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재라는 큰 산이 무너지자 남은 사람들은 리더를 잃었다.셋째 일가 쪽 사람들은 자신들도 연루될까 두려워 이미 도망갈 구멍을 찾기 시작했다.돌아가는 상황에 마음이 언짢았던 강명기는 급히 미스터 제이슨을 찾았다.간신히 WS그룹에서 나와 은성그룹을 세우고 MS가문 같은 큰 후원자를 끌어들였다.분명 모든 일이 원하던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건만, 결국 강무진의 반격에 자신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들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강명기는 미스터 제이슨이 자신들을 도와주기를 바랬다.그러나 강명재가 구속된 이후 지금까지 미스터 제이슨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심지어 안부 인사조차 없었다.그래서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고 있던 강명기는미스터 제이슨을 보는 순간 즉시 책망의 어조로 말했다.“미스터 제이슨, 당신이 우리에게 투자한 자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 우리 형님이 구속되었어요. 당신이 어떤 생각이든 무조건 방법을 찾아서 우리 형님을 나오게 해야 합니다.”강명기는 오래 전부터 형 강명재 곁을 따라다녔다.형 강명재는 매사에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지금 그런 강명재가 없으니 강명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자신뿐만 아니라, 둘째, 셋째 일가와 자신들을 따르는 이들 모두가 강명재의 결정을 기다렸다.그런데 지금 강명재가 없으니, 모든 결정을 강명기 자신이 내려야 할 상황.강명기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평소 미스터 제이슨을 만나면 늘 공손한 태도를 취하던 강명기였기에 지금처럼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다.형 강명재가 구속되었으니 자신도 멀지 않아 구속되리라 생각한 강명기는 아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미스터 제이슨을 찾아 대책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도 미스터 제이슨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할 뿐.“당신들이 졌습니다. 우리 MS 가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들 능력이 무척 실망스럽군요.”‘강명재와 강명기, 좀 쓸모 있는 놈들인
강명재가 구속된 데 이어 강명기 역시 바로 실종되었다.둘째, 셋째 일가에는 이제 강일헌과 강진성만 남았다.날마다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빚을 독촉하는 바람에 강일헌과 강진성은 괴롭기 짝이 없었다.강일헌과 강진성은 지금 둘째, 셋째 일가가 완전히 끝났음을 확실히 알았다.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무진을 찾아갔다.애초에 무진은 두 사람을 만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무진이 퇴근하는 길을 가로막았다.무진을 보는 순간 강일헌과 강진성이 무진 앞으로 뛰어들었다.평소 멋대로 날뛰던 두 사람은 곧장 무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앓는 소리를 했다.“형님, 제발 우리 좀 살려주세요. 우리가 잘못한 것 잘 알고 있습니다.”무진이 차가운 얼굴로 두 사람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쳐다보았다.“오늘 이 지경에 이른 건 모두 너희들 쪽에서 지은 죄에 대한 업보야!”저들은 더 쳐다볼 가치도 없는 인간들이었다.“형님, 이제 저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형님밖에 없습니다.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제발요, 형님. 형님, 제발 살려주세요.” 두 사람은 무진을 향해 계속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사정했다.바닥에 부딪힌 이마에 피가 맺혔다.그만큼 두 사람은 사력을 다해 사정했다.그러나 무진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한 채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사정해도 소용없어, 빨리 나가.”무진은 도와주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확실하게 했다.둘째, 셋째 일가는 지금까지 무진 자신에게 한 번도 너그러웠던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지.사실 무진이 이 정도로 한 것 자체가 이미 자비를 베푼 것이나 마찬가지. 계속 버틸 수 있을지는 강일헌과 강진성에 달려 있을 터.“형님, 도와주세요.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강일헌이 눈물을 흘리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당장 눈앞에 직면한 엄청난 빚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노래졌다.강진성도 옆에서 거들었다.“형님, 우리가 비록 WS그룹을 떠나긴 했지만, 그래도 형님과는 피로 연결된 동생
