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갑자기 머릿속에 우정아가 떠올랐다.그녀는 비록 조건웅과 우정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자신보다는 훨씬 가까울 것이 분명했다.“간호사님, 잠시만요. 제가 조건웅 주변 사람에게 전화를 해볼테니까 기다려주세요. 금방 다시 전화를 드릴게요.”“예, 되도록 빨리 부탁드려요.”심유진은 우정아의 연락처가 없기에 조건웅의 친한 지인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여보세요? 오랜만이네요.” “어, 오랜만이네요. 근데 유진 씨 무슨 일이죠?”“다름아니라 혹시 우정아 핸드폰 번호 알아요? 좀 보내줄 수 있나요?”“드릴 수는 있는데……”“그럼 빨리 좀 보내주세요.”“근데 그 사람 지금 감옥에 있는 거 아니에요?”“네? 감옥이요? 무슨 이유로……”“몰랐어요? 우정아 씨가 유산 후에 우울증이 심해져서 조건웅 씨랑 매일 다퉜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매일 싸우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사건 당일에는 엄청 크게 싸웠대요. 그러더니 우정아가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차로 그를 받았다고 해요.”“세상에!”“원래 이 사실을 유진 씨한테 전하려고 했는데…… 너무 죄송스럽기도하고, 차마 제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근데 이렇게 유진 씨가 전화를 주시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번 일은 참 유진 씨한테 죄송하게 됐습니다.”“아, 어쩔 수 없죠.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마워요.”심유진은 사건의 진상을 듣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지독하게도 나를 힘들게 했던 조건웅과 우정아. 마지막이 좋지는 않구나. 이게 바로 인과응보인가? 이런 걸 보면 신이 있긴 한 것 같기도하네.’심유진은 조건웅의 병원비를 내줘야 하는 건지 아닌지 머리가 아팠다. 지금 그의 부모는 도망갔고, 동생은 연락두절에 우정아는 감옥살이까지……그녀는 그의 직장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릴까 고민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때마침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고, 지금 당장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바로 퇴원하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조건웅 저 상태로 퇴원을 하면 그냥
정재하는 조각상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는 문밖으로 나오는 그녀를 보았다.“왜 아직도 여기 있어요?” 심유진이 물었다.그녀는 그가 벌써 갔다고 생각했다.정재하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 옷 잘 안 닦일 것 같은데요. 여기 집주인이랑 잘 아는 사이라 옷 정도 빌려줄 수 있어요.”“아,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제가 좀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네요.”“아? 혹시 허 대표님하고요?”정재하는 심유진에게 옷을 빌려준다는 핑계로 허태준과 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아뇨. 정재하 씨, 저 혼자 갈 겁니다.”엄밀히 말하면 심유진은 허태준의 파트너로 파티에 온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허태준과 같이 다녀야 할 이유도 없고, 더더욱 그에게 바래다 달라고 할 권리도 없었다. 게다가 이 파티의 분위를 보아하니 허태준이 주인공임에 틀림없었다. 그녀가 그를 데리고 나간다면 파티의 흥이 깨질 것이 분명했다.“유진 씨, 혼자 간다고요? 차 가지고 왔나요? 이곳은 좀 구석진 곳이라 차가 잘 다니지 않아요. 만약 괜찮다면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는 허태준과 말을 몇마디 나누고 싶었지만, 그의 옆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기에 심유진의 도움없이는 말은 커녕 눈인사도 못할 것 같았다. 정재하는 파티에 남아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심유진에게 호감을 얻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정재하가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라는 걸 지난번에 병원부터 느꼈다.그러나 그녀는 안면도 몇 번 트지 않은 그를 너무 성가시게하고 싶지 않았다.“택시 부르면 금방 와요. 괜찮아요.”그녀는 콜택시 앱을 키자마자 휴대폰을 정재하에게 빼앗겼다.“최근에 뉴스 못 봤어요? 콜택시 앱으로 예약한 차량에서 난 살인사건이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이렇게 외진 곳으로 콜택시를 불러요?”심유진도 정재하가 말하는 내용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제가 데려다 드릴 테니 걱정마세요!”정재하는 성큼성큼 앞장섰다.그녀의 휴대폰이
