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후, 성연은 순조롭게 파리에 도착했다.비행기에서 내려 예약한 호텔에 도착한 성연은 무진에게 연락했다.호텔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 턱을 괸 채 전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렸다.곧이어 휴대폰 화면에 무진의 모습이 나타났다.무진이 엠파이어 하우스의 서재에 있었다. 아직 서류를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두 사람은 화면을 사이에 둔 채 마주보았다. 가까운 듯 또 아주 먼 듯했다.어느 순간 서로를 바라보기만 한 채 아무 말도 없었다.성연을 바라볼 때면 늘 냉기를 머금은 듯한 무진 눈동자가 순식간에 따뜻함을 머금었다. 날카로운 이목구비마저 부드러워지는 듯했다.“네가 떠난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벌써 네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어. 아직 새털 같은 시간들이 남았는데,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성연은 모처럼 무진의 말에 반대하지 않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나도, 무진 씨가 보고 싶어요.”말하는 성연의 얼굴에 옅은 분홍 빛이 피어났다. 모처럼 보이는 부끄러운 기색.이런 모습은 어쩌면 무진 앞에서만 드러낼 터.무진의 마음은 이미 보들보들해졌다.‘아, 송성연, 왜 이리 사랑스러운 거니? 당장 네 곁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게 한이다.’‘하지만, 아직은 안 돼. 미스터 제이슨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는.’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무진이 스크린을 사이에 둔 채 성연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시간이 나는 대로 너를 만나러 갈게.”성연이 입을 삐죽거렸다. 강씨 집안의 상황으로 봐서 일이 완전히 정리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자신 도한 무진의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해한다.어쨌든 이런 시기에 무진이 손을 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언제요?” 무의식적으로 손끝으로 침대 시트 위를 반복해서 문지르며 무진을 바라보는 성연의 얼굴에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금방, 약속할 게.” 먼 유럽에 있는 성연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무진은 모든 사람들의 일을 최대한 빨리 속도를 내어 처리할 생각이다.‘시간
푹 휴식을 취한 후, 그 다음날 성연은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했다.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성연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창가에는 용모가 준수한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캐주얼한 차림의 남자는 위로 쭉 뻗은 장신이었고 아주 고고한 분위기를 지녔다.레스토랑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남자의 뛰어난 이목구비에 수시로 돌아보았다.입꼬리를 당겨 올린 성연이 가까이 다가가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오랜만에 봤는데 당신 매력은 여전하네.”성연을 돌아본 남자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밝아지며 눈에 기쁜 마음이 오롯이 드러났다.“너 드디어 왔네. 나는 네가 나한테 장난 친 줄 알았어.”성연이 의자를 당겨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이렇게 큰 일을 어떻게 속이겠어?”“왔으니 됐어. 너무 오래 너를 보지 못하는 바람에 보고 싶어 병이 다 났다고.” 남자의 갸름하면서도 시원스러운 눈에 웃음이 가득 담기자 저도 모르게 빠져들 만큼 매력적이었다.워낙 많이 본 터라 면역력이 생긴 성연은 여심을 자극하는 듯한 남자의 눈을 못 본 체하며 말했다.“밥은 아무거나 먹어도 되지만 말은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되지.”“얼른, 주문해. 배고파. 너무 기뻐서 완전히 속을 비운 채 너를 만나러 왔어.” 남자는 성연에게 메뉴판을 건넸다.성연도 사양하지 않고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주문했다.성연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심재환.예전에 스승님께 구조되어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그곳에서 한동안 같이 생활한 적이 있었다.현재 심재환은 유럽에서 그 이름을 아주아주 날리고 있다. 자신의 명의로 된 회사 브랜드와 제품들로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한 마디로 어마어마한 부자였다.심재환도 메뉴를 골랐다. 메뉴를 고르는 내내 성연과 대화를 나누면서.“고 사부님은 요즘 좀 어떠셔?” 심재환은 늘 마음에 담고 있다. 만약 성연의 스승 고학중이 아니었다면 오늘 자신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매년 그의 회사에서 의료 사업에 큰 금액을 기부하는 것 역시 고학중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나도 스승님을 뵌
