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은 이토록 센 고집을 가진 사람을 만날 줄 미처 몰랐다.그 느낌이 매우 별로였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약속을 먼저 어긴 사람은 그녀였기 때문이다.“죄송합니다, 여형민 씨. 지금 바로 말씀 전하겠습니다.”그녀는 허리 숙여 사과한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그녀가 가자마자 누군가 노란색 커튼을 열고 나왔다.심유진이 고개를 내민 채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비비안 씨~”하지만 그녀는 소파에 앉아있는 허태준밖에 발견하지 못했다.“비비안 씨는요?”그녀는 의아한 말투로 허태준에게 물었다.“조금 번 분명 비비안 씨 목소리가 들렸는데.”“일 보러 잠깐 자리 비웠어.”허태준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갔다.“무슨 일 있어?”그는 그녀의 앞에 멈춰서더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오늘 메이크업 받으러 오기로 한 탓에 심유진은 아직 생얼 상태였다.이토록 가까이 서 있으니 허태준은 그녀의 솜털과 오른쪽 귀 뒤에 있는 빨간색 점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녀의 하얀 피부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심지어 귓불도 매혹적인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너무... 물어버리고 싶었다.순간 떠오른 생각에 허태준은 저도 모르게 마른 입술을 핥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음...”심유진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자신의 생각을 말할지 말지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비비안 씨가 언제 올 거란 얘기는 했나요?”그녀가 물었다.“아니.”허태준은 여전히 그녀의 귓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온갖 낯부끄러운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귓불을 깨문 채 계속 빨아들이는 모습이었다.그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호흡도 따라서 거칠어졌다.“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심유진이 도로 커튼을 닫으려고 하는데 한 손이 나타나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마음은 복잡해도 허태준은 애써 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비비안 씨가 언제 올지 아무도 몰라.”“아...”심유진은 입술을 꽉
허태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눈빛에서 빨간 뭔가가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혹시 지퍼에 낀 머리카락 봤어요?”심유진의 물음이 그의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다.허태준은 두 눈을 깜빡이더니 잡생각을 떨쳐내고 고개 숙여 지퍼를 확인했다.심유진의 검은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흰색 지퍼에 끼어있었다.“아플 수 있으니까 좀 참아.”허태준은 목이 마른 탓에 한껏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한 손으로 지퍼 꼭대기를 잡은 뒤 두 지퍼를 가지런히 놓고 다른 손으로 지퍼를 아래로 내렸다.그의 행동은 매우 부드러웠고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는 것 같았다.심유진은 실수로 거울로 그의 얼굴을 봤다가 깜짝 놀라 굳어버리고 말았다.지금 이 시각 허태준은... 그녀가 알고 있던 그의 모습과 뭔가 달랐다.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쿵쿵 뛰기 시작하더니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심유진의 귓가에는 오로지 자신의 심장소리밖에 들리지 않았고 쿵쿵 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뒤흔들었다.그녀는 다급히 고개를 숙여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허태준은 순조롭게 지퍼를 내린 뒤 조심스레 그녀의 머리카락을 빼냈다.“아파?”그가 물었다.“안 아파요.”심유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목을 틀자마자 두피가 걸린 탓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뱉었다.허태준은 가볍게 피식 웃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바보.”심유진은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지퍼가 열리자 그녀의 뒷등이 허태준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그는 어렴풋이 그 촉감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단결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우면서 매혹적이었다.심유진은 한참 동안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을 느끼고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됐어요?”“잠시만 더 기다려.”허태준이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그는 두 손가락으로 지퍼를 눌러 위로 올렸다. 그 과정에 중지가 그녀의 등을 살짝 스쳤는데 그 촉감은 마치 거위털처럼 두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혔다.실수로 닿은 스킨쉽인 걸 알면서도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여 숨을
