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생각할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다급히 서한기에게 연락해서 공항의 전투에 대한 상황을 물었다.“애들은 어때?”서한기가 급히 보고했다.“수하 몇 명의 부상이 심합니다. 일단 죽지는 않았어요.”서한기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뒤틀리는 기분인 성연이 미간을 모은 채 물었다.“어떻게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은 거야?”다행히 사망자는 없다고 하니 그나마 좋은 결과다.그리고 다행히 서한기가 있었다. 서한기가 없었다면 전멸했을 터.서한기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습을 당했어요. 매복하고 있었나 봅니다. 상대방은 다섯 명뿐이었는데, 실력이 너무 강했어요. 예전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고수들이었습니다. 모두들 긴 여행길에 좀 지쳐 있었던 터라 미처 방비할 틈도 없이 당했어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도망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어요.”서한기가 ‘쓰읍’ 하는 소리를 냈다. 팔의 상처에서 은근한 통증이 느껴졌다.서한기의 신음성을 들은 성연이 초조하게 물었다.“서한기, 너도 다쳤어?”“네, 팔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어요.” 서한기는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성연이 의자에서 일어섰다.“너희들 지금 어디에 있어? 내가 가서 너희들을 봐야겠어.”자신이 가진 의술로 가서 저들을 치료해 주어야 했다.지금 상황에서는 함부로 의사를 부르지도 못한 채 약만 바른 채 간신히 견디고 있을 터였다.저들 중에서 유일하게 의학적 지식을 가진 서한기 또한 부상을 입어 상황이 더 안 좋았다.서한기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거절했다.“보스, 오시면 안 됩니다. 상대방이 추격을 거두었는지 여부도 아직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됩니다.”수하들 중 하나가 다치는 것은 오히려 상관없다.그러나 성연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그럼에도 성연은 수하들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수하라고 하지만 사실 많은 이들이 성연 자신과 생사를 함께 한 친구였다.이런 상황에서 저들을 내버려두고 상
성연은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턱을 괴었다.보아하니 자신의 이번 유럽 유학 여정은 그다지 평온하지 않을 것 같다.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성연이 무척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자, 목현수가 옆에서 성연의 의혹을 분석했다.“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어쩌면 이 일은 사부님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어? 사부님과 무슨 상관이야?”성연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일이 스승님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목현수가 천천히 설명했다.“당시 사부님은 어떤 인물의 청을 거절해서 그 세력의 눈 밖에 완전히 난 적이 있어. 그 인물이 죽은 후에 그 후계자가 맹세했다는군. 사부님과 우리 문파를 완전히 멸절시키겠다고. 그런데 이해가 안되는 건 네 신분이 언제 유출되었는가 하는 거야.”대외적으로 성연의 신분은 내내 잘 숨겨 왔다.목현수의 말을 들은 성연도 이상함을 느꼈다.“설마 MS 가문과 그 전에 맞서 싸울 때인 걸까요?”“맞아, 어쩌면 그때일지도 모르지. 조직에서 은침을 사용하는 사람은 사부님의 계승자뿐이야.”목현수도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어떡하죠?” 성연이 복잡한 마음으로 머리를 긁적였다.MS 가문뿐만 아니라 지금 자신을 겨냥한 인물이 하나 더 늘었다. 아주 강력하고 이름도 모르는.“일단은 상황을 보며 그때 그때 보자. 네가 유럽에 온 이상, 내가 널 꼭 보호할 거야.”목현수가 성연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사형.”성연은 우선 감사인사를 했다. 하지만 목현수에게도 자신의 일이 있기에 매시간 자신만 지키며 보호할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살상력이 보다 강한 약물은 없는지 나중에 연구해 보아야겠군.’“나한테까지 예의 차릴 거야?” 성연을 바라보는 목현수의 눈에는 은근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다만 성연이 눈앞의 일로 고민에 빠진 터라 미처 보지 못했을 뿐.“밤이 되었어. 날이 차가우니 안으로 들어가자.” 목
