화나서 웃을 뻔했다.‘교수의 말은
블레이크는 유럽의 최고 명문가 일원들에 대해서라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그러나 눈앞의 이 남자는 자신의 기억에 전혀 있지 않았다.그러니 허세를 부리는 고만고만한 치에 불과할 게 뻔했다.여기까지 생각한 블레이크 교수는 허리를 더욱 꼿꼿하게 세웠다.모욕적인 말을 내뱉으며 손가락으로 성연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쟤야. 교수를 존중할 줄을 전혀 모르는군. 조작된 자료로 입학할 자격이 없어. 알겠니, 너희들?”화가 폭발해서 주먹을 쥐고 앞으로 뛰쳐나가려던 성연을 무진이 잡아당기며 차디찬 시선으로 블레이크 교수를 응시했다.그 시선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고, 블레이크 교수는 놀란 나머지 한발 물러섰다.그러고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 무기력하다고 느껴졌지만 무진의 시선을 마주하며 억지로 버텼다.무진은 블레이크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앞으로 우리는 이 학교에 대한 모든 찬조를 중단할 것이다. 아울러 연합회를 발동시켜서 이 학교를 보이콧할 것이다!”학교 스폰서에 대해서는 블레이크 교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기억에 강무진이라는 인물은 없었다.지금 무진이 그저 말로 자신을 위협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블레이크는 콧방귀를 뀌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내가 여기서 오랜 세월 교수를 하고 있는데, 널 무서워할 거라 생각하나?”무진이 바로 성연을 끌고 나갔다.밖에 나온 무진이 걱정스럽게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은 화가 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저 따위가 무슨 교수야?”애초에 자신에게 합격 통지서를 주던 학교 임원들은 태도가 얼마나 좋았는데.그런데 그녀가 학교에 오자마자 최악의 태도에 부딪힌 것이다.“미안해, 내가 늦었어. 우선 돌아가서 학교에서 뭐라고 하는지 보자.” 여기는 더 머물 수 없을 게 확실했다.‘성연이가 그 교수 때문에 화난 게 분명하군.’자신은 성연에게 말 한 마디도 조심조심하는데, 지금 학교에서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다니.만약 이 문제에 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는
현재 학교 쪽의 문제는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학교 입구에 커다랗게 걸린 간판을 흘깃 쳐다본 성연은 반드시 정정당당한 모습으로 입학하고 말리라 속으로 다짐했다.뒤따라 나오며 성연의 반응을 눈에 새기던 무진은 성연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 중이었다.성연은 무진과 함께 교문을 나섰다.교문에 이르렀을 때, 성연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무진 역시 성연을 따라 걸음을 멈추고 이유를 물었다.“왜?”성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성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무심코 쳐다보던 무진의 눈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들어왔다.‘송아연?’송아연이 서양인의 얼굴을 한 남자와 아주 가깝게 붙어 학교 입구를 걸어가고 있었다.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이나 친근해 보여 단순한 관계로 보이지가 않았다.송아연은 남자를 따라 아무렇지 않게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성연과 무진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학교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듯이 손을 맞잡았다.눈 앞의 장면을 보면서 성연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송아연의 수준으로는 절대 들어올 수 없는 학교다.‘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송아연이 왜 여기 있어?’현재 송씨 집안의 상황으로는 송아연의 학비를 절대 부담할 수 없었다.“저건... 송아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해하며 물었다.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송아연이 분명해요.”“강진성과 같이 있었던 게 아냐? 전에 조사할 때, 강진성이 도망간 후로 송아연의 행방도 알 수가 없어서 당연히 강진성과 같이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강진성이 지금 유럽에 없다는 건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어.”이미 강진성이 있는 곳을 파악해서 사람을 시켜 계속 지켜보게 했다. 저들이 더 이상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그렇기에 그만큼 무진의 말투는 아주 확신에 차 있었다.“내가 보기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성연은 턱을 괸 채 가만히 생각했다.송아연이 새 후원자를 찾은 게 분명했다.그 새 후
학교에서 나온 송아연은 소지연을 만났다.그렇다. 송아연을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이 바로 소지연이다.소지연은 풍성한 만찬으로 섭섭지 않게 송아연을 대접했다.저택 안, 세심하게 공들인 음식과 디저트가 가득 차려진 식탁이 송아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소지연은 저택 안에서 송아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송아연이 저택에 당도하자 바로 고용인이 나와 안으로 안내했다.송아연은 진수성찬을 바라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오늘 소지연 씨 기분이 무척 좋은가 보군요.”소지연은 눈앞의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모두 송아연 씨를 위해 준비한 것이에요. 마음껏 즐겨요.”“모두 저를 위해 준비했다고요?” 소지연의 극진한 대접에 송아연은 깜짝 놀랐다.소지연이 이렇게 신경 써서 자신을 대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하지면 소지연에게 이 정도의 대접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송씨 집안의 회사 사정이 나날이 악화된 이후로 자신의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어본 적이 없는 송아연.강진성과 함께 있을 때조차도 강진성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 말고는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없었다.