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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지아는 나와 다람이를 번갈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엄마가 돌아왔으니까, 이모는 이제 가야 해.”

그러자 다람이는 바닥에 앉아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엄마 나가! 난 이모가 엄마였으면 좋겠어! 이모가 엄마가 돼줘!”

겨우 4살인 다람이가 철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그 순간 내 가슴은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아팠다.

지아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애들은 원래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마.”

곁에 있던 수현이가 바닥에 앉아 있는 다람이를 차갑게 끌어올리며 말했다.

“다시 그런 말 하면 밖에 나가서 한 시간 동안 벌 서야 할 줄 알아.”

수현이의 목소리에는 냉정한 위압감이 담겨 있었고, 다람이는 순순히 품에 안겼다.

조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거실은 다람이의 훌쩍거림만 남아 조용해졌다.

난 눈앞에 펼쳐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며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유지하며 이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현이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난 여전히 전업주부로 살아갈 수 있을 터였다.

지아 역시 여전히 내 고민을 들어주며 도와주는 친구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람이, 지금은 제멋대로 굴지만 결국 내가 낳은 아들이니 언젠가는 내 편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수현이를 바라보며 난 내 목소리라고 믿기 어려운 단호한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수현아, 우리 이혼하자.”

그렇게 난 고향 강주로 돌아왔다.

고향이라 부르긴 했지만, 그곳에서 나를 반겨줄 이는 보육원 원장님뿐이었다.

“정아야.”

원장님은 내 손을 꼭 잡고 눈물 글썽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난 원장님의 손을 감싸 쥐고 발아래 고인 작은 웅덩이를 바라보며 차분히 대답했다.

“다 잘 될 거예요.”

정말 그럴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남편, 아들, 그리고 절친.

내 인생에서 가장 가까웠던 세 사람이 단 하룻밤 사이에 모두 사라져버렸다.

어린 시절처럼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원장님은 나를 꼭 안아주시며 말했다.

“힘들 땐 언제든지 집에 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출발하려는 찰나 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들 몇 명에게 밀려 물웅덩이에 넘어져 있었다.

깨끗했던 하얀 드레스는 이미 흙투성이가 돼 있었다.

원장님은 다가가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셨고, 난 자연스럽게 그 여자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 아이는 품 안에 작은 곰 인형을 꼭 안고 있었는데, 흙탕물이 튀어 곰 인형의 얼굴이 더러워져 있었다.

“이거 너한테 중요한 거야?”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손가락으로 인형의 얼굴에 묻은 흙을 닦으려 했지만, 오히려 더 더럽게 만들고 말았다.

원장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아이는 매일 문 앞에서 가족이 데리러 오길 기다리지만, 이젠 돌아갈 가족이 없어.”

그 작은 뒷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문득,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이 아이를 입양할 수 있을까요?”

그날 문 앞에 서 있던 그림자는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

가족관계 증명서의 한 장이 두 장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난 그 아이에게 강희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집에 도착한 후, 난 따뜻한 물을 받아 희연이의 온몸을 깨끗이 씻겼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희연이를 돌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람이는 말썽꾸러기에 항상 밥을 떠먹여 줘야 했고 편식이 심해서 자주 밥상을 엎곤 했다.

반면, 희연이는 말없이 내가 차려준 음식들을 조용히 먹었고 식사를 마치면 스스로 설거지까지 했다.

희연이를 돌보는 건 다람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정기적으로 충치 검사를 하던 중, 희연이의 어금니 안쪽에 충치가 발견됐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다람이가 떠올랐다.

다람이는 이가 썩어서 난 철저히 단 음식을 금지했다.

그날 다림이가 지아가 탕수육을 해준다고 했을 때도 수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만큼 수현이는 다람이의 치아 상태에 관심이 없었다.

생각이 너무 길어지자 희연이가 내 팔을 톡톡 두드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장난기가 발동해 말했다.

“예전에 본 영화에서 입양된 아이가 사실 성인 난쟁이였다는 이야기가 있거든. 그래서 네가 진짜 어린이인지 확인하려면 네 치아를 잘 검사해봐야겠어.”

그 말을 들은 희연이는 처음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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