“너 누구 약혼녀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야?”그는 일부러 ‘누구’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고 말했지만 성연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무진이 언급되자 성연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얼굴에 행복한 표정까지 지은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사형, 나 축복해줄 거죠?”목현수의 눈이 잠시 반짝였지만 성연의 말에 대답하지는 않았다.순식간에 저기압이 되었지만 목현수는 이내 그 기운들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리고 얼굴에 미소가 띠며 말했다.“그래, 내가 너를 축복해야겠지.”성연은 손가락으로 커피잔에 꽂힌 빨대를 휘휘 저으며 탄식했다.“지금 내 노트북에 들어있던 자료가 분실되었어요. 빨리 찾아야 해요. 그 안에 비밀 처방전들이 들었어요.”스승님의 물건이 다른 사람의 수중에 들어간 후로 성연은 잠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안에 든 비밀 처방전들은 많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해칠 수도 있었다.어쩌면 안나는 약 처방전으로 자신을 위협하려 했을지도 모른다.다만 이렇게 넓은 유럽에서 어디에 가서 사람을 찾는다는 말인가?목현수가 느릿느릿 대답했다.“조급해하지 마, 그 안나라는 여자의 거처를 알아. 오늘 밤에 너를 데리고 갈게.”“좋아요, 사형. 근데 그 여자 너무 예뻐서 그렇게 유심히 본 거예요?” 성연이 놀리는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기가 차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지난 번에 다른 일을 조사하면서 같이 알게 된 사실인데, 정말 네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겠군.”성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그냥 농담이에요!”“안돼, 그 농담 하나도 안 웃겨! 나 화낼 거야!” 목현수가 정색을 했지만, 진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성연은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사형은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기에.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성연에게는 특별히 경험이 있었기에 목현수 앞에서는 유난히 믿는 구석이 있었다.“그나저나 사형, 신부는 언제 찾아요? 그 연세가 되니 날마다 걱정입니다.” 성연이 일부
성연은 목현수와 함께 그가 말한 장소로 갔다.목현수가 모는 차 안은 무척 편안했다.안나의 은신처는 바다에 인접한 별장으로 환경이 꽤 괜찮았다.사위가 조용한 것이 성연은 이런 인테리어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차를 구석진 곳에 세운 목현수가 고개를 돌리니 성연이 멍하니 있는 게 보였다.목현수가 손을 들어 성연의 눈앞에서 움직였다.“가자, 왜 멍하니 있어?”성연이 즉시 정신을 차렸다.“이 별장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을 했어요.”“아이고, 우리 어린 공주님,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랍니다. 네 마음에 들면 다음에 너에게 선물해 줄 테니 지금은 얼른 들어가서 안나가 있는지 보자.” 목현수는 좀 어이가 없었다.성연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방금 전 별장을 보면서 성연은 사실 지형을 관찰했다. 내내 멍청하게 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그리고 안나가 있는 이곳의 방어 시스템이 상당히 괜찮은 것 같아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목현수는 감시카메라를 피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그러다가 뒤편의 한 곳을 찾은 후에 성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목현수가 먼저 벽을 타고 넘자 성연도 날렵한 동작으로 뛰어넘었다.두 사람은 안나의 별장에 소리 없이 잠입했다.별장은 매우 컸다. 목현수가 앞장을 서고 성연이 그 뒤를 따랐다.그런데 갑자기 저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목현수가 얼른 먼저 숨었고, 성연도 즉시 정신을 차리고 다른 곳에 숨었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을 순찰 중이었다.사람이 없는 것을 본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발자국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성연과 목현수가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목현수가 조용히 욕설을 퍼부었다.“왜 순찰하는 사람이 아직 있는 거야? 진짜 목숨이 아깝긴 한 모양이네.”“안나는 킬러처럼 단순하지 않아.”성연도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어떤 일반인이 이렇게 많은 보디가드들을 집 주변에 풀어서 지키게 하겠는가.그만큼 안나가 죽음을 겁내고 있다는 의미.“아직은 명확하지 않지
