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화

저녁에 희연이가 베개를 안고 내 방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같이 자도 돼요?”

난 희연이를 침대로 들어 올렸고, 그때 희연이가 살짝 떨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무슨 일 있어?”

희연이는 이불 속에서 눈만 내밀며 답했다.

“엄마가 말한 그 영화 봤는데... 좀 무서웠어요.”

순간 멍해졌다가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희연이는 이불을 더 끌어올리며 말했다.

“웃지 마요. 엄마.”

그날 이후로 희연이는 자주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희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희연이가 누군가와 싸웠다는 전화를 받았다.

학교로 가는 길에 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 보았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희연이는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였고, 감정 조절도 남다른 편이었다.

내가 희연이와 함께 지낸 이후로 흔들렸던 순간은 공포영화 사건 딱 한 번뿐이었다. 항상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온 아이가 어떻게 싸움을 벌였을까?

교실에 도착하니 선생님은 이미 두 아이를 떼어놓고 있었다.

선생님은 사건의 경위를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새로 전학 온 남자아이가 희연이의 전화 시계 화면을 보고 그 배경에 있는 여자가 자기 엄마라고 우겼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시계를 빼앗으려 했고, 결국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희연이는 내가 오자마자 펜을 내려놓고 책가방을 챙겨 나에게 다가왔다.

희연이가 다치지 않았고 감정도 차분한 모습에 안도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엄마!”

희연이는 짜증 난 듯이 그 아이의 옷깃을 잡아채며 뒤로 밀어냈다.

“야, 콧물 엄마 치마에 묻었잖아.”

그제야 난 방금 엄마라고 부른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비록 앞니가 빠지고 키가 많이 컸지만, 내 아들 진다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람이는 울어서 눈이 부은 상태로 나를 가리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이 내 엄마야. 내 엄마를 돌려줘!”

희연이는 똑같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내 엄마는 마라탕을 좋아하고 공포영화를 즐겨 봐. 네 엄마랑은 다르다고.”

다람이는 나를 향해 애원하는 눈빛으로 보며 내 손가락을 붙잡았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야채고, 공포영화는 절대 안 보잖아. 맞죠, 엄마?”

난 다람이의 손을 천천히 떼어내고 희연이의 책가방 끈을 어깨에 걸어준 후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

“희연아, 오늘은 혼자 집에 갈 수 있지?”

희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갔다.

다람이는 내가 희연이를 배웅하는 모습을 보고 눈빛이 점점 흐려졌다.

하지만 내가 다람이를 쳐다보자 애써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 언제 집에 가요?”

그 고집스러운 표정은 정말 수현이와 똑 닮았다.

“아빠는?”

다람이는 고개를 숙이며 신발 앞코만 바라보았다.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

그때 선생님이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수현 씨가 도착하셨어요. 양쪽 부모님이 한 번 만나보셔야 할 것 같네요.”

내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다람이는 선생님과 함께 나가면서도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난 교실 앞줄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장난을 치듯 입을 열었다.

“왜 엄마가 집에서 야채를 많이 먹는지 알아?”

다람이는 고개를 돌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네가 야채를 한 입도 안 먹으려 해서 엄마가 너한테 영양 균형을 맞춰주려고 일부러 같이 먹어준 거야. 내가 열 입을 먹어야 네가 겨우 한 입을 먹었지.”

“그래서 넌 내가 야채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야.”

“사실은 엄마도 공포영화를 엄청 좋아해. 근데 너랑 아빠가 공포영화를 싫어하니까 내가 너희를 맞추려고 다른 걸 봐준 거야.”

다람이의 눈가가 약간 붉어졌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엄마, 이제 야채도 먹고 공포영화도 같이 볼게요, 네?”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