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풀러 왔어요.”허태준은 답했다.하은설은 가슴이 다시 한번 철렁였다.“오해?”그녀는 차갑게 웃었다.“나랑 유진이 사이엔 오해 없어요.”허태준은 앞으로 두어 발작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여기로 와 앉을래요?”허태준은 침착하게 하은설에게 물었다.“임신하지 않았나요? 오래 서있으면 발이 많이 아플거예요.”“가증스럽게 걱정하는 척 하지 말아요!”이미 편견이 생겼는지 허태준의 모든 행동은 하은설의 눈에 연기하는 것으로 보였다.“그래요, 거기 서 있어요.”허태준도 더 이상 하은설을 강요하지는 않았다.“유진 씨더러 고소를 취하하라 했다고 들었어요.”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아니요.”하은설은 허태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당신이 취하해야죠.”허태준이 고소했으니 취하도 당연히 그가 해야 하는 것이다.“택양 씨는 하지도 않은 이로 감옥에 갈 수 없어요.”“하지도 않은 일?”허태준은 흥분하여 눈썹을 꿈틀거렸다.“허택양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요? 당신한테 사실을 말할까요,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남을까요?”허태준의 냉정한 비웃음에 하은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저한테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건 허 대표님이시겠죠? 저희 가지고 노니까 재미있으신가요? 성취감이 느껴지나요?”“저를 믿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죠.”강하게 쏘아붙이는 하은설과 달리 허태준은 많이 평온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허태준은 편안했고 하은설의 공격에 결코 휘둘리지 않았다.“하지만 당신과 유진 씨는 십여 년의 친구예요, 유진 씨가 당신에게 상처를 줄 거라 생각하나요?”허태준의 말은 비수가 되어 하은설의 가슴을 찔렀다.이 또한 그녀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어온 문제였기도 했다.“어쩌면 이런 행동이 저에게 상처가 됨을 모를 수도 있죠.”하은설은 고집을 세웠다.심유진의 출발점은 허태준과 자신, 그리고 하은설을 지키는 것에 있었다.그러나 이런 보호는 ‘허택양은 쓰레기’가 전제였다.“당신들의 허택양에 대한 판단이 틀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나요?”하은설은
엘리베이터를 나오자 사람들이 많이 적어졌다.하은설은 허태준과 일정 거리를 두며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허태준은 한 룸의 벨을 눌렀다.‘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안의 남자는 경악하며 물었다.“허 대표님?”허태준은 고개를 돌리며 인내심 있게 하은설이 걸어오기를 기다렸다.“한 분과 같이 왔어요.”허태준은 방의 사람과 말했다.하은설이 방문 앞으로 가자 그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고 ‘헉’하고 놀랐다.“그분 아니세요...?”남자는 하은설을 가리키며 허태준에게 물었다.“허택양의 그...”남자의 입에서 허택양의 이름이 나오자 하은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그를 바라보았다.큰 키에 빡빡이 머리를 한 남자는 얼굴에 칼자국이 하나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좋은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하은설은 긴장하여 그 자리에 섰다.“맞습니다.”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남자의 예측이 맞음을 얘기했고 하은설을 불렀다.“우리 들어가서 얘기해요.”하은설은 머뭇거리며 경계 어린 눈빛으로 눈앞의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걱정하지 말아요. 호텔 안엔 CCTV가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 하나 도망가지 못해요.”허태준은 이렇게 하은설을 위로했다.하은설은 그제야 안심했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혼자 문 앞에 서서 한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여기서 말씀하세요. 얘기가 끝나면 저는 갈게요.”허태준은 의자를 끌어당겨 방 안에 앉았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허태준의 옆에 앉아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허 대표님?”“당신이 누군지, 허택양이 당신한테 어떤 짓을 했는지 이 여자분에게 다 말씀해 주세요.”허태준은 턱으로 하은설을 가리켰다.“그래요.”칼자국을 새긴 남성은 목을 가다듬으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저는 강성이라고 합니다. N 시티 ‘천마파’의 두목이고요.”N 시티에는 많은 조직들이 많은데 강성은 그중의 ‘천마파’를 이끌고 있었다. 한국에서 밀입국하여 온 천파마 형제들을 돌보는 강성은 이 곳의 한국인 사이에서 꽤 유명세가 있었다.