아래층의 사람들을 다 해치운 후에 성연과 목현수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안나는 이곳에 숨어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에 마스크팩을 쓰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여유만만해 보이는지.실내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안나는 번쩍 눈을 떴다.성연과 목현수를 본 그녀의 눈빛은 비할 데 없이 평온했다.“이곳을 찾아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성연이 먼저 앞으로 나와 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내 물건 돌려줘.”목현수에의 장침에 부상을 입은 안나의 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약간의 핏자국이 배어 나와 있었다.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댄 목현수가 안나를 향해 나른하게 말했다.“네 상태로는 우리를 이길 수 없어. 시간이 지나면 네 결말이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어. 얼른 물건을 내놓는 게 좋을 거야.”성연은 안나를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빨리 물건을 내놔.”안나는 자신이 도망가지 못할 것을 예상한 듯 휴대폰을 들어올리더니 바닥을 향해 세게 내리쳤다.휴대폰을 부숴서 안에 들어있는 자료들도 못쓰게 하려는 속셈.성연은 말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가 안나의 손을 잡아 비틀며 뒤로 꺽었다.저항할 힘이 완전히 빠진 안나는 휴대폰을 부수기 직전에 성연에게 제압당했다.성연은 안나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밧줄로 안나를 꽁꽁 묶었다.이 모든 것을 과정을 마친 후에 성연이 안나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결국 성연은 안나의 몸을 더듬어 USB를 찾아냈다.그와 동시에 얼굴 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하고 안나의 휴대폰을 켰다.안나는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아무도 자신의 실력을 쫓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그런데 순식간에 성연과 목현수의 손에 당한 것이다.그래서 연락처에 따로 잠금 장치도 하지 않아서 성연은 찾으려던 물건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그는 휴대폰의 연락처와 메시지 기록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안나를 고용해서 자신의 자료를 훔치게 한 이는 바로 MS가문의 제이슨임을 확인했다.채팅 기록을 살펴보던 성
“밥은 아무거나 먹어도 되지만, 말은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되지.” 성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목현수와 관계에 선을 그었다.두 사람의 선후배 관계를 저 여자가 어찌나 애매하게 말하는지.성연은 목현수가 기분 나쁠까 걱정이었다.목현수의 눈에 한 줄기 어두운 빛이 스쳐가며 은근한 시선으로 성연을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 자신을 속이지 마.” 안나는 목현수의 눈빛을 통해 간파했다. 성연이 못 알아봤다고 그녀도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법.‘이 남자는 송성연을 후배로만 대하는 게 아니야.’성연은 이 여자의 허튼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안나와 MS가문이 결탁했다는 증거가 더 있는지 방 안을 돌아다니며 수색했다.성연이 저쪽으로 가자 안나는 더 거리낌 없는 눈빛을 하며 목현수에게 말했다.“인정해.”목현수는 냉기 가득한 눈빛으로 안나를 바라보았다.“입 닥쳐.”“아예 놀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저런 젖비린내 나는 계집애가 뭐가 좋다고. 나는 네 외모가 아주 마음에 드는데, 나랑 한번 해 볼래?”안나가 말하면서 유혹의 눈빛으로 목현수를 바라보았다.목현수는 두말없이 바로 은침을 꺼내 안나에게 날렸다.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입술도 새파랗게 질릴 정도로 통증을 느낀 안나는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안나를 바라보는 목현수의 눈빛은 마치 죽은 사람을 보는 듯하다.“감히 네가 그녀를 헐뜯는다고? 네가 뭔 자격으로!”이미 아파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안나는 목현수에게 경멸의 눈빛을 던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성연은 안나의 비명소리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다른 방에서 뛰어왔다.안나의 몸 혈자리들에 장침이 꽂혀 있었다. ‘이건 사형 목현수의 작품이 분명해.’목현수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성연에게 말했다.“물건을 찾았으면 가자. 여기서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 게 좋겠다.”성연은 고개를 끄덕인 후 목현수와 함께 별장을 떠났다.차에 탄 후에야 목현수가 성연에게 말했다.“내가