강씨 집안의 둘째, 셋째 일가에 대한 소식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그 소식을 송아연도 알게 되었다.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에 둘째, 셋째 일가가 이렇게 무너질 줄은 상상도 못한 일.송아연이 이득을 취할 새도 없이 말이다.‘그건 안 돼, 둘째, 셋째 일가가 파산하더라도 그 속에서 뭔가 이득을 얻어야 해.’강일헌과 강진성은 사정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찾아다니며 통사정을 했다.사람들의 태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모두 돕기를 원하지 않았다.강진성은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술을 마시며 알코올로 자신을 마비시키려 했다. 이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고 자신에게 암시를 걸면서.송아연이 강진성의 방으로 들어가니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순간 질색한 송아연이 손으로 코를 쥐어 막았다. 온 바닥에 흩어진 술병들을 피해가며 강진성의 옆으로 다가간 송아연이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진성 씨, 얼른 돈 좀 만들어 줘요.”송아연은 강진성에게 돈을 받은 후 얼른 이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모든 일은 강씨 집안 사람들이 벌인 것이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고개를 든 강진성 눈이 벌겠다.“돈을 달라고?”강진성의 눈빛에 깜짝 놀란 송아연이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이 돈은 그녀가 반드시 받아야 했다.송아연이 용기를 내어 계속 말했다.“맞아요, 어쨌든 그동안 당신도 날 데리고 놀며 잤잖아요. 내가 당신에게 그 돈 정도는 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잖아요? 얼른 줘요.”테이블을 짚으며 비틀비틀 일어선 강진성이 송아연에게 다가가더니 손을 올려 바로 송아연의 뺨을 갈겼다.“천박한 년, 꺼져! 지금 너까지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야?”강진성의 힘이 세다 보니 뺨을 맞은 송아연은 바로 바닥으로 쓰러졌다.손으로 얼굴을 가린 송아연이 원망의 눈빛으로 강진성을 바라보았다.“당신 때문에 아이까지 잃은 난데, 그래도 지금 날 죽이고 싶어?”강진성은 송아연을 한참 쳐다보더니 웃기 시작했다.“넌 그래도 싸, 그래도 싸. 누가 너 더러 돈
죄수복을 입은 강씨 집안 둘째 할아버지 강상철은 전화 한 통을 받은 후부터 혼비백산 상태가 되었다.입으로는 계속 무어라 중얼거리면서.“끝났어, 완전히 끝났어.”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셋째 할아버지 강상규가 형 강상철의 옆으로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형님, 왜 그러십니까?”강상규의 음성을 듣고서 불현듯 깜짝 놀란 강상철이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이 강상규의 손을 꼭 쥐었다.“상규야, 우리는 끝났다. 이제 되돌릴 가능성이 없어. 다 사라졌어.”무언가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 같았다. 아무 일도 없이 이럴 형님 강상철이 절대 아니었다.집안에 무슨 큰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숨을 깊게 들이마신 강상규가 차분한 음성을 내기 위해 애쓰며 물었다.“형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강상철은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로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털어놓았다.지금 둘째, 셋째 일가가 무너졌으니 더 이상 숨길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설령 자신들이 이 곳을 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일어난 일을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을 터였다.듣고 난 강상규 역시 창백한 얼굴이 되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그럴 리가?”강상철이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한평생 심혈을 기울여 계획을 세웠건만, 결국 이런 결말을 보게 되는구나, 하하하하.”강상규는 표정이 이상한 강상철을 보면서 옆에서 위로했다.“형님, 우선 진정하세요. 너무 속단하지 말고요.”가까스로 만들었던 지위와 세웠던 기업이 모두 하루아침에 무너졌다.강상규 또한 속이 쓰려 왔지만, 지금 아직도 교도소에 수감 중인 그들 두 노인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강상철은 계속 큰 소리로 웃으며 입으로 중얼거렸다.“죄를 지은 업보야, 업보야.”그렇게 중얼거리던 강상철이 순식간에 피를 토하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쓰러졌다.순간 강상규가 당황하며 얼른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형님, 형님, 왜 그래요?
