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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하영이 못 데려가.”

이찬형은 바로 화를 냈다.

“대체 언제까지 연기할 건데?!”

“그거 알아? 소방서 식구들이 굳이 널 부르라고 하지 않았어도 너한테 전화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오라고 할 때 잔말 말고 와!”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래, 하영이 데리고 갈게.”

통화가 끝나기 전 그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 네가 연기하고 있다는 거 전부 알고 있었어! 하영이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늦지 않게 시간 맞춰서 와. 괜히 내 체면 구기게 하지도 말고!”

그날 밤, 나는 약속대로 이찬형 축하 파티가 열리는 호텔로 왔다. 멀리서부터 나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정수민을 발견했다. 정수민은 이찬형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혈색이 없는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주위에 앉은 덩치 큰 소방관들이 그런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을 반짝였다.

하긴 정성껏 꾸미고 온 정수민과 달리 나는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머리도 산발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고 있던 형수님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이찬형은 나를 보더니 짜증스럽게 미간을 확 구기며 강한 싫증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왜 그 꼴로 왔어?”

“내가 축하 파티라고 말하지 않았나? 좀 꾸미고 다닐 수는 없어? 창피하게 그게 뭐야!”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테이블 옆에 있던 물티슈를 뽑아 수저를 닦기 시작했다. 아주 힘껏.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더러워 보였다.

“하영이는?”

그는 여전히 따져 묻고 있었다. 짜증이 가득 묻어난 어투로.

“이렇게 중요한 날에 하영이는 왜 안 데리고 왔어?”

수저를 닦던 내 손이 멈칫했다. 가슴이 칼로 찢기는 듯 너무 아팠다.

“내가 말했잖아. 못 온다고.”

“왜 못 오는데? 못 온다는 건 또 무슨 소리냐고.”

이찬형은 내 손에서 젓가락을 빼앗은 뒤 확 던져버렸다.

“대체 딸 교육은 어떻게 하는 거야? 이하영이 언제부터 이런 말 안 듣는 애가 되었냐고!”

상황을 지켜보던 정수민은 얼른 이찬형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찬형아, 화내지 마. 유정 언니는 그런 뜻이 아닐 거야. 언니는...”

“그래요! 나 그런 뜻으로 말한 거 맞아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가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하영이는 못 와. 이젠 영원히 못 올 거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이찬형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똑바로 말해!”

나는 심호흡한 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이찬형, 내가 그렇게 애원했는데. 그렇게 하영이를 구해달라고 빌었는데! 넌 구해주지 않았어! 넌 하영이가 아닌 쟤를 구했다고!”

나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의 무릎에 앉아 있는 정예정을 가리켰다. 그러자 정예정은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정수민은 속상한 듯 정예정을 품에 안으며 나직하게 달랬다.

“괜찮아. 쉬이.”

짜악!

이찬형은 망설임도 없이 내 뺨을 갈궜다. 볼이 순간 후끈거리며 아팠다.

“차유정, 내가 경고했지? 밖에서 지랄하지 말라고!”

그는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가서 이하영 데리고 와! 안 그러면 다시는 집에 발 들이지 못할 줄 알아!”

나는 차갑게 그를 보았다. 순간 모든 것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이 남자가 바로 내가 10년 넘게 사랑한 남자이고 내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가정이었다.

그러나 이하영이 죽은 순간 그 마음은 전부 사라졌다.

“이찬형, 너 정말 역겹다!”

나는 내 앞에 있던 그릇을 바닥에 던졌다. 그릇은 산산조각이 났다.

주위 공기도 얼어붙었고 모든 사람들이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몇 초 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렸다.

“형수님, 이거 일단 내려놓으시고. 우리 대화로, 대화로 풀어봐요!”

“그래요... 아이가 있잖아요... 얼마나 놀랐겠어요...”

“찬형 형님께선 오늘 이미 충분히 힘드셨다고요. 일단 우리 앉아서 식사부터 해요, 네?”

나는 자리에 내려놓은 가방을 들어 이찬형 앞에 던졌다.

정수민은 갑자기 끼어들며 이찬형 앞을 막았다.

“유정 언니, 이러지 말아요. 찬형이도 이틀 동안 하영이를 못 봐서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영이를 데리고 오세요.”

“뭐가 어찌 되었든 하영이는 찬형이 딸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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