북성에서의 일을 아직 다 처리하지 못했지만, 무진은 정말이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가까스로 손에 들고 있던 리스트를 끝낸 즉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성연을 방문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했다.이날 성연은 아무리 해도 무진과 통화가 되지 않아 하루 종일 초조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성연은 자신도 모르게 상상하기도 두려운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혹시 무진에게 사고라도 났을까 무척 걱정스러웠다.휴대폰을 들고 손건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손건호 또한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입술을 씹고 있는 성연의 기분이 푹 가라앉았다. ‘강무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섣불리 할머니 안금여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었다. 무진이 정말 사고가 나지 않았다 해도 할머니는 마음속으로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침대에 앉아 기다리는 것뿐. 계속 무진과의 연락을 시도하며.똑똑똑-호텔 객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성연은 미간을 좁혔다. 객실 서비스 시간은 지금 이때가 아님이 기억났다.그리고 음식을 주문하지도 않았다.심지환과 목현수라면 찾아오더라도 미리 알려주었을 터.그럼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안나라는 선례가 있어서 성연의 경계심이 높아졌다.은침을 꺼내며 문을 여는 순간, 문 앞에 섰던 사람이 와락 품에 끌어당겨 안았다.성연이 막 발버둥쳐 벗어나려던 순간 누구보다 익숙한 향이 났다.은침이 다시 천천히 소매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성연이 고개를 들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누구보다 잘생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성연의 마음은 놀람과 기쁨으로 가득찼다.“무진 씨 어떻게 왔어요?”“보고 싶어서 왔지.” 무진이 조금 뒤로 물러서며 성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무진은 성연의 이목구비 하나하나 뚫어져라 살폈다. 마치 아무리 봐도 부족한 듯이.무진의 시선에 성연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수줍은 마음에 볼이 연분홍으로 물들었다. 볼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성연의 볼을 바라보던 무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성연의 입술을 물었다.성연은 거절
무진이 금방 씻고 돌아오자 성연이 준비해 둔 드라이어로 무진의 머리를 말렸다.이리저리 바람 몇 번을 쇠어준 후 침대에 올라 간 무진은 성연을 품에 안고서 성연에게서만 나는 청신한 약향을 맡았다. 그러자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결국 잠의 세계에 빠졌다.무진이 잠든 후에 숨소리도 점차 고르게 변했다.몸을 옆으로 굴린 성연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콧등을 살짝 눌렀다.그녀는 마음속으로 탄식했다.‘이 남자,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어쩌면 무진의 깊은 품속이 너무 편안했는 지도 모른다. 무진을 바라보던 성연 역시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두 사람이 다시 깨어났을 때 밖은 이미 날이 밝은 상태.성연이 깨어났을 때 무진은 이미 눈을 뜨고 성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성연이 먼저 무진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얼른 일어나요. 오늘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그 한마디가 무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평소 성연은 무슨 일이 생겨도 대부분 자신에게 감추고 먼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무진은 이것이 성연의 신분과 관련이 있음을 눈치챘다.성연에 대한 신뢰와 애정으로 어느 것도 따져 묻지 않았다.성연이 이렇게 진지한 모습으로 자기에게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무진은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혹여 어른이 나와서 자신을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성연은 무진의 마음속 걱정을 알지 못한 채 먼저 침대에서 내려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욕실에서 나온 성연이 방으로 돌아오자, 무진이 이어서 세수하러 갔다.욕실 세면대 앞의 거울로 자신의 슈트를 한 번 더 점검했다. 옷차림이 부적절하지 않는지도 살폈다.성연이 소개하는 이라면 필시 성연에게 중요한 사람일 터.무진이 방으로 돌아오자 성연이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성연과 그들이 약속한 고급 레스토랑.도착했을 때 목현수는 이미 룸 안에 앉아 있었다.성연이 열정적으로 두 사람을 소개했다.“무진 씨, 여기는 제 사형 목현수예요.”성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