성연이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 무진의 생활도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지금 강씨 집안의 상황으로서는 무진이 멈출 수가 없었다.이를 악물고 WS그룹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계속해서 쓸어내야 했다.호텔 안, 무진이 앉아 있는 자리 옆으로 그룹의 주요 파트너들이 함께 했다.테이블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가득했고, 사람들 앞에 가득 찬 술잔이 놓여 있었다. 짙은 향을 풍기는 술은 한눈에 봐도 최상품이다.그 중의 한 중년 남성이 일어났다.“강 대표, 내가 한 잔 올리지요. 강 대표 정말 선견지명이 있습니다.”무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여러분들 정말 저를 난처하게 하시는 군요. 여러분들이 뒤에서 저를 지지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제가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WS그룹을 굳게 믿고 선택하신 만큼 절대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무진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몇 사람 역시 연이어 일어섰다.“그건 당연히 강 대표의 능력이지요. 우리 모두 눈으로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강 대표를 선택한 우리의 판단은 절대 틀리지 않았습니다.”“네, 맞습니다. 강 대표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우리 이 늙은이들은 그저 강 대표만 믿고 돈을 벌게 됐습니다.”“걱정 마십시오. 여러분께서 성심성의껏 협력하시는 만큼 저는 절대 어느 누구도 푸대접하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무진이 잔을 들고 사람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잔 속의 술을 한 번에 마셨다.“그렇지, 역시 강 대표는 시원시원해.” 누군가 손을 들어 박수를 치며 동시에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술잔을 비워 자신들의 마음을 내보였다.술잔을 흔들며 저들이 하는 소리를 듣는 무진의 입꼬리도 따라서 살짝 올라갔다.이 파트너들은 모두 호탕한 성격에 야심도 있었다. 또 모두 착실한 사람들이라 무진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이들과 교제했다.빙빙 돌려서 말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다.소지연은 무진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미리 조사했
술이 세 순배쯤 돌자 동업자들이 속속 자리를 떠났다.룸이 텅 빌 때까지 기다렸던 무진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마를 짚고 있는 무진도 이미 몹시 취한 상태.무진 옆으로 다가간 손건호가 무진을 부축해서 일으키려 했다.“보스, 돌아가시죠.”바로 이때 소지연이 다른 룸에서 걸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무진 오빠, 취했군요.”소지연은 옆방에 있는 내내 무진이 있는 이쪽의 동정을 살폈다.그녀가 오늘 이곳에 식사를 하러 온 것도 무진이 올 것을 알았기 때문.소지연은 바로 걸어 들어가 무진의 다른 한쪽 팔을 잡았다.“손 비서, 내가 무진 오빠를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무진 오빠가 이렇게 취할 정도면 손 비서도 힘들 거 아네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힘껏 무진을 일으켜 세웠다. 소지연은 자신의 말을 거절하는 손건호를 보며 핸드백을 단단히 맨 채 엉덩이를 흔들며 그 뒤를 따라갔다.주차장에 도착한 손건호는 무진을 뒷좌석에 앉힌 후에 자신은 앞의 운전석에 앉았다.소지연도 따라서 차에 올라탔다. 핸드백을 왼손에 꼈다. 이렇게 해야 무진과 좀 더 가까이 앉을 수 있으니까.뒷자리에 앉은 무진은 이미 거의 옆으로 쓰러질 듯 누운 상태로 연신 몸이 흔들거렸다.무진과 가까이 다가가 앉았던 소지연은 일부러 더 옆으로 옮겨 앉으며 무진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대게 했다.무진의 청량한 기운이 소지연의 코를 가득 채웠다.그녀의 가슴에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강무진은 자신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계속 이러고 있는다면 좋겠다.’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송성연이 끼여 있었다.성연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명실상부하게 무진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시간을 들여 증명할 것이다. 자신이야 말로 강무진에게 가장 적합한 여자임을.차창을 통해 서로 바싹 기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바로 자신과 강무진의 모습이.소지연의 얼굴에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다.핸드백에서 휴대폰을 살짝 꺼낸 소지연은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매 장마다 무진이 화면에 담겼다
