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혀를 차며 아이를 달래는 말투로 무진에게 말했다.“제대로 쉬어야죠. 지금 시간이 많이 늦었다고요. 내일 또 일찍 일어나야죠, 우리 사랑하는 강 대표님. 설마 내일 출근도 잊은 건 아니겠죠?”성연의 말에 무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거만한 음성으로 말했다.“내가 대표야. 출근하고 싶을 때 하면 돼. 나한텐 네가 제일 중요해.”무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한결같이 성연을 얘기했다. 그 말들에 성연의 가슴이 두근두근 마구 뛰었다.‘역시 무진 씨는 진지할 때가 좋아.’‘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굴면 도저히 감당이 안돼.’무진은 계속 주의를 당부하며 잔소리했다.“밖에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네가 알아서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해.”자신이 성연의 곁에 있을 수 없다 보니, 안전에 대한 주의가 무진의 입에서 줄어들지가 않았다.오늘 밤 무진이 표현하는 모든 행동거지가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러웠다.성연은 속으로 무척 기분이 좋았다.강무진의 또 다른 면을 발견했다.이 모습들은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기에.성연이 대답했다.“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알아서 조심할게요. 무진 씨도 하루 종일 피곤했을 텐데 얼른 가서 쉬어요.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내가 마음이 아프잖아요. 옳지, 착하지?”“그래, 나 이제 자러 갈게, 굿 나잇.” 무진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살짝 쓸었다.마치 이렇게 하면 성연을 만질 수 있기라도 한 듯이.그 모습에 성연의 마음이 녹아들 것 같았다. “안녕, 좋은 꿈 꿔요.” 성연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휴대폰을 내려놓은 무진은 바로 베개 위에 머리를 뉘었다.오늘 저녁 내내 지친 데다가 알코올의 영향 때문인지 무진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무진의 눈이 감기는 것을 보며 성연은 자신의 심장을 쓸었다.“쿵, 쿵, 쿵” 세차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가 팔에서 마음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었다.자신의 심장이 오로지 강무진 한 사람으로 인해 뛰고 있었다.이런 형언하기 힘든 묘한 느낌이 성연은 달가웠다.성연은 옆으로
잠이 들었던 무진은 잠결에 온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그리고 몸의 열기를 식히려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자 결국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눈을 뜬 무진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잠옷 상의는 단추 두세 개가 풀린 채 훤히 열려 있었다.아직 술이 깨지 않았던 무진은 무의식 중에 체온을 낮추기 위해 차가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그러다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그때까지 소지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무진의 침실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따금 한 번씩 들여다보면서.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차에 침실 안에서 무진이 비틀거리며 나왔다.휴대폰을 내린 소지연이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확실한 타이밍이 되었다 싶자 소지연은 허리를 흔들며 소파에서 일어났다.“무진 오빠.” 소지연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이 끈적거렸다. 무진을 향한 시선도 요염해졌다.얼굴에는 무진을 향한 유혹의 표정이 짙게 드러났다.무진의 귀에 웬 여자의 음성이 들렸지만 여전히 머리가 어지러웠다.소지연은 이미 돌아갔다고 생각한 무진.그래서 앞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무진이 대답하지 않아도 소지연은 개의치 않고 무진에게 다가갔다.“무진 오빠, 오빠가 냉수로 샤워할 수 있게 도와 줄게요. 많이 힘들 게 틀림없어, 그렇죠?”소지연이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습한 열기가 끊임없이 무진의 귀 속으로 파고들었다. 소지연은 무진을 자극해서 이성을 잃게 만들 생각이었다.무진은 눈 앞에서 들리는 음성이 낯익었다.그래서 저도 모르게 가슴에 담고 있던 이름이 입밖으로 나왔다.“송성연? 성연아.”소지연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정말이지 송성연에 대한 무진의 감정이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다.이런 상황에서도 무진은 성연의 이름을 불렀다.자신은 어쩌면 평생 이런 애정을 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하지만 뭐 어때?’감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강무진을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무진과 소씨 집안과의