자연히 저도 모르게 강진성의 눈치를 보았다.지금의 소지연처럼 속 시원하게 즐긴 적이 없었던 것.소지연과 손을 잡는다면 훨씬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맞아요, 그저 한 끼 식사일 뿐인 걸요.” 소지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송아연도 세상 물정도 모르는 것처럼 너무 좀스럽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소지연의 앞 자리에 앉아 태연함을 가장하며 눈앞의 음식들을 맛보았다.시간이 꽤 흐른 후, 드디어 송아연이 포크를 내려놓았다.식탁 위에 차려졌던 음식들 대부분이 송아연에 의해 사라진 상태.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지켜보던 소지연이 적당한 타이밍에 송아연에게 물잔을 건넸다.잠시 멍하니 보던 송아연이 감사인사를 했다.“감사합니다, 소지연 씨.”“천만에요.”소지연이 태연히 대답했다.송아연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순식간에 테이블 주위로 침묵이 내려
소지연은 송아연의 다짐에 만족했다.원래 썩 똑똑하지는 않은 송아연이지만, 자신의 조련을 거친다면 머리가 꽤 잘 돌아갈 것이다.그러면 차후 송아연과 협력하게 됐을 때 자신이 그리 많이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될 터.소지연이 계속 말했다.“그리고 내가 송아연 씨를 위해 다른 사람을 더 안배해 두었어요. 바로 송성연을 데리고 있을 교수죠. 송아연 씨는 그 교수와 비밀리에 연락해서 같이 송성연의 명예를 더럽힐 방법을 찾아요.”송아연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소지연 씨, 나는 절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소아연의 말을 듣고 있던 소지연의 눈이 갑자기 매섭게 변했다.“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 해요!”송아연은 깜짝 놀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최선을 다하겠어요. 소지연 씨.”소지연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분노를 가라앉혔다.“나는 송아연 씨에게 내 모든 희망을 걸었어요. 그러니 절대 나를 실망시키지 마세요.”송성연과 강무진이 함께 있는 다정한 모습을 더 이상 참고 볼 수가 없었다.그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송성연이 감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소지연 씨, 나도 송성연을 증오해요. 화목하고 단란했던 우리 가정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송성연이에요. 나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송아연은 소지연이 믿지 못할까 봐 자신의 결심을 재차 드러냈다.“송아연 씨 각오가 그렇게 단단하니 아주 좋군요. 송성연은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송성연을 상대할 때는 반드시 조심해야 해요. 절대 송성연에게 끌려가면 안됩니다.”안심이 안된 소지연이 연신 당부했다.송아연이 송성연과 상대한 과정을 조사해 보니, 그야말로 참혹했다.송아연이 머리가 좀 있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터.“알았어요, 이번에는 무조건 조심할게요.” 송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전에 자신은 송성연을 너무 얕잡아보다가 참혹하게 지고 말았다.송성연을 그저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로만 보았기 때문.송성연에게 그런 수단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다음날, 성연과 무진은 즉시 입시관리처에 가서 블레이크 교수의 행위를 고발했다.성연은 학교의 인장이 찍힌 자신의 입학통지서를 꺼내 놓았다. 블레이크 교수만큼 직위가 높지 않았던 입시관리처 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두루뭉실하게 넘기기 위해 성연에게 웃으며 말했다.“송성연 학우, 우리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만약 송성연 학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학교 쪽에서 합당한 처결을 내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학교는 언제나 공평하고 공정함을 추구합니다.”성연은 담당자가 대충 얼버무리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학교조차 이러니 자신이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 한들 별 소용이 없을 터.성연은 속으로 화가 났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굳은 얼굴로 한쪽에 서서 입시관리처 담당자를 얼음같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성연의 주시에 담당자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재차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송성연 학우, 우리는 역사 깊은 대학입니다. 교수진도 학계에서 명성이 아주 높은 분들입니다. 당신이 말한 일에는 분명히 무슨 오해가 있을 테니 그 오해만 푼다면 문제없을 겁니다.”성연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으며 눈에는 조롱기가 가득했다.“나도 오해였으면 좋겠네요.”그러나 블레이크 교수는 한 마디 해명도 듣지 않은 채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성연은 도무지 그 분노를 삼킬 수가 없었다.담당자는 성연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무래도 송성연 학우의 사상의식이 아주 높은 것 같군요. 우리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아주 우수한 학생이라는 뜻이죠. 그러니 나는 송성연 학우를 믿습니다. 다만 블레이크 교수가 다소 엄격한 분이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송성연 학우가 블레이크 교수를 오해한 듯하군요.”성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학교에서 교수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성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결국 이런 상황이 되자 성연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그럼 저는 학교의 조사 결과를 기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