“어느 방이요?”하은설은 급히 물었다.“오텀 호텔?”강성은 그 말에 웃었다.“아니요, 오텀 호텔은 그 이후의 일이고요. 처음에는 당신을 허택양이 임시로 빌린 한 지하실에 눕혔어요. 심유진이라는 당신의 친구가 자신과 당신을 바꾸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허택양이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오텀 호텔에 데려간 거예요.”“심유진으로... 나를 바꿔?”하은설은 그 자리에 얼어 버렸다.이 일은 허택양도 심유진도 그녀한테 얘기하지 않았다.강성이 한 얘기가 너무나도 구체적이어서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허택양의 최종 목적은 심유진을 한국에로 납치하는 거예요. 저희를 부른 것도 심유진이 도망갈가 봐요. 심유진을 잡지 못해 당신을 이용한 거예요.”허택양이 하은설한테 약을 먹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후에 자신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깼을 때 자신과 심유진은 이미 안전하게 오텀호텔에 있었기에 하은설은 시종일관 허택양이 자신을 납치하려고 일을 벌인 거로 생각했다.하은설은 가슴이 철렁했고 문고리를 잡은 손에도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그리고...요?”“그리고? 당연히 심유진이 갔죠. 그 여자 너무 멍청하던데요. 허택양이 혼자 오라고 하니까 진짜 아무도 데려오지 않고 혼자 왔더라고요.”허태준의 쏘아보는 눈빛을 느낀 강성은 빠르게 말을 바꿨다.“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너무 용감하다고요. 친구를 위해 자신을 위험에 빠지게 하다니, 이 의리는 우리가 배워야 한다니까요!”허태준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중점만 말해.”강성은 빠르게 중점만 말하기 시작했다.“허택양이 심유진더러 가라고 한 곳은 당신이 갇힌 지하실이 아니라 공항 근처의 한 모텔이었어요. 심유진은 붙잡힌 후에 부하들을 설득해서 자신을 돕게 했죠. 그때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도망칠 수 있었으나 당신을 구하려고 허택양과 공항에 간 거죠. 허택양이 당신을 감시하는 부하들에게 공항에 도착했으니 철수해도 된다고 지시를 내렸어요. 공항에 도착한 후에 심
하은설은 손을 벌벌 떨려 온몸의 힘을 써서야 힘겹게 문을 열 수 있었다.밖의 사람은 인내심 없이 문을 밀어버렸다. 밀려버린 두터운 문이 하은설을 박자 그녀는 뒤로 밀려났다.문이 잘 열리지 않자 문밖의 사람은 다급히 머리를 쏙 내밀었다. 문 뒤의 하은설을 보고는 얼굴이 삽시에 얼어버렸다.“괜찮으십니까?”하은설은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괜찮아요.”하은설은 문과 거리를 두었다. 그 사람에게 부딪히지 않기 위해 아예 화장실로 몸을 비켰다.사람들이 우수수 방으로 들어왔다.꽤 널찍한 방이 사람들로 좁아 보였다.강성은 그들로 하여금 한 줄로 질서 있게 서라고 했다.그들 중 일부 백인들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싸움을 일으키려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성의 부하로 보이는 아시아계 인들은 그들을 저지했다.“하은설 씨?”강성은 하은설을 불렀다.“증거를 보실 건가요?”하은설은 지금 오히려 나가기 싫었다. 그녀는 이 사람들이 증거를 제시하면 허택양의 거짓말은 탄로 날 것이고 자신은 사랑에 눈이 멀어 오랜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 될 거라는 예감이 왔다.“하은설 씨?”강성은 화장실로 걸어 와 독촉했다.“빨리 나오세요! 빨리 이 사람들 말 듣고 내보내자고요!”할 수 없이 하은설은 강성을 따라 나갔다.그제야 하은설은 방 안의 사람들을 제대로 보았다. 국적이 예측되지 않는 황인과 한눈에 보아도 동네 양아치로 보이는 백인들이었다.그들은 모두 험상궂게 생겼고 몸 또한 일반인들보다 우람했다.몇몇 백인들은 하은설이 나오자 음흉한 눈빛으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뭐 하는 짓들이야!”강성은 허리춤의 총을 꺼내 들며 욕을 퍼부었다.“다들 얌전히 있지 않으면 오늘 다 죽을 줄 알어.”그제야 그들은 얌전해졌다.강성은 자신의 핸드폰을 그들의 눈앞에 보이며 물었다.“이 사람 기억나지?”하은설은 핸드폰 액정의 사람을 똑똑히 보았다. 허택양이었다.“기억나죠!”백인 양아치들은 그 사진을 보며 비웃기 시작했다.“그 겁쟁이잖아! 우리에게 맞아서 반항도 못 하고, 여