소지연의 계획이 성공하기 직전, 무진의 입술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대는 순간 손건호가 거실에 나타났다.미간을 찌푸린 손건호가 소지연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소지연 씨, 뭐하는 겁니까?”남은 업무들을 처리하고 거실에 오자 소파에 앉아 있던 소지연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지연이 떠났을 리는 없으니 분명히 문제가 생긴 것.사고가 생겼음을 깨달은 순간 손건호는 집안 여기저기 찾으러 다녔다.그러다 이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승리를 바로 눈앞에 두고 놓친 소지연이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운 눈동자에 분노의 감정이 가득 실렸다.“손 비서가 뭘 어쩔 건데요?”소지연의 분노를 무시한 손건호는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소지연 씨, 돌아가세요!”화가 난 소지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간섭하는 거예요?”‘한낱 비서 주제에 내 머리 위에 오르려고 하다니. 도대체 자신의 위치는 생각지도 않는단 말이야?’설사 손건호가 무진의 심복이라 하더라도 대놓고 자신을 도발할 수는 없는 법.손건호는 소지연을 전혀 겁내지 않고 냉담하게 소리쳤다.“저는 미래의 작은 사모님 지시를 따라 보스를 잘 돌봐 드려야 합니다. 돌아가시죠. 그러지 않으면 무례함을 불사할 겁니다!”소지연 같이 낯짝이 두꺼운 사람을 대할 때는 조금의 연민이나 배려도 필요 없었다.소지연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손 비서, 자신의 신분을 잊지 말기를 바래요. 상관해서는 안될 일에는 끼어들지 말아요.”소지연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버젓이 손건호와 시선을 마주쳤다.무표정한 얼굴로 소지연을 쳐다보는 손건호의 눈에 냉기가 서렸다.“나는 소지연 씨가 말한 상관하지 말아야 할 일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나는 지시를 따를 줄 밖에 모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명문가 규수인 소지연 씨가 제 보스가 술에 취한 틈을 타서 이런 일을 벌였습니다. 소문이라도 난다면 소씨 집안의 체면이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군요.”“지금 날 협박하는 거예요?” 소지연은 믿을 수 없다는
소지연을 쫓아 보낸 후에 손건호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보스, 어떻게 된 겁니까?”그런데 무진을 보던 손건호는 그제야 무진의 상태가 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보스 강무진이 자신의 옷을 찢었다.손건호는 과감하게 무진의 이마에 손을 대어 본 후에 다시 자신의 체온과 비교해 보았다.그제야 무진의 이마는 정상인보다 온도가 더 높았다. 열이 난 게 확실했다.온몸에 발적이 일어난 상태로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이다.자신의 보스는 절제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그런 보스가 지금 이 정도로 힘들어하다니, 무진이 정말 참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보스, 어디가 안 좋으신 겁니까?” 손건호가 초조한 음성으로 물었다.초조한 마음에 정신줄을 놓고 있던 손건호는 갑자기 성연의 의술이 떠올랐다.이건 성연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즉시 성연에게 전화를 걸어 무진의 상태를 설명했다.“작은 사모님, 지금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의사를 불러야 할까요?”손건호의 말을 듣고 있던 성연은 속으로 몰래 비명을 질렀다. 무진이 소지연의 덫에 걸린게 분명했다.소지연의 간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대놓고 엠파이어 하우스에서 일을 벌이다니.‘세상에, 눈에 뵈는 게 없구나.’하지만 지금 성연은 그런 것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무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게 중요했다.성연은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키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지금 당장, 얼음을 채운 욕조에 무진 씨를 넣어요.]“네, 작은 사모님, 즉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손건호가 바로 대답했다.[잠깐, 우선 전화 끊지 말고 내 말 대로 한 다음에 말해요. 그러면 내가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손 비서님에게 다시 알려줄 게요.]성연이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지금 무진은 대단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얼음물에 몸을 담그면 고통을 좀 줄일 수 있을 것이다.“알겠습니다.” 즉시 집사를 깨운 손건호는 고용인을 시켜 얼음을 준비하게 지시했다.주방의 냉장고 냉동실에 이