허태준은 내내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입은 드레스에 대한 그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허태준은 깜짝 놀랐다가 이성을 되찾았다.“뭐?”그가 물었다.심유진은 약간 풀이 죽었다.역시나 드레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서도 넋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이 드레스 어떤 것 같아요?”그녀는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은 채 되물었다.“괜찮아.”허태준은 무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역시.심유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럼 나가줘요. 다른 드레스 입어볼게요.”“됐어.”허태준은 손을 휘두르다가 심유진의 의아한 눈빛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러고는 두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늦었어. 그냥 이걸로 해.”“아, 네.”허태준이 입을 연 이상 심유진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그럼 비비안 씨가 와서 메이크업 해줄 때까지 기다릴게요.”허태준은 대충 핑계를 둘러대고 자리를 떴다.“내가 부르러 갈게.”그는 그녀와 협소한 공간에 단둘이 계속 있고 싶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주체를 못 할까 봐 두려웠다.다른 한편.비비안이 계단 입구에 도착했다. 서우연은 여전히 그곳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죄송해요, 우연 씨”비비안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저쪽 손님분들께서 외부인 출입을 원치 않는다고 하시네요.”“그럼 난 어떡해요?!”서우연은 다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버리고 말았다.“나 파티 참석할 때마다 한정판만 입는 거 몰라요? 게다가 오늘 밤 파티에 참석하는 셀럽들이 얼마나 많은데, 비교당하기 싫단 말이에요! 상관없어요,”그녀는 힘 있게 비비안의 팔을 낚아채며 말했다.“난 오늘 반드시 한정판 드레스를 입어야겠어요!”“하지만...”비비안은 매우 난감했다.“안되고 말고 없어요!”서우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짜고짜 앞으로 걸어갔다.“드레스 하나 고르는 게 뭐 어때서요? 일 생기면 나 혼자 책임질게요!”“아, 우연 씨!”비비안은 미처 그녀를 막지 못했고 발을 동동 구르며 그
커튼 고리와 철봉이 마찰하는 소리가 비비안의 귓가에 들려왔다. 순식간에 몰려드는 공포에 그녀는 몸을 파르르 떨었고 심장 소리도 반 박자 느려지는 것 같았다.“비비안 씨!”심유진은 커튼 밖으로부터 비비안의 목소리를 듣고 허태준보다 먼저 피팅룸을 나섰다.“드레스 골라뒀어요, 한 번 피팅해보세요.”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도로 진정시킨 뒤 비비안은 재빨리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한 채 뒤돌아섰다.“알겠어요.”그녀는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심유진이 예쁘거니와 드레스가 화려한 건 알고 있었지만 양자가 결합하면 이토록 신비로운 조합을 이룰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음속 진심을 입 밖으로 드러내고 말았다.“너무 잘 어울려요.”어울리다 못해 마치 이 드레스가 심유진을 위해 제작된 것처럼 보였다.비비안의 인정을 받은 심유진은 도로 자신감을 되찾았다.그녀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다행이네요.”“잠시만 안에서 기다려 줘요.”비비안이 그녀에게 말했다.“잠깐 일이 생겨서 해결한 다음 스타일링과 메이크업을 해드릴게요.”심유진은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서우연을 힐끗 쳐다보더니 인사할까 말까 2초간 머뭇거리다가 후자를 선택했다 저번 만남이 두 사람에게 기분 좋은 만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알겠어요.”심유진이 말을 마치자마자 서우연이 곧바로 손을 들었다. 그녀는 심유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저 드레스 한번 입어볼래요.”그녀의 말에 주위는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비비안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저희 샵은 드레스당 한 벌밖에 없어요, 게다가 저 드레스는 손님분께서 이미 고르셨어요... 사실 새로 들어온 드레스 중에 예쁜 것도 많은데 한번 보실래요?”“아니요.”서우연은 심유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꼭 저 드레스로 할래요.”심유진도 무척 난감했다.그저 아무렇게나 시도해 본 드레스인데 허태준의 인정도 받지 못했을뿐더러 서우연의 픽으로 뽑히기까지 했으니 말이다.“그럼 제가 다른 드레스로 바꿀게요.