서운한 마음을 어쩔 수 없었지만 소지연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극히 조심하면서 엠파이어 하우스까지 무진을 바래다주었다.거실에 도착한 소지연이 무진에게 바짝 다가 앉으려 했다.하지만 비록 취했지만 의식은 여전히 명료했던 무진이 나른하게 늘어지는 몸을 힘겹게 세워 일어났다. 그러자 소지연도 얼른 따라 일어났다.“무진 오빠, 어디 가요?”무진이 앞으로 계속 걸어가며 귀찮다는 듯 한 마디로 대답했다. “침실.”소지연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무진의 앞을 가로막고 선 채 나긋이 말했다.“무진 오빠, 물 좀 마시고 정신을 차려 봐요. 안 그럼 내일 일어날 때 힘들어요.”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무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그러나 무진이 은연 중에 느끼기에 지금 소지연이 자신의 옆에 있는 게 이상했다.그래서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거절했다.“됐어.”무진이 이런 상태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그러니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 지 모른다.꿍꿍이가 담긴 눈을 한 채 소지연의 입가에 간드러지는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무진의 거절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무진을 부축해서 소파에 앉히고는 주방에 가서 물잔에 물을 따랐다.그리고 좌우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핸드백에서 하얀 가루가 든 투명 봉지를 하나 꺼내더니 물잔에 털어 넣었다.물잔에 들어간 하얀 가루는 곧바로 물에 녹아 들었다.잔을 살살 흔들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지연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다시 거실로 나온 소지연이 물잔을 무진에게 건넸다.“무진 오빠, 물을 좀 마셔요. 깰 때 힘들지 않게요.”정말 마시고 싶지 않았던 무진은 눈을 감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평소 차가운 기운을 내뿜던 눈동자가 어딘가 약간 몽롱해 보였다.“안 마셔.”무진이 다시 소지연의 권유를 거부했다. 소지연은 물잔을 꽉 쥐었다. 어찌나 힘을 주었든지 손끝이 하얗게 될 정도였지만,
무진은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성연과 매일 영상통화를 하기로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정신이 혼미하고 눈이 감기려 하는 와중에도 무진은 베갯머리에 있는 휴대폰을 들고 성연에게 영상전화를 걸었다.샤워를 하고 나오던 성연은 휴대폰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이 시간이라면 아마도 무진이 자신에게 전화한 것일 터.‘오늘 저녁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나한테 전화할 시간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성연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띤 채 침대의 대시보드에 기대어 전화를 받았다.그런데 영상에 비친 무진의 얼굴이 술에 취해 발그스레했다.차가운 느낌의 흰 피부인 무진의 볼이 지금 유난히 빨갛게 달아오른 듯이 보였다.그 모습이 평상시의 차갑고 딱딱한 강무진에게 인간미를 더했다.성연이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무진을 바라보았다.“술 마셨어요?”술을 마신 강무진은 평소와 딴판이었다.본래의 모습과 다른 반전미가 있었다.무진이 성연의 물음에 고분고분 대답했다.“응, 회사의 중요한 파트너와 함께 마셨어. 기분이 좋아서 좀 많이 마셨어.”사실 무진은 회식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 성연에게 먼저 일정표를 보냈던 것.그러나 평소 술을 절제하는 편이었던 무진이 이렇게 취할 때가 있다니 다소 의외로 여겨지는 성연이다.성연은 볼수록 무진의 이런 모습이 진짜 마음에 들었다.성연의 심미적 관점에서야 무진이 어떤 모습을 하든 다 마음에 들겠지만 말이다.성연은 괜히 무진에게 타박을 주었다.“술 마시고 취했으면 그냥 자지, 나한테 전화는 왜 했어요?”“보고 싶어서.” 반사적으로 무진의 입에서 아무 거칠 것 없는 대답이 나왔다.그저 무진과 장난을 치고 싶었던 성연은 그의 솔직한 고백에 얼굴이 달아올랐다.성연의 볼에도 엷은 핑크빛이 떠올랐다.“무진 씨, 당신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강무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방금 한 말만 들었다면 닳고 닳은 연애고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혹시 남자들은 이런 쪽으로는 모두 알아서 깨우치기라도 하는 거야?’성연의 물음은 무진을 난처