손건호는 황급히 창고로 달려 가서 약재들을 찾았다. 적힌 약재를 모두 찾은 후에 성연이 시킨 대로 분말을 만들기 시작했다.분말로 간 약재를 물에 타서 무진에게 먹인 후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무진의 반응을 지켜보았다.무진의 몸에 나타났던 약효는 억제되더니 서서히 사라졌다.드디어 술에 취해 있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한 무진은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몸은 욕조에 누운 채였다.이제 정상적인 체온을 회복한 무진은 얼음물 속에 담긴 몸이 어느새 달달 떨려오며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조심스럽게 무진을 지켜보던 손건호가 물었다.“보스, 괜찮으세요?”손건호의 음성을 들은 무진이 되려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손건호는 우물쭈물하며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어쨌든 소지연은 무진이 무척이나 신뢰했던 이였다.그런데 이런 짓을 벌였으니 어쩌면 무진은 믿지 않을 지도 모른다.무진은 뇌 한쪽이 텅 빈 듯했다. 깨기 전의 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그러나 자신의 몸이 아주 이상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알아야 했다.아직 손건호와의 통화를 이어가던 성연은 손건호가 대답을 못하는 것을 보고 직접 입을 열었다.[무진 씨, 얼른 가서 쉬어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요 내일 일어나서 다시 이야기해요.]“송성연.”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무진은 성연의 음성에 표정이 많이 풀렸다.성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무진 씨 마음에 의아함이 있을 줄 알아요. 하지만 지금 무진 씨 몸이 많이 힘들 테니 내일 깨면 손 비서가 오늘 있었던 일들 모두 보고할 거예요. 됐죠?]무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무진을 설득하자 성연의 입에서 돌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다행히 무진은 별탈 없었다. 소지연의 약은 그냥 보통약일 뿐이었다.“보스, 제가 침대까지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손건호가 무진을 욕조에서 부축했다.무진은 몸이 나른하고 기운이 없었다.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으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성연이 이렇게 정중한 감사인사를 전하자 손건호는 좀 쑥스러웠다.잠시 웃다가 소지연을 떠올린 성연은 그 얼굴 꼴도 보기 싫었다.“손 비서님이 지켜보면서 소지연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세요.”간신히 기회를 잡아 무진에게 약을 먹였을 소지연이 그렇게 순순히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속에 또 무슨 나쁜 생각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소지연 그 여자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저도 알고 있습니다.”막 성연과 통화를 끝내니 과연 소지연이 다시 돌아왔다.소지연은 걱정스러운 체하며 물었다.“손 비서님, 무진 오빠는 어때요? 몸에 별다른 점은 없어요?”조금 전까지 손건호와 칼을 겨누더니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정말이지 그녀의 멘탈에 탄복할 정도다. 연기가 너무 뛰어났다.그러니 무진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이제야 그 본성을 드러낸 것일 터.손건호는 굳은 얼굴로 축객령을 내렸다.“신경 쓰지 마시죠. 보스는 이미 잠이 들었으니 돌아가세요.”이 사단의 주범이 바로 소지연 자신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정말 역겨웠다.화가 난 소지연이 손건호를 노려보았다.“어쨌든 나도 무진 오빠의 손님이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태도로 나를 대해요?”이전에는 손건호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아도 본 듯 만 듯하며 넘어갈 수 있었다.다시 와서 봐도 손건호는 역시 이처럼 제 분수를 몰랐다.소지연은 겉으로는 몹시 화가 난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놀라는 중이었다.‘왜 약효가 나타나지 않아? 아까 분명히 발작을 일으키는 걸 봤는데?’그녀는 자기 좋을 대로 계산을 끝냈다. 송성연은 멀리 외국에 나가 있어서 돌아올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무진이 발작을 일으키면 그 곁에는 오직 자신뿐일 터. 결국 무진은 자신을 선택하게 될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약효가 사라졌다.소지연은 이를 악물었다. 모든 게 다 자신과 맞서고 있었다!손건호는 무진의 방 입구에 선 채 조금도