허태준은 그녀에게 해명하지 않았다.“지금 바로 내려보내면 이 일은 없었던 일로 할게요. 그렇지 않으면,”그는 두 눈을 깜빡이더니 목소리 톤을 확 낮추어 말했다.“계약서대로 처리하죠.”비비안은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우연 씨, 먼저 내려가요!”그녀는 서우연에게 미친 듯이 눈치 줬지만 서우연은 그녀를 봐주지도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허태준에게 향해있었다.“허 대표님!”서우연의 눈가에는 어느샌가 이미 눈물이 고여있었다.그녀는 심유진을 밀어낸 채 빠른 걸음으로 허태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러고는 두 팔로 힘 있게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저번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모두 회사의 뜻이었지 제 뜻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제발 살려주세요!”그녀는 허태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그의 흰 셔츠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말했다.허태준의 표정은 파랗게 질렸고 싸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그의 옆에서 코를 어루만지고 있던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고 비비안도 두려운 마음에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하필 서우연만 눈치 없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주절거리고 있었다.“뭐든 할게요! 영화제작사만 막아놓지 않으면 뭐든 할게요!”저번 계획이 실패로 끝나자 그녀는 로열 호텔에서 쫓겨났다.이윽고 그녀는 두 달 동안 신작 촬영에서 끊임없이 배역에서 밀려났다. 그러자 감독이 그녀에게 은밀히 소식을 전했다.“우연 씨가 아무래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린 것 같아요.”이윽고 반년 전부터 계약했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하차하고 한 달 동안 아무런 대본도 손에 넣지 못했다. 원래 그녀에게 대본을 건넸던 회사에서도 그녀의 등장에 하나같이 배우선정이 완료되었다고 전했다.물러설 길이 없게 된 그녀는 비굴하게 촬영팀 네다섯 개를 오가면서 오디션을 봤지만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그녀의 매니저도 그녀에게 한두 번 물어본 게 아니었다.“대체 누구한테 잘못을 저지른 거예요?”그녀가 누구한테 잘못을 저지른단 말인가?그건 아마 허태준
그때 당시 그녀는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살면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실패였기에 아주 큰 타격감을 입었다고 해도 말이다.하지만 그 일이 있은 뒤 벌어진 일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했고 그녀의 컨트롤도 벗어났다.회사 대표를 찾아가 구해달라고 했는데도 돌아오는 건 오직 전보다 많은 수익뿐이었다.수익의 대가는 회사의 다른 여자 연예인들의 더 많은 스폰이었다.그녀는 회사 대표에게 구걸했지만 그는 매우 단호하게 얘기했다.“넌 이미 허 대표의 지시로 모든 스폰이 끊겼어. 그자를 손에 넣지 못하는 한 아무도 너를 배우로 쓰려고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회사를 위한 너의 마음은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있을게. 계약기간 동안 지금처럼 우월한 생활은 유지할 수 있을 거야.”현재 그녀의 우월한 생활을 유지하려면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지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직 이루고 싶은 꿈과 포부가 있었다. 그녀는 잠자리만 동반하는 아가씨로 몰락하고 싶지 않았다.때문에 그녀는 허태준을 만나 살려달라고 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들여 오늘 밤 파티 요청장을 겨우 손에 넣은 것이었다. 최대한 단번에 그를 쓰러 눕혀 잠자리를 가지는 것이었다.아무래도 하느님이 그녀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했는지 파티가 시작되기 전 그와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준게 아닌가 싶었다.그녀는 이 기회를 반드시 꽉 잡아야 했다.“회사 대표님 협박을 받아서 그런 거예요! 모든 일은 다 대표님께서 사주한 거예요! 만약 그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영원히 묻어버리겠다고 협박했거든요! 그래서 별다른 방법 없이...”서우연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글썽이며 허태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어떻게 울어야 가장 예쁘고 불쌍한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순간은 허태준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그는 누군가가 우는 게 싫었고 그를 안은 채 우는 건 더더욱 싫었다. 