성연이 혀를 차며 아이를 달래는 말투로 무진에게 말했다.“제대로 쉬어야죠. 지금 시간이 많이 늦었다고요. 내일 또 일찍 일어나야죠, 우리 사랑하는 강 대표님. 설마 내일 출근도 잊은 건 아니겠죠?”성연의 말에 무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거만한 음성으로 말했다.“내가 대표야. 출근하고 싶을 때 하면 돼. 나한텐 네가 제일 중요해.”무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한결같이 성연을 얘기했다. 그 말들에 성연의 가슴이 두근두근 마구 뛰었다.‘역시 무진 씨는 진지할 때가 좋아.’‘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굴면 도저히 감당이 안돼.’무진은 계속 주의를 당부하며 잔소리했다.“밖에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네가 알아서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해.”자신이 성연의 곁에 있을 수 없다 보니, 안전에 대한 주의가 무진의 입에서 줄어들지가 않았다.오늘 밤 무진이 표현하는 모든 행동거지가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러웠다.성연은 속으로 무척 기분이 좋았다.강무진의 또 다른 면을 발견했다.이 모습들은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기에.성연이 대답했다.“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알아서 조심할게요. 무진 씨도 하루 종일 피곤했을 텐데 얼른 가서 쉬어요.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내가 마음이 아프잖아요. 옳지, 착하지?”“그래, 나 이제 자러 갈게, 굿 나잇.” 무진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살짝 쓸었다.마치 이렇게 하면 성연을 만질 수 있기라도 한 듯이.그 모습에 성연의 마음이 녹아들 것 같았다. “안녕, 좋은 꿈 꿔요.” 성연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휴대폰을 내려놓은 무진은 바로 베개 위에 머리를 뉘었다.오늘 저녁 내내 지친 데다가 알코올의 영향 때문인지 무진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무진의 눈이 감기는 것을 보며 성연은 자신의 심장을 쓸었다.“쿵, 쿵, 쿵” 세차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가 팔에서 마음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었다.자신의 심장이 오로지 강무진 한 사람으로 인해 뛰고 있었다.이런 형언하기 힘든 묘한 느낌이 성연은 달가웠다.성연은 옆으로
잠이 들었던 무진은 잠결에 온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그리고 몸의 열기를 식히려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자 결국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눈을 뜬 무진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잠옷 상의는 단추 두세 개가 풀린 채 훤히 열려 있었다.아직 술이 깨지 않았던 무진은 무의식 중에 체온을 낮추기 위해 차가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그러다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그때까지 소지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무진의 침실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따금 한 번씩 들여다보면서.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차에 침실 안에서 무진이 비틀거리며 나왔다.휴대폰을 내린 소지연이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확실한 타이밍이 되었다 싶자 소지연은 허리를 흔들며 소파에서 일어났다.“무진 오빠.” 소지연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이 끈적거렸다. 무진을 향한 시선도 요염해졌다.얼굴에는 무진을 향한 유혹의 표정이 짙게 드러났다.무진의 귀에 웬 여자의 음성이 들렸지만 여전히 머리가 어지러웠다.소지연은 이미 돌아갔다고 생각한 무진.그래서 앞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무진이 대답하지 않아도 소지연은 개의치 않고 무진에게 다가갔다.“무진 오빠, 오빠가 냉수로 샤워할 수 있게 도와 줄게요. 많이 힘들 게 틀림없어, 그렇죠?”소지연이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습한 열기가 끊임없이 무진의 귀 속으로 파고들었다. 소지연은 무진을 자극해서 이성을 잃게 만들 생각이었다.무진은 눈 앞에서 들리는 음성이 낯익었다.그래서 저도 모르게 가슴에 담고 있던 이름이 입밖으로 나왔다.“송성연? 성연아.”소지연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정말이지 송성연에 대한 무진의 감정이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다.이런 상황에서도 무진은 성연의 이름을 불렀다.자신은 어쩌면 평생 이런 애정을 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하지만 뭐 어때?’감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강무진을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무진과 소씨 집안과의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