손건호가 무슨 말을 하든 소지연은 제자리에 딱 붙어 선 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무진에게 엉기려는 게 분명했다.무진이 보지 않는 한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손건호는 너무 온화한 태도는 소지연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손건호가 차가운 음성으로 경고했다.“소지연 씨, 지금 우리 작은 사모님이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작은 사모님 무척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미 보스를 위해 치료제를 만들어 냈거든요. 소지연 씨가 보스에게 한 일에 대해서는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지요.”소지연은 속으로 저도 모르게 떨었다.무진의 상태가 어째서 이렇게 빨리 완화되었는지도 이제 알게 되었다.‘송성연은 정말 대단해. 여기에 없으면서도 날 이렇게 화나게 하다니.’“나와 무진 오빠 사이에 이 일이 뭐 대단하다고? 무진 오빠는 나를 탓하지 않을 거야.”소지연이 계속 고집을 피웠다.사실은 그녀도 무진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랐다.그러나 손건호 앞에서 지고 싶지 않은 소지연.“그랬으면 좋겠네요.” 손건호가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소지연이 자기자신을 너무 믿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나와 무진 오빠 사이의 친분을 생각해 보시죠.” 콧방귀를 뀌며 손건호를 바라보는 소지연의 눈에 혐오감이 떠올랐다.손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침 그때 지나가던 집사를 향해 손건호가 말했다.“집사님, 운전기사를 시켜서 소지연 씨 좀 바래다 드리도록 하세요.”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지연 앞에 가서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가시죠.”소지연은 눈에 쌍심지를 켠 채 손건호를 째려보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결국 마지못해 집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손건호에게는 함부로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집사는 그렇지 않았다.수십 년간 강씨 집안을 지킨 집사다. 만약 이 일을 안금여와 강운경에게 알리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다.손건호는 여전히 문 가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소지연을 배웅하기 위해 나갔던 집사는 소지연에게 운전기사를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때, 무진이 눈을 떴다.매일 생체시계가 이 시간에 맞춰져 있어서 아무리 늦게 자도 이 시간에 깼다.어젯밤 성연의 말 대로 지은 약의 효과인지 무진은 기분이 상쾌했다.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한 느낌도 사라지고 없었다.하지만 무진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일어난 무진은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여니 손건호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밤을 꼬박 새운 손건호의 양복이 후줄근했다. 핏발이 선 눈으로 무진을 보자 바로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보스, 깨셨습니까?”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여기서 밤새 지켰어?”손건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이 마침내 왔다.하지만 보스도 조만간 이 일에 대해 알아야 했다.“어젯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거실 소파에 앉자 손건호도 따라갔다.손건호는 어젯밤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무진에게 보고했다.“어젯밤에는 작은 사모님 덕분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보스의 상태가 걱정되신 사모님이 저를 시켜 지켜보게 했는데, 다행히 보스가 깨셨네요.무진은 몸이 살짝 굳은 상태였다. 얼굴은 경악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소지연이 나에게 약을 먹였다고?”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손건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무진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사실 소지연이 벌인 일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게 아니었다.온천호텔에 있을 때 소지연이 보여준 행동, 그리고 그를 유혹하던 말 등 모두 자신에 대한 소지연의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다만 그때 자신은 소지연을 무척이나 믿었고 또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지난번에는 그저 성연의 단순한 질투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성연은 소지연의 목적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던 것.‘내가 정말 어리석었어. 이것도 못 알아차리고.’성연을 생각하던 무진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얼른 내 휴대폰을 가져와. 성연이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어.”성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