왜냐하면 그의 옷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그 시각 그는 오로지 눈앞의 여자가 사라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허태준을 제외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그의 심장은 돌로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나한테 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다고?”허태준은 차갑게 피식 웃었다.“하긴. 전에 당신과 함께 잠자리를 가진 남자만 봐도 알 수 있어. 당신 사람 보는 눈 별로야.”사정없이 까인 서우연은 맨 숨을 들이키다가 침이 기관지로 들어가는 바람에 정신없이 기침했다.허태준은 더욱 꺼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가만히 서서 뭐 하고 있어요?”그는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안 끌어내요?”사람들은 그제야 정신 차리고 재빨리 달려가 서우연을 끌어냈다.서우연은 힘 있게 발버둥 치며 기침하는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내려줘!”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그녀의 부름 소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계속 이어졌고 한참 지나서야 완전히 사라졌다.3층에는 드디어 허태준, 심유진과 비비안 단 세 사람만이 남겨져있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놓아준 뒤 고개 숙여 자신의 겉옷 단추를 풀었다.“남자 예복은 있어요?”그가 비비안에게 물었다.“있어요!”비비안이 다급히 대답했다.“이쪽에 있어요. 안내해 드릴게요.”“잠시만요.”허태준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이윽고 넥타이를 풀어 셔츠를 벗었다.“그전에... 샤워 좀 하고 싶은데요.”그는 윗옷을 벗어 단단한 복근을 드러냈다.비비안은 순간 넋을 잃었다가 한참 지나서야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옮겼다.“욕실은 2층에 있습니다.”“안내해 줘요.”허태준이 말했다.“네, 네.”조금 전 목격한 그림에 적잖이 충격받은 비비안은 말을 더듬었다.허태준은 또 심유진에게 당부했다.“예복 한 벌 골라줘.”“네?”심유진은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고 있다가 갑자기 이름 불려 의아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의 놀란 표정을 불쾌함으로 받아들였다.“왜, 싫어?”그는 일부러 말끝을 길게 놀려 불쾌함을 잔뜩 드러냈
샵 2층과 3층의 구조는 완전히 달랐다. 인테리어와 세팅 스타일은 고급 클로즈샵에 더욱 가까웠다.심유진은 직원의 리드하에 건물을 한참 돌아서 겨우 맨 끝에 있는 욕실을 찾아냈다.직원의 소개에 따르면 이 욕실은 샵을 운영한 지 1년이 되던 해에 급한 스케줄 때문에 찾아온 연예인들이 잠깐 샤워하는 용으로 따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데다 비관계자들은 찾아올 일도 없었으니 프라이빗 수준이 아주 높았다.심유진이 두어 번 노크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허태준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시죠?”심유진이 대답했다.“허 대표님, 옷 가져왔습니다.”“혼자?”“저 혼자예요.”허태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뜨거운 수증기가 훅 뿜어져 나왔다.심유진은 고개를 들자마자 알몸에 넓고 단단한 데다 물방울까지 흐르고 있는 가슴팍을 발견했다.수도 없이 많은 물방울들이 가슴골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물방울을 따라 아래로 옮겨졌다.심유진은 그제야 허태준이...한 쌍의 긴 다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심유진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 쌍의 눈동자는 자신의 치맛자락밖에 보려고 들지 못했다.그녀와 달리 허태준은 아주 덤덤했다.그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옷.”심유진은 재빨리 손에 든 옷을 그에게 건넸다.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스타일이 마음에 드는지 한번 봐봐요.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비비안 씨가 바꿔준다고 했어요.”“잠시만 기다려.”허태준은 문을 닫았다.다시 문이 열렸을 때는 그가 이미 자신의 몸을 꽁꽁 싸맨 뒤였다.가장 심플한 검은색 예복에 가장 심플한 흰 셔츠를 매치하니 우아한 카리스마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온몸으로 섹시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심유진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안 올라가?”허태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올라가요!”그녀가 다급히 대답했다.허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