“두 분 어디가시는데요?”“일이 좀 있어서요. 나 대표님 그럼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허태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1층 연회장으로 돌아오자 흩어졌던 사람들이 또 다시 그를 에워쌌다.그는 기분이 언짢다는 듯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들을 막았다.“허 대표!”창가에 앉아 있던 나은희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이 파티에 온 모든 사람들이 허태준과 안면을 트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나은희는 원래부터 허태준과 잘 아는 사이었고, 그에게 아부를 할 이유가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나 대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나은희는 그의 질문에 서둘러 대답하지 않고 와인 한 잔을 들어 그에게 건넸다.“혹시 나하고 술이라도 한 잔 할까?”그녀의 의미심장한 표정에 허태준은 경계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허태준은 나은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항상 무뚝뚝하고 공과 사가 뚜렷한 여성이었다.“허 대표 내 선의를 너무 의심하는 거 아냐? 난 그저 거래를 하자는 건데?”“무슨 거래?”“심유진 씨에 관해서.”심유진이라는 이름을 듣자 허태준은 주저하지 않았다.“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데, 당장 말해봐.”나은희는 허태준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듯 크게 웃었다.“일단 나한테 여형민 씨 개인 핸드폰 번호를 줘. 그럼 내가 유진 씨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줄게.”나은희의 말을 듣고 허태준은 술잔을 내려놓았다.“좀 곤란한데……. 심유진을 찾는데 굳이 다른 사람을 통할 이유는 없지.”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심유진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직접 심유진 씨에게 전화해보던가.”그녀의 태도에 허태준은 이상함을 느꼈다.허태준은 심유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며 전화가 끊어졌다. 허태준은 고개를 갸우뚱하면 몇 번 더 전화를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그 모습을 본 나은희는 술을 한 모금 마시
정재하의 차는 지난번과 같은 은색 벤츠였다. 스포츠카라 그런지 아주 속도가 빨랐다. 바람이 거세게 불자 심유진은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속도를 좀 낮춰주시지요? 너무 추운데…… 그리고 이거 덮개는 안 닫혀요?”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심유진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비비안이 머리카락을 단단히 묶어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엉겨붙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를 일이었다.정재하는 뒤늦게 놀란 듯 덮개를 닫고 히터를 켰다.“오! 미안해요. 혼자 운전하는 게 버릇이 돼서!”심유진은 머리를 정리하며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근데 유진 씨, 시간이 늦었는데 S 대학병원에 가서 뭐해요?”“그냥 일이 좀 있어요.”정재하는 그녀가 대답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한 시간 후에 차는 S 대학병원 입구에 섰다.“오늘 감사했어요.”심유진이 차에서 내리려 하자 정재하가 그녀를 불러세우더니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었다.“밤에는 쌀쌀하니 이거 걸쳐요.” “아……”평소같았으면 거절했을 심유진이지만 날씨도 너무 추웠고, 옷도 얇아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늦은 시간이라 병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유진은 조건웅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 담당 간호사를 찾았다.“조건웅 씨 담당하시는 분 계신가요?”“전데요. 혹시 전 와이프 분?”심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어디로 가서 결제하면 되나요?”“지금 시간이 늦어서 원무과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으니, 핸드폰으로 병원 어플 다운받아서 거기서 납부하시면 됩니다. 여기 조건웅 씨 진료카드 번호 입력하시고 비용 납부하시면 끝이에요. 그리고 이것만 있으면 다음 납부 때도 병원에 오실 필요없어요.”간호사는 서랍 속에서 QR코드를 꺼냈다.심유진은 조건웅과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기에 어플까지 다운받아가며 그의 병원비를 내주기 싫었다. 게다가 병원비 납부에 자신의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매번 그의 병원비가 자신의 카드에서 빠져나갈