강상규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무진은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강상규를 만나러 교도소로 향했다.그러나 둘째, 셋째 일가를 돕기 위해 간 것은 결코 아니었다.강상철, 강상규, 두 어른이 할아버지의 친 동기이기에 간 것일뿐.그들에 대해 무진은 절대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무진을 본 강상규는 드물게도 당황했는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그저 앞에 놓인 잔만 만지작거렸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셋째 할아버님, 할 말이 있으시면 그냥 말씀하세요.” 무진이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하긴, 넌 이제 무척 바쁜 사람이니, 지금 나를 보러 온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겠지.” 강상규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전에 자신이 무진을 대하던 여러 장면들을 떠올리니, 무진에게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지가 않았다.강상규가 입을 열지 않자, 무진도 입을 다물었다. 침묵하고 있는 두 사람으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공기 가운데 무척이나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 강상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무진아, 틀림없이 우리 둘째, 셋째 일가의 처지는 너도 분명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 할아비가 부탁하마. 이제 우리 하자. 우린 이미 그 죄과를 받았다.”평소 강상규가 얼마나 도도한 사람이었던가?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고개를 숙인 채 무진에게 사과하고 있었다.강상규도 예전만큼 정정하지 않았다. 무척이나 초췌한 것이 마치 십년은 더 늙어 보였다.어쩌면 이 모습이야 말로 노인이 가져야 할 덕목일지도 모른다.그러나 무진은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 바로 대놓고 강상규에게 말했다.“저는 멈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제가 끝내고 싶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MS 가문이 둘째, 셋째 일가의 남은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안색이 창백해진 강상규의 마음은 완전히 낙담한 상태가 되었다.강명재와 강명기는 대단한 뒷배를 끌어들이면 큰 집에 맞설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다.하지만 그들은 집
강일헌, 강씨 집안 둘째 일가의 둘째 도련님인 그가 은성그룹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으며, 다들 이 일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강씨 집안 둘째, 셋째 일가가 천륜을 어긴 죄값을 드디어 받은 거죠?'“봐요, 은성그룹이 무너진 다음에 그런 일들이 드러났는데, 어떤 일이 눈에 들어오겠어요? 이런 사람은 진작에 죽었어야 해요.”“바로 이렇게 투신자살했다고? 저들이 강한 정신력을 지닌 줄로 알았는데? 어쨌든 이런 과도한 일도 저들은 해내는 군요.”강일헌의 죽음에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조롱뿐이었다.이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느꼈다. 둘째, 셋째 일가에 사람이 없어진 것은 또한 그들이 강씨 집안을 쪼개려던 저들의 계획이 철저히 박살났음에 대한 선포였다.성연은 TV로 그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해바라기씨를 까먹었다.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하며 봤다.성연의 옆에 앉은 무진이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이렇게 건조된 것들은 많이 먹지 마. 열이 나지 않게 물을 많이 마셔야 해.”물을 한 모금 받아 마신 성연이 얼굴을 구겼다.“이건 무슨 맛이 이래요?”“주방에 말해서 안에 화기를 제거하는 것을 좀 넣으라고 했어.”무진이 설명했다. 얼굴에 좀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은 채.성연이 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무진 씨는 내 전공이 뭔지 잊었어요? 설마 내가 내 몸이 어떤 지도 잘 모르겠어요? 무진 씨야 말로 몸에 화기를 없애야 한다고요!”말하면서 성연은 자기 앞에 놓인 물잔을 무진 앞으로 밀어 놓으며 무진을 향해 양 눈썹 끝을 세웠다.무진은 아무 말도 없이 잔 속의 물을 한 번에 다 마셨다.그리고 잔을 흔들어 잔이 비었다는 뜻을 성연에게 표시했다.성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바꿔보지만 이리저리 돌려봐도 모두 이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눈이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둘째, 셋째 일가에 관한 뉴스는 가급적 안 보