허태준이 할 행동을 예상한 하은설은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허 대표님, 진정하세요! 유진이는 대표님이 살인하는 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 유진이와 별을 두고 감방에 가고 싶으세요?”“누가 살인한다고 했어요?”허태준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허태준은 손가락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겼다.총소리가 울리며 한 양아치의 처절한 울음이 울렸다.“내 발! 내 발!”그의 발등에는 하나의 구멍이 생겼고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악!”평생 이렇듯 잔인한 장면을 본 적이 없던 하은설은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서며 급하게 욕실로 숨고는 문을 잠갔다.이후에도 총소리와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하은설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그 화면을 상상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한참이 지나서 욕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허태준의 소리가 방음이 되지 않는 유리문으로 흘러나왔다.“은설 씨, 저랑 같이 돌아가실래요?”허태준의 잔인한 모습을 본 하은설은 그가 두려워졌다. 그러나 방안에 남은 사람들은 더욱 무서웠다.하은설은 급하게 문을 열며 더듬거리며 대답했다.“같,같이 갈게요.”**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하은설은 허태준과 헤어지려 했다.“저 혼자 택시 타고 가면 돼요.”하은설은 허태준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폐 끼치지 않을게요.”“안 돼요.”허태준이 하은설에게 한 걸음 다가가자 그녀는 놀라 뒤로 물러났다.허태준의 기세에 꿀리지 않기 위해 높은 굽을 신었던 하은설은 오히려 자신의 꾀에 넘어갔다.그녀는 높은 굽 때문에 발목을 삐끗했다.허태준이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하은설은 바닥에 넘어졌고 격렬한 아픔이 아랫배에서 느껴졌다.그녀는 머리를 숙여 바닥에 흥건한 피를 쳐다보았다.하은설은 머릿속이 하얘졌고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갔다.하은설은 쓰러지기 전에 생각했다.‘이것이 나의 운명이구나...’**알콜의 힘을 빌려 심유진은 잠을 푹 잤다.그녀가 깨니 이미 저녁이었다.허태준은 없었고 방에는 램프만 켜져 있었다.그녀는 지끈거리는 관자놀
심유진은 허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뚜-”전화는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통했다.“유진 씨?”허태준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물었다.“깼어요?”전화기 너머는 너무나도 조용하여 허태준이 어디에 있는지 심유진은 알 수가 없었다.“네.”그녀는 물었다.“어디 간 거예요?”“저요?”허태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병원이요.”심유진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무슨 일이에요?”“내가 아니고요.”허태준은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은설 씨요.”“은설이요?”심유진은 다급히 방에서 뛰어나오다가 탁자에 무릎을 부딪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나왔다.“어느 병원이에요? 지금 갈게요!”“아니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말렸다.“은설 씨는 잠들었어요. 한동안 깨지 못할 거예요.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니까 내일 나랑 같이 와요.”“아...”심유진은 꺼내온 옷을 다시 걸었다.“그럼... 조심히 돌아와요.”**허태준은 반 시간 후에 돌아왔고 Mike 엄이 보내온 도시락도 가져다주었다.기름에 튀겨진 맛있는 냄새가 도시락 봉투에서 흘러나왔다. 심유진은 그 시각 매우 배고팠지만 입맛은 없었다.“은설이 어떻게 된 거예요?”그녀는 허태준의 손을 잡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일단 뭐 좀 먹어요.”허태준은 손의 봉지를 심유진에게 건네줬다.“천천히 얘기해 줄게요.”심유진은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 씹어 넘기기도 전에 허태준을 독촉했다.“빨리요!”“오후에 은설 씨를 찾으러 갔어요.”허태준은 그녀에게 처음부터 설명해 주었다.“증거를 보여 줬어요.”“그게 병원에 있는 것과 무슨 관련이에요?”심유진은 쓸데없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집에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은설 씨가 발을 헛딛는 바람에 아이를 유산했어요.”허태준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고 말투도 괴로움이 배었다.심유진은 손에 들었던 햄버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뭐, 뭐라고요?”심유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다시 한번 말해 봐요... 은설이가... 어쨌다고요?”그녀의 눈에는 눈물