심유진이 병원에서 나오는 것을 본 정재하는 얼른 차에서 내렸다.“유진 씨!”그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흔들었다.“아직 안 갔어요?”“아 그게…… 하하.”정재하는 한참 동안이나 실없이 웃어댔다.“허 대표님! 저한테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아, 그래요? 왜 전화를 했대요?”“허 대표님이 저한테 유진 씨랑 같이 있냐고고 물으시더니 어디냐고 유진 씨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어요.” “지금요? 전화를 언제 받았는데요?”심유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유진 씨가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허 대표님의 전화가 왔어요. 아마 30분 전이었죠.”심유진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이미 아홉시가 넘었다.‘그가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한 시간이 걸릴텐데…… 게다가 파티가 일찍 끝날리 없잖아, 나 집에 너무 늦게 가는 거 아니야?’심유진은 서둘러 허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지금 어디야.”그녀는 허태준의 목소리에서 기분이 언짢음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여기 S병원이요. 근데 굳이 여기까지……”“지금 가는 중이야.”허태준의 말소리에는 약간의 바람소리도 뒤섞여 있었다.“오지 않으셔도 돼요. 여기 재하 씨도 같이 있어서 재하 씨가 저를 집에 데려다 주면 되거든요.”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녀는 찬 바람에 몸을 떨며 정재하의 외투를 조금 더 졸라맸다.“나 지금 가고 있으니까 어디 갈 생각말고 거기 있어.”“그래도 굳이……!”그는 심유진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심유진은 어두워진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발만 동동굴렀다.정재하가 그런 심유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뭐라고 하십니까? 여기로 오신대요?”“네.”정재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뛸 듯이 기뻐했다.두 사람은 추위를 피하기위해 차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삼십분 후 병원 입구로 마세라티 한 대가 거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심유진은 한눈에 허태준의 차임을 알아보았다.마
심유진은 허태준의 반응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왜 그가 화가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차가운 공기를 감지하지 못한 정재하는 싱글벙글 웃으며 허태준의 앞으로 갔다.“허 대표님, 우리 또 만났네요.”“아, 그러네요.”허태준은 정재하가 청한 악수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재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심유진은 정재하가 상처를 받을까봐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허 대표님께서는 결벽증이 좀 있으세요……”정재하는 심유진의 말을 듣고 얼른 손을 거두어들였다.“허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사과했다.“아뇨, 괜찮아요.”“……”“아, 정재하 씨? 오늘 고마워요.”허태준의 말에 정재하의 얼굴에는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고맙다는 말은 마세요. 당연한 일인걸요. 게다가……”“심유진 씨, 그 옷 정재하 씨에게 돌려주지?”허태준은 정재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아, 맞다. 이거 돌려드릴게요.”그녀가 외투를 돌려주자마자 허태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가자.”그의 손은 예전과 다름없이 차디찼다. 하지만 정재하의 외투가 따듯했던 탓에 차가운 손이 몸에 닫았지만 소름이 돋지는 않았다.그 두 사람이 차에 오를 때까지 정재하는 심유진이 돌려준 외투를 든채 멍하니 서 있었다.“설마…… 두 사람……?”정재하는 방금 허태준의 행동을 보고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분명 허 대표가 결벽증이 있다고 했는데, 방금 심유진 씨 손목을 잡았잖아?”정재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검은 마세라티가 새카만 도로를 질주했다.심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안전벨트를 꽉 졸라매며 조용히 물었다.“비비안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건가요?”“아니.”심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돌아가서 치마를 깔끔하게 세탁해 볼 생각이었다. “근데 파티 도중에 나오셔도 괜찮습니까?”“안 괜찮지.”“네?”허태준은 턱을 세운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심유진은 미안한 얼굴로 그를