둘째, 셋째 일가가 처참할 정도로 무너지면 무진이 저들을 그냥 놓아줄 줄 알았다.그런데 무진은 멈추지 않았다. 바로 이어 자신을 배신했던 협력업체들에게도 타격을 주었다.이 사람들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여긴 사람들은 둘째, 셋째 일가처럼 처참한 상태가 될까 두려워 미스터 제이슨에게 투항했다.자료를 뒤적거리던 무진이 눈살을 찌푸렸다.무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손건호가 물었다.“보스, 왜 그러십니까? 자료들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말하면서도 손건호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자료들은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들이라 누락된 부분은 절대 없을 테니까.다만 자신의 보스가 어떤 일로 인해 안색이 나빠진 것인지 궁금했다“자료는 별 문제가 없어. 단지 이건 어째 MS 가문이 판 함정이 아닌가 싶다.” 무진의 의심은 수집한 자료들과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연관 지으며 든 것이다.둘째, 셋째 일가가 쓰러진 이후, 미스터 제이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들을 삼켜버렸다. 그전에 은성그룹과 협력하던 회사들도 모두 미스터 제이슨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사건 전체를 놓고 볼 때,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바로 미스터 제이슨.또한 강명재와 강명기 두 사람의 추진해서 세웠던 은성그룹은 결국에 미스터 제이슨의 수중에 들어가며 그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결국 둘째, 셋째 일가는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한 셈이다.지난 일을 되돌아보던 손건호 역시 하나 둘 차례대로 정리되면서 갑자기 등 뒤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정말 그렇다면 미스터 제이슨의 계략이 너무 치밀한 것 아닌가요?”“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MS 가문도 외국에서 100년을 이어온 가문이야. 오래된 역사만큼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는 가문에서 미스터 제이슨이 인정받았다는 건 미스터 제이슨이 그만큼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거겠지.”무진은 분석할수록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느껴졌다.‘이건 역시 미스터 제이슨 쪽에서 계획한 게 분명해.’아닐 수도 있
눈 깜짝할 사이에 성연이 곧 유럽으로 대학 진학하는 날이 되었다.그 기간 동안은 무진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성연과 함께 할 것이다.자신의 어린 약혼녀가 먼 유럽으로 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그리고 무진의 말을 통해 성연이 유럽에 가는 일도 알고 있었던소지연이 선물을 들고 방문했다.성연과 무진, 두 사람은 바둑을 두며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얼굴에 시종 훈훈한 웃음을 띠고 있는 무진을 보는 소지연의 눈에 질투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예전 무진은 자신에게 무척 잘해주었지만,자신의 눈앞에서는 지금 같은 표정을 지어 준 적이 없었다.소지연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말했다.“무진 오빠, 성연 씨, 바둑 두고 있어요?”성연은 고개를 들어 소지연을 한 번 쳐다본 후에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눈앞의 바둑판을 연구하는 데 전념했다.무진이 소지연에게 인사를 했다.“왔어? 편하게 앉아.”소지연은 선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단정한 자세로 소파에 앉은 자세가 예의범절의 정석 같았다.보아하니 양갓집 규수들이라야 익힐만한 우아함이 배어 있었다.물론 자신의 단정한 자세와 성연의 앉은 것 같지 않은 자세와 비교되게끔 소지연은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였다. 무진이 자신의 뛰어난 점을 알아볼 수 있도록.그동안 소지연은 두 사람이 바둑을 두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입을 열지 않았다.두 사람의 바둑이 끝난 후에야 소지연은 입을 열었다.“성연 씨, 유럽으로 진학한다고 들었어요. 마침 우리 둘이 서로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겠어요. 성연 씨는 언제 갈 생각이에요? 우리 둘이 같이 가요.”성연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아니오, 몇 시간만 비행기를 타면 바로 도착인데요, 뭘.”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소지연과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새 학교에 대한 기대로 들뜬 자신의 즐거움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소지연은 순간 불쾌한 마음을 드러냈다.하지만 가까스로 참으며 미소를 지었다.“성연 씨, 몇 시간이래도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