심유진은 이미 온 오후 잠을 잤기에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더욱이 지금은 마음이 편치 않았기에 침대에서 뒤척이기보다는 병원으로 가 하은설을 돌보는 게 나았다.“은설이가 밤에 깰 수도 있잖아요.”“은설이가 눈을 떴을 때 익숙한 사람을 봤으면 좋겠어요.”심유진은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어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혼자 병실에 누워있는 외로움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충격적인 일이 너무 많아 하은설이 외로움에 정신이 온전치 못할까 심유진은 걱정되었다.허태준은 자신이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더 이상 그녀를 설득하지 않았다.“그럼 이것 먼저 다 먹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이 오후에 두 개의 닭다리만 먹고 저녁도 먹지 않은 상태로 병원에 가서 밤을 새우면 몸이 상할까 걱정되었다. “...그래요.”심유진은 그가 가져다준 음식을 겨우 다 먹었다.**병원은 심유진이 자주 가던 곳이었고 오피스텔에서 매우 가까웠다.하은설의 병실은 1인용이었다. 지금 시간에는 하은설과 간호원 모두 잠들 시간이었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간병인은 경계하며 쳐다보았다.허태준을 바라보며 간병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대표님, 왜 또 오셨어요?”“오늘 밤에는 돌아가셔도 돼요.”허태준은 말했다.“비용은 똑같이 지불할 테니까 오늘은 먼저 돌아가세요.”“왜요?”간병인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제가 어디 잘 못 한 것 있나요? 대표님, 말씀만 해주시면 고치겠습니다!”허태준이 그녀에게 지불한 비용은 다른 사람들의 두 배였기에 그녀는 이 일을 더욱 놓치고 싶지 않았다.“오해한 것 같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가리키며 말했다.“오늘은 제 아내가 돌보고 싶다네요. 내일 아침에 다시 오세요.”간병인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네.”간병인은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말했다.“대표님,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주세요.”간병인이 나가자 허태준은 간이침대를 펴며 물었다.“새 시트와 이불을 쓸래요?”“괜찮아요.”심유진은 그런
허태준은 하은설이 아니었기에 그녀의 마음을 예측할 수 없었다.다만 하은설이 오늘 겪은 일들의 분노가 심유진에게 불똥이 튈지는 아무도 몰랐다.그래서 허태준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돌아가요.”심유진은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오늘... 당신도 수고했어요.”허태준은 잠시 심유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요.”“일찍 쉬어요.”**심유진은 간이침대를 하은설에게 가까이 끌어당겨 그 위에 앉으며 하은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그녀는 하은설이 깨면 어떤 반응일지 몇 번이나 상상했다.자신을 때릴까? 욕할까? 자신과 철저히 인연을 끊을까? 아니면 자신과 죽으려고 할까?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밖은 서서히 밝아졌다.**하은설은 꿈을 오랫동안 꾸었다.꿈속에서 하은설은 별이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를 보았다.예쁜 꽃무늬 치마를 입고 양 갈래를 딴 여자아이는 눈을 초롱초롱 뜨며 하은설을 엄마라고 불렀다.하은설은 매우 행복했다.하은설이 빨리 걸어가 여자아이를 안으려고 할 때 아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은설은 미친 것처럼 주위를 맴돌며 아이를 찾았다.주위는 온통 하얀색이었고 텅 비어 있었다.하지만 계속하여 아이의 부름 소리가 하은설을 맴돌았다.“엄마!”“엄마!”“엄마!”기쁜 소리, 슬픈 소리, 분노의 소리가 하나씩 울려왔다.“어디 있어?”하은설이 절규했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하여 아이의 부름 소리만 들렸다.“엄마!”“엄마!”“엄마!”하은설은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뛰며 울부짖었다.“나와!”“빨리 나와!”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온통 하얀색이었다.하은설은 너무 오래 뛰어 힘들었는지 땅에 주저앉았다.여자아이의 부름 소리도 함께 사라졌다.새하얀 공간 속에서 여전히 일정한 걸음 소리가 울렸다.그건 구둣발 소리였다.딱.딱.딱.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반짝반짝한 검은색 구두가 하은설의 눈에 들어왔다.매우 익숙한 구두모양이었다. 허택양에게서 자주 봤었던 구두였다. “은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