”저도 가기 전에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나은희 씨가 허 대표님이 지금 여자와 밖에 있다고, 곤란하다는 식으로 얘기하시길래 그냥 나온겁니다.”허태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전 남편의 병원비를 왜 네가 내는 거지? 그의 가족은?”“하, 그 생각만하면 화가 나네요. 저 사람 부모님 두 분 다 도망갔고, 간호사는 저한테 매일같이 돈내라고 들들 볶아요.”“부모도 포기한 사람을 왜 네가 거두는 거야? 저 남자하고 무슨 관계가 남았다고 그 돈을 내주는 거고? 멍청한 짓하는 거잖아.”그녀는 직설적인 그의 말에 화가 났지만 그가 한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어쩌면 저 남자 부모가 네 약한 마음을 이용하려는 것일 수도 있어. 그냥 둬봐. 자기 아들이 죽는다는데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있어?”심유진 내심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욕할까봐 걱정이 되어 그의 병원비를 내준 것도 있다. 전 남편이 위독하다는데 그냥 죽기만을 바라본다면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 할 것 같았다.“설마 저 남자한테 미련이라도 남은 거야? 네 재산을 몰래 빼돌린 남자한테?”“아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심유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크고 맑은 눈에는 그에 대한 불만이 배어 있었다.“그게 아니라면 다행이네, 아무튼 이제부터는 저 남자 병원비고, 간호사 연락이고 받지마.”**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심유진은 그가 빌려준 외투를 건네주었다.“허 대표님, 이거 돌려드릴게요.”그러자 허태준은 심유진의 치마의 얼룩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아니, 이거 어떻게 된 거야?”심유진은 한숨을 내쉬며 난감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조심성 없이 술을 쏟아버렸어요. 이거 비비안에게 돌려줄 때 제가 금액 변상할게요.”그녀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아마 몇 백은 하겠지? 설마 몇 천은 아니겠지? 당분간은 손가락이나 빨며 살아야겠구나.’허태준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거 빌린 거 아냐. 내
“어려운 부탁은 아닐 거야.”사람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부탁에는 커다란 함정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허태준은 비록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좋은 사람도 아니다.그렇기에 심유진은 그냥 돈으로 변상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무슨 부탁인지는 모르겠지만, 허 대표님 그냥 돈으로 변상해드릴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렇게 하지. 내일까지 1억을 내 계좌로 보내.”“네? 무슨 옷이 그렇게 비싸요? 1억짜리 옷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왜? 못 믿겠어?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된다면, 비비안더러 영수증을 찍어서 보내라고 할게.”허태준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심유진을 바라보았다.그의 당당한 태도에 심유진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제가 현재는 그렇게 큰 돈이 없어서요. 제가 소송에 승소하고 집이라도 팔게 되면 그때 일부분 상환해도 될까요?”“그때가 언제인데?”“아직 미정이지만…… 아니면 매달 갚을게요.”“심유진 씨, 월급이 얼마지?”“……”“한 천 만원쯤 되나? 거기서 생활비 제외하고 사사로운 소비 제외하면 남는 게 있긴 한가?”심유진은 그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이자도 안 나오는 걸 매달 받아서 뭐해? 분납은 거절하지.”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엘리베이터는 19층에 도착했다.“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심유진은 쉽게 내리지 못했다. 허태준이 그녀의 사정을 봐주지 않자 심유진은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끝내 말을 꺼냈다.“대표님께서 제게 부탁하실 내용이 뭐죠?”심유진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일 당장 1억이라는 큰 돈을 갚을 수도 없고, 그는 그녀의 분납도 거절했다.그녀의 말에 허태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아주 간단해. 그냥 내 연인인척 해주면 돼.”“네?”심유진은 옷 값이 1억이라는 것보다 더 크게 반응했다.“대표님께서는 마음만 먹으면……”심유진은 그의 제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외모며 경제적 조건이라면 